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1)....매병| 청자
청자매병 301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국보68호,간송미술관,42.1*6.2*17cm
302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보물558호,호암미술관,32.2*7*14.5cm
303 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보물286호,간송미술관,41.5*7.5*15.8cm
304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화여대
305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서울역사박물관
306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국립중앙박물관,39.1*5*6.5cm
307 청자상감음각모란문매병(靑磁象嵌陰刻牡丹文梅甁),보물342호
308 청자음각연당초문매병(靑磁陰刻蓮唐草文梅甁),국보97호,국립중앙,43.9*7.3*26.1cm
309 청자음각연당초문매병(靑磁陰刻蓮唐草文梅甁),국립중앙,35.4*6.2*14.1cm
310 청자음각연화문매병,국보252호,호암미술관,27.7*5.3*10.6cm
311 청자상감매죽학문매병(梅竹鶴文),보물1168호,국립중앙박물관,33*5.1*11cm
312 청자상감매죽학문매병(梅竹鶴文甁),보물1168호,국립중앙박물관,33*5.1*11cm
313 청자상감매조죽문매병(梅鳥竹文),보물903호,서원석(국립중앙 보관),38.9*5.1*15.6cm
314 청자상감동채모란문매병(靑磁象嵌銅彩牡丹文梅甁)
315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靑磁象嵌松下人物文梅甁)
316 청자상감수목문매병,서울박물관
317 청자상감연판문매병,보물1034호
318 청자상감연류어문매병(靑磁象嵌蓮柳魚文梅甁)
319 청자상감연유화접문매병(靑磁象嵌蓮柳花蝶文梅甁)
320 청자상감용문매병(靑磁象嵌龍文梅甁)
321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靑磁鐵彩堆花蔘葉文梅甁)
322 청자철채퇴화운학문매병(靑磁鐵彩堆花雲鶴文梅甁)
323 청자철화국당초문매병(靑磁鐵畵菊唐草文梅甁)
324 청자철화화훼문매병(靑磁鐵畵花卉文梅甁)
325 청자철화모란문매병(靑磁鐵畵牡丹文梅甁)
326 청자철화연당초문매병(靑磁鐵畵蓮唐草文梅甁)
327 청자양각쌍봉모란당초문매병(靑磁陽刻雙鳳牡丹唐草文梅甁)
328 청자철유상감화조문사이편호(靑磁鐵釉象嵌花鳥文四耳扁壺)
329 청자상감용봉당초문편병(靑磁象嵌龍鳳唐草文扁甁)
330 청자상감산수인물문편호(靑磁象嵌山水人物文扁壺)
331 청자상감운학문사이호(靑磁象嵌雲鶴文四耳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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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2)....주전자| 청자
청자 주전자
332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국보66호
333 청자상감연당초류문정병(靑磁象嵌蓮唐草柳文淨甁)
334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靑磁象嵌菊花牡丹文瓜形甁),국보114호
335 청자과형병(靑磁瓜形甁)
336 청자철화모란문병(靑磁鐵畵牡丹文甁)
337 청자연판문광구병(靑磁蓮瓣文廣口甁)
338 청자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靑磁象嵌葡陶童子文銅彩注子)및승반(承盤)
339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국보116호
340 청자상감운학국문표형주자·승반,보물1033호
341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
342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국보133호
343 청자비룡형주자,국보61호
344 청자퇴화문석류형주자(靑磁堆花文石榴形注子)
345 청자음각초화문표형주자(靑磁陰刻草花文瓢形注子)
346 청자퇴화연당초문주자(靑磁堆花蓮唐草文注子)
347 청자주자(靑磁注子)및 승반(承盤)
348 청자상감연당초문주자(靑磁象嵌蓮唐草文注子)
349 청자퇴화연화형연적(靑磁堆花蓮花形硯滴)
350 청자상감모란문주자,보물1029호,호암미술관
351 청자상감모란문주자(靑磁象嵌牡丹文注子)
352 청자상감동자당초문주자(靑磁象嵌童子唐草文注子)
353 청자상감포도동자문주자(靑磁象嵌葡萄童子文注子)
354 청자양각만과문주자(靑磁陽刻蔓瓜文注子)
355 청자양각죽절문주자(靑磁陽刻竹節文注子)
356 청자음각연화문과형주자,서울박물관13
357 청자죽순형주자(靑磁竹筍形注子)
358 청자상감앵무문표형주자,보물1036호,호암,
359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360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361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靑磁陰刻草花文花形托盞)
362청자탁잔(靑磁托盞)
363 청자상감(靑磁象嵌) '귀(鬼)'자 잔(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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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된 청자| 청자
1. 청자란 ? 청자는 투명하고 신비로운 비취색을 띠는 자기로서 한국에서는 이미 12세기에 빛깔이나 형태, 문양에서 최고의 품격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청자의 재료가 되는 흙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인데 이 백토로 그릇을 빚은 후 철분이 1∼3% 정도 함유되어 있는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구워낸 것이 청자이다.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백토를 구웠을 때 나타나는 옅은 회색과 어울려 청자의 색은 투명한 비취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흙이나 유약 등 재료가 시대나 지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청자는 그것을 만든 시기나 지방에 따라 빛깔이나 품질에 조금씩 차이가 난다. 2. 청자의 구분 2-1 고려청자 자연스러운 선과 세련된 형태, 요란하지 않으면서 운치 있는 문양 등이 고려 청자의 특색이다. 중국 청자가 색이 짙고 탁한데 비하여 고려 청자는 은은하고 투명한 비취색을 띠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최초로 동(銅)으로 자기에 붉은 빛깔을 내는 기법을 개발해 청자에 응용하 였다. 그러나 붉은 빛깔을 쓰더라도 현란하게 되지 않도록, 전체적인 은은한 색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강조점으로만 사용하였다. 고려 청자는 12세기 전반기부터 맑은 비취색과 세련된 모습으로 그 미적, 기술적 수준이 최고 절정에 다다른다. 청자가 투명한 비취색을 띠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말부터이며 이 시기 부터 청자의 형태 또한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적인 느낌을 주는 문양들이 사라지고 한국 특유의 독특한 문양들이 나타나고 있다. 12세기 전체를 통틀어 순청자가 우수한 품질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으로 12세기 중엽에서는 상감기법과 문양에 있어서 가장 세련된 시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4세기 중엽부터는 청자의 생산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대신 분청사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다. 2-2 순청자 순청자는 청자에 상감이나 진사 등의 기법을 넣지 않은 순수한 청자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비취색과 새겨 넣은 문양, 빚은 모양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멋스러움을 풍긴다. 순청자는 9∼10세기 무렵 청자의 초보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2세기 초반에 청자소문과형병과 같은 우수한 청자로 발전하였으며, 후에 상감청자로 발전하였다.
3. 청자의 문양과 장식기법 3-1 청자의 문양 3-1-1 모란문 모란문이란 모란을 소재로 나타낸 장식무늬로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이후에 성행하였다. 고려자기의 모란문은, 초기에는 중국 도자기의 모란무늬와 같은 회화적인 형식이었으나, 차츰 절지(折枝)와 화분(花盆) 형식 등의 관념적인 무늬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당초문과 결합된 모란당초무늬를 철사(鐵砂) 물감으로 활달하고 자유롭게 그린 회화적인 무늬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에도 시원스러운 철사모란무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모란무늬가 특징적이며, 백자에서는 매우 사실적인 투각모란무늬가 항아리 등에 가득 새겨지고 있다. 3-1-2 당초문 당초문(唐草文)이란 식물의 형태를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시킨 장식무늬의 일종으로, 당초는 당풍(唐風) 또는 이국풍(異國風)의 덩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덩굴이 어지럽게 엉킨 듯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특징적이다. 한국 미술에서 당초문은 고대미술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각종 불교미술에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도자기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다. 3-2 장식기법 상감(象嵌)기법은 빚은 도자기의 표면에 문양을 음각(陰刻)하고 그 음각 부분에 다른 빛깔을 나타내는 이물질을 채워넣어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으로 세계 도자사상 독보적인 장식기법이다. 상감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릇의 형태를 빚어 반쯤 마른 상태일 때 칼로 문양을 파낸 다음 그 파낸 홈에 백토니(白土泥) 또는 자토니(자土泥)를 붓으로 발라 메꿔 넣는다. 이것이 완전히 마른 다음 겉에 묻은 이토(泥土)를 깎아내고 문양이 드러나게 하여 초벌구이를 하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하면 백토니는 하얀색으로, 자토니는 검은색으로 문양이 나타나며 유약을 통해 더욱 맑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려인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독보적인 장식기법으로서 고려 상감청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4. 문화재로 지정된 청자 4-1 국보 청자사자유개향로 (靑磁獅子紐蓋香爐) 국보 60호 (서울시) 청자비룡형주자 (靑磁飛龍形注子) 국보 61호 (서울시) 청자기린유개향로 (靑磁麒麟紐蓋香爐) 국보 65호 (서울시)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 (靑磁象嵌柳竹蓮盧鴛鴦文淨甁) 국보 66호 (서울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 국보 68호 (서울시) 청자압형수적 (靑磁鴨形水滴) 국보 74호 (서울시) 청자소문과형병 (靑磁素文瓜形甁) 국보 94호 (서울시) 청자칠보투각향로 (靑磁七寶透刻香爐) 국보 95호 (서울시) 청자귀형수병 (靑磁龜形水甁) 국보 96호 (서울시)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 (靑磁陰刻蓮花唐草文梅甁) 국보 97호 (서울시) 청자상감모란문항 (靑磁象嵌牡丹文缸) 국보 98호 (서울시) 화청자양류문통형병 (畵靑磁楊柳文筒形甁) 국보 113호 (서울시) 청자상감모란국화문과형병 (靑磁象嵌牡丹菊花文瓜形甁) 국보 114호 (서울시) 청자상감당초문완 (靑磁象嵌唐草文완) 국보 115호 (서울시)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 (靑磁象嵌牡丹文瓢形甁) 국보 116호 (서울시)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靑磁辰砂蓮華文瓢形注子) 국보 133호 (경기도) 청자인형주자 (靑磁人形注子) 국보 167호 (서울시) 청자양각죽절문병 (靑磁陽刻竹節文甁) 국보 169호 (경기도) 청자철채퇴화점문나한좌상 (靑磁鐵彩堆花點文羅漢坐像) 국보 173호 (서울시) 청자상감용봉모란문개합 (靑磁象嵌龍鳳牡丹文蓋盒) 국보 220호 (경기도) 청자음각연화문매병 (靑磁陰刻連花文梅甁) 국보 252호 (경기도) 청자양인각연당초·상감모란문은구대접 (靑磁陽印刻連唐草.象嵌牡丹文銀구大접) 국보 253호 (서울시) 4-2 보물 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 (靑磁象嵌葡萄童子文梅甁) 보물 286호 (서울시) 청자상감복사문매병 (靑磁象嵌복紗文梅甁) 보물 342호 (서울시) 청자양각위려수금문정병 (靑磁陽刻葦려水禽文淨甁) 보물 344호 (서울시) 청자상감진사모란문매병 (靑磁象嵌辰砂牡丹文梅甁) 보물 346호 (서울시) 청자상감유어문매병 (靑磁象嵌游魚文梅甁) 보물 347호 (서울시) 분청사기모란문반합 (粉靑砂器牡丹文飯盒) 보물 348호 (서울시) 청자상감모자합 (靑磁象嵌母子盒) 보물 349호 (서울시) 청자투각돈 (靑磁透刻墩) 보물 416호 (서울시) 청자귀형수주 (靑磁龜形水注) 보물 452호 (서울시)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 (靑磁象嵌雲鶴牡丹菊花文梅甁) 보물 558호 (경기도) 청자상감상약국명합 (靑磁象嵌尙藥局銘盒) 보물 646호 (서울시) 청자상감매조죽문매병 (靑磁象嵌梅鳥竹文梅甁) 보물 903호 (서울시) 청자상감동채연당초용문병 (靑磁象嵌銅彩蓮唐草龍文甁) 보물 1022호 (서울시) 청자음각운룡문"상약국"명합 (靑磁陰刻雲龍文"尙藥局"銘盒) 보물 1023호 (서울시) 청자양각연당초·상감운학문대접 (靑磁陽刻蓮唐草·象嵌雲鶴文大접) 보물 1024호 (경기도) 청자도형연적 (靑磁桃形硯滴) 보물 1025호 (경기도) 청자양인각도철문방형향로 (靑磁陽印刻도철文方形香爐) 보물 1026호 (경기도) 청자구룡형삼족향로 (靑磁龜龍形三足香爐) 보물 1027호 (경기도) 청자반양각연당초문호 (靑磁半陽刻蓮唐草文壺) 보물 1028호 (경기도) 청자상감모란문주자 (靑磁象嵌牡丹文注子) 보물 1029호 (경기도) 청자상감운학문화분 (靑磁象嵌雲鶴文花盆) 보물 1030호 (경기도) 청자양인각파어·포련문접시 (靑磁陽印刻波魚·蒲蓮文碟匙) 보물 1031호 (경기도) 청자음각연당초·상감국화절지문대접 (靑磁陰刻蓮唐草·象嵌菊花折枝文大碟) 보물 1032호 (경기도) 청자상감운학국문표형주자·승반 (靑磁象嵌雲鶴菊文瓢形注子·承盤) 보물 1033호 (서울시) 청자상감연판문매병 (靑磁象嵌蓮瓣文梅甁) 보물 1034호 (서울시) 청자음각여의운문병 (靑磁陰刻如意雲文甁) 보물 1035호 (서울시) 청자상감앵무문표형주자 (靑磁象嵌鸚鵡文瓢形注子) 보물 1036호 (서울시) 청자음각국당초문대접 (靑磁陰刻菊唐草文大碟) 보물 1037호 (서울시) 청자철채양각연판문소병 (靑磁鐵彩陽刻蓮瓣文小甁) 보물 1038호 (서울시) 청자상감모란절지문바릿대 (靑磁象嵌牡丹折枝文鉢盂) 보물 1039호 (서울시) 청자상감매죽학문매병 (靑磁象嵌梅竹鶴文梅甁) 보물 1168호 (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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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려청자(高麗靑瓷) 06| 우리歷史 이야기
청자양인각 보상당초·상감 운학문대접 (靑磁陽印刻 寶相唐草·象嵌 雲鶴文大蝶) / 高麗 12世紀 / 寶物 1024 號 기벽이 사선(斜線)인 키 낮은 대접으로, 양각문과 상감문양이 함께 베풀어진 초기상감청자의 귀중한 예이다. 내면에는 네송이의 큼직한 보상화(寶相華)를 중심으로 당초문이 가득하게 압인(壓印) 양각되어 있고, 외면에는 아래위에 두 줄의 백상감 선문을 돌린 후, 그 사이에 운학문을 큼직큼직하게 흑백상감하였다. 이처럼 내면에는 양인각, 외면에는 상감이 정교하게 시문된 예는 제작과 번조가 까다로워 현전하는 예가 매우 드물다. 밝고 투명한 담록색의 유가 두껍게 시유되었는데, 유가 뭉친 곳은 암록색을 띠며, 전면에 비교적 큰 빙렬이 나 있다. 굽은 작고 낮으며 안바닥까지 시유하고 세 곳에 규석을 받쳐 번조하였다. - 湖巖美術館 청자양인각 파어포연문 접시(靑磁陽印刻 波魚蒲蓮文 碟匙) / 高麗 12世紀 / 寶物 1031 號 구연이 살짝 외반하고 기벽이 사선(斜線)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밑둥 근처에서 각이져 꺾여 굽에 이어지는 형태의 접시로, 내저면이 넓고 편평하다. 구연은 여섯곳에 작은 홈을 등간격으로 파내어 화판형(花瓣形)을 만들고, 화판을 따라 여섯 등분된 내측면에는 연지포 연문(蓮池蒲蓮文)을 배치하고, 내면의 바닥에는 파도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압인양각(壓印陽刻)하였다. 외면에는 문양이 없다. 유는 광택이 은은한 담록의 비색인데, 유색이 압인양각된 문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파어(波魚)와 연지(蓮池)풍경에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굽은 낮고 깎음새가 단정하며, 굽안바닥까지 시유하고 여섯 곳에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번조하였다. 이 작품은 연못의 평화로운 풍광을 섬세한 양각 문양으로 처리한 뒤, 물빛같이 고운 청자유를 씌워, 마치 그릇 속에 물고기가 놀고 있는 듯한 신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 湖巖美術館 청자음각 만표문 표형주전자(靑磁陰刻 蔓瓢文 瓢形注子) / 高麗 12世紀 조롱박모양의 작은 뚜껑이 있는 표주박형태의 주전자로, 두 줄의 덩굴로 꼬아 만든 손잡이와 만곡한 주구가 달려 있다. 문양은 동체 전면에 음각선을 사용하여 박넝쿨과 탐스럽게 달린 박 문양을 가득히 베풀었다. 광택이 있고 투명한 짙은 녹색의 유가 두텁게 시유되었으며 전면에 빙렬이 있다. 굽은 낮고 넓으며 다소 내경(內傾)하고 깎음새가 단정한데, 안바닥을 얕게 깎아내고 시유한 뒤, 일곱 곳에 적갈색 흙모래비짐을 받쳐 번조하였다. 뚜껑과 동체, 손잡이, 표면의 문양 까지도 모두가 자연에서 소재를 구한 것으로, 이들이 아름다운 청자유색과 하나로 어우러져 서정성을 짙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음각 연당초·상감 국화절지문 대접 (靑磁陰刻 蓮唐草·象嵌 菊花折枝文 大蝶) / 高麗 12世紀 / 寶物 1032 號 기벽이 사선에 가깝게 벌어진 대접으로, 음각문과 상감문이 함께 시문된 초기 상감청자의 예이다. 내면에는 가는 음각선으로 구연부에 당초문대를 두르고 벽면 가득히 연당초문을 시문하였으며, 외면에는 흑백 상감법으로 매우 간결한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을 등간격으로 네 곳에 시문하였다. 내면에 음각문을 정교하게 시문하고 외면에 상감문을 배치한 예는 매우 드문데, 대개는 이 작품처럼 내면의 문양은 조밀하고 깊이감이 있는 반면, 외면은 여백을 많이 살려서 시문된 문양을 강조하여, 장식상 내외면을 대비시켰다. 