창포담을 찾아서
" 계곡 입구로 들어갔다. 동쪽으로 수십 보 가지 않아 점차 맑고 깨끗한 시내물이 보인다. 가운데 흰 조약돌이 나란히 있고, 언덕 위엔 소나무가 십여 그루 있다. 모두 곧고 수려하여 매우 맑은 그늘을 만든다. 북쪽 가까이에 모래언덕이 깨끗하게 솟아 있는데, 물을 만나면서 그친다. 바닥이 굽어 들어간 곳은 주사(朱砂)처럼 붉다. 계곡물이 그곳으로 흐르며, 맑은 물이 모여 못을 이룬다. 못 좌우로 석창포(石菖蒲)가 덮고 있는데, 푸르게 우거져서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창포담(菖蒲潭)이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멀리 계곡 입구가 보인다. 억새 너머로 보이는 계곡은 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서 빨리 오라고 부르는 듯하다. 흥분된 상태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입구에 도착하자 너무나 막연했다. 첫 단추의 역할을 하는 것이 창포담인데 도저히 찾을 수 없다. 하류부터 유심히 보았으나 김창흡이 묘사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콘크리트 다리 밑을 통과하여 계속 위로 걸었다. 평범한 개울의 모습이 지속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며 돌을 밟고 물을 건너 맞은 편으로 갔다가 다시 건넜다. 평지와 산이 만나며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다다르자 모래 사이에 성글게 풀이 난 언덕이 보인다. 이곳이 김창흡이 말하던 모래언덕일까. 언덕 아래 물가의 바위들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석창포를 볼 수 없으나 돌단풍과 이끼들이 바위 위에 수를 놓고 있다. 물에 잠긴 바위의 색도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주변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다만 못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어서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창흡이 다녀간 이후 몇 번의 큰물이 지나가면서 돌로 메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검붉은 바위와 모래 언덕만이 창포담임을 알려주고 있다. 동행한 많은 사람들도 이곳이 창포담일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계곡입구 |
창포담 |
구슬이 쏟아져 내리는 유주담
" 못의 동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거의 네다섯 구비를 돌아가면 물길은 점점 높아지고 계곡은 차츰 좁아져 많은 물이 흐른다. 비스듬히 쏟아져 흐르며 아래 위로 돌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물길이 바뀌면서 내맡겨져 점점 완만히 흐르다가 나중에 길쭉한 못이 된다. 못의 모양은 큰 구유통 같다. 옆의 늙은 나무가 늘어뜨린 넝쿨은 돌 위로 내려와 또아리를 틀고, 물결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나는 벌써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유주담(流珠潭)이라고 이름 붙였다. "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창포담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돌 사이를 통과하기도 하고, 돌과 돌을 건너뛰기도 했다. 계곡 오른쪽에는 토끼길 같은 길이 계곡을 계속 따라 온다. 군인들이 작전 수행을 위해 다니는 길인가? 아니면 진짜 토끼가 다니는 길인가? 바로 옆에 검은색의 군용 전화선이 늘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군인들이 다니면서 생긴 길인 것 같다. 좀 지루하다싶을 때 울창한 나무 때문에 컴컴해진 곳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물줄기와 제법 깊은 못이 나타났다. 오른쪽 바위는 검은색을 띠고 있고, 그 위에 푸른 이끼가 뒤덮고 있다. 반면 왼쪽은 근래의 홍수 때문인지 밝은 회색을 띠며 뒤엉켜 있다. 못의 대부분은 돌로 메워졌다. 가운데만 깊게 파여 투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다. 옥색이 저런 색일까. 갈증을 느끼자 아무 거리낌 없이 사슴처럼 엎드려서 물을 마셨다. 땀으로 부족해진 몸의 수분이 석천계곡의 물로 깨끗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아마 김창흡은 구유통 같은 못의 형태보다, 구유통으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물을 하얀 구슬이라 생각하고 유주담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리라. 유주담이라 생각한 곳 바로 위에 유주담과 비슷한 형태의 못이 다시 나타났다. 논쟁이 분분하였으나 아래쪽이 유주담일 것 같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았다.
