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토론 보충자료(3) - 인물성 동이론(人物性同異論)

2016. 3. 22. 13:57경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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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1 16:41

11월 토론 보충자료(3) -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人物性 同異論

I. 序 論

   성리를 천명이 인간에 내재한 성(本然性)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主體性을 형이상학화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공자, 자사, 맹자를 이어받은 송대의 정주학 즉 성리학이라 한다면 이것은 천인 관계를 위주로 하여 객관적 우주론적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조선조 성리학의 양대 산맥인 퇴율 성리학은 자연이나 우주의 문제보다 인간의 내적 성실성을 통하여 인간의 主體性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학문적 이론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한다. 한국성리학사에서 중요한 학술 논쟁이라면 四端七情論과 人物性同異論에 대한 논쟁으로 규정하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이 두 논쟁들은 性理學의 주요개념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주제로 하였기 때문에 가장 의미있는 철학적 주제로 부상할 수 있었고 그 당시뿐만이 아니라 조선말까지 계속된 최대의 이론적 관심사가 되었다. 人物性同異에 대한 논쟁은 한국 성리학에서의 보편논쟁으로 불리며 학맥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湖落論爭이라고도 한다. 人性과 物性이 같다고 보는 人物性同論을 낙론이라 하고 다르다고 보는 人物性 異論을 호론이라고 한다.

   湖落論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人性과 物性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문제이고 둘째는 마음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善惡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문제다. 이 두 가지 논쟁은 모두 朱子에게서 발단된 것이다. 즉 주자는 「中庸」에서의 性에 대한 주석「孟子」「大學或問」에서의 性에 대한 주석을 모순되게 진술하여 각각 人物性 同論과 異論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 논쟁을 살피는 것은 한국 성리학의 이론 세계의 한 특성을 파악하는 의의를 지닐 뿐 아니라 주자 철학의 한 특성까지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II. 본 론

1. 조선조 후기 성리학의 인물성동이론의 발단과 논쟁의 배경

1) 논쟁의 배경

   人物性同異論의 논쟁은 율곡 이이(1536∼1584)에서 우암 송시열(1607∼1689)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적통인 수암 권상하(1641∼1721)의 문하에서 제기되어 본격화된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江門八學士>로 불리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외암 이간(1677∼1727)이 가장 뛰어나 江門爭論의 장본인이 된다.

   한원진은 1705년에 지은 (시동지성)에서 인물성론에 관해 이미 정리된 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간은 1709년 최성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五常未發에 관한 논의를 한 바 있다. 즉 1712년에 논쟁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들은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토론은 외암 이간(1712)이 스승인 수암 권상하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의 마음이 純善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처음에 수암은 외암의 설에 수긍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미발 때 선악이 있다고 하는 남당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남당이 찾아와서 자기의 의견을 자세히 설명하자 수암은 이번에는 남당의 설을 인정하였다. 즉 사람이 태어나면서 氣質之性을 가지게 되니 이것은 선악의 가능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발시 항상 악한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자 수암은 이전의 외암의 설이 옳은 것이 아니고 남당의 설이 옳다고 하면서 율곡이통기국의 해설까지 덧붙여 숙종 38년(1712) 외암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외암은 그의 스승 수암 권상하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과 남당의 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 하였고 이통기국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달리하게 되면서 그들의 논쟁은 본격화되었다. 남당은 외암이 스승 권상하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스승을 대변해서 외암의 설을 반박하였고, 여기에 외암이 직접 남당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논쟁은 더욱 가열화 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남당도 외암의 설을 직접 반발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적 논쟁은 개인적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고, 집단적 논쟁의 성격을 띠면서 조선말까지 계속되었다.

   외암이나 남당은 모두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 있는 사람들로서 기호지방인 충정도 사람이다. 그런데 이후 외암의 논쟁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주로 김창협, 김창흡의 계열을 잇는 김원행, 박윤원, 홍직필의 계열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들이 주로 서울, 경기 지방의 낙하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들을 낙론(洛學派)이라 하고, 반면에 수암남당 이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병계 윤봉구, 매봉 최징후, 봉암 등 주로 충청도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湖西學派)이라고도 한다.