광택이 있고 투명한 담록색의 아름다운 유가 고르게 시유 되었으며, 상감시문된 일부에 가는 빙렬이 있다. 굽은 낮고 좁은 편이며, 시유된 바닥의 세 곳에 규석을 받쳐 번조하였다. 이 대접은 상감청자의 초기양상을 보이는 도자사적(陶磁史的) 의미도 중요하지만, 섬세한 음각문, 간결한 상감국화문, 은은한 청자색이 한데 어울려 청순한 분위기를 빚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음각 운룡문 잔받침(靑磁陰刻 雲龍文 盞托) / 高麗 12世紀 윗면의 중심이 둥글게 뚫려 있는 잔받침이다. 문양은 음각으로 잔대의 구연과 전의 가장자리에 각각 뇌문대(雷文帶)를 둘렀고, 전의 윗면에는 네 발을 벌린채 바닥에 엎드린 자세를 하고 있는 세 마리의 용(龍)을 등간격으로 배치한 후, 그 사이사이에 도식적인 운문(雲文)을 배치하였다. 광택이 좋고 투명도가 높은 담록색의 비색유를 매끈하게 시유하였는데, 일부에 유가 뭉쳐 짙은 발색을 보이고 있으며, 전면에 자잘한 빙렬이 퍼져 있다. 굽은 비교적 높고 외반하며 깎음새가 단정하나 약간 일그러져 있다.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번조하였다. 기벽이 얇아 예리하고 정치(精緻)한 느낌을 주며, 고동기(古銅器)에 사용되던 용문(龍文)을 정교하게 베푼 것도 유례가 드물고, 청아한 비색유도 일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음각철채 영락문 합(靑磁陰刻鐵彩 瓔珞文 盒) / 高麗 11世紀 고려자기에서 드물게 보이는 개합(蓋盒)이면서, 음각문 위에 흑색에 가까운 철사(鐵砂)안료로 장식한 희귀한 예이다. 뚜껑에는 자유분방한 음각선으로 새 두마리, 잠자리, 나비를 표현한 후 날개, 몸통, 눈 부분에 철채(鐵彩)장식을 하였다. 합신(盒身)은 안바닥 중앙에 다섯 개의 잎이 달린 꽃을 음각하였고, 겉면에는 음각으로 화문(花文)과 영락(瓔珞)장식을 그린 후 꽃술과 영락에 역시 철채(鐵彩)를 하였다. 유는 광택이 있는 투명한 담록색의 유로, 뚜껑에 빙렬이 약간 있을 뿐이며, 합신과 뚜껑 모두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번조하였다. 기형과 문양이 유례가 드문 귀한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철채상감 삼엽문 매병(靑磁鐵彩象嵌 蔘葉文 梅甁) / 高麗 12世紀 전형적인 고려매병의 형태로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릇 전면에 철채를 가하고, 동체 네 곳에 삼엽초(蔘葉草)와 초문(草文)을 등간격으로 번갈아 백상감시문하여, 배경과 문양소재의 색채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철채매병에 퇴화(堆花) 시문한 예는 있어도 이처럼 백상감한 경우는 드물게 보이는 예이다. 유약은 광택이 있고 투명한 청자유를 얇게 시유하였으며, 빙렬은 없다. 굽은 안굽이며, 바닥에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소위 '고려천목(高麗天目)'에 백상 감문양이 베풀어진 특별한 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철화 조충문 매병(靑磁鐵畵 鳥蟲文 梅甁) / 高麗 11世紀
철화청자는 기형과 문양이 북송(北宋) 자주요(磁州窯)와 닮은 점이 많고, 유약은 산화번조(酸化燔造)되어 갈색인 것이 많으며, 문양은 거친 듯 대담 활달하여 고려자기의 어느 문양보다 활기에 넘쳐 있다. 이 매병은 구연이 나팔모양이고 굴곡이 거의 없어 고려화가 덜된 초기적인 형태를 보인다. 문양은 짙은 흑갈색을 보이는 철사(鐵砂)안료를 사용하여, 먼저 어깨에 한줄의 횡선을 돌려 전체를 두 개의 단으로 공간을 구획하였다. 어깨에는 변형된 국화당초문을 돌리고, 동체 전면에는 당초절지문을 배치한 후, 그 위에 커다란 새 한 마리와 나비 한 쌍, 벌 한 마리를 자유롭게 그려 넣었는데, 철사안료가 두텁게 사용되어 바탕흙과 문양에 요철(凹凸)이 있다. 유는 광택이 있고 투명한 담황색의 유로, 빙렬은 없으며, 굽은 안굽이고 굵은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철화청자 중 파격적인 문양구성과 대담한 붓질이 돋보이는 특이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퇴화 작약문 주전자·승반(靑磁堆花 芍藥文 注子·承盤) / 高麗 11世紀 뚜껑은 작은 원반형이며, 주전자는 몸통이 구형(球形)이고, 승반은 외반된 구연에 내저가 넓고 편평한 형태인데, 몸통이 구형인 주전자는 고려청자에 이례적인 것이다. 문양은 입자가 매우 작은 백토니(白土泥)와 자토니(裏土泥:붉은 흙)를 사용해 붓으로 그린 퇴화(堆花)기법으로 이루어졌다. 뚜껑에는 간략한 작약을 그리고, 주전자의 앞뒤면에는 큼직한 작약절지문을 활달하게 시문한 후 주구와 손잡이 등에도 작약을 그려 장식하였다. 승반은 겉면 세 곳에 등간격으로 간략한 작약꽃을 그려 넣었다. 광택이 은은하고 투명한 회청색의 유를 약간 두껍게 시유하였으나 일부 발색이 고르지 못하며, 주전자 밑둥에만 빙렬이 있다. 주전자와 승반은 적갈색 모래 비짐을 받쳤고, 뚜껑은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번조하였다. 퉁퉁한 몸에 굵직굵직한 주구와 손잡이가 달린 힘찬 기형에 박력있는 붓질로 그린 문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청자투각상감 연화칠보문 베개 (靑磁透刻象嵌 蓮花七寶文 陶枕) / 高麗 14世紀 가운데가 휘어진 장방형의 베개이다. 둘레의 여섯면 모두 투조한 문양을 배치하고 각각의 세부에 흑백의 상감장식을 하였다. 양측면에는 팔엽(八葉)의 화문(花文)을 배치하였고, 네 개의 주면(主面)에는 각각 연화문과 도안화된 칠보문(七寶文)을 대칭되게 투조(透彫)한 후, 연화의 세부를 흑백상감으로 묘사하고 각 면의 가장자리에 백상감된 연주문대를 돌렸다. 광택이 있고 투명한 담록색의 유를 두껍게 시유하였으나 발색이 고르지 못하며, 일부에 빙렬이 있다. 굽은 따로 만들지 않고 측면기벽 한 곳에 규석을 받치고 세워서 번조하였다. 유례가 드문 청자베개로, 각면에 베풀어진 화려한 투각장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湖巖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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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려청자(高麗靑瓷) 11| 우리歷史 이야기
111. 청자양각모란문(靑磁陽刻牡丹文)대접
대접 전체가 여섯 장의 꽃잎으로 된 꽃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器形)은 중국 송대(宋代)의 자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접 안쪽 면을 장식한 양각 무늬와 더불어 도범(陶范)으로 찍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바깥 면에는 돌아가며 여섯 군데에 세로로 홈을 파서 꽃잎이 핀 모양을 나타내었고 안쪽 면에는 활짝 핀 커다란 모란꽃 가지가 풍성하게 양각되었다. 엷은 녹색을 띤 광택이 있는 회청색 비색유(翡色釉)가 약간 두껍게 입혀져 있고, 그릇 안쪽에 빙렬(氷裂)이 조금 있다. 도범을 이용하여 만든 대접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유약과 태토의 질, 세련된 의장(意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이와 같은 질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112. 청자음각연화문병(靑磁陰刻蓮花文甁) 구연(口緣)에서 다소 좁아진긴 목을 지나 동체 하부가 팽배된 이런 기선(器線)을 가진 병을 고려시대 청자병에 자주 나타나는 형태 중의 하나이다. 문양도 대개 비슷한데 어깨부분에는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가 동체 하단(下段)에는 연판문대(蓮瓣文帶)가 있으며, 주문양대에는 연화문(蓮花文)이나 운문(雲文)을 음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부(頸部) 상단에는 고리가 붙어 있어 장경병과 마찬가지로 뚜껑의 유실을 막도록 되어 있다. 다소 경직된 듯한 기형이나 세련되지 않은 문양 등으로 보아 고려청자 전성기 직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초가 많은 비색(翡色) 유약(釉藥)이 전면에 고르게 입혀졌으며, 접지면(接地面)과 굽안바닥 주연(周緣)의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섞인 내화토(耐火土)를 여섯 곳에 받쳐서 구웠다. - 국립중앙박물관 113. 청자투각연화동자문주자(靑磁透刻蓮花童子文注子) 순청자의 전성시기인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투각주자(透刻注子)로 이 시기에는 음각(陰刻), 양각(陽刻), 상형(象形), 노태(露胎) 등 다양한 시문기법이 청자 표면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투각은 성형 후 조각하기 쉽도록 어느 정도 건조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시문기법으로 그 수량이 많지 않다. 주자는 액체를 담는 구형(球形)의 내용기(內容器)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외용기(外容器)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깥 부분 전면에 연당초문(蓮唐草文)과 7명의 동자(童子)를 매우 생동감 있게 투각하였다. 연꽃, 잎, 동자의 세부는 음각세선(陰刻細線)을 하여 사실감을 극대화하였고 연꽃 줄기에 매달린 동자의 표정은 천진난만하게 잘 묘사하였다. 뚜껑 측면과 구연부에는 각각 운문(雲文)과 뇌문(雷文)을 음각하였고, 상면에는 석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동자상을 조각하였으나 현재 동자의 머리 부분은 결실되었다. 태토는 회색으로 정선되었고 유색은 녹색조로 차분하나 일부 암록색을 띠기도 한다. 굽은 접지면의 유를 닦아낸 뒤 9-10곳에 모래비짐을 받쳐 번조하였으며 주자의 크기에 비해 매우 육중하다. - 국립중앙박물관 114. 『중백옥배(中白玉盃)』명청자상감당초문잔(銘靑磁象嵌唐草文盞) 구연이 약간 내만되었으며 끝을 뾰족하게 처리한 형태로 지금까지 높은 굽이 달린 마상배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등 용어에 혼란이 있었는데 '팽이형 잔'으로 부르면 어떨까 싶다. 순청자가 만들어졌던 시기에는 없었던 기형으로, 상감기법이 사용되면서 생겨난 형태의 잔으로 여겨진다. 이 기형은 금속기로는 만들어졌지만 중국청자에는 보이지 않아 고려시대의 독자적인 기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에 뢰문대(雷文帶)와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넣어 종속문양대(從屬文樣帶)로 삼았으며, 동체 중앙에는 역상감당초문을 지문(地文)으로 이조원문(二條圓文)을 네 곳에 모아두고 그 안에 '중(中)' '옥(玉)'명(銘)은 흑상감으로 '백(白)' '배(盃)'명(銘)은 백상감으로 감입되었는데 '중(中)' '옥(玉)'은 후보(後補)이다. 구연에 부분적으로 검은 모래가 붙어있어 거꾸로 세워서 번조(燔造)한 것으로 추정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115. 청자상감모란운학문침(靑磁象嵌牡丹雲鶴文枕)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청자 상감 베개 가운데 가장 유조(釉調)가 아름답고 의장(意匠)이 세련된 예이다. 양쪽 마구리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으며 베개의 면은 양쪽 마구리 모서리에서부터 안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듯 휘어들었다. 또 베개의 네 면 가운데 두 면은 넓고 두 면은 좁아서 베는 데 높고 낮은 차를 두게 하였다. 각 면의 중앙에 주문양대(主文樣帶)를 두고 마구리와 닿은 가장자리에 연판문(蓮瓣文) 띠를 역상감(逆象嵌)으로 둘렀으며, 주문양대와 가장자리 사이의 면에는 당초문을 역상감했다. 주문양대를 보면, 넓은 두 면에는 흑백 상감으로 두 겹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운학을 상감했으며 좁은 두 면에는 흑백 상감 두 겹으로 마름꽃 모양(菱花形)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 무늬를 상감해 넣었다. 유조(釉調)는 태토가 약간 비쳐 보여서 잔잔한 회청색이며, 상감한 무늬 위에 빙렬(氷裂)과 기포(氣泡)가 많이 들어가 수정처럼 은빛으로 빛나는 소위 석(石)얼음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마구리 한쪽 면에 규사눈 받침이 네 군데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가마에서 구워낸 것으로 짐작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116. 청자상감 당초문완(靑磁象嵌 唐草文盌)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159년(고려 의종 13년) 무렵에 죽은 문공(文公)이라는 사람의 묘지(墓誌)와 함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상감청자 중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내면에는 기저(器底) 중앙에 큰 단판(單瓣) 국륜(菊輪)을 감상하고, 그 둘레를 유익한 백상감보상당초(白象嵌寶相唐草)로 채웠으며, 입둘레에는 초문대(草文帶)로 장식하였다. 이 내면 상감이 모두 백상감 단색으로 된 데 비하여 외면에는 구변(口邊)에 백상감초문대가 있을 뿐 그 아래는 5개 소에 국화 한송이씩을 흑백상감하고 있으며, 내외면의 변화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청아한 회청색 비색유(翡色釉)가 매우 고르고 맑게 씌워져 있어서 은은한 광택으로 말미암아 상감효가가 한층 돋보인다. 굽다리 밑에는 3개의 화강성 눈 자국이 남아 있으며, 유색의 조화로 보나 상감기법으로 세련도로 보나 이만큼 틀이 잡히려면 이미 상당한 기간,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려 청자상감의 발달 실태를 잘 전해준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117.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靑磁鐵彩堆花蔘葉紋梅甁) 보물 제340호. 높이 27.5㎝, 입지름 5.0㎝, 밑지름 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반구형(盤口形)의 작은 구연, 당당한 어깨, 밑으로 내려가면서 홀쭉해지는 기법이 전형적인 고려 매병이지만 장식기법이 특이하다. 태토로 성형한 후 산화철 성분의 안료를 전면에 바르고 어깨 부분에 인삼잎무늬[蔘葉紋]를 그린 뒤 문양 부위의 철채를 긁어내고 백니(白泥)를 발라 유약을 입혀 구운 것으로, 기면 전체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었지만 문양은 흰색이다. 문양은 매우 단순하지만 전체의 검은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인상적이며, 기면에 바를 때 사용한 귀얄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운치가 있다. 일종의 철채백상감(鐵彩白象嵌) 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釉)는 매우 얇으며 부분적으로 노태(露胎)된 부분이 있고 용융이 불완전하여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내화토(耐火土)와 모래를 빚어 받쳐 구웠는데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등의 가마터에서 이와 유사한 종류의 파편이 수집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118. 청자죽절문과형주자(靑磁竹節文瓜形注子) / 高麗時代 12세기 전반 / 높이 21.6cm 기품있는 형태와 세련된 문양은 주자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참외형 주자는 우리나라 도자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기있는 형태이다. 이미 신라시대 토기에서도 이러한 승반이 있었을 테인데 승반은 아쉽게도 유실된 것 같다. 매우 능숙한 문양표현이나 아름다운 청록색을 띠는 유색으로 미루어 12세기 전반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全羅南道 康津郡 沙堂里) 가마터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승반(承盤) - 주전자의 밭침처럼 쓰는 그릇인데 그릇 안에 찬물이나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안에 주전자를 넣어서 주전자 내용물이 식지 않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 119. 청자상감 모란국화연화문 과형주자(靑磁象嵌 牧丹菊花蓮花文 瓜形住子) 13세기 강진 청자박물관은 새로 구입한 이 주전자에는 다양한 꽃무늬가 상감되어 있다. 몸체부분에는 참외모양의 12개 골이 져 있는 형태로 높이는 23.6cm로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고려시대인 13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외모양 몸체 등 전체적인 비례가 이상적이고 손잡이와 주구(注口)의 균형도 안정적이다. 또한 이 주전자는 주구모양의 연잎을 말아 붙인 듯한 형태로 양각(陽刻)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고려청자에서는 유일한 예로서 이러한 장식적 요소가 유물 전체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 특히 무늬를 살펴보면 위아래 부분에 연판문(蓮瓣文)을 둘러 몸체 중앙에 넓은 공간을 마련했고 12개 주름 면마다 연꽃, 모란, 국화, 규화(葵花, 해바라기 꽃)의 꽃가지를 새겼는데 가늘고 정교하게 상감하여 상감문양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완성미(完成美)를 갖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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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릇 영혼을 담다, 청자(10)
청자 구룡형 삼족 향로는 입 주위 넓은 테인 전이 달리고 향을 사르는 몸체 위에 구룡(龜龍)이 장식된, 뚜껑이 있는 향로로 총 높이 20.4㎝, 향로 높이 10.2㎝, 입지름 10.2㎝이다. 일찌기 중국 송나라의 서긍(徐兢)이, '고려도경'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극찬한 바 있는 고려 청자 향로 중의 하나이며, 12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를 쳐들고 앉아 있는 구룡은 거북 모양의 몸에 용의 머리를 지닌 신령스런 동물로 조각이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얼굴의 갈기와 목의 비늘 등이 가는 음각선으로 자세히 묘사되었으며, 거북 등무늬 안에 ‘王’자가 새겨져 있다. 거북이 앉아 있는 형태의 뚜껑은 몸통이 뚫려 있어, 밑짝에서 향을 피우면 몸통을 통해 벌린 입으로 향이 피어오르게 되어 있다. 뚜껑의 아랫부분에는 꽃잎무늬와 번개무늬 띠를 둘렀으며, 사자머리가 조각된 다리가 3개 달렸다. 밑짝 테와 몸체에는 돌아가며 구름무늬가 음각되어 있다. 전면에 맑고 깨끗한 비취색의 광택이 흐르는데, 구룡 부분은 좀 더 짙푸른 빛깔을 띄고 있다.
