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호걸되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는다

2015. 8. 12. 16:11잡주머니

 

 

 

 

 

       2. 호걸되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는다 가훈과 유언 / 옛사람 내면풍경

 

2011.10.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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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가훈(家訓)

 

 

   우리 집안의 선대는 처음에 문학으로 자취가 드러났다. 이후로 대대로 문학을 지켜, 충효와 화목으로 가법을 삼아 서로 전해 잃지 않았다. 내가 부족하지만 선대에 선행을 쌓아 남은 경사를 이어, 여러 임금께 넘치게 융숭한 사랑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언제나 ‘사물은 가득참을 꺼린다[物忌盛滿]’ 말을 생각하며, 이 때문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들지 못하고, 밥상을 앞에 두고도 먹기를 잊었다. 전전긍긍하며 넘치는 것을 떠내고 덜어낼 것만 생각했다. 바라건대 너희가 밤낮으로 마음을 다해 조금이나마 성은에 보답하여 우리 집안의 가업을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너희 후생들이 오래 지나면 점차 잊을까 염려되므로 그 대략을 적어 가훈을 짓는다. 이는 우리 집안 대대로 지켜야 할 법도이니, 너희는 각자 한 통씩 베껴 써서 드나들 때마다 한번 씩 읽어 이를 염두에 두도록 해라. 대저 재주가 높거나 빼어난 인물이 되는 것, 호걸이 되는 일은 실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들이 삼가 가훈을 지키기만을 원한다.


   첫째는 조심(操心), 즉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일정함이 없다. 잡으면 있다가도 버려두면 달아난다. 마음이 없다면 봐도 못 보고, 들어도 못 듣는다. 하물며 옳고 그름과 잘못되고 바른 것을 감히 알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음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심령을 비워 어둡지 않게 해야만 한다. 그런 뒤에야 어떤 일에 닥쳐서도 옳고 그름과 잘못되고 바름을 처리함이 어지럽지 않게 된다. 대저 마음은 한 몸을 주재한다. 눈으로 색깔을 보아도 마음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 귀로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아니고는 들리지 않는다. 온 몸뚱이를 관장하는 것은 마음을 기다려 행해지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마음이 한 몸의 주재가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온 몸의 관리를 바르게 하려면 먼저 그 주재가 되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둘째는 근신(謹身), 곧 몸가짐을 삼가는 것이다. 몸을 닦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인가? 아버지를 섬김에 효를 다하지 않으면, 내 자식 또한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한다. 형을 섬김에 공경을 다하지 않으면, 내 아우 또한 내가 내 형에게 한 것처럼 한다. 그러므로 한 몸을 허물없이 세운 뒤라야 부자와 형제와 부부의 사이에 한결같이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를 미루어 군신과 붕우에 이르는 것은 다만 한차례 미루어 옮기는 것일 뿐이다. ○겸양하고 삼가하여 설령 의리에 맞지 않아 범하는 바가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포용해야지 낱낱이 살펴 비교해서는 안 된다. ○혈기가 왕성할 때는 여색을 경계해야 한다. 색욕의 해로움을 두고 옛 사람은 본성을 찍는 도끼라고 말했다. ○말은 싸움을 잘 일으키니, 한번 내뱉으면 담을 수가 없다. 때문에 옛날에 말을 삼간 사람은 그 입을 세 번 봉하고, 입 막기를 물병 막듯 하였다.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겉으로 드러난다. 열 눈이 보면 열 손이 가리킨다. 그러니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야 한다.


셋째는 근학(勤學), 즉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다. 이목이 좁은데 마음이 넓은 사람은 없다. 이목을 넓히려면 독서만한 것이 없다. 성현의 도리는 책 속에 담겨 있다. 진실로 능히 굳세게 뜻을 세웠다면, 차례를 밟아 정밀하게 해야 한다. 오래 되면 저절로 얻음이 있게 된다. ○배움의 요령은 다만 풀린 마음을 거두는 데 있다. 마음은 가슴 속에 있다. 저절로 광명이 사방에 펼쳐져서 비춰 써도 부족함이 없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능히 배움에 나아간 자는 일찍이 없었다. 풀린 마음을 거두는 데는 요령이 있으니, 다만 경(敬)에 달렸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담벼락을 마주한 것 같다. 진실로 배우기만 하고 힘써 행하지 않으면 비록 만권의 책을 읽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성현의 책을 읽을 때는 마땅히 성현의 마음을 구해 하나하나 자신에게 체화해야만 한다.


