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주

2017. 11. 1. 00:07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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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서명권차문체기사저/편/필자간행년도
1백호전서(白湖全書) 백호전서 제46권 잡저(雜著) 독서기(讀書記) 내칙(內則) 윤휴(尹鑴) 1995~1997

ㆍ운(運)인데 주(註)에도 같다. - 전이(饘酏)와 주례(酒醴)와 모갱(芼羹)과 콩, 보리, 분(蕡), 벼, 찰, , 차조 등을 바라는 대로 마련한다. - 이(酏)는 죽이다. 분(蕡)은 모시 씨를 볶은 것이다. ‘饘’은 반절이...  ... 듯이 하는 것이다. - 대향(大饗)은 왕사(王事)일 것이다. - 대향은 선왕에게 제사할 때의 구헌(九獻)이다. - 대향(大享)은 구헌이니, 구헌의 예는 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할 때 이헌(二獻)하고, - 왕이 규찬(珪瓚)으로...  ... 계이(鷄彝)에 담긴 를 따르고 왕후는 장찬(璋瓚)으로 조이(鳥彝)에 담긴 를 따라 시동(尸童)에게 올리면 시동은 고수레[祭]를 하고 맛을 본 다음 올려놓고 마시지는 않는다. - 조천(朝踐)할 때 이헌하고, - 희생을 잡아...  ...(太廟) 안에 있으면서 서차(序次)에 따라 술을 부어 강신한다. 술을 땅에 부을 때는 를 규찬(圭瓚)으로 따라 오(奧)에 붓는데, 이때 시동이 고수레를 하고 맛을 보고 잔을 올리는 것이 일헌(一獻)이다. 그러면 왕은 나가서 희생...  ...을 맞이하고 왕후는 장찬(璋瓚)을 잡고 술을 부어 아헌(亞獻)을 하니, 이를 일러 ‘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할 때의 이헌(二獻)’이라 한다. 희생을 맞아들여 뜰에 이르면 왕이 친히 난도(鸞刀)를 잡고 희생의 털을 가른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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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전서 제46권 / 잡저(雜著)

독서기(讀書記) 내칙(內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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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석서(集釋序)
   내칙(內則)은 《대기(戴記)》에서 나왔으니, 고경(古經)이다. 그리고 증자(曾子)의 말이 실려 있으니, 어찌 삼대(三代)의 교육 방법을 공자가 증자에게 전수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마치 《효경(孝經)》이나 《대학(大學)》의 경우와 같다 하겠으나 경문(經文)의 간략하고 심오함과 정밀하고 긴요함이 예(禮) 17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 양로(養老) 이하 및 증자의 말을 기록한 부분은 상하의 경문과 서로 뜻이 통하지 않으니, 아마 증자의 문인이 기록하면서 추가하고 부연하여 경의 뜻을 넓힌 것으로 경의 정문(正文)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이에 대한 고증을 아래에 소(疏)로 달아 경문을 완성함과 아울러 정씨(鄭氏)의 주해(註解) 및 주자(朱子)의 보주(補註)로써 경의 뜻을 통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고 나니 은미한 말과 큰 뜻이 비로소 순수하고 명백해져 후세를 기다려도 의혹됨이 없다 할 만하게 되었다. 그윽이 생각건대, 성인의 도는 효제(孝悌)에서 근본하고 부부(夫婦)에서 시작하는데, 나라에 통하고 나아가 천하를 다스림에 이르기까지 이 밖에 다른 도가 없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 “도는 가까이에 있는데 멀리서 구하고, 일은 쉬운 데 있는데 어려운 데서 구한다.” 하고, “군자의 말은 허리띠를 내려가지 않으나 바로 그 비근한 데에 도가 있다.” 하였으니, 옛 사람은 도는 인륜에 두었고 공(功)은 일용(日用)에 힘썼기 때문에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은 일체 이와 반대의 길을 가니, 이것이 옛날의 도가 오늘날의 도와 다르고 오늘날의 학자가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아아! 그 폐해가 오래되었다.
   증씨(曾氏)의 유서(遺書) 중 《효경》은 그 강령을 제시하고 《대학》은 마음에 근본하였으며, 이 책은 특별히 상세한 실사(實事)를 예시(例示)해서 행실에 나타내어 곡진히 말하였으니, 더욱이 학자에게 긴절한 것으로 상호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이에 감히 표출하여 선유(先儒)들의 훈고에 따라 집석(集釋)을 만들어 후래(後來)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니, 이 책을 보면 옛날의 도를 보고 옛 사람의 도를 알아, 독실한 자세로 대순(大舜)이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한 것과 공자가 이른바 “신명(神明)에 통하고 사해에 빛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기(禮記)》의 사례(四禮)에 대한 뜻은 무릇 전해지는 기록으로서 경의 뜻을 발명할 수 있는 것을 다시 뒤편에 별도로 첨부하여 내칙외기로 삼는다.
남원(南原)윤휴(尹鑴)는 삼가 서문을 쓴다.

내칙집석(內則集釋)
한(漢) 정씨(鄭氏) 현(玄) 주(註)
당(唐) 공씨(孔氏) 영달(穎達) 소(疏) 절략(節略)
송(宋) 주자(朱子)희(熹) 보주(補註)

내칙(內則) - 내칙이라 명명한 것은 남녀가 집안에 거처하면서 부모와 시부모를 섬기는 법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별록(別錄)에서는 자법(子法)에 속하는데 규문(閨門) 안에서 위의를 지킴이 본받을 만하기 때문에 내칙(內則)이라 하였다. -

   후왕(后王)이 총재(冢宰)에게 명하여 뭇 조민(兆民)들에게 덕을 내리게 하였다. - 후(后)는 군(君)이다. 덕(德)은 교(敎)와 같다. 억의 만 배가 조(兆)이니, 천자의 백성을 조민이라 하고, 제후의 백성을 만민(萬民)이라 한다. 《주례(周禮)》에, “총재는 음식을 관장하고 사도(司徒)는 12교령(敎令)을 관장한다.” 하였다. 일설에는, “총재는 기록한 이가 제후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니, 제후는 육경(六卿)을 아울러 혹 겸직하기도 한다. 후(后)는 군(君)이니 제후를 말하고, 왕이 천자이다.” 하였다. 노씨(盧氏)는 이르기를, “후(后)는 왕후이고 왕이 천자이다.” 하였고, 손염(孫炎)과 왕숙(王肅)은 이르기를, “후왕은 군왕(君王)이다.” 하였다. -
자식이 부모를 섬기되,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한 다음 머리를 빗고 쇄(縰)를 하고 비녀를 지르고 총(總)을 하고 모(髦)를 털고 관을 쓰고 갓끈[緌纓]을 늘어뜨리고 단(端)을 입고 필(鞸 조복을 입을 때 가슴에 늘어뜨려 무릎을 가리는 것으로 폐슬(蔽膝)이라 함)을 하고 신(紳)을 띠고 홀(笏)을 꽂는다. - 원문의 함(咸)은 개(皆)의 뜻이다. 쇄(縰)는 머리털을 싸는 것이다. 총(總)은 머리털을 묶고 남은 부분을 뒤로 늘어뜨려 장식을 삼는 것이다. 원문의 불모(拂髦)는 모(髦)에 묻은 먼지를 터는 것이다. 모는 머리털로 만드는 것으로, 어릴 때 머리에 부착하는데 그 제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緌)는 갓끈의 장식이다. 단(端)은 현단(玄端)이니, 사(士)의 복장이다. 서인은 심의(深衣)를 입는다. 신(紳)은 큰 띠이니, 스스로 묶어서 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것이다. 원문의 진(搢)은 꽂을 급(扱)과 같으니, 신에 홀을 꽂는 것이다. 홀은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원문의 ‘盥’은 독음이 관(管)이니 세수하는 것이고, ‘漱’는 반절이 소(所)ㆍ구(救)이니 양치하는 것이고, ‘櫛’은 반절이 측(側)ㆍ을(乙)이니 머리를 빗는 것이고, ‘縰’는 반절이 소(所)ㆍ매(買)이니 검은 비단으로 머리털을 감싸는 것이다. ‘搢’은 서씨(徐氏)에 의하면 독음이 전(箭)이고, 또 다른 독음은 글자 그대로 진이니, 홀을 꽂는 것이다. -
   좌우로 용품을 차되 - 스스로 차는 것이다. 반드시 차는 것은 존자(尊者)가 무슨 일을 시킬 것에 대비하는 것이다. - 왼쪽에는 분(紛), 세(帨), 도(刀), 여(礪), 소휴(小觿), 금수(金燧)를 차고, - 분과 세는 기물이나 손을 닦는 수건이다. 지금도 제(齊) 나라 사람은 수건을 분(紛)이라 하는 이가 있다. 도와 여는 작은 칼과 숫돌이다. 소휴는 작은 매듭을 푸는 것이다. 휴(觿)는 모양이 흡사 송곳과 같은데 여러 가지 뼈로 만든다. 금수는 햇빛에서 불을 취하는 도구이다. 원문의 ‘紛’은 반절이 방(芳)ㆍ운(云)이고, 혹 분(帉)으로 쓰기도 하는데 뜻이 같다. ‘帨’는 반절이 시(始)ㆍ예(銳)이니, 허리춤에 차는 수건이다. ‘觿’는 반절이 허(許)ㆍ규(規)이고 본래는 ‘鑴’로 쓰기도 하는데 음이 같으며, 매듭을 푸는 데 쓰는 송곳이다. ‘燧’는 독음이 그대로 수(燧)이니, 화경(火鏡)이다. - 오른쪽에는 결(玦), 한(捍), 관(管), 서(遰), 대휴(大觿), 목수(木燧), - 한은 습(拾)을 뜻하니, 활의 시위를 당길 때 옷을 걷어 매는 팔찌이다. 관은 필구(筆彄)이다. 서는 칼집이다. 목수는 비벼서 불을 일으키는 도구이다. ‘捍’은 반절이 호(戶)ㆍ단(旦)이니, 활을 쏠 때 사용하는 팔찌를 말한다. ‘遰’는 반절이 시(時)ㆍ세(世)이며, 서씨에 의하면 체(滯)가 된다. - 핍(偪)을 찬 다음 - 핍은 행전이다. 핍(偪)은 핍(幅)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으며, 반절은 피(彼)ㆍ력(力)이다. - 신에는 기(綦)를 부착한다. - 기는 신을 매는 들메끈이다. -
지어미는 시부모를 섬기되 부모를 섬기듯이 하며,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 머리를 빗고 머리싸개를 쓰고 비녀[筓]를 지르고 총(總)을 하고 옷을 입고 띠를 띤다. - 계(筓)는 오늘날의 잠(簪)이다. 원문의 의신(衣紳)은 옷을 입고 띠를 띠는 것이다. 원문의 여부모(如父母)는 어떤 본(本)에는 여사부모(如事父母)로 되어 있다. ‘衣紳’의 ‘衣’는 글자 그대로 읽으며, 또는 반절이 어(於)ㆍ기(旣)라고도 하는데, 주(註)에도 같다. -
   왼쪽에는 분(紛), 세(帨), 도(刀), 여(礪), 소휴(小觿)를 차고, 오른쪽에는 잠관(箴管)과 선광(線纊)을 차되 반질(縏袠)에 베풀고, 대휴(大觿)와 목수(木燧)를 차고, - 반(縏)은 작은 주머니이다. 반질에 ‘베푼다’는 말을 한 것은 잠관과 선광을 담기 위한 것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箴’은 반절이 지(之)ㆍ림(林)이고, 선(線)은 어떤 본(本)에는 선(綫)으로 되어 있으며, 반절은 식(息)ㆍ천(賤)이다. ‘纊’은 독음이 광(曠)이다. 반(縏)은 반(鞶) 자로 되어 있는 곳도 있는데 뜻은 같으며, 반절은 보(步)ㆍ간(干)이다. ‘袠’은 반절이 진(陳)ㆍ을(乙)이며, 질(袟) 자로 쓰기도 한다. - 영(纓)을 매달고 신들메를 묶고서 - 원문의 금(衿)은 결(結)과 같다. 부인이 향낭[纓]을 몸에 매다는 것은 매여서 소속된 바가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금(衿)은 어떤 본에는 금(紟)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기(其)ㆍ학(鶴)이며 주(註)에도 같다. 영(纓)은 영(嬰)으로 쓰기도 한다. - 부모와 시부모의 처소로 간다. - 원문의 적(適)은 지(之)의 뜻이다. - 처소에 이르러서는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기쁘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묻고, 아픈 곳이나 가려운 곳이 있으면 공경히 누르고 긁어 드린다. - 원문의 이(怡)는 기쁜 것이고, 하(苛)는 가려운 것이며, 억(抑)은 누르는 것이고, 소(搔)는 긁는 것이다. 욱(燠)은 어떤 본에는 욱(奧)으로 되어 있는데 뜻은 같고 반절은 어(於)ㆍ륙(六)이니, 따스한 것이다. ‘苛’는 독음이 하(何)이다. 양(癢)은 어떤 본에는 양(養)으로 되어 있으며 반절은 이(以)ㆍ상(想)이다. ‘搔’는 반절이 소(素)ㆍ도(刀)이다. - 부모나 시부모가 출입하실 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공경히 부지(扶持)해 드리고,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은 그때 그때 편의대로 하는 것이다. 즉 나갈 때는 앞서고 들어올 때는 뒤서는 것이다. 두 손으로 부축하는 것을 부(扶)라 하고 한 손으로 부축하는 것을 지(持)라 한다. - 세숫물을 올릴 때는 나이가 적은 이는 반(槃)을 받들고 나이가 많은 이는 물을 받들고 가서 세수하시기를 청하고, 세수를 마치면 건(巾)을 드리며, - 반은 물을 담는 것이고, 건은 손을 닦는 것이다. 원문의 ‘少’는 반절이 시(詩)ㆍ소(召)이니 이하 모두 동일하다. 원문의 봉(奉)은 반절이 방(芳)ㆍ용(勇)이고 봉(捧)으로 쓰기도 하며 뜻은 같으니, 이하 동일하다. 원문의 장(長)은 반절이 죽(竹)ㆍ장(丈)이니 이하 모두 동일하다. -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여쭈어 공경히 바치고 부드러운 기색으로 뜻을 받든다. - 원문의 온(溫)은 자(藉)의 뜻이니, 존자(尊者)의 뜻을 받듦에 반드시 안색을 온화하게 가지는 것이며, 어떤 본에는 온(蘊) 또는 온(慍)으로 되어 있고 반절은 어(於)ㆍ운(運)인데 주(註)에도 같다. -
   전이(饘酏)와 주례(酒醴)와 모갱(芼羹)과 콩, 보리, 분(蕡), 벼, 기장, 기장, 차조 등을 바라는 대로 마련한다. - 이(酏)는 죽이다. 분(蕡)은 모시 씨를 볶은 것이다. ‘饘’은 반절이 지(之)ㆍ연(然)이니, 뻑뻑한 죽이다. ‘酏’는 반절이 양(羊)ㆍ피(皮)이니 묽은 죽이다. ‘芼’는 반절이 막(莫)ㆍ보(報)이다. 분(蕡)은 분(黂) 자로 쓰기도 하는데 반절은 부(扶)ㆍ운(云)이고 서씨에 의하면 반절이 부(扶)ㆍ외(畏)이니, 대마(大麻)의 씨로 주에도 같다. ‘粱’은 독음이 량(良)이고, ‘秫’은 독음이 술(述)이다. 모(芼)는 채소를 익힌 것이고, 갱은 고기를 끓인 것이다. -
   대추ㆍ밤ㆍ엿[飴]ㆍ꿀[蜜]로 달게 하고, 근(菫 씀바귀)ㆍ환(荁)ㆍ분(枌)ㆍ유(楡 느릅나무)를 문(免)ㆍ고(薧)ㆍ수(滫)ㆍ수(瀡)로 부드럽게 하고, 지(脂)ㆍ고(膏)로 기름지게 한 다음 - 이러한 것들로 음식을 조화하는 것을 말한다. 환(荁)은 근(菫)과 같은 종류인데, 겨울에는 근을 쓰고 여름에는 환을 쓴다. 유(楡)가 흰 것을 분(枌)이라 한다. 문(免)은 새로 생긴 것이고, 고(薧)는 마른 것이다. 진(秦) 나라 사람은 쌀을 씻는 것을 수(滫)라 하고, 제(齊) 나라 사람은 미끄러운 것을 수(瀡)라 한다. ‘飴’는 반절이 양(羊)ㆍ지(之)이니 엿이다. ‘菫’은 독음이 근(謹)이니 채소이다. ‘荁’은 독음이 환(丸)인데 근(菫)과 잎이 비슷하나 크다. ‘枌’은 반절이 부(扶)ㆍ운(云)이고, ‘免’은 독음은 문(問)이고 주(註)에도 같다. 고(薧)는 고(藁) 자로도 쓰며, 반절은 고(苦)ㆍ로(老)이다. ‘滫’는 반절이 사(思)ㆍ주(酒)이니, 쌀을 씻는 것이다. ‘瀡’는 독음이 수(髓)이니, 미끄러운 것이다. ‘滑’은 반절이 호(胡)ㆍ우(又), 또는 우(于)ㆍ팔(八)이니, 여러 권(卷) 모두 같다. ‘膏’는 반절이 고(古)ㆍ보(報)이다. - 부모와 시부모가 맛을 본 뒤에 물러난다. - 공경하는 것이다. -

   아직 관(冠)을 쓰거나 비녀를 지르지 못한 남자와 여자는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머리싸개를 하고 모(髦)를 털고 머리를 모아서 묶고 향낭[纓]을 매단 다음, 모두 용취(容臭)를 차고서 - 원문의 총각(總角)은 머리털을 거두어 묶는 것이다. 용취는 향물(香物)인데, 이것을 끈으로 몸에 매어다는 것은 존자(尊者)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작은 심부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冠’은 반절이 고(古)ㆍ란(亂)이다. - 날이 겨우 밝으려 할 즈음에 찾아뵙고 - 성인(成人)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원문의 ‘朝’는 반절이 직(直)ㆍ요(遙)이니, 아래에 보이는 이조(而朝)의 조(朝)도 같고 그 뒤에 나오는 것은 글자 그대로이며, 서씨에 의하면 반절이 호(胡)ㆍ두(豆)이다. 이하 동일하다. - 음식은 무엇으로 할지를 여쭙는다. 이미 음식을 먹었으면 물러나고, 아직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어른을 도와 구(具)를 살핀다. - 구는 반찬이다. -

   무릇 내외가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하고 의복을 입고 베개와 대자리[枕簟]를 걷고 실(室)과 당(堂) 및 뜰에 물 뿌리고 비질한 다음 자리를 깔고 저마다 자기 맡은 일을 한다. - 잠자리를 걷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설만(褻慢)한 부분을 보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니, 이는 베개와 대자리가 몸에 직접 닿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원문의 ‘衣’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이거나 반절이 어(於)ㆍ기(旣)이다. ‘簟’은 반절이 도(徒)ㆍ점(點)이다. 원문의 ‘灑’는 어떤 본(本)에는 쇄(洒)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소(所)ㆍ매(買) 또는 소(所)ㆍ매(賣)이며, ‘掃’는 반절이 소(素)ㆍ보(報)이다. -유자(孺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음식을 먹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다. - 미성인(未成人)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유자는 소자(小子)이다. ‘孺’는 반절이 여(如)ㆍ수(樹)이고, ‘蚤’는 독음이 조(早)이다. -

   명사(命士) 이상(以上)은 아버지와 아들이 궁실(宮室)을 달리하는데, 날이 겨우 밝으려 할 즈음에 찾아와 뵙고 맛있는 음식을 바쳐 어버이를 경애(敬愛)하고, 해가 나오면 물러나 저마다 자기 맡은 일을 하다가, 해가 들어가 저녁이 되면 다시 맛있는 음식을 바쳐 어버이를 경애한다. - 궁실을 달리하는 것은 아버지를 높이고 공경하는 뜻에서이다. 원문의 자(慈)는 경애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다. 해가 나오면 그제야 일을 하는 것인데, 녹(祿)을 먹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이상(以上)의 이(以)는 어떤 본에는 이(已)로 되어 있고, ‘上’은 반절이 시(時)ㆍ장(掌)이며 이 뒤에 보이는 것은 이와 같다. -

   부모와 시부모가 앉으려 하면 자리를 받들고 어느 방향으로 놓을지를 묻는다. 와석(臥席)을 깔려 하면, 나이 많은 이는 자리를 받들고 발을 어디로 향할지를 묻고 나이가 적은 이는 상(牀)을 받들고 앉게 하며, - ‘침석을 깔려 한다’는 것은 눕는 장소를 바꾸었을 경우를 이른다. 원문의 ‘奉’은 반절이 방(芳)ㆍ용(勇)이니, 이하 동일하다. 원문의 ‘鄕’은 반절이 허(許)ㆍ량(亮)이고, ‘衽’은 반절이 이(而)ㆍ짐(鴆) 또는 이(而)ㆍ심(甚)이니, 눕는 자리이다. 원문의 지(趾)는 어떤 본에는 지(止)로 되어 있으니, 발이다. 원문의 ‘處’는 반절이 창(昌)ㆍ려(慮)이다. - 어자(御者 시중 드는 사람)는 궤(几)를 들고서 자리[席]와 대자리[簟]를 걷고 이불을 매달고 베개를 상자에 넣은 다음 대자리를 걷어서 싼다. - 누우려 할 때에야 걷는 것이다. 원문의 독(襡)은 싸는 것이고, ‘縣’은 독음이 현(玄)이고, ‘篋’은 반절이 구(口)ㆍ협(協)이고, ‘襡’은 독음이 독(獨)이다. -

   부모와 시부모의 옷, 이불, 대자리, 자리, 베개, 궤(几)는 옮기지 않고, 지팡이와 신발은 공경히 대하여 감히 가까이 가지 않으며, - 원문의 전(傳)은 옮기는 것이다. ‘傳’은 반절이 장(丈)ㆍ전(專)이니, 주(註)에도 같다. 원문의 근(近)은 부근(附近)의 근(近)과 같다. 전(傳)은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는 것이고, 근(近)은 자신의 몸에 가까이하는 것이다. - 대(敦), 무(牟), 치(扈), 이(匜)는 대궁[餕]을 먹을 경우가 아니면 감히 사용하지 않으며, - 대궁을 먹을 때라야 사용하는 것이다. ‘牟’는 독음이 무(堥)이다. 치(扈)와 이(匜)는 주장(酒漿)을 담는 그릇이고, 대(敦)와 무(牟)는 서직(黍稷)을 담는 그릇이다. ‘敦’은 독음이 대(對)이고 또는 반절이 정(丁)ㆍ뢰(雷)이며, ‘牟’는 반절이 목(木)ㆍ후(侯)이다. 제(齊) 나라 사람은 흙으로 빚은 가마솥[土釜]을 무(牟)라 부른다. ‘扈’는 독음이 지(支)이다. ‘匜’는 반절이 양(羊)ㆍ지(支) 또는 이(以)ㆍ씨(氏)이니, 두안(杜顔)의 주(註)에 “《좌전(左傳)》에 의하면, 세수하는 그릇이다.” 하였다. ‘餕’은 독음이 준(俊)이고, 무(堥)는 글자를 무(蝥)로도 쓰니, 반절이 목(木)ㆍ후(侯)이다. - 부모와 시부모가 항상 먹는 음식은 대궁을 먹을 경우가 아니면 감히 먹고 마시지 않는다. - 대궁이라야 먹는 것이다. 원문의 항(恒)은 상(常)과 같으니, 조석의 상식(常食)을 말한다. -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는 경우엔 조석의 상식 때 아들과 며느리가 곁에서 음식을 권하고 대궁을 먹되, - 지어미들이 모두 지아비와 함께 대궁을 먹는 것이다. - 상식의 대궁을 남김없이 먹는다. - 매 끼니 때마다 남은 음식을 대궁으로 다 먹어 치우는 것은 한번 올린 음식은 다시 올리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만 생존한 경우는 총자(冢子)가 모시고 음식을 들며 뭇 아들과 며느리들은 아버지가 생존하던 당초와 같이 음식을 권하고 대궁을 먹는다. - 원문의 어(御)는 시(侍)와 같으니, 장자(長子)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모시고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은 대궁을 먹지 않지만 그 아내는 모두 대궁을 먹는다. - 그리고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은 유자(孺子)가 대궁으로 먹는다.
   부모와 시부모의 처소에서 명이 있으면 공경히 응대(應對)하고, 진퇴와 주선(周旋)을 신중하고 엄숙히 하며, - 원문의 제(齊)는 엄숙한 것이다. 원문의 ‘唯’는 반절이 우(于)ㆍ계(癸)인데, 서씨에 의하면 반절이 이(伊)ㆍ수(水)로 되어 있으며, ‘齊’는 반절이 측(側)ㆍ개(皆)이다. 주(周)는 둥글게 가는 것이고, 선(旋)은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 승강(升降)과 출입에는 읍유(揖遊 나아갈 때는 몸을 약간 숙이고 물러난 뒤에는 몸을 약간 치켜세우는 것)한다. 그리고 감히 구역질, 트림, 재채기, 기침, 하품, 기지개, 기우뚱하게 서는 것, 어디에 기대는 것, 흘겨보기 등을 하지 않으며, 감히 침을 뱉거나 코를 풀지 않는다. - 원문의 제(睇)는 흘겨보는 것이니, 《주역》에 “명이에 왼쪽 허벅다리를 흘겨본다.[明夷睇于左股]” 하였다. 원문의 ‘噦’은 반절이 어(於)ㆍ월(月)이고, ‘噫’는 반절이 어(於)ㆍ계(界)이고, ‘嚔’는 독음이 제(帝)이고, ‘咳’는 반절이 고(苦)ㆍ애(愛)이고, ‘欠’은 반절이 구(丘)ㆍ검(劍)이고, ‘伸’은 독음이 신(申)이고, ‘跛’는 반절이 피(彼)ㆍ의(義)이고, ‘倚’는 반절이 어(於)ㆍ의(義) 또는 기(其)ㆍ기(寄)이고, ‘睇’는 반절이 대(大)ㆍ계(計)이고, ‘視’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인데, 서씨는 반절이 시(市)ㆍ지(志)라 하였다. ‘唾’는 반절이 토(吐)ㆍ와(臥)이고, 체(洟)는 어떤 본에는 체(涕)로 되어 있는데 뜻은 같으며 반절은 토(吐)ㆍ세(細)이다. -
   춥더라도 옷을 껴입지 않으며, 가려워도 긁지 않으며, - 원문의 습(襲)은 옷을 껴입는 것[重衣]이다. 여기서 ‘重’은 반절이 직(直)ㆍ룡(龍)이다. - 공경할 일이 있지 않으면 상의를 벗어 어깨를 드러내지 않으며, - 아버지의 족당(族黨)을 만날 때는 예용(禮容)을 갖추지 않는 법이다. 원문의 ‘袒’은 독음이 단(但)이고, ‘裼’은 반절이 사(思)ㆍ력(歷)이다. - 물을 건널 경우가 아니면 하의를 걷어올리지 않으며, - 원문의 궐(撅)은 옷을 걷어올리는 것[揭衣]이다. ‘撅’은 반절이 거(居)ㆍ위(衛)이고, ‘揭’는 반절이 기(起)ㆍ례(例) 또는 기(起)ㆍ렬(列)이고 또 다른 반절은 기(起)ㆍ언(言)이다. - 속옷과 덮고 자는 이불은 안을 보이지 않는다. - 더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의 ‘見’은 반절이 현(賢)ㆍ편(遍)이니, 이하 동일하다. -
   부모가 침이나 콧물을 흘리면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고, - 바로 닦아서 없애는 것이다. - 관과 띠에 때가 묻었으면 재를 물에 적셔 놓고 씻겠다[漱]고 청하고, 상의와 하의에 때가 묻었으면 재를 물에 적셔 놓고 빨겠다[澣]고 청하고, - 손으로 씻는 것을 수(漱)라 하고, 발로 빠는 것을 한(澣)이라 한다. 원문의 화(和)는 물에 적시는 것이다. 원문의 ‘垢’는 반절이 고(古)ㆍ구(口)이고, ‘漱’는 반절이 소(素)ㆍ후(侯)이니, 이하 동일하다. ‘澣’은 어떤 본에는 ‘浣’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호(戶)ㆍ관(管)이다. - 상의와 하의가 솔기가 터지거나 찢어졌으면 바늘에 실을 꿰어 깁겠다고 청한다. - 원문의 탄(綻)은 해(解)와 같다. 탄(綻) 자는 어떤 곳에는 탄(䘺) 자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직(直)ㆍ환(莧)이며, 서씨는 반절이 치(治)ㆍ환(莧)이라 하였다. 원문의 열(裂)은 어떤 본에는 열(列)로 되어 있다. ‘紉’은 반절이 여(女)ㆍ진(陳)인데, 서씨(徐氏)는 반절이 이(而)ㆍ진(陳)이라 하였다. ‘箴’은 반절이 지(之)ㆍ림(林)이고, ‘綴’은 반절이 죽(竹)ㆍ열(劣) 또는 죽(竹)ㆍ위(衛)이다. -
   닷새가 지나면 물을 데워 놓고 몸을 씻기를 청하고, 사흘이 지나면 머리 감을 물을 마련하되, 그 사이에 얼굴에 때가 끼었으면 쌀뜨물을 끓여 세면(洗面)하기를 청하고, 발에 때가 끼었으면 물을 데워 씻기를 청한다. - 원문의 반(潘)은 쌀뜨물이다. 원문의 ‘燂’은 반절이 상(詳)ㆍ렴(廉)이니 데우는 것이고, ‘潘’은 반절이 방(芳)ㆍ번(煩)이니 쌀을 씻은 물이고, ‘靧’는 독음이 회(悔)이니 얼굴을 씻는 것이다. - 이렇게 젊은이는 어른을 섬기고 천한 이는 귀한 이를 섬기되 모두 이 예(禮)를 따른다. - 원문의 공(共)은 모두의 뜻이고, 솔(帥)은 따르는 것이다. 시(時)는 시(是)와 같으니, 예(禮)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