청자 반양각 연당초문 호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항아리로 높이 24.4㎝, 아가리 지름 11.5㎝, 밑지름 11.5㎝의 크기이다. 고려청자의 모양으로는 매우 드물게 몸체가 풍만하고, 구형에 가까운 항아리로 그릇 전면에 반양각 수법으로 새긴 연꽃과 덩굴무늬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구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아래 위로 커다란 연꽃을 3송이씩 배치하고, 그 사이에 화려한 덩굴무늬를 가득 채워 넣었다. 아가리 부분은 가장자리가 밖으로 살짝 말려 있으며, 목이 짧고 볼록한 몸통에 굽이 없는 평평한 바닥면으로 되어 있다. 문양의 윤곽 부분은 반양각(半陽刻)으로 시원스럽게 처리하고, 세부는 가는 음각선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 음각의 일종이면서도 문양의 윤곽 주위를 넓게 파서 문양을 도드라지게 하는 이러한 반양각 수법은 고려 비색청자가 최고 수준에 달하였을 때 완성된 화려한 장식 기교이다. 이 항아리에 시도된 반양각 수법의 문양 역시 굵고 가는 음각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약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빙렬도 거의 없다.
보물 제1029호 청자 상감 모란문 주자는 다른 장식적인 모란문과는 달리 자연스럽고 상당히 회화적인 수법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장식적인 뚜껑과 시원스런 상감모란문, 정교한 양각 문양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드문 예로, 상감청자의 초기적 상황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구형(球形)에 가까운 몸체에 뚜껑과 손잡이,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로 이루어진 주전자로 뚜껑에는 연꽃잎무늬의 장식 위에 연꽃 봉오리무늬의 꼭지가 얹혀져 있고, 측면에는 둥근 고리가 하나 붙어 있다. 주전자의 아가리 둘레에는 연꽃무늬가 둘러져 있는데, 비취색 유약에 덮인 문양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주구는 몸체와 연결된 부분에 백상감의 물결 무늬를 새겨 넣었다. 두 가닥 선을 겹쳐 놓은 듯이 만든 손잡이도 몸체와 어울리게 굽음새가 좋다. 이 주전자의 몸체 앞·뒷면에는 흑백상감으로 하나씩 모란꽃무늬를 넣었는데, 활짝 핀 모란꽃을 중심으로 아래편 양쪽에 작은 꽃봉오리들이 하나씩 달리고, 흑상감으로 줄기와 잎을 표현했다.
청자 상감 운학문 화분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화분으로 크기는 높이 23.0㎝, 아가리 지름 28.2㎝, 밑지름 22.0㎝이다. 거의 이등분된 구성이지만 아래쪽은 약하게 음각선으로 처리하여, 윗면의 구름과 학무늬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유약은 광택이 거의 없고 전면에 빙렬이 퍼져있으며, 부분적으로 황록색을 띠고 있다. 위가 약간 넓은 원통형의 몸체에 밑바닥 중앙에 6㎝ 가량의 구멍을 뚫어 물이 빠질 수 있게 하였다. 화분의 아가리는 도톰하게 밖으로 말아 처리하고, 이와 비슷한 굵기의 줄무늬를 몸통 중간과 아랫 부분에 둘러, 아래, 위 두 부분으로 구역을 나누었다. 위쪽에는 구름과 학 무늬를 번갈아 가며 세 개씩 배치하였는데, 구름은 흰색만으로 표현하고 학은 흑색과 백색을 상감기법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쪽은 연꽃잎이 겹쳐진 모양으로 둘러 있다.
청자 양인각 파어포련문 접시는 밑둥 근처에서 거의 수평으로 퍼졌다가 다시 비스듬히 벌어져 올라간 넓적한 접시로, 안바닥이 평평하며 두께가 얇아 청동제 접시 같이 날렵하게 생겼다. 아가리 끝의 여섯 군데에 조금씩 홈을 내어 여섯 잎의 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고려 초기의 특징적인 꽃무늬 접시에서 퇴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양들은 손으로 하나하나 조각한 듯이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보이고 있다. 접시의 전면에 반투명한 유약이 은은하게 발라져 있다. 이 청자접시와 같은 모양과 문양, 유약색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그릇 내면에는 마치 비단에 무늬를 넣은 듯, 섬세하고 정교한 최상급의 양각문양들이 새겨있다. 편평한 바닥면에는 물 속에서 놀고 있는 3마리의 물고기 무늬가 있고, 측면에는 각각 연꽃과 갈대와 물오리 등 연못의 풍경을 양각하였으나 바깥쪽은 아무런 무늬가 없다. 이종근기자
blog.daum.net/culturelive/15949117 이종근의 한국문화 ..
(2) 청자 : 순수청자와 상감청자
청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8천년의 세계 도자사에서 '청자 중심 시대'라 부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은 남북조 시대부터 초보 단계의 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청자다운 청자는 당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원나라 때까지 약 6세기(8세기 중반 ~ 14세기 중반) 동안 지속되며 우리나라의 '청자 중심 시대'는 통일신라 후기부터 조선 초기(9세기 중반~15세기 중반)까지 지속된다. 13세기경 동남아 일부에서 청자와 유사한 시유施釉 도기를 만든 예는 있지만 본격적인 자기질 청자로 발전하지 못하며 가까운 일본도 청자 문화를 독자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자 문화에 편입된다. 서아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경우 역시 자기질 텅자 문화는 상상할 수도 없었떤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 '청자'라는 말 뒤에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두 나라의 청자 문화가 14, 15세기에 이르러 백자 문화로 전환되고, 다시 백자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본, 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과 서부 유럽으로 널리 퍼져갔다. 시작은 중국이, 그리고 한국이 이를 뒤따랐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 중국과 다른 독자적이며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새로운 청자 문화를 열었던 것이다. 고려의 청자는 세계 도자사에 몇 가지 특별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첫째는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이며, 둘째는 독창적 장식 기법인 상감象嵌 기법이고, 셋째는 전통적인 환원염(還元焰) 기술의 결과인 산화동 안료의 붉은 진사 발색법으로 이 세 가지 새로운 기술은 세계 도자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려 청자는 '인간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순화시키는' 예술 본래의 기능에 한층 다가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신의 손길' 또는 '하늘의 혜택'이라 표현되는 고려 청자에 대한 무한한 찬사와 동경은 오늘날의 현대인뿐만 아니라 청자를 제작하던 당시 고려인은 물론 중국인들까지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고려시대 시호詩豪 이규모는 아름다운 녹색 청자는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는'만큼 어려우며 그 솜씨는 '마치 하늘의 조화를 빌린 것'같다 하여 청자의 완성미를 극찬하고 있다. 송대 <선화봉사고려도경>(1124년)의 저자인 서긍 역시 '색택이 아름다워 고려인 스스로 비색이라 부른다'고 하며, 특히 청자 사자 향로를 가르켜 비색으로 가장 정교하다 하였다. 고려 청자를 일러 이규보가 '하늘의 조화를 빌린 것'이라 한 말이나 중국인들이 '천하제일' '최절정最精絶'이라 칭한 것, 현대인들이 '하늘의 혜택' '신의 손길'이라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공감하는 청자의 완성미를 표현한 것이다.
도기 문화에서 자기 문화로
신석기시대에 초보적인 연질 도기(토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단단하고 쓰기 편하며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 적갈색 연질 도기, 흑색 연질 도기, 회청색 경질 도기 등 다양한 재질과 기능을 갖는 도기류들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도기들은 저장용이나 조리용 또는 허드레 그릇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주 기능적이고 제작도 간편한 것이다. 그러나 표면이 거칠고 무엇보다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음식을 담아 먹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유리질 유약을 씌우지 않은 도기 그릇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들어도 비위생적이며 거칠고 불편하기 마련이다. 물론 삼국시대 후기부터 저화도 연유 도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통일신라시대 후기가 되면 고화도 회유 기술도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연유 도기의 경우 와전과 기와 등은 건축자재나 화장용 골호와 같이 특수한 용도로 한정되고 있으며, 회유 도기 역시 태토와 유약이 정제되지 않아 표면이 흑갈색에 가깝고 거칠며 실용과 아름다움에 있어 많은 결점을 갖고 있다.
표면이 유리처럼 매끄럽고 단단하며 색상도 옥과 같이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9세기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 중국 자기는 4세기경부터 수입되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 오면 그 수입량이 더욱 증가하게 되는데 경주의 안압지 및 황룡사지 익산 미륵사지, 부여 부소산성, 완도 청해진 등 전국 각지의 성터나 절터 등에서 발견된 많은 양의 중국 청자와 백자, 흑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분명 당시 사람들은 수입한 중국산 청자나 백자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으며, 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토를 가공해서 보다 뛰어난 재질인 청자를 만드는 것이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경 자기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당시 세계 도자 문화의 중심이던 중국과의 적극적인 교류 및 기술 개발을 통한 노력의 결과였다. 처음에는 이차 점토를 재료로 하는 청자로 시작되어 곧이어 순수한 백색 고령토로 만든 백자와 흑색 유약을 씌운 흑자로까지 발전하여 도자 문화는 한층 다양화되기 시작하였다. 청자, 백자, 흑자와 같은 고화도 자기의 등장으로 신석기시대부터 발전되어 온 오랜 도기질 단일 생산 체계가 도기질과 자기질 생산 체계로 이원화되어 도자 문화의 폭을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각기법
1. 순청자계보 -- 소문.음각.양각.투각.상형 청자
2. 상감청자계보 -- 상감.상감진사.상감화금 청자
화기법
1. 철화 청자계보 - 철화 청자
2. 철채 청자계보 - 철채, 철채박지, 철채퇴화 청자
3. 퇴화 청자계보 - 퇴화 청자
4. 진사 청자계보 - 진사, 진사채 청자
기타 -- 연리문자鍊理文磁
청자의 전개
청자를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재질이다. 즉 정선된 양질의 태토 및 유약의 상태와 두께, 제작 기술의 정교함, 장식 기법 등 기술적인 요인들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자와 같은 계보가 단일화된 경우 문양을 넣는 시문기법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오히려 편리하다. 따라서 청자의 종류와 명칭은 어떠한 기법으로 문양을 넣었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우선 시문 기법은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조각칼을 사용하여 문양을 새기는 각기법刻技法과 붓으로 문양을 그리는 화기법畵技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각기법은 청자 태토 표면에 조각칼로 문양을 새기는 기법인데, 단일색으로 나타나는 순청자류와 칼로 문양을 음각한 후 흑토와 백토로 메우는 상감 기법을 포함한다. 화기법에는 흑토만으로 문양을 그린 철화 기법과 전면에 흑토를 바르고 문양을 넣는 철채 기법이 있고, 백토 또는 백토와 흑토로 그린 퇴화 기법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산화동을 써서 문양을 붉은색으로 나타내는 진사기법과 청자토와 흑토, 백토를 적당히 혼합하여 자연스러운 문양을 나타내는 연리문 기법이 있다.