넷째는 거가(居家), 즉 집안 생활이다. 오늘날 세속의 부자와 형제들은 거처를 관리하는 일이 드물다. 문호를 세워 독립하고 나면 각자 노비를 소유한다. 점차 남과 같이 되어 마침내는 화목하지 않게 된다. 부형(父兄)은 진실로 포용하여 참고, 너그럽게 대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옳다. 잗단 일에 가혹하게 따져서는 안 된다. 자제(子弟) 또한 마땅히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성으로 미루어서 서로 느껴 효도와 우애로 보듬어 화목해야 할 뿐이다. 사치의 해로움 하늘이 내리는 재앙보다 심하다. 집안 형편이 궁해지면 함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집안 살림은 검소와 절약을 우선해야 한다. 이는 재물에 인색하여 부자 되기를 꾀하란 말이 아니다. 집안 형편이 혹 넉넉하다면 산 이를 기르고 죽은 이를 장사 지내며, 근심을 구해주고 다급함을 건져 주는데 어찌 성대하고 넉넉하게 하지 않겠는가? ○한집안 친척은 나와는 한 뿌리에서 나뉘어졌다. 선조에게는 똑 같을 뿐이다. 진실로 선조께서 선행을 쌓아 얻은 남은 경사로 인해 문호를 세웠으니, 마땅히 곤궁한 이를 건지고 고아를 구휼해서 선조의 복을 고루 나눌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재물은 또한 그렇게 나가고 만다. 불의로 이를 취하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다. 불의로 부자가 되느니 가난한 것이 차라리 더 낫다. 때문에 군자는 맑고 삼가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여자가 총애를 믿고 함부로 하는 것은 마땅히 먼저 끊어 그 총애를 남에게 옮겨야 한다.