   남자는 집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집 밖의 일을 말하지 않으며, - 남녀가 저마다 해야 할 일의 차서(次序)를 이른다. - 제사나 상사(喪事)가 아니면 서로 기물을 주지 않는다. - 제사는 엄숙하고 상사는 급거(急遽)하므로 다른 혐의가 없는 것이다. - 서로 기물을 줄 경우에는, 여자가 대광주리[篚]로 받고 대광주리가 없으면 남녀가 모두 앉아, 주는 사람이 기물을 땅에 놓은 뒤에 받는 사람이 취한다. - 원문의 전(奠)은 땅에 놓는 것이고, ‘篚’는 반절이 비(非)ㆍ미(尾)이다. -
   내외가 함께 우물물을 먹지 않으며, 함께 욕실에서 목욕하지 않으며, 침석(寢席)을 함께하지 않으며, 서로 물건을 빌려 쓰지 않는다. 남녀가 의상(衣裳)을 함께 입지 않으며, 집 안의 말을 집 밖으로 내지 않으며, 집 밖의 말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 원문의 벽(湢)은 욕실이다. ‘湢’은 반절이 피(彼)ㆍ력(力)이며, 어떤 본에는 핍(偪)으로 되어 있다. - 남자는 집 안에 들어와서 혀를 차거나[嘯] 손가락질을 하지 않고 밤에 다닐 때는 등촉(燈燭)을 밝혀야 하니, 등촉이 없으면 다니지 않는다. - ‘嘯’은 독음이 질(叱)이니, 질은 은연중 사람을 부리는 혐의가 있다. ‘嘯’은 주(註)에 의하면 독음이 질(叱)이니, 반절은 척(尺)ㆍ실(失)이다. - 여자는 문을 나설 때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고 밤에 다닐 때는 등촉을 밝혀야 하니, 등촉이 없으면 다니지 않는다. - 원문의 옹(擁)은 장(障)과 같다. - 도로에서는 남자는 우측, 여자는 좌측으로 다닌다. - 땅의 도(道)는 우측이 높다. -

   아들과 며느리가 효도하고 공경하는 사람이면 부모와 시부모의 명을 거역하거나 태만히 하지 않는다. - 그 효도와 공경을 믿고 혹시라도 거역하거나 해이해지지 않는 것이다. -
부모와 시부모가 음식을 먹이면 비록 맛이 없더라도 반드시 맛을 보고 기다리며, - 그만 먹으라는 등의 다음 명이 내리기를 기다려 음식물을 치우는 것이다. 원문의 ‘飮’은 반절이 어(於)ㆍ짐(鴆)이고, ‘食’는 독음이 사(嗣)이고, ‘耆’는 반절이 시(市)ㆍ지(志)이다. - 의복을 입히면 비록 내키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의복을 입고 기다린다. - 그만 벗으라는 등의 다음 명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벗어서 갈무리하는 것이다. -
부모와 시부모가 일을 맡겼다가 다른 사람을 대신 시키면 자기는 비록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더라도 - 그 사람이 자기의 일에 방해될까 염려하는 것을 이른다. - 우선 그 사람에게 일을 주어 하도록 한 뒤에 그 사람이 일을 잘 못하면 자기가 대신 그 일을 한다. - 일이 수고로움에 대한 원망을 멀리하는 것이다. 원문의 고(姑)는 차(且)와 같고, ‘與’는 반절이 이(以)ㆍ저(諸)이니, 이하 동일하다. -

   아들과 며느리가 근로(勤勞)한 일이 있으면, 부모와 시부모가 비록 자식과 며느리를 매우 아낄지라도 우선 그 일을 하도록 시키고, 차라리 자주 휴식을 취하게 하는 편이 낫다. - 이쪽을 아낀다 하여 노고를 저쪽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원문의 ‘縱’은 어떤 본에는 ‘從’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족(足)ㆍ용(用)이며, ‘數’은 반절이 색(色)ㆍ각(角)이다. -
아들과 며느리가 효성스럽지 못하고 공경스럽지 못하더라도, 부모와 시부모는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 원문의 용(庸)은 뜻이 용(用)과 같다. 미워한다는 것은 미워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고, 원망한다는 것은 유감과 원망을 품는 것이다. - 우선 가르쳐 보아야 한다. 만약 가르쳐도 안 되거든 그제서야 노하여야 한다. - 노한다는 것은 견책(譴責)하는 것이다. - 노하였는데도 안 되면 아들과 며느리를 방출하되 그 실례(失禮)를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 드러낸다는 것은 밝힌다는 것과 같으니, 그래도 자식과 며느리를 위해 숨기고 그 예를 범한 잘못을 밝히지 않는 것이다. -

   부모가 잘못이 있으면 기운을 낮추고 안색을 즐겁게 하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하여야 한다. 간하여 만약 먹혀들지 않으면 다시 공경을 일으키고 효성을 일으켜서 부모가 기뻐하면 다시 간하여야 한다. -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숨김은 있어도 범함은 없는 법이다. 원문의 기(起)는 다시 갱(更)과 같다. ‘說’은 독음이 열(悅)이니, 이하 동일하다. -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면, 그래도 부모가 향당(鄕黨)과 주려(州閭)에 죄를 짓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익히 간하는 편이 낫다. - 자식이 부모의 명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효(孝)라 할 수 없다. 《주례(周禮)》에 “25가(家)가 여(閭)이고, 4려가 여(旅)이고, 5려가 당(黨)이고, 5당이 주(州)이고, 5주가 향(鄕)이다.” 하였다. 원문의 숙(孰)은 숙(熟)과 통하니, 반복하는 것이다. - 부모가 노하고 불쾌하여 매를 쳐서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여서는 안 되며, 공경을 일으키고 효성을 일으켜야 한다. - 원문의 달(撻)은 치는 것이다. ‘撻’은 반절이 토(吐)ㆍ달(達)이다. -

   부모가 비자(婢子)를 중자(衆子)와 중손(衆孫)처럼 매우 귀여워하시면 비록 부모가 돌아가시더라도 종신토록 애경(愛敬)하는 마음이 쇠하지 않아야 한다. - 비자란 천한 사람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다. -
자식이 두 첩을 두었을 경우에, 부모는 그 중 한 사람을 아끼고 자식은 그 중 다른 한 사람을 아낀다면, 의복이나 음식, 집사(執事)에 있어 자기가 아끼는 첩을 감히 부모가 아끼는 첩에 비겨서는 안 되며, 비록 부모가 돌아가시더라도 그러한 마음이 쇠하여서는 안 된다. - 원문의 유(由)는 자(自)의 뜻이다. -
자식이 그 아내와 매우 금슬이 좋더라도 부모가 좋아하지 않으면 내치고, - 원문의 의(宜)는 사이가 좋다는 뜻인 선(善)과 같다. - 자식이 그 아내와 금슬이 좋지 않더라도 부모가 “이 사람이 나를 잘 섬긴다.” 하면 자식은 부부의 도를 행하여 종신토록 쇠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비록 돌아가셨더라도 선(善)한 일을 하려 할 때는 부모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끼칠 것을 생각하여 반드시 결행하고, 불선(不善)한 일을 하려 할 때는 부모에게 수치를 끼칠 것을 생각하여 반드시 결행하지 말아야 한다. - 원문의 이(貽)는 끼치는 것이고, 과(果)는 결행하는 것이다. ‘貽’는 반절이 이(以)ㆍ지(之)이다. -

   시아버지가 죽고 시어머니가 늙었으면 - 여기서 늙었다는 것은 맏며느리에게 가사(家事)를 전해 준 것을 이른다. - 총부(冢婦 맏며느리)가 제사를 지내거나 빈객을 접함에 있어 매사를 반드시 시어머니에게 물어야 하고, - 며느리는 비록 가사를 전해 받았다 하더라도 감히 전행(專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또 개부(介婦)는 총부에게 물어야 한다. - 총부가 시어머니의 일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부는 중부(衆婦)이다. ‘介’는 독음이 계(界)이니, 주(註) 및 이하 모두 동일하다. -
   시부모가 총부에게 일을 시키면 감히 태만하거나 - 비록 수고롭더라도 감히 해이해지거나 권태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 무례한 개부에게 우애롭지 않게 대해서는 안 된다. - 중부들이 무례하여 총부가 우애롭지 않게 대하는 것이다. 형제와 잘 지내는 것이 우애[友]인데, 손위 동서와 손아래 동서 사이는 형제와 같은 것이다. 주자는 이르기를, “이 구절은 뜻이 분명치 않다.” 하였는데, 주설(註說)로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혹자는 우(友) 자는 감(敢) 자가 되어야 옳을 것이라 하였다. -
시부모가 만약 개부에게 일을 시키면 감히 총부와 대등하게 굴어서는 안 되며, - 비록 자기가 일에 수고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대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감히 걸음을 나란히 해서도 안 되며, 감히 명(命)을 나란히 해서도 안 되며, 감히 앉기를 나란히 해서도 안 된다. - 총부에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명(命)은 사령(使令)이다. -
   무릇 며느리는 사실(私室)로 가라고 명하지 않으면 감히 물러나지 않으며, - 며느리란 시부모를 모시는 이이다. - 며느리가 장차 일이 있으면 대소(大小)를 막론하고 반드시 시부모에게 묻는다. - 감히 전행(專行)하지 않는 것이다. - 아들과 며느리는 개인적인 재화(財貨)가 없으며, 개인적인 축재(蓄財)가 없으며, 개인적인 기물(器物)이 없으며, 감히 개인적으로 남에게 물건을 빌리지 않으며, 감히 개인적으로 남에게 물건을 주지도 않는다. - 가사를 존장(尊長)에게 통제받는 것이다. 원문의 ‘畜’은 반절이 허(許)ㆍ륙(六), 허(許)ㆍ우(又) 또는 칙(敕)ㆍ륙(六)이다. -
   며느리는 누가 음식, 의복, 베와 비단, 수건, 채란(茝蘭)을 주면 받아서 시부모에게 바친다. 그리하여 시부모가 받으면 기뻐하여 마치 새로 받은 것처럼 여기고, - 누가 준다는 것은 친정의 친족이나 형제들이 줄 경우를 이른다. 원문의 채(茝)는 어떤 본에는 지(芷)로 되어 있으며, 반절이 창(昌)ㆍ개(改)이다. 위소(韋昭)의 《한서 주(漢書註)》에는 “향초(香草)이며, 반절은 창(昌)ㆍ이(以)이다.” 하였고, 《설문(說文)》에는 “효(虈)이니, ‘虈’는 반절이 화(火)ㆍ교(喬)이며, 제(齊) 나라 사람은 이를 채(茝)라 하는데 ‘茝’는 반절이 창(昌)ㆍ재(在)이다.” 하였다. - 만약 되돌려 주면 사양하되 명을 얻지 못하면 마치 다시 받은 것처럼 갈무리하고서 결핍될 때를 기다린다. - 시부모가 이 물건이 결핍되어 필요로 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다. - 며느리는 만약 친정 쪽의 친족이나 형제가 있어 그 물건을 주려고 할 경우에는 반드시 다시 그 까닭을 말씀드려 허락받은 뒤에 준다. - 원문의 ‘復’는 반절이 부(扶)ㆍ우(又)이다. -
   적자(適子)와 서자(庶子)는 종자(宗子)와 종부(宗婦)를 공경히 섬기되, - 원문의 지(祗)는 공경하는 것이다. 종(宗)은 대종(大宗)이다. ‘適’은 반절이 정(丁)ㆍ력(歷)이다. - 비록 부귀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감히 부귀한 신분을 가지고 종자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며, 비록 수레와 무리가 많다 하더라도 밖에 머물러 두고 검소한 차림으로 들어간다. - 들어간다는 것은 종자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
   자제가 만약 기물, 의복, 갖옷, 이불, 수레, 말 따위를 하사받으면 반드시 그 중 상등품을 종자에게 바친 뒤에 감히 그 차등품을 자기가 사용한다. - 원문의 유(猶)는 약(若)과 같다. 자제가 공덕(功德)이 있어 물건을 하사받았을 경우엔 그 중 좋은 것을 종자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다. - 만약 바칠 바가 아니면 자신도 감히 그 물건을 사용한 채 종자의 문에 들어가지 않으며, - 종자의 작위(爵位)상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일 경우를 말한다. - 감히 자기가 존귀하고 부유하다 하여 부형과 종족들보다 높이 처신하지 않는다. - 원문의 가(加)는 고(高)와 같다. -
   만약 부유하면 이생(二牲)을 갖추어 그 중 좋은 것을 종자에게 바치고, - 원문의 현(賢)은 좋다는 뜻의 선(善)과 같다. - 부부가 모두 재계하고 종가(宗家)의 제사에 공경을 다하여 - 마땅히 먼저 종자의 집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齊’는 반절이 측(側)ㆍ개(皆)이다. - 일을 마친 뒤에 감히 자기 집 제사를 지낸다. - 자기 조부와 선친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

   밥은 - 여러 가지 밥의 품목이다. - 서직(黍稷), 도량(稻粱), 백서(白黍), 황량(黃粱)으로 짓되, 서(稰)로도 하고 착(穛)으로도 한다. - 충분히 익었을 때 수확한 곡식을 서(稰)라 하고, 아직 익기 전에 수확하는 곡식을 착(穛)이라 한다. 서(黍)는 황서(黃黍)이다. ‘稰’는 반절이 사(思)ㆍ려(呂)이고, ‘穛’은 반절이 측(側)ㆍ각(角)이다. -
   반찬은 - 여러 가지 반찬의 품목이다. - 향(膷 쇠고기 곰국), 훈(臐 양고기 곰국), 효(膮 돼지고기 국), 해(醢 젓갈)와 우자(牛炙 쇠고기 구이)며, 해와 우자(牛胾 쇠고기 산적), 해와 우회(牛膾 쇠고기 회)며, 양자(羊炙 양고기 구이)와 양자(羊胾 양고기 산적)와 해와 시자(豕炙 돼지고기 구이)며, 해와 시자(豕胾)와 개장(芥醬 겨자 장)과 어회(魚膾 생선 회)며, 치(雉 꿩고기), 토(兎 토끼고기), 순(鶉 메추라기 고기), 안(鷃 세가락메추라기 고기)이다. - 이상은 대부의 예(禮)인데, 음식 가짓수가 20두(豆)이다. 《의례》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의 반찬과 비교하면, 효(膮)와 우자(牛炙) 사이에 해(醢)가 들어갈 수 없으니 해는 연자(衍字)이며, 그리고 안(鷃)은 여(鴽)로 되어 있다. ‘膷’은 독음이 향(香)이니, 쇠고기 곰국이다. ‘臐’은 반절이 허(許)ㆍ운(云)이니 양고기 곰국이다. ‘膮’는 반절이 허(許)ㆍ요(堯)로 돼지고기 국[豕臛]인데, 《자림(字林)》에는 “돼지고기 국[豕羹]이며, 반절은 화(火)ㆍ유(攸)이다.” 하였다. ‘炙’는 반절이 장(章)ㆍ야(夜)이며, 이하 동일하다. ‘胾’는 반절이 측(側)ㆍ사(史)이고, ‘膾’는 반절이 고(古)ㆍ외(外)이고, ‘芥’는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희(姬)ㆍ매(邁)이고, ‘鶉’은 반절이 순(順)ㆍ륜(倫)이고, ‘鷃’은 독음이 안(晏)이다. -
음료는 - 여러 가지 음료의 품목이다. - 중례(重醴)에, 도례(稻醴 쌀로 빚은 단술)의 청(淸)과 조(糟), 서례(黍醴 기장으로 빚은 단술)의 청과 조, 양례(粱醴 메조로 빚은 단술)의 청과 조, - 중(重)은 함께 겹친다는 뜻인 배(陪)와 같다. 조(糟)는 전국술[醇]이고, 청(淸)은 거른 술[泲]이다. 즉 음료를 차릴 때 전국술과 거른 술을 함께 차리는 것이다. ‘重’은 반절이 직(直)ㆍ룡(龍)이며, 주(註)에도 같다. ‘糟’는 반절이 자(子)ㆍ조(曹)인데,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저(沮)ㆍ도(到)이다. - 혹은 이(酏)로 만든 단술, - 죽으로 빚은 단술이다. - 서이(黍酏 기장으로 만든 죽), - 이(酏)는 죽이다. - 장(漿), - 초자(酢胾)이다. - 물, - 청신(淸新)이다. - 의(醷), - 매실로 빚은 장[梅漿]이다. ‘醷’는 어떤 본에는 ‘臆’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어(於)ㆍ기(紀)이며,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어(於)ㆍ력(力)이다. - 남(濫)이다. - 남은 여러 가지를 물에 섞는 것이다. 《주례(周禮)》의 육음(六飮)으로 비교해 보면, 남(濫)은 양(涼)이 되어야 옳다. 기(紀) 땅과 거(莒) 땅 사이에서는 저(諸)를 남(濫)이라 부른다. ‘濫’은 반절이 력(力)ㆍ잠(蹔)이다. 여러 가지 마른 복숭아나 마른 매실을 넣는 것을 모두 저(諸)라 한다. -
술은 - 여러 가지 술의 품목이다. - 청주(淸酒)와 백주(白酒)이다. - 백주는 사주(事酒)와 석주(昔酒)이다. -
제물[羞]은 - 여러 가지 제물의 품목이다. - 구이(糗餌)와 분이(粉酏)이다. - 구(糗)는 곡식을 찧어서 볶은 것인데, 이것으로 분이(粉餌)와 자(餈)를 만든다. 이 부분은 기록에 탈락이 있는 듯하다. 《주례》를 보면, 변(籩)에 담는 제물은 구이와 분자(粉餈)이고, 두(豆)에 담는 제물은 이식(酏食)과 삼식(糝食)이니, 여기의 이(酏)는 전(餰)이 되어야 옳다. 쌀과 이리의 가슴 비계 기름[狼臅膏]으로 전(餰)을 만든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糗’는 반절이 기(起)ㆍ구(九) 또는 창(昌)ㆍ규(糾)이다. ‘餌’는 독음이 이(二)이니, 이하 동일하다. ‘酏’는 전(餰)으로 읽어야 옳으며, 전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餰’은 반절이 지(之)ㆍ연(然) 또는 지(之)ㆍ선(善)이다. -

   밥[食]은 - 임금이 평상시 먹는 밥의 품목이다. ‘食’는 독음이 사(嗣)이니, 밥이다. 아래의 고사(苽食), 맥사(麥食)의 사(食)도 모두 동일하다. 서씨(徐氏)는 글자 그대로라고 하였다. - 나해(蝸醢 고동으로 만든 젓)와 고사(苽食 줄풀 열매로 지은 밥)에는 치갱(雉羹)이며, 맥사(麥食 보리로 지은 밥)에는 포갱(脯羹 포를 찢어 넣어 끓인 국)과 계갱(鷄羹 닭고기 국)이며, 절도(折稌 잘게 부순 찰벼로 지은 밥)에는 견갱(犬羹 개고기 국)과 토갱(兎羹)인데, 쌀가루[糝]를 섞어 넣고 여뀌[蓼]는 넣지 않는다. - 고(苽)는 줄풀의 열매인 조호(彫胡)이다. 도(稌)는 도(稻)이다. 무릇 국은 다섯 가지 맛이 적당히 조화되어야 한다. 쌀가루가 삼(糝)인데 이것은 넣고 여뀌는 넣지 않는다. 여기서의 포(脯)는 이른바 말린 쇠고기와 양고기를 찢은 것이다. ‘蝸’는 반절이 력(力)ㆍ과(戈)이다. ‘苽’는 독음이 고(孤)이며, 고(菰)로도 쓴다. 원문의 치갱(雉羹)에서 구두(句讀)를 떼어야 하고, 맥사포갱계갱(麥食脯羹鷄羹)에서 구두를 떼어야 한다. ‘折’은 반절이 지(之)ㆍ열(列)이고, ‘稌’는 독음이 두(杜)인데,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타(他)ㆍ고(古)이다. 원문의 ‘和’는 반절이 호(胡)ㆍ와(臥)이고, ‘糝’은 반절이 삼(三)ㆍ감(敢)이며, 주(註)에도 같다. ‘蓼’는 독음이 료(了)이다. -
돼지고기를 삶되 씀바귀[苦]로 싸고 여뀌로 뱃속을 채우며, 닭고기를 삶되 해장(醢醬)을 넣고 여뀌로 뱃속을 채우며, 생선을 삶되 곤장(卵醬)을 넣고 여뀌로 뱃속을 채우며, 자라를 삶되 해장을 넣고 여뀌로 뱃속을 채운다. - 무릇 삶는다[濡]는 것은 물에 섞어 맛이 나도록 삶아서 즙을 내는 것이다. 고(苦)는 씀바귀인데, 이것으로 돼지고기를 싸는 것은 그 기운을 죽이기 위해서이다. ‘卵’은 독음이 곤(鯤)이니, 곤은 생선 알이며, 혹 관(?)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濡’는 독음이 이(而)이니, 이하 동일하다. 원문의 포(包)는 반절이 백(伯)ㆍ교(交)이다. ‘醢’는 독음이 해(海)인데, 어떤 본에는 혜(醯)로 되어 있고 그 반절은 호(呼)ㆍ혜(兮)이다. 해(醢) 자 그 다음에서 구두를 떼야 한다. ‘卵’은 주(註)에 의하면, 독음이 곤(鯤)이며 그 반절은 고(古)ㆍ문(門)이다. -
단수(腶脩)에는 지해(蚳醢 개미 알로 만든 젓)요, - 단수는 포를 두들긴 다음 새앙과 계피 따위를 넣은 것이다. 지(蚳)는 왕개미 알이다. ‘腶’은 반절이 정(丁)ㆍ란(亂)이다. ‘蚳’는 반절이 진(眞)ㆍ기(其)이니, 개미 알이다. - 포갱(脯羹)에는 토해(兎醢)요, 미부(麋膚)에는 어해(魚醢)요, 어회(魚膾)에는 개장(芥醬)이요, 미성(麋腥)에는 해장(醢醬)이요, 도저(桃諸)와 매저(梅諸)에는 난염(卵鹽)이다. - 나해(蝸醢)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스물여섯 가지 음식물들은 아마 임금이 평상시 먹는 것인 듯하며, 그 반찬은 난부(亂膚)와 절육(切肉)이다. 부(膚)는, 어떤 본에는 반(胖)으로 되어 있다. 난염은 굵은 소금[大鹽]이다. ‘卵’은 반절이 력(力)ㆍ관(管)이다. -
   무릇 밥[食齊]은 봄을 기준으로 하고, - 밥은 따뜻해야 하는 것이다. - 국[羹齊]은 여름을 기준으로 하고, - 국은 뜨거워야 하는 것이다. 원문의 ‘夏’는 반절이 호(戶)ㆍ가(嫁)이니, 이하 동일하다. - 장[醬齊]은 가을을 기준으로 하고, - 장은 서늘해야 하는 것이다. - 음료[飮齊]는 겨울을 기준으로 한다. - 음료는 차가워야 하는 것이다. -
맛을 조화함에 있어서는, 봄에는 신맛이 많게 하고, 여름에는 쓴맛이 많게 하고, 가을에는 매운맛이 많게 하고, 겨울에는 짠맛이 많게 하되, 모두 부드럽고 단맛으로 조절한다. - 그 철에 맞는 맛을 많게 하여 기운을 기르는 것이다. -
   소고기에는 찰벼[稌]가 제격이고, 양고기에는 메기장[黍]이 제격이고, 돼지고기에는 찰기장[稷]이 제격이고, 개고기에는 차조[粱]가 제격이고, 기러기고기에는 보리가 제격이고, 생선에는 줄풀 열매[苽]가 제격이다. - 그 기미(氣味)가 서로 잘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
   봄에는 염소[羔]와 새끼돼지[豚]가 제격인데 요리하는 기름은 향(薌)을 쓰고, 여름에는 말린 꿩[腒]과 말린 생선[鱐]이 제격인데 요리하는 기름은 조[臊]를 쓰고, 가을에는 송아지[犢]와 새끼사슴[麛]이 제격인데 요리하는 기름은 성(腥)을 쓰고, 겨울에는 산 생선[鮮]과 기러기[羽]가 제격인데 요리하는 기름은 전(羶)을 쓴다. - 이 여덟 동물은 사시(四時)에 따라 각각 제철에 살지고 맛이 좋다. 동물의 기운이 매우 성대하기 때문에 쇠퇴한 기름을 쓰는 것이니, 이는 그 기운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 소 기름이 향(薌)이고, 개 기름이 조(臊)이고, 닭 기름이 성(腥)이고, 양 기름이 전(羶)이다. 거(腒)는 말린 꿩고기이고, 숙(鱐)은 말린 생선이다. 선(鮮)은 날 생선이고, 우(羽)는 기러기이다. ‘薌’은 독음이 향(香)이다. ‘腒’는 반절이 기(其)ㆍ거(居)인데, 후한(後漢)의 노식(盧植)은 “꿩고기 포이다.” 하였고, 《설문(說文)》에는 “북방에서는 말고기 포를 거(腒)라 한다.” 하였다. ‘鱐’은 어떤 본에는 포(脯)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소(所)ㆍ구(求)이다. ‘臊’는 반절이 소(素)ㆍ도(刀)이다. ‘麛’는 독음이 미(迷)이니, 새끼사슴이다. ‘腥’은 독음이 성(星)이니 닭 기름이며, 《설문》에는 성(星)으로 되어 있고, “개 기름 냄새이다.” 하였다. ‘羶’은 반절이 승(升)ㆍ연(然)이다. -
쇠고기 수[牛脩]와 사슴고기 포[鹿脯]와 멧돼지고기 포[田豕脯 밭 작물을 해치므로 전시(田豕)라 함]와 고라니고기 포[麋脯]와 노루고기 포[麕脯]가 있는데, 고라니, 사슴, 멧돼지, 노루는 모두 헌(軒 콩잎으로 들어서 날로 먹는 것)이 있고, 꿩과 토끼는 모두 모(芼 채소를 넣고 국을 끓이는 것)가 있다. - 수(脩)와 포(脯)는 모두 말린 고기이다. ‘軒’은 헌(憲)으로 읽는 데, 헌은 콩잎을 썰어 놓은 것이다. 모(芼)는 채소를 발효시킨 것이다. 헌(軒)은 어떤 본에는 반(胖)으로 되어 있다. ‘麕’은 반절이 구(九)ㆍ륜(倫)이며, 어떤 본에는 미(麋)로 되어 있고 어떤 본에는 균(麕)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의 전시(田豕) 다음에 보이는 균(麕)과 같다. ‘軒’은 독음이 헌(憲)이니, 주(註)에 나온다. 이하는 이와 동일하다. - 그리고 참새[爵], 세가락메추라기[鷃], 매미[蜩], 벌[范] 등 고기와 - 조(蜩)는 매미이고, 범(范)은 벌이다. ‘蜩’는 독음이 조(條)이고, ‘范’은 독음이 범(犯)이다. 범(范)은 누리[螽]이다. 종(螽)은 어떤 본에는 봉(蜂)으로 되어 있다. - 버섯[芝], 목이[栭], 마름[蔆], 호깨나무 열매[椇], 대추, 밤, 개암[榛], 감, 외, 복숭아, 오얏, 매실, 살구, 아가위[楂], 배, 생강, 계피 등 열매가 있다. - 능(蔆)은 마름이다. 구(椇)는 호깨나무이다. 구(椇)는 배 중에서 좋지 않은 품종이다. ‘쇠고기 수[牛脩]’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서른한 가지 음식물은 모두 임금이 평상시 먹는 음식에다 더 보태는 여러 가지 반찬이다. 《주례》를 보면, 천자의 반찬은 백스무 가지나 되어 기록하는 이가 이루 다 정리하여 적지 못하였다. ‘芝’는 독음이 지(之)이고, ‘栭’는 독음이 이(而)이다. 이(栭)는 어떤 본에는 연(檽)으로 되어 있다. ‘蔆’은 독음이 릉(陵)이다. ‘椇’는 독음이 구(矩)이다. ‘榛’은 반절이 측(側)ㆍ건(巾)이다. ‘柿’는 독음이 사(俟)이다. ‘楂’는 반절이 측(側)ㆍ가(加)이다. -

   대부는 연식(燕食 평상시 먹는 음식)에 회(膾)가 있으면 포(脯)가 없고 포가 있으면 회가 없으며, 사(士)는 탕(湯)과 산적[胾]을 겸하여 올리지 않으며, 서인(庶人)이라도 기로(耆老 60세 이상의 노인)는 반찬이 없는 밥을 먹지 않는다. - 존비(尊卑)에 따른 차등을 두는 것이다. -