2) 문제의 발단

    문제의 발단은 性에 대한 다의적 해석을 혼용하고 있는 朱子에게서 비롯된다. 주자 「中庸」의 주석과 「孟子集注」「大學或問」에서 性을 각각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주자학에서 性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理를 가리킨다. 性은 구성상으로는 氣 안의 理(氣中之理)인 셈이지만 이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용의 해석에서는 인간과 사물의 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맹자집주에 의하면 부여받은 理의 차이에 의하여, 대학혹문에 의하면 기의 차이에 의하여 인간과 사물이 달라진다고 한다. 性이란 理와 氣가 결합되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의 차이에 의하든 기의 차이에 의하든 기와 결합된 理는 다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만물생성의 우주원리로서 우주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각 개체내의 理인 性도 동일하다. 그러나 각 사물의 특성을 이루고 개체이도록 하는 원리를 성이라고 할 때에는 人間과 事物, 事物과 事物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을 보는 관점에 따라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개별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문제는 그중 어느 관점을 택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人性과 物性이 같은가 다른가의 보편논쟁에서 동일한 본성을 놓고 남당은 다르다고 하고 외암은 같다고 한다..

3) 이론과 동론의 논리 구조

    외암과 남당은 모두 성리학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는 성리학의 기본틀에 의해서 그들의 이론도 달라졌다. 그들의 이론적 틀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를 살펴보면 이의 존재는 순수성이고 절대적 보편자이다. 그러나 기는 이를 현상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매개자로서 상대적 악의 가능성이 있고 개별적이고 유한한 존재이다. 즉 이가 현상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의 매개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로 이는 논리적으로 기에 앞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본체계의 리는 현상계 우주 만물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현상계 우주 만물에 보존되어 있는 '이'의 실재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데 본체와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본체로부터 현상을 설명하는 연역적 방식과 현상으로부터 본체를 설명하는 귀납적 방식이 있다. 본체에서 현상계를 설명하는 방법은 ' 중용'에서 말하는 천명지위성이나 주자학에서 말하는 태극으로 우주 만물은 설명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현상계에서 본체를 설명하는 방식은 주자에게 있어서 '기'의 매개를 통한 격물치지의 방식이다. 전자의 방식은 주로 형이상학적인 태극이 먼저 전제가 되고 태극이 구체적 사물로 드러나면서 이가 기에 의해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생각이다. 외암은 이러한 측면에서 본체계인 천명이 현상계에 있는 인간과 사믈의 성에 그대로 보존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가 먼저 있고 그 '이'는 개별사물에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이르는 길은 일종의 직관으로 본연지성을 드러내는 경지인 깊은 미발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현상계를 무차별적인 일원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 사물 자체의 본성이나 본질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질과 사물의 본질도 같아지고 사물과 사물의 차이인 종차도 '기'에 의거하지만 사물과 인간의 차이인 '유'의 구별도 기에 의거하게 된다.

   반면에 후자'기'에 의해 매개된 현상으로부터 본체계인 태극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상의 다양성으로부터 경험적 귀납화(格物致知)를 통하여 본체계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미발의 상태를 단순히 외물과 접촉하기 이전이라고 하면서 외암이 주장하는 깊은 미발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상의 존재는 '기'에 매개되어 나타나므로 '기'에 의해 그 본성이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사물마다 그 본성이 다르게 된다. 그래서 사물의 본성인 본연지성은 사물마다 다르고 그 본연지성을 포괄하는 것으로 태극을 상정한다. 다시 말하면 '기'가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사물의 본성이 다르고 개별 사물의 본성과 궁극적 존재인 태극과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남당은 이러한 점을 산맥과 산으로 비유한다. 태극이 산맥이라면 개별적인 성은 산봉우리이다. 개별적인 산을 산맥이라 할 수 없지만 모든 산봉우리가 모여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즉 태극은 모든 개별적인 성의 집합이 된다. 그러나 태극이 태극을 이루고 있는 원소인 성과 같은 것은 아니다. 앞의 설명에 관련지어 말하면 본체인 태극과 현상계인 우주 만물, 즉 기에 의해 제약된 성은 구별된다. 그리고 태극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은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하면 전체 집합인 태극이나 천명은 '기'에 의해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개별적 원소인 성과 구별되고 태극의 원소들인 인성과 물성도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나 태극은 모든 개별성의 총화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태극과 성이 서로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2. 인물성 동론과 이론에 대한 논변

1) 인물성동론 (외암중심)