음.양각.상감 기법과 같은 각기법은 거의 대부분 고급청자에 사용하는 시문 기법이다. 고급 소문 청자와 희소성이 높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진사 청자와 연리문자鍊理文磁의 경우도 조형적 특징과 기술 등급에서 볼 때 각기법의 청자 계통에 속한다. 그러나 화기법으로 시문된 청자의 질은 각기법보다 한 단계 낮은 비교적 조질粗質이 대부분이다. 철화나 퇴화 기법은 태토가 다소 거칠어도 문양을 그리는데 크게 지장 받지 않으며, 기술이 정교하거나 숙달되지 않더라도 문양효과를 내기 쉬운 편이다. 이러한 시문 기법의 등급에 따라 질의 등급도 함께 정해졌다고 생각되며 당연히 소비 취향도 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자는 처음 소문素文 청자에서 문양을 장식하는 음.양각 청자로 발전하는 순청자시대를 지나 상감기법이 성행하는 소위 상감 청자시대를 맞게 된다. 따라서 청자의 큰 흐름은 전기에 순청자, 후기의 상감 청자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변천 과정을 살피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모든 도자기 종류들 중에서 중심 역할을 하였다. 청자는 기술면에서, 창조적 조형이나 장식 기법의 측면에서 그리고 소비 계층에 있어서도 도자 문화 전반에 걸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다양한 기법들을 응용하면서 고려인들이 갖고 있던 미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발생기(09세기 중~10세기 후): 순청자와 흑자.백자 발생/비색으로 발전/음각 세련/철화 발생
세련기(11세기 전~11세기 중): 순청자 비색 세련/음.양각 성행/철화 성행/퇴화 상감 발생
절정기(11세기 후~12세기 중): 순청자 비색 절정/음.양각 정체/철화 쇠퇴/퇴화 상감 세련
성행기(12세기 후~13세기 중): 순청자, 음.양각 정체 및 쇠퇴/철화.퇴화 쇠퇴/상감 성행
확산기(13세기 후~15세기 중): 순청자, 음.양각 쇠퇴/상감 쇠퇴 및 다량 생산
청자에서 분청으로
우리나라 도자기를 말할 때 흔히 고려시대는 청자, 조선시대는 분청과 백자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고려 왕조가 멸망하면서 청자가 완전히 소멸하고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분청과 백자가 발생하였다는 말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청자는 계속 제작되고 있었다. 조선식 순청자와 상감 청자와 같이 고려의 전통을 계승한 것들이 17세기 중반까지 소량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청자의 한 계통으로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고 다량 생산된 것을 특별히 분청사기라고 부른다. 분청은 대토와 유약, 장식 기법을 포함한 모든 제작 과정이 고려시대의 청자와 대부분 유사하지만 형태와 문양 등 조형 요소들은 청자와 분명히 구분되고 있다. 우선 그릇의 종류나 형태로 볼때 기능적인 일상 생활 용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섬세하고 세련되기보다는 실용적이며 건강한 형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청자와 비교할 때 분청의 제작 기간은 불과 2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미감을 나타내는 상감 분청(상감청자 계통)이 15세기 초기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인화 분청, 박지.조화 분청 등이 성행하는 15세기 중후기를 지나면 분청은 중심에서 벗어나 조질화되면서 16세기 후기에 소멸되고 만다.
순청자
순청자는 문양 장식이 없는 소문청자와 성형한 후 표면에 음각.양각으로 문양을 새기거나 투각한 청자, 그리고 동식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상형 청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문양을 넣을 때 청자의 태토색인 회청색 외에 다른 색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청자색이라는 의미에서 순청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회청색 바탕에 음각이나 양각 대신 흑색과 백색 또는 붉은색으로 문양을 넣은 경우는 철화鐵畵 청자, 퇴화堆花 청자, 상감象嵌 청자, 진사辰砂 청자로 구분하여 부른다. 청자 발생기에는 문양을 새기지 않은 소문이 대부분이나 제작 기술이 세련되고 청자의 가치 기준이 높아지는 10세기 후기부터 장식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간단한 음각 기법으로 연판문과 가는 국화당초문을 새기기 시작하며 이어서 국화.모란.연꽃.버드나무.대나무.매화.갈대.야생화 등 식물과 앵무새.원앙.학.봉황.나비.벌.물고기 등 동물이 중심 문양으로 등장하여 소재가 다양해지는 한편 뇌문대.당초문대.여의두문대.연판문대 등을 주변 문양으로 장식하면서 구성도 복잡해진다.
양각 기법은 문양 주변을 조각칼로 파내어 마치 부조와 같이 양감이 도드라지게 하는 방법과 음각으로 역부조한 도범(틀)에서 찍어 내어 양각으로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뒤의 기법은 향로 등 판상 성형법을 이용한 일부 기종에도 나타나지만 대부분은 완, 접시와 같은 기종에 사용되어 형압 양각 또는 양인각으로 부른다. 양각 기법은 같은 문양의 그릇을 여러 개 만들 때 하나씩 일일이 파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문양이 새겨진 틀로 찍어 내는 형압 양각 기법은 복잡하고 정교한 문양을 짧은 시간 안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급 청자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11세기 후기부터 성행하게 된다. 음각과 양각 기법은 11~12세기에 중심 기법으로 성행하지만 상감 기법이 발전되는 12세기 후기가 되면 줄어들기 시작하여 13세기에는 상감 기법이 중심 기법이 되며 음각.양각 기법은 보조 기법으로 기능이 축소된다. 투각과 상형 기법은 시문 과정이 까다롭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급 청자를 장식할 때 사용된다. 문양의 외곽면을 완전히 파내는 투각 기법은 베개나 장식대, 향로의 뚜껑 등 특수한 용도에만 사용되는데, 건조와 번조 과정에서 파손되기 쉬워서 투각 장식이 필요한 부분에만 선별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상형 기법은 연꽃과 죽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소조한 것으로 이 형상을 응용하여 연적과 주자, 향로 등과 같이 실용적인 기중을 제작한다. 여기에는 해태나 기린, 어룡과 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과 원앙.오리.원숭이.귀인 등 고려 귀족 사회의 취향이 직접 반영된 소재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상감청자
문양을 음각한 후 그 틈에 흑토와 백토를 메워 넣는 상감 기법으로 시문한 청자이다. 기형과 문양 소재 및 구성 등 조형 요소들이 순청자를 계승하여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전기를 순청자시대, 후기를 상감 청자시대라고 부른다. 음각.양각.철화.퇴화 등 여러 장식 기법들 가운데서 상감 기법이 가장 세련된 고급 기법으로 발전한 시기는 12세기 중기로 알려져 있다. 물론 상감 기법의 발생과 발전 과정을 알려 주는 자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조사된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가마터에서 초보적인 상감 기법의 청자와 백자들이 출토되어 이 기법이 청자 발생기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순청자시대의 전반기 즉, 11세기 이전에 초보적인 수준의 상감 기법이 개발되어 소극적인 숙련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청자의 재질과 기술 및 조형이 최고의 수준에 오르는 12세기에 이르러 당시 성행하고 있던 음.양각 기법보다 효과적으로 문양을 표현할 수 있는 상감 기법이 적극 채택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상감 기법은 흑토와 백토 및 청자토 등 각기 성질이 다른 재료를 조화시켜야 하는 수준 높은 기술 조건을 바탕으로 치밀한 조각 기술과 미적 감성까지 갖추어야만 완성될 수 있는 고품위의 기법이다. 이렇게 시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우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기법이 낮은 수준의 청자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기술과 조형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시기에 이르러 고급 청자의 주된 장식 기법으로 채택되고 곧 이어 유행되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상감 기법의 기원은 과거에 주장되었던 것처럼 나전상감이나 은입사 기법의 영향이기보다는 청자의 음각과 철화 및 퇴화 기법을 함께 응용한 결과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는 편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자 상감 기법이 갖는 특수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재료를 상감하였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감을 한 후 유약을 씌우고 높은 온도로 구워 자기질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 있다. 상감 기법은 청자 장식에 획기적인 계기를 가져왔다. 기존 음.양각 문양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장식 효과가 낮았으나, 회청색 바탕에 흑과 백으로 새기는 상감 문양은 색상이 선명하여 장식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가장 성행하던 12~13세기 상감 청자는 문양을 복잡하고 꽉 차게 새기지 않고 많은 여백을 두면서 사실적으로 간결하게 시문한다. 특히 고려 귀족들이 동경했던 시적 이상 세계를 소재로 하여 마치 스케치하듯 화회적으로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대표적인 문양이 운학문과 포류수금문이다. 자연에 대한 서정적인 관심을 통하여 구름과 학을 넓은 공간에 여유있게 배치한 것이나 버드나무와 물풀, 물오리 등을 적당한 비례로 연결시켜 간결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에서 고려 사회의 미적 취향을 우리도 느껴볼 수 있다.
청자자료1 - 청자室
청자자료2 - 기증문화재室
12세기 전반 고려는 그간의 문치 위주의 정치에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문종(1047~1082 재위)과 예종(1106~1122 재위) 치세 하에 문신 정치가 최대 전성기를 누리기는 하지만 외척의 득세와 서경천도설의 대두, 무신들의 불만 고조 등 안으로는 여러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강진과 부안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된 고려청자는 더욱 고려적인 특성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중 비색으로 일컬어지는 유약은 그야말로 세계 도자사상 홀로 우뚝 선 것이다. 화사하진 않지만 은은한 광택은 범접하기 어려우며 색상이 맑고 투명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이다. 또한 녹색과 청색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귀티가 있어서 고려 귀족들의 품격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장경병이란 목이 긴 병을 말한다. 이 병처럼 목이 길고 가늘며 하반부가 우아한 원형으로 이루어진 것은 비록 중국에 그 기형의 원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고려인의 미적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청자 음각초화문 표주박형 주전자 - 조롱박을 본떠 만들고 다시 몸통에 세로로 여섯 줄의 골을 넣어 조롱박과 참외의 특징을 결합시킨 형태이다. 각각의 모티프는 북송대의 청자와 백자에서 볼 수 있으며 고려에서도 11세기경부터 많이 제작되는데 이처럼 세련되게 결합시킨 예는 고려 청자에서만 발견된다. 몸통은 밑이 넓어 풍부한 양감을 느끼게 하며 여기에 주구가 단력적인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 있어 시원스럽고도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인다. 손잡이 역시 여유로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조롱박의 잘록한 목 부분에 살짝 기대어 붙은 모습이 이 주전자의 공간 구성이 얼마나 각별하고 합리적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뚜껑 또한 열매의 꼭지 형태를 형상화시켜 전체적인 일체감을 꾀하였다. 참외의 골을 본떠 분할한 각 면에는 모란 등의 초화문이 음각되어 있고 뚜껑의 외면에도 구름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데 문양의 외곽선을 넓게 파내어 마치 문양에 양각과 같이 입체감을 내고 그 위에 다시 세부를 섬세한 음각으로 묘사하여 드러내지 않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빙렬이 거의 없는 반투명의 비색 청자 유약이며 굽에서 내화토를 받쳤다.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덕원미술관)
고려 청자 매병의 용도는 술이나 곡물과 같은 음식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따라서 뚜껑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아 있는 고려 청자 매병 중 뚜껑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이 매병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완을 엎어 놓은 듯한 형태의 뚜껑은 측면 세 군데에 연엽문을 음각하였고 상부에는 삼각형 모양의 초문을 베풀었다. 몸체는 우아한 S자 곡선으로 어깨에서 굽까지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12세기 매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느 한 구석 빈틈없는 이와 같이 완벽한 조형미는 고려 귀족들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문양은 네 군데에 걸쳐 연화절지문을 베풀고 이를 에워싼 구름 문양을 역시 네 곳에 배치하였다. 굽 부분에는 뇌문을 음각하였다. 유약은 반투명에 빙렬이 있는 균열유로 일부 수리된 부분과 색상이 맞지는 않으나 전체적으로 비색에 가깝다. 굽 바닥에 내화토받침 흔적이 있다.
청자 음각칠보화문 항아리 (개인)
작고 소담스런 항아리로 구연부가 직립하고 몸통은 둥근 원을 약간 눌러 놓은 듯한 모습이다. 고려 전기 항아리의 기형을 보여 주는 몇 안 되는 자료 중의 하나다. 특히 이 항아리에서는 다른 청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 구성이 주목되는데, 두 줄 음각선으로 커다란 원문(圓文)을 연속해서 기면 전체에 3단으로 시문하여 연환문(連環文)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연환문은 대개 자손만대나 장생불사 등을 상징하는 길상문으로 사용되었다. 문양안에는 각각 아홉개의 화문이 음각되어 최대 양수인 구(九)가 갖는 길상 의미가 연환문과 어우러져 배가되고 있다. 원과 원이 겹치는 부분에는 간략한 당초문을 역시 음각하였다. 유색은 아직 비색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은은하고 광택이 있어 11세기 후반 청자의 격조를 느끼게 한다. 유약이 전면에 시유되었으며 굽 바닥에는 유약을 긁어 내고 내화토받침을 여섯 군데 받쳤다.
청자 음각초화문 잔.탁
고려 청자에서 비색 유약과 상감 기법 이외에 그 독특한 특징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뛰어난 성형과 조각 기술이다. 당시 음다 풍습에 힘입어 청자 잔과 탁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성형이 까다롭고 조각이 복잡하여 그리 쉽게 제작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친 잔재주를 배격하고 자칫 복잡하고 번잡스러울 수 있는 기형과 장식을 청아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12세기 전반 고려 장인들의 멋과 솜씨로 생각된다. 이 잔과 탁은 여덟 잎의 꽃 모양 잔대 위에 같은 8판 봉오리 형태의 잔이 얹혀 있는 모습으로 상하 각 부분의 비례가 정숙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먼저 잔에는 국화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초화문이 절지 형태로 음각되어 있다. 잔보다 지름이 훨씬 큰 탁의 잔대 한가운데는 국화문이 음각되어 있고 그 테두리에는 양각의 연판문이 뚜렷하게 조각되었다. 탁의 테두리에는 8면의 두 개씩 초문이 음각되었는데 테두리와 잔대 사이의 연못과 같은 공간에는 파도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조각되어 한층 그 운치를 더 해 준다.
청자 양각퇴화연판문
일반적으로 청자를 분류하는 첫번째 기중능 어떠한 시문기법으로 문양을 넣었는가에 따르는데, 두 가지 기법이 혼용되었을 경우에는 중심 문양에 사용된 기법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이 발의 경우 중심 문양은 양각(정확하게 반양각)으로 새기고 보조 문양은 퇴화 기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양각 청자로 분류해야 기준에 맞게 된다. 입이 눈에 띄게 크고 넓게 외반되었으며 굽까지 이르는 측면서는 직선화되어 비교적 양감이 줄어들었는데 저부(底部)에서 급하게 좁아졌다가 굽에 이르는 형태이다. 굽은 조금 높으면서 직선이어서 단정해 보이며 접지면이 넓고 그릇의 안바닥도 낮게 깎여 있다. 그릇 안쪽 면은 아무 문양이 없는 소문이고 측면에 넓게 이중 연판문을 반양각하고 가는 음각선으로 잎맥까지 정교하게 묘사하였다. 잎의 끝단 사이에는 마치 꽃술과 같은 장식을 백퇴점으로 찍은 후 음각선으로 연결시켜서 낮고 잔잔하게 조각된 연판문과 작고 여리게 보이는 백퇴점이 조화되어 장식이 절제된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유태는 최고 수준으로 정선되었다. 유층이 두꺼우며 미세한 기포가 있는 담록을 띤 회청색으로 다소 굵은 수지상 빙렬이 있다. 굽에도 일정하게 시유되어 있으며 비교적 작은 규석을 세 개 받쳤다.