   회는, 봄에는 파를 써서 조리하고 가을에는 겨자를 써서 조리한다. - 겨자란 겨자장[芥醬]을 말한다. - 새끼돼지고기[豚]는, 봄에는 부추를 써서 조리하고 가을에는 여뀌를 써서 조리한다. 지방[脂]이 많은 것은 파를 써서 조리하고, 기름[膏]이 많은 것은 염교[䪥]를 써서 조리한다. - 지(脂)란 비만하여 기름기가 엉긴 것이고, 고(膏)란 기름기가 풀린 것이다. ‘䪥’은 반절이 호(戶)ㆍ계(界)이니, 시속의 다른 본에 해(薤)로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다. - 삼생(三牲)은 볶은 수유[藙]를 써서 조리하고 - 의(藙)는 볶은 수유로, 한대(漢代)의 법률에 회계(會稽)에서 이것을 바치게 되어 있었다. 《이아(爾雅)》에는 의(藙)를 살(蔱)이라 하였다. ‘藙’는 반절이 어(魚)ㆍ기(氣)이다. - 맛을 조화하는 데는 초[醯]를 쓰며, - 가축은 집에서 기른 음식물과 서로 잘 조화되기 마련이다. 원문의 ‘和’은 반절이 호(戶)ㆍ와(臥)로 주(註)에 모두 같은데, 글자 그대로라고 한 주도 있다. ‘醯’는 반절이 호(呼)ㆍ혜(兮)로, 초이다. - 야생 짐승은 매실을 써서 조리한다. - 역시 야생 동식물끼리 잘 조화되는 것이다. - 메추라기 국, 닭고기 국, 세가락메추라기 찜은 여뀌를 잘게 썰어 넣고, - 원문의 양(釀)은 잘게 썰어 넣는 것이다. 윗글에서 세가락메추라기는 국 아래에 있는데, 그냥 찌고 국을 끓이지 않는다. 원문의 순갱계갱(鶉羹鷄羹)은 어떤 본에는 순계갱(鶉鷄羹)으로 되어 있다. - 방어[魴]와 연어[鱮]를 찌고 새새끼[雛]를 그슬러 굽고 꿩을 삶는 데는 향초[薌]를 쓰고 여뀌는 쓰지 않는다. - 향(薌)은 들깨의 일종이다. 원문의 소(燒)는 불에 그슬리는 것이다. ‘회는, 봄에는 파를 써서 조리하고’로부터 여기까지는 어떤 채소를 넣어 조리해야 제격인가를 말하였다. ‘魴’은 독음이 방(房)이고, ‘鱮’는 독음이 서(敍)이다. ‘烝’은 반절이 자(煮)ㆍ잉(仍)이다. ‘雛’ 자는 어떤 본에는 추(鶵)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사(仕)ㆍ구(俱) 또는 장(匠)ㆍ구(俱)이다. 하씨(賀氏)는 원문의 방서증추(魴鱮烝雛)에서 구두를 떼었다. 소(燒)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이며 또 다른 독음은 초(焦)이다. 원문의 치향(雉薌), 이 한 구절은 치향(雉鄕)으로도 읽으며, 여기서 구두를 떼어야 한다. -
새끼자라[雛鼈]는 먹지 않으며, 이리를 먹을 때는 창자를 버리고, 개를 먹을 때는 콩팥을 버리고, 너구리를 먹을 때는 등뼈를 버리고, 토끼를 먹을 때는 꽁무니를 버리고, 여우를 먹을 때는 머리를 버리고, 돼지를 먹을 때는 뇌를 버리고, 물고기를 먹을 때는 을(乙 아가미라고도 함)을 버리고, 자라를 먹을 때는 추(醜)를 버린다. - 모두 사람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추별(雛鼈)은 새끼자라이다. 을(乙)은 물고기의 몸 속에 있는 사람을 해치는 것의 명칭이다. 지금 동해에서 잡히는 용어(鰫魚)에게 을이란 이름의 뼈가 있는데, 눈 옆에 붙어 있고 그 형상이 전서(篆書)로 을(乙) 자 모양이며 이것을 먹으면 목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추(醜)는 자라의 항문[鼈竅]이다. 원문의 ‘去’는 반절이 기(起)ㆍ려(呂)이며, 이하 동일하다. ‘尻’는 반절이 고(苦)ㆍ도(刀)이고, ‘腦’는 반절이 여(如)ㆍ로(老)이다. -
   음식을 장만할 때, 짐승 고기는 ‘탈(脫)한다’ 하고, 물고기는 ‘작(作)한다’ 하고, 대추는 ‘신(新)한다’ 하고, 밤은 ‘찬(撰)한다’ 하고, 복숭아는 ‘담(膽)한다’ 하고, 배[柤梨]는 ‘찬(攢)한다’ 한다. - 모두 다듬고 가리는 것을 이른 말이다. ‘膽’은 반절이 정(丁)ㆍ감(敢)이다. ‘攢’은 반절이 재(再)ㆍ관(官)인데, 어떤 본에는 찬(鑽)으로 되어 있다. -
   소가 밤에 울면 그 고기는 악취[庮]가 나고, 양이 영모(泠毛)와 취모(毳毛)가 되면 그 고기는 누린내가 나고, 개가 넙적다리가 붉고 행동이 방정맞으면 그 고기는 누린내가 나고, 새가 표색(皫色)되고 울부짖듯이 울면 그 고기는 썩은 냄새[鬱]가 나고, 돼지가 멀리 바라보고 속눈썹이 엇갈리면 그 고기는 성(星)이 있고, 말이 등이 검고 반비(般臂)이면 그 고기는 땅강아지 냄새가 나며, 새새끼의 꼬리가 한 줌이 채 되지 않으면 먹지 않고, 서안(舒雁)의 꼬리 고기[翠], 고니와 올빼미의 옆구리 고기[胖], 서부(舒鳧)의 꼬리 고기, 닭의 간, 기러기의 콩팥, 너새의 비장, 사슴의 위장 역시 먹지 않는다. - 이러한 것들 역시 사람에게 해롭다. 유(庮)는 악취이니, 《춘추전》에 “하나는 향취이고, 하나는 악취이다.[一薰一庮]”라 하였다. 원문의 영모(泠毛)와 취모(毳毛)는 털이 엉키어 풀어지지 않는 것이다. ‘넙적다리가 붉다’는 것은 넙적다리 안쪽에 털이 없는 것이다. 표색(皫色)은 털빛이 변한 것이다. 원문의 사(沙)는 울부짖을 시(嘶)와 같고, 울(鬱)은 썩은 냄새이다. 원문의 망시(望視)는 멀리 바라보는 것이고, 성(腥)은 성(星)이 되어야 옳으니, 성음상의 착오이다. 성(星)은 고기 속에 있는 쌀알 같은 것이다. 반비(般臂)는 앞 정강이가 얼룩빼기인 것이다. 원문의 누(漏)는 누(螻)가 되어야 옳으니, 땅강아지의 냄새와 같은 것이다. 서안(舒雁)은 거위이다. 취(翠)는 꼬리 고기이다. 원문의 곡효반(鵠鴞胖)의 반(胖)은 옆구리 부위의 얇은 고기이다. 서부(舒鳧)는 오리이다. 원문의 보오(駂奧)의 오(奧)는 비장이다. 원문의 곡(鵠)은 어떤 본에는 치(鴩)로 되어 있다.‘庮’는 독음이 유(由)이다. ‘泠’은 독음이 령(零)이니, 털이 마치 양탄자처럼 엉킨 것이다. ‘毳’는 반절이 창(昌)ㆍ예(銳)이다. ‘躁’는 반절이 조(早)ㆍ보(報)이다. 표(皫)는 어떤 본에는 표(麃)로 되어 있는데, 유창종(劉昌宗)에 의하면 반절이 보(普)ㆍ보(保)이고,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방(芳)ㆍ표(表) 또는 보(普)ㆍ표(表)이다. 원문의 사(沙)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이며, 또 다른 독음은 반절이 소(所)ㆍ가(嫁)이니, 주(註)에도 동일하다. 원문의 ‘睫’은 독음이 접(接)이고, 성(腥)은 주(註)에 의거하여 성(星)으로 고쳤다. 《설문》에 이르기를, “성성(腥星)은 돼지고기를 먹다 보면 나오는데, 고기 속에 생기는 작은 냄새나는 고깃덩이이다.” 하였고, 《자림(字林)》에서는 반절이 선(先)ㆍ정(定)이라 하였다. ‘般’은 독음이 반(班)이고, 비(臂)는 어떤 본에는 벽(擘)으로 되어 있으며 반절은 필(必)ㆍ피(避)인데,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방(方)ㆍ피(避)이다. ‘漏’는 주(註)에 의하면 독음이 루(螻)이며, 반절은 력(力)ㆍ사(俟)이다. ‘鵠’은 반절이 호(胡)ㆍ독(篤)이고, ‘鴞’는 반절이 우(吁)ㆍ교(驕)이다. ‘胖’은 독음이 판(判)이고, ‘駂’는 독음이 보(保)이다. ‘奧’는 반절이 어(於)ㆍ륙(六)이다. ‘胃’는 독음이 위(謂)이며, 어떤 본에는 글자를 위(謂)로 적어 놓은 곳도 있는데, 뜻은 같다. -

   날고기를 잘게 썬 것은 회(膾)이고, 크게 썬 것은 헌(軒)이다. - 크게 썰고 작게 써는 데 따라 명칭이 달라짐을 말했다. 회를 만들려면 반드시 먼저 헌을 하여야 하니, 이른바 “얇게 저민 다음 썬다.[聶而切之]”는 것이다. ‘腥’은 독음이 성(星)인데, 《자림(字林)》에는 ‘胜’으로 적혀 있으며, 그 뜻은 익히지 않은 고기이고, 반절은 선(先)ㆍ정(丁)으로 되어 있다. - 혹자는 이르기를, “고라니, 사슴, 물고기는 저(菹)를 하고, 노루는 벽계(辟雞)를 하고, 멧돼지는 헌(軒)을 하고, 토끼는 완비(宛脾)를 하는데, 파와 염교를 썰어서 고기와 함께 초[醯]에 담가 두어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하였다. - 여기서 헌, 벽계, 완비는 모두 김치[菹]의 종류이니, 채소를 담그고 초로 부드럽게 함으로써 날고기와 그 기운을 죽이는 것이다. 오늘날 익주(益州)에 녹위(鹿?)라는 것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만든다. 저(菹)와 헌은 얇게 저미기만 할 뿐 잘게 썰지는 않으며, 벽계와 완비는 얇게 저민 다음 잘게 썬다. 헌은 어떤 본에는 반(胖)으로 되어 있고, 완(宛)은 어떤 본에는 울(鬱)로 되어 있다. ‘麕’은 반절이 구(九)ㆍ륜(倫)이고, ‘辟’은 반절이 필(必)ㆍ익(益)인데,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방(芳)ㆍ익(益)이며 주(註)에도 동일하다. ‘宛’은 반절이 우(于)ㆍ만(晩)이다. ‘脾’는 반절이 비(卑)ㆍ지(支)이다. ‘醯’는 서씨(徐氏)에 의하면 반절이 호(呼)ㆍ자(子)이고, 어떤 본에는 해(醢)로 되어 있다. ‘?’는 반절이 어(於)ㆍ위(僞)이다. 익주 사람이 사슴을 죽인 다음 땅속에 묻어 냄새를 없앤 뒤에 먹는 것을 이름하여 녹위(鹿?)라 하는데, 바로 이것이다. -
   국과 밥은 제후로부터 아래로 서인에 이르기까지 차등이 없다. - 국과 밥은 음식의 주(主)이다. 서수(庶羞)라야 차등이 있다. ‘食’는 독음이 사(嗣)이며, 주(註)에는 갱사(羹食)와 아래의 사찰(食札)이 같다고 하였다. - 대부는 질선(秩膳)이 없으니, - 오십 살에 처음 벼슬에 임명되어 아직 그리 늙지 않은 이를 말한다. 질(秩)은 상(常)이다. - 대부는 칠십 세가 되어야 각(閣)을 둘 수 있다. - 질선을 두는 것이다. 각은 판(板)으로 만든 것으로 음식물을 올려 놓는 시렁이다. -
   천자의 각은 좌측 달(達)에 다섯 개, 우측 달에 다섯 개가 있고, 공(公), 후(侯), 백(伯)은 방(房) 안에 다섯 개가 있고, 대부는 각에 세 개가 있고, 사(士)는 점(坫)에 한 개가 있다. - 달(達)은 협실(夾室)이다. 대부는 각에 있다고 하였으니 장소는 천자와 같으나, 천자는 다섯 개씩 두 곳에 있으므로 숫자는 대부의 배가 된다. 여기서 다섯이란 삼생(三牲)의 고기 및 생선과 포를 놓는 곳이다. ‘坫’은 반절이 정(丁)ㆍ념(念)이다. -

   예(禮)는 부부 사이를 삼가는 데서 비롯하니, 따라서 궁실(宮室)을 짓되 밖과 안을 분변해야 한다. 그리하여 남자는 바깥채에 거처하고 여자는 안채에 거처하며, 궁을 깊게 하고 문을 견고하게 한 다음 혼시(閽寺)가 지키고서, 남자는 안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여자는 바깥채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 혼(閽)은 중문(中門)을 지키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시(寺)는 내인(內人)의 금령(禁令)을 맡은 사람이다. ‘閽’은 독음이 혼(昏)이다. -
   남자와 여자는 옷을 거는 횃대[椸枷]를 같이 쓰지 않는다. 아내의 옷을 감히 남편의 횃대[楎椸]에 걸지 못하며, 남편의 옷상자에 넣지 못하며, 뿐만 아니라 감히 욕실을 같이 쓰지 못한다. - 장대[竿]로 만든 것을 이(椸)라 한다. 휘(楎)는 세워 놓은 것이다. 이(椸)는 어떤 본에는 이(杝)로 되어 있으며, 반절은 이(以)ㆍ지(支)이다. ‘枷’는 독음이 가(嫁)이다. 원문의 ‘縣’은 독음이 현(玄)이고, ‘楎’는 독음이 휘(輝)이며, ‘笥’는 반절이 식(息)ㆍ이(吏)이다. - 남편이 부재(不在) 중일 때는 베개를 상자에 거두어 넣고 삿자리와 돗자리는 싸서 잘 간직해 둔다. - 감히 설만하지 않는 것이다. - 젊은이는 어른을 섬기고 천한 이는 귀한 이를 섬기되 모두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 원문의 함(咸)은 모두의 뜻이다. -
   부부의 예(禮)는, 오직 칠십 살이 되어야 부부가 한 곳에 거처하고 서로 아무런 허물이 없다. - 노쇠하여 아무런 흉허물이 없는 것이다. 원문의 급(及)은 지(至)와 같다. 원문의 간(間) 자는, 서씨(徐氏)는 끼어든다[間廁]는 뜻의 간(間) 자라 하였고, 황씨(皇氏)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라고 하였다. - 그러므로 첩은 비록 늙었더라도 나이가 오십이 차지 않으면 반드시 5일의 시어(侍御)에 참여한다. - 오십이 되면 비로소 노쇠하기 시작하여 임신하지 못하므로, 첩은 문을 닫고 시어하러 나가지 않는다. 여기서의 시어는 밤에 모시고 휴식을 돕는 것이다. 5일 만에 한 번 시어하는 것은 제후의 예제(禮制)이다. 제후는 아홉 여인을 취하는데, 질제(姪娣) 여섯 사람이 둘이 한 조가 되어 하루씩 도합 3일을 시침하고, 따라서 다음 차례인 두 잉첩(媵妾)은 4일 만에 시어하고, 따라서 그 다음 차례인 부인(夫人)은 혼자서 시침하되 5일 만에 차례가 돌아오게 된다. 천자의 경우엔, 15일 만에 한 번 시침할 순번이 돌아온다. 원문에 연미오십(年未五十)은 어떤 본에는 연미만오십(年未滿五十)으로 되어 있다. 원문의 ‘與’는 독음이 예(預)이다. 천자의 후(后)는 매일 저녁 왕을 진알(進謁)하니, 이는 내치(內治)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5일 만에 한 번 빈(嬪)을 목욕시켜 진알하게 하니 도합 45일 만에 아홉 명의 빈이 모두 왕을 뵙게 된다. 따라서 한 철에는 두 번 뵙고 한 해에는 여덟 번 뵙는 셈이 된다. 제후와 대부 이하는 모두 5일 만에 한 번 시침하는 예제(禮制)를 쓴다. - 시어할 사람은 재계하고 양치하고 옷을 빨고 의복을 신중히 입고 머리를 빗고 사(縰)를 하고 비녀를 지르고 총(總)을 하고 모(髦)를 털고 향낭[纓]을 매달고 신들메를 묶는다. - 그 가는 차비가 조회할 때와 같다. 원문의 각(角)은 연자(衍字)이다. 원문의 불모(拂髦)는 어떤 본에는 무모(繆髦)로 되어 있다. 원문의 ‘齊’는 반절이 쟁(爭)ㆍ개(皆)이며, 이하 동일하다. ‘澣’은 독음이 완(浣)이다. - 비록 비첩(婢妾)이라 하더라도, 의복과 음식을 반드시 어른의 뒤에 하며, - 사람이 비록 비천하다 하더라도 예(禮)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원문의 후(後)는 반절이 호(胡)ㆍ수(竪)이다. - 처(妻)가 부재 중일 때는 첩(妾)이 시어하되 감히 처가 시어할 밤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 여군(女君)이 시어할 날을 피하는 것이다. -

   아내가 아이를 낳을 산달이 되면 측실(側室)에 거처하며, - 측실이란 협실(夾室)을 말하니, 연침(燕寢)의 곁에 있다. - 남편이 사람을 시켜 날마다 두 차례씩 문안하고 작(作)하면 친히 가서 안부를 묻는데, 이때 아내는 감히 직접 남편을 그냥 뵙지 못하고 무(姆)를 시켜 의복을 갖추게 하고 접대하며,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이 다시 사람을 시켜 날마다 두 차례 문안하게 한다. - 작(作)이란 태아가 움직이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원문의 ‘見’은 반절이 현(賢)ㆍ편(徧)이니, 이하 및 주(註)에서도 동일하다. ‘姆’는 독음이 무(茂)이고 《자림(字林)》에는 반절이 망(亡)ㆍ우(又)로 되어 있으니 여사(女師)이며, 또 다른 독음은 모(母)이고 또 다른 독음은 반절이 기(己)ㆍ구(久)이다. - 다만 남편이 재계 중일 때는 측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는 사람을 시켜 묻는다. -
   아이가 태어나, 남자이면 문 좌측에 활을 걸고 여자이면 문 우측에 수건을 건다. - 남녀를 표시하는 것이다. 활을 거는 것은 장차 무(武)를 일삼음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요, 수건을 거는 것은 장차 남편의 패건(佩巾)을 시중드는 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비로소 아이를 안는데, 남자면 활을 쏘고 여자면 활을 쏘지 않는다. - 처음으로 무(武)에 관한 일이 있는 것이다. 원문의 부(負)란 안고서 앞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

   국군(國君)의 세자(世子)가 출생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면 태뢰(太牢)로써 접(接)하되, 재부(宰夫)가 예를 베푸는 음식을 장만한다. - 원문의 접(接)은 첩(捷)으로 읽으니, 첩은 이기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산모의 허한 원기를 보강하는 것이다. ‘接’은 주(註)에 의거하여 ‘捷’으로 읽으니, 반절은 칠(七)ㆍ첩(捷)이다. 아래 ‘接’ 자도 동일하다. - 3일 만에 사(士)를 점쳐서 길(吉)한 이가 재숙(齊宿)한 다음 조복(朝服)을 입고 침문(寢門) 밖에서 아기를 받아서 안는다. 이때 활쏘는 사람이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을 메겨 천지 사방을 향해 여섯 번 쏘면, - 원문의 시(詩)는 받을 승(承) 자와 같다.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은 본래 태곳적 것이다. 천지와 사방은 남자가 일을 할 곳이다. ‘射’은 반절이 식(食)ㆍ역(亦)이다. - 보(保)가 아기를 받아서 안고 - 사(士) 대신 안는 것이다. 보(保)는 보모(保母)이다. - 이어 재부가 아기를 안았던 사를 예우(禮遇)하여 속백(束帛)을 하사한다. - 원문의 예(醴)는 예(禮)가 되어야 옳으니, 성음상의 착오이다. 한 번 술을 올리는 예(禮)로 예우하고 폐백으로 답하는 것이다. - 그런 다음 사(士)의 처(妻)와 대부의 첩을 점쳐서 그 중 아이가 없는 이로 하여금 아기를 젖먹여 기르게 한다. - 아이를 젖먹여 기르는 일은 군첩(君妾)에게 시키지 않으니, 적첩(適妾)은 대등한 신분[敵義]이므로 수고롭고 욕된 일로 설만히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士)의 처와 대부의 첩을 점치는 것은 때로 자기 자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무릇 아기를 접(接)하되 택일(擇日)해야 하는데, - 비록 3일 내라고 할지라도 존비(尊卑)를 막론하고 모두 반드시 그 중 길일을 가려야 하는 것이다. 주자는 이르기를, “살펴보건대, 이 대목은 위의 장(章)과 같지 않으니, 혹 별도로 이문(異聞)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였다. - 총자(冢子)는 태뢰로 한다. - 총자는 천자의 세자이다. 총(冢)은 대(大)이니, 총자는 장자(長子)와 같다. 아래에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 서인은 특돈(特豚)으로 하고, 사(士)는 특시(特豕)로 하고, 대부는 소뢰(少牢)로 하고, 국군(國君)의 세자는 태뢰로 하니, - 모두 장자(長子)를 이른다. - 총자가 아니면 모두 한 등급을 낮춘다. - 총자의 아우 및 여러 첩들의 소생을 이른다. 천자와 제후의 경우엔 소뢰로 하고, 대부의 경우엔 특시로 하고, 사(士)일 경우엔 특돈으로 하고, 서인 역시 특돈으로 한다. -

   궁중에 따로 아이의 거실을 마련하고 - 특별히 한 곳을 소제하고 거처하게 하는 것이다. - 제모(諸母)와 다른 좋은 사람들 중에서 고르되, 반드시 너그럽고 자애롭고 온순하고 공경스럽고 신중하여 말이 적은 이를 구하여 아이의 스승으로 삼으며, 그 다음은 자모(慈母)로 삼고 그 다음은 보모(保母)로 삼아, 모두 아이의 거실에 거처하게 하고 - 이것이 임금이 자식을 기르는 예(禮)이다. 제모(諸母)는 여러 첩이다. ‘다른 좋은 사람’이란 부어(傅御)의 유속(類屬)이다. 아이의 스승은 착한 도리를 교시(敎示)하는 일을 맡고, 자모는 아이의 기욕(嗜慾)을 아는 일을 맡고, 보모는 아이를 편안하게 하는 일을 맡는다. 사(士)의 처(妻)는 아이에게 젖을 먹일 뿐이다. 주자는 이르기를, “살펴보건대, 《열녀전(列女傳)》에 ‘다른 좋은 사람은 아(阿)로 삼는다.’ 하였으니, 바로 이른바 아보(阿保)이며, 《후한서(後漢書)》에는 아모(阿母)란 말이 있다. 이 경문(經文)을 상세히 살펴보건대, 정현(鄭玄)이 주(註)를 낼 때에는 글자가 아직 착오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하였다. - 다른 사람은 일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 아이의 정기(精氣)가 미약하여 행여 놀랄까 염려해서이다. -

   아이가 출생한 지 3개월 만에 택일(擇日)하여 머리털을 잘라 타(鬌)를 만들되, 남자는 각(角)을 만들고 여자는 기(羈)를 만들며, 그렇지 않으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상투를 묶는다. - 원문의 타(鬌)는 머리털을 다 깎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이다. 머리털을 정수리[囟] 양쪽에 두 가닥으로 묶은 것을 각(角)이라 하고, 종횡으로 엇갈려 묶은 것을 기(羈)라 한다. ‘鬌’는 반절이 정(丁)ㆍ과(果)인데, 서씨(徐氏)는 반절이 대(大)ㆍ과(果)라 하였다. ‘囟’은 독음이 신(信)이다. - 이날 아내가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이면, 귀인은 의복을 만들고 명사(命士) 이하는 모두 옷을 세탁한 다음 - 귀인은 대부 이상이다. 원문의 유(由)는 자(自)의 뜻이다. - 남녀가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의복을 입으며, 갖추는 음식은 삭식(朔食)에 준하여 한다. - 삭식은, 천자는 태뢰이고, 제후는 소뢰이고, 대부는 특시(特豕)이고, 사(士)는 특돈(特豚)이다. - 이때 지아비가 문으로 들어가 조계(阼階)로부터 올라가 조(阼 동쪽 계단)에 서되 서쪽을 향하면, 아내는 아이를 안고 방으로부터 나와 문미(門楣)에 동쪽을 향하여 선다. - 여기서 지아비가 들어가는 문은 측실의 문이다. 대부 이하가 측실로 가서 아이를 보고 내침(內寢)에서 첩(妾)을 보는 것은 임금을 피하는 뜻에서이다. ‘楣’는 독음이 미(眉)이다. -

   무(姆)가 먼저 아내 대신 말하기를,
“어미 아무개가 감히 오늘을 택하여 공경히 아이를 보이옵니다.”
하면, - 아무개란 아내의 성(姓)이니, 이를테면 강씨(姜氏)와 같은 것이다. 원문의 지(祗)는 공경의 뜻인데, 어떤 본에는 진(振)으로 되어 있다. 원문의 ‘相’은 반절이 식(息)ㆍ량(亮)이다. - 지아비가 대답하기를,
“공경히 잘 가르쳐 착한 길을 따르게 하시오.”
한 다음 아이의 오른손을 잡고 웃음을 띠고 이름을 지어 준다. - 원문의 흠(欽)은 공경하는 것이고, 솔(帥)은 따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르침을 공경히 하여 착한 길을 따르게 하라는 것이다. 오른손을 잡는 것은 장차 일을 전수(傳授)할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咳’ 자는 ‘孩’로도 쓰니, 반절은 호(戶)ㆍ재(才)이다. - 그러면 아내는 대답하기를,
“잘 기억하여 덕(德)을 이루게 하겠습니다.”
하고, 좌측으로 돌아 스승에게 아이를 넘겨 준다. - 원문의 기(記)는 기억할 지(識)와 같으니, 지아비의 말을 잘 기억하여 덕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승은 아이의 스승이다. 원문의 ‘還’은 독음이 선(旋)이니, 도는 것이다. - 그러면 아이의 스승은 제부(諸婦)와 제모(諸母)에게 두루 아이의 이름을 말해 주고, - 나중에 제모에게 이름을 말해 주는 것은 존자(尊者)에게서 이름을 이루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辯’은 독음이 편(遍)이니, 이하 동일하다. - 아내는 침실로 간다. - 다시 지아비의 침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어 지아비가 재(宰)에게 아이의 이름을 알려 주면 재는 제남(諸男)에게 두루 아이의 이름을 알려 주고는, “모년 모월 모일에 아무개가 태어났다.”고 간책(簡册)에 적어서 갈무리한다. - 재(宰)는 속리(屬吏)를 이른다. 《춘추》에 “환공 6년 9월 정묘에 아들 동이 출생했다.[桓六年九月丁卯子同生]”고 적은 것이 이러한 예(例)이다. - 그런 다음 재가 여사(閭史)에 알려 주면 여사는 두 장에 써서 한 장은 여부(閭府)에 갈무리하고, 다른 한 장은 주사(州史)에게 바친다. 그러면 주사는 주백(州伯)에게 바치고, 주백은 주부(州府)에 보관하라고 명한다. - 4려(閭)가 족(族)이니, 족은 백 가(家)이다. 여서(閭胥)는 중사(中士) 한 사람이다. 5당(黨)이 주(州)이니, 주는 2천 5백 가(家)이다. 주의 장(長)은 중대부 한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모두 속리(屬吏)가 있다. 원문의 헌(獻)은 언(言)과 같다. -

   그런 다음 지아비가 들어가 밥을 먹되 봉양(奉養)하는 예(禮)와 같이 한다. - 지아비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아이를 보고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와 더불어 식사를 하되, 며느리가 처음 시부모에게 음식을 봉양하는 예(禮)와 같이 한다. -
세자가 출생하면 임금은 목욕을 하고 조복을 입고, 부인 또한 이와 같이 하고서, 모두 조계(阼階)에 서쪽을 향하고 선다. 이때 세부(世婦)가 아이를 안고서 서쪽 계단으로부터 올라오면 임금이 아이를 명명(命名)한 다음 내려간다. - 아이가 서쪽 계단으로부터 올라왔다면 임금은 세자를 노침(路寢)에서 접견해야 하고, 첩의 아이를 접견할 때는 측실로 간다. 무릇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측실로 가며, 제후의 부인은 제후를 알현한 다음 단의(褖衣)를 입는다. -

   적자(適子)와 서자(庶子)들은 모두 외침(外寢)에서 접견하는데, 이때 임금은 머리를 어루만지고 웃으며 명명(命名)하되, 예(禮)는 처음 세자 때와 같이 하고 언사(言辭)는 없다. - 여기서 적자는 세자의 아우를 이른다. 서자는 첩의 아이이다. 외침은 임금의 연침(燕寢)이다. ‘언사가 없다’는 것은 “공경히 잘 가르쳐 착한 길을 따르게 하시오.”라든가 “잘 기억하여 덕(德)을 이루게 하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適’은 반절이 정(丁)ㆍ력(歷)이니, 주(註) 및 이하 동일하다. 세자의 아우는 외침에서 접견한다. 서자는 측실에서 접견하는데, 단지 머리를 어루만지고 웃으며 명명(命名)하되 언사가 없는 점이 아우와 같기에, 서자를 적자와 이어서 쓴 것이다. 주자는 “아래 글에서 다시 서자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서자(庶子)는 아무래도 연자(衍字)일 것이다. 아니면 적자의 다음을 이름하여 적자서자(適子庶子)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였다. -

   무릇 이름을 지을 때는 해와 달로써 하지 않고, 나라 이름으로써 하지 않고, - 휘(諱)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은질(隱疾)로써 하지 않으며, - 옷에 가리워진 부위의 질병을 말하기 꺼려서이니, 치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대부와 사의 아들은 감히 세자와 이름이 같을 수 없다. - 세자를 높이는 뜻에서이다. 그러나 세자보다 먼저 태어난 아들일 경우엔 굳이 고치지 않는다. -

   첩이 아이를 낳으려 할 때 산달이 되면 지아비가 사람을 시켜 매일 1회 안부를 물으며,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째 되는 월말(月末)에 그 어미가 옷을 빨아 입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재계한 다음 아이를 내침(內寢)으로 데리고 가서 아버지에게 보이되, 그때의 예(禮)는 처음 입실(入室)할 때와 같이 한다. 그리고 임금이 음식을 다 먹고 상을 물려서 아이를 낳은 첩에게 특준(特餕)을 먹게 하며, 그런 다음 이 첩은 시침(侍寢)하게 된다. - 내침은 적처(嫡妻)의 침실이다. 여기서 예(禮)란 이미 아이를 본 다음 지아비가 음식을 먹은 뒤 첩에게 홀로 대궁[餕]을 먹게 하는 것이 처음 시집올 때와 같이 하는 것이니, 처음 시집올 때 첩이 지아비의 대궁을 먹는 것이 역시 이와 같다. 이미 아이를 아이의 아버지인 지아비에게 보이고 나면 시침할 수 있다. 여기서는 대부와 사(士)의 첩을 두고 한 말이다. 무릇 첩은 지아비를 군(君)이라 호칭한다. 원문의 삼월지말(三月之末)은 어떤 본에는 자생삼월지말(子生三月之末)로 되어 있다. -

   공의 서자(庶子)가 태어날 때는 산모를 측실로 가게 하며,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째 월말에 그 어미가 목욕하고 조복(朝服)을 입고서 아이를 그 아버지인 임금에게 보인다. 이때 빈자(擯者)가 그 아이를 임금에게 보이면, 아이를 낳은 첩이 총애받는 이일 경우엔 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고 그렇지 않은 중첩(衆妾)의 아이일 경우에는 유사(有司)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한다. - 빈자는 부(傅)와 무(姆)와 같은 이들이다. 임금은 존귀하므로 비록 첩의 아이라 할지라도 안지 않는다.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임금에게 은혜를 받음을 말한다. 유사란 신하로서 일을 맡은 사람이다. 노 환공(魯桓公)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신수(申繻)에게 물은 사례가 있다. -

   서인으로 측실이 없는 이는 산달 초하루에 지아비가 군실(群室)로 나가서 거처하되, 산모의 안부를 묻는 일과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이는 예(禮)는 다름이 없다. - 지아비가 비록 거처를 피하기는 하지만 아내의 안부를 묻는 일과 아이를 보이는 예는 작위(爵位)가 있는 이와 같다. 서인은 혹 첩이 없기도 하다. -