유주담 |
유주담 위에 있는 못 |
금벽담을 만나다
"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자주 못과 여울을 만났다. 대부분 거울 같이 맑고 깨끗한데, 대개 돌의 색깔 때문이다. 물이 멈춘 곳은 깊으니 어떤 것은 감청(紺靑)색을 띠기도 하고 옥색을 띠기도 한다. 모두 감상할 만하고 씻을 만하며, 움켜쥘 만하고 손으로 떠서 마실 만하다. 그러나 모두 이름을 지을 수 없다. 제일 마지막에 커다란 못이 있는데, 길이가 50보이고, 너비는 길이의 절반이다. 이 못은 가운데서부터 가장자리까지 물빛이 푸르며 맑은데, 동쪽으로 급한 여울을 받아들인다. 북 같은 돌이 있어 돌을 밟고 바라보니, 돌 하나가 북쪽 언덕에 있다. 산 짐승이 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까이 가니 바로 못 가운데로 숙이고 있다. 나는 못 색깔을 취해서 금벽담(金碧潭)이라고 이름 붙였다. "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유주담을 출발하여 계곡 옆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자마자 경고문과 위험을 알리는 입간판, 그리고 이곳부터 아래쪽은 사격구역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나란히 서 있다. 산짐승에게 알리는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꾸준히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가. 명성산을 등산한 하산객일 수도 있고, 지역주민일 수도 있겠다. 나같이 부대장의 완곡하고도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휴일을 이용해 계곡을 탐방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 하루 빨리 통제가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김창흡이 지금 이러한 현실을 안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할 것인가?
유주담과 금벽담 사이는 변화무쌍한 바위와 여울들, 그리고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오른편은 너럭바위들로 이루어져있고 왼편은 책상만한 것부터 집채만한 중형의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흑백사진기로 찍으면 바로 동양화 한 폭이다.
동양화 같은 곳을 여러 차례 지나자 금벽담이 나타난다. 금벽담도 이전의 창포담과 유주담처럼 규모에 차이가 있다. 이것 때문에 답사자들 사이에 논란이 오고갔다. 한번 오르내리며 다른 곳을 찾았으나 이곳이 제일 적합하다고 잠정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시 살펴보니 너럭바위는 금빛을 띠고 있고 물은 푸른색을 머금고 있었다.
도의 세계로 통하는 통현교
금벽담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연이은 커다란 바위와 양옆의 가파른 절벽은 뛰어난 풍경을 연출하여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였으나, 바위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신음소리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와 노약자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것이다. 왼쪽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있고, 오른쪽은 나무 그늘로 컴컴할 정도다. 스님들은 왜 이렇게 험한 곳을 지나 아직 확인하지도 못한 곳에 석천사를 지었을까? 스스로 자신을 험한 곳에 유폐시키고 용맹정진하기 위해서였을까?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난코스인지라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물에 빠지곤 했다. 계곡을 따라가다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 왼쪽 언덕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언덕으로 건너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스님들도 여기서 곤란함을 겪었을 것이다. 갈수기인지라 나무다리가 없어도 껑충 뛰어 건널 수 있다. 그러나 큰 물이 지나가는 여름에 나무다리가 없으면 건너편으로 갈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속세와 멀어지는 첫 번째 관문 역할을 한 것이 통현교였을 것이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이곳을 통과하면 도(道)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러한 구도(求道)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 통현교(通玄橋)인 것 같다. 현(玄)은 모든 색을 버무려 만든 검은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통현(通玄)은 도를 꿰뚫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미화석에 취하다
" 다리를 건너 조금 북쪽으로 가면 넓은 돌이 비탈져 있다. 뒤는 높고 앞은 낮은데, 앞쪽이 맑게 흐르는 물에 닿아있다. 자리를 펼쳐놓고 앉을 만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이 둘러싸고 있고, 온갖 풀과 나무가 구불구불하다. 그 사이에 기이한 꽃이 섞여 있고 울창한 숲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어, 이상한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마음을 취하게 하기 때문에, 그 돌을 미화석(迷花石)이라 부른다."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속인인지라 다리를 건너고도 도(道)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 단지 풍경에 취하고 험한 길에 놀라며 지명에 해당되는 곳만 눈을 밝히며 찾을 뿐이다. 김창흡이 봤을 때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다리를 건너서 위로 몇 발자국 옮기자 푸른 못이 왼편으로 보인다. 못과 맞닿은 것은 커다란 바위이다. 비스듬히 서 있는 바위가 김창흡이 말한 미화석이다. 김창흡은 기이한 꽃의 향기에 취해 어질어질했으나, 숨 가쁘게 걸어온 나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힘이 들어 어질어질할 뿐이다. 눈으로만 경치를 감상해왔던 나는 코로도 경치를 감상하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 눈을 감았다. 청량한 기운은 느껴지지만 코는 땀 냄새만을 맡을 뿐이다. 얼마나 공력을 쌓아야 김창흡의 경지에 이를 것인가?