청자 죽순형 주전자
이 주전자는 물레를 이용하여 만든 회전체이면서 동시에 죽순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상형물로 공예의 실용성과 조형성을 두루 갖춘 예이다. 알찬 축순형의 몸통에 음.양각 기법으로 죽엽의 세부를 묘사하였는데 잎의 끝 부분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벌어지게 하거나 올려 붙이는 등의 변화를 주어 규칙적인 죽엽의 배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단조로움을 해결하였고 아래에 3단으로 대마디를 받쳐 전체 기형에 안정감을 주었다. 또한 대나무 가지를 형상화한 주구와 손잡이, 원추형으로 만들어 죽순의 일부가 되도록 고안한 뚜껑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조형의 일체감을 꾀하면서도 기능적으로도 손색이 없게 각 부분을 조화시킨 고려 청자 장인의 재치가 돋보이고 있다. 밝은 회청색을 띠는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으며 굽과 뚜껑 내면의 일부를 제외한 전면에 푸른색이 도는 투명유를 정갈하게 시유하였다. 굽은 안쪽으로만 낮게 깍아 내고 굽과 굽의 안바닥에 걸친 다섯 곳에 내화토받침을 받쳤다.
청자 양각모란당초문 퇴주기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12세기 전반 인종(1123~1146)과 의종(1147~1170) 연간의 고려는 정치.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노정되어 있어 변혁의 시기를 눈앞에 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왕실과 문신 귀족들의 풍류와 멋은 연회에서 남은 술을 버리는 그릇인 퇴주기조차도 비색 청자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이 퇴주기는 상하로 분리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상부는 대접이고 하부는 항아리의 형태를 하고 있어 아마도 애초에는 둘러 나누어 형헝한 후 접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접 내면과 항아리 외면에는 모란당초문을 능숙한 솜씨로 조각하였는데 특히 여기 보이는 모란당초문은 고려 청자의 최대 산지였던 <강진 사당리>에서 출토된 청자 기와에 시문된 문양과도 유사하다. 꽃과 가지의 윤곽은 양각으로 잎맥은 음각으로 표현하였는데 가는 대나무 조각칼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교하게 마무리되었다. 청색과 녹색 톤이 균형을 이룬 비색 유약이 전면에 시유되었고 바닥에는 규석받침 흔적이 남아 있어 12세기 전반 비색 청자의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청자 음각반룡문 주전자(개인)
고려 청자의 조형 디자인 방법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미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기형이나 다른 나라의 기형을 모방하는 경우와 이를 변형시키거나 새롭게 창작하는 경우이다. 이 중에서 금속기와 같은 청동기를 모방한 경우는 방형 향로나 병, 합 같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청동기 모방 자기 중에 드물게 주전자도 있는데 이 작품이 그 한 예이다. 몸통은 전형적인 청동기 호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구연부와 몸체 중앙, 하반부 중앙에 뇌문이 시문되어 있다. 특히 하반부의 뇌문은 돌출된 형태로 조각되어서 청동기와 같은 분위기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길게 뻗은 주구와 직각으로 구부러진 손잡이,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표현된 반룡 역시 청동기 형태와 문양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비교적 잘 장제된 유약이 시유되었으며 유색은 비색에 미치지 못하지만 진한 청색 톤을 띠고 있다. 굽에는 내화토받침 흔적이 남아 있으며 대략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청자 양각연지동자문 완 (국립중앙박물관)
높이가 낮고 넓게 벌어지는 형태로 11~12세기경에 제작된 고급 순청자의 전형적인 완이다. 안바닥에 깊은 원각이 있으며 굽의 단면은 V자형으로 비교적 직선에 가깝게 예리하게 깎았고 굽 안바닥은 낮고 평편하다. 구연부 여섯 군데를 윤화형으로 만들고 바깥면에는 음각선을, 안면에는 도범에서 찍어 낸 양각선을 사용하여 윤화형을 조직적으로 나타내었다. 완의 안바닥과 측면 문양은 도범에 의한 양인각 문양이다. 측면 아래에서부터 잔잔한 파도문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을 새기고 연꽃과 갈대, 물풀이 무성하게 있는 한가로운 연지를 배경으로 여섯 동자가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장면을 부조로 표현하였다. 연잎에 매달려 희롱하는 동자들이나 작은 언덕에 앉거나 수영에 열중하고 있는 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는 원앙새의 표정과 한가로운 연못의 서정적 풍경에서 고려인들이 꿈꾸던 이상세계의 한 장면을 읽어 낼 수 있다. 바깥면에서 도범에서 찍어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누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유태는 회청색을 띠고 유층에 미세한 기포가 꽉 차 약간 투명도는 낮아져 보이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접지면은 적갈색을 띠고 백색 내화토비짐을 여덟 군데 받쳤다.
청자 양각도철문 삼족향로(국립중앙박물관)
음각 문양이 새겨진 도범(틀)을 이용하여 대접이나 접시 등 음식기의 문양을 찍어 내는 양인각 기법은 고려 청자에서 보편적인 장식 기법이지만 이 향로와 같이 두 쪽으로 이루어진 외형 틀을 이용하여 문양을 찍어 낸 예는 매우 드물다. 이 작품은 중국의 주나라에서부터 전래되어 온 고식 청동 제기의 행태를 본뜬 것인데, 몸통에는 돌대를 돌려 표면을 3단 각각 여섯 개의 칸으로 구획하고 각 칸에는 청동기의 전형적인 문양인 양각 도철문을 넣었다. 문양의 배경은 먼저 뇌문을 얕게 양각하고 상단에는 기봉문을 중단에는 주문양인 도철을 분할하여 배치하였다. 비취 옥색을 띠는 유약을 시유하였으나 반쯤 산화되어 황록색을 내며 유면에는 빙렬이 없다. 향로의 구연 부분에는 고리형의 손잡이를 마주 보게 부착하였으며 아래 세 곳에는 역시 틀을 이용해 찍어 낸 우두형의 다리를 붙였는데 세 발의 접지면은 유약이 벗겨져 있다. 1980~8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전남 강진군 용운리 10호 가마터의 발굴 조사에서 이 향로와 똑같은 형태의 도철문 향로가 발견된 바 있어 그 제작 지역과 시기, 기법 등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도철문 [饕餮文]
중국 은(殷) ·주(周) 시대의 청동기에 사용된 괴수면(怪獸面) 무늬. 눈은 불거지고 입은 크고 무섭게 벌어졌으며 뿔이 있는 등 괴수의 얼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무늬이며, 은 ·주 시대의 청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훼룡문(迂龍文) ·기봉문(夔鳳文)은 도철문에서 파생된 것이다. 무늬가 번개무늬[雷文]화또는 지문화(地文化)하여 눈만 남은 것도 있고 괴수의 몸통부분이 띠 모양으로 된 것, 전체가 삼각형으로 된 것, 그릇의 불룩한 형태를 따라 입체적으로 조각된 것도 있다. 원래 이 괴수는 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짐승이나, 그것을 거꾸로 이용하여 악령을 퇴치할 목적으로 청동기에 시문(施文)한 것으로 보인다. 도철문의 가면과 같은 모양은 제사와 관련된 가면무용의 정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모자원숭이형연적(간송미술관)
모자 원숭이의 모티프는 남송의 선종화가인 목계(牧谿)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불교의 정신을 담은 소재로 만물이 존재하는 불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가슴에 새끼를 껴안고 있는 다정한 어미 원숭이의 모습이 다소 형식적으로 표현된 점도 없지 않지만 그 특징이 잘 살아나 있으며 치기 어린 몸짓으로 어미에게 매달리고 있는 자그마한 새끼 원숭이는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흙을 부드럽게 빚어 소조한 다음 두 원숭이의 얼굴과 손, 발가락을 섬세하게 조각하여 세부를 표현하였으며 어미의 눈과 코, 새끼의 눈에는 검은색의 철화점을 찍었다. 12세기에 성행한 다양한 종류의 상형 청자 문방구류 가운데 드물게 원숭이르 소재로한 연적으로 어미의 머리 위에는 직경 1센티 정도의 원형 입수구가, 이보다 낮은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직경 0.3센티 크기의 출수구가 각각 뚫려 있다. 연적의 전면에는 빙렬이 없는 담청색의 반투명 유약을 시유하였으며 어미의 발 두 곳과 엉덩이 등에 백색 내화토를 받쳐 정성스럽게 구웠다.
청자 투각연당초문 주전자 및 승반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태토와 같이 건조와 번조 수축율이 평균 20% 이상 되는 경우, 투각 기법을 응용한 이중기 제작은 성공하기 어려운 모험적인 기법이다. 그러나 이 주전자는 투각한 외벽이 액체를 담는 내벽과 잘 접합되어 있고 투각 선이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여 완성도가 높은 유일한 예이다. 외벽에는 연당초문을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평면 부조로 조각하고 세부 묘사는 가는 음각선으로 새겼다. 윗부분에는 큰 연꽃과 연잎을, 아래에는 연가지에 매달려 희롱하는 동자를 새기고 배경은 투각으로 처리하였다. 뚜껑에는 간략한 비운문과 뇌문을 음각하고 윗면에는 골양불 좌상을 소조하여 붙였는데, 머리가 떨어졌다. 유태는 치밀하게 정제된 담록을 띠는 회청색으로 시유가 두꺼운 부분은 진한 녹색을 띠며 유층에는 기포가 꽉 차고 균열이 거의 없다. 접지면에 사질 내화토비짐을 열 군데 받쳤다. 승반은 아래가 넓고 구연은 직립하며 굽이 높고 외반되어 있어서 전형적인 주전자의 승반 형태이다. 구연에 백퇴점을 정연하게 찍고 외면에는 도범에서 찍어 낸 국화입을 3단으로 첩회 장식하고 가는 음각으로 잎맥을 새겼다.
방병선 저서
청자 양각연당초문 상감시명 표주박형병
표주박 모양을 본뜬 표형병瓢形甁은 중국 당唐대에 출현해서 고려시대에 금속기와 청자로 상당량이 제작되어 고려인들이 애호하던 기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표형병이면서도 병의 앞뒤로 복산 능화형으로 음각하고 그 안에 흑상감으로 칠언절구의 한시를 각 두 구씩 구양순 서체로 써 놓았다. 벽옥 같은 술병에 금화를 새기니 / 호사로운 집안에서 응당 이병을 좋아했을 것이다 / 잠시 賀知章이 흥에 겨워 / 늦은봄 이 술병을 안고 경호에 나가 실컷 취했음을 안다
청자 양각연당초문 은구발
자기의 구연부를 얇은 금판이나 은판으로 덧붙이는 것은 중국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고려 청자에서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상으로는 광종 연간인 958년에 세워진 원종대사 탑 비문에 '금구자발'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이것이 고려 청자인지 수입된 중국 자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발은 입술 테두리에 은판을 덧붙였는데 약간 박락된 흔적이 있으나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12세기 중반 (초기) -- 상감문양의 절제美
13세기 (후기) -- 다량의 상감문을 베품
청자 음각상감 모란복사문 매병
어깨 윗면에 작고 화려한 조각보 장식이 상감 기법으로 새겨져 있는 매병인데 이러한 문양은 뚜껑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파손을 방지하고 또 화려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조각보를 놓았던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입은 끝단이 벌어진 작은 광구형으로 편평
한 어깨부분에 낮게 붙어 있다. 몸통형의 양감은 풍만하지만 곡선이 완만하고 팽창감이 줄었다. 문양은 입과 어깨에는 상감법으로 몸통과 밑부분은 음각 기법으로 하였다. 특히 어깨의 상감 문양은 실제 사용하는 사각 보의 형태를 묘사하여 흥미로운데, 목을 중심으로 백토 상감의 국화 인화문과 흑토상감의 당초문을 넣고 그 외곽에 술 장식과 연주문을 그렸다. 몸통의 네 면에는 비슷한 크기와 형태로 사실적인 모란절지문을 가는 음각선으로 새기고 아랫부분 양면에는 윤곽이 삼각형인 산과 같은 구획을 정해서 작은 운문들을 밀집시켜 룩은 음각선으로 시문하고 그 아래 뇌문대를 둘렀다.
청자 상감양각모란문 유개발
마치 발 위에 접시를 포개 놓은 듯한 기형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청동기 합에서도 동일한 기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합과는 달라 불교의식 중 공양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접시 같은 뚜껑의 외면에는 턱으로 구분된 한가운데에 모란절지문이, 바깥 둘레에는 모란당초문이 상감과 양각으로 시문되었으며 내면에도 이중 원문 안에 쌍봉문이 상감되어 있어서 뚜껑을 뒤집었을 경우 접시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발형의 몸통은 여섯 면으로 구획되었고 입술은 외반되었다. 한 면에 모란절지문이 하나씩 도식적으로 상감되었고 그 사이사이에 상대적으로 정교한 모란당초문이 양각되었다. 내면에는 측벽에 초화문이 음각되었고 안바닥 원각 안에는 뚜껑과 마찬가지로 쌍봉문이 상감되었는데 쌍봉문 역시 금속기 문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청자 상감 동자문 잔 (호림박물관)
대개 동자는 다산을 상징하지만 연꽃을 들고 있어 불교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 잔에 차를 담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국화와 연꽃 사이로 동자가 뛰어노니 마치 선경을 들여다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질만하다.
청자 상감유로수금문 완
크기가 작은 완으로 외면은 소문이고 내면에만 상감문이 있다는 점과 흑토 상감을 중심으로 상감되었다는 점에서 상감 기법의 초기 상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알려진 예이다. 상감 청자 전성기가 되면 백토 상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완은 전성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내연 구연 바로 밑과 좁은 안바닥에 흑토로 뇌문대와 작은 파도문을 두고 넓은 측면에는 충분한 여백을 두면서 세 곳에 괴속과 버들, 갈대, 물풀을 새겨넣었다. 여기에 흰 물새들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는데 잔잔한 물결까지 흑토 상감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자연의 관찰을 통해 얻어진 소재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굽의 안바닥에는 음각으로 쓴 '돈진敦眞'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있다.
청자 상감모란당초문 바리때 (호암미술관)
역상감이란 문양을 음각하고 그 자리를 상감토로 메워 색을 내는 일반적인 상감법과 달리 문양 이외의 여백 부분을 긁어 내고 백상감토나 흑상감토로 메우는 기법으로 문양의 배경화면을 백색이나 흑색으로 두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바리때 안쪽 네 곳에 국화절지문을 백상감하였고 외면에는 보상화에 가까운 모란당초문을 역상감하였는데 배경으로 백상감을 시문하였다.
청자 상감여지문 발
여지는 그 열매의 속성상 다산의 의미를 가진다. 여지는 총명함을 뜻하는 길상무늬로도 사용되었다.
청자 상감운봉문 화형발 - 국립중앙박물관 ---!!
고려 장인들에게 온갖 기교로 상감 솜씨를 뽐내 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작품이 이 발이다. 13세기 후반 원나라의 직.간적접인 영향이 고려 사회에 미치면서 고려 장인들은 이전과는 달리 화사하고 장식적인 청자 제작에도 힘을 기울이는데 이 발은 당시의 그런 일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 기형은 구연부에 여섯 홈을 파서 6화형을 이루고 있고 굽에서 구연부에 이르는 외측선은 완반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내면에 문양은 구연부의 당초문대 아래에 현란한 꼬리를 달리며 비상하는 봉황과 구름을 백상감하였고 바닥에는 이중 여의두문 안에 쌍봉문을 상감하였다. 그릇 외면 역시 여러 단의 종속 문양대를 두어 당시 유행샜던 문양들을 총망라시켰다. 구연부 당초문대 아래 도식화된 우점 형태의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학을 상감하였고 그 아래 주제문으로 쌍봉문과 화당초문을 상감하였다. 제일 하단에는 연판문을 상감하여 화려한 문양 배치를 마감하였다.
