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8) 타이완 여행기 ③ LOHAS -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온천 즐기기’

2016. 2. 2. 03:02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8) 타이완 여행기 ③ LOHAS -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온천 즐기기’

2015/11/30 10:35 등록   (2015/11/30 10:35 수정) 
        



▲ MRT 신베우터우 역, 원주민과 온천박물관을 상징한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타이완 입성 4일째 되는 날, 침대 머리맡 창 밖에 조그만 새가 날아와 짹짹거리며 우짖었다. 레몬빛 여명으로 동창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보니 오늘은 해가 싱싱하게 떠오를 모양이다.

창문을 활짝 여니 묵은 공기로 눅눅하게 가라앉은 실내에 신선한 바람이 확 들이쳤다. 굿모닝 하고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신베이터우(Xinbeitou)로 온천구경을 가자꾸나.

전날 발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다 Family Mart에서 약초를 달인 물에 삶은 계란 두 개와 녹차 한 병, 조각과일 한 팩을 샀다. 아침식사로 그것들을 먹고 MRT로 걸어갔다.



 

▲ 신베이터우행 열차


   타이뻬이 시내의 거의 모든 관광지를 MRT(지하철)로 다닐 수 있어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요요카(Easy Card)하나로 찍고 타고, 시외로 가는 버스를 탈 때도 요요카 하나만 있으면 되니 택시의 바가지 횡포에 미리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좋다.

타이뻬이 역에서 MRT를 타고 베이터우 종점까지 달려 신베이터우로 갈아탔다. 한구간만 운행하는 신베이터우행 열차, 노란색 전철의 그림이 깜찍하다. 역에서 내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 언덕길로 올라갔다. 해는 중천에 올라 열기를 점점 높이고 있었다.



▲ 친환경 건축물 베이터우 시립 도서관


   오르막을 10분 쯤 걷다 나무로 지은 용도를 모를 예쁜 건축물을 발견했다. 건물 전체가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의 뚜껑 같은 형상이었다. 다가가보니 베이터우 시립 도서관이었다.

이곳은 타이뻬이의 자랑인 친환경 도서관으로 태양열 에너지와 빗물을 활용해 시설을 활용하고 에너지 절약을 한다. 실내에는 가족들과 연인들, 안경을 쓴 학구파 젊은이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공기도 좋고 건물도 예쁜 숲속 도서관에서 데이트와 공부를 병행한다면 공부도 잘 되고 애정도 다지는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도서관을 지나 5분여를 더 걸어가니 1913년에 일본이 지었다는 온천 박물관이 나타났다. 과거 식민통치 시절에 대중탕으로 영업했던 곳이다. 신발을 벗고 다다미가 깔린 방으로 올라섰다. 실내는 베이터우 지역의 온천 발전사와 세계의 유명한 온천지역, 포스터와 디오라마로 과거를 복원해놓았다.

시간의 틈을 두고 영화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흑백 화면속의 여인이 무슨 일인지 계속 울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 일제시대에 지은 온천 박물관



   1905년에 발견된 베이터우 유황석으로 유명해진 베이터우 유황온천은 남미의 칠레, 일본, 타이뻬이 이렇게 전 세계에 세군데만 존재한다고 한다. 암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온천을 이용한 암치료를 내세우는 일본 아키타 현의 타마가와 유황온천도 원래는 타이뻬이의 베이터우 유황석을 가져다가 만든 것이다.

이곳이 온천탕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에는 일본의 쇼와 천황이 다녀가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다다미방의 구석에 앉아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맞은편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난간에 걸터앉아 하드를 맛있게 빨아먹는 남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황색으로 변한 혓바닥을 내밀어 ‘메롱’을 연출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의 모습은 천사처럼 순진무구하다. 커가면서 점점 퇴색되겠지만.



▲ 온천박물관에서 만난 귀염둥이 남매





▲ 계곡을 흐르는 천연 온천수,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중산루의 언덕길을 따라 걸어가면 양 옆으로 폭 20m 넓이의 계곡물이 콸콸 흘러내린다. 그냥 계곡물이 아니라 온천수이다. 상류의 지열곡((地熱谷)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가 냇물과 더해지며 아래로 흘러갈수록 온도가 조금씩 낮아진다.

사람들이 계곡 곳곳에 앉아 발을 담그고 족욕을 하고 있었다. 한낮 태양의 따가움은 아름드리 나무에서 뻗어나간 잎이 무성한 가지가 천연 가림막이 되어 막아준다. 타이뻬이의 아열대성 기후 탓인지 나무들이 덩치가 매우 크다.

여기서는 수령이 1,000년 정도 되는 나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양질의 온천수와 흙의 기운을 빨아들여 장수하는 나무들이다. 나도 계곡으로 내려가 신발을 벗고 돌 위에 앉아 족욕을 즐겼다. 물은 기분 좋게 따뜻하고 미끌미끌하였다.