① 성개념의 다의성

    외암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입장에서, 그리고 남당은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는 입장에서 논쟁이 전개되는데 이 논쟁은 1709년 숙종(35년)부터 1715년(숙종 41년)에 이르기까지 7년간이나 완결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논쟁은 이후 약 200여 년에 걸쳐 계속된다. 이간(1677-1727)은 한원진 보다 5년 위로 충남 온양의 외암에서 살았는데 자는 공거 호는 외암이며 수암 권상하의 문인이다. 그의 저서로는 <외암 유고> 16권 8책이 있다. 한원진(1682 - 1751)은 충남 결성의 남당(홍성군)에서 살았는데, 자는 덕소 호는 남당이며 21세 때부터 청풍 황강 (충북 제천군 한수면)의 권상하 문하에서 외암 이간과 함께 수업하였다. 두사람 모두 수암의 제자로써 가장 뛰어났는데 호락 논쟁은 1709년(숙종 35년) 남당의 나이 27세 외암의 나이 32세 때 시작되었다.

   호락 논쟁의 요점을 정리해보면 호락 논쟁의 초점은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 하는 일종의 보편 논쟁인데 이때의 성이란 성리학에서 말하는 본연지성을 일컫는 말이다. 만약 남당이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하는 그 성이 기질지성이라 한다면 이는 당연히 인성과 물성이 다를 뿐 아니라 인성과 인성, 물성과 물성도 다른 것이므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동일한 본연지성을 놓고 남당은 다르다고 하고 외암은 같다고 하는데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외암<중용>天命之謂性에 대한 주자의 해석, 즉 "人과 物이 生함에 각기 그 부여한 바의 理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오상(建順五常)의 덕이 되니 이른바 성이다"라는 말을 근거로 인간과 금수는 모두 건순오상의 덕을 선천적으로 동일하게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외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명이나 오상, 태극이나 본연이 명목은 비록 많으나, 이의 가리킴에 따라서 명목을 달리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처음부터 이것과 저것, 근본과 말단, 치우침과 온전함, 크고 작음의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연으로 말하면 性과 命에 본래부터 人과 物의 다름이 없고, 기질로 말하면 氣의 바름과 통함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침과 막힘을 얻은 것은 物이 되며, 바르고 통한 가운데에도 또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여져서 나뉘어 다름이 있고, 치우치고 막힌 가운데에도 또 혹시 통함과 온전히 막힘의 차별이 있으니, 이것은 사람과 만물이 만 가지로 같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므로 그 기질을 논하면 오직 개의 성이 소의 성이 아닐 뿐더러 도척의 성이 순임금의 성이 아니며, 그 본연을 말하면 오직 도척의 성이 곧 순 임금의 성일 뿐더러 물의 성이 곧 사람의 성이다.

 외암은 太極의 이와 음양오행의 기가 妙合한 가운데 이의 측면, 즉 본연지성만 보아 인성과 물성이 같음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외암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구별하고 본연지성만을 가리켜 인성과 물성의 보편성을 말한다. 외암은 太極, 天命, 建順五常의 덕을 합해 본연지성 이라 하고 이를 사람이나 물이나 모두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만 사람과 물이 다른 것은 氣의 같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본다. 사람은 氣의 바르고 통한 것을 받았으나 物은 치우지고 막힌 것을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외암은 本然之性으로서의 人性과 物性의 보편성을 설명하고 기질로써 인성과 물성의 차이를 설명했다. 외암의 「이통기국변」과 「오상변」을 중심으로 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② 理通氣局과 理氣不相離

   외암「이통기국변」에서 "蓋栗谷天地萬物, 氣局也 天地萬物之理 理通也" 라 하고 이통기국 四字는 栗谷선생의 "洞見大原 逈出常情之大端也" 라 하고 理氣元之不相離 一句卽其頭腦也" 라고 하여 이통기국과 이기불상리를 연결시켜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元不相離中 無形而無本末無先後, 理之通也 有形而有在末有先後 氣之局也 所謂理通者 非有以離乎氣局也 卽氣局而指其本體不離乎氣局而爲言耳"라 하였다. 외암의 말을 통하여 보면

1. 天地萬物은 有形, 有本末, 有先後로서 氣局이다. 이것은 理通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국은 現象으로 말할 수 있고 현상은 理氣不相離(合理氣)로 구체적 물체, 즉 "形"으로 存在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국은 體, 즉 "形"으로 존재하고 있다.