청자 상감용문 완 (일본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 14세기 작품
14세기로 접어들면 이제 고려 청자는 서서히 고려 말기의 제반 사항들을 반영하게 된다. 양식적으로는 원 양식의 유입이 보다 과속화되면서도 고려의 독자적인 기형과 문양이 새로 등장하며 또한 제작 환경은 계속되는 왜구들의 출현으로 강진이나 부안 같은 최대 생산지에서의 작업이 점차 난항을 걷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기형과 문양 유색에서 14세기의 여러 가지 상황을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굽에서 구연부까지 완반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구연부에서 외반된 기형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완의 형태로 내면의 뇌문 종속문대 아래 상감된 두마리의 용은 당시 원나라의 청화백자나 청자에 자주 나타나는 용 문양과 흡수하다. S자로 심하게 굴곡된 몸통과 네 개의 발톱, 여의주를 둘러싼 기다란 서기瑞氣, 비늘 모양의 등 가시와 길게 내민 혀, 간략화된 얼굴은 당시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을 왕실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다만 신속한 제작에 따른 정제의 미비와 성분 변화가 이루어진 태토와 유약때문인지 이전의 12세기 청자에서 보이는 비색의 기운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완의 변형
12세기 - 45각도의 직선형 완
13세기 - 약간 완만한 곡선을 나타내는 완
14세기 -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다 구연부에서 외반된 형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호암미술관)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이에 편승해 등장한 신흥 귀족 계급들은 지나칠 정도로 장식적으로 화사한 치장에 집착하였다. 청자에서도 이전에 보이던 여백의 미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은은한 색조의 아름다움보다는 당시의 고려 불화가 그러하듯이 화려한 장식미가 제작 과정에서 우선시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해 주는 이 작품은 합과 탁, 수저가 한조를 이루는 보기 드문 예이다. 먼저 대부분 합의 외면에만 시문하는 관례를 깨고 내외면을 모두 상감하여 굽 바닥을 제외하곤 여백을 찾아볼 수 없다. 합의 뚜껑에는 원숭이로 추정되는 꼭지가 달려 있고 연판문, 여의두문, 원주문을 상하 종속문으로 두고 그 안에 용봉문을 구름 사이사이에 백상감하였다. 합 몸체에는 뇌문과 운봉문 연판문을 종속문으로 두고 이중 원문 안에 주제문을 모란절지를 시문하고 여백에는 새로 등장한 화당초문을 백상감하였다. 탁 역시 이단 굽다리에 연판문과 뇌문을 종숙문으로 두고 용봉문을 상감하였다. 함과 뚜껑의 내면, 탁의 이면에도 화당초, 모란절지, 용봉문이 상감되어 당시 유행하던 상감 문양들이 총망라되어 정교하게 시문되었다.
* 13세기 후반부터 청자의 비색이 혼탁해지고 문양이 지나치게 호화로워짐
원의 간섭하의 시대적인 상황 반영
청자 상감국화모란문 장경병
무신란을 거친 고려 귀족들이 연회에서 거나하게 취해 술을 권하던 술주전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겠지만 이 작품처럼 목이 길고 가는 다각형의 병도 운치를 더하기 위해 빠지지 않고 사용되었을 것 같다. 이 병은 도도하게 치솟은 목과 당당한 어깨선의 둥근 몸통부를 별도로 성형하여 접합한 후 12면으로 모깍이를 한 것으로 그 위풍당당함이 시원시원하다. 목이 길고 모깍이를 한 탓에 건조와 번조 과정에서 한쪽으로 약간 기울고 목이 시계반대 방향으로 틀어져 있는데 이는 성형시 몸통과 목의 태토 입자들의 운동 방향이 달랐던 대에 기인한다. 각 면에는 국화 한 송이와 모란 두 송이씩을 절지 형태로 교대로 상감하였고 그 상하 종속문으로는 연판문과 뇌문을 백상감하였다. 목 부분에도 백상감으로 여의두문으로 추정되는 작은 문양을 상감하였다. 원래는 뚜껑이 있어 목 끝에 작은 고리에 비단 노끈이나 실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가는 빙렬에 녹색 톤이 진한 반투명유가 전면에 걸쳐 시유되었다.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형병
참외형병의 표식적 유물로 평가받는 '청자소문과형병'에 비하여 어깨가 팽창되어 윗면이 넓고 편평하며 아래로 거의 직선으로 내려가다 반전하면서 넓게 벌어진 하부에 이른다. 따라서 몸통은 긴 역삼각형을 이루고 하부 역시 삼각형 형태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완만하면서도 긴장감이 있는 둥근 몸통이 역삼각형으로 과장되는 현상은 매병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 후기 병과 매병 - 어깨 부분이 과장되게 팽창됨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고려시대 매병은 장식도 장식이려니와 여러 가지 곡식이나 술 등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 용기로도 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연부에 홈을 만들어 끈으로 묶도록 조형상으로 배려한 작품이나 뚜껑이 동반 출토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뚜껑에 두 군데 구멍을 뚫어 몸통의 구연부와 끈으로 연결하도록 한 이 매병은 누가 봐도 저장 용기임을 의심할 수 없다.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호암미술관)
고려 무신 정권이 점차 몽고의 위협을 느끼는 13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청자 매병의 장식에 일부 변화가 발생한다. 기형상으로는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곡선이 허리 부분에서 심한 반동을 일으키며 굽다리까지 넓게 퍼져 이전에 보이던 안정감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문양에서는 회화적인 풍경문 이외에 국화나 모란 문 같은 이전의 문양 소재를 도안화한 형태가 새로운 등장한다.
청자 상감화금 수하원문 편호 (국립중앙박물관)
이 도편은 개성 만월대 왕궁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알수 없으나 일부 금채가 남아 있고 연판문과 연주문을 종숙문으로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 원숭이는 고려 청장에서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문양으로 원숭이의 한자어인 侯와 제후의 侯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중국에서는 길상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원숭이가 열매를 받는 것은 높은 관직을 제수받는 것을 상징하므로 헌상용으로는 제격인 길상문으로 생각된다.
** 13세기 후반 원숭이 문양이 도입되기 시작함
청자 상감운룡문 편호 (국립중앙박물관) ---!!!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면서 도자양식에서도 새로운 유형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과 같은 편호라는 기형도 고려 청자에서는 이전에 흔치 않던 것으로 원형의 항아리를 앞 뒤에서 두들겨 타원형의 편호로 만든 것이다. 문양 역시 다단계의 종속문이 출현하며 주문양을 능화형 안에 비치하고 새로운 화당초가 나타나는 등 일명 원양식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장식들이 고려 청자에도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그만큼 고려 청자 수요층 한편에 원나라 사람들이 원 양식을 선호하는 고구려의 신흥귀족층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 반건조 상태에서 기형을 두들겨 만든 성형기형 편호가 생기기 시작함
청자 상감유죽문 편호 (호림박물관)
원래 고려 장인들은 한 번 성형한 그릇의 형태를 굳이 변형시키려 하지 않는다. 둥글면 둥근 대로, 어쩔 수 없이 모나면 모난 대로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을 순리처럼 여겼다. 그러나 13세기 후반부터는 새로운 양식이 내.외의 영향하에 나타나는데 이 편호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기형으로 원래는 둥그런 원효를 성형한 후 반건조 상태에서 양쪽을 가볍게 두들겨 타원형으로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원과의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임금의 이름 앞에 忠자가 들어갔던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의 치세기인 14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문양의 다양한 전개와 포치에서 한 폭의 장식화를 보는 듯하여 흥미롭다. 주문양으로는 흑백의 상감 능화형 안에 고려시대 특유의 出자형 버드나무를 배치하였고 그 사이에 흑상감으로 가시형 대나무와 백상감으로 화문을 조각하였다. 종속문으로 연판문과 여의두문을 두었는데 전체적으로 화면 구획 의도가 분명하여 청자 기면을 하나의 캠버스로 여긴 듯하다. 단지 하반부의 큼직한 연판문과 눈과 부리를 동시에 처리한 학의 상감 기법에 보듯이 생략과 과장, 구도의 헤이함이 신속한 제작과 맞물리면서 14세기 상감청자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청자 상감갈대문 용두 주전자 (호암미술관)
고려 청자를 세계 도자 역사상 위대한 자기로 평가하는 이유는 그 빼어난 조각 솜씨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비색 상형 청자에서 보이는 독특한 디자인과 정교한 솜씨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신기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이러한 기술은 상감그대로어어진다. 이 주전자는 용을 모티프로 해서 만든 주전자의 하나로 용의 머리와 목을 주전자의 주구로 형상화하여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다. 특히 여기에 가는 음각으로 용의 비늘을 표현하여 비색 청자에서 보이던 세련된 솜씨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길게 뺀 목은 용두 당간을 연상시키는데 손잡이에서는 아랍풍의 이색적인 향취가 난다.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주전자 및 승반 (국립중앙박물관)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와 동자가 동시에 문양 소재로 사용된 것을 고려 후기의 상감 청자에서 이따금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문양을 백상감 위주로 상감 조각하고 포도 알과 동자의 윤곽선 정도만을 흑상감으로 처리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러한 일상적인 관례를 깨고 과감하게 흑상감 위주로 포도동자문을 상감하였다. 주판알처럼 일렬로 달린 포도알과 기학학적인 두세 개의 고리를 지닌 가지, 다섯손가락을 쫙 펼친 듯한 포도 잎을 흑토로 상감하였는데 주전자의 몸촌뿐 아니라 뚜껑, 숭반에 이르기까지 온통 흑색의 포토 알과 잎이 자리하고 있어서 백상감 위주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잎맥과 어린스러운 자태를 지닌 동자의 몸통만을 백상감으로 남겨 놓았는데 일반적인 상감 기법의 순서가 백상감이 선행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잎과 잎맥에는 흑상감을 번저하고 백상감을 나중에 한 것으로 보인다.
** 고려 중기 풍류 임금인 의종(1147~1170 재위) 에서 명종(1171~1197 재위) 연간에는 고려시대를 양분하는 대사건인 무신란이 벌어지는데 이를 계기로 고려 청자의 수요층과 기호도 일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이에 따라 비색 청자는 서서히 상감 청자로 바뀌어 간다. 청자의 상감기법은 무신이 정권을 잡은 12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최씨 정권이 그 위세를 떨치는 13세기 전반에 이르면 상감 문양의 화려함이 최고조에 오르게 된다.
** 13세기 후반~14세기 - 원의 간섭; 비색이 둔탁해지고 화려한 치장을 문양으로 변함
청자 투각상감구갑문 상자
이 작품은 전라남도 장흥 아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13세기 고려 도자 장인들의 성형과 조각 솜씨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체 기형을 이루는 상자 모양은 당시 유행하던 나전 합들과 유사하다. 뚜껑 모서리 둘레는 경사지게 깍아 내 턱을 지게 하였고 장방형의 뚜껑과 몸통의 직선 기형은 지나친 굴곡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 자기의 특성상 번조 후 이러한 장방형의 직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형시 밖으로 벌어진 타원형의 모서리를 갖는 기형으로 제작해야 한다. 그래야 건조와 번조를 거치면서 안으로 수축이 진행되어 직선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형을 완성하기까지에는 수없이 많은 연구와 노력과 실험이 뒤따랐을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문양은 거북의 등 모양인 구갑문을 몸통과 뚜껑 모두에 촘촘히 투각하였고 그 외부 윤곽선을 백상감으로 처리하였다. 뚜껑의 측면에는 뇌문을 투각하였고 경사진 면에는 연판문과 화문을 투각하였다. 유약은 약간 두껍긴 하지만 투각한 구석구석까지 일정한 두께로 전면 시유되어 있어 시유 솜씨 역시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청자 상감진사모란문 자판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제작시 까다롭고 실패율이 높은 기형 중의 하나로 자판을 들 수 있다. 자판은 건조와 번조시 균일하기 않은 두께와 건조 속도의 차이 등으로 휘거나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고려 청자의 제작 기술이 태토와 유약뿐아니라 성형과 건조에 있어서도 대단한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또한 제작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한 폭의 장식화를 연상시키는 화면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사각으로 화면을 분할하고 중앙 능화형 안에 모란문을 주제문으로 삼아 백상감으로 처리된 꽃 위에 진사로 점을 찍어 선명한 색상 대비 효과를 내고 있다. 그 외부에는 여덟 마리의 학이 구름 사이로 능화형을 향해 날고 있고 테두리의 문양대에는 연화당초문이 조각되어 있다. 유색은 맑고 투명해서 비색에 크게 떨어지지 않으며 뒷면에는 유약을 시유하지 않아 번조시 넓은 접지면을 확보하여 자판이 휘는 것을 방지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자판의 정확한 용도는 불분명하지만 벽면을 장식하거나 책꽂이의 책 문리대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www.kizcosmos.x-y.net/cgi-bin/read.cgi?board=ajan_29&y_number=73&nnew=1
교육·문화 | | 청자의 종류와 감상법 | | 기법과 문양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청자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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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란 푸른색의 자기를 말한다. 회색의 질흙위에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푸른색자기를 청자의 유약에는 실리카(SiO3)와 알루미나(Al2O3)가 주로 포함되었다. 이외에 칼슘, 나트륨등 성분이 미량으로 포함돼 반짝이는 유리질 성분을 이루고 있고 산화철(Fe2O3) 미량이 포함돼 푸른색의 빛을 띄게 된다.
고려청자는 대체로 아무 무늬도 없는 소문, 음각, 양각, 투각등의 무늬가 다양하게 새겨져있다. 12세기 초 상감청자가 나타나면서 주류를 이뤘고 무늬의 소재는 연당초, 모란당초, 운학, 동물의 형태등이 주로 사용됐다. 모양은 표주박모양 주전자, 향로, 탁잔, 꽃병, 매병, 연적, 대접등이 만들어졌다.
청자는 장식무늬로 크게 순청자, 상감청자, 철화청자, 퇴화청자, 진사청자등으로 나뉜다. 순청자는 다른 장식무늬가 들어가지 않는 청자를 말한다. 음각, 투각, 양각기법으로 동, 식물을 그려넣는 청자가 순청자이다. 순청자는 고려초기에 대중화됐고 상감청자가 발달한 12세기 중엽이후에도 꾸준하게 만들어졌다. 절정기였던 12세기 초, 중기의 순청자는 흙이 매우 매끄럽고 유약속에 작은 기포가 가득차있다. 순청자는 반투명하고 유약과 바탕흙이 조화를 이뤄 표면이 비취색이라는 청록색을 띄게 된다.
상감청자는 바탕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표면에 그리고자하는 문양이나 글자를 파낸후 홈에 백토나 자토로 메운다, 표면을 고르게 만든후 청자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상감청자가 탄생하게 된다. 상감기법을 사용하면 회색을 바탕으로 흑배의 문양이 더욱 선명하게 돋보기에 된다.
상감기법에는 정상감과 역상감이 있다. 정상감은 나타내고자 하는 그림이나 문양을 파내는 방법이고 역상감은 문양이외의 여백을 파내고 백토, 자토로 채우는 것이다.
고려시대 청자에 상감문양이 나타난 것은 12세기 초반으로 추정되고 가장 세련된 것은 12세기 중반무렵이다.
흑색의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한 안료를 입힌 철화청자도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철화청자는 바탕흙속에 모래등의 불순물이 섞인 경우가 많아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다. 또한 유약이 얇고 작품전체를 철화기법을 사용한 작품은 드물다.
철화청자는 중국 송, 원나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11세기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문양이나 자기의 형태가 중국 자기의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고려말까지 만들어졌다. 초기철화청자는 조그만 접시 안쪽면에 선을 긋는것부터 시작했고 병종류에 당초무늬를 넣거나 모란무늬, 새무늬, 버들무늬등을 새겼다. 말기의 철화청자는 간단한 당초무늬가 주로 그려졌다.
그릇모양은 매병, 주전자, 기름병등이 많았고 문양은 전통적인 고려청자와는 차이가 났다. 청자표면에 백토와 자토를 묽게 만들어 마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듯 문양을 넣은 것을 퇴화청자라고 부른다.
퇴화청자도 자기 전체에 퇴화기법을 사용한 작품은 많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점을 찍듯 사용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퇴화기법은 부분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한 선은 퇴선문, 점은 퇴점문, 구체저으로 문양을 그린 것은 퇴화문으로 부르고 있다.