미화석 |
미화석 앞에 있는 넓은 바위 |
까마득한 구첩병을 마주하다
" 북쪽으로 바라보자 큰 돌병풍이 막힘없이 벽처럼 서 있다. 색깔은 푸른색이고 형세는 매우 장엄하다. 아래 부분이 땅에 들어가 있어 몇 백 길인지 알 수 없다. 그 윗면은 깎아 만든 듯하며 옥같이 기이한 것이 수 십 길 정도쯤 된다. 그 사이엔 많은 나무가 있다. 기세를 믿고 다투어 자라니, 바라볼 때 공중에 나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구첩병(九疊屛)이라 이름 붙인다. 구첩병은 다하면서 남쪽부분이 꺾어져 들어간다. "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계곡 입구에서 바라볼 때 구름 밑으로 허옇게 보이는 곳이 있다. 처음엔 산사태가 난 곳인가 여겼다. 계곡으로 들어와서도 하늘이 보이는 곳마다 이곳을 볼 수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그곳이 바위란 것을 알았고, 바로 앞에 와서야 구첩병임을 알았다.
지금 구첩병 밑에 서 있다. 목이 아파서 제대로 볼 수 없다. 누워야만 온전히 구첩병을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앞의 미화석은 코로 감상해야하는 곳이라면, 구첩병은 계곡의 바위에 누워 감상해야하는 곳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까마득히 솟은 바위벽은 두려움마저 들게 할 정도이다. 전혀 틈이라곤 없을 것 같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을, 김창흡은 공중에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밋밋할 것 같은 거대한 바위는 나무가 있음으로 인해 살아있는 바위가 되었고, 생기 있는 바위는 100폭 병풍이 되어 석천계곡의 바람막이가 되었다.
구첩병의 아래 부분은 깊은 못이 휘감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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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첩병 |
구첩병 아래 못 |
흰 구름이 뒤엉킨 소운폭포
" 돌길이 여러 번 꺾이자 폭포가 나온다. 대략 하나의 큰 바위로 이루어졌다. 거의 40~50길이나 서 있는데, 그 위 가파르게 깎인 부분이 3분의 1이나 된다. 폭포는 위로부터 곧바로 떨어져서 가파르게 깎인 곳을 지나게 되면 넓게 퍼지면서 꾸불꾸불 흘러 내려 못으로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가랑비가 내리는 것은 어느 곳에 부딪혀 물줄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폭포의 위와 아래에 함께 한 그루 울창한 소나무가 특이하게 자라고 있는데, 엄숙한 기풍이 있다. 그 사이로 흩어지는 물거품이 바뀌어 회오리바람처럼 뿌린다. 바람이 지나면 흰 구름이 뒤엉킨 것 같아, 소운폭포〔素雲瀑〕라고 부른다. 돌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 굽어 돌며 폭포를 내려다보면 더욱 더 특별하고 기이하다. 햇살이 폭포에 내리 비쳐 빛이 나면서 서로 빛을 발하니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곳에 세 번 이르렀는데 매번 또렷하게 보았다." (김창흡(金昌翕), 「석천곡기(石泉谷記)」, 『삼연집(三淵集)』)
일명 깔딱고개 정상에서 계곡으로 내려오다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폭포가 소운폭포이다. 갑자기 계곡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계곡 왼편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사격구역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붉은 글씨로 경고한다. 주변은 원형 철조망이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소운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소운폭포는 직각으로 이루어진 폭포가 아니다. 위는 직폭(直瀑)이고, 아래는 와폭(臥瀑) 형태이다. 규모는 삼부연폭포와 맞먹을 정도이다. 물줄기 주변은 홍건이 젖어있다. 바람이 불지 않았기 때문에 흰 구름이 엉킨 것과 같은 황홀한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하얀 천처럼 펼쳐진 물보라는 답사객의 고단한 몸을 잊게 해준다. 폭포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에 모두 담기 어려워 갖은 포즈를 취해야만 했다. 숨가쁘게 정신없이 온 일행은 폭포 바로 아래서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폭포 오른쪽의 조그만 계곡으로 오르면 비래폭포가 나온다. 글의 뒷부분에 언급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언급하기로 한다. 그러나 답사를 하는 분들은 소운폭포를 지나 위로 가기 전에 먼저 이 계곡을 따라 가서 비래폭포를 보아야 한다.
계곡 입구에서 커다란 바위 위를 기어오르자마자 왼쪽 산비탈로 오르면 소운폭포 위이다. 김창흡은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를 기이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라 내려다보는 폭포는 더 짜릿하다. 떨어지는 물줄기에 나도 함께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자꾸 뒷걸음질 쳤다.
권혁진 : 강원대 강사(한문학), 강원한문고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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