2. 天地萬物, 즉 기국의 이가 理通이다. 이것은 기국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기불상리의 논리에 依하고 또한 기국에 즉하여서 본체가 기국과 섞여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이기불상리의 논리에 의하고 있다.

3. 그렇다면 理通, 즉 本體는 만물의 同으로서의 (理同이다) 이기불상리의 理이고 氣局, 즉 理象을 만물의 異로서의 (氣의 異로 인한 것이다) 이기불상리의 이기이다. 理象에서의 만물의 異體不同(理不同)은 氣異이기 때문이지 理가 不同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氣에 의해서 理가 不同인 것처럼 보일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栗谷의 "人之性 非物之性者 氣之局也 人之理 卽物之理者 理之通也 에서 만물의 理가 同이라고 하는 것이 곧 理之通이라 하는 것이고 (本然之性으로 표현) 萬物의 性은 異라고 하는 것이 곧 氣之局이라 하는 것이므로 (氣質之性으로 표현) 栗谷의 理通氣局을 理氣의 不相離와 불상리의 논리로 설명하여

A. 이통과 기국이 서로 불상리의 상태로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B. 不相離으로서의 이가 本體로서 理通이라고 말하며 만물의 현상에 동일한 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암은 "太極五常 只理也"라 하여 五常으로서의 性을 太極과 동일개념으로 말하여 理로 말하고 있다.


2) 인물성이론 (남당 중심)

   이에 대해 남당은 <맹자> 生之謂性장에 대한 주자의 해석 즉 '理로써 말하면 仁義禮知, 稟賦를 어찌 물이 온전히 얻은 바이겠는가'라는 근거로 3층설 주장하면서 인성과 물성의 다름을 증명한다.

   원진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에 3층의 다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과 사물이 모두 같은 성이 있고, … 사람과 사물은 같지 않으나 사람만 모두 같은 성이 있고, … 사람과 사람이 모두 같지 않은 성이 있다.

   이는 본래 하나뿐이다. 그런데 형기를 초월하여 말하는 것이 있고, 기질로 인하여 命名하는 것이 있고, 기질을 섞어서 말하는 것이 있다. 형기를 초월하여 말하면 태극이라는 명칭이 이것으로 만물의 이가 동일하고, 기질로 인하여 명명하면 건순오상의 명목이 이것으로 인과 물의 성이 같지 아니하고, 기질을 섞어서 말하면 선악의 성이 이것으로 人人物物이 또 같지 않다.

남당의 성 3층설은 본래 권상하에게서 비롯되었는데 그는 일원(一原)의 성과 분수(分殊)의 성과 分殊之分殊의 성을 논한 바 있었다. 이를 계승하여 남당은 성을 셋으로 구별해 설명한다.

첫째는 최고 類(유)의 개념으로서의 理(一原)로써 형기를 초월한 리 超形器를 말한다. 이 리는 태극이요 천명인데 만물의 이가 모두 동일하다.

둘째는 기질로 인하여 말하는 理인 人氣質로서 건순, 오상이 이에 해당된다. 현상물은 모두 理와 氣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性이요 氣質之性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태극, 천명의 이가 형기 안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외암이 말하는 기질지성이다. 남당은 이 氣質之性을 本然之性으로 보고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본다.

셋째는 기질을 섞어서 말하는 理인 雜氣質로서 사람과 사람 ,물과 물이 서로 같지 않은 理를 말하는데 이는 수암이 말하는 "分殊之分殊"의 理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남당은 기질지성 하나로 보고 기질지성의 편전에 따르는 리의 편전 즉 성의 편전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외암이 五常을 太極·理通과 같은 것으로 보아 五常之性은 곧 一原이 되고 이것이 곧 本然之性으로서 같다고 하는 것에 대해 남당은 五常之性이 本然之性이지만 一原·理通은 아니고 分殊요 氣局이라는 것이다. 먼저 建順五常과 理通氣局을 알아보고, 性개념, 理字와의 不同, 理一分殊를 알아본 뒤에 그가 주장하는 人物性不同의 性이 곧 理로서 太極·一原·理通과의 會通을 통하여 기질지성의 不同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보고자 한다.

