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2] 제7권 / 다산시문집

2016. 1. 12. 01:32

 

 

      

시(詩)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2] 제7권 / 다산시문집

2011.01.1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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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적산에서 두보의 녹두산시에 화답하다[馬跡山和鹿頭山]
 
날 저물어 마적산에 투숙했는데 / 暮投馬跡山
술이 깨자 목이 또 마르구나 / 酒醒喉更渴
원정이 바람 맞이해 시원하여라 / 園亭迓風涼
여기가 바로 확 트인 곳이로세 / 卽此已披豁
사방에서 서로 와서 위문하는데 / 四隣競勞問
노소가 다 예를 정중히 하도다 / 少長禮弗越
낙락장송은 높은 언덕 그늘지우고 / 長松蔭崇阿
좋은 곡식은 넓은 들에 연하였네 / 嘉穀連平闊
멀리 사마휘를 생각하나니 / 緬懷司馬徽
수감에서 맑은 빛이 발하였는데
/ 水鑑淸映發
널리 배우고 또 정밀히 연구하여 / 博學復精硏
의심나고 불안한 것 빼놓지 않았네 / 疑殆鮮所闕
나는 천하에 외로운 신세로 / 踽踽宇縣內
혼자서 꼽추와 다리 병신 겸했는데 / 獨成支離兀
생장하던 이 마을을 다시 와 보니 / 履玆生長村
그 옛날 백하골이 생각나는데 / 憶念柏下骨
애석한 것은 와룡관이 없이 / 惜無臥龍冠
이 무서운 곳에 숨은 거로세 / 隱此乳虎窟
큰 인물은 흔히 늦게 이뤄지기에 / 大器多晩成
현성들은 조달한 이가 드물었으니 / 賢聖罕早達
노수는 싹트고 꽃피는 걸 한하여 / 魯叟恨苗秀
오십 세까지 살기를 바랐었다오 / 五十希延活
나에겐 유경이 스스로 따라서 / 遺經尙自隨
매양 빈 들보의 달에 비춘다
/ 每照空樑月

 

 
[주D-001]사마휘(司馬徽)를 …… 발하였는데 : 수감(水鑑)은 곧 수경(水鏡)을 전용한 말로, 후한(後漢) 때 은사 방덕공(龐德公)이 양양(襄陽) 사마휘의 총명함을 칭찬하여 붙여 준 말이다.
[주D-002]의심나고 …… 않았네 : 총명이 뛰어났음을 비유한 말.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벼슬하는 요령을 배우려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많이 듣되 의심난 것은 빼 버리고 그 나머지만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고, 많이 보되 불안한 것은 빼 버리고 그 나머지만 삼가서 행하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多聞闕疑 愼信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爲政》

 

[주D-003]백하골(栢下骨) :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이른 말로, 두보(杜甫)의 〈촉상(蜀相)〉 시에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늘어선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 한 데서 온 말인 듯하다.
[주D-004]와룡관(臥龍冠) : 와룡은 역시 제갈량을 이름. 제갈량의 친구인 서서(徐庶)가 일찍이 선주(先主)에게 제갈량을 소개하면서 ‘와룡’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노수(魯叟)는 …… 한하여 : 노수는 공자를 이르는데, 공자가 학문을 시작만 해 놓고 이루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이르기를 “싹만 나오고 꽃을 피우지 못한 자가 있고, 꽃만 피우고 결실을 못한 자도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子罕》
[주D-006]오십 …… 바랐었다오 : 이는 공자가 이르기를 “나에게 수 년만 더 살게 해 준다면 오십 세에 《주역》을 배워서 큰 허물을 없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述而》

 

[주D-007]유경(遺經)이 …… 비춘다오 : 유경은 공자가 찬(贊)한 《주역(周易)》을 말한 것으로, 즉《주역》을 읽으면서 늘 공자를 사모하는 뜻을 비유한 말인데, 두보(杜甫)의 〈몽이백(夢李白)〉 시에 “지는 달빛이 집 들보에 가득하니, 오히려 그대 안색을 비춘 듯하네.[落月滿空樑 猶疑照顔色]” 한 데서 온 말이다.
 