   무릇 지아비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으면 손자를 조부에게 보이고 조부가 이름을 짓되, 그 예(禮)는 자식을 아버지에게 보일 때와 같고 아이를 주고 받을 때 하는 말은 없다. - 아이를 조부에게 보이는 것은 집안이 그 집안에서 제일 높은 이에 의해 통솔되기 때문이다. 지아비의 아버지가 생존했을 경우엔 아이를 주고 받을 때 하는 말이 없으며, 적자(適子)는 있고 적손(適孫)이 없을 경우엔 서자를 볼 때의 예와 같다. 지아비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적손이 있으면 아이를 주고받을 때 하는 말이 있으니, 총자(冢子)를 볼 때와 같다. 지아비의 아버지가 사망했더라도 서손(庶孫)일 경우엔 아이를 주고받을 때 하는 말이 없다. -

   아이를 기르는 이는 삼 년 만에 궁(宮)에서 나오는데, 공궁(公宮)으로 가서 임금을 뵈면 임금이 그 동안의 수고를 위로한다. - 원문의 구(劬)는 위로하는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이’란 사(士)의 처(妻)와 대부의 첩으로 임금의 아이를 삼 년 동안 먹인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임금이 위로하고 은사(恩賜)를 내리는 것이다. 원문의 ‘食’는 독음이 사(嗣)이니, 주(註)와 아랫글에 보이는 ‘食母’도 마찬가지이다. - 대부의 자식일 경우엔 사모(食母)를 두고 - 부어(傅御)들 중에서 사모를 고르니,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이른바 유모(乳母)가 이것이다. - 사의 처는 직접 자기 아이를 기른다. - 신분이 미천하여 감히 남을 부릴 수 없는 것이다. -

   명사(命士) 이상 및 대부의 아들은 함께 아버지를 뵙게 한다. - 원문의 순(旬)은 응당 균(均)이 되어야 옳으니, 성음(聲音)상의 착오이다. 적실(適室)과 첩이 동시에 아이를 낳을 경우이다. ‘아들을 함께 아버지에게 보인다’는 것은 태어난 시기의 선후에 따라 뵙게 하는 것이다. 아이를 본 다음에 예식(禮食)을 하는 것은 임금의 예(禮)를 피하는 것이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곤(坤)은 균(均)이다.” 하였다. 지금은 어떤 본에는 순(旬)으로 되어 있다. ‘旬’은 독음이 균(均)이니, 주(註)에 나온다. - 총자(冢子)는 예식(禮食)하기 전에 보는데, 반드시 그 오른손을 잡으며, 적자와 서자는 예식한 뒤에 보는데 반드시 그 머리를 쓰다듬는다. - 천자와 제후는 특별히 세자(世子)를 존귀하게 여기니, 비록 어머니가 같더라도 예(禮)는 다르다. 예식을 하기 전에 보는 것과 예식을 한 뒤에 보는 것은 적자(適子)를 우선하고 서자(庶子)를 뒤로 하는 뜻에서이다. -

   자식이 능히 음식을 먹을 수 있거든 오른손을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능히 말을 할 수 있거든 남자는 유(唯 빨리 응답하는 소리), 여자는 유(兪 완곡히 응답하는 소리)라고 대답하게 하며, 남자는 가죽 주머니를 차게 하고 여자는 비단 주머니를 차게 한다. - 유(兪)는 응답하는 것이다. 원문의 반(鞶)은 작은 주머니로 수건을 담는 것인데 남자용은 털을 벗긴 가죽으로 만들고 여자용은 비단으로 만들며, 가선을 둘러 장식하면 이는 반열(鞶裂)이다. 《시경》 도인사(都人士)에 “띠를 드리워 늘어뜨렸도다.[垂帶而厲]” 하였고, 《춘추》에 보이는 인물인 기자백(紀子帛)의 이름이 열수(裂繻)이고 보면, 글자는 오늘날 서로 달라도 뜻은 기실 같다. 원문의 ‘食食’의 윗자는 글자 그대로 식(食)으로 읽고 아랫자는 독음이 사(嗣)이다. ‘唯’는 반절이 우(于)ㆍ계(癸)인데 서씨(徐氏)는 반절이 이(以)ㆍ수(水)라 하였고, ‘兪’는 반절이 이(以)ㆍ주(朱)이고, ‘鞶’은 반절이 보(步)ㆍ우(于)이다. -

   자식이 자라서 여섯 살이 되면 숫자와 방위의 명칭을 가르친다. - 방위의 명칭이란 동서(東西)와 같은 것이다. -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지 않으며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다. - 남녀의 분별(分別)을 일찍 하는 것이다. -
여덟 살이 되면 문호(門戶)를 출입하거나 자리에 나아가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어른보다 나중에 하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겸양을 가르친다. - 염치를 차리는 법을 보이는 것이다. 원문의 ‘後’는 반절이 호(胡)ㆍ두(豆)이다. -
아홉 살이 되면 날을 헤아리는 법을 가르친다. - 날이란 삭망(朔望)과 육갑(六甲)이다. 원문의 ‘數’는 반절이 소(所)ㆍ주(主)이다. -
열 살이 되면 외부(外傅)에게 취학(就學)하여 밖에서 기숙(寄宿)하며 육서(六書)와 계수(計數)를 배우는 한편, 옷은 비단으로 핫옷과 고의를 지어 입지 않으며, 예절을 처음 배운 대로 준행(遵行)하며, 아침저녁으로 어린이의 예의(禮儀)를 배우되 간량(簡諒)한 일로 청하여 익혀야 한다. - 외부(外傅)란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비단으로 핫옷과 고의를 지어 입지 않는 것은 너무 따스하여 음기(陰氣)를 손상할까 염려해서이다. ‘예절을 처음 배운 대로 준행한다’는 것은 전날 배운 바에 따라 익히는 것이다. 원문의 이(肄)는 익히는 것이고, 양(諒)은 신실한 것이다. ‘간이한 일을 청하여 익힌다는 것’은 육서(六書)의 편수(篇數)를 뜻하고, ‘신실한 일을 청하여 익힌다는 것’은 부름에 응대(應對)하는 말을 뜻한다. 원문의 ‘襦’는 어떤 본에는 도(禱)로 되어 있는데 독음은 유(儒)이며, ‘袴’는 반절이 고(苦)ㆍ고(故)이며, ‘肆’는 어떤 본에는 ‘肄’로 되어 있는데 모두 반절이 이(以)ㆍ이(二)이다. 살펴보건대, 여기서 ‘청한다’는 것은 어른에게 스스로 청하도록 시키는 것이고, 간량(簡諒)이란 간이(簡易)하고 질신(質信)한 것이다. -
열세 살이 되면 음악을 배우고 시(詩)를 외우며, 작(勺)으로 춤춘다. 그리고 성동(成童)이 되면 상(象)으로 춤추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운다. - 먼저 작(勺)을 배우고 나중에 상(象)을 배우는 것은 문(文)과 무(武)의 순서이다. 성동(成童)은 15세 이상이다. -
스무 살이 되면 관(冠)을 쓰고 비로소 예를 배우며, 갖옷과 비단옷을 입으며, 대하(大夏)를 추며, 효도와 공경을 도타이 행하며, 널리 배우고 가르치지 않으며, 마음속에 온축하고 표현하지 않는다. - 대하(大夏)는 문(文)과 무(武)가 갖추어진 음악이다. ‘마음속에 온축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사려가 깊은 것을 뜻한다. 원문의 ‘冠’은 반절이 고(古)ㆍ란(亂)이고, ‘衣’는 반절이 어(於)ㆍ기(旣)이다. 원문의 ‘行’은 글자 그대로 행(行)으로 읽는데, 또한 반절이 하(下)ㆍ맹(孟)이다. 원문의 ‘弟’는 독음이 제(悌)이다. 살펴보건대 ‘가르치지 않으며’라는 것은 남의 스승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갑자기 일을 맡지 않는다는 뜻이다. -
   서른 살이 되면 실(室)을 두어 비로소 남자의 일을 하고 널리 배워 방소(方所)를 두지 않으며, 벗과 손순(遜順)히 사귀되 그 뜻을 보아야 한다. - 실(室)은 아내와 같다. ‘남자의 일’이란 논밭을 받아 경작하고 부역을 하는 것이다. 방소란 일정한 곳이다. 이때에 이르면 배움에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뜻에 좋은 바대로 따른다. 원문의 손(孫)은 순(順)의 뜻이니, 벗에게 손순히 대하되 그 지향(志向)을 보는 것이다. ‘孫’은 독음이 손(遜)이니, 주(註)에도 같다. 살펴보건대, ‘뜻을 살펴본다’는 것은 벗의 뜻이 향하는 바를 보아 취사(取捨)하여, 소인과 사귀지 않는 것이다. -
   마흔 살이 되면 비로소 벼슬하여 일을 떳떳이 하며, 계획을 내고 사려(思慮)를 내되 도가 합하면 따라 일을 하고 불가(不可)하거든 떠나야 한다. - 방(方)은 떳떳한 것이다. 물(物)은 일이다. 원문의 거(去)는 독음이 글자 그대로이다. 살펴보건대, 방(方)은 분(分)과 같고 향(向)과 같으니, 사려(思慮)가 자기 지위(地位)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
쉰 살이 되면 명(命)으로 대부가 되어 관정(官政)을 맡아 본다. - 한 벼슬의 일을 통괄하는 것이다. -
일흔 살이 되면 치사(致事)한다. - 맡은 일을 임금에게 돌려주고 늙었음을 고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
무릇 남자는 절할 때 왼손을 위로 한다. - 왼쪽이 양(陽)이기 때문이다. -

   여자는 열 살이 되면 문 밖을 나가지 않으며, - 항상 안에 거처한다. - 완만(婉娩)한 말씨와 태도로써 어른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며 - 완(婉)은 언어가 유순한 것이다. 만(娩)은 미(媚)와 뜻이 같으니, 용모가 유순한 것이다. ‘婉’은 반절이 우(紆)ㆍ만(晩)인데 서씨(徐氏)는 반절이 우(紆)ㆍ원(願)이라 하였다. ‘娩’은 독음이 만(晩)인데 서씨는 독음이 만(萬)이라 하였다. - 삼과 모시로 길쌈을 하며, 고치를 길러 실을 뽑으며, 명주를 짜고 노끈[紃]을 꼼으로써 여자의 일을 배워 의복을 공급하며, - 순(紃)은 노끈이다. ‘?’는 반절이 사(思)ㆍ리(里)이다. ‘繭’은 반절이 고(古)ㆍ전(典)이다. ‘紝’은 반절이 여(女)ㆍ금(金) 또는 여(如)ㆍ림(林)이다. ‘組’는 독음이 조(祖)이고, ‘共’은 독음이 공(恭)이다. - 제사를 보살펴 술과 장(漿)과 대그릇[籩]과 나무 그릇[豆]과 김치와 육젓을 올려 예로써 제전(祭奠)을 돕는 것을 무(姆 여자 스승)가 가르친다. - 여자가 성장할 때에 미쳐 알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원문의 ‘相’은 반절이 식(息)ㆍ량(亮)이다. -
   열다섯 살이 되면 비녀를 지르고 - 나이가 되어 혼인을 허락한 사람임을 뜻한다. 여자가 혼인을 허락하면 비녀를 지르고 자(字)를 쓰며,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으면 스무 살이 되어 비녀를 지른다. - 스무 살이 되면 시집을 가는데 사정이 있을 경우엔 스물세 살에 시집을 간다. - 사정이란 부모의 상(喪)을 뜻한다. - 빙례(聘禮)를 하면 처(妻)가 되고 - 빙(聘)이란 남자가 여자를 방문하는 것이다. 처(妻)란 말은 나란하다는 뜻이니, 예로써 빙문(聘問)하면 지아비와 대등한 예를 갖출 수 있다. - 분(奔)을 하면 첩(妾)이 된다. - 첩(妾)이란 말은 접(接)한다는 뜻이니, 남자 쪽에서 예를 갖추었다는 말을 듣고 여자가 스스로 가서 남편될 사람을 접견하는 것이다. 분(奔)은 어떤 본에는 현(衒)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빙(聘)은 남자가 가서 여자를 맞이하는 것이고, 분(奔)은 남자가 맞이하지 않았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가는 것이다. -
   무릇 여자는 절할 때 오른손을 위로 한다. - 오른쪽이 음(陰)이다. 이상은 《예기》 내칙(內則)의 경문으로 잘못 삽입된 부분이니, 본래는 “사(士)는 점(坫)에 한 개가 있다.[士於坫一]”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별도로 아래에 두었으니, 이렇게 해야 경문에 혼란이 없다. 경문은 모두 834자이다. -

   무릇 노인을 봉양함에 있어 유우씨(有虞氏)는 연례(燕禮)로써 하고, 하후씨(夏后氏)는 향례(饗禮)로써 하고, 은(殷) 나라 사람은 사례(食禮)로써 하고, 주(周) 나라 사람은 이 삼대(三代)의 예를 손질하여 겸용한다. - ‘겸용한다’는 것은 음양을 구비하는 것이다. 무릇 음식을 통해서 양기(陽氣)를 기르고 음식을 통해서 음기(陰氣)를 기르니, 양(陽)은 봄과 여름에 기르고 음(陰)은 가을과 겨울에 기른다. -
   쉰 살이 되면 향(鄕 향학(鄕學))에서 봉양받고, 예순 살이 되면 국(國)에서 봉양받고, 일흔 살이 되면 학(學)에서 봉양받는데, 이 예(禮)는 제후에게도 통용된다. - 천자와 제후는 노인을 봉양하는 예가 같다. 국(國)은 국중(國中)의 소학(小學)으로 왕궁의 좌측에 있다. 학(學)은 대학(大學)으로 교(郊)에 있다. 소학은 국중에 있고 대학은 교에 있는 이것은 은(殷) 나라의 제도임이 분명하다. -
   여든 살이 되면 임금의 명(命)에 절하되 한 번 무릎을 꿇어앉고 두 번 머리를 조아리며 장님도 이와 같이 한다. 아흔 살이 되면 사람을 시켜 임금의 명을 대신 받게 한다. - 여기서 명(命)이란 임금이 직접 음식을 대접하지 않고 반드시 예를 갖추어 초대하는 것을 이른다. -
   쉰 살이 되면 식량을 달리하고, 예순 살이 되면 고기를 격일(隔日)로 장만해 두고, 일흔 살이 되면 좋은 음식을 여분으로 두고, 여든 살이 되면 항상 진귀한 음식을 장만해 두고, 아흔 살이 되면 침소(寢所)에 항상 음식을 갖추어 두고 좋은 음식과 음료를 다니는 곳마다 마련해 둔다. - 원문의 장(粻)은 식량이고, 이(貳)는 여분이다. ‘다니는 곳’이란 평소 출입하며 멈추어 서고 보는 곳이다. -
   예순 살이 되면 세제(歲制 일 년 남짓 걸려야 마련할 수 있는 관(棺))를 장만해 두고, 일흔 살이 되면 시제(時制 석 달이 걸려야 마련할 수 있는 의복)를 장만해 두고, 여든 살이 되면 월제(月制 한 달이 걸려야 마련할 수 있는 의복)를 장만해 두고, 아흔 살이 되면 장만해 둔 관과 의복을 매일 수리한다. 다만 교(絞 염습할 때 의복을 단단히 묶는 베)와 금(紟 염습할 때 쓰는 홑이불)과 금(衾 염습할 때 쓰는 이불)과 모(冒 시신을 싸는 일종의 자루)는 죽은 뒤에 마련한다. - 교(絞), 금(紟), 금(衾), 모(冒)는 하루나 이틀 사이에 마련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쉰 살이 되면 노쇠하기 시작하고, 예순 살이 되면 고기를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고, 일흔 살이 되면 명주 옷이 아니면 따스하지 않고, 여든 살이 되면 사람이 덥혀 주지 않으면 따스하지 않고, 아흔 살이 되면 사람이 덥혀 주어도 따스하지 않다. - 원문의 난(煖)은 따스하게 덥히는 것이다. - 쉰 살이 되면 집에서 지팡이를 짚고, 예순 살이 되면 고을에서 지팡이를 짚고, 일흔 살이 되면 나라에서 지팡이를 짚고,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고, 아흔 살이 된 이에게는 천자가 물을 일이 있으면 그 집으로 가되 진귀한 음식을 가지고 간다. - 존양(尊養)하는 것이다. -
   일흔 살이 되면 조회(朝會)를 기다리지 않고, - 대부와 사(士)로서 늙은이는 임금에게 읍(揖)을 하고는 바로 물러나는 것이다. - 여든 살이 되면 임금이 매월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고, - 매월 음식을 보내는 것이다. - 아흔 살이 되면 임금이 매일 좋은 음식을 보낸다. - 원문의 질(秩)은 상(常)과 같으니, 매일 보내는 음식인 상선(常膳)이 있는 것이다. -
   쉰 살이 되면 역정(力政)에 종사하지 않고, 예순 살이 되면 병역(兵役)에 관여하지 않고, 일흔 살이 되면 빈객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여든 살이 되면 재계(齊戒)와 상사(喪事)에 관여하지 않는다. - 힘이 차츰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역정이란 성이나 길을 닦는 부역이다. 원문의 여(與)는 급(及)과 같다. 여든 살이 되면 재계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제사도 지내지 않고 자식이 대신 제사를 지내니, 이러한 경우 제사를 지내는 제주(祭主)를 종자불고(宗子不孤)라 한다. -
   쉰 살이 되면 작위(爵位)를 가지고, - 어진 이를 명하여 대부로 삼는 것이다. - 예순 살이 되면 직접 배우지 않고, - 제자의 예를 갖출 수 없는 것이다. - 일흔 살이 되면 치정(致政)하며, 일흔 살 이상부터는 최마(衰麻)의 복만을 입는다. - 치정이란 임금으로부터 받은 일을 반환하는 것이다. -
   무릇 삼왕(三王)의 노인을 봉양함은 모두 나이를 위주로 하였다. - 이상에서 말한 노인을 봉양하는 예(禮)를 마친 다음에는 민간의 집집마다 노인들의 나이를 비교해 보아 부역을 면제하는 은전을 행하는 것이다. 노인이 매우 많으므로 연장자를 우선하지 않으면 모두 봉양할 수 없는 것이다. -
   여든 살이 된 이는 한 아들이 부역에 나가지 않고, 아흔 살이 된 이는 온 집안 사람이 부역에 나가지 않으며 장님일 경우에도 이와 같다. 무릇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자식이 비록 늙었더라도 자리에 앉지 않는다.

   유우씨(有虞氏)는 상상(上庠)에서 국로(國老)를 봉양하고 하상(下庠)에서 서로(庶老)를 봉양했으며, 하후씨(夏后氏)는 동서(東序)에서 국로를 봉양하고 서서(西序)에서 서로를 봉양했으며, 은 나라 사람은 우학(右學)에서 국로를 봉양하고 좌학(左學)에서 서로를 봉양했으며, 주 나라 사람은 동교(東膠)에서 국로를 봉양하고 우상(虞庠)에서 서로를 봉양했다. 우상은 나라의 서교(西郊)에 있었다. - 모두 학교 이름이다. 명칭이 다른 것은 사대(四代)가 서로 변했기 때문인데, 어떤 나라는 서쪽을 높이 여기고, 어떤 나라는 동쪽을 높이 여기고, 어떤 나라는 국중(國中)에 있는 것을 귀히 여기고, 어떤 나라는 교(郊)에 있는 것을 귀히 여겼다. 상상(上庠)과 우학(右學)은 대학으로 서교(西郊)에 있었고, 하상(下庠)과 좌학(左學)은 소학으로 국중에서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동서(東序)와 동교(東膠)는 대학으로 국중에서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서서(西序)와 우상(虞庠)은 소학이다. 서서는 서교(西郊)에 있었다. 주 나라는 서교에 소학을 세웠다. 교(膠)는 말뜻이 바로잡을 규(糾)와 같고, 상(庠)은 말뜻이 기를 양(養)과 같다. 주 나라의 소학은 유우씨의 상(庠)과 같다. 그러므로 상(庠)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며 향학(鄕學)을 세움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교(膠)는 어떤 곳에는 구(絿)로 되어 있다. -
   유우씨는 황(皇)을 쓰고 제사하고 심의(深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며, 하후씨는 수(收)를 쓰고 제사하고 연의(燕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며, 은 나라 사람은 후(冔)를 쓰고 제사하고 호의(縞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며, 주 나라 사람은 면(冕)을 쓰고 제사하고 현의(玄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한다. - 황(皇)은 면(冕)의 일종으로 깃털 장식으로 그림을 그린 관이다. 무릇 면(冕)에 속한 복장은 모두 상의(上衣)는 검은색으로 하고 하의(下衣)는 분홍색으로 한다. 유우씨는 복색이 12장(章)이고 주 나라는 9장이며, 하 나라와 은 나라는 알려져 있지 않다. 무릇 노인을 봉양할 때 입는 복장은 모두 당시의 왕과 신하들이 입는 연복(燕服)인데, 유우씨는 질(質)을 숭상하기 때문에 심의를 입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 나라에 와서 이를 고치고 검은색을 숭상하여 검은 의상(衣裳)을 입었으며, 은 나라에 와서는 흰색을 숭상하여 흰 의상을 입었다. 그러던 것이 주 나라에 와서는 겸용하여 상의를 검은색으로 하고 하의를 흰색으로 하였으며, 관은 모추(牟追)와 장보(章甫)와 위모(委貌)이다. 제후는 천자의 연복(燕服)을 조복(朝服)으로 삼으니, 연례(燕禮)에 입는 옷을 연조복(燕朝服)이라 하는데 이 옷을 입는다. 왕자(王者)의 후손 또한 연복으로 조복을 삼는다. 노(魯) 나라 계강자(季康子)가 흰색으로 조복을 지어 입었던 것은 송(宋) 나라의 예(禮)를 참용(僣用)한 것이다. 천자는 피변(皮弁)을 쓰고 매일 조회를 본다. -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효자가 연로한 부모를 봉양함에는 그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그 뜻을 어기지 않고, 그 이목(耳目)을 즐겁게 하고, 그 침소(寢所)를 편안히 하고, 음식을 가지고 충심으로 봉양한다. 그렇게 하고서 효자의 몸을 마치니, 몸을 마친다는 것은 부모의 몸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효자 자기의 몸을 마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부모가 사랑하는 바를 역시 사랑하고 부모가 공경하는 바를 역시 공경하여, 심지어 개나 말에 있어서도 모두 그렇게 하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 천함으로 귀함을 비유하였다. -
하였다.

   무릇 노인을 봉양함에 있어 오제(五帝) 때에는 헌(憲)하였고, - 헌은 본받는 것이니, 노인을 봉양하여 그 덕행을 본받는 것이다. -삼왕(三王) 때에는 걸언(乞言)하였다. - 선(善)이 있으면 본보기로 삼고, 또 이로 인하여 선언(善言)을 구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오제는 헌하여 기체(氣體)를 기르고 걸언하지 않았으며 선(善)이 있으면 기록하여 돈사(惇史)로 삼았는데, 삼왕 역시 헌하여 노인을 봉양한 다음 걸언하되 그 예(禮)를 미략(微略)하게 하고 모두 돈사를 두었다. - 돈사(惇史)란 사(史)가 돈후한 것이다. ‘그 예를 미략하게 한다’는 것은 은근히 말하여 구하기를 절실히 하지 않는 것이다. -

   순오(淳熬)란 무엇인가? 먼저 육젓을 달여서 육도(陸稻 육지에서 나는 벼)로 지은 밥 위에 얹은 다음 기름으로 적신 것이니, 이를 순오라 한다. - 순(淳)은 적시는 것이고 오(熬)는 볶는 것이니, 적시고 볶아서 요리한 음식이므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
순모(淳母)란 무엇인가? 육젓을 달여서 기장으로 지은 밥 위에 얹고 기름으로 적신 것이니, 이를 순모라 한다. - ‘母’는 독음이 모(模)이니, 모(模)는 본뜨는 것이다. 즉 이 음식을 만들어 순오(淳熬)를 본뜨는 것이다. 소(疏)에 이르기를, “이 한 단락은 노인을 봉양함에는 반드시 음식이 필요함을 논하였으니, 이를테면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과 같다. 팔진미(八珍味)의 성찬(盛饌)이 무엇인가를 밝힘과 아울러 목기(木器)에 담아 올리는 삼식(糝食)이 무엇인가를 밝혔다.” 하였다. -
   포(炮 돼지고기 구이인 포돈(炮豚)과 양고기 구이인 포장(炮牂)을 말함)란 무엇인가? 돼지 또는 암양을 잡아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뱃속에 대추를 채운 다음 갈대를 엮어서 싸고 다시 볏집을 섞은 찰흙[墐塗]을 발라 굽는다. 이렇게 하여 흙이 다 마르면 흙을 떼어 내고 물에 씻은 손으로 문질러서 피막(皮膜)을 제거한 다음 쌀가루를 뜨물에 담가 죽을 끓여서 돼지고기의 겉에 입히고 기름에 달이되 기름은 반드시 고기가 다 잠길 정도의 넉넉한 분량이어야 한다. 큰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작은 솥에 향포(薌脯)를 넣되, 가마솥의 물에 작은 솥이 잠기지 않도록 한 다음 사흘 밤낮 동안 약한 불로 끊임없이 끓인 뒤에 초와 젓으로 조미(調味)한다. - 포(炮)란 진흙으로 싸서 구웠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원문의 장(將)은 장(牂)이 되어야 옳으니, 장은 암양이다. 원문의 규(刲)와 고(刳)는 뜻이 같고 자형(字形)만 다른 글자를 많이 쓴 것이다. 원문의 근(謹)은 근(墐)이 되어야 옳으니, 성음상의 착오이다. 근도(墐塗)는 찰흙에 볏짚을 넣은 것이다. 원문의 전(皽)은 피육(皮肉) 위에 있는 백막(魄膜)이다. 원문의 수(糔)와 수(溲) 역시 뜻이 같고 자형만 다른 글자를 많이 쓴 것이다. ‘糔’는 독음이 쌀뜨물을 말하는 수수(滫瀡)의 수(滫)와 같다. 향포(薌脯)란 돼지고기 또는 양고기를 작은 솥에 넣고 삶아 향기롭고 맛이 좋게 하는 것이다. 이를 포(脯)라 하는 것은 피막(皮膜)을 제거하고는 곧 고기를 찢어서 마치 포와 같이 얇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돼지고기는 통째로 삶는다. 돼지고기 또는 양고기를 작은 솥에 넣은 지 사흘이 지나면 초와 젓을 넣고 먹을 수 있다. -
   도진(擣珍)이란 무엇인가? 소, 양, 사슴, 노루, 고라니의 고기를 쓰되 반드시 등심살이어야 하며, 각종 고기의 분량은 쇠고기와 균일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준비된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찧어서 힘줄 따위의 질긴 부위를 제거하고 삶아서 피막을 제거한 다음 고기를 부드럽게 한다. - 등심[脄]은 등뼈 옆에 있는 고기이다. 원문의 추(捶)는 찧는 것이고, 이(餌)는 힘줄이다.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즙을 섞는 것이니, 즙이란 역시 초와 젓 따위이다. -
   지(漬)란 무엇인가? 쇠고기를 쓰되 반드시 갓 잡은 것을 얇게 써는데, 고깃살의 결을 가로로 끊어야 한다. 이렇게 장만된 고기를 좋은 술에 담가 꼬박 하루를 묵힌 다음 초와 젓, 매실로 담근 장을 곁들여 먹는다. - 원문의 침(湛)도 담근다는 뜻이다. -
   오(熬)는 어떻게 만드는가? 쇠고기를 찧어서 피막을 제거한 것을 엮은 갈대 위에 놓고 계피와 생강 가루를 그 위에 뿌리고 소금을 뿌린 다음 말려서 먹는다. 양고기로 요리할 때도 이와 같이 하며, 고라니, 사슴, 노루 등의 고기로 요리할 때도 쇠고기나 양고기와 같이 한다. 젖은 고기[濡肉]를 원하면 물에 담가서 육젓을 넣어 끓이고, 말린 고기를 원하면 찧어서 먹는다. - 불 위에 볶아서 요리하는 것으로 지금의 화포(火脯)와 비슷하다. 젖은 고기를 원하고 말린 고기를 원하는 것은 먹는 사람의 자유이다. 원문의 해(醢)는 어떤 본에는 혜(醯)로 되어 있다. 이상 일곱 가지는 《주례(周禮)》의 팔진미인데, 그 나머지 하나는 간료(肝膋)이다. -
   삼식(糝食)이란 무엇인가? 소, 양, 돼지의 고기를 쓰되 세 가지 고기의 분량을 균일하게 하고 잘게 썰어 쌀과 섞는다. 이때의 비율은 쌀이 2에 고기가 1인데, 이렇게 배합하여 끓인 것이다. - 이것이 《주례》에 나오는 삼식(糝食)이다. -
   간료(肝膋)는 개의 간 하나를 취하여 그 창자 기름으로 덮어 싸서 흠뻑 적신 다음 굽는데 창자 기름까지 고루 구워지게 하며, 먹을 때는 여뀌를 쓰지 않는다. - 요(膋)는 창자 사이의 기름이다. 원문의 거(擧)는 어떤 본에는 거(巨)로 되어 있다. -
   이식(酏食)이란 무엇인가? 쌀을 뜨물에 담근 다음 잘게 저민 이리의 가슴 비계를 쌀에 넣어 죽을 끓인 것이다. - 이리의 가슴 비계[狼臅膏]란 이리의 가슴 속에 있는 기름인데, 이것을 넣고 쌀을 끓이면 오늘날의 고찬(膏?)과 비슷하다. 이것이 《주례》에 보이는 이식(酏食)이다. 여기서의 이(酏)는 전(餰)의 뜻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

- 살펴보건대, 이상에서 기록한 노인을 봉양하는[養老] 대목 이하는 《예기》 왕제(王制)에 산견(散見)되는데 간혹 이동(異同)이 있다. 순오(淳熬) 이하는 《주례》의 팔진미를 풀이한 것인데 삼식(糝食)과 이식(酏食)을 섞어 놓은 것은 비록 내칙의 정문(正文)은 아니지만 또한 고대에 효(孝)를 미루어 노인을 봉양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지금 왕제 중 정씨(鄭氏)의 설로 본주(本註)의 결함을 보완, 이를 경문(經文)의 뒤에 붙여 예전의 의심스러운 뜻을 보존해 둔다. -

   살펴보건대, 내칙은 간이(簡易)하고 명백하여 송설(誦說)을 기다릴 것 없이 얼마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내용이다.
이 편의 차서(次序)에 따라 그 뜻을 말해 보자면, 먼저 왕자(王者)가 준칙을 세우고 가르침을 편 뜻을 말하였는데, 이는 전훈(典訓)의 본원(本原)을 삼기 위한 것이다. 이어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며느리가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말하고, 나아가서 젊은이가 어른을 섬기고 하천(下賤)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일을 말하고, 또 다음으로 남녀와 내외의 분변을 말하고, 다음으로 부모가 자식과 며느리를 대하는 의리를 말하고, 다음으로 부모를 간(諫)하는 일을 말하고, 다음으로 서천(庶賤)을 대하고 처첩(妻妾)을 대하는 일을 말하고, 이어 죽은 사람을 섬기기를 산 사람을 섬기듯이 하는 일을 말하고, 다음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姑婦], 총부와 개부[冢介]의 일을 말하고, 다음으로 종적(宗嫡)과 귀천(貴賤)의 일을 말하였다. 그런 다음 음식과 선수(膳羞 좋은 음식과 반찬)의 일을 말하였으니, 대개 부모를 섬기는 도리는 충심을 다해 음식으로 잘 봉양하기를 힘쓰는 데 있는 것이다.
부부의 예(禮)와 처첩(妻妾)의 분별을 말하고 아이를 낳음에 있어 적자(適子)와 서자(庶子)의 예를 말한 다음, 교양(敎養)하는 법에 있어 소대(小大), 남녀, 관혼(冠婚), 환학(宦學)의 절목을 총괄하여 말하고 남녀의 분별로 종결하였으니, 남녀의 분별은 천지(天地)의 대의(大義)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답고, 지아비가 지아비답고, 지어미가 지어미다우면 장유(長幼)의 질서와 적서(嫡庶)의 분별이 바로잡혀 사람의 도리가 확립되고 하늘의 법칙이 구비될 것이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원이고 부부는 인륜(人倫)의 시발이니, 성인의 가르침이 먼저 이를 바로잡음으로 해서 천하에 법이 될 수 있었는데, 그 도는 음식과 남녀의 문제에 신중을 기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내칙의 뜻이다.