다섯째는 거관(居官), 곧 벼슬살이이다. 윗사람은 혼자서 다스릴 수 없고 아랫사람의 도움을 받게 마련이다. 아래 사람을 대우하는 방법은 정성으로 미루어서 맡기는 것이다. 의심스러우면 맡겨서는 안 되고, 맡겼으면 의심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의심 받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그 뜻을 다하지 않는 법이다. 비록 다스리기를 원하는 뜻이 있다 해도 장차 함께 이룸이 없게 되고 만다. 여자는 고우나 추하나 간에 집에만 들어오면 질투를 한다. 어진 이가 나아가면 소인들은 질투하여 온갖 꾀로 이간질 한다. 혹 공론으로 격발시키기도 하고, 유언비어로 해코지하기도 한다. 혹 좌우 사람을 시켜 풍자하되 마치 무심코 나온 말처럼 한다. 요컨대는 반드시 이간질하고 나서야 그만둔다. 어진 이는 의(義)로써 자처하며 소매를 여며 물러날 뿐 더불어 계교하지 않는다. 이때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의심이 없을 수 없다. 의심이 한번 생겨나면 또 어쩔 수 없이 가혹하게 사찰하는 정사를 펴서 사실을 밝혀내려 든다. 가혹하게 사찰하는 정사를 한번 펴면 모든 일은 끝나고 만다. 때문에 남 헐뜯는 말을 미워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한결같이 지성(至誠)으로 해야 한다. 일에 닥치면 감춰서는 안 된다. 좋은 일은 윗사람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자기에게 돌린다. 만약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할 일이지 윗사람을 탓하면 안 된다. 비록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해를 당하더라도 또한 정성과 공경으로 대응한다. 형세가 스스로 해명할 수 없게 되면 물러남이 옳다. 평상의 마음으로 사물을 용서하고 맑고 밝게 처신하여 몸을 지킬 뿐이다. 소인은 의로운지 의롭지 않은지는 따지지도 않는다. 이와 더불어 다툰다면 반드시 다치고 만다. 그래서 군자가 이를 삼간다. ○청백(淸白)으로 스스로를 지켜 몸에 얽매임이 없게 된 뒤라야 어떤 일을 당해도 태연할 수 있다. 한번 뇌물을 받아 더럽혀지면 남이 알까 두려워 움츠러들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되니, 어찌 아랫사람에게 능히 명령을 내리겠는가? 마침내 교활한 아전에게 잡힌 바 되어 낭패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몸과 이름을 모두 잃은 자가 세상에는 아주 많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무릇 소송을 살필 때, 비록 청탁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선입견이 있게 되면 바름을 얻지 못한다. 때문에 평상심으로 이를 살피고, 지극히 공변되게 이를 처리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교녀(敎女), 즉 딸 교육이다. 부인은 남편의 배필이 되어 집안 살림을 주관한다. 집안이 일어나고 망하는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아들 가르칠 줄만 알고, 딸 가르칠 줄은 모르니 미혹하다 하겠다. ○부인은 정조와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부드럽고 순종함으로 남을 섬긴다. 집안 살림에만 마음을 쏟고 바깥일은 간여하지 않는다. ○위로 시부모를 섬기되 정성과 공경이 아니고서는 그 효를 다함이 없다. 아래로 하인을 대접함에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정성과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고, 사랑과 은혜로 아랫사람을 대접한다. 그런 뒤라야 부부 사이에 정의(情義)가 좋게 된다. ○무릇 바느질 같은 일은 또한 마땅히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만약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통솔할 수가 없다. ○지아비는 우러러 죽을 때까지 화와 복을 함께 하는 존재다. 만약 마땅치 않은 점이 있거든 어떤 일이 있을 때 잘 바로잡아 경계하여 서로 다듬어 허물이 없게 되기를 기약해야 한다. 어거지로 해서는 안 되니, 억지로 하면 부부의 은정(恩情)이 끊어진다. ○규방 안은 은정이 늘상 의리를 덮어 가려 쉬 허물없이 대하게 된다. 함부로 대하는 마음이 한번 생겨나면 공경하고 삼가는 뜻이 반드시 해이해지게 마련이다. 이에 교만하고 질투하며 방자하게 굴어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 부부의 틈이 벌어지는 것이 실로 이에 말미암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자가 남을 좇아 함께 거처하는 것은 골육의 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 오가다 보면 의심나고 막히는 것이 많이 생겨나서 마침내 틈이 벌어지게 된다. 때문에 예전의 어진 지어미는 겸손함과 유순함으로 잘못과 허물을 덮어 가려주고 정성껏 서로 함께 하여, 상하가 편안하게 하고, 자신도 여러 복을 누려 죽을 때까지 기림을 받는다.