 

 
12. 기락각에서 두보의 석궤각시에 화답하다[幾落閣和石櫃閣]
 
춘천의 북쪽 삼십 리, 청평산(淸平山)으로 들어가는 길처에 있다
 
깊은 골짝에 쌓인 그늘 파헤쳐라 / 絶峽破積陰
새벽놀이 강물에 붉게 비추네 / 晨霞照江赤
아래로는 깊은 못을 내려다보고 / 高臨不測淵
위로는 떨어질 듯한 돌을 무릅써라 / 仰蒙將落石
명도에 여기가 북쪽 문이라서 / 名都此北門
철벽으로 엄격하게 닫아 놓았네 / 嚴扃鎖鐵壁
가벼운 배는 멋대로 내버려 두고 / 輕舟漫自棄
짚신을 신고서 산객을 따르나니 / 躡屩隨山客
혼이 떨려서 전진할 수 없어라 / 魄慄不敢前
범 발자국이 진흙에 금방 찍혔네 / 新泥印虎跡
산수 구경은 본디 한가한 일인데 / 水石本閒事
누구에게 다그침을 당하였던고 / 顧爲誰所迫
내 맘에 좋은 걸 어찌 절제하리오 / 性好那可節
사슴은 본디 숲을 좋아한다오 / 糜麈悅林澤
훌륭하기도 해라 이자현은 / 賢哉李資玄
깊은 산에서 스스로 유유자적하였네
/ 深山自此適
 

 

[주D-001]
훌륭하기도 …… 유유자적하였네 :
이자현(李資玄)은 고려 때 사람으로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갑자기 벼슬을 버리고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유유자적하였는데, 고려 예종이 그를 누차 부르자, 그는 나가지 않고 표(表)를 올려 사양하기를 “새의 본성대로 새를 길러서 종고의 걱정이 없게 하시고, 물고기를 관찰하여 물고기를 알아서 강호를 좋아하는 물고기의 본성을 이루게 하소서.[以鳥養鳥 庶無鐘鼓之憂 觀魚知魚 俾遂江湖之性]” 하고 끝내 은거하여 여생을 마쳤던 데서 온 말이다.《高峯續集 卷2》
 
 

 

13. 우수주에서 두보의 성도부시에 화답하다[牛首州和成都府]
 
청평산(淸平山)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우수촌(牛首村)에서 자고, 그 첫날 잠시 우수주를 둘러보았다
 
하인 시켜 돌아갈 배 다스리나니 / 命僕理歸楫
강바람이 의상에 불어 오누나 / 水風吹衣裳
저녁에는 우수촌에 들어가 자고 / 暮宿牛首村
자세히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 顧瞻詳四方
아, 이 낙랑성이 / 嗟玆樂浪城
맥향이라는 이름은 둘러썼지만 / 冒名云貊鄕
나무껍질은 일 촌도 되지 못하고 / 木皮不能寸
오곡은 밭둑을 연하여 자라도다 《한서(漢書)》 조조전(晁錯傳)에 이르기를 “호맥(胡貊)의 땅은 추워서 나무껍질이 삼 촌(三寸)이나 되고 얼음 두께가 육 척(六尺)이나 된다.” 하였고, 맹자(孟子)는 이르기를 “맥(貊)의 땅에는 오곡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이 자란다.” 하였다. / 五穀連阡長
땅이 포근하여 초목의 발생이 빨라서 / 地暄發生早
초여름에 나뭇잎 이미 푸르르니 / 首夏葉已蒼
뻐꾸기는 나무마다 막 울어대고 / 鳲鳩樹樹喧
꾀꼬리는 유연한 가락을 놀리누나 / 黃鳥弄柔簧
옛날 신라왕이 순무를 하고부터 / 南韓昔巡撫
한 나라 사신의 발이 끊기었어라 / 漢使川無梁
비석마저 오래도록 묻혀 버려서 / 勒石久埋沒
높은 명성이 끝내 아득하구려 우두산(牛頭山)에 팽오(彭吳)의 통도비(通道碑)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신라 때 기림왕(基臨王)이 순행(巡幸)차 우두주(牛頭州)에 왔었는데, 그 후로는 한(漢) 나라 관리(官吏)가 다시 오지 않았다. / 薰聲竟微茫
작은 물의 교량이나 예맥의 일은 / 小水梁若濊
이름이 본디 드러나지 않았는데 / 其名本無光
우리나라 역사를 그 누가 읽으랴 / 國史有誰讀
올라 보니 마음이 매우 슬프구려 / 登覽深悲傷

 

남곤(南袞)이 말하기를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누가 읽으랴.” 하였다.
 
