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시 모음> 하정심의 '찻물 끓이기' 외

2016. 2. 4. 01:41茶詩

 <차 시 모음> 하정심의 '찻물 끓이기' 외

  글쓴이 : 바람예수     날짜 : 15-12-14 13:23     조회 : 13     


              

<차 시 모음> 하정심의 '찻물 끓이기' 외

+ 찻물 끓이기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그 소리
방울방울 몸을 일으켜
솨 솨 솔바람 소리
후두둑후두둑 빗방울 소리
자그락자그락 자갈길 걷는 소리

가만!
내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 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하정심·시인)


+ 차 사랑

세상 한가운데 있는
그곳에 가면
주인의 성품 닮은 따뜻한 차와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다 
(박인혜·시인, 1961-)


+ 차를 끓입니다 
                 
차를 끓입니다
그대 생각날 때면 허브 향 가득 차를 끓입니다
미완의 사랑
내생의 인연 고리 되어
나 한잔
그대 한잔
오지 않는 그대 앞에 마주하는 찻잔
목울대까지 차오른 찻물
오늘은 그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봅니다
(배귀선·시인)


+ 茶차를 들며 道를 엿본다

꿇어앉지 않고
반가부좌로

문 밖 산을 바라본다.

무릎 앞
찬 마룻바닥에 놓인
찻잔 안에

산이 들어가 있다.
늙은 소나무가
거꾸러져 있다.

떠가는 흰 구름도
잠시 몸을 적신다.

차를 들며
슬쩍
도를 엿보는 시간이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국화차를 달이며

국화 우러난 물을 마시고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도저히 이런 맛과 향기의
꽃처럼은 아니 될 것 같고
또 동구 밖 젖어드는 어둠 향해
저리 컴컴히 짖는 개도 아니 될 것 같고

나는 그저
꽃잎이 물에 불어서 우러난
해를 마시고
새를 마시고
나비를 모시는 사람이니

긴 장마 속에
국화가 흘리는 빗물을 다 받아 모시는 땅처럼
저녁 기도를 위해 가는 향을 피우는 사제처럼
텅텅 울리는 긴 복도처럼
고요하고도 깊은 가슴이니
(문성해·시인, 1963-)


+ 홀로 차를 마신다

홀로 차를 마신다
기어이 너를 죽인다
너를 죽여 삽을 들고 땅에 묻는다
잠시 성긴 눈이 내리고
몇 백년이 지나간다

홀로 차를 마신다
기어이 삽을 들고 너를 파낸다
나뭇가지를 주워 강가에 너를 태운다
진홍가슴새 한 마리
흰 불길 밖으로 날아가고
난초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정호승·시인, 1950-)


+ 차를 마셔요, 우리

오래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찻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음에 끓어오르는
담백한 물빛 이야기를
큰 소리로 고백하지 않아도 익어서 더욱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오래 기뻐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산을 닮은 어진 눈빛과
바다를 닮은 푸른 지혜로
치우침 없는 중용을 익히면서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오래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는 세상일들
혼자서 만들어 내는 쓸쓸함
남이 만들어 준 근심과 상처들을
단숨에 잊을 순 없어도
노여움을 품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며 함께 차를 마셔요
차를 마시는 것은
사랑을 마시는 것
기쁨을 마시는 것
기다림을 마시는 것이라고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차 한 잔

가끔 아내는
내게 차 한 잔을 권한다

잠시나마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차를 물 마시듯 단숨에 마셔 버린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세상살이인데
왜 나는 이리도 여유가 없을까

뜨거운 차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얘기 꽃 한 송이 피우면
우리의 사랑 더욱 깊어질 것을

머잖아 이 목숨도
싸늘한 찻잔같이 될 것을.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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