어떤 이는 시커멓고 덩치 큰 개를 데리고 와 온천물에 목욕을 시켰다. 개는 처음에 몸부림을 쳤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는지 네 발을 움직이며 떠다녔다. 개와 사람이 한데 섞여 온천을 즐긴다. 자연이 선물한 휴양이다. 게다가 가격도 공짜이다.



▲ 베이터우 온천의 원천(原川)인 지열곡


   지열곡은 베이터우 온천의 원천이다. 가까이 갈수록 계란이 썩는 것 같은 유황의 매캐한 냄새가 짙어졌다. 짙은 안개 속에 들어선 듯 두텁고 뿌연 수증기를 헤치며 나아가니 맑은 옥색의 온천수가 공기방울을 터트리며 펄펄 끓고 있는 지열곡이 나타났다. 수온이 100도 가량 된다고 하였다. 물빛은 흰 색에 가까울 수록 온도가 높다고 한다.

호수는 거대한 가마솥이고 마녀가 신통을 부려 비법의 약을 끓이고 있는 것 같다. 한 잔만 마시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침침한 눈이 2.0의 시력으로 개안하는 비법의 묘약!

옆 산의 낮은 언덕에는 옥황상제를 모신 신단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노란 유황이 입혀진 베이터우 유황석이 나무로 된 가두리 주변을 굴러다녔다. 한 개 집어오고 싶었지만 불법일지도 몰라 망설이다 돌아섰다.



▲ 암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신베이터우 유황석


   일본 큐슈지방의 벳부에 가면 지옥이라 부르는 유황온천들을 구경할 수 있다. 9개 정도의 붉고 푸르고 옥색의 지열곡들을 한데 묶어 지옥이라 부르며 관광상품으로 팔고 있다. 온도가 낮은 지옥에는 하마도 기르고 있다. 큐슈여행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코스이다.

신베이터우의 지옥은 벳부의 지옥만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한결 조용하고 덜 개발되어 상업적인 느낌은 덜하고 친환경적인 느낌이 강했다.

지열곡 주변에는 다양한 시설의 온천욕장들이 들어서있다. 숙박비를 내고 잠을 자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목욕만 할 수도 있다. 업소마다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 100년이 넘은 온천탕 롱나이탕


   나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롱나이탕'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롱나이탕 온천은 1907년에 문을 연 베이터우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일본의 히로히토 왕세자가 온천욕을 했다고 하여 일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지열곡에서 도보로 10분 걸린다. 누런색 털의 개 한마리가 달려와 온천을 안내하듯 앞장서 걸어가는데 그 개를 쫓아가다 보니 롱나이탕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키우는 개인지 뒷마당으로 쏙 달려 들어가 버렸다. 하얀색 돌담에 붉은 글씨로 瀧乃湯이라고 쓰여 있다.

자갈이 깔린 마당을 들어서자 바로 매표소가 나타나고 빼빼 마르고 머리칼이 은빛인 할아버지가 요금 90NT(한화 약3,600원)를 받았다. '네이키드'라며 쉰 소리로 내뱉고는 손가락으로 탈의실을 가리켰다. 뻥 뚫린 입구는 천 조각을 내려뜨려 가림막의 구실을 한다.

천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서니 비좁은 입구에 신발 벗는 공간만 있고 바로 목욕탕이었다. 돌로 지은 작은 탕 안에 활랑 벗은 아주머니들이 다섯 명 정도 들어가 있었다. 머리통 위로 모기향처럼 김이 솔솔 올라왔다.

유명세 치고는 놀랍도록 작고 소박하다. 개인사물함 같은 것은 없다. 뚜껑이 없는 나무로 된 장 안에 옷과 가방을 넣어두고 누가 훔쳐가지 않는지 목욕 중에 고개를 돌려 가끔씩 확인해야 했다.

검푸른 돌로 지은 네모난 탕은 연둣빛 이끼가 듬성듬성 끼어있다. 온천수는 매우 뜨거워 5분 정도 들어가 있다가 나와 다시 몸을 식혀 들어가야 했다. 천정은 나무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약간의 틈을 두고 있어 바람이 머리 위를 훑어갔다. 물이 따끔따끔하다. 마치 광천수를 끓인 것 같다.

특히 어깨와 발목의 아픈 부분이 유독 따가웠다. 온천수는 닦지 않고 피부에 그대로 흡수시키는 것이 요령이라 한다.

목욕을 마친 후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피부가 보송보송 하고 얼굴에 광채가 난다.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녀서 아프던 어깨와 발목도 덜 아픈 것 같았다. 타이뻬이에 묵는 동안 한번쯤 더 오리라 마음먹었지만 다른 일정 탓에 다시 찾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길 건너편의 작은 마차에서 온천물에 삶은 계란과 오렌지 쥬스를 팔고 있었다.