 
14. 소양정에서 옛일을 회상하다[昭陽亭懷古]
 
어부가 도화원 찾아 동천을 들어가니 / 漁子尋源入洞天
화려한 누각이 나는 듯이 만정 앞에 나타나네 / 朱樓飛出幔亭前
궁씨 유씨 나눠 점령한 건 전혀 자취가 없고 / 弓劉割據渾無跡
한과 맥이 서로 다툰 건 끝내 가련할 뿐일세 / 韓貊交爭竟可憐
우수의 옛 전원에는 봄풀이 아득하고 / 牛首古田春草遠
인제의 흐르는 물엔 떨어진 꽃이 고와라 / 麟蹄流水落花姸
아, 깁으로 싸거나 소매로 떠는 게 무슨 보탬이 되랴 / 紗籠袖拂嗟何補
석양에 강가의 버들에서 홀로 닻줄 푸노라 / 汀柳斜陽獨解船

 

조위(曹魏)의 정시(正始) 연간에 낙랑 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와 대방 태수(帶方太守) 궁준(弓遵)이 바다를 건너와 이곳을 점령하고서, 북으로는 고구려에 항거하고 남으로는 진한(辰韓)을 공격하여 진한의 여덟 나라를 탈취 하였는데, 이 때에 낙랑의 근거지가 실로 춘천에 있었다.
 

 

[주D-001]깁으로 …… 게 : 송(宋) 나라 때 위야(魏野)가 일찍이 구준(寇準)과 함께 어느 승사(僧寺)에 가 놀면서 각각 시(詩)를 지어 유제(留題)하였는데, 뒤에 다시 구준과 함께 그 절에 가보니, 구준의 시는 푸른 깁으로 싸 놓았고, 위야의 시는 싸지 않아 먼지가 가득 끼었으므로, 수행한 관기(官妓)가 소매로 그 먼지를 떨었다. 그러자 위야가 다시 시를 지어 쓰기를, “다만 그때마다 미인 소매로 떨 수만 있다면, 응당 푸른 깁으로 싼 것보다 나으리라.[但得時將紅袖拂 也應勝似碧紗籠]” 한 데서 온 말이다.
 

 

 
15. 밤에 청평사에서 묵으면서 동파의 반룡사시에 화답하다[夜宿淸平寺和東坡蟠龍寺]
 
돌길 따라 동으로 떨어진 듯한 잔교를 지나 방언에 물가의 돌로 만든 잔교를 천(遷)이라 한다. / 鑽石東經幾落遷

등라넝쿨 붙잡고 북으로 청평곡을 들어왔네 / 捫蘿北入淸平谷
그 옛날 청평 거사 진락공이야말로 이자현(李資玄)이다. / 淸平居士眞樂公
사책에 전한 훌륭한 명성 빛나기도 하여라 / 史冊流徽光煜煜
방아 찧듯 한 흰 폭포는 사층이나 드리웠고 / 舂撞玉瀑垂四層
휘어 꺾인 운계는 아홉 굽이나 둘렀는데 / 屈折雲溪縈九曲
돌바둑판 씨줄 날줄이 정간(井間)처럼 반듯해라 / 石枰經緯方似罫
쇠지팡이의 가장귀는 대보다 더 높구려 이것은 모두 이자현의 고적(古跡)과 고물(古物)이다. / 鐵杖杈椏高於竹