我家先世, 初以文學發跡. 自是以來, 世守文學, 忠孝敦睦, 以爲家法, 相傳不失. 以叔舟不敏, 承先世積善餘慶, 受列聖知過之隆, 乃有今日. 每念物忌盛滿, 爲之當寢不寐, 對案忘食, 戰戰兢兢, 思所以挹損. 庶幾與爾輩夙夜盡心, 小酬聖恩, 以不墜我家業. 然恐爾輩後生, 久而漸忘, 錄其大略, 著爲家訓. 玆乃我家世守遺法, 爾輩各寫一通, 出入寓目, 念兹在玆. 夫才智俊逸豪傑之事, 實非所冀. 但願汝曹謹守家訓.
操心第一
人心無常, 操之則存, 舍之則亡. 心苟不存, 視而不見, 聽而不聞. 況敢知有是非邪正歟? 是故, 要令心在方寸間, 虛靈不昧. 然後其應之於事, 遇是非邪正而不亂矣. 夫心者, 一身之主宰. 目之於色, 非心不見, 耳之於聲, 非心不聞. 百體之官, 莫不待心而行. 斯其所以爲主宰於一身者歟? 故欲正百體之官, 莫如先正主宰.
謹身第二
身不修, 不可以齋其家. 何以言之? 事父不盡其孝, 子之於我, 亦視我之於父. 事兄不盡其敬, 弟之於我, 亦視我之於兄. 故使一身立於無咎之地, 然後父子兄弟夫婦之間, 莫不一於正. 推而至於君臣朋友, 特一轉移之間耳. ○謙讓恭謹, 縱有非義相干, 亦當容之. 勿察察與較. ○血氣方剛, 戒之在色. 色慾之害, 古人謂之伐性之斧斤. ○惟口出好興戎, 駟不及舌. 故古之愼言者, 三緘其口, 守口如甁. ○誠於中, 形於外, 十目所視, 十手所指. 君子愼其獨也.
勤學第三
夫耳目挾而心廣者, 未之有也. 欲廣耳目, 莫如讀書. 聖賢之道, 布在方冊. 苟能立志旣堅, 循序而致精, 久久自然有得. ○爲學之要, 只在收放心. 心在方寸間, 自然光明四達, 照用有餘. 未有心不定而能進學者也. 收放心有要, 只在於敬. ○人而不學, 正如墻面, 苟學矣不力行, 雖讀書萬卷, 亦無所用. 故讀聖賢之書, 當求聖賢之心, 一一體之於身.
居家第四
今俗父子兄弟, 罕有司居. 旣立門戶, 各有婢奴, 漸成彼此, 遂致不睦. 爲父兄者, 固宜包容含忍, 寬裕慈仁, 不爲瑣瑣苛細. 爲子弟者, 亦當舍小念大, 推誠相體, 孝友雍睦而已. ○奢侈之害, 甚於天災. 家道旣窮, 鮮不爲濫. 故居家以節儉爲先. 是非欲嗇財圖富. 家道若贍, 其於養生送死, 救患周急, 豈不霈然有裕哉. ○族親者, 與我同源分派, 在先祖視之如一. 苟因先祖積善餘慶, 得立門戶, 當思濟窮恤孤, 以均先祖之慶. ○財悖而入者, 亦悖而出, 取之不義, 必有天殃. 不義而富, 不若貧之爲愈. 故君子貴乎淸愼. ○女謁所當先絶, 其昵比足以移人.
居官第五
爲長官者, 不能獨治, 必賴於下. 待下之道, 推誠以任之, 疑則勿任, 任則勿疑. 人知見疑, 必不敢盡其意. 雖有願治之志, 將無與共成矣. 女無姸媸, 入室見妬. 賢者之進, 小人所妬, 百計間之. 或爲公論以激之, 或爲飛語以中之. 或使左右諷之, 似出於無心, 要必間之而後已. 賢者以義自處, 歛衽而退, 不與之較. 官長於是, 不得無疑於下. 疑心一生, 又不得不爲苛察之政, 欲以求其實. 苛察之政一擧, 而萬事墮哉. 故以堲讒爲先務. ○爲下官者事長官, 一以至誠. 遇事不隱, 善則歸上, 惡則歸己. 如有所屈, 自省自責, 不尤於上. 雖爲同列所中, 亦以誠敬動之. 勢不可自明, 可以引退, 平心恕物, 明哲保身耳. 小人不顧義與不義, 如與之爭, 必爲所傷. 故君子愼之. ○淸白自守, 身無所累, 然後遇事泰然. 一汚贓賄, 畏人之知, 縮縮自愧, 安能令下? 遂爲猾吏所持, 以至於敗. 身名俱喪者, 世多有之, 豈不哀哉. ○凡於聽訟, 雖不爲請囑所移, 苟有先執, 不得其正, 故平心以察之, 至公以處之.
敎女第六
婦人配君子而主內治. 家道之興廢由之. 世人知敎男, 而不知敎女, 惑也. ○婦人貞靜自守, 柔順事人. 專心內政, 不與外事. ○上事舅姑, 非誠敬, 無以盡其孝. 下接婢使, 非慈惠, 無以得其心. 誠敬以事上, 慈惠以接下, 然後夫婦之際, 情義無間矣. ○凡於女工, 亦當致已. 若不勤, 不足以率下. ○夫者所仰以終身, 禍福共之. 如有非宜, 當因事善規, 儆戒相成, 期於無咎. 然不可強之, 強之則失恩. ○閨門之內, 恩常掩義, 易至狎暱. 狎暱之心一生, 敬謹之意必弛. 於是驕妬放恣, 無所不至. 夫婦乖張, 實由於斯, 可不愼哉. ○女子從人, 所與處者, 非有骨肉之恩. 言語往復, 多生疑阻, 遂成嫌隙. 故古之賢婦, 謙恭柔順, 含垢匿瑕, 推誠相與, 使上下相安, 身享諸福, 以永終譽.