   전(傳) - 살펴보건대, 주자(朱子)의 《의례경전(儀禮經傳)》에서 상편(上篇)을 취하여 경(經)을 삼았다. 무릇 《예기》의 여러 편에 나오는 글 중에서 내칙의 뜻을 발명할 만한 것들이 모두 종류별로 경문(經文)에 조목조목 나뉘어 있다. 이에 그 예(例)에 따라 다음과 같이 차서(次序)대로 기술하여 경(經)과 전(傳)을 나누고, 아울러 상제(喪祭) 편의 약간의 조목을 취하여 신종추원(愼終追遠)의 뜻을 갖추어 둔다. -
   무릇 사람의 자식된 예(禮)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돈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살피며, - 원문의 정(定)은 침상과 이부자리를 편안히 펴 놓는 것이고, 성(省)은 안부가 어떠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원문의 ‘夏’는 반절이 하(遐)ㆍ가(嫁)이다. 원문의 ‘凊’은 반절이 칠(七)ㆍ성(性)이니, 글자가 빙(冰)과 냉(冷)에서 왔다. 어떤 본에는 ‘淸’으로 되어 있는데 옳지 않다. - 추이(醜夷)들 사이에서는 다투지 않는다. - 추(醜)는 무리이고, 이(夷)는 동배(同輩)와 같으니, 상산사호(商山四皓)가 말하기를, “지금 제장(諸將)들은 폐하의 등이(等夷)입니다.” 하였다. -

   사람의 자식된 이는 거처함에 오(奧)를 차지하지 않고, 앉음에 자리 가운데에 앉지 않고, 다닐 때는 길 가운데로 다니지 않고, 설 때는 문의 가운데에 서지 않는다. - 부모와 한 집에 살 경우를 말하니, 감히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실내의 서남쪽을 오(奧)라 한다. 길에는 왼쪽과 오른쪽이 있다. 문의 가운데는 정(棖)과 얼(闑)의 중앙이다. 내칙에 이르기를, “명사(命士) 이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집을 달리한다.” 하였다. ‘奧’는 반절이 오(烏)ㆍ보(報)인데, 심씨(沈氏)는 반절이 어(於)ㆍ륙(六)이라 하였다. 소(疏)에 “무릇[凡]이라고 서두에 말하지 않은 것은 혹 부자간에 거처를 달리하는 경우에는 예(禮)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

   사향(食饗 음식을 베풀어 잔치하는 일)에는 개(槪)를 하지 않는다. - 개는 한량(限量)을 두는 것이니, 빈객을 접대하는 데 드는 음식을 임의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食’는 독음이 사(嗣)이다. ‘饗’은 어떤 본에는 ‘享’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향(香)ㆍ량(兩)이다 ‘槪’는 반절이 고(古)ㆍ애(愛)이다. -

   제사에는 시동이 되지 않으며, - 시동은 존자(尊者)의 처소이므로, 여기에 앉으면 자식된 도리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시동은 아버지가 없는 이 가운데서 점을 쳐서 뽑아야 하는 것이다. - 소리 없는 가운데 듣고 형체 없는 가운데 보며, - 항상 어버이가 무엇인가를 시킬 듯이 여기는 것이다. - 높은 곳에 오르지 않고 깊은 곳에 임하지 않으며, 구차히 헐뜯지 않고 구차히 웃지 않는다. - 위태함과 욕됨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의 천성은 비방을 받고 싶지 않고 비웃음을 받고 싶지 않기 마련이니, 군자는 즐거워야 웃는다. 원문의 ‘訾’는 독음이 자(紫)로 헐뜯는 것인데, 심씨(沈氏)는 반절이 장(將)ㆍ지(知)라 하였다. - 효자가 암중(闇中)에 일하지 않고 위태한 곳에 오르지 않는 것은 어버이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해서이다. - 원문의 복(服)은 일하는 것이고, 암(闇)은 어두움이다. 어두운 가운데서 일하지 않는 것은 마침내 비상한 변고를 당하기 쉽기 때문이고, 또 예(禮)를 잃을까 염려해서이다. 예(禮)에 의하면, 남녀가 밤길을 다닐 때는 등촉(燈燭)을 밝히는 법이다. -

   대저 사람의 자식된 이는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어버이께 고(告)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어버이를 뵈어야 하며, - 고하는 것[告]과 뵙는 것[面]은 뜻이 같은데, 돌아와서는 뵙는다고 한 것은 집 밖에 다니다가 왔으면 의당 어버이의 안색이 편안한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告’은 반절이 고(古)ㆍ독(毒)이다. - 다니는 곳은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어야 하고 익히는 바는 반드시 전업(專業)이 있어야 하며, - 어버이가 마음속으로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평소 말할 때는 늙었다고 자칭(自稱)하지 않는다. - 공경하는 마음을 넓히는 것이다. -
   나이가 배로 많으면 아버지로 섬기고, - 나이 스무 살이 마흔 살에 대한 경우를 말한다. 사람이 나이 스무 살이 되면 약관(弱冠)의 성인(成人)으로 아버지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마흔 살은 스무 살에 있어 자식처럼 대할 도리가 있는 것이다. 내칙에 이르기를, “나이 스무 살이 되면 효제(孝悌)를 도타이 행한다.” 하였다. - 열 살이 많으면 형으로 섬기고,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른다. -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른다[肩隨]’는 것은 함께 나란히 다니되 조금 물러서는 것이다. -

   대저 사람의 자식된 이는 삼사(三賜)를 받되 수레와 말을 함께 받지 않나니, - 삼사(三賜)는 삼명(三命)이다. 무릇 사(士)는 일명(一命)에 작위를 받고, 이명(二命)에 의복을 받고, 삼명에 수레와 말을 받는데, 수레와 말을 받으면 몸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 구비된다. 경, 대부, 사의 아들이 수레와 말을 받지 않는 것은 감히 존귀함이 아버지에 비견될 수는 없기 때문이고, 천자와 제후의 아들이 수레와 말을 받지 않는 것은 자신을 임금으로부터 낮고 멀게 하기 위해서이다. - 그러므로 주려(州閭)와 향당(鄕黨)이 그 효성을 칭찬하고, 형제와 친척이 그 자애를 칭찬하고, 요우(僚友)가 그 공경[弟]을 칭찬하고, 집우(執友)가 그 어짊을 칭찬하고, 교류하는 벗들이 그 신실함을 칭찬하는 것이다. - 감히 중한 은사(恩賜)를 받지 않는 것은 마음인데, 이렇게 함으로 해서 다섯 가지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례》에 의하면, 25가(家)가 여(閭)이고, 4려가 족(族)이고, 5족이 당(黨)이고, 5당이 주(州)이고, 5주가 향(鄕)이다. 요우(僚友)는 같은 관직에 있는 벗이고, 집우(執友)는 뜻을 같이하는 벗이다. ‘僚’는 어떤 본에는 ‘寮’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료(了)ㆍ조(彫)이다. ‘弟’는 반절이 대(大)ㆍ계(計)이다. 이하는 주(註)와 같다. -
   아버지의 집우(執友)를 뵐 때는 나오라고 이르지 않거든 감히 나아가지 않으며, 물러나라고 이르지 않거든 감히 물러나지 않으며, 묻지 않거든 감히 대답하지 않나니, - 아버지의 뜻을 같이하던 벗을 공경하여 아버지처럼 섬기는 것이다. - 이것이 효자의 행(行)이다. - ‘行’은 반절이 하(下)ㆍ맹(孟)이다. -

충신과 효자는 밝은 신절(信節 신의 있는 절조)을 행하지 않고 어두운 타행(惰行 태만한 행실)을 행하지 않는다. - 신(信)은 신(伸)과 통한다. ‘어두운[冥冥]’이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이다. -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 벗에게 죽음을 허여하지 않으며, - 어버이를 잊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벗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원수를 갚는 것이다. - 사재(私財)를 두지 않으며, - 소(疏)에 “재물은 존자(尊者), 즉 어버이에 속한다.” 하였다. - 선물을 할 때도 수레와 말은 주지 않는다.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 늙었다고 자칭하지 않으며, 효도는 말하고 자애는 말하지 않으며, 규문(閨門) 안에서 장난은 하되 탄식은 하지 않는다. - 효도는 위로 베푸는 것이니, 자애를 말하게 되면 아래로 흐를 우려가 있다. ‘장난’이란 어린아이가 웃고 말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순(舜)은 나이 쉰 살에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하였다. ‘탄식’이란 근심하고 슬퍼하는 소리이다. -

   어버이가 생존해 있으면 남에게 예(禮)를 행할 때 아버지를 칭하고, 남이 혹 물건을 하사하면 아버지를 칭하고 배수(拜受)한다. - 모든 일이 존자(尊者)인 아버지에 의해 통괄되기 때문이다. -
벼슬하지 않은 사람은 감히 남에게 물건을 줄 수 없으니, 물건을 주려면 부형(父兄)의 명으로 해야 한다. - 집안의 재물을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원문의 세(稅)는 남에게 물건을 주는 것이다. ‘稅’는 반절이 시(始)ㆍ예(銳)이다. 소(疏)에 “남에게 물건을 준다면 이는 이미 벼슬한 사람임을 뜻한다.” 하였다. -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 - 존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지위에 있지 않는다. - 같은 지위에 있으면 존비가 같아져 서로 설만(褻慢)히 대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벗에 있어서는 그 수레는 탈 수 있어도 그 옷은 입을 수 없다. - 수레는 신체(身體)보다는 다소 거리가 멀다. 아버지의 벗이 지금 자기와 지위가 같을 경우를 말한다. -

자식이 부모에게 자칭할 때는 자기의 이름을 부른다. -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자식이라고 한 것은 남녀를 통칭한 것이다. -

아버지의 족당(族黨)에 있어서는 용식(容飾)하지 않는다. - 소(疏)에 “아버지의 족당은 친한 까닭에 절선(折旋)과 읍양(揖讓) 따위의 용식을 하지 않는다.” 하였다. -

   부모가 질병에 걸렸을 경우 관자(冠者)는 머리를 빗지 않으며, 걸어다닐 때는 태도를 차리지 않으며, - 근심한 나머지 용의(容儀)를 갖추지 않는 것이다. ‘冠’은 독음이 글자 그대로인데, 서씨는 반절이 고(古)ㆍ란(亂)이라 하였다. - 말할 때는 바르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며, - 근심하여 사사로이 좋아하는 데 마음이 없는 것이다. 원문의 타(惰)는 바르지 않은 말이다. ‘惰’는 반절이 도(徒)ㆍ화(禾)이며 또 다른 독음은 반절이 도(徒)ㆍ와(臥)이다. - 금슬(琴瑟)을 타지 않으며, - 근심하여 즐거움에 마음이 없는 것이다. - 고기를 먹더라도 물릴 정도로 많이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더라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많이 마시지 않으며, - 슬픔으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웃더라도 치아가 보일 정도로 크게 웃지 않으며, 노하더라도 욕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다가, - 근심이 마음에 있어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치아를 본래 신(矧)이라 하니, 크게 웃으면 치아가 보이게 된다. 원문의 신(矧)은 어떤 본에는 ‘哂’으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실(失)ㆍ인(忍) 또는 시(詩)ㆍ인(忍)이다. 원문의 ‘詈’는 반절이 력(力)ㆍ지(智)이다. - 질병이 그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 스스로 평상시와 같이 하는 것이다. - 근심이 있는 이는 측석(側席)을 해서 앉으며, - 측(側)은 특(特)과 같다. 근심한 나머지 사람을 접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의 자리를 펴지 않는 것이다. - 상(喪)이 있는 이는 전석(專席)을 해서 앉는다. - 거처(居處)를 낮추는 것이다. 전(專)은 단(單)의 뜻이다. 소(疏)에 “근심이란 역시 어버이의 질병을 뜻한다. 길(吉)할 때에는 귀천에 따라 중석(重席)의 예가 있지만 처음 부모의 상을 당하면 거적에 앉고 자리[席]가 없다가 졸곡(卒哭)한 뒤에 비로소 자리가 있는데, 모두 중석을 설치하지 않으니, 거처를 낮추는 것이다.” 하였다. -

   신하된 이의 예(禮)는 밝게 간(諫)해서는 안 되니, - 임금의 좋은 점을 빼앗게 되기 때문이다. 원문의 현(顯)은 밝음이니, 임금의 잘못을 밝게 말하고 은미하게 간하지 않음을 뜻한다. - 세 번 간해도 듣지 않거든 떠나야 한다. - 원문의 도(逃)는 떠나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는 의(義)가 있으면 합하고 의가 없으면 떠난다. - 자식이 어버이를 섬김에는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울부짖으며 따라야 한다. - 지친(至親)이라 떠날 수 없고, 감동시키는 데 뜻을 두는 것이다. 원문의 호(號)는 반절이 호(戶)ㆍ도(刀)이다. - 선(善)이 있으면 임금을 칭하고 잘못이 있으면 자기를 칭해야 한다. 선이 있으면 어버이를 칭하고 잘못이 있으면 자기를 칭해야 한다. - 좋은 점은 임금과 어버이에게 돌리는 것이 아들과 신하된 이의 예(禮)인 것이다. -

   군자는 그 어버이의 잘못을 잊고 그 좋은 점을 공경해야 한다. - 원문의 이(弛)는 잊는 것과 같다. 효자는 부모의 잘못을 가슴에 담아 두지 않는 법이다. -

   임금이 질병에 걸려 약을 먹을 경우엔 신하가 먼저 맛을 보고, 어버이가 질병에 걸려 약을 먹을 경우엔 자식이 먼저 맛을 보며, - 맛을 보는 것은 먹어도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 삼대(三代)를 거친 의원이 아니면 그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 약물(藥物)이 정결한지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

   아버지가 부르면 공손하게 빨리 응답하고 태만하고 늦게 응답하지 않으며, 손으로 일거리를 잡고 있으면 던지고, 음식물이 입에 들어 있으면 뱉은 다음 달려가고 종종걸음치지 않는다. - 공경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원문의 ‘唯’는 반절이 우(于)ㆍ계(癸)인데 서씨(徐氏)는 반절이 이(以)ㆍ수(水)라 하였다. - 어버이가 늙었으면 출타(出他)하되 가는 곳을 바꾸지 않으며, 돌아올 시기를 넘기지 않으며, - 부모를 근심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소를 바꾸면 자기가 있는 곳을 부모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원문의 복(復)은 돌아오는 것이다. - 어버이가 병이 들면 기색(氣色)과 용모를 성대히 차리지 않나니, 이것이 효자의 소략한 예절이다. - 지극한 효(孝)는 아니라는 말이다. 원문의 제(癠)는 병(病)이다. 왕계(王季)가 병이 들었을 때 문왕(文王)은 근심스러운 기색을 띠고, 다닐 때는 신을 바로 신지 못했다. 원문의 ‘癠’는 반절이 재(才)ㆍ세(細)이다.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없으면 아버지의 책을 차마 읽을 수 없으니 수택(手澤)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없으면 배권(杯圈 술잔이나 술그릇)을 가지고 술을 마실 수 없으니 구택(口澤)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효자가 어버이의 기물(器物)을 보면 슬픔이 일어 차마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권(圈)은 나무를 굽혀 만든 것이니, 술잔과 술그릇[卮匜] 따위를 말한다. ‘圈’은 반절이 기(起)ㆍ권(權)이다. 주(註)에서도 동일하다. -

   그가 친애하던 이를 사랑하고 - 부형(父兄)과 친척이다. - 그가 존경하던 이를 공경하며, - 어른과 현자(賢者)이다. - 죽은 사람[死者] 섬기기를 산 사람을 섬기듯이 하고 - 아직 장사지내지 않은 상태를 사(死)라 한다. - 없는 사람[亡者] 섬기기를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하는 것이 - 이미 장사지낸 상태를 망(亡)이라 한다. - 효(孝)의 지극함이다.

   부모가 사랑하면 기뻐하여 잊지 않고 부모가 미워하면 두려워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과실(過失)이 있으면 간(諫)하되 거역(拒逆)하지 않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반드시 슬픔으로 제사해야 하니, - 슬픔이란 3년의 복(服)을 이른다. 제사란 봄 가을로 향사(享祀)하는 것이다. - 이것이 예(禮)의 마침이다.

   남자와 여자가 섞어 앉지 않으며, - 남자는 당(堂)에 있고 여자는 방(房)에 있는 것을 말한다. - 횃대[椸枷]를 같이 쓰지 않으며, - 이(椸)는 옷을 걸 수 있는 것이다. - 수건과 빗을 같이 쓰지 않으며,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다. 형수와 시동생 간에는 통문(通問)하지 않으며, - 통문은 서로 사례(謝禮)하는 것이다. - 제모(諸母)를 시켜 하의[裳]를 빨게 하지 않는다. - 제모는 서모(庶母)이다. 원문의 수(漱)는 빠는 것이다. 서모는 천한 신분인데 상의는 빨게 할 수 있지만 하의는 빨게 해서는 안 되니, 하의는 천한 옷이다. 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은 서모를 존중하는 것이니, 존중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첩이므로 서로 간의 분별(分別)을 멀게 하기 위해서이다. - 집 밖의 말은 문지방 안에 들이지 않으며, 집 안의 말은 문지방 밖으로 내지 않는다. - 집 밖의 말과 집 안의 말이란 남자와 여자의 직분을 뜻한다. 내고 들이지 않는 것은 서로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문의 곤(梱)은 문지방이다. -
여자가 혼인을 허락했으면 주머니[纓]를 차는데, 큰일이 있지 않으면 그 여자의 집 문에 들어가지 않는다. - 여자가 혼인을 허락하여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남을 따르는 단서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큰일[大故]이란 궁(宮) 안에 재변이나 질병이 있을 경우이니, 이러한 때에라야 들어간다. 여자가 궁을 가지는 경우는 명사(命士) 이상을 뜻하니, 《춘추전》에 이르기를, “군공자(群公子)들의 사(舍)는 이미 다 지었다.” 하였다. - 고모, 자매와 여자 자식이 시집갔다 친정 나들이를 오면 형제가 자리를 같이하여 앉지 않고 그릇을 같이하여 먹지 않는다. - 여자가 열 살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시집을 가서 성인(成人)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그래도 남자와 자리를 같이 앉지 않는 것은 역시 분별을 멀게 하기 위해서이니, 모두가 분별을 중하게 하고 음란함을 막기 위한 것이다. -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중매장이[行媒]가 있지 않으면 서로 이름을 알지 못하며, - 중매장이가 서로의 사이를 오가며 혼인의 말을 전하게 되어야 비로소 서로 성명(姓名)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폐백을 받지 않고는 서로 친교를 맺을 수 없다. - 분별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예(禮)가 갖추어져야 서로의 사이를 공고히 맺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신부를 맞이할 기일을 임금에게 고하고 - 《주례(周禮)》에 “무릇 자식이 딸린 이혼한 여인을 아내로 맞을 경우에는 매씨(媒氏)가 적어서 임금에게 고한다.”는 것이 이를 말한 것이다. - 재계하여 귀신에게 고하며, - 혼례(昏禮)에 무릇 여자를 받아들이는 예(禮)는 모두 사당에 신(神)의 자리를 차려 놓고 귀신에 고하는 것이 이것이다. - 술과 음식을 만들어 향당(鄕黨)의 벗들을 부르나니, - 손님과 벗을 모으는 것이다. - 이는 분별을 두터이 하기 위해서이다. - ‘두터이 한다’는 것은 신중히 함을 뜻한다. -
처(妻)를 취할 때는 동성(同姓)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첩을 사되 그 성(姓)을 모르면 점을 치는 것이다. - 금수(禽獸)와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첩은 천하므로 혹시 잉첩(媵妾)으로 딸려 오지 않고 천한 사람 가운데서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천한 이는 세계(世系)에 관한 본래의 계보(系譜)가 없다. -
   과부의 아들은, 그가 두드러진 이가 아니라면 더불어 벗하지 말아야 한다. -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두드러진 이’란 기이한 재주가 탁월하여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이를 말한다. -

   옛날에 후부인(后夫人)이 임금의 잠자리를 모실 때는 등촉을 끈 뒤에 등촉(燈燭)을 들고 임금의 처소로 가서는, 방 안에 들어가 조복(朝服)을 벗고 연복(燕服 평상복)을 입은 다음 들어가 임금을 모신다. - 조복은 전의(展衣)이다. 임금은 당(堂)에 있다. - 그리고 닭이 울고 태사(太師)가 섬돌 아래에서 닭이 울었음을 아뢴 다음에 - 원문의 주(奏)는 아뢰는 것이다. 폐(陛)는 계단 아래이다. - 부인이 방 안에서 패옥을 울리며 나가겠다고 임금에게 고한다. 그런 뒤 응문(應門)에서 딱딱이를 쳐 벽(辟)을 고한다. - 응문(應門)은 조정의 정문이다. 벽(辟)은 문을 여는 것이다. - 그런 뒤에 소사(少師)가 섬돌 아래가 정히 밝았음을 아뢰면 그제서야 부인이 뜰에 들어가 서고 임금이 조정에 나온다.

   옛날 후부인은 반드시 여사 동관(女史彤管)의 법을 두어 - 동관은 대롱이 붉은 붓이다. 적심(赤心)을 지닌 정인(正人)을 상징한다. -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기록하여 법을 이루는데, 사(史)가 과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한다.

   후비(后妃)와 군첩(群妾)이 예(禮)로써 처소에서 임금을 모실 때는 여사(女史)가 그 일월(日月)을 적어서 주고 가락지로 모시는 사람의 진퇴를 결정한다. 즉, 아들을 낳을 달이 되면 금가락지[金環]를 주어 임금의 침소에서 물러나게 하고, - 내칙에 “처(妻)가 장차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측실(側室)에 거처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무릇 회임(懷妊)하면 곧 침소에서 물러나게 함이 마땅하니, 《시경》 생민(生民)의 전(箋)에 이른바 “임신하면 숙계(肅戒)하여 다시 시침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다만 장차 해산(解産)할 때 다시 처소를 달리하는 것이니, 처음부터 시침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 임금을 모셔야 할 사람에게는 은가락지[銀環]를 주어 침소로 나아가게 한다. 임금을 모실 사람은 은가락지를 왼손에 끼고 이미 모신 사람은 오른손에 낀다. - 동관(彤管)의 법은 여사(女史)가 붓을 들고 사실을 적는데, 잘못이 있는데도 적지 않으면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하며, 비록 임금을 시침(侍寢)하는 시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기록하게 되어 있다. -

   서리가 내릴 때가 되어 여인을 아내로 맞으며, 얼음이 풀릴 때가 되면 아내와 동침(同寢)을 줄이고, 열흘에 한 번 동침한다.

   중춘(仲春)의 달에 우레가 울리기 사흘 전에 목탁(木鐸)을 흔들면서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우레가 장차 소리를 내려 하니, 용지(容止)를 경계하지 않은 자가 있으면 아들을 낳음에 형체가 온전히 갖추어지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흉재(凶災)가 있을 것이니라.” 한다. - 임신한 아녀자에게 주로 경계한 것이다. 소(疏)에 이르기를, “이때 부부가 교접하면 아들이 반드시 형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부모에게는 재앙이 있게 된다.” 하였다. -

   아이를 밴 이는, 누울 때는 비스듬히 눕지 않고 앉을 때는 치우치게 앉지 않고 설 때는 외발로 서지 않고 삿된 음식을 먹지 않고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고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고 눈으로는 삿된 색(色)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밤이면 소경 악사(樂師)를 시켜 시(詩)를 외게 하고 바른 일을 이야기하게 한다. - 《열녀전(列女傳)》에 이르기를, “아이를 배었을 때 반드시 감촉(感觸)하는 바를 신중히 해야 하니, 마음이 사물에 감촉하면 아이의 형체와 음성이 그대로 닮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를 밴 이가 능히 이 점을 삼가면 아이를 낳음에 형용이 단정하고 재주와 식견이 반드시 남보다 뛰어나게 된다. 이를 태교(胎敎)라 한다.” 하였다. -

   어린아이에게 항상 속이지 않음을 보여야 한다. - 원문의 시(視) 자는 오늘날의 시(示) 자와 같다. 어린아이는 지각이 없으므로 항상 바른 사물을 보여 줌으로써, 바름으로 가르쳐 속임이 없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 동자는 구(裘 갖옷)와 상(裳 치마)을 입지 않으며, - 구(裘)는 너무 따뜻하여 음기(陰氣)를 소멸시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도록 만든다. 구와 상을 입지 않는 것은 행동에 편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설 때는 반드시 방향을 바르게 하고,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 - 스스로 단정한 행동을 익히는 것이다. -

   남자와 여자는 맏이가 다르며, - 각기 자체로 백숙(伯叔)의 서열이 있는 것이다. - 남자는 스무 살이 되면 관례(冠禮)를 치르고 자(字)를 쓴다. - 성인(成人)이 되었으므로 그 이름을 삼가는 것이다. -

   아버지의 앞에서 자식은 자신의 이름을 칭하고, 임금의 앞에서 신하는 자신의 이름을 칭한다. - 지존(至尊)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신분의 대소(大小)를 막론하고 모두 자신의 이름을 칭하는 것이다. - 여자는 열다섯 살이 되면 혼인을 허락하여 비녀를 지르고 자를 쓴다. - 혼인을 허락한 것을 성인(成人)이 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관례를 할 때 묘문(廟門)에서 시초점(蓍草占)을 쳐서 성인(成人)의 예(禮)로써 중히 하니, 자손을 성인이 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관례에는 시초점을 쳐서 택일(擇日)하고, 시초점을 쳐서 빈객을 고른다. -

   적자(適子)는 조계(阼階 동편 층계)에서 관(冠)을 쓰는데 이는 대(代)를 이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 적자는 조계에서 관을 쓰는데, 이는 아버지를 대신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때 조금 북쪽에 서서 주인의 자리를 피한다. - 빈객(賓客)의 자리에서 초례(醮禮 관례와 혼례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잔을 돌리지 않는 것)를 하는데 이는 성인(成人)의 예를 더하는 것이다. - 적자는 조계에서 관을 쓰고 지게문 서쪽에서 초례를 하며, 서자(庶子)는 조계에서 관을 쓰지 않고 지게문 서쪽에서 초례를 하니, 이는 성인의 예를 더하는 것이다. 적자는 단술[醴]을 쓰니 옛것을 중히 여기는 것이고, 서자는 술[酒]을 쓰니 적자보다 낮기 때문이다. - 세 번 예(禮)를 더할 때마다 복장이 더욱 높아지니 이는 성인이 되었음을 공경하는 것이다. - 처음 관을 쓸 때는 치포관(緇布冠)에 현단복(玄端服)을 입는데 이는 사(士)가 조석으로 조정(朝廷)에서 입는 복장이며, 두 번째에는 피변(皮弁)을 쓰고 소적(素積)을 입는데 이는 임금과 함께 시삭(視朔)할 때의 복장이며, 세 번째에는 작변(爵弁)에 훈상(纁裳)을 입는데 이는 임금과 함께 제사할 때 입는 복장이다. -

   임금에게 폐백 - 꿩이다. - 을 바친 다음 폐백을 가지고 향대부(鄕大夫)와 향선생(鄕先生)을 뵈오니, - 옛날에는 나이 일흔이 되어 치사(致仕)하고 향리에서 늙는 이가, 대부이면 부사(父師)라 부르고 사(士)이면 소사(少師)라 부른다. - 이는 성인으로써 뵙는 것이다.