50대 가량의 부부였다. 아내가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건네주면 남편이 스텐레스로 된 기구를 손으로 눌러 즙을 짜낸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사이인 만큼 동작이 한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일심합체, 라고 생각했다. 사랑할 때 사람의 마음은 뭉쳐진다.

밀가루 반죽처럼 서로에게 섞여들었다가 원하는 상황에 이르지 못하면 다시 분리되지만 처음 서로가 타인이었을 때처럼 완벽하게 제거되지는 않는다. 어느 곳에라도 작은 찌꺼기는 남는다. 어떤 이도 완벽히 잊혀진 이는 없다.

계란 두 개와 오렌지 쥬스를 사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허기를 매웠다. 계란은 고소하고 쥬스는 신선하다. '더할 나위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박한 식사가 주는 기쁨이다.



▲ 양명산 국립공원의 폭포


   이튿날 아침, 양명산으로 가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다.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양명산(陽明山).

민박집 주인아줌마 Carol은 이틀 전부터 '체리 블로썸'을 외치며 들떠 있었다. 주말에는 몰려드는 인파로 매우 복잡할 테니 평일에 가라는 충고를 하며 타이완의 봄철에 양명산을 가지 않으면 헛 온 거나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MRT 딴쉐이시엔을 타고 스린역에 내려서 紅2번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근처에는 노숙자들의 재활을 돕는 취지로 만들어진 '빅 이슈' 를 할아버지가 팔고 있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10NT를 주었더니 눈을 둥그렇게 크게 떴다. 100NT 두장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민망할데가! 하기사 400원짜리 잡지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지폐를 찾아보았지만 1,000NT몇 장만 있었다. 그냥 돌아섰다. 그러나 잡지를 사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속에 걸림돌처럼 남아있다. 다시 돌아가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유 없이 미안스럽다.

인생은 품앗이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느끼지 못해도 살다보면 알게 된다. 미움과 기쁨과 나눔을 부메랑처럼 교환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여기까지도 혼자 힘으로는 온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들의 품앗이로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다.



▲ 온천과 벚꽃으로 유명한 양명산 국립공원


   평일이지만 버스는 빈자리 없이 빼곡하다. 상춘객 틈에 끼어서 30분간 서서 양명산의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갔다.

신베이터우도 온천으로 유명하지만 양명산의 온천도 매우 유명하다. 화산 분포 지역으로 분화구와 화구호를 구경할 수 있고 국립공원 내의 크고 작은 폭포들과 호수, 늪, 수많은 꽃과 나무들, 새소리로 인해 선계(仙界)에 이른듯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벚꽃과 진달래가 가득 피어 멀리서 보면 거대한 분홍색 천막으로 산을 덮어놓은 것 같다. 장관이었다.
양명산은 타이완에서 화산지형이 가장 잘 발달된 곳이라 한다. 숲 속의 오솔길은 꽃과 함께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장처럼 복잡했다.

1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3월의 벚꽃시즌이니 당연하다. 양명산은 도심에서 가깝다. MRT와 버스로 접근이 편리하다.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팀들이 많았다. 버스 정류장 입구의 작은 식당들 외에는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

꼬지나 취두부, 소세지 구이와 달디단 음료수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락을 미리 준비하면 좋겠다. 공원 내의 앉기 좋은 풀밭에는 도시락과 과일을 먹으며 담소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꽃구경 외에도 하이킹을 위해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여러 봉우리 중 사모산, 대둔산, 칠성산등이 인기 있는 등산코스이다.



▲ 양명산 국립공원


   관광의 취지가 변화하고 있다. 먹고 보고 마시는 관광이 구시대의 소비와 여가형태였다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육과 생활환경이 질적으로 높아졌고 ‘웰빙’이라는 新트렌드가 음식과 휴식을 비롯한 생활전반에 불어 닥쳤다.

한동안 웰빙 바람은 잠잠해지지 않을 듯 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활양상에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새로운 물결은 '로하스(LOHAS)이다. 'Life 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인 로하스는 환경을 돌보는 소비 형태이다.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와 높아진 생활수준, 도덕적 가치의 이념을 쫓아 양질의 생활을 추구하고자 한다. 시대의 새로운 소비 형태는 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생활양식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웰빙을 추구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며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 진정한 로하스에 부합되는 여행일 것이다.

타이완에는 열천, 냉천, 해저온천을 포함한 약 120여 곳의 온천이 있다. 인간이 이룩해놓은 메트로폴리스 속에서 쇼핑과 유흥을 즐기며 여가를 즐기는 것도 나름의 여가생활이겠지만, 자연에 묻혀 좋은 공기와 신선한 채소를 활용한 음식으로 시멘트 독을 빼고 매스 미디어가 없는 고요 속에 명상을 즐기며 자신에게 오로지 몰입하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진정한 로하스가 아닐까 한다.


 
▲ 신베이터우 자연온천에서 족욕을 즐기는 시민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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