① 理通氣局과 性字의 개념

i. 理通氣局과 建順五常

   남당 "健順五常은 陰陽五行으로 因하여서 이같은 性이라는 名稱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곧 건순오상은 성으로서 인기질의 名稱이라고 하는 것이니, 건순의 출처는 역의 건곤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乾者健也 陽之性也 坤者順也 陰之性也" 라고 하여 乾坤을 健順과 陽之性, 陰之性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으로 하여 남당은 건순을 명명하는 뜻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건순의 名義(개념)는 陽의 性, 陰의 性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양이 아닌 性이라고 하는 것이고 또한 건순은 양음의 對로 인한 것이어서 곧 양음으로 인하여서 건순의 성이라는 명칭이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남당이 성의 개념을 因氣質之名이라고 하여 性의 개념을 理의 개념과 구별하고 있는데 음양이 氣이고 性이 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외암의 性二理의 동일개념으로 이해된 상태에, 즉 性理無別의 性이 아니라 因氣質之名으로서의 성개념을 確立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의 본체, 성의 實體로서 性理개념의 구별로써 「理同性不同」을 말하여 性의 不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당은 주자의

乾者健也 陽之性也
坤者順也 陰之性也

라고 한 建順의 名義가 바로 율곡이 말한 氣局이라고 또한 말하고 있다. 물론 이말은 건순, 즉 성이 곧 기국이라는 말은 아니다. 율곡이 「기국」이라고 표현한 다음의

人之性非物之性 氣之局也
理之萬殊 氣之局故也

를 인용하여 이것은 단지 기를 논한 것만이 아니라 기국지리를 겸해서 논한 것이라고 하여 외암은 氣局의 本指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氣局之理

理局於陽卽爲健而爲陽之性
局於陰則爲順而爲陰之性 推之五行萬
物莫不然笑

라 하여 위에서 氣之局으로 인하여서 理之萬殊가 있다고 한 이 "分殊之理"는 곧 건순이 되어서 陽之性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인성과 물성의 不同이 다만 氣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氣의 局으로 인한 성의 차이로서 性不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순오상의 명의는 일원이 아닌 局定된 분수의 이를 가리킨 것으로서 五常의 성은 율곡

萬物則性不能稟全德

을 들어 그 五常의 性은 만물의 稟得할 때부터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니 人物이 生할 때에 벌써 氣異와 더불어 理異를 같이 稟受한 것으로 이것은 理字와 구별하여 性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암의 氣異로 인한 理不同이 前述한 바와 같이 兼指의 異體를 말한 것으로 性=理이므로 性不同은 氣質之性으로 설명한 것에 대하여 그 性不同이 氣質不同뿐만 아니라 실제로 性不同이 分殊之理로서 氣局으로 인하여 理가 萬殊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성개념이 바로 건순오상을 나타낸 것으로 율곡의 기국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당은 외암이 氣局에 氣局之理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외암이 건순오상은 理通이라고 한 것을 이통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고 하여 건순오상을 기국지리로 설명하고 있다.

위와 같이 이해한 이통기국남당은 性理二字 개념의 不同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栗谷以性論局 以理論通 政與失門所
論謂之理同則可 而謂之性同則不可者合

이라 하여 주자의 所論과 율곡理通氣局을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蓋言性字則通局皆性也
言理字則通局皆理也
以性與理對言則通爲理而局爲性

이라 하여 또한 性理二字의 互換과 對擧를 이통기국으로 설명하고 있다.

ii. 性字의 개념 ( 名 義 )

   남당은 性字의 名義(개념)로서 주자의 『凡言性皆因氣質而言, 但具中自有所賦之理 』를 들어 천고논성의 至訣이라고 말한다.

위의 말을 두가지로 구분해 보면,

첫째 理賦於氣中然後方爲性이어서 不因乎氣質則不名爲性笑라는 것과

둘째 實指其中所賦之理이어서 非雜乎氣質而言也라는 것이다.

因氣質로서 人物所稟의 性이 다르고 指具中所賦之理로서 인물의 성이 모두 선하다고 하여 성은 因氣質로서 在氣中이지만 因在氣中理兼指則氣質之性이고, 直指其中所賦之理而賦雜 乎氣則爲本然之性이 라고 하여 위에서 말한 성의 개념이 兼指한 기질지성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으며, 또한 『本然氣質之非二性』, 『性有二名而實無二體也』라 아여 성은 일이라고 규정하고 다만 기질의 兼과 不兼에 따라서 본연지성·기질지성의 이명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가 최고로 完偏하다고 하고, 『卽此氣質之性而見得其不雜於氣質者爲本然之性 』이라 하여 이러한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의 바깥이 아니어서 비록 기질의 不齊가 있으나 성의 본연을 害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性之本然, 즉 본연지성을 性의 본체로 파악함으로, 위와 같이 性은 二體가 없다고 하여, 性은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위의 말을 모두 정리해 보면,

1. 因氣質而名이다.