초도의 권세가 빙산 같음을 이미 알겠어라 이의(李顗)의 자매(姊妹) 3인이 모두 문종(文宗)의 배필이 되었고, 이정(李頲)의 딸은 선종비(宣宗妃)가 되었으며, 이호(李顥)의 딸은 순종비(順宗妃)가 되었고, 이자겸(李資謙)의 딸은 예종비(睿宗妃)가 되었는데, 이자현은 바로 이의의 아들이다. / 懸知椒塗永作山
소장이 풍전등화 같음을 미리 헤아리었네 이자겸이 수감된 뒤에 그의 패거리들을 체포하고서, 왕이 이르기를 “재앙이 소장에서 일어났다.” 하였다. / 逆覩蕭牆風滅燭
칠귀의 인끈 풀고서 삼베옷을 걸쳤고 / 解七貴綬穿麻衣
오후정을 뱉어 버리고 푸성귀만을 먹어라 사책에 이르기를 “이자현은 외척으로서 권세를 피하여 벼슬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선도(禪道)를 낙으로 삼았다.” 하였다. / 吐五侯鯖茹香蔌
궁중에 까마귀가 떡 먹은 걸 이미 듣고도 이자겸이 독(毒)을 넣은 떡을 올려 임금을 시해하려고 했는데, 임금이 이를 까마귀에게 먹이자 까마귀가 죽었다. / 已聞宮裏烏
어찌하여 산중에서 부죽을 끓이었던고 육유(陸游)의 시(詩)의 자주(自註)에 “중이 채소류를 섞어서 끓이는 죽을 부죽(缹粥)이라고 한다.” 하였다. / 何如山中缹作粥
삼각산에 머무를 때엔 대수가 희었었고 자현이 처음 임진강(臨津江)을 건널 적에 물을 가리켜 다시 건너오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에, 왕이 남경(南京)에 행행했을 때 행재소(行在所)로 그를 불러 삼각산에 머물도록 명하였던 것이다. 대수는 곧 임진강이다. / 三角當時帶水白
아홉 소나무는 지금껏 푸른 그늘 성하여라 거사(居士)가 손수 소나무를 심었었다. / 九松至今繁陰綠
숭산의 소림사에 불자가 된 게 애석하고 / 惜此逃禪少林嵩
촉의 청성처럼 주역 강론 안 한 게 한스럽네 청성 처사(靑城處士) 범장생(范長生)은 곧 촉(蜀)의 인재였다. 즉 이자현이 선도(禪道)에 빠진 것을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 恨不談易靑城蜀
작은 티가 흰 패옥을 다 가리지 못하나니 / 微瑕未足掩白珩
땅벌레를 고니에겐 비할 수 없는 거라오 이 거사(李居士)가 다만 탐하고 인색하여 재물을 모으는 한 가지 병통이 있었으므로,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의 시에 “작은 흠을 가지고 흰 패옥을 가리지 말라[莫把微疵掩白珩]” 하였다. / 壤蟲要難比黃鵠
 

 

[주D-001]초도(椒塗)의 권세가 빙산(氷山) : 초도는 산초(山椒)를 벽에 바른 궁전으로 후비(后妃)를 뜻하고, 빙산은 오래 가지 못하는 권세(權勢)를 비유한 말이다.
[주D-002]칠귀(七貴) : 권세를 극도로 누린 왕실의 외척을 뜻함. 한(漢) 나라 때 왕실의 외척으로 가장 권세를 부렸던 여(呂)ㆍ곽(霍)ㆍ상관(上官)ㆍ정(丁)ㆍ조(趙)ㆍ부(傅)ㆍ왕(王) 등 칠족(七族)에서 온 말이다.

 

[주D-003]오후정(五侯鯖) : 한 성제(漢成帝)의 외구(外舅)들로, 같은 날 후(侯)에 봉해진 다섯 왕씨(王氏)가 먹고 살던 뛰어난 진미를 말한다.
 
 
16. 청평사에서 폭포를 구경하다[淸平寺觀瀑] 4수
 
멎고 흐르는 형세 수없이 변하나 / 百變渟流勢
그 유래는 한 줄기 샘일 뿐일세 / 由來一道泉
급히 흐를 땐 누가 널 다그쳤으랴 / 走時誰迫汝
머무른 곳엔 문득 쓸쓸하여라 / 留處忽蕭然
꽃이 함께 따라간 건 서운커니와 / 怊悵花俱往
호걸다워라 돌은 옮기지를 않네 / 雄豪石不遷
알건대 이 산을 나가는 날에는 / 須知出山日
아득히 편평한 냇물을 이루리라 / 浩淼作平川
이상은 경운대(慶雲臺)의 폭포이다.

