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8) 타이완 여행기 ② - 비교체험 ‘극과 극’

2016. 2. 2. 02:47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8) 타이완 여행기 ② - 비교체험 ‘극과 극’

                                                                        (최고급 호텔과 산꼭대기 귀곡산…

2015/11/26 15:23 등록   (2015/11/26 15:26 수정)



▲ 루이팡 역에서 내려 지우펀행 버스로 갈아탄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산꼭대기의 폐광도시인 지우펀에서 하루를 자고 싶었다.

붉은 빛을 뿌리는 홍등이 점점이 켜진 돌계단을 따라 걸으며 운이 좋으면 이른 벚꽃을 볼 수도 있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했다. 아메이 다관에서 '비정성시'의 귀머거리 사진사 문청의 눈빛을 추억하고 싶었다. 어쨌든 생각은 그러했다.

민숙(民宿)을 알아보았더니 어느 여행자가 전망대 근처의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추천해 주었다. 그 곳은 청나라 시절의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객실사진을 보니 낡고 고풍스러운 나무침대와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전망이 마음에 들었다. 두 번 생각않고 바로 예약을 하였다.

행로는 타이뻬이 역에서 출발하면 루이팡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내려서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고속버스로 한번에 가는 방법도 있다. 돌아올 때는 기룡객잔의 버스를 타고 한번에 편하게 왔다.

나는 기차를 탔다. 한국의 철도 홍익회 같은 곳에서 파는 도시락이나 삶은 달걀, 사이다를 먹고 싶었지만 MRT와 마찬가지로 물도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MRT내에서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면 벌금 약 25만원)

조심스럽게 껌을 씹으며 지루하게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기차레일을 따라 산과 강의 비슷한 풍경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옆자리의 머리를 노랑색으로 염색한 여자아이가 외국인임을 알아채고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몇 번 대꾸해주었지만 단문적인 무뚝뚝한 대답에 흥미를 잃었는지 이내 다이어리에 고개를 박고 뜻 모를 한문을 볼펜으로 끄적거리고 있었다.


 타이완인들이 한국인에게 묻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어디서 왔느냐? 남한이냐 북한이냐? 를 묻고는 바로 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기가 본 드라마 이야기. 젊은층은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한다. 슈퍼주니어나 빅뱅, 소녀시대의 계보로 이어진다.



▲ 이곳 저곳 흩어진 나즈막한 섬들과 고요한 태평양이 보인다. 비는 매일매일 내렸고 안개는 두터운 장막으로 부유했다.





▲ 현지인이 운영하는 1박에 1,000NT(한화 4만원) 민숙


   내가 묵었던 2층의 방, 생각보다 너무 낡아 놀랐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3월이었고 우기의 봄철이라 손님은 객잔 전체에 나 혼자였다. 아래층에서 주인 아저씨의 아들인지 손자인지 모를 총각이 1회용 칫솔과 수건 한 장을 가져다 주었다.

지갑을 뒤져 숙박료 1,000NT(한화 약4만원)를 건네주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삼면이 막힌 커다란 목조침대가 방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시설들은 너무 낡아 고물상에 갖다버려야 할 수준이다. 또 이불은 어찌나 꼬질꼬질한지 청나라 때부터 빨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 묵어갔던 여행자들의 흔적을 베개나 이불에서 발견했다. 길거나 짧거나 꼬불꼬불한 검은색 머리카락.
미닫이 문은 잠금장치가 없고 침대 옆의 창문도 고장이 나서 닫기지 않았다. 그 조차 잠금장치가 없고 밖에서 땡기면 열렸다. 참으로 낭패였다. 문이 잠기지 않는 산꼭대기 숙소에서 혼자 잠을 자야 하다니!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을 다니며 돈을 아끼기 위해 싸구려 로스맨이나 3천원짜리 도미토리, 아랍인이 운영하는 감옥과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묵어보았지만 문이 잠기지 않는 곳은 없었다.


   비는 천둥까지 동반하며 쏴아아 내려 퍼부었다. 방안의 고요한 정적에 비해 빗소리는 폭포처럼 가열차다. 이건 뭐 귀곡산장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세가 처량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개해 준 놈들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보에서 내게 이런 곳을 가르쳐 준것은 아닐까?