   고자(孤子)는 조계에서 예(禮)를 치르는데 - 예(禮)는 금문(今文)에는 예(醴)로 되어 있다. - 희생을 죽일 경우엔 희생의 고기를 담은 솥[鼎]을 들고 문 밖에 놓아 두며, - 고자는 예(禮)를 성대하게 행할 수 있으나, 아버지가 생존하면 솥을 두더라도 문 밖에 놓지는 않는다. - 서자(庶子)일 경우엔 방 밖에서 관례를 행하고 남쪽을 향하여 초례를 행한다. - 방 밖이란 동쪽을 높이 여김을 뜻한다. 조계(阼階)에서 행하지 않는 것은 대(代)를 잇지 않기 때문이다. 빈객의 자리에서 초례를 하지 않는 것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살펴보건대, 예(禮) 자는 금문에 따라 예(醴)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관례에 초례와 예례(醴禮)는 정씨(鄭氏)의 주(註)에서부터 이미 실전(失傳)되었다. 대개 적자는 단술을 쓰고 서자는 술을 쓰니, 경(經)에 이른바 “만약 단술을 쓰지 않으면 초(醮)를 쓴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혼례(昏禮)에, 적부(適婦)는 단술을 쓰고 서부(庶婦)는 초(醮)를 쓰는 것과 뜻이 동일하다. 초례와 예례를 모두 지게문 서쪽에서 행하는데 이는 성인(成人)의 예를 더하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면 적자는 조계에서 예례를 행하는데 이는 아버지를 이음을 밝히는 것이며, 서자는 조계에서 예례를 행하지 않으니 이는 아버지를 잇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둘 다 지게문 서쪽에서 예를 행하지 않으니,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어 주인이 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씨(鄭氏)는 이미 초례를 하(夏) 나라의 예(禮)로 보았으며, 은(殷) 나라의 예는 적서(適庶)의 구분을 엄격히 하는 경문의 뜻을 잃었다. 후인들은 또 빈축(賓祝)을 초례로 보았는데 경문에 그러한 대목이 없으니, 후세에 실전(失傳)된 것이다. -

   여자가 혼인을 허락하였으면 비녀를 지르고 초례를 치르고 자(字)를 쓴다. - ‘혼인을 허락하였다’는 것은 징례(徵禮)를 받아들인 것이다. 비녀를 지르는 것은 여자의 예로, 남자가 관을 쓰는 것과 같으니, 주부(主婦)와 여빈(女賓)을 시켜 그 예를 집전하게 한다. 소(疏)에,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여자가 비록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도 나이 스무 살이 되면 비녀를 지르고 성인으로 예우하는데, 부인(婦人)이 그 예를 집전한다.’ 하였으니, 그 예(禮)가 가볍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인을 허락한 경우엔 예례를 행하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은 경우엔 초례를 행하니, 일찍 예를 얻음을 공경하는 것이다.” 하였다. -

   조묘(祖廟)를 아직 훼철하지 않았으면 아녀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공(公)의 궁(宮)에서 석 달 동안 교육시키고, 조묘를 이미 훼철하였으면 종실(宗室)에서 교육시킨다. - 조묘는 여자의 고조(高祖)로서 임금이 된 이의 사당이다. 종실은 대부의 집이다. -

   여자가 비록 혼인은 허락하지 않았더라도 스무 살이 되면 비녀를 지르는데 부인이 그 예(禮)를 집전하며, 평상시에는 비녀를 지르지 않고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서 묶는다. - 부인이 예를 집전하되 주부(主婦)와 여빈(女賓)이 없어 예의(禮儀)를 다 갖추지는 않는다. 평상시에는 비녀를 빼고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 묶어서 아직 혼인을 허락하지 않은 어린이로 처신한다. -

   성년이 된 여자의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지내는 제사에는 궤연(几筵)을 지게문 밖에 설치하고 - 지게문과 들창 사이에 전물(奠物)을 차리는 것은 외성(外成)의 뜻이다. 혼례(昏禮)에 여자가 방 안에서 예례(醴禮)를 하고 남면(南面)하면 어머니가 천수(薦羞)하는데, 이는 혼례를 중히 하는 것이고, 이때 어머니는 방 밖에 있다. - 자성(粢盛)은 서직(黍稷)을 쓰고 희생은 생선을 쓰며, 네가래[蘋]와 개구리밥[藻]으로 국을 끓여서 - 생선은 음류(陰類)이다. 빈(蘋)의 말뜻은 빈복(賓服)이니 유순한 것이고, 조(藻)의 말뜻은 조욕(藻浴)이니 스스로 청결한 것이다. 여자는 국을 놓고 남자는 생선을 얹은 조(俎)를 놓는다. - 시조(始祖)에 제사하고, 사당이 없으면 대종(大宗)의 사당에 단(壇)을 만들고 - 시집가는 여자는 반드시 존자(尊者)에게 나가서 교육을 받는데, 교육을 이루어 주는 이는 여사(女師)이다. 소종(小宗)에는 나아가지 않는다. - 임금이 유사로 하여금 종자(宗子)에게 고하게 한다. - 종자의 집에 나아가 종자에게 고하는 것이다. 족인(族人)은 비록 백세(百世)일지라도 모두 종자에게 가게 되어 있다. -

   혼례(昏禮)에 있어 모든 행사는 반드시 저물녘이나 새벽녘에 하며 아버지의 사당[禰廟]에서 점을 쳐 명을 받는다. - 새벽녘에 행사하는 이는 사자(使者)이고, 저물녘에 행사하는 이는 사위이다. 소(疏)에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이 다섯 가지는 새벽녘에 하니, 바로 《시경》에 이른바 ‘해가 솟아오르는 아침에 한다.[旭日始旦]’는 것이다. 저물녘은 친영(親迎)할 때이다.” 하였다. - 종자(宗子)가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가 명하며, 양친 모두 세상을 떠났으면 자기가 친히 명하는데, - 종자(宗子)란 적장자(適長子)이다. ‘명한다’는 것은 사자(使者)에게 명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명한 경우는 《춘추》 은공(隱公) 2년 9월 조(條)에 “기열수(紀裂繻)가 와서 공의 따님을 맞아갔다.”는 것이 이것이다. 원문의 궁(躬)은 친히[親]란 뜻이다. 직접 명한 경우는 《춘추》 은공 2년 9월 조에 “송공(宋公)이 공손수(公孫壽)를 사자(使者)로 보내와 폐백을 드렸다.”는 것이 이것이다. 여기서는 종자가 아버지가 없는 경우를 말했는데, 아버지가 있는 경우를 보자. 예(禮)에, 일흔 살이 되면 늙었으므로 전중(傳重)하고, 여든 살이 되면 재계(齊戒)와 상사(喪事)의 일을 보지 않게 되어 있으니, 이러한 경우엔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자가 되며, 아내를 맞을 때는 아버지가 명한다. - 지자(支子)는 그 종(宗)을 칭하고 - 지자는 서곤제(庶昆弟)이다. 그 종을 칭한다는 것은 자식이 사자에게 명하는 것이다. - 아우는 그 형을 칭한다. - 아우란 종자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살펴보건대, 여기서 종자는 대종자(大宗子)를 뜻하고, 지자는 고조 이하를 승계한 소종(小宗)을 뜻하며, 아우는 종자의 동모제 및 서곤제를 뜻한다. 이 대목은 “성년이 된 여자의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지내는 제사[敎成之祭]에 소종(小宗)에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설과 뜻이 동일하니, 대개 종(宗)을 통일하고 성(姓)을 분별하는 것은 백세를 두고 바뀔 수 없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씨(鄭氏)의 해석은 이 책을 기록한 이의 원의(原義)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대종이 없으면 그 다음 종자[次宗子]가 명하는 것도 가능하니, 이 또한 소종이다. 그 다음 종자란 바로 고조를 승계하여 종(宗)이 된 이로 선유(先儒)가 이미 이 점에 대해 말하였다. 이는 기(記)에 이른바, 지자가 정통(正統)이고 소종으로서 대종에 대한 경우이니, 지자가 소종에 대해서는 종(宗)이라 칭할 수 없다. -

   친영(親迎)의 예에, 아버지는 남쪽을 향해 서고 아들은 북쪽을 향해 꿇어앉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술을 따라 초례(醮禮)를 행하면서 명하기를, “앞으로 와서 너의 아내를 맞아서 우리 종묘의 제사를 맡아보도록 하되, 공경으로 잘 인도하여 선비(先妣)의 일을 계승하도록 하라. 너는 아내를 인도함에 상도(常道)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면, 아들은 “예. 오직 두려워하여 감히 명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한다. - 《의례》에는, 원문의 성(成) 자가 승(承) 자로 되어 있고, 융(隆) 자가 욱(勗) 자로 되어 있고, 능(能) 자가 감(堪) 자로 되어 있고, 감(敢) 자 위에 불(不) 자가 있고, 명(命) 자 아래 의(矣) 자가 없다. 살펴보건대, 이상은 《순자(荀子)》와 《의례》에 나오는데 두 책에 보이는 내용이 서로 조금 다르기에, 이제 수록하여 이문(異聞)을 넓힌다. -

   아버지가 딸에게 예례(醴禮)를 행하고 사위가 맞으러 오기를 기다린다. - 남자는 초례를 하고 여자는 예례를 하며 남자는 침소(寢所)에서 하고 여자는 사당에서 하는 것은 선인(先人)이 남겨준 지체(支體)를 중히 여기는 뜻에서이다. -

   아버지가 서쪽을 향하고서 경계하되 반드시 옷이나 비녀 따위 물건에 가탁하여 - 가탁하여 경계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이르기를, “경계하고 경계하여 밤낮으로 명을 어기지 말라.” 한다. - 원문의 숙(夙)은 일찍이다. 일찍 일어나 밤늦게 눕는 것이다. 명(命)은 시부모의 분부이다. - 어머니는 작은 띠[衿]와 수건[帨]을 주면서 경계하기를, “힘쓰고 공경하여 밤낮으로 궁사(宮事)를 어김이 없도록 하라.” 한다. - 세(帨)는 차고 다니는 수건이다. 소(疏)에 “궁사(宮事)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명하는 일이다.” 하였다. - 그리고 서모(庶母)는 문 입구까지만 와서 띠[鞶]를 매어 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말로 되풀이해서 명하기를, “공경히 너의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서 밤낮으로 허물이 없도록 주의하고, 작은 띠와 큰 띠를 보고 다짐하도록 하라.” 한다. - 옷과 비녀를 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와 같은 존자(尊者)의 경계는 잊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 시집갈 처녀를 아버지의 사당[禰廟]에 보내는 것은 선인(先人)이 남겨준 몸을 중히 여기는 것이고, 가면서 말하지 않고 경계할 때 응락하지 않는 것은 떠나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뵈올 때는 대추, 밤, 포[腶脩]가 든 대바구니를 가지고 뵙는다. - 시아버지를 뵐 때 대추와 밤을 쓰는 것은 일찍 여물어 근경(謹敬)하다는 뜻을 취하였고, 시어머니를 뵐 때 포를 쓰는 것은 성실하고 전일하게 자신을 닦는다는 뜻을 취하였다. - 이때 행례(行禮)를 돕는 부인이 며느리에게 예례(醴禮)를 행하면 - 부도(婦道)가 새로 이루어졌다 하여 친후(親厚)하게 대하는 것이다. - 며느리는 특돈(特豚)을 바치고, - 부도가 이미 이루어짐에 다시 효양(孝養)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 시부모는 함께 한 잔의 술로 우선 며느리에게 답례한다. 그런 다음 시부모가 먼저 서계(西階)로부터 내려오면 며느리는 조계로부터 내려오는데, 이는 대(代)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 시아버지는 조계(阼階)에 자리하고 시어머니는 방 밖에 자리한다. 시아버지가 남쪽으로 가서 손을 씻은 다음 잔을 씻고 술을 따라 며느리에게 권하고 시어머니가 포와 육장[脯醢]를 올리면 며느리는 서계(西階) 위에서 절하고 받아서는 자기 자리로 나아가 포와 육장을 고수레[祭]하고 술을 고수레한 다음 북쪽을 향하고 술을 마신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답례로 술잔을 올리고 시아버지는 조계 위에서 제육[胙]을 받는다. 며느리가 다시 술을 따라 먼저 자기가 마신 다음 다시 술을 따라 시어머니에게 권하면 시어머니는 술잔을 받아 포와 육장의 좌측에 올려놓고, 여수(旅酬)를 행하지 않고 예(禮)를 마친다. - 서부(庶婦)일 경우에는 사람을 시켜 초례를 행하게 하고, 며느리는 시부모에게 음식을 올리지 않는데, - 사람을 시켜 초례를 행하게 하고 술로 향응(饗應)하지는 않는다. - 이는 모두 적자(適子)에 통솔되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들어온 지 석 달이 된 뒤에 제행(祭行)하며, - 제행이란 제사를 돕는 것을 이른다. - 타고 온 거마(車馬)를 돌려보내며, - 석 달이 되어 사당에 참배한 뒤에 사자(使者)를 보내 며느리가 타고 온 수레를 반환하는 것이다. - 시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면 석 달이 지나서 사당에 채소를 올린다. - 채소는 근(菫)을 쓰는데 이는 근경(謹敬)이란 의미를 취한 것이다. 《예기》 증자문(曾子問)에 이르기를, “며느리가 들어온 지 석 달 만에 사당에 참배시키면서 ‘모씨(某氏)가 며느리로 왔습니다.’라고 고한 다음 택일(擇日)하여 아버지 사당[禰廟]에 제사를 올리니, 이는 며느리가 되었음[成婦]을 뜻하는 것이다.” 하였다. -

   여자가 사당에 참배하기 전에 죽으면 출상(出喪)할 때 널이 조묘(祖廟)에 들어가 뵙지 않고 신주를 시어머니의 사당에 함께 모시지 않으며, 남편된 사람은 상장(喪杖)을 짚지 않고 짚신[菲]을 신지 않고 상차(喪次)에 거처하지 않고 그녀의 본향(本鄕)으로 돌아가 장사지낸다. - 출상할 때 널을 조묘로 옮기는 것이다. 비(菲) 자는 어떤 본에는 비(扉) 자로 되어 있으니, 짚신이다. 이러한 것들은 며느리가 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

   여자에 다섯 가지 아내로 취하지 못할 점이 있으니, 존장(尊長)에게 패역한 집안의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고, 음란한 집안의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고, 선대(先代)에 형벌을 받은 사람이 있는 집안의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고, 선대에 나쁜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집안의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고, 어린 나이에 어버이를 잃고 성장한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는다. - 원문의 부(父) 자가 어떤 본에는 부(夫) 자로 되어 있고, 자(子) 자가 어떤 본에는 여(女) 자로 되어 있다. -
여자에 일곱 가지 버림받을 점이 있으니, 부모에게 불순하면 버리고, 자식이 없으면 버리고, 음란하면 버리고, 투기(妬忌)하면 버리고, 나쁜 질병이 있으면 버리고, 말이 많으면 버리고, 절도(竊盜)하면 버린다. - 원문의 음(淫) 자가 어떤 본에는 음벽(婬僻)으로 되어 있고, 투(妬) 자가 어떤 본에는 질투(嫉妬)로 되어 있고, 다언(多言)이 어떤 본에는 장설(長舌)로 되어 있다. -
여자에 세 가지 버려서는 안 될 점이 있으니, 아내로 맞은 뒤에 친정이 몰락하여 돌아갈 곳이 없으면 버려서는 안 되고, 함께 삼년상을 치렀으면 버려서는 안 되고, 처음에는 함께 가난을 겪다가 뒤에 부귀해졌으면 버려서는 안 된다.

   천자와 제후는 장가들 때 아홉 명의 여자를 맞아들이고, 경과 대부는 1처(妻) 2첩(妾)이고, 사(士)는 1처 1첩이며, 대부가 공을 세워 봉토(封土)를 받았을 경우엔 8첩을 거느린다. - ‘한 번 혼인에 아홉 명의 여자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한 나라에 장가들면 두 나라에서 잉첩(媵妾)을 보내는데 모두 질녀와 누이동생을 딸려 보낸다. - 혹자는 이르기를, “천자는 한 번 장가들 때 열두 명의 여자를 맞아들인다.” 하였다. - 하늘에 열두 달이 있음으로 해서 만물이 반드시 생장하는 것을 본받은 것이다. -

   제후와 세자(世子)는 두 번 장가들지 않는다. - 소(疏)에 “임금은 두 번 장가들지 않는데, 천자와 제후의 세자는 모두 제후의 예로써 아내를 맞으므로 임금과 동일하니, 이는 두 번 장가들지 않는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질녀와 누이동생은 나이가 어리므로 시집가는 여자를 따라서 남에게 갈 수가 있다.” 하였다. -

   천자의 후(后)는 자식이 없더라도 쫓겨나지 않는다. - 천자의 후와 제후의 부인(夫人)이 자식이 없어도 쫓겨나지 않는 것은 빈(嬪)이 많아 후사(後嗣)를 끊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여섯 가지 여자로서 버림받을 잘못을 범하면 부인은 버림받고 후는 폐위(廢位)될 뿐 쫓겨나는 법은 없으니, 천자는 천하로써 집안을 삼으므로 쫓아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살펴보건대, ‘천자의 후는 자식이 없어도 쫓겨나지 않는다’는 대목은 정현(鄭玄)의 주(註)와 《주역》과 《시경》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보이니, 대개 고경(古經)의 전(傳)이다. 그런데 이 뜻이 밝지 않아 당 고종(唐高宗)은 왕후를 폐위하려 하고, 여이간(呂夷簡)은 국모(國母)를 탄핵하여 제거하려 할 때 모두 이 대목을 구실로 삼았다. 그런데 선덕황후(宣德皇后)가 호후(胡后)를 내쫓을 때는 도리어 마땅히 대처할 의리가 없었으니, 학문이 강명(講明)되지 않은 폐단이 작지 않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 표출해 두는 것이다. -

   불효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아첨하는 마음으로 바르지 않게 따름으로 해서 어버이를 불의(不義)에 빠뜨리는 것이 첫째이고,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데도 녹사(祿仕)를 하지 않는 것이 둘째이고, 장가를 들지 않아 후사(後嗣)가 없음으로 해서 선조의 제사를 끊는 것이 셋째이다.

내칙집전(內則集傳)
기상제례(記喪祭禮)
   신종 추원(愼終追遠)은 사람의 대사(大事)이므로, 예경(禮經)에서 이 부분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절목이 이미 갖추어짐에 간편(簡編)이 호한(浩汗)하여 처음 배우는 이들이 쉽게 살펴보고 자세히 요령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우선 경(經) 이외에 전기(傳記)에 나오는 것들 중 대체(大體)에 유관하고 실용에 절실한 것을 나름대로 취하여 이 편(篇)을 만들었으니, 배우는 이들이 간편함을 말미암아 완비함으로 나아가고 소략함을 말미암아 상세함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뜻에서이다.

   질환이 있으면, 질환에 걸린 사람은 제계하고 - 성정(性情)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 구완하는 사람들도 모두 제계하며 - 근심하는 것이다. - 금슬(琴瑟)을 치운다. - 음악을 없애는 것이다. - 질환이 위독해지면 침실 안팎을 모두 소제하고 - 빈객이 문병 오기 때문이다. 질(疾)이 심한 것을 병(病)이라 한다. - 환자의 머리가 동쪽을 향하게 하고 북쪽 창 아래에 눕히되 - 소(疏)에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생기(生氣)가 있는 곳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 침상을 치우고 - 원문의 폐(廢)는 치우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땅에 있었으니, 침상을 치우고 바닥에 눕히는 것은 생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 새옷을 입힌 다음 - 바른 상태에서 생(生)을 마침을 밝히는 것이다. - 남녀가 모두 옷을 갈아입고 - 빈객이 문병 올 것에 대비해서이다. 사(士)는 조복(朝服)을 입고 서인은 심의(深衣)를 입는다. - 오사(五祀)에 기도한다. - 효자의 정을 더하는 것이다. -

   적침(適寢)에서 졸(卒)하되 - 사자(死者)는 반드시 정처(正處)가 있어야 한다. 질환에 걸린 사람은 제계하므로 정침(正寢)에 있는 것이다. - 남자는 여자의 손에 임종하지 않고 아녀자는 남자의 손에 임종하지 않는다. - 군자는 마침을 신중히 하니, 자칫 서로 설만(褻慢)할까 염려해서이다. - 가는 솜을 코에 대어 기다리다가 - 숨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서 숨이 끊어지면 그제야 곡을 하는 것은 흩어지려 하는 신혼(神魂)을 놀라게 할까 염려해서이니, 지극히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 막 숨을 거두면 주인은 오열(嗚咽)하고 형제는 곡을 하고 아녀자들은 곡을 하고 용(踊 상(喪)을 당했을 때 슬퍼하며 발을 구르는 것)을 하며, - 비애(悲哀)에 깊고 얕음이 있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관을 벗고 비녀를 지르고 머리싸개를 한 다음 심의를 입는다. - 복(復)을 하는 이가 조복을 입고 용마루 위에 올라가 북쪽을 향하고 세 번 사자(死者)의 이름을 외쳐 부르면서 양 손으로 사자가 입던 옷을 잡고 왼쪽 방향으로 휘둘러 돌린다. - 복(復)이란 혼백을 돌아오라고 부르는 것이다. 조복을 입고 복을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다. 원문의 위(危)는 지붕 위의 용마루이다. ‘이름을 외친다’는 것은, 이를테면 “아아! 아무개는 복하라.[皐某復]” 하는 것과 같다. 소(疏)에 “부르면서 양 손으로 사자가 입던 옷을 잡고 왼쪽 방향으로 휘둘러 돌리는 것은, 혼을 불러 들여 소생(蘇生)하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왼쪽이 양(陽)이고 양이 생(生)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왼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였다. - 곡을 한 다음에 먼저 복을 하고 복을 한 뒤에 상사(喪事)를 행한다. - 숨이 끊어지면 곡을 하고 곡을 한 뒤에 복을 하고 복을 해도 소생하지 않아야 사사(死事)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

   죽으면 곧 시신을 다시 상(牀)에 옮겨 놓고 염하는 이불로 덮고 사의(死衣)를 치우고 소신(小臣)이 사자의 이빨을 괴어서 입을 열되 뿔로 만든 숟가락을 사용하며, 발을 비틀리지 않도록 묶되 평소에 사용하던 궤(几)를 사용하는데, 이는 임금과 대부와 사가 동일하다. - 상(牀)이란 창문 앞에 설치해 둔 침상을 말한다. 사상례(士喪禮)에는 “사(士)가 적실(適室)에서 죽으면 염하는 이불로 덮는다.” 하였다. 사의(死衣)란 질환이 위독할 때 입혔던 새 옷과 복을 할 때 사용한 옷인데, 이를 치우는 것은 사자를 목욕시키기 위해서이다. -
   시신을 바로 눕힌 다음 자식은 동쪽에 앉고 경(卿), 대부, 부형(父兄), 자성(子姓)들은 동쪽에 서며, 유사(有司)와 서사(庶士)는 당(堂) 아래서 곡을 하되 북쪽을 향하며, 부인(夫人)은 서쪽에 서고 내명부(內命婦), 고모(姑母), 자매(姉妹), 자성(子姓)들은 서쪽에 서며, 외명부(外命婦)는 외종(外宗)을 거느리고 당 위에서 곡을 하되 북쪽을 향한다. - ‘시신을 바로 눕힌다’는 것은 창 아래로 시신을 옮겨 머리가 남쪽으로 향하도록 눕히는 것을 이른다. 자성(子姓)이란 여러 자손들이다. 성(姓)의 말뜻은 생(生)이다. 남자들은 주인의 뒤에 서고 여자들은 부인(夫人)의 뒤에 서는 것이다. 세부(世婦)가 내명부이고, 경대부의 처(妻)가 외명부이다. 외종이란 고모와 자매의 딸들이다. -
   대부의 상(喪)에는 주인은 동쪽에 앉고 주부(主婦)는 서쪽에 앉으며, 명부(命夫)와 명부(命婦)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모두 선다. - 명부(命夫)와 명부(命婦)란 와서 곡하는 이로서 동종(同宗)의 부형, 자성, 고모, 자매, 자성들이다. 무릇 곡하는 이들이 높은 이는 앉고 낮은 이는 서는 것이다. -
   사(士)의 상에는 주인, 부형, 자질들은 모두 동쪽에 앉고 주부, 고모, 자매, 자성들은 모두 서쪽에 앉는다. - 사는 천하므로 동종(同宗)의 존비(尊卑)를 막론하고 모두 앉는다. -

   임금의 상에 소렴(小斂)하기 전에는 기공(寄公)과 국빈(國賓)을 위하여 나가서 영접하고, 대부의 상에 소렴하기 전에는 임금의 명(命)이 이르면 나가서 영접하며, 사의 상에 대부가 조문 오면 염을 하는 중이 아니면 나가서 영접한다. - 부모가 막 죽었을 때에는 너무 슬퍼서 존귀한 이가 아니면 나가서 영접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간다는 것은 혹 뜰에 이르거나 문에 이르는 것이다. 국빈이 대부를 빙문(聘問)하는 것은 염할 때에 해서는 안 되니, 따라서 오는 시기가 염할 때가 아닌 것이다. -
무릇 주인이 나가서 영접할 때는 맨발로 심의(深衣)의 앞자락을 허리띠에 꽂은 채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서계(西階)로부터 내려온다. 임금은 자리에서 기공과 국빈에게 절하고, 대부는 임금의 명이 이르면 침문 밖에 나가서 영접하며, 사자(使者)가 당(堂)에 올라 명을 전달하면 주인은 아래에서 절한다. 사가 대부에 대해서는 친히 조문 오면 더불어 곡하고 문 밖에 나가서 영접하지는 않는다. - ‘자리에서 기공과 국빈에게 절한다’는 것은 임금이 뜰에서 기공과 국빈의 자리를 향해 절하는 것이다. 이때 기공의 자리는 문의 서쪽에 있고 국빈의 자리는 문의 동쪽에 있는데 모두 북쪽을 향한다. 소렴한 뒤에는 기공은 동쪽을 향하고 국빈은 서북쪽을 향한다. ‘사가 대부에 대해서는 친히 조문 오면’이란 대부가 친히 와서 사를 조문할 경우를 말한다. ‘더불어 곡한다’는 것은 절한 다음 서계에 있는 자기 자리로 가서 동쪽을 향하고 곡하는 것이다. 대부가 특별히 오면 북쪽을 향한다. -
   부인(婦人)은 빈객을 영접하거나 빈객을 전송할 때에 당(堂)을 내려오지 않으며, 당을 내려오더라도 곡을 하지는 않으며, 남자가 침문 밖을 나와서 사람을 만나보더라도 곡하지 않는다. 여자 주인이 없으면 남자 주인이 문 안에서 여자 빈객에게 절하고, 남자 주인이 없으면 여자 주인이 조계(阼階) 아래에서 남자 빈객에게 절한다. 아들이 어리면 최포(衰布)로 감싸서 절하게 하고, 후사(後嗣)된 이가 부재중일 경우 그가 작위(爵位)가 있다면 빈객에게 부재중이라 말하고 작위가 없다면 빈객에게 절을 한다. 후사가 된 이가 나라 안에 있으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나라 밖에 있으면 초빈(草殯)하고 장례할 수 있으니, 상(喪)에 후사가 없는 경우는 있어도 주인이 없는 경우는 없다. - ‘절한다’는 것은 자리에서 빈객에게 절하는 것이다. 후사가 된 이가 작위가 있을 경우엔 주인의 일을 대행하는 이가 빈객에게, 주인이 부재중이라고 말하니, 이는 감히 존자(尊者)의 예를 자기가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중류(中霤)에서 시신을 목욕시키고, - 소(疏)에 이르기를, “중류는 실(室)의 중앙이다. 은(殷) 나라 사람은 중류에 구덩이를 파 두어 목욕시킨 물을 받도록 하고, 주(周) 나라 사람은 목욕시키되 중류에 구덩이를 파 두지는 않으며 대야로 목욕시킨 물을 받는다.” 하였다. - 창[牖] 아래에서 반함(飯含)을 하고, - 반함을 한 뒤에 습함(襲含)을 하는데, 천자는 구슬[珠]을 쓰고 제후는 옥(玉)을 쓰고 대부는 기(璣)를 쓰고 사(士)는 조개껍질을 쓰고 서인(庶人)은 곡식을 쓰며, 주 나라 사람은 반함에다 쌀알을 더한다. - 지게문 안에서 소렴(小斂)을 하고, - 소렴한 뒤에 남녀가 시신을 받들고 당(堂)과 영(楹) 사이에 늘어놓되 머리를 남쪽으로 하고 홑이불[夷衾]로 덮는다. - 조(阼)에서 대렴(大斂)을 하고, - 차마 사자(死者)로 하여금 곧바로 주인의 자리를 떠나게 할 수 없어서이다. - 객위(客位)에서 빈(殯)을 하고, - 빈소에 관을 두고 시신을 거두는 것이 이른바 빈(殯)인데, 서계(西階) 위에서 한다. - 조부 사당[祖]에 문안[朝]을 하고, - 조(朝)란 사자가 평소 나갈 때 반드시 존자에게 인사드리던 것을 상징한 것인데, 부친 사당에 먼저 뵌 뒤 조부 사당으로 간다. - 뜰에서 조전(祖奠)을 하고, - 장지(葬地)로 떠나는 날 새벽에 조(朝)를 하고 조를 한 다음에 조(祖)를 한다. 장차 길을 떠나려 할 때 술을 마시는 것을 조(祖)라 하니, 조란 처음[始]이란 뜻이다. 여기서 뜰이란 사당의 뜰이다. - 묘(墓)에 안장(安葬)하고, - 장(葬)의 말뜻은 갈무리할 장(藏)과 같다. 묘(墓)란 무덤이 있는 땅이니, 효자가 사모(思慕)하는 곳이다. - 사당에 반곡(反哭)하고, - 반곡할 때 주인은 서계로 올라가 동쪽을 향하고 사자(死者)의 친척[衆主人]들은 당 아래에서 동쪽을 향한다. 조계(阼階)에 자리하여 서쪽을 향하지 않는 것은 서쪽은 신위(神位)이기 때문이다. 소(疏)에 “사당이 둘인 경우엔 반곡할 때 신(神)에게 먼저 하고 뒤에 아버지 사당에 한 다음 빈궁(殯宮)으로 간다.” 하였다. -빈궁에서 우제(虞祭)를 지낸다. - 우(虞)는 상중(喪中)의 제사 이름이다. 우(虞)는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뼈와 살이 흙으로 돌아가면 정기(精氣)가 가지 못하는 곳이 없게 되니, 사자(死者)가 방황할까 염려하여 효자가 세 번 제사하여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

   사(士)는 3일 만에 성복(成服)하고 풀어 늘어뜨린 요질(腰絰)을 묶고 6승(升)의 베로 만든 관(冠)을 쓰고 3승의 베로 만든 최복(衰服)을 입으며, 상장(喪杖)은 대나무나 오동나무로 만드는데 뿌리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한다. - 부친상에는 참최(斬衰)를 입고 저장(苴杖)을 짚는데 저장은 대나무로 만들며, 모친상에는 삭장(削杖)을 짚는데 삭장은 오동나무로 만든다. - 산 사람의 일은 사망한 다음날[來日]부터 시작하고 죽은 사람의 일은 사망한 그날[往日]부터 시작한다. - ‘산 사람의 일은 사망한 다음날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성복하고 상장을 짚는 것을 말하고, ‘죽은 사람의 일은 사망한 그날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빈(殯)을 하고 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士)의 예(禮)로 대부보다 폄하된 것이니, 대부 이상은 산 사람의 일과 죽은 사람의 일을 모두 사망한 다음날부터 시작한다. -