하늘은 두 가닥 폭포를 드리웠고 / 天垂雙練帶
산은 구송의 정자를 내놓았네 / 山出九松亭
신속함은 신선의 수레와도 같고 / 飄忽飛仙駕
널리 퍼질 땐 연극 마당도 같아라 / 平鋪演戲庭
급한 소리는 변괴인가 걱정이 되고 / 急聲愁變怪
남은 힘은 평온해짐을 보겠구려 / 餘力見調停
시원스러운 바람 숲의 기운이 / 灑落風林氣
숙취를 완전히 깨게 하는구나 / 渾令宿醉醒
이상은 구송정(九松亭)의 폭포이다.

견고한 절벽은 천연으로 되었고 / 鐵壁先天鑄
아늑한 웅덩이는 정사각형인데 / 銅函一矩方
새로 내린 비를 다시 보태어 / 更添新雨力
태화탕을 보글보글 끓여대누나 / 因沸太和湯
예리함은 산을 뚫고 들어갈 듯하고 / 銳欲穿山入
시끄러움은 숲을 흔들어 서늘케 하네 / 喧能撼樹涼
나그네가 흔히 잘못 찿아오나니 / 遊人多錯過
숲이 가리어 용광을 보호하누나 / 叢翳護龍光
이상은 와룡담(臥龍潭)의 폭포이다.

서천의 폭포는 땅을 진동시키고 / 殷地西川瀑
태을단에선 별에 장수를 빌어라 / 祈星太乙壇
동잇물을 쏟아라 천하막강의 형세요 / 建瓴天下勢
높은 걸상은 한낮에도 춥구려 / 危榻日中寒
용꼬리는 나선형으로 돌아가고 / 龍尾螺螄轉
술그릇엔 탐하는 짐승이 서려 있네 / 犧尊饕餐蟠
삼백 가닥으로 나뉘어 흐르지만 / 分流三百道
결국은 나는 한 여울이라오 / 究竟一飛湍
이상은 서천(西川) 폭포이다.
 
 
17. 청평의 동구를 나오면서[出淸平洞口]
 
돌길에 소를 타고 십 리나 돌아나와서 / 石逕騎牛十里廻
묵은 등넝쿨 헤치니 동천이 열리어라 / 壽藤披豁洞天開
맑은 강물의 전면에 잔물결이 이노니 / 澄江一面漣漪水
일찍이 청평 폭포에서 내려온 물이로세 / 曾作淸平瀑布來
 
18. 참봉 어른에게 주다[贈李 參奉丈]
 
산과 바다로 갈라 헤어졌던 두 늙은 선비가 / 山海分携兩老儒
서로 만난 오늘이 너무도 기쁘고 즐겁구려 / 相逢此日劇歡娛
이미 다 빠져 버린 장창의 이가 애석하고 / 惜乎已落張蒼齒
흰 수염 기리계와 종유 못한 게 한스럽네 / 恨不從遊綺皓鬚
울 밑의 척박한 밭엔 만종을 재촉하고 / 籬下石田催晩種
문 앞의 강가엔 봄풀에 물이 벌창하구려 / 門前水岸漲春蕪
당장에 거쳐 옮겨 이 선경을 나눠 가져서 / 移居徑欲分仙洞
함께 주씨 진씨의 가취도를 만들고 싶네 / 與作朱陳嫁娶圖
 

 

[주D-001]
다 빠져버린 장창의 이 :
한(漢) 나라 때 장창(張蒼)은 치아가 없어서 오직 젖[乳]만 마시면서 백여 세를 살았다는 데서 온 말이다.《漢書 卷42》
[주D-002]흰 수염 기리계(綺里季) : 기리계는 한(漢) 나라 초기에 전란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하던 네 백발 노인[四皓]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동원공(東園公)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 선생(甪里先生)이다.

 

[주D-003]주씨(朱氏) …… 싶네 : 옛날 서주(徐州)의 주진촌(朱陳村)에는 주씨와 진씨(陳氏)만이 살면서 대대로 자기들끼리 혼인을 하였던 데서 온 말이다.
 