또 다시 천둥이 콰콰쾅 내리쳤다. 번개가 번쩍이자 침대 맞은편 벽에 걸린 선녀의 모습이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 견딜 수 없었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 8시, 수치루의 계단에는 각양각색의 우산을 든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끊임없이 찍고 있었다. 그나마 몇 없었다. 밤은 깊어가고 그들도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 밤새도록 신경전(?)을 벌였던 선녀


   아메이 다관으로 들어가 몇 시까지 영업을 하냐 물으니 새벽 2시까지라고 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찻집에서 될 수 있는 한 오래 시간을 보내면 숙소에 머물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니까.

밤 11시, 연인 한쌍이 차를 다 마시고 돌아가자 손님은 나 혼자만 남았다. 갖고 간 책도 거의 다 읽어버렸고 배가 불러 더 이상 차를 마실 수도 없었다. (차는 150g 정도의 한 봉지를 사야 하고 뜨거운 물은 계속해서 보충해 준다)

게다가 손님이 끊기니 자기들도 일찍 마치고 싶었는지 종업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빗자루로 실내를 쓸기 시작했다. 찻잔을 탕탕 소리를 내며 치웠다. 이쯤되면 뒤통수가 뜨거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찻값 500NT를 내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상점들은 모두 셔터를 내렸다. 홍등의 불빛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검정개가 어디서 튀어나와 쫄래쫄래 따라왔다. 반갑지 않은 숙소에 되돌아왔다.

난방기구 하나 없는 방은 바람만 막아줄 뿐 실외와 다름 없었다. 겨울 파카를 입고 타이즈 두 개를 겹쳐입고 그 위에 또 청바지를 입었다. 창문이 안 닫기니 새어 들어오는 냉기를 어쩔 수 없다.

다 읽은 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며 새벽 5시까지 버텼다. 불을 끄고 눈을 감으면 침대 밑에서 귀신이 나타나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벽에 붙여놓은 선녀그림에서 선녀가 기어나올지도 모른다.

서글펐다. 모든 인간은 세상의 중심인 동시에 변방의 끝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변방의 끝에 혼자 유배된 느낌.

동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서야 책을 덮고 칼잠을 잠시 청했다. 오전 8시가 되자 바로 가방을 챙겨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숙소를 탈출했다. 이제 어떤 곳에서 자더라도 불평없이 잘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의 숙소에 대해서는 참으로 다양한 기억들이 많다.

호화로운 스위트룸과 동남아시아 해변의 낭만적인 풀빌라와 국도를 횡단하는 침대열차의 기억과 3천원짜리 도미토리와 또 유럽의 고풍스러운 호텔들까지.

그 중 최악은 오스트리아의 어느 한인민박이었는데 침대가 꼭 나무로 된 사과상자를 엎어놓은 것 같았다. 같이 여행을 간 일행들은 군대에서 자는 잠도 이보다는 낫겠다고 열통을 터트리며 욕을 했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공연을 보고 난 후 열차를 놓쳐서 역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었고 공원의 벤치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다. 여름밤이었지만 동유럽의 새벽은 구안와사를 우려할 정도로 추웠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이런 황당한 일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시의 상황을 함께 했던 지인들과는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반복하며 폭소를 터트린다. 기쁘고 좋았던 상황은 금새 잊혀지는 반면에 고생을 했거나 돌발적인 상황들은 이야깃거리로 계속해서 회자된다. 쉽게 얻은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그러고 보면 예기치 못한 소소한 불행들이 모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것 같다. 나쁜 것이 없으면 좋은 것도 모를테니까.



▲ 타이뻬이 최고의 호텔 원산대반점(Grand Hotel)


   단수이에 바람을 쐬러 갔다가 돌아오는 MRT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멋진 건물을 보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붉은 색 몸체에 지붕은 황금색인 궁전같기도 하고 거대한 절 같기도 한 위용찬 건물이었다. 웬샨(圓山)역 부근이었고 궁금증을 종식시키려 속히 정거장에 하차했다.



▲ 국빈들을 모셨던 타이뻬이의 랜드마크


   웬샨역에서 걷기에는 조금 멀다 싶어 택시를 탔더니 80NT(약 3,200원)가 나왔다.
이 곳은 타이뻬이의 최고급 호텔 원산대반점으로 장개석의 부인이었던 송미령 여사의 소유였다. 타이완의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랜드마크 역활을 하였고 장개석이 사망하자 송미령이 미국으로 이민가며 국고에 헌납했다.