구리성분을 이용해 문양을 그려넣은 청자를 진사청자라고 부른다. 진사청자는 구리성분이 들어간 산화동 안료로 문양을 그리거나 채색한후 유약을 발라 구워낸다. 구리성분이 들어간 진사청자가 완성되면 붉은색을 띄는 문양이 나타나게 된다. 안료의 명칭에 따라 동채, 동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자는 기법을 통해 분류하고 무늬모양에 따라 명칭이 만들어진다. 연꽃무늬, 넝쿨식물, 구름과 학의 모습, 모란꽃이 서로 섞여 이름을 만든다. 연당초문, 모란당초문, 운학문등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또 청자명칭의 마지막은 청자의 형태이다. 술을 담아뒀던 술병은 주병이라 부르고 입구가 좁고 몸통이 넓은 매병, 흔히 항아리는 호로 분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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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jon.com/news/articleView.html?idxno=7147
www.dlibrary.go.kr/JavaClient/jsp/wonmun/full2.j..
고려청자 (사진 )| 우리들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박물관 개관 이래 다양한 주재의 기획특별전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와 관람객 간의 시공을 뛰어넘는 소통을 모색해 왔습니다. 이번전시 역시 이와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천하제일비색청자★라는 주제로 색 (色) 형 (形) 문양 (文樣)이 어우러져 빚어진 고려청자의 공예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속에 내재된 "창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조명하고자 기획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구름학무늬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甁) 국보 제68호 고려 13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1부: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
초기청자는 중국 오대십국 (五代十國, 907 ~ 979)시대에 월요(越窯)와 가마축조방식 제작양상 등 매우 유사하여 청자제작기술이 10세기경에 중국에서 유입되었슴을 알 수 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청자는 올리브그린색을 띠며 주력생산 기종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완이었다. 11세기에는 청자 생산지가 확대되면서 전라남도 강진을 중심으로 가마가 운영되었으며 이때부터 고려청자의 색이 서서히 맑은 비취색을 띠게된다.
탑지석 (塔誌石) 고려 1009년 영암 성풍사지 출토 영암도기 박물관 소장
사리합 (舍利盒) 1986년 탑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1층 탑신 사리공에서 나와 당시 초기청자가 사리구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11세기초 고려청자의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물무늬주자 (拈花人物文注子) 중국 당 8 ~ 9세기 입수
글자가 있는 완 (墨書文碗) 표면에 먹으로 언(言) 정(貞) 다(茶) 영(營)세 글자와 구름무늬 꽃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놓은 완이다. 정선된 태도로 만들어졌으며 찻그릇으로 추정된다.
완 1923년 공주시 출토
백자꽃모양접시 (花形蝶匙) 고려 10세기 ~ 11세기 1980년 발견
백자꽃모양접시 (花形蝶匙) 고려 10세기 ~ 11세기 1993년
꽃모양접시 (花形蝶匙) 고려 10세기 ~ 11세기 1993년
도철무늬향로 고려 12세기 1908년 구입
용무늬꽃모양접시 고려 12세기 1910년 구입
연꽃무늬병 (陰刻蓮花文甁) 굽 안바닥 한부분에 효문(孝文)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었다. 네즈미술관소장 정병에도 효구각 (孝久刻) 등이 세겨져 있는데 장인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부안 유천리가마터에서 이와같은 명문 도자편이 출토되어 유천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도철무늬향로 안쪽면에는 의미를 알수없는 글귀와 넘실거리는 퍄도와 배를 타고가는 인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같은 그림은 고려전기에 예제를 정비할 때 중국의 송 (宋)으로부터 유입된 선화박고도(宣和博古圖)와 같은 예서와 예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병 고려 12세기 1909년 구입
받침대 고려 12세기 1916년 입수
세 고려 12세기 1920년 구입
국화모란무늬정병 (象嵌菊花牡丹文淨甁)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1908년 구입
참외모양정병 (形淨甁) 고려 12세기 1915년 구입
넝쿨무늬장고 고려 12세기 1914년 구입
모란넝쿨무늬항아리 고려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나비무늬항아리 고려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여의두연꽃잎무늬병 고려 12세기 1909년 구입
연꽃넝쿨무늬항아리 고려 12세기 1909년 구입
풀꽃무늬주자와 승반 고려 12세기 1930년 구입
국화대나무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4년 구입
매화모란무늬항아리 고려 12 ~ 13세기 1978년 구입
모란무늬항아리 고려 13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가사"가 새겨진 꽃무늬대접 고려 14세기 입수
정릉이 새겨진 연꽃넝쿨무늬대접 고려 14세기 1977년 구입
보원고가 새겨진 연꽃버드나무무늬매병 고려14세기 1912년 구입 보원고는 귀중품을 보관하던 관청이다. 1309년 공민왕이 노국대장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의례를 행하면서 설치하였다, 공민왕사 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국가 왕실과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양온이 새겨진 연꽃버드나무무늬편병 양온서(良溫署)는 고려시대 왕실의 술과 감주를 담당했던 관청이름이다. 14세기 중앙 관청용 청자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전 시기에 비해 문양과 기형 색 등에서 청자품질이 매우 안 좋은 상황을 볼 수 있다.
을유사온서가 새겨진 버드나무무늬매병 충선왕 복위년(1308) 때 이루어진 개편에서 양온서가 사온서로 변경된 후 여러번 반복을 거듭하다가 공민왕 21년(1372)에 사온서로 확정되었다. 전성기 청자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 14세기 청자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다.
물가풍경무늬자판 고려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연봉
고려 12 ~ 13세기 1965년 구입
모란무늬자판 고려 12 ~ 13세기 1911년 구입
매화대나무새무늬자판 고려 12 ~ 13세기 1911년 구입
모란무늬자판 고려 12 ~ 13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전라북도 진안군 수천리 무덤출토품 고려 12 ~ 13세기
강원도 삼척시 삼화동 무덤출토품 고려 12세기 1976년 발견
강원도 삼척시 삼화동 무덤출토품 고려 12세기 1976년 발견
청백자봉황머리모양병 중국 송 12세기 1926년 구입 문공유 묘 출토
국화넝쿨무늬완 고려 12세기 1926년 구입 경기도 개풍에 있는 문공유의 무덤에서 지석과 함께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문공유는 고려시대 문신으로 글에 능했으며 예종,인종,의종,세명의 왕을 섬겼다. 맑고 투명한 청자유에 화려한 역상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상감청자 발생에 관한 편년 설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 완이 기준이 되고 있다.
청백자넝쿨무늬주자 백자국화무늬잔 국화무늬접시 고려 12세기 1925년 구입
받침대 고려 12세기 1916년 구입 인종 장릉 출토
참외모양병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의 장릉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이 병 이외에 옥으로 만든 시책과 청자받침대 청자잔과 뚜껑청자 합 등이 함께 전한다, 맑고 투명한 비취색의 유약은 오늘날 고려청자중 비색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잔 고려 12세기 1916년 구입 인종 장릉 출토
합 고려 12세기 1916년 구입 인종 장릉 출토
모란구름학무늬베개 고려 12 ~ 13세기 1908년 구입
연꽃넝쿨무늬베개 고려 12세기 1912년 구입
용장식향로 어룡장식향로 고려 12세기 1914년 구입
고리무늬의자 고려 12 ~ 13세기 1946년 입수 고려 12세기 1915년 구입
바둑알 고려 1914년 구입
연꽃무늬변기 고려 12세기 1916년 입수
유병.합.항아리 고려 12세기 13세기
상약국이 새겨진 구름용무늬함 고려 12세기 상약국은 왕실 진료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목종대 충선왕까지 존재하였다.뚜껑의 편평한 상면에는 용과 구름이 가득 음각되었으며뚜껑과 몸체가 만나는 부분에는 각각 상약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굽 안바닥 한편에 치우쳐 승 (昇)이라는 글자도 확인된다.
소 말무늬반 고려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은제모란넝쿨무늬거울거리 고려 1909년 구입
거북등무늬화장상자 고려 12세기 1941년 입수 청자로 만들어진 부인용 화장 상자다. 1841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청동제 사각형 거울과 함께 발견되었다. 같은 시대에 나전칠기 화장 상자도 알려져 있어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유사한 형태의 공예품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란넝쿨무늬화장상자 고려 12세기 도쿄국립바물관소장
모란무늬모자합 고려 1913년 구입
구름학무늬매병 고려 12세기 ~ 13세기 1912년 구입
구름학무늬매병 고려 12세기 ~ 13세기 1912년 구입
국화무늬매병 구름학무늬매병 고려 12 ~ 13세기 1910년 구입
잎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6년 구입 철재 청자는 청자 태토로 만든 그릇 전면에 철화 안료를 바르고 청자유를 시유한 것으로 마치 흑유를 입힌 흑자처럼 보인다. 이 같은 철제 상감은 매우 드문 예에 속하는데 그 중 뛰어난 작품이다.
구름학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3년 구입
연꽃넝쿨무늬매병 고려12세기 1909년 구입
국화넝쿨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1년 구입
국화무늬타호 고려 12세기 1915년 구입
三盃詩가 새겨진 년쿨무늬발 고려 12세기 1912년 구입
三盃詩 何達方二盃 天許方四盃 赤足盒笑盃 三盃혼己得 方四笑盃 술 석잔을 마시며 짓는 시 하늘이 허락하거든 넉잔째 술을 마실 수도 있네 석잔의 술은 모두 다마셨지 어떻게 마셨는가? 두잔 째 술은 역시 웃음띠고 넉넉히 마셨지 넉잔째 술을 웃으며 마신다.
국화무늬조롱박모양병 고려 13세기 1908년 구입
조롱박모양주자 참외모양주자 고려 12세기 1014년 구입 고려12세기 1911년 구입
참외모양주자 모란넝쿨주자 모란넝쿨주자
연꽃넝쿨무늬주자 고려 12세기 도쿄국립박물관소장
모란넝쿨무늬주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잇데미츠미술관소장
모란넝쿨무늬타호 고려 12세기 1908년 구입
1.구름용무늬 숟가락 4.모란넝쿨무늬타호 2.모란넝쿨무늬완 5.국화나비무늬접시 3.모란무늬꽃모양잔 6.물가풍경무늬완 7.꽃무늬 대접
2부:고려를 보는 창(窓) 청자
고려청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공예품이었기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시가 새겨진 연꽃넝쿨무늬병 고려 12세기 1911년 구입
細錢金花碧玉甁 豪家應薺喜提甁 沆和賀老承淸寶 抱向春梁醉鏡湖
푸르고 아름다운 병에 금꽃을 아로새겼으니
호사로운 집안에서 이 병을 사랑했을 것이다. 옛날 하지장(賀知章)이 기분좋을 적에 늦은 봄 강호에서 이 병을 안고 심히 취했으리라.
조롱박모양병 고려 12세기 야마토문화관 소장
모란넝쿨무늬벼루 이 벼루의 바닥 안쪽면에는★ 辛丑五月十日造 爲大口前戶正徐取(?)夫 ★ 라는 명문이 백상감되었다. 그 옆으로는 음각기법으로 ★ 淸沙硯壹隻黃何寺★ 가 쓰여있다. 명문의 내용은 1181년으로 추정되는 해에 대구소 호정(戶正)이라는 직책을 지닌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원숭이모양항아리 원숭이모양도장 원숭이모양장신구 고려 12세기 1908년구입 고려12세기 1914년구입 고려12세기 1909년 구입
연꽃넝쿨무늬붓꽂이 고려 12세기 1909년 구입
백자매병 매병 고려12세기 1912년 구입 고려12세기 1910년 구입
연꽃넝쿨무늬매병 당당한 어깨의 유려한 허리곡선이 고려청자 매병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입구는 작고 기품있게 마무리되어 있으며 부드럽고 풍부한 양감이 느껴지는 안정감을 주는 곡선의 미학은 중국 북송 매병의 긴장된 선과 전혀다른 고려 특유의 곡선미를 잘보여준다.
국화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3년 구입
모란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6년 입수
모란넝쿨무늬매병 꽃무늬매병 고려 12세기 1912년 구입 고려 12세기 1908년 구입
연꽃넝쿨무늬정병 고려 12세기 네즈미술관소장 본래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아 공양시에 사용하는 불교용구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정병이 불가에서 뿐만아니라 일반 민가에서도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여러용도로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굽안바닥에는 효구각(孝久刻)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문양을 조각한 사람의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정병 고려 12세기 1906년 구입
연꽃넝쿨봉황무늬대접 청동사리함 고려14세기 1965년 발견 경상남도 밀양시 영원사지 출토
새꽃무늬매병 고려 14세기 1965년 발견
국화무늬팔각접시 국화무늬접시 고려14세기 1965년 발견 경상남도 밀양시 영원사지 출토
글씨가 새겨진 발 고려 12 ~ 13세기 1981년 이홍근 기증 발의 외면 중앙에 癸丑年造上 大聖持鉢이 흑상감되었다. 大聖은 문종의 아들이자 천태종의 시조인 의천을 가리키거나 원효, 의상과 관계된 명칭으로 생각된다.
선무늬발고려 14세기 1910년 입수 강원도 원주시 영천사지 출토
연꽃넝쿨동자무늬합 (보물제 325호)고려 12 ~ 13세기 1959년 송림사 기증 경상북도 칠곡군 송림사 오층석탑 출토1959년 송림사 (松林寺)의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상륜부의 복발 아래층인 오층 옥개석 위에 있었다. 당시 이 합 안에는 향목과 불경의 잔편으로 추정되는 잔편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상감된 문양은 연꽃과 연잎 모자를 쓴 동자가 함께 어우러진 것으로 매우 독특한 예에 속한다.
합고려 12 세기 1933년 구입 고려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소장
사리합 탑지석 사리구고려12세기 1974년 발견 경기도 안성 장명사지 석탑 출토
(地)가 새겨진 접시고려 13세기 후반 1967년 구입
사람모양주자도교의 제례를 주관하는 도사처럼 보이는 인물이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두 손으로 선도를 받쳐든 모습으로 각 부분의 특정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보관 뒤에 주자의 뚜껑이 위치하고 복숭아가 담긴 광주리를 출수구로 만들었다.
기린장식향로고려 12세기 1911년 구입
나한상고려 12세기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불교와 관련된 여러 용구와 경배의 대상을 청자로 만들기도 하였다.
풍경인물무늬편병고려 13세기 1916년 구입
소나무인물학무늬매병고려 12 ~ 13세기 1908년 구입
물가풍경무늬정병 (국보 제66호) 이 작품은 기형과 문양이 국보 92호 (청동물가 풍경무늬정병)이나 보물 344호 (물가풍경무늬정병)과 매우 유사하여 재질은 다르지만 같은 형태의 그릇이 주고받은 상호 영향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다.청자의 상감기법과 금속공예품의 은입사기법은표면을 파내고 그 안에 다른 재질의 물질이 감입하여 장식하는 속성이 같다.청자에서 양각 문양은 정교하게 조각된 것에 비해 상감 문양이 단순하지만청자태토와 배토의 대비로 인해 장식효과가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동물가풍경무늬정병고려 12세기 116년 입수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본래 승려가 지녀할 열여덟가지 물건중 하나였으나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무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이 정병의 아름다운 문양은 이사 (入絲)기법으로 표현되었는데입사기법이란 그릇 표면에 흠을내고 그 안에 은선 (銀線)을 박아 넣는 것이다.
물가풍경무늬정병 보물 (제 344호)고려 12 세기 1911년 구입 앞면에는 물가의 갈대와 그 밑에서 쉬고 있는 기러기 한쌍을뒷면에는 수양버들 아래 쉬고 있는 원앙 한쌍이 양각되어 있다.같은 기종에 유사한 문양이 여러기법으로 장식된 것은공예품 문양 도안을 주관했던 화업의 존재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로 생각된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그것을 먼저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행하라."라고. 나는 그렇게 '되고자 하는 그 무엇(꿈)'을 먼저 쓰고 '해야 할 일(현실)'을 했다. 설령 불가능해 보이고 허무맹랑한 꿈일지언정 그 꿈에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많은 꿈이 이루어졌다.