 
19. 종원 유청에게 주다[贈尹 鍾遠 唯靑]
 
너를 보니 눈물이 줄줄 코가 시큰해진다 / 見爾潸然欲酸鼻
너의 선고 생각하면 얼굴이 관옥 같았지 / 念爾考顔如玉粹
한창 시절 명례방에 있을 때를 생각하노니 / 盛年憶在明禮坊
열심히도 나한테 와서 문자를 담론했는데 / 苦心就我談文字
밥 나르는 작은 종은 이름이 조양인데 / 傳餐小奴字朝陽
푸른 보자기 검은 쟁반에 점심을 내왔었네 / 靑袱髹盤致午餽
뛰어난 사구가 자주 사람들을 놀래켰기에 / 瓌詞譎句動驚人
번옹도 들어 보고 상서라고 칭찬했다오 / 樊翁聞之稱異瑞
아, 뛰어난 사람 일찍 간 건 애석커니와 / 蘭蕙彫零吁可惜
떠돌이 신세 내 또한 멀리 귀양을 왔는데 / 萍梗漂流亦遠謫
엎어진 새집에도 공융의 아이가 완전해라 / 覆巢猶完孔融兒
촉 땅에 부질없이 양웅의 집을 들렀네그려 내가 해남(海南)에 이르러 윤계진(尹季軫)의 고택(故宅)을 들렀다. / 蜀地空過揚雄宅
구지산의 소유천(小有天)이 바로 이 동천이라네 / 仇池小有此洞天
나 오자 너 있으니 아, 진정 기연이로다 / 我來爾存嗟機緣
봉의 새끼라 겉모양은 의당 범상치 않으나 / 鳳穴奇毛色殊衆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이 자못 가련하구나 / 䵷井小觀頗可憐
초생은 파리하고 약하여 진췌를 이었어라 / 楚甥羸弱承秦贅
척박한 밭 오두막이 쓸쓸하기만 하구려 / 石田茅屋蕭蕭然
다행히 훌륭한 선비가 늘 가까이 있으니 / 幸有良士常隣近
늘 진리를 탐구하여 자포자기를 하지 말라 / 探賾硏幾毋自捐
 

 

[주D-001]엎어진 …… 완전해라 : 아버지는 화를 당했으나 자식은 온전함을 비유한 말. 후한(後漢) 때 공융(孔融)에게 9세와 8세의 두 아이가 있었는데, 공융이 조조(曹操)로부터 체포되어 갈 적에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나 혼자만 죄를 받기 바란다. 내 두 아이는 면할 수 있겠는가?” 하자, 그 아이가 여쭙기를 “아버지께서는 엎어진 새집 아래 완전한 새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하였는데, 과연 그들도 체포되어 화를 당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世說新語 言語》
[주D-002]소유천(小有天) : 도가에서 일컫는 동부(洞府)의 이름인데 왕옥산(王屋山)에 있다고 한다.
[주D-003]초생(楚甥)은 …… 이었어라 : 처갓집에 데릴사위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초생은 사위를 뜻하고 진췌(秦贅)는 데릴사위를 뜻한 것으로, 전국 시대 진(秦) 나라의 풍속은, 가난한 집의 아들이 장성하면 장가를 들어 처가에 데릴사위로 가게 된 데서 온 말이다.《漢書 賈誼傳》
 
 
20. 협곡을 나가다[出峽]
 
협곡을 나오니 천지가 광대하고 / 出峽乾坤大
배를 매니 초목이 움직이질 않네 / 維舟草木停
먼 산엔 소나무가 검은 점 이루고 / 遠峯松點黑
갠 물가엔 백로의 실이 푸르러라 / 晴渚鷺絲靑
흐르는 물은 오고 또 가곤 하는데 / 水上來還去
인간은 취하여 깨지를 못하누나 / 人間醉不醒
세상사 걱정한들 무슨 보탬 있으랴 / 傷時竟何補
백발로 경적이나 연구해야겠네 / 頭白且窮經
 

 

 

[출처] 시(詩)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2]|작성자 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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