2. 所賦之理가 本然之性으로서 성의 本體之性으로서 性의 본체이며 純善이다.

3. 性은 氣가 아닌 理이며 하나이다.

주자의 答林德久와 答時亭으로서 성의 개념을 확립한 남당은 성의 명의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으면서 성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다.

  『性之實體不外乎理而性之名義由其在氣』라 하여 程子 「性卽理」라고 하는 것은 실체는 논하였으나 명의를 버렸다고 하고, 권수암이야말로 실체를 들어서 명의를 가리켰다고 하여 「性卽理」만으로는 성의 개념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性卽理之在氣」라고 하여 재기라는 말을 덧붙여야지만 된다고 한다. 程子의 性卽理는 성리학의 제일 명제이다.

정자의 시대에는 모든 학자들이 性이 人物所得者인 것은 아나, 많은 사람들이 理를 氣로 오인하여 性이 理라고 하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性卽理」 二字를 추출하여 「性의 本體」를 밝힌 것이고, 요사이 학자는 거꾸로 性이 理라고 하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人物所得之名이라고 하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권수암이 「在氣」二字를 보충하여 「性의 名義」를 밝혔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性의 본체, 性의 실체가 理라고만 해서는 性의 명의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에 「性字上見得其在氣」하여야 하고 「理學上見得其本體」하여야 한다고 하여 성의 개념은 이와 기의 합으로써 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性은 理이지만 그 理가 氣中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性은 同一개념이라고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公擧가 그와 같이 말하는 性이 形而下가 아닌가 하고 (곧 氣質之性의 의미로 말한 것 같다) 권수암에서 질문한 것에 대하여 남당은 그 性은 분명히 形而上으로 말한 것이지만 다만 形而下와 不離할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性卽理는 되어도 理卽性은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제시된 것이 性字와 理字의 개념의 차이이며, 이것을 통해서 性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미발심체의 선악에 대하여

    호락논쟁의 또 다른 문제 중의 하나는 아직 발하지 않은 마음의 본체가 선한가 아니면 선악을 겸비하는가 하는 것이다. 외암은 본연지성의 순수한 선을 주장하며 아직 발하기 전에는 성의 상대적 有善惡이란 있을 수 없다하고 본체론적으로 보면 사람과 사람이 모두 본연지성의 純善을 받음으로써 같고 나아가 物도 그 본체론적 性에 있어서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다만 이미 발하여 생각함에 이르러 선하고 선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하였다. 외암은 주자의 대학혹문에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여 아직 발하지 않은 마음의 본체는 본래 선하다고 주장한다.

주자의 <대학혹문>

「明德」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로 허령(虛靈)하여 어둡지 않은 것으로서 모든 이치를 갖춰 인간 만사에 순응하는 것이다. 다만 기품의 구애됨과 인욕의 가리워진 바로 인해 때때로 혼미해진다. 그러나 그 본체의 밝음은 아직 일찍이 그침이 있지 아니하다.

여기에 대하여 남당은 心은 곧 氣質이요 기질에는 맑고 흐림이 같지 않으므로 마음의 본체도 선악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氣質之性이 理와 氣의 妙合 구조로 인한 본체상에서도 맑고 흐리고 착하고 악함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氣는 비록 맑고 흐리고 선하고 악하여 같지 아니함이 있을지라도 아직 발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氣가 用事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선악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담연(湛然) 허명(虛明)할 따름이다. 그런데 비록 담연허명할 지라도 그 기품본색의 맑고 흐리고 선하고 악함은 곧 또한 일찌기 없을 수 없다.

