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M004.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

2013. 7. 26. 00:08경전 이야기

 

 

 

 

M004.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경

Bhayabheravasuttaṃ

 

 

[개요]

 

1 번째 : 자눗소니가 두려움에 대하여 묻다

- 숲에 머무를때 집중된 마음이 없으면 두렵지 않냐고 물음

2 번째 :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이유와 두려움이 없는 이유

- 부처님은 그렇다라고 인정하시면서, 보살이셨을 때 숲속에서 생활하시던 경험을 바라문에게 설하신다. 즉 숲속에서 두렵지 않으려면 신구의 생계가 청정해야 하고, 오개가 부수어져야 하고, 시주자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바른 정진, 마음챙김, 삼매,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심. 이러한 것을 읽으면 부처님 6년 고행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데 도움이 됨.

3 번째 : 두려움을 찾아다니다.

-부처님은 두려운 곳에 앉아 두려움을 기다린 적이 있는데 두렵지 않으셔서 자리에서 일어나, 행주좌와에서 두려움이 일어나면 해결하고 자세를 바꾸셨다 함. 놀라움

4 번째 : 두려움을 정복하다 - 초선 - 삼명육통

- 초선에서 누진통까지 두려움을 극복하신 과정을 설명하심. 이 말씀은 3번째까지는 바르게 깨달으시기 전 즉 고행림에 있을때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이고, 4번째는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해탈하심으로서 비로소 완전한 두려움에서 벗어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진다.

5 번째 : 숲에 머무르는 이유

- 하나는 현세에 즐겁게 머무르기 위함이고, 하나는 후세사람들을 위한 연민이다라고 말씀하신다.


 

--------------------------------------------------------------------------------


 

 

 

 

첫 번째 : 자눗소니가 두려움에 대하여 묻다

 

 

 

3. 존자 고따마여, 이들 훌륭한 가문의 제자들이

존자 고따마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존자 고따마께서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까?

또한 그 사람들은 존자 고따마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까?84)

 

4.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이들 훌륭한 가문의 제자들은 나에게 귀의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나는 그들을 안내하는 자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다.

 

5. 존자 고따마여, 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85)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갑니다.

*85)홀로 명상을 통해 감각적 쾌락에서 멀리 떠나는것을 말한다.

 

 

6. 바라문이여 그렇습니다.

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생각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갑니다.

 

 

 

 

두 번째 :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이유와 두려움이 없는 이유

 

 

7. 바라문이여, 내가 아직 깨닫기 전에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에,

주의깊게 이와같이 생각했습니다.

‘숲속 총림의 수행처는 견디기 어렵고 멀리 떠남을 실천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 어렵다.

생각건대 숲은 집중하지 않으면 수행승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8.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하지 않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다.

나는 신체적인 행위를 청정하게 한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신체적 행위의 청정함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9. 언어적인 행위..

10. 정신적인 행위..

 

11.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수행자들이든 성직자들이든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지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면,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진 악연 때문에

이 수행자 성직자들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증오하는 생각을 가지고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지 않는다.

나는 자비스런 마음을 지닌다.

나는 자비스런 마음을 지닌 고귀한 사람으로서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간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 자신 안에서 자비스러운 마음을 보고

숲속에 머무는 데 커다란 안도감을 발견했습니다.

 

 

해태 게으름이 있기 때문에 두렵다. 나는 해태와 두려움을 부수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들뜸...

 

12. 의혹과 의심에 가득 차..나는 의심을 떨쳐버린다.

 

13.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고.. 나는 자기를 칭찬하지않고 남을 경멸하지 않는다.

 

14. 겁을 먹고 겁에 질려.. 겁을 먹고 겁에 질린 악연 때문에.. 나는 겁을 먹지 않는다.

 

15.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고.. 나는 아주 적게 바란다.

 

16. 게을러 정진없이.. 나는 부지런히 정진한다..

 

17. 깊이 새기지 못하고 잘 알아채지 못하고.. 나는 깊은 새김을 성취한다.

 

18. 집중하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으로.. 나는 집중을 성취한다..

 

19. 지혜가 없이 바보가 되어.. 나는 지혜를 성취한다86)..

*86) 위빠사나의 지혜나 도의 지혜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규정하는 지혜이다.

 

 

 

세 번째 : 두려움을 찾아다니다.

 

 

20. 바라문이여, 그때에 나에게 이와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특정한 밤, 즉 보름기간의 14일, 15일 내지 8일날 밤에87)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면 어떨까?