   공(公)은 일곱 번 용(踊)을 하고, 대부는 다섯 번 용을 하고, 부인(婦人)은 거간(居間 용을 하는 차례가 주인과 빈객의 중간이라는 뜻임)한다. 사(士)는 세 번 용을 하고 부인은 모두 거간한다. - 공은 임금이다. 사람이 막 죽고 소렴 또는 대렴을 할 때 용을 하는 것은 임금과 대부와 사가 동일하니 모두 세 번 용을 한다. 임금은 5일 만에 빈(殯)을 하고, 대부는 3일 만에 빈을 하고, 사는 2일 만에 빈을 한다. 사는 소렴하는 날 아침에는 용을 하지 않고, 임금과 대부는 대렴하는 날 아침에는 용을 하지 않는다. ‘부인은 거간한다’는 것은 용은 반드시 서로 번갈아 하게 되어 있으므로, 주인이 용을 한 다음 부인이 용을 하면 빈객이 그제야 용을 하는 것이다. ‘일곱 번 용을 한다’는 것은 막 죽었을 때 용을 하는 것이 한 번이고, 그 이튿날 습(襲)을 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두 번이고, 습을 한 이튿날 아침에 용을 하는 것이 세 번이고, 또 그 이튿날 아침에 용을 하는 것이 네 번이고, 그날 소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다섯 번이고, 소렴한 이튿날 아침에 용을 하는 것이 여섯 번이고, 그 이튿날 대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일곱 번이다. ‘다섯 번 용을 한다’는 것은 막 죽었을 때 용을 하는 것이 한 번이고, 그 이튿날 아침 습을 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두 번이고, 그 이튿날 아침에 용을 하는 것이 세 번이고, 소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네 번이고, 소렴한 이튿날 대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다섯 번이다. ‘세 번 용을 한다’는 것은 막 죽었을 때 용을 하는 것이 한 번이고, 소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두 번이고, 대렴할 때 용을 하는 것이 세 번이다. -

   교금(絞衿 염을 할 때 시신을 묶는 띠와 홑이불)을 펴 놓을 때 용을 하고, 이불[衾]을 펴 놓을 때 용을 하고, 옷을 펴 놓을 때 용을 하고, 시신을 옮길 때 용을 하고, 시신에 옷을 입힐 때 용을 하고, 시신을 이불로 쌀 때 용을 하고, 시신을 띠로 묶고 홑이불로 쌀 때 용을 하나니, - 효자가 용을 하는 절차를 조목별로 나열한 것이다. - 무릇 빙시(馮尸 시신을 껴안고 곡하는 것)하고 일어나면 반드시 용을 한다. - 빙(馮)은 부축한다는 뜻이니, 부축한다는 것은 가슴으로 껴안는 것[服膺]이다. -

   천자는 7일 만에 빈(殯)을 하고 일곱 달 만에 장사지내며, 제후는 5일 만에 빈을 하고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내며, 대부는 3일 만에 빈을 하고 석 달 만에 장사지낸다. - 신분이 높은 이는 느슨히 하고 신분이 낮은 이는 빨리 하는 것이다. 《춘추전》에 이르기를, “천자는 일곱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천하의 국가가 다 조문 오고, 제후는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동맹국(同盟國)이 조문 오고, 대부는 석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작위(爵位)가 같은 사람이 조문 오고, 사는 한 달 만에 장사지내는데 친척이 조문 온다.” 하였다. - 삼년상은 천자로부터 이하로 동일하다. - 아래로 서인에 이르기까지 부모에 대해서는 동일한 것이다. 천자와 제후는 기년복(朞年服)이 없고, 대부는 기년복을 낮추고 시마복(緦麻服)이 없다. -

   사(士)는 석 달 만에 장사지내고 바로 그달에 졸곡(卒哭)하며, 대부는 석 달 만에 장사지내고 다섯 달 만에 졸곡하며, 제후는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내고 일곱 달 만에 졸곡한다. 사는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내고, 대부는 다섯 번 우제를 지내고, 제후는 일곱 번 우제를 지낸다. -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은의(恩義)에 차등이 있는 것이다. 천자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사지내고 돌아와서 바로 우제를 지낸다. -

   기한을 앞당겨 장사지내는 것을 갈(竭)이라 하고, - 사자(死者)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기한을 늦추어 장사지내는 것을 만(慢)이라 한다. - 예(禮)에 태만한 것이다. -

   점을 쳐서 택(宅)을 잡을 때 먼저 총인(冢人 묘지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리)이 토지(土地)를 살펴보며, - 택은 장지(葬地)이다. 장지를 잡을 때 사(士)는 시초점[筮]을 치고 대부는 거북점[卜]을 치는데, 이렇게 점을 치는 이유는 땅속에 숨은 바위가 있거나 솟아나는 물이 있을까 염려해서이다. 원문의 물(物)은 살펴본다[相]는 뜻이니, 지질(地質)이 시신을 묻기에 좋은가를 살펴본 다음 묘터를 닦는 것이다. - 점을 쳐서 장사지내는 날을 잡을 때는 열흘 안에서 잡힌 날 중 가장 먼 날을 우선한다. - 효자의 마음상 그렇게 하는 것이다. -

   묘소에서 곡읍(哭泣)할 때는 소리가 사당에는 들리지 않게 하고, 사당에서 종과 북을 울릴 때는 소리가 묘소에는 들리지 않게 하며, 하관(下棺)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말을 빨리 몰지 않으며, - 어버이가 저 장지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 장지로 운구해 보낼 때는 마치 사모(思慕)하듯이 하고, 하관하고 장지에서 돌아올 때는 마치 의심하듯이 한다. - 사모하듯이 하는 것은 마치 어버이가 앞에 살아 계신 것처럼 여기는 것이고, 의심하듯이 하는 것은 어버이의 신(神)이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것이다. -

   아침에 장사지내고 일중(日中 한낮)에 우제를 지내고 - 군자는 일을 거행함에 반드시 바른 시진(時辰)에 한다. 《순자》에 이르기를, “죄인의 상(喪)에는 친척들이 밤에 매장하고 곡을 하되 상복은 입지 않는다.” 하였다. - 집으로 돌아와 곡하고 당(堂)에 오르고 주부(主婦)는 실(室)에 들어간다. - 조상의 사당과 어버이가 예를 행하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 상주(喪主)는 객계(客階 서계(西階))를 통해서 올라가 빈객의 자리에서 조문을 받는다. - 주인은 서계(西階)로 올라가 동쪽을 향하고 빈장(賓長)은 서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하며, 중빈(衆賓)은 당(堂) 아래에 있는다. -

   초우(初虞)를 지낼 때는 유일(柔日)을 쓰는데 - 유일은 음(陰)에 속하니, 정적(靜的)인 뜻을 취하였다. 장사를 지내는 날은 간지(干支)가 정해(丁亥)인 날을 쓴다. - 축사(祝辭)에 “애자 모(哀子某)와 애현상(哀顯相)이 - 현상은 제사를 돕는 사람이다. - 감히 정결한 희생인 강렵(剛鬣 희생에 쓰는 돼지)과 가천(嘉薦)과 보뇨(普淖)와 - 가천은 김치와 육장[菹醢]이고, 보뇨는 메기장과 찰기장[黍稷]이다. - 명제(明齊)로 빚은 술로 - 명제는 새로 길은 물이고, 원문의 수(醙)는 술을 빚는 것이다. - 슬피 협사(祫事 조상의 신주를 함께 모시고 올리는 제사)를 올리오니, - 초우를 협사라 하는 것은 주인이 선조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내 선조와 더불어 함께 편안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 당신의 황조 모보(皇祖某甫)에게로 가서 - 황조에게로 가라고 고하는 것은 신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 흠향하소서! - 강권(强勸)하는 것이다. - ”라고 한다. 재우(再虞)를 지낼 때도 역시 초우와 같이 하되 축사의 마지막 부분을, “슬피 제사를 올리오니 편안하소서!”라고 하고, 삼우(三虞)를 지낼 때는 졸곡의 제사나 기타 제사에 강일(剛日)을 쓰고, 역시 초우와 같이 하되 축사의 마지막 부분을, “슬피 제사를 올리오니 제례(祭禮)가 이제 끝났사옵니다.”라고 한다. - 조상의 사당에 신주를 모실 때 뒤에 지내는 우제에서 신(神)을 편안케 하는데, 이때 유일에서 강일로 바꾸어 날짜를 잡는 것은 동적(動的)인 뜻을 취한 것이다. ‘기타 제사’란 미처 때가 되기 전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상복소기(喪服小記)에 이르기를, “장사를 앞당겨 지낸 경우엔 우제도 앞당겨 지내되 석 달이 지난 뒤에 졸곡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우제와 졸곡의 사이에 있는 제사에도 역시 강일을 쓰며 그 제사가 이름이 없으므로 기타 제사라 한 것이다. -

   동이 틀 무렵 부제(祔祭)를 지내고 이어 천(薦)을 하는데 - 천은 졸곡(卒哭) 제사이다. - 졸사(卒辭)에, “애자 모가 내일 모(來日某)에 당신을 당신의 황조 모보에게 올려 함께 제사하오니, 흠향하소서!” 한다. - 졸사는 졸곡의 축사(祝辭)인데, 제수로 차리는 음식은 언급하지 않고 주인이 부제를 지낸다는 것만 밝힌다. - 사자(死者)가 여자일 경우엔 ‘황손비 모씨(皇孫妣某氏)’라 하고, - 여손(女孫)을 조모(祖母)에 부제하는 경우이다. - 며느리일 경우엔 ‘손부우황조고 모씨(孫婦于皇祖姑某氏)’라 하며, - 당신[爾]이라고 말하지 않고 손부(孫婦)라 한 것은 다소 소원함을 나타낸다. - 기타의 축사는 동일하다. - “내일 아무개를 올려서 부제하오니, 흠향하소서!”라 한다. -
   향사(饗辭 흠향하길 권하는 축사)에는 “애자 모가 정결하게 제수를 차려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 원문의 규(圭)는 정결하다는 뜻이다. 《시경》 천보(天保)에 “길일을 택하여 정결히 술밥을 지어 올린다.[吉圭爲饎]”라 하였다. 무릇 길제(吉祭)에 시동을 흠향케 할 때는 제주(祭主)가 자신을 ‘효자(孝子)’라 한다. - ” 하고, 부제에는 우제와 졸곡제(卒哭祭)의 시동을 그대로 이어 쓰며, - 우제와 부제는 질(質)을 숭상하므로 시초점을 쳐서 시동을 가릴 겨를이 없는 것이다. - 축사에, “효자 모와 현상이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들며 조심하는 마음으로 삼가고 두려워하여 감히 자신을 게을리 하지 못하고 슬픔에 편안하지 않아, - 효(孝)라고 칭하는 것은 길제(吉祭)이다. 소(疏)에 이르기를, “살펴보건대, 《예기》 단궁(檀弓)에 의하면, 우제는 상제(喪祭)이고 졸곡 이후의 제사가 길제가 된다.” 하였다. - 삼가 윤제(尹祭)와 - 윤제란 포(脯)이다. 대부와 사의 제사에는 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여기서 희생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윤제’라고 한 것은 역시 기록한 자의 착오이다. 소(疏)에 이르기를, “《예기》 곡례(曲禮)에 ‘포를 윤제라 한다’ 했는데 이는 천자와 제후의 예이다.” 하였다. - 가천과 보뇨와 보천과 새로 길은 물로 빚은 술로 제사를 올리오니 - 보천은 형갱(鉶羹)이다. 희생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이다. - 당신은 당신의 황조 모보에게로 가시고 황조 모보는 당신의 손자 모보를 당신 가까이에 올려 함께 흠향하소서! - 부제하고자 하여 사자(死者)와 조상, 양쪽 모두에게 고하는 것이다. 《예기》 증자문(曾子問)에 이르기를, “천자가 붕(崩)하거나 국군(國君)이 훙(薨)하면 축(祝)이 여러 사당의 신주를 가져다 조상의 사당[祖廟]에 갈무리하는 것이 예이다. 졸곡을 마친 뒤에는 신주를 저마다 자기 사당으로 돌려보낸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사(士)의 황조(皇祖)도 졸곡을 마친 뒤에는 역시 자기 사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주가 없는 경우에는 사당으로 돌아가는 예에 관해 들어 보지 못했으니, 폐백을 가지고 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 한다.

   우제를 지낼 때 비로소 시동을 세우고 궤연(几筵)을 둔다. - 장사지내기 이전에는 산 사람의 예로 섬기기 때문에 시동을 두지 않고, 장사지낸 뒤에는 어버이의 육신이 이미 땅속에 묻혔기 때문에 시동을 세워 효자의 마음이 의지할 데가 있도록 한다. - 졸곡한 뒤부터 휘(諱)를 하니, - 졸곡은 삼우(三虞) 뒤에 지내는 제사 이름이다. 처음에는 아침저녁 사이에 슬픔이 복받치면 곡을 하다가 이때가 되면 제사를 그치고 아침저녁으로 곡을 할 따름이다. 휘는 그 이름을 피하는 것이다. - 이는 생사(生事)가 끝나고 귀사(鬼事)가 시작되는 것이다. - 다시는 하실(下室)에 상식(上食)하지 않고 귀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원문의 이(已)는 어사(語辭)이다. -
졸곡한 뒤에는 재부(宰夫)가 목탁을 잡고 궁(宮)에 명하기를, “묵은 휘를 버리고 새 휘를 쓴다.” 하면서, - ‘묵은 휘’란 마땅히 체천(遞遷)해야 할 고조(高祖)의 아버지의 휘이다. 역설(易說)에 이르기를, “《주역》의 제을(帝乙)은 성탕(成湯)이고, 《서경》의 제을은 육세(六世) 뒤의 왕인데 하늘이 명(命)을 내려 왕이 되게 한 시기가 서로 소원(疏遠)하므로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었다.” 하였다. - 침문(寢門)에서 출발하여 고문(庫門)에 이른다. - 백관(百官)이 있는 곳을 두루 다니는 것이다. 고문은 궁(宮)의 외문(外門)이다. 《예기》 명당위(明堂位)에 이르기를, “고문은 천자의 고문(皐門)이다.” 하였다. -

   졸곡한 이튿날 그 반차(班次)에 따라 부제하고, - 졸곡한 이튿날의 일이다. 원문의 반(班)은 서차이다. 《예기》 상복소기에 이르기를, “부묘(祔廟)는 반드시 소목(昭穆)에 따라 해야 하는데 바로 윗대의 소목에 해당되는 신위가 없으면 1대(代)를 건너뛰어 그 윗대에 부묘한다. 무릇 부제를 마친 다음에는 정침(正寢)으로 돌아오니, 이는 협제(祫祭)를 마치면 신주가 반드시 자기 사당으로 돌아왔다가 소상이 지난 뒤에 천묘(遷廟)하는 것과 같다. - 기년(期年)이 돌아오면 소상(小祥)을 지내고, - 소상은 제사 이름이다. 상(祥)은 길(吉)하다는 뜻이다. 소(疏)에, “일 년이 지나면 천기(天氣)가 바뀌었으므로 효자가 그리워하여 제사하는 것이다.” 하였다. - 다시 기년이 돌아오면 대상을 지내고 - 원문의 우(又) 자는 부(復) 자와 같은 뜻이다. - 중월(中月) 만에 담제(禫祭)를 지내는데 - 중(中)은 건너뛴다[間]는 뜻이다. 담(禫)은 제사 이름이니, 대상과 한 달의 간격을 둔다. 초상(初喪) 때부터 이때까지는 무릇 27개월이 걸린다. 담은 담담(澹澹)하여 편안하다는 뜻이다. - 이 달에 길제를 지내되 배위(配位)는 함께 제사하지 않는다. - ‘이 달’이란 담제를 지내는 달이다. 사시(四時)의 정제(正祭) 때가 되면 제사하되, 배위 모씨(某氏)를 함께 제사하지는 않는데, 이는 슬픔이 아직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부모의 상에는, 빈(殯)을 한 다음부터 죽을 먹되 아침에 1일(溢)의 쌀을 먹고 저녁에 1일의 쌀을 먹으며, - 스무 냥을 일이라 하는데, 쌀 1되의 20분의 1에 해당된다. -우제를 마치고 졸곡한 다음부터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되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는다. 기년이 돌아와 소상을 지내면 채소와 과일을 먹고, - 소금과 우유죽을 곁들여 먹는다. - 다시 기년이 돌아와 대상이 되면 초와 장[醯醬]을 먹고, 담제를 지내면 예주(醴酒)를 마신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처음 술을 마시는 사람은 먼저 예주를 마시고, 처음 고기를 먹는 사람은 먼저 건육(乾肉)을 먹는다. - 먼저 예주를 마시고 건육을 먹는 것은 대번에 진한 맛을 접하지 않고자 해서이다. -

   부모의 상에는 의려(倚盧)에 거처하여 - 의려란 나무를 서로 의지하여 만든 여막으로, 중문 밖 동방(東方)의 북쪽 지게문 아래에 세운다. - 거적[苫]을 깔고 흙덩이[塊]를 베고 - 점(苫)은 짚을 짜서 만든 것이고, 괴(塊)는 흙덩이이다. 괴(塊) 자는 어떤 본에는 괴(?) 자로 되어 있다. - 마질(麻絰)과 마대(麻帶)를 벗지 않으며, - 애척(哀戚)하는 마음에 편안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우제를 지내고 졸곡을 마치면 미(楣 상인방(上引枋))를 버티어 햇볕이 조금 들어오게 하고 주위를 덮은 풀을 베며, 둘레를 가지런히 자르기만 하고 테두리를 하지 않은 부들자리에 누워 잔다. - 삼우(三虞)를 지낸 뒤에 비로소 낡은 여막을 손질하여, 서향(西向)으로 지게문을 내고 지게문 밖 양쪽의 풀을 제거하는 것이다. ‘미를 버틴다[柱楣]’는 것은 앞의 들보[前梁]를 미(楣)라 하는데, 미의 양쪽 끝에 나무를 세워 받치는 것이다. ‘가린다[屛]’는 것은 지게문 양쪽을 가리는 것이다. 원문의 하(芐)는 오늘날의 포평(蒲萍)이다. ‘芐’는 반절이 호(戶)ㆍ가(嫁)이다. - 그리고 기년이 돌아와 소상이 되면 악실(堊室 칠을 하지 않은 작은 방)에 거처하고 - 악실은 중문 밖에 굽지 않은 벽돌을 쌓아 만드는데 칠을 하거나 벽을 바르지 않는다. - 잠잘 때는 자리를 깔며, 다시 기년이 돌아와 대상이 되면 다시 침실에 거처하고 담제를 지내고 나면 침상을 쓴다. - 소(疏)에 “‘다시 침실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는 중문 밖에 묵지 않고 빈궁(殯宮)의 침소로 돌아감을 이른다. 길제(吉祭)를 지낸 뒤에야 비로소 평소의 침실로 돌아간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효자의 거처가 중문 밖에 있는 것은 슬퍼하고 친애하는 마음에서이다. 거적[苫]이란 슬퍼하고 친애하는 마음이 풀[草]에 있는 것이다. 장사지낸 뒤에 미(楣)를 버티고 조금 들어올려 햇빛을 받아들이고, 또 진흙으로 안벽을 발라 바람과 추위를 피할 뿐 의려의 바깥쪽은 바르지 않으며, 우제를 지낸 뒤 의려를 떠난다. 이때부터는 무시곡(無時哭)은 하지 않고 조계(阼階) 아래에서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만 곡하며, 소상(小祥) 뒤에는 아침저녁의 곡도 하지 않고 악실에 있으면서 열흘이나 닷새에 한 번 생각이 나면 곡을 한다. 악(堊)은 희다[白]는 뜻이니, 새로 담장 벽에 칠을 하여 흰색으로 조금 꾸미는 것이다.” 하였다. -

   참최(斬衰) 3승(升)을 입다가 우제를 지내고 졸곡한 뒤에는 성포(成布) 6승과 7승으로 만든 관을 받는다. - 소(疏)에 “3승, 4승, 5승의 베는 올이 거칠고 성글어 성포가 될 수 없고, 6승이 넘으면 그 올이 점차 길포(吉布)와 비슷하기 때문에 성포라 한다.” 하였다. - 어머니를 위한 소최(疏衰) 4승을 입다가 우제를 지내고 졸곡한 뒤에는 성포 7승과 8승으로 만든 관을 받으며, 삼베옷을 벗고 갈포(葛布)를 입되 삼중(三重)으로 된 갈대(葛帶)를 띤다. - ‘삼중으로 된 갈대를 띤다’는 것은 남자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다섯 등분에서 한 등분을 제거하고 네 등분으로 꼬아서 띠를 만들어 가벼우니, 이미 상례(喪禮)에서 길례(吉禮)로 바뀌었기 때문에 조금 수식을 가하는 것이다. 아녀자는 갈질(葛絰)은 띠어도 갈대는 띠지 않는다. - 기년이 돌아와 소상이 되면 연관(練冠)을 쓰고 전연(縓緣)을 한 옷을 입고, 요질(腰絰)은 제거하지 않는다. - 소(疏)에 “졸곡한 뒤에는 관을 쓰고 최복(衰服)을 받되 마전한 삼[練]으로 만들고 관을 바꾸며, 또 마전한 삼으로 만든 중의(中衣)를 입고 분홍색[縓]으로 된 동정[緣]을 단다.” 하였다. - 다시 기년이 돌아와 대상이 되면 소호(素縞)와 마의(麻衣)를 입으며, - 《예기》 옥조(玉藻)에 “흰 명주로 만들고 흰 베로 선을 두른 관[縞冠素紕]은 대상을 치른 뒤의 관이다.” 하였다. 마의는 15승 베로 만든 심의(深衣)인데, 마(麻)라 한 것은 베로 가선을 두르고 채색으로 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상을 지낸 뒤에는 최장(衰杖)을 없앤다. 소(素)는 생명주이다. 명주를 마전한 것을 호(縞) 또는 백증(白繒)이라 한다. -담제를 지내면 섬(纖)을 입고 패물(佩物)을 차지 않는 것이 없다. - 세로 올[經]은 검은색으로, 가로 올[緯]은 흰색으로 짠 천이 섬(纖)이다. 구설(舊說)에, “섬관(纖冠)이란 채색 갓끈[采纓]이다.” 하였다. ‘패물을 차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분(紛)과 세(帨) 따위를 평상시와 같이 차는 것이다. 섬(纖) 자는 어떤 본에는 침(綅) 자로 되어 있다. 소(疏)에 “담제를 지낼 때는 현관(玄冠)을 쓰고 조복(朝服)을 입는다. 그리고 담제를 마치면 머리에는 섬관(纖冠)을 쓰고 몸에는 소단(素端)과 황상(黃裳)을 입은 채 길제(吉祭)에 이르며, 길제 이후에는 비로소 패물을 차지 않는 것이 없다. 상제(祥祭)로부터 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섯 가지 복(服)이 있으니, 상제에 조복과 호관(縞冠)이 그 첫째이고, 상제를 마친 뒤 소호와 마의가 그 둘째이고, 담제에 현관과 황상이 셋째이고, 담제를 마친 뒤 조복과 침관(綅冠)이 넷째이고, 한 달 뒤 길제 때 현관과 조복이 다섯째이고, 길제를 지낸 뒤 현관을 쓰고 거처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하였다. -

   삼년상 중에는 언(言)은 하되 어(語)는 하지 않고, 응답은 하되 묻지는 않으며, 의려(倚盧)나 악실(堊室)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앉지 않는다. 악실 안에 앉아 있을 때는 때로 행례(行禮) 차 어머니를 뵐 일이 있지 않으면 중문(中門)에 들어서지 않는다. - 언(言)은 자기의 일을 말하는 것이고, 남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語)이다. 악실에 있을 때에 때로 어머니를 뵐 일이 있어야만 중문에 들어가고 의려에 있을 때는 중문에 들어가지 않는다. - 소최복(疏衰服)을 입을 경우엔 모두 악실에 거처하고 의려에 거처하지 않으니, 의려는 엄숙한 곳이다. - 의려는 슬픔과 공경이 지극한 곳이므로 그만한 실상이 있지 않으면 거처할 수 없다. -

   부모의 상에는 밤낮 무시로 곡하고, - 슬픔이 지극한 나머지 곡을 아침저녁에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상사(喪事)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 어버이가 된 소이를 감히 잊지 못하는 것이다. - 장사를 지낸 뒤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서서 말하되, 제후는 천자의 대사(大事)는 말하고 자기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않으며, 대부와 사는 공사(公事 나라의 일)는 말하고 가사(家事)는 말하지 않는다. - 이것이 상례(常禮)이다. - 제후는 장사지내고 나면 왕정(王政 천자의 정령(政令))이 나라에 들어와 시행되고 졸곡한 뒤에는 왕사(王事 천자의 일. 국정(國政)을 뜻함)를 맡아보며, 대부와 사는 장사지내고 나면 공정(公政 제후의 정령)이 집안[家]에 들어와 시행되고 졸곡한 뒤에는 변(弁)을 쓰고 갈질(葛絰)과 갈대(葛帶)를 띠고서 금혁(金革 전쟁에 나감)의 일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복역한다. - 이는 권례(權禮)이다. 변과 갈질과 갈대는 상복이 조복으로 변한 것이니, 복이 가벼워 일에 나아갈 수 있다. - 소상을 마치고 나면 악실(堊室)에 거처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거처하지 않으며, 제후는 국정을 도모하고 대부와 사는 가사를 도모하며, 대상을 마치면 악실을 유(黝 검푸른색)와 악(堊 흰색)으로 칠한다. 대상을 지낸 뒤에는 밖에서 곡하는 이가 없고 담제를 지낸 뒤에는 안에서 곡하는 이가 없으니, 이미 음악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黝)와 악(堊)은 악실을 치장하는 것이다. 땅에 칠하는 것을 유라 하고, 담장에 칠하는 것을 악이라 한다. ‘밖에서 곡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문 밖에서 곡하지 않는 것이고, ‘안에서 곡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문 안에 들어와서 곡하지 않는 것이다. 담제를 지내고 한 달을 넘기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니, 음악을 연주하면 곡하는 이가 없게 마련이다. 소(疏)에 “밖은 중문(中門) 밖이니, 곧 악실 안이다. 대상을 지내는 날에는 소금(素琴)을 연주하므로 중문 밖에서 곡하지 않는 것이다. 안은 중문 안이다. 담제를 지내면 뜰에 팔음(八音)을 연주하는 악기를 걸어둔다. 그러므로 문 안에서 다시는 곡하지 않는 것이다. 소상을 지낸 뒤에는 3일에 한 번 상차(喪次)인 악실에서 곡하고 대상이 지난 뒤에는 중문 밖, 즉 악실로 돌아가지 않으며, 조문 오는 이가 있으면 문 안으로 들어가 곡위(哭位)에 나아가 곡한다.” 하였다. -담제를 지낸 뒤에는 종어(從御)하고 길복을 입으면 침실로 돌아간다. - 종어란 부인과 함께 거처하는 것이다. ‘침실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는 빈궁(殯宮)에 묵지 않는 것이다. -

   이달에 담제를 지내고 달을 넘겨 음악을 연주한다. - 담제를 지낸 다음달에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

   거상(居喪)의 예(禮)는 몸을 훼척(毁瘠)하더라도 뼈가 드러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고, 시각과 청각이 쇠약해지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으며, - 상사(喪事)를 치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문의 형(形)은 뼈가 드러나는 모습이다. - 오르내림에 조계(阼階)를 말미암지 않고 드나듦에 문수(門隧 문의 중앙)를 통과하지 않는다. - 항상 어버이가 생존한 것처럼 하는 것이다. 수(隧)는 길이다. -

   거상의 예는, 머리에 부스럼이 있으면 머리를 감고, 몸에 종기가 있으면 몸을 씻으며, 질병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되 질병이 그치면 원상으로 돌아가니, 상사를 치러내지 못하면 곧 불자(不慈)와 불효(不孝)에 가깝기 때문이다. - 원문의 승(勝) 자는 치러낸다는 뜻이다. -

   죽을 먹을 수 없으면 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먹을 수도 있고, - 식성(食性)이 맞지 않아 먹을 수 없는 사람은 나물국에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질병이 있으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실 수도 있다. - 질병에 걸리면 기운이 미약해지기 때문이다. - 쉰 살에는 성상(成喪 상례를 제대로 갖추는 것)을 하지 못하고, - 성(成)은 갖춘다는 뜻이니,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슬픔으로 몸을 훼척(毁瘠)하거나 마질(麻絰)의 끝을 풀어 헤친 채 송장(送葬)하는 따위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 일흔 살에는 그저 최마(衰麻)를 몸에 걸칠 뿐이다. - 그 나머지 거처와 음식은 평상시와 같다는 말이다. - 장사를 지내고 나서 임금이 음식을 먹이면 음식을 먹고 대부나 아버지의 벗이 음식을 먹이면 먹되 쌀밥과 고기는 피하지 않고 술과 단술[醴]은 피한다. - 존자(尊者)의 앞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안색이 변하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부모의 상에는 무시(無時)로 곡하고 임금의 사신으로 갔다 왔을 경우엔 반드시 어버이의 혼령이 그가 돌아온 줄을 알게 해야 한다. - 소상을 마치고 혹 때로 임금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게 되었으면 돌아와서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 고하여야 한다. -

   군자는 남의 상(喪)을 치르지 못하게 박탈해서는 안 되고, 자기의 상도 치르지 못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 이 두 가지는 서(恕)와 효(孝)이다. -

   기년상(期年喪)은 열한 달 만에 소상을 지내고 열세 달 만에 대상을 지내고 열다섯 달 만에 담제를 지내며, - 이 대목은 아버지가 생존하고 어머니상을 당했을 경우를 이른다. - 소상을 지내면 남의 상에 조문할 수 있다. - 아버지가 생존한 상태에서 어머니상에 공최(功衰)를 입게 되면 남의 상에 조문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있으므로 나가기가 가볍기 때문이다. -
   삼년상은 비록 공최(功衰)일지라도 남의 상에 조문할 수 없나니, 이 점은 제후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같다. 다만 자신에게 복(服)이 있는 상이어서 곡하러 갈 경우엔 그 복을 입고 조문하러 간다. - 공최는 소상을 마치고 입는 복이다. 제후가 새로 죽은 이를 위하여 복을 입고 가서 곡하였다면, 이는 사자(死者)가 신하로 삼을 수 없는 사람임을 뜻한다. -

   소최(疏衰)의 상(喪)에는 장사를 지내고 나서 남이 만나보기를 청하면 만나보고 남을 만나자고 청하지는 않으며, 소공상(小功喪)에는 남을 만나자고 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공상(大功喪)에는 집지(執摯)를 하지 않으며, 오직 부모의 상에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채로 남을 만나볼 수 있다. - 말하자면, 무거운 상(喪)에는 자기가 남을 만나고자 해서는 안 되고 남이 자기를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채로 만나본다’는 것은 슬픔이 지극한 나머지 꾸밈새를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