   신숙주《보한재집(保閑齋集)》에 실린〈가훈(家訓)〉이다. ‘물기성만(物忌盛滿)’ 사물은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다. 대대로 집안이 누린 복이 차고 넘치니, 이 복이 변하여 화로 되는 일이 없도록 자손을 위한 당부를 적었다. 한 시대의 호걸이 되거나 재주 있는 인사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 다만 아비가 적어주는 가훈을 마음에 깊이 새겨 가업을 실추시키지 않는 후손이 되어달라고 했다.


가훈은 모두 여섯 항목으로 나뉜다. 1. 조심(操心), 2. 근신(謹身), 3. 근학(勤學), 4. 거가(居家), 5. 거관(居官), 6. 교녀(敎女)가 그것이다.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몸가짐을 신중히 한다. 그러자면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나아가 그 배움을 집안 일과 나라 일에 미루어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딸 교육에 관한 항목을 따로 둔 것이 인상적이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지만, 한 집안의 흥폐가 여자 손에 달렸으니, 바르게 가르쳐 한 집안의 법도를 일으키는 데 중추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얼핏 보아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리지만, 찬찬히 음미해보면 집안을 다스리는 이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부모의 언행이 자식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니, 자식이 부모 말을 우습게 안다.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바르지 않고, 배워 향상하려는 욕구도 없다. 그러니 집안 꼴이 오죽하겠는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 새지 않을 까닭도 없다. 직장에 나가 일을 맡으면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문제만 일으킨다. 멋대로 자라 남의 집에 시집가서는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고, 얼마 못 가 사네 못 사네 한다. 신숙주의〈가훈〉을 찬찬히 읽어 음미해 보라. 집안을 일으키는 데 유념해야 할 단계가 차례대로 잘 제시되어 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439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典農寺) 직장(直長)을 시작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재능을 인정받아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좌부승지(左副承旨), 직제학(直提學)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곧바로 도승지가 되었고, 세조가 등극하자 대제학에 올랐다. 이후 병조판서, 예조판서, 대사성 등을 거쳐 삼정승의 요직을 모두 역임하였다.


그는 조선 초기 정치적 격동기에 벼슬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공신에 추대되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켰을 때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추대되었고, 세조가 즉위한 후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올랐으며, 남이(南怡)의 옥사를 처리한 후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추대되었고, 성종이 즉위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오르는 등 정치적 사건의 핵심에 늘 함께 하였다.


   그는 학문적 소양이 깊어 다양한 책을 편찬하였다.《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찬은 물론《동국통감》의 편찬을 총괄하였고,《국조오례의》도 개찬하였다. 1443년 일본을 다녀 온 후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일본의 풍물과 정치세력, 외교시 필요한 사항 등을 상세하게 밝혀 놓은《해동제국기》를 저술하여 향후 일본과의 외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저서에《보한재집(保閑齋集)》이 있다.


그는 열여섯에 무송윤씨(茂松尹氏) 부정(副正) 윤경연(尹景淵)의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8남 1녀를 두었다. 위 글은 신숙주가 52세 되던 1468년에 지은 것이다. 동일한 훈계의 내용을 담은 칠언고시(七言古詩) 한편이 따로 남아 있다. 제목은 〈아들의 황금 허리띠를 기뻐하며 여러 아들에게 보인다. [喜澯帶金. 示諸子]〉이다. 함께 읽어본다.

