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1) 최석운 - 기다리는 남자
2016. 2. 3. 19:37ㆍ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1) 최석운 - 기다리는 남자
2015/12/21 10:37 등록 (2015/12/21 10:38 수정)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C2vldcYiSsf8Qvb8Zj0qxelMSSbdyQt47BXbcdgZ-1450661340.jpg)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한 남자가 전화기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다.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전화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알리없는 상대방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소식이 궁금해도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오지 않는 이상 도무지 방법이 없다.
경제가 갈수록 불황인 가운데, 대한민국은 복고열풍이 불고 있다. 얼마전에 80, 90년대 가요를 다시 되새겨 보는 '토토가' 열풍이 불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추억의 열정을 불지피게 하더니 요즘은 케이블 채널 tvn에서 '응답하라 1988' 이 방영되며 또 다시 과거로의 회귀로 지난날의 아련한 기억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게 한다.
드라마는 1980년대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골목길에 사는 네가구의 자녀들과 그들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당시의 문화를 주인공들이 아날로그식 정서로 재현하여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의 많은 공감을 사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속 소품인 성냥갑, 공중전화, 꼬깔콘, 종이인형, 경양식집, 동시상영관, 카세트 테이프 등에 연상되는 기억들은 흘러간 지난날들을 돌이켜 추억하게 만든다.
왜 지나간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울까?
못내 아쉽고, 부끄러운 기억들이지만 떠올릴수록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 철부지 연인들의 달달한 풋사랑과, 아직 젊었던 과거의 내 부모님들과 유년의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들.
나의 과오를 뉘우치기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라도 해서 돌아가고 싶지만 세월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버렸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u4zbdcoIsK8cEsN7lOGX1T1b3AlUAw6pm903QF2e-1450661509.jpg)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자가 한때 좋아했던 최석운의 '기다림'시리즈가 떠오른다. 현재는 대한민국 화단에서 유명한 화가이지만 이 분도 계란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누군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없겠냐마는 그는 그 기억들을 기다림 연작으로 그려내어 애틋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부산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자취를 하던 시절에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없겠냐마는 그는 그 기억들을 기다림 연작으로 그려내어 애틋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부산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자취를 하던 시절에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rHx8MiJgD55IM79TVtptaEwto40IWf6xW45qUkkG-1450661559.jpg)
낚시를 하며 묵묵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무심한듯 불쑥 나온 입은 그가 어떤 상상에 깊이 몰입하여 있음을 알린다. 풀벌레의 찌르르한 울음 외에는 물결위에 작은 파문도 일지 않는 고독한 적막.
무심한듯 불쑥 나온 입은 그가 어떤 상상에 깊이 몰입하여 있음을 알린다. 풀벌레의 찌르르한 울음 외에는 물결위에 작은 파문도 일지 않는 고독한 적막.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XdsEpaWbWAEX636C5xiYU4c9gVMy51P8QdS2q8Lb-1450661599.jpg)
돌 위에 오도카니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남자.
까치도 정물처럼 미동도 않는다. 누렁이도 기다림에 지쳐 엎드린 채 정적 속의 일부가 되었다.
까치도 정물처럼 미동도 않는다. 누렁이도 기다림에 지쳐 엎드린 채 정적 속의 일부가 되었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zhug0gWtadH6qH2MT807uQX3royLEvY2b91S3Kej-1450661635.jpg)
나루터에 걸터앉아 있는 남자.
나룻배의 줄을 잡고 있지만 힘주어 당기지도 않고 놓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줄을 느슨히 쥐고 있을 뿐이다. 조용한 바람이 가끔씩 수풀을 흔들어 놓을 뿐 어디에서도 호출은 오지 않는다.
나룻배의 줄을 잡고 있지만 힘주어 당기지도 않고 놓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줄을 느슨히 쥐고 있을 뿐이다. 조용한 바람이 가끔씩 수풀을 흔들어 놓을 뿐 어디에서도 호출은 오지 않는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221/3eTVwC539Ue3dAy1ixmJUHSTvsvmFLQ17HOXENPa-1450661657.jpg)
동구밖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남자.
기다림에 지쳐 나무에 기대어 무장해제되어 있는 저 남자. 누렁이도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현대화단에서는 최석운을 가리켜 신윤복의 환생이라고 빗댄다.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해학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의 과거의 그림은 담백하고 아름답다. 고무신과 누렁이, 까치와 같은 시골의 정서가 녹아 있으며 오로지 일방통행인 지고지순한 기다림이 더욱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과거에는 편지와 공중전화로 소통을 했었다. 세를 사는 사람들은 주인집에 놓은 전화기를 통해 연락을 하기도 했다. 물자가 흔하지 않았고 귀했던 시절이었다. 연인들은 편지를 통해 간절함과 그리움을 전달했다.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불어나는 그리움과 애틋함. 쉽게 얻을 수 없었기에 더욱 간절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기다림에 지쳐 나무에 기대어 무장해제되어 있는 저 남자. 누렁이도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현대화단에서는 최석운을 가리켜 신윤복의 환생이라고 빗댄다.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해학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의 과거의 그림은 담백하고 아름답다. 고무신과 누렁이, 까치와 같은 시골의 정서가 녹아 있으며 오로지 일방통행인 지고지순한 기다림이 더욱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과거에는 편지와 공중전화로 소통을 했었다. 세를 사는 사람들은 주인집에 놓은 전화기를 통해 연락을 하기도 했다. 물자가 흔하지 않았고 귀했던 시절이었다. 연인들은 편지를 통해 간절함과 그리움을 전달했다.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불어나는 그리움과 애틋함. 쉽게 얻을 수 없었기에 더욱 간절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언제든 즉각적으로 원하는 상대방과 소통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든만큼 소중함의 가치는 더욱 작아졌다.
이제는 손편지를 쓸 곳도, 보낼곳도 없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거리의 그 많던 공중전화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동전을 먹고 목소리를 토해내던 그 소식통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가.
밤하늘을 날아 연인에게 가닿던 간절함들은 어디로 증발되었는가.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의 청춘과 함께! 현대는 속도경쟁 시대이다. 빠르고 신속함이 가치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모든 소중한것들은 기다림의 가치속에 탄생하고,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이제는 손편지를 쓸 곳도, 보낼곳도 없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거리의 그 많던 공중전화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동전을 먹고 목소리를 토해내던 그 소식통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가.
밤하늘을 날아 연인에게 가닿던 간절함들은 어디로 증발되었는가.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의 청춘과 함께! 현대는 속도경쟁 시대이다. 빠르고 신속함이 가치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모든 소중한것들은 기다림의 가치속에 탄생하고,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120/EVhLRNB4ZCKBIMpj8bQPEd16rldMUCley85uo3oe-1447989353.jpg)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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