1968년 포춘지 선정 세계 10대 호텔로 선정되었다.


 


   호텔 로비의 천정에는 벚꽃문양에 돋을새김으로 양각한 용무늬가 화려하다.
천정만 구경하기 위해 오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2층 로비의 벽에는 타이완을 방문했던 국빈들의 사진들과 영접장면 등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화원'이라는 딤섬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휴식 시간이었다. 아쉽다.
식당의 통유리에서 웬샨과 젠탄의 풍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딤섬을 짭짭거리고 싶었는데.



▲ 타이뻬이 최고의 명당


   원산대반점이 있던 자리는 원래 일본식민지 시절에 신사가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미국이 이 곳을 폭격했을 때 폐허가 된 자리에서 용 모양의 조형물 하나만 온전히 남아 있었다고 했다. 명당의 자리라고 판단한 송미령이 호텔을 세웠고 용은 금을 입혀 발견된 자리에 모셔두었다.

지금도 이곳은 타이뻬이 최고의 명당으로 전해지고 있어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 2만원짜리 민숙 May Space


   세번째로 방문한 숙소는 타이완인 부부가 운영하는 May Room이다. 五月家라고 한문으로 대문에 붙여두었다.

오월의 집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산뜻하고 깨끗했던 곳이다. 시트는 보송보송하고 깨끗했으며 쾌적한 샤워실은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졌다. 크고 두툼한 타월도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으며 평면TV와 무료 인터넷 사용,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이고 돌아가는 친절한 주인 내외.

여행에 있어 음식만큼 중요한 것이 숙소의 선정이다.

둘 이상 떠나면 이동이 편리한 곳의 호텔이 좋다. 방값을 나눠낼 수 있어 경비절감이 된다. 혼자 떠난다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숙이나 유스호스텔이 좋다. 호텔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아침을 제공하는 곳도 있으며 세계각국에서 출발한 여행자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일정이 맞으면 함께 여행하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외롭지' 않다!



▲ 토요일 숙소 전체 식구들과 만나 아침 식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할 때 Mixed Room과 Famale only의 선택사항이 있다. Mixed Room에서 잠시 커서가 머뭇거렸으나 Famale only를 꾹 눌렀다. 숙소를 찾기 어려우면 MRT용춘역에 내려 전화를 하라고 했다. 용춘역 5번 출구에 내려 전화를 하니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주인 아저씨가 데리러 왔다.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역에서 걸어 5분. 짐을 방에 들어다주고 아저씨는 밥 먹지 않았으면 밥 먹으러 가자고 손으로 먹는 시늉을 연출했다. 아~ 이국만리에서 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 따뜻한 배려가 참 고마웠다.

낮에는 종일 취재하러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8시가 되면 꼬박꼬박 숙소에 들어갔다. 30평 남짓한 아파트에 홍콩, 말레시이아, 싱가포르, 한국에서 온 여자들 네 명이 5일을 함께 살았다.

주인 아줌마 캐롤은 아침 8시 반이 되면 나타나 우리 아가씨들을 모두 이끌고 식당으로 가서 두유와 만두, 계란볶음밥으로 구성된 간소하고 맛있는 타이완식 아침식사를 사주었다.

밥을 먹고 20분 가량 수다를 떨다 헤어질때 "캐롤, 땡큐 밥 고마워요" 라고 말하면 "오우~오우~ 웰 컴!"이러며 껄껄껄 웃었다.




   숙소 맞은 편에는 매일 찾았던 Cafe8이 있다. 아메리카노 한잔 값이 1,600원이다. 주인아저씨는 노가다를 하는게 더 알맞다 싶을만큼 투박한 외모에 식빵처럼 넓고 두터운 손을 갖고 있었지만 동작이 발레리나처럼 우아했다.

주문 즉시 원두를 기계에 갈고 커피를 뽑아 컵에 넣고 빨대를 꽂는 일련의 행위를 매우 리드미컬하게 단숨에 해낸다. 그리곤 고운 목소리로 "마담~" 하며 나를 부른다.

매일 저녁 까페8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테이블 한 곳을 차지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는 것이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하루일과를 마치는 방식이었다. (3편에서 계속)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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