부자 사이 하늘이 낸 친밀함이니 父子天作親
정의(情義)가 천진(天眞)에서 나오는도다. 情義出天眞
아비가 자애하매 자식 효도함 父慈子乃孝
임금과 신하에도 옮길 수 있네. 玆可移君臣
늙은 아비 너와는 같지 않아서 老父不如汝
어린 나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지. 弱齡違兩親
아우와 형님마저 일찍 세상 떠 弟兄亦早歲
혈혈단신 오직 한 몸뿐이었다네. 孑孑唯一身
힘겹게 서사(書史)를 읽으면서도 辛勤讀書史
생각나면 남몰래 수건 적셨네. 念至潛添巾
다행히 임금께서 알아줌 만나 那知幸際遇
지위 높은 원훈(元勳) 될 줄 뉘 알았으리. 位極忝元勳
공명은 번번이 세상을 속여 功名每欺世
삼대나 성은(聖恩)을 입었었다네. 三世蒙聖恩
아들 손자 눈앞에 늘어섰는데 兒孫列眼前
울긋불긋 관복이 어지럽구나. 朱紫看紛紛
너 또한 황금띠를 허리에 차니 汝又橫黃金
비복들도 모두들 기뻐하누나. 婢僕亦欣欣
집안의 늙은이와 젖먹이까지 家中老阿乳
주룩주룩 기쁨의 눈물 흘리네. 喜淚懸津津
네 정녕 네 아비 보다 나아서 汝定勝汝父
네 아비의 찌푸림을 풀어 주거라. 汝解汝父顰
내 허리띠 금서대(金犀帶)에 이르렀지만 我帶至金犀
기쁨 만나 괜스레 구슬피 우네. 遇喜空悲嗁
우리 집안 원래는 가난했지만 我家本草茅
선을 쌓음 대대로 미혹됨 없어, 積善世不迷
대를 이어 여기에 이르렀으니 繩繩乃至斯
부귀는 네 할 바가 정녕 아닐세. 富貴非汝爲
하늘 도리 가득 참을 꺼려하나니 天道忌滿盈
마땅히 덜어 버림 생각하도록. 當思挹損之
내 나이 이미 벌써 반백이 넘어 我年已半百
근력 또한 하마 벌서 쇠하였도다. 筯力亦已衰
벼슬 벗어 일을 사양 하려 하여도 投簪欲謝事
멍에 벗음 오히려 알 수가 없네. 脫駕猶未知
내 이제 너희에게 말해주노라 我今語汝曹
지기(智奇)롭지 않음은 원치 않는다. 不願不智奇
순박하고 삼가기만 다만 원하니 但願淳且謹
집안을 보존하는 규범 삼으라. 保家以爲規
내 바람 이 같음에 그칠 뿐이니 我願止如此
너희는 부지런히 지녀 살아라. 汝曹勤自持



   아들이 당상관이 되어 자신을 이어 금대(金帶)를 허리에 찬 것을 보고 대견하고 기쁘면서도, 지나온 세월에 감개가 무량하여 쓴 시다. 여기서도 하늘의 도는 가득참을 꺼리는 법이니, 넘치도록 누릴 생각은 말고 오히려 덜어 버릴 것을 생각하라는 말이 나온다. 멍청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다만 순박하고 조심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만을 당부한다고도 했다. 일세를 호령하는 빼어난 호걸의 인사가 되기보다, 근면하고 신중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그 당부 속에 난세를 살다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다.


   하지만 가득참을 삼가라던 아버지의 바람이 무색하게 넷째 아들 신정(申瀞)은 과욕으로 성종조에 사형을 당하고 만다. 신정은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지위가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일찍이 이조참판으로 좌리정훈(佐理正勳)에 기록되어 공신이 받아야 할 노비를 정수대로 이미 다 받았었다. 그런데도 그는 고령현 사노(寺奴) 부자(父子)의 재산을 찬탈하려고 어보(御寶)를 위조해서 공문(公文)을 만들어 독촉하다가 옥에 갇히고 만다. 성종이 그 아비인 신숙주의 공로를 생각해서 죽음을 면하게 해주려고 했지만,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다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조선왕조실록》성종 13년 임인년(1482) 4월 24일 기사에 ‘신정을 사사하고, 공신전에서 삭제하며, 자손들은 금고에 처한다.’는 전지가 남아 있다. 관련 정황은 《대동야승(大東野乘)》〈죽창한화(竹窓閑話)〉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숙주가 세상을 뜬 지 7년 뒤의 일이었다.

 

[출처] 2. 호걸 되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는다|작성자 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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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로그 미 <다산을 찾아서> 새오늘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