아마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그후 특정한 밤, 즉 달이 떠있는 14일, 15일 내지 8일 날 밤에

공원의 탑묘, 숲속의 탑묘, 나무 아래의 탑묘,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전율하게 하는 곳,

그러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냈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그곳에 지낼 때에

맹수가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낙엽더미를 흩날려 보냈습니다.

 

그때에 나는 생각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바라문이여, 마침 나에게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왜 내가 반드시 두려움에 기대해야 하는가?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세로88)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하면 어떨까?’

*88) 행주좌와의 제가지 자세를 있는 그대로 취하는것을 말한다.

 

 

21. 바라문이여, 내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걸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서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내가 서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서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내가 앉아 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앉아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눕지 않습니다.

내가 누워있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온다면,

바라문이여, 나는 누워있으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할 때까지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이 나를 엄습해오면 어떤 자세에 잇던

그 두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기 전까진 그와 같은 자세를 유지하였다.

내가 걷고 있을때 두려움이 엄습하면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까진 그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내가 서있을때 두려움이 엄습하면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까진 그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내가 앉아있을때 두려움이 엄습하면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까진 그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내가 누워있을때 두려움이 엄습하면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까진 그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네 번째 : 두려움을 정복하다 - 초선 - 삼명육통

 

22. 바라문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낮을 밤으로 인식하고 밤을 낮으로 인식합니다.

그들 성직자들이나 수행자들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나는 밤을 밤으로 인식하고 낮을 낮으로 인식합니다.89)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

‘어리석음을 뛰어넘은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90)’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누군가에 대해

‘어리석음을 뛰어넘은 존재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90)’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89) 선불교에서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진술은 부처님의 이 말씀에 기인하는 것이다. 중국의 靑原惟信禪師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노승이 30년전 참선하기 이전에는 산은 청산이요 물은 녹수였다. 그러던 것이 그 뒤에 어진 스님을 만나 깨침에 들어서고 보니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니, 마침내 진실로 깨치고 보니 이제는 산이 의연코 산이요 물이 의연코 물이더라’

 

23.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혼란스럽지 않아 깊은 새김을 확립하고,

격동하지 않고 몸이 고요하며,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어 있어,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했습니다.91)

 

24. 초선92)

*92) pps 1.124에 따르면 세존은 그의 명상주제로 호흡에 대한 새김을 사용하여 4가지 선정을 계발한다.

25. 이선

26. 3선

27. 4선

28. 숙명통

 

29.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30. 천안통

 

31.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32. 누진통

 

33. 내가 이와같이 알고 이와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99)’는 앎이 일어났으며,

나는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100)’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99)내가 이와같이 알고 이와같이 보자는 통찰(위빠사나)와 아라한의 경지를 목적으로 하는길(maggakkhane)을 보여주는 것이고, ‘해탈했다는 지혜가 일어났다’라는 것은 돌이켜보는 지혜를 말한다.

*100) 태어남은 부수어졌다에서 태어남은 성스러운 길이 닦여지지 않았을 때 생겨나는 형태의 태어남이므로 성스러운 길을 닦았을 때 태어남이 생겨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살아왔던 청정한 삶’은 성스러운 길의 청정한 삶이다. ‘해야할 일을 해 마친 것’은 거룩한 진리에 대한 네가지 과업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앎, 괴로움의 원인의 제거, 괴로움의 소멸의 성취,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수행 - 이 네가지 각각의 출세간적인 길을 위해 완성된 것을 말한다.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한 말의 원뜻은 ‘더이상 이러한 상태는 없다’라는 뜻이다. 그말은 ‘이러한 상태를 위해 즉 길의 열여섯가지 기능을 위해, 번뇌의 파괴를 위해 다시 길을 닦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거나 또는 달리 ’이러한 상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존재의 다발의 지속이후에는 나에게 존재의 다발의 지속은 없다. 이러한 오온은 완전히 이해되면 뿌리잘린 나무처럼 되버린다. 마지막 의식이 정지함으로써 그들은 연료없는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34.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에 도달한 지혜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다섯 번째 : 숲에 머무르는 이유

 

35. 그런데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와같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아직까지도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성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것이 아닐까?’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대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숲속 총림의 휴식처로 가는것은 거기에서 두 가지 유익한 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자신의 현세의 행복한 삶을 보고 후세의 사람들에게101) 자비를 느낍니다.

 

 

좋습니다. 고따마여 후세에 대한 연민을 가진 아라한 정등각 세존입니다. ...재가자로 받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