이렇게 볼때, 외암과 남당의 인물성동이 논쟁의 촛점은 본연지성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있었다. 외암은 이 본연지성 理一之理(이일지리)로 보아 사람과 사물의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남당은 이 본연지성을 이기묘합으로서의 기질지성으로 보아 사람과 사물의 차별성을 주장하였다. 결국 두 사람의 성의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결국 외암처럼 기를 배재한 가운데 이만을 말하면 사람과 사물의 보편성을 말할 수 있고, 남당처럼 이기의 묘합처럼 성을 보면 사람과 사물의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호락논쟁은 퇴율시대의 사단칠정 논쟁을 계승하여 인성의 내면 구조를 좀더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한국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하겠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친 논쟁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율곡의 이통기국에 머물고 만 느낌을 갖게 됨은 아쉬운 일이다.

IV. 결 론

1. 논쟁의 가치

    위에서와 같이 성리학에서의 성이 동일한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차원에서 개념정의가 가능하다는 것은 朱子 哲學 內의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이것이 어떤 의미로 말하여지든 간에 단순히 사실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상으로도 고려된다는 것이다. 맹자에 의거한 本然之性이 五常이고 그 五常이 善한 것이라는 점, 즉 善惡의 관점에서 고려된 것임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 本然之性으로서의 太極 역시 '天地萬物之理의 總和'라는 사실적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天地萬物에 있어서 지극한 善의 표준'이라는 선악적 가치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고려된다. 따라서 애초에 주자가 논한 인물성론의 의의는 인성과 물성의 동이를 賁달아 인간만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人性의 善하고 고귀한 가치를 깨달아 현실에서 도덕적 실천을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성과 물성의 동이를 각각 주장한 외암과 남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외암에게서는 本然性이 지닌 善의 본래적 절대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성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남당에게서는 本然性이 지닌 善의 이질적으로 독특한 고귀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권의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南塘은 人性이 物性보다 더 귀함을 巍巖에게 역설한 바 있다. 더욱이 두 사람의 이론이 주자 철학이 가지는 모순의 선별적 편향이라는 측면에서 주자 철학의 특성적 발전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2. 마무리 

   유교가 현실에 바탕을 두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물성동이논쟁 역시 임병양란을 통한 구체적 현실에 촛점이 있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연구를 토대로 정리를 해보면 우주와의 관련 속에서 인간의 심, 성, 정에 대한 정밀한 탐구를 해왔던 조선의 주자학들의 관심이 성개념의 다이성에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인성과 물성에 대해 논구하면서 주희의 개념사용에 대한 검토작업이 요구되었고, 「朱子言論同異考」라는 부산물을 낳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병자호란(1636∼1637)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문화로서 중화문화를 추구하며 小中華를 자부했던 조선이 짐승에 가깝다고 천시했던 오랑캐의 강대한 세력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커다란 문제였다. 북학파 특히 홍대용과 박지원은 만물은 균등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세계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객관적 상대적 관점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의 상대화 객관화는 중세 사회의 계층적 질서를 부정하고 근대적인 사회질서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화이론에 기초한 중국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세계의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는데 인물성동이 문제의 탐구가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물성동이 논쟁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미발심체의 문제는 그 성이 현실 속에서 발현되기 직전의 모습을 논의한 것이었다. 이는 리와 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것이었지만 성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정도 정리되자 이제는 급박한 조선말기의 현실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심의 근원 문제로 초점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 심의 핵심문제는 明德의 문제였다. 이에 이항로, 이진상등은 인물성동이 논쟁을 거쳐 明德, 朱理, 朱氣 논쟁, 또는 심설 논쟁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제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이론이든 동론이든 인간주체성의 근거로서의 성선의 확고한 확립을 이론적으로 구체적인 해명을 시도한 점은 시대상황에 대처한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이론에서 구체적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은 실학사상과의 연결점으로 볼 수 있거니와 다만 오늘날의 과학성, 즉 복제인간 이라든지 동물애호가, 환경론자들에게는 이 인물성동이론이 어떻게 접근되고 있는 것인가가 궁금한 과제이다.


※ 참고문헌

1. 한국유학사, 배종호, 연세대학 출판부, 1992

2. 한국의 유학 사상, 황의동, 서광사, 1977

3. 한국인물유학사, 한국인물유학사편찬위원회, 한길사, 1996

4. 한국철학강좌, 한국철학사상연구외 지음, 예문서원, 1993

5.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김형찬, 예문서원, 1995

6. 한국사상의 이해, 황준연, 1992

7. 조선조 후기 성리학에 있어서 -인물성 동이론에 관한 연구-,

양재열, 석사논문, 1982

8. 인성물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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