   거상(居喪) 중인 사람은 남에게 물건을 줄 수 없고, 남이 물건을 줄 경우 술이나 고기이면 받되 반드시 세 번 사양한 다음 주인이 최질(衰絰) 차림으로 받는다. - 남에게 물건을 주지 않는 것은 생각이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있지 않은 것이다. 받되 반드시 바른 차림으로 받는 것은 음식의 맛에 구애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 임금의 명으로 내린 물건일 경우엔 감히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먼저 사당에 올린다. - 먼저 사당에 올리는 것은 임금이 준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예(禮)이다. - 삼년상 중일 때는 상배(喪拜)를 하고, 삼년상이 아닐 때는 길배(吉拜)를 한다. - 조문이나 하사품을 받을 경우를 말한다. 이마를 조아린 뒤에 절하는 것이 상배이고, 절한 뒤에 이마를 조아리는 것이 길배이다. -

   복(服)을 입은 상태에서 남의 음식 초대를 받으면 가지 않는다. 대공(大功) 이하의 상일 경우엔 장사지낸 뒤에 남의 집에 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주인이 음식을 권했을 경우 그 족당(族黨)이면 먹고 그 족당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 남의 집에 갔다가 음식 대접을 받으면 먹을 수 있지만 음식을 먹기 위해 남의 집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黨)은 친(親)과 같다. -

   대부의 상(喪)에는 서자(庶子)는 조문을 받지 않는다. - 적자(適子)가 빈객에게 절하는 것이다. - 서자는 아버지의 실(室)에 있을 경우 그 어머니를 위해 담제를 지내지 않으며, - 첩의 아들은 아버지가 생존했을 경우 강등되는 것이다. - 서자는 상장(喪杖)을 짚은 채 자리[位]에 나아가지 않는다. - 적자(適子)보다 낮추는 것이다. 자리는 조석으로 곡하는 곡위(哭位)이다. -
아버지는 서자의 상에 상주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손자는 상장을 짚은 채 곡위로 나아갈 수 있다. - 조부는 손자를 강등하지 않으므로, 손자가 예제(禮制)를 펼 수 있는 것이다. - 아버지가 생존했을 경우엔 서자가 처(妻)를 위해 상장을 짚고 곡위로 나아갈 수 있다. - 시아버지는 첩부(妾婦)의 상에 상주가 되지 않으므로 아들이 예제를 펼 수 있는 것이다. -
우제에는 상장을 짚은 채 실(室)에 들어가지 않으며, 부제(祔祭)에는 상장을 짚은 채 당(堂)에 오르지 않는다. - 슬픔은 더욱 줄고 공경은 더욱 많아진 것이다. 우제는 침실에서 지내고, 부제는 조묘(祖廟)에서 지낸다. -

   임금의 상에는 3일 만에 아들과 부인(夫人)이 상장을 짚고, 5일 만에 빈(殯)을 하고, 대부와 세부(世婦)에게 상장을 준다. 아들과 대부는 침문(寢門) 밖에서는 상장을 짚고 침문 안에서는 상장을 거두며, 부인과 세부는 상차(喪次)에 있을 때는 상장을 짚고 곡위(哭位)에 나아갈 때는 남을 시켜 상장을 들게 한다. 아들은 천자의 명이 있으면 상장을 치우고 국군(國君)의 명에는 상장을 거두며, 점을 치거나 시동에게 일이 있을 경우엔 상장을 치운다. 대부는 임금의 처소에서는 상장을 거두고 대부의 처소에서는 상장을 짚는다. - ‘3일’이란 죽은 뒤 3일 만이다. 임금을 위해 상장을 짚는 것이 일수(日數)가 같지 않으니, 임금은 예(禮)가 커서 이로써 친소(親疏)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의 집(輯)은 거둔다는 뜻이니, 거둔다는 것은 상장을 들고 있고 땅을 짚지 않는 것이다. 부인과 세부는 방 안에 상차를 둔다. 곡위는 당(堂) 위에 있는데 당 위는 시신의 빈소에 가까우므로 남을 시켜 상장을 들게 하고 자신이 감히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이 국군의 명에 상장을 거둔다’는 것은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감히 대등하게 굴지 않는 것이다. ‘점을 친다’는 것은 장지(葬地)와 장례일을 점쳐서 잡는 것이다. 무릇 상제(喪祭)는 우제(虞祭)에만 시동을 둔다. ‘대부가 임금의 처소에서 상장을 거둔다’는 것은 임금과 더불어 침문 밖의 곡위로 나아갈 경우를 뜻하니, 대부 혼자일 경우에는 상장을 짚는다. 여기서 임금은 죽은 임금의 아들을 뜻한다. ‘대부의 처소에서는 상장을 짚는다’는 것은 모두 임금을 위해 상장을 짚는 처지이므로 서로 상대에게 자신을 낮추지 않는 것이다. -
   대부의 상에는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빈(殯)을 한 다음 주인과 주부(主婦)와 실로(室老)가 모두 상장을 짚는다. 대부는 임금의 명이 있으면 상장을 치우고 대부의 명일 경우엔 상장을 거두며, 내자(內子)는 부인(夫人)의 명을 받들 경우엔 상장을 치우고 세부(世婦)의 명을 받들 경우엔 다른 사람에게 상장을 넘겨 준다. - ‘대부는 임금의 명이 있을 경우 상장을 치운다’는 대목의 대부는 대부의 아들을 가리킨 것이며, 대부라 한 것은 실제로 대부에게 부모의 상이 있을 경우를 통틀어 한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장을 넘겨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시켜 상장을 들게 한다’는 것과 같다. -
   사(士)의 상에는 2일 만에 빈(殯)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주인이 상장을 짚고 부인(婦人)들도 모두 상장을 짚으며, 임금의 명과 부인(夫人)의 명에는 대부와 같고 대부와 세부의 명에도 역시 대부와 같다. - 사는 2일 만에 빈을 하는 것은 대부보다 낮추는 것이다. 사의 예(禮)는 죽은 사람의 일은 사망한 그날[往日]부터 시작하고 산 사람의 일은 사망한 다음날[來日]부터 시작하니, 여기서 2일은 죽은 사람에게는 역시 3일이 되는 셈이다. ‘부인들도 모두 상장을 짚는다’는 것은 주부(主婦)와 첩(妾) 및 임금의 딸로서 정혼(定婚)만 하고 아직 자기 집에 있는 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 아들은 모두 상장을 짚되 곡위(哭位)에는 나아가지 않으며, - 아들은 모든 서자(庶子)들을 이른다. ‘곡위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장을 치운다’는 것과 같다. 소(疏)에 “황씨(皇氏)가 이르기를, ‘살펴보건대, 정씨(鄭氏)의 주(註)에 「아들은 모든 서자들을 이른다.」 하였는데, 무릇 귀천(貴賤)의 관점에서 보면 서자가 맞다. 혹 임금의 적자는 문에 들어갈 때 상장을 거둘 뿐 곡위에는 나아갈 수 있으니, 따라서 서자는 문 밖의 위차(位次)에서 상장을 치우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와 사의 적자는 빈 앞에서 곡하고 널 앞에서 곡할 수 있는 것은 아래에 말한 바와 같거니와 그 서자는 임금의 서자와 동일하게 하고 적자와 나란히 상장을 짚고 곡위에 나아갈 수 없음이 마땅하다.’ 하였고, 웅씨(熊氏)는 이르기를, ‘이 대목은 윗글, 임금과 대부와 사의 상 아래를 이어서 주석(注釋)하였다. 따라서 이 대목의 내용은 임금과 대부와 사의 서자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註)에 「아들은 모든 서자들을 이른다.」 하였으니 뜻이 역시 통한다.’ 하였다.”고 하였다. - 대부와 사가 빈(殯) 앞에서 곡할 때는 상장을 짚고, 널[柩] 앞에서 곡할 때는 상장을 거둔다. - ‘빈 앞에서 곡한다’는 것은 널 주위를 이미 둘러쳐 가린 상태를 두고 한 말이고, ‘널 앞에서 곡한다’는 것은 빈을 치우고 널을 드러낸 뒤를 두고 한 말이다. 대부와 사의 아들은 아버지에 있어, 아버지의 존엄함이 가깝기 때문에 빈 앞에서 곡을 할 때 상장을 짚을 수 있고, 천자와 제후의 아들은 아버지에 있어 아버지가 임금이라 존엄함이 멀기 때문에 상장을 짚고 묘문(廟門)을 들어설 수 없다. -
저장(苴杖)은 대나무로 만들고, 삭장(削杖)은 오동나무로 만든다. - 소(疏)에 “저(苴)는 지극한 아픔이 안에 맺혀 있음을 뜻하고, 삭(削)은 그 용모를 삭탈(削奪)함을 뜻한다.” 하였다. -

   아버지가 생존해 있으면 당(堂) 위에서 상장을 짚어서는 안 되고, 당 위에서 추창(趨蹌)해서는 안 된다. -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는데 어머니상을 당했을 경우를 말한다. 존자(尊者)가 계시면 상장을 짚지 않는 것은 존자의 처소를 피하는 것이다. 상장을 짚지 않고 일이 있어도 추창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동요시켜 근심하고 슬퍼하게 만들까 염려해서이다. -

동자는 상장을 짚지 않고, 부인(婦人)은 상장을 짚지 않는다.

   부인은 의려에 거처하지 않고, 거적을 깔고 자지 않으며, 부모상을 당했을 경우엔 소상을 마치면 돌아오고, 기년상(期年喪)이나 구월상(九月喪 대공(大功)을 말함)을 당했을 경우엔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다. - ‘돌아온다’는 것은 남편의 집으로 돌아옴을 말한다. -

   부인은 삼년상이 아니면 봉역(封域)을 넘어가서 조문하지 않는다. - ‘봉역을 넘는다’는 것은 국경을 넘는 것이다. -

   분상(奔喪)의 예는 하루에 백 리를 가되 밤에는 가지 않으며, - 비록 슬프더라도 해(害)는 피하는 것이다. - 오직 부모의 상에서만은 별을 보면서 가고 별을 보면서 머문다. - 새벽 일찍 출발하고 저녁 늦게 머무는 것이니, 더욱 노정을 촉급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이라 한 것은 다른 경우임을 드러낸 것이다. - 분상하는 이는 빈(殯)을 했을 때 미처 오지 못하여 이미 장사를 지냈으면 묘소로 먼저 간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분상(奔喪)할 때는 당 위에서 삼베로 머리털을 묶고 단(袒)을 하고 당 아래로 내려와 용(踊)을 한 다음 동방(東方 동서(東序)의 동쪽)에서 습(襲)을 하고 질(絰)을 띤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분상할 때는 머리털을 삼베로 묶지 않고 당 위에서 단을 하고 당 아래로 내려와 용을 하고 동방에서 습을 하고 문(免)을 하고 질을 띠고 곡위(哭位)로 나아가 용을 하며, 빈궁(殯宮)의 문을 나와 의려(倚盧)로 가서는 곡을 그친다. 3일 동안 다섯 번 곡을 하고 세 번 단을 한다. - 분상이란 길이 멀어서 빈(殯)을 한 뒤에야 상주(喪主)가 도착하게 되는 경우를 이른다. 어머니상에는 삼베로 머리를 묶지 않은 채 성복(成服)할 때에 이르는 것이 아버지보다 폄하(貶下)하는 점이고, 곡위에 나아간 뒤로부터는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이 동일하다. ‘3일 동안 다섯 번 곡한다’는 것은 분상하여 처음 빈소(殯所)에 당도한 때로부터 저녁이 되어 곡위로 돌아가 곡한 다음 상차(喪次)로 나아가는 것이 한 번 곡하는 것이고, 그 이튿날과 또 그 이튿날 아침저녁으로 곡하는 것을 합쳐서 다섯 번 곡하는 것이 된다. ‘세 번 단한다’는 것은 분상하여 처음 빈소에 당도하여 단하고, 그 이튿날과 또 그 이튿날 아침에 단하는 것을 합쳐서 세 번 단하는 것이 된다. -

   부모의 상을 함께 당했을 경우엔, 먼저 장사지낸 이는 우제(虞祭)와 부제(祔祭)를 지내지 않고 뒤의 장사(葬事)가 끝나기를 기다려 함께 지내며, 그 장사에는 참최복(斬衰服)을 입는다. - 원문의 해(偕)는 함께라는 뜻이니, 부모가 같은 달 또는 같은 날에 죽었을 경우를 뜻한다. 여기서 ‘먼저 장사지낸 이’란 어머니이다. 참최복을 입는 것은 장사를 다 지내지 않았으면 복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장사 때에는 참최복을 입는다’고 말했으니 우제와 부제 때는 각기 그때에 맞는 복을 입고, 소상과 대상 때에도 모두 그렇게 하되 일을 마치면 다시 무거운 복, 즉 참최를 입는 것이다. -

   상복을 벗을 때는 무거운 것부터 먼저 벗고, - 소상 때를 말한다. 남자는 수질(首絰)을 먼저 벗고, 여자는 요질(腰絰)을 먼저 벗는다. - 상복을 바꾸어 입을 때는 가벼운 것부터 먼저 바꾸어 입는다. - 대상(大喪)에 우제와 졸곡을 마치고 다시 소상(小喪)을 만난 경우를 말한다. 상복을 벗을 때는 남자는 띠[帶]를 먼저 벗고 여자는 수질을 먼저 벗는다. -

   상중(喪中)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문공(文公) 16년 조(條)에 천대(泉臺)를 허물어 버린 사건을 기롱하여 “상사를 느슨히 한다.[緩喪也]” 하였다. -

상사(喪事)에는 남에게 무엇을 구해서는 안 된다. - 황급히 굴다 보면 효자의 마음을 상하기 때문이다. -

   상중에는 3년 동안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사정이 있어 오랫동안 장사지내지 못한 경우에는 상주만 복을 벗지 않으며, 나머지 친척들은 마복(麻服)을 입은 채 월수(月數)를 마치고 상기가 끝나면 복을 입지 않는다. - 소(疏)에 “오랫동안 장사지내지 않은 경우엔 상제(祥祭)를 지내고 복을 벗을 수 없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손자가 조부를 위하여 상주가 될 수 있으니, 이 네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벗을 수 없다.” 하였다. -

   아버지가 복을 입었을 경우 집 안의 아들은 음악에 참여하지 않고, 어머니가 복을 입었을 경우 음악 소리는 듣되 연주하지는 않으며, 처(妻)가 복을 입었을 경우 그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 ‘집 안의 아들[宮中子]’이란 아버지와 같은 집에 사는 아들이다. 예(禮)에, 명사(命士) 이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집을 달리 쓰게 되어 있다. ‘음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출을 나갔다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보이면 구경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흰 생명주 바탕에 검은색 가선을 두른 관[縞冠玄武]은 자성(子姓)의 관이다. - 부모가 상복을 입고 있을 경우 아들도 순길(純吉)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무(武)는 관의 가선[冠卷]이다. 고대에는 관의 테두리가 달랐다. -

   졸곡을 하면 휘(諱)를 해야 하는데, 왕부모(王父母 조부모)와 형제와 세부(世父)와 숙부와 고모와 자매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이 휘를 한다. - 아버지가 그 친척을 위해 휘를 하면 아들도 감히 따라 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왕부모 이하의 친척을 휘한다는 것은 사(士)의 경우를 이른 것이다. 천자와 제후는 군조(群祖)를 휘하니, 아들이 아버지와 같이 휘한다면 증조까지 휘할 수 있게 된다. -
   어머니가 하는 휘는 집 안[宮中]에서 휘하고, 아내가 하는 휘는 아내의 곁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 소(疏)에 “효자가 휘를 해야 할 이름을 들으면 마음에 두려운 법이니, 무릇 남이 하는 휘를 말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

   거상 중 장사를 지내지 않았을 때는 상례(喪禮)를 읽고, 장사를 지낸 다음에는 제례(祭禮)를 읽으며, 상기(喪期)를 마치고 평상을 회복했을 때는 악장(樂章)을 읽는다. - 예(禮)를 공부하는 것이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다. -

   질(絰)이란 실(實)을 뜻한다. - 실제로 슬퍼하는 마음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

   최복이 맞지 않는 것일 바에는 차라리 최복이 없는 편이 나으며, - 예를 어지럽힘을 싫어한 것이다. ‘맞지 않는 것’이란 옷의 곱고 거침과 넓고 좁음이 법제(法制)에 맞지 않음을 말한다. -자최복(齊衰服)를 입고는 비스듬히 앉지 않고, 대공복을 입고는 근로(勤勞)의 일을 하지 않는다. - 상복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이다. 원문의 변(邊)은 비스듬히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다. -

   단최(端衰)와 상거(喪車)는 모두 등급의 차이가 없다. - 상거란 악거(惡車)와 같다. 상을 당한 이가 입는 최복 및 타는 수레는 귀천의 구별 없이 동일하니, 효자가 어버이에 있어서는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

   거상 중에 모습은 누루(纍纍)하고, - 여위고 지친 모습이니, 수척한 것이다. - 얼굴빛은 전전(顚顚)하고, - 근심하고 사모하는 모습이니, 마음이 서창(舒暢)하지 않은 것이다. - 보는 모습은 구구 매매(瞿瞿梅梅)하고, - 소(疏)에 “구구는 놀라고 경황없는 모습이고, 매매는 미미(微微)와 같으니, 약간 혼매(昏昧)함을 뜻한다.” 하였다. - 말하는 모습은 견견(繭繭)하다. - 성기(聲氣)가 미약한 것이다. 소(疏)에 “견견은 면면(綿綿)과 같다.” 하였다. -

   어버이가 막 죽었을 때는 충충(充充 기운이 답답하게 막힌 모습)하여 마치 궁한 듯 하고, 빈(殯)을 한 뒤에는 구구(瞿瞿 눈동자가 안정되지 못하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하여 마치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듯하고, 장사를 지낸 뒤에는 황황(皇皇 의지할 데 없이 방황하는 모습)하여 마치 어버이가 오기를 바라도 오지 않는 듯하며, 소상을 지낸 뒤에는 개연(慨然 세월이 빠름을 개탄하는 모습)하고, 대상을 지낸 뒤에는 확연(廓然 허전해하는 모습)하다. - 모두 근심과 슬픔이 마음에 있는 모습이다. -

   삼년상에 자소(齊疏)의 상복을 입고 전죽(飦粥)의 음식을 먹는 것이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삼대(三代)가 모두 같다. - 자(齊)는 옷의 솔기를 호지 않은 것이다. 옷단을 꿰매지 않은 것을 참최(斬衰)라 하고, 옷단을 꿰맨 것을 자최(齊衰)라 한다. 소(疏)는 거친 베이다. 아버지상에는 참최를 입고, 어머니 상에는 자최를 입는다. 뻑뻑한 것이 전(飦)이고, 묽은 것이 죽(粥)이다. 상례(喪禮)에 “어버이가 죽은 지 3일 만에 처음 죽을 먹고 장사를 지낸 다음에 거친 밥[疏食]을 먹는다. 천자와 제후는 기년복이 없으며 대부는 기년복을 강등하고 시마복이 없는데, 삼년상만은 고금과 귀천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행한다.” 하였다. -

상   중의 음식은 비록 조악(粗惡)하더라도 반드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니, 주려서 상사를 치르지 못하게 되면 예(禮)가 아니며 배불리 먹어 슬픔을 잊는 것도 예가 아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밝지 못하고, 귀로 듣는 것이 밝지 못하고, 행동이 바르지 못하며, 슬픔을 알지 못하는 것을 군자는 병으로 여긴다. - 여기서 병(病)은 근심할 우(憂)의 뜻이다. -

   상중에는 거처를 염려하지 않고 - 집을 사서 상사(喪事)를 봉행하는 것을 이른다. - 훼척하여도 몸을 위태하게 하지는 않아야 하니, - 몸이 초췌하여 몸을 잃게 되는 것을 이른다. - 상중에 거처를 염려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면 사당이 없게 되기 때문이요, 훼척해도 몸을 위태하게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면 후사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집안이 망하면 종묘(宗廟)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생명을 잃으면 군자는 이를 두고 자식이 없는 것[無子]이라 한다. -

   제사에 시동을 두는 것과 종묘에 신주를 두는 것은 백성들에게 일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고, 종묘를 수리하고 사사(祀事)를 경건히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추효(追孝)를 가르치는 것이니, 이로써 백성들을 방비하더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그 어버이를 잃을 염려가 있다. - 어버이가 죽었으므로 시동을 세워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형상하고, 어버이의 혼신(魂神)이 사라졌으므로 신주를 세워 혼신이 깃들게 하는 것이다. -

   어버이의 상은 외면으로 벗고[外除], - 세월이 흘러 상기(喪期)가 이미 끝나도 내면의 슬픔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 형제의 상은 내면으로 벗는다.[內除] - 상기가 아직 끝나기 전에 내면의 슬픔이 이미 사라지는 것이다. - 상을 벗은 후에 길을 가다가 닮은 사람을 보면 눈이 놀라고 같은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놀라며, 사자(死者)를 조문하고 병자(病者)를 위문할 때 안색과 슬픈 모습이 반드시 어버이를 잃지 않은 사람들과 다르다. 이렇게 해야 삼년상의 복을 입었다 할 수 있으며, 기타 삼년상이 아닌 경우에는 직도(直道 곧은 마음)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 ‘닮은 사람’이란 용모가 그 어버이를 닮은 것이고, ‘같은 이름’이란 이름이 그 어버이와 같은 것이다. -

   그가 친애하던 바를 친애하고 - ‘친애하던 바’란 형제이다. - 그가 존경하던 바를 존경하며, - ‘존경하던 바’란 현자(賢者)이다. - 사자(死者) 섬기기를 생자(生者)를 섬기듯이 하고 망자(亡者) 섬기기를 존자(存者)를 섬기듯이 하는 것이 효(孝)의 지극함이다. - 막 죽었을 때를 사(死)라 하고, 장사지낸 뒤를 망(亡)이라 한다. 한편으로는 망이란 생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사란 망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

   군자는 종신(終身)의 상(喪)이 있으니, 기일(忌日)을 이른다. - 어버이가 죽은 날에 차마 길사(吉事)를 거행하지 못하니, 어버이가 이날 죽었으므로 그 슬픈 마음이 상을 당했을 때와 같은 것을 이른다. -

   사람의 자식된 이는 부모가 생존했으면 관과 옷에 흰색으로 선을 두르지 않으며, - 상(喪)이 있다는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원문의 준(純)은 가선을 두르는 것이다. 《예기》 옥조(玉藻)에 이르기를, “흰 생명주 바탕에 검은색 가선을 두른 관[縞冠玄武]은 자성(子姓)의 관이고, 흰 생명주 바탕에 흰 견사(絹絲)로 가선을 두른 관[縞冠素紕]은 대상을 지내고 난 뒤의 관이다.” 하였고, 《예기》 심의(深衣)에 이르기를, “부모가 모두 생존한 사람은 청색으로 옷의 가선을 두른다.” 하였다. - 고자(孤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안을 맡으면 관과 옷에 채색으로 선을 두르지 않는다. - 일찍 어버이를 잃었을 경우엔 상을 벗더라도 슬픔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나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어버이를 잃은 경우를 이른다. 서른이 되면 장년(壯年)이라 아내[室]를 두어 대를 이으니, 고자(孤子)라 할 수 없다. 집안을 맡는 사람은 적자(適子)이다. 《예기》 심의에 이르기를, “고자는 흰색으로 옷의 가선을 두른다.” 하였다. -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면 모(髦)를 하지 않는다. - 자식됨을 나타내는 장식(裝飾)을 제거하는 것이다. -

   군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이름을 바꾸지 않으며, - 역시 근본을 중시하는 것이다. - 아버지가 죽은 뒤 갑자기 존귀한 신분이 되었다고 해서 아버지를 위해 시호를 짓지 않는다. -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는 귀천이 없다. -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한 하늘을 이지 않으며, - 아버지는 아들의 하늘이니, 자기의 하늘을 죽인 자와 한 하늘을 이고 산다면 효자가 아니다. 기어코 찾아서 죽여야만 되니, 원수를 갚지 못했으면 거적을 깔고 병기를 베며 벼슬하지 않는다. - 형제의 원수는 집으로 돌아가 병기를 가져오지 않으며, - 항상 병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죽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 교유(交遊)의 원수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지 않는다. - 원수가 나를 피하지 않으면 죽이는 것이다. 교유는 어떤 본에는 붕우(朋友)로 되어 있다. -

   제사에는 효자(孝子), 효손(孝孫)이라 칭하고, 상(喪)에는 애자(哀子), 애손(哀孫)이라 칭한다. - 각기 그 뜻에 맞게 칭하는 것이다. -

   군자가 궁실(宮室)을 지을 때는 종묘를 먼저 짓고 마굿간과 곳간을 그 다음으로 짓고 거실(居室)을 나중에 짓는다. - 선조 및 나라의 재용(財用)을 중시하는 것이다. -

   무릇 집안[家]의 집기(什器)를 만들 때는 제기(祭器)를 먼저 만들고, 희부(犧賦)를 그 다음으로 만들고, 양기(養器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그릇)를 나중에 만든다. - 대부는 집안을 가(家)라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희부란 세금으로 희생을 공출하는 것이다. - 전답(田畓)이나 봉록(俸祿)이 없는 사람은 제기를 장만해 두지 않으며, 전답이나 봉록이 있는 사람은 먼저 제복(祭服)을 장만한다. - 제기는 남에게 빌릴 수 있지만 제복은 자기 것을 갖추어 두어야 한다. - 군자는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제기를 팔지 않고, 아무리 춥더라도 제복을 입지 않으며, 궁실을 짓기 위하여 선영(先塋)의 나무[丘木]를 베지 않는다. - 귀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넓힌 것이다. 원문의 육(粥)은 판다는 뜻이다. 구(丘)는 무덤[壟]이다. -

   천자는 칠묘(七廟)를 두는데, 3소(昭)와 3목(穆)에 - 왼쪽이 소가 되고, 오른쪽이 목이 된다. - 태조의 묘(廟)를 합쳐서 칠묘이니 태묘(太廟), 고묘(考廟), 왕고묘(王考廟), 황고묘(皇考廟), 현고묘(顯考廟), 조고묘(祖考廟)이다. 그리고 원묘(遠廟)가 조(祧)인데 2조(祧)를 두며, 조를 치운 것이 단(壇)이고 단을 치운 것이 선(墠)이고 선을 치운 것이 귀(鬼)인데, 2단(壇)과 1선(墠)을 둔다. - 흙을 쌓아올린 것이 단이고, 땅을 소제한 것이 선이다. - 제후는 오묘(五廟)를 두는데 2소(昭)와 2목(穆)에 태조의 묘를 합쳐 오묘이니, 조고묘(祖考廟)이고 1단과 1선을 둔다. 대부는 삼묘(三廟)를 두는데 1소와 1목에 태조의 묘를 합쳐서 삼묘이니, - 대부의 태조는 처음 작위를 받은 조상이다. - 황고묘(皇考廟)이고 1단을 둔다. 적사(適士)는 - 상사(上士)이다. - 이묘(二廟)를 두니 왕고묘(王考廟)이고 1단을 둔다. 관사(官師)는 - 제후의 중하사(中下士)이다. - 일묘(一廟)를 두니 고묘(考廟)이고, 왕고(王考)는 묘(廟)가 없이 제사지낸다. 서인(庶人)은 묘가 없고 사시(四時)로 침(寢)에서 제사지낸다. - 거실(居室)을 침이라 한다. -

   천자는 천지(天地)에 제사하고, 사방에 제사하고, 산천에 제사하고, 오사(五祀)에 제사하되 한 해 안에 두루 지낸다. 제후는 방사(方祀)하고, 산천에 제사하고, 오사에 제사하되 한 해 안에 두루 지낸다. 대부는 오사에 제사하되 한 해 안에 두루 지낸다. 사(士)는 그 선조에 제사한다. - ‘사방에 제사한다’는 것은 사교(四郊)에서 오관(五官)의 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이르니, 구망(句芒)은 동쪽에 있고, 축융(祝融)과 후토(后土)는 남쪽에 있고, 욕수(蓐收)는 서쪽에 있고, 현명(玄冥)은 북쪽에 있다. 《시경》에 “와서 사방의 신에게 정결히 제사한다.[來方禋祀]”라 하였으니, 방사(方祀)란 각기 자기 나라가 위치한 방위의 관(官)에 제사하는 것이다. 오사(五祀)란 호(戶), 조(竈), 중류(中霤), 문(門), 행(行)이다. 이러한 것은 대개 은(殷) 나라 제도이다. 제법(祭法)에 “천자는 칠사(七祀)를 세우고, 제후는 오사를 세우고, 대부는 삼사(三祀)를 세우고, 사는 이사(二祀)를 세운다.” 하였으니, 이는 주(周) 나라 제도이다. -
   무릇 제사는, 이미 폐지한 것은 감히 다시 거행하지 않고 이미 거행한 것은 감히 폐지하지 않는다. - 귀신을 모독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사를 폐지하고 거행하는 것은, 예컨대 은 나라는 신농씨(神農氏)에 대한 제사를 폐지하였는데 기(棄), 즉 후직(后稷)의 뒤에는 후직을 농신(農神)으로 모시는 제사를 다시는 폐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후세에 덕이 있는 이가 계승하는 것이 혐의될 것이 없다. - 제사지낼 대상이 아닌 귀신에 제사지내는 것을 음사(淫祀)라 하니, 음사는 복(福)이 없다. - 망녕되이 제사하면 신이 흠향하지 않는 것이다. -

   제후의 제사에 희생으로 쓰는 소를 태뢰(太牢)라 하고, 대부의 제사에 희생으로 쓰는 양을 소뢰(少牢)라 하고, 사의 제사에 희생으로 쓰는 특시(特豕 돼지 한 마리만을 쓰는 것)를 궤식(饋食)이라 하며, 봉록(俸祿)이 없는 사람은 직(稷 찰기장)을 제수로 올리는데 직을 제수로 올리는 경우엔 시동이 없으니, 시동이 없는 제사는 염(厭 신으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한다는 뜻임)이다. - ‘직을 제수로 올리는 경우’란 희생이 없이 직을 제수의 주식(主食)으로 올리는 것이다. 《의례》 사우례(士虞禮)에 의하면, “시동이 없는 경우엔 축(祝)이 들창문과 지게문[戶]을 닫기를 시동이 구반(九飯)을 다 먹을 때와 같이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염(厭)이다. -
   제사