- 김수영의《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중에서 -
*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무엇이 되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되는 것의 시작입니다. 꿈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도 황당하게 들렸던 그 말이 훗날 현실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라게 됩니다. 도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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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
고려청자 사진과 설명
신어산 새님의 글
2011-09-26 21:29:29 조회(2421)
종 목 | 국보 제60호 | | 명 칭 | 청자사자유개향로(靑磁獅子鈕蓋香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점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 21.2㎝, 지름 16.3㎝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3개의 짐승모양을 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전면에 구름무늬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몸체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를 배치하였다.
뚜껑은 대좌에 앉아있는 사자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사자의 자세는 뚜껑의 왼쪽에 치우쳐 있어 시각적인 변화에서 오는 조형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있는 자세이며,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표현했다. 사자의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모양의 털이 표현되었고, 꼬리는 위로 치켜올려 등에 붙인 모습을 하고 있다.
유약의 색은 엷은 녹청색으로 광택이 은은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몸체에서 피워진 향의 연기가 사자의 몸을 통하여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되어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하여 이 시기 청자향로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사자향로에 대해서는 중국 송나라 사람들도 극찬을 하였던 훌륭한 작품이다. |
| 청자비룡형주자, |
종 목 | 국보 제61호 | | 명 칭 | 청자비룡형주자(靑磁飛龍形注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주전자로 높이 24.4cm, 밑지름 10.3cm이다.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했는데, 이런 물고기모양은 옛날부터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건축물에 많이 장식하였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용의 머리모양이고, 이빨과 지느러미, 꼬리 끝에는 백토(白土)를 발랐다. 얼굴의 털이나 지느러미들을 매우 가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주전자 몸체에는 비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중앙부에는 앞뒤로 커다란 갈퀴모양의 옆지느러미가 묘사되었다. 손잡이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주전자의 몸체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본떠서 만들었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기이하면서도 각 부위를 갖춘 한 마리의 상상의 동물모습을 하고 있다. 비취빛의 유약색과 더불어 지느러미와 꽃무늬에 나타난 세밀한 음각 표현은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주전자는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 중에서도 매우 기발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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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기린유개향로, |
종 목 | 국보 제65호 | | 명 칭 | 청자기린유개향로(靑磁麒麟鈕蓋香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전성우 | | 관 리 자 | 전성우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는 20㎝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이 꿇어 앉아있는 모습을 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윗부분이 넓게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고 짐승모양을 한 3개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다. 몸통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었고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가 배치되었으며, 그 위에 뚜껑을 덮도록 하였다. 뚜껑 한복판에는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기린이 조각되어 있고, 기린이 앉아있는 자리의 옆면에는 번개무늬가 돌아가며 음각되었다. 기린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있으나 부러져 있는 상태이고, 목뒤의 부분은 곱슬곱슬하게 표현하였다. 눈은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점을 찍었다. 구조상 향의 연기는 벌려진 기린의 입을 통하여 뿜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비취색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향로 전체를 품위있게 감싸고 있다.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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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 |
종 목 | 국보 제66호 | | 명 칭 | 청자상감유죽연로원앙문정병(靑磁象嵌柳竹蓮盧鴛鴦文淨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전성우 | | 관 리 자 | 전성우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전기의 청자 정병으로 높이 37.0㎝, 밑지름 8.9㎝의 크기이다. 원래 정병은 불교에서 모든 악을 씻어 버리는 의식에서 사용하던 용기의 하나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방(西方) 양식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물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청아한 담록색 계통의 비취색 유약에 백토(白土) 상감만으로 새겨진 버드나무와 갈대, 연꽃, 원앙새 1쌍을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병 목에는 앞뒤 양면에 모란꽃을 하나씩 상감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8각으로 기품있게 만들어 병 목 위에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 물을 넣는 아가리는 둥근 어깨 한쪽에 아담하게 붙어 있는데, 원래 뚜껑이 있었으나 없어진 상태이다.
대체로 초기의 상감청자는 유약이나 바탕흙이 매우 정선되어 있고, 청아한 비취색 유약이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인데, 이러한 바탕 위에 상감무늬가 곁들여졌던 만큼 한층 더 장식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정병 또한 이러한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로 매우 정제되고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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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상감운학문매병, |
종 목 | 국보 제68호 | | 명 칭 |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전성우 | | 관 리 자 | 전성우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매병(梅甁)은 중국 송(宋)나라 매병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12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고려만의 풍만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려 매병의 양식은 이 작품에서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의 매병의 아가리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리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으며 굽 위로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는데, 흑백상감한 원 안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원 밖에는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새겼다.
학의 진행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도자기 표면이라는 일정한 제약을 넘어 사방으로 공간을 확산시켜 짜여진 구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듯하다. 이같은 표현상의 변화 추구와 함께 문양처리의 능숙함에서 고려 도자기의 우수함과 고려인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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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압형수적, |
종 목 | 국보 제74호 | | 명 칭 | 청자압형수적(靑磁鴨形水滴)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전성우 | | 관 리 자 | 전성우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오리 모양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으로 높이 8㎝, 너비 12.5㎝의 크기이다.
물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으며 연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있다. 오리의 등 가운데 붙어있는 연잎에는 안으로 뚫은 구멍이 있어 물을 넣도록 되어있고,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작은 마개를 꽂아서 덮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 붙어 있는데, 이 부리가 연줄기에 달린 봉오리 끝으로 통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부서져 있어 원형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연적은 오리의 깃털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정교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알맞은 크기와 세련된 조각기법, 그리고 비색(翡色)의 은은함을 통해 고려 귀족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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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소문과형병, |
종 목 | 국보 제94호 | | 명 칭 | 청자소문과형병(靑磁素文瓜形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유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고려 인종(仁宗)의 릉에서 ‘황통(皇統)6년(1146)’이란 연도가 표기된 책과 함께 발견된 화병으로, 높이 22.8㎝, 아가리 지름 8.8㎝, 밑지름 8.8㎝ 크기이다.
참외 모양의 몸체에 꽃을 주둥이로 삼아 표현한 매우 귀족적인 작품으로 긴 목에 치마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받치고 있는 단정하고 세련된 화병이다. 담록색이 감도는 맑은 비색 유약이 얇고 고르게 발라져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 7·8호 가마터를 중심으로 동일한 청자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양식은 다른 고려 고분의 출토품에도 보이며 중국의 자주요와 경덕진 가마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병이 발견된다.
고려 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과 비색의 은은한 유색이 돋보이는 참외모양 화병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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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칠보투각향로, |
종 목 | 국보 제95호 | | 명 칭 | 청자칠보투각향로(靑磁七寶透刻香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점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전기의 청자 향로로, 높이 15.3㎝, 대좌지름 11.2㎝의 크기이며 뚜껑과 몸통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향이 피어올라 퍼지도록 뚫어서 장식한 구형(球刑) 부분과 그 밑에 받침 부분으로 되어 있다.
구형 부분 곳곳의 교차 지점에는 흰 점이 하나씩 장식되어 있다. 몸통은 두 부분으로 윗부분은 둥근 화로 형태인데, 몇 겹의 국화잎으로 싸여있고 다시 커다란 국화잎이 이를 받치고 있다. 아래 부분은 향로 몸체를 받치고 있는 대좌로, 3 마리의 토끼가 등으로 떠받들고 있다. 대좌의 옆면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토끼의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나타냈다. 유약은 회청색으로 은은한 광택이 난다.
이 작품은 상감청자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고려 청자에서는 드물게 다양한 기교를 부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적인 섬세한 장식이 많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잘 잡힌 안정감 있는 뛰어난 청자 향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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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귀형수병, |
종 목 | 국보 제96호 | | 명 칭 | 청자귀형수병(靑磁龜形水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 주전자로, 높이 17㎝, 밑지름 10.3㎝, 굽지름 9.9㎝의 크기이다. 연꽃 위에 앉아있는 거북을 형상화했는데 물을 넣는 수구(水口), 물을 따르는 부리, 몸통,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 모습은 거북이라기보다 오히려 용에 가까우며, 이마 위의 뿔과 수염, 갈기, 눈, 이빨, 비늘 등이 모두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게 숙련된 솜씨로 만들어졌다. 두 눈은 검은색 안료를 써서 점을 찍었으며, 아래와 위의 이빨은 가지런하게 표현되어 있다. 목과 앞 가슴의 비늘은 음각했으며, 발톱은 실감나도록 양각해 놓았다.
등에는 거북등 모양을 새겨 그 안에 왕(王)자를 써 넣었고, 등 뒤로 꼬아 붙인 연꽃 줄기는 그대로 손잡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거북등 중앙에는 섬세하게 표현된 작은 연꽃잎을 오므려 그곳에 물을 담도록 되어있다. 유약은 회청색으로 은은한 윤기가 흐른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거북의 모습은 우아한 비취색과 함께, 당시 유행한 동·식물 모양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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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 |
종 목 | 국보 제97호 | | 명 칭 |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靑磁陰刻蓮花唐草文梅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매병으로, 높이 43.9㎝, 아가리지름 7.2㎝, 밑지름 15.8㎝이다. 원래 매병의 양식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고려 초기에 전래된 이후 곡선이나 양감에서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여 고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 매병은 작고 야트막하나 야무진 아가리와 풍만한 어깨와 몸통, 잘록한 허리, 그리고 아래부분이 밖으로 약간 벌어진 곡선에서 전형적인 고려자기 임을 알수 있다. 아가리는 일반적인 매병 양식으로 각이 져 있으며 약간 밖으로 벌어졌다.
몸통에는 연꽃덩굴 무늬가 전면에 힘차고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맑고 투명한 담록의 회청색 청자유가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있으며, 표면에 그물 모양의 빙렬(氷裂)이 있다.
유약의 느낌이나 작품의 모양새를 보면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에서 구워 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12세기 고려 순청자 전성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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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상감모란문항, |
종 목 | 국보 제98호 | | 명 칭 |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20.1㎝, 아가리지름 20.7㎝, 밑지름 14.8㎝이다.
몸통에는 앞뒤로 모란이 한 줄기씩 장식되어 있다. 모란꽃은 잎맥까지도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몸체의 한 면마다 가득히 큼직한 문양을 넣어 인상적이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특히 꽃은 흰색으로 잎은 검은색으로 상감하였는데, 꽃을 중심으로 잎을 좌·우·상·하로 대칭되게 배열하였다. 유약은 맑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으로 매우 얇고 고르게 칠해져 있다.
유약의 느낌이나 항아리의 형태로 보아 12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항아리는 꽃과 잎이 큼직하게 표현됨으로써 흑백의 대비가 강하여 시원한 느낌을 주며, 상감기법의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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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 |
종 목 | 국보 제116호 | | 명 칭 |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靑磁象嵌牡丹文瓢形甁)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 청자 주전자로 고려자기 중에서 흔히 보이는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와 손잡이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34.4㎝,아가리지름 2㎝, 배지름 16㎝, 밑지름 9.7㎝이다.
세련된 유선형의 모양에 완벽한 비례의 아름다움까지 곁들여 조화시킨 이 작품은 목의 윗부분에 흑백상감으로 구름과 학무늬를 그려 넣었다. 잘록한 목은 골이 지게 패여있어 주름이 잡혀 있는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병의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피지 않은 봉오리, 잎들이 꽉 짜여진 채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릇 형태나 유약색으로 볼 때 선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어 고려인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 | 청자사자유개향로, |
종 목 | 국보 제60호 | | 명 칭 | 청자사자유개향로(靑磁獅子鈕蓋香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점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 21.2㎝, 지름 16.3㎝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3개의 짐승모양을 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데, 전면에 구름무늬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몸체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를 배치하였다.
뚜껑은 대좌에 앉아있는 사자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사자의 자세는 뚜껑의 왼쪽에 치우쳐 있어 시각적인 변화에서 오는 조형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있는 자세이며, 두 눈은 검은 점을 찍어서 표현했다. 사자의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모양의 털이 표현되었고, 꼬리는 위로 치켜올려 등에 붙인 모습을 하고 있다.
유약의 색은 엷은 녹청색으로 광택이 은은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몸체에서 피워진 향의 연기가 사자의 몸을 통하여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되어있는데, 아름답고 단정하여 이 시기 청자향로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사자향로에 대해서는 중국 송나라 사람들도 극찬을 하였던 훌륭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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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비룡형주자, |
종 목 | 국보 제61호 | | 명 칭 | 청자비룡형주자(靑磁飛龍形注子) |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청자 | | 수량/면적 | 1개 | | 지 정 일 | 1962.12.20 |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 시 대 | 고려시대 | | 소 유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주전자로 높이 24.4cm, 밑지름 10.3cm이다.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했는데, 이런 물고기모양은 옛날부터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건축물에 많이 장식하였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용의 머리모양이고, 이빨과 지느러미, 꼬리 끝에는 백토(白土)를 발랐다. 얼굴의 털이나 지느러미들을 매우 가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주전자 몸체에는 비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중앙부에는 앞뒤로 커다란 갈퀴모양의 옆지느러미가 묘사되었다. 손잡이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주전자의 몸체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본떠서 만들었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기이하면서도 각 부위를 갖춘 한 마리의 상상의 동물모습을 하고 있다. 비취빛의 유약색과 더불어 지느러미와 꽃무늬에 나타난 세밀한 음각 표현은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주전자는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 중에서도 매우 기발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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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다시 찾은 '비취색 꿈', (5.15~6.26)| 청자
고려청자 다시 찾은 '비취색 꿈' |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5월15일~6월26일까지 열려 | 고려시대 화려한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고려청자가 그 은은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 앞에 나선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신광섭)의 기획특별전 ‘전북의 고려청자-다시찾은 비취색 꿈’전이 15일부터 6월26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 본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청자의 산지였던 전북지역의 청자문화를 재조명하고 고려시대 도자문화의 우수성을 살펴보기 위한 자리로 마련한 것. 특히 전북 부안의 유천리(사적 제 69호)는 전남 강진 사당리와 더불어 고려시대 대표적인 상감청자 제작지로 명성이 높았던 곳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된 여러 형태의 청자들을 살펴본다. 전시는 3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하늘의 조화로 빚은 꿈’에서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아름다운 조형미를 완성한 부안 유천리 가마터의 청자들을 전시하며, 2부 ‘바다에 빠진 보물’에서는 전북지역 연안에 위치한 십이동파도와 비안도 해저 유적을 선보인다. 이 곳은 남쪽 지방에서 만든 청자를 개경(현재의 개성)으로 운송하다 침몰한 청자운송선의 청자가 다량 출토된 곳으로 당시 물류시스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3부 ‘바다를 건너 생활속으로’에서는 청자를 통해 고려인들의 삶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리로 강화도에 위치한 희종의 석릉, 국립숙박기관인 경기도 파주의 혜음원지,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청자들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342호 ‘청자상감음각모란문매병’과 보물452호 ‘청자거북이모양주전자’를 비롯해 총 250여점의 청자들이 선보인다. 특히 은은한 비취색의 고려시대 상감청자는 예부터 아름다움과 실용성면에서 찬탄의 대상이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푸른 자기 술잔을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려왔다”고 노래했으며 중국 송나라 태평노인은 “고려의 비색자기는 천하제일”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고려청자는 첨단 기술로 제작한 실생활용품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유려한 형태와 섬세한 문양으로 생활의 멋을 더하는 완상품(玩賞品)으로 그 가치를 더한다. 신광섭 관장은 “전북지역의 청자를 집중 조명하고 그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마련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민들이 문화적 자긍심을 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립중앙),보물342호 청자상감음각모단문매병(靑磁象嵌陰刻牡丹文梅甁),보물342호
청자구형주자(靑磁龜形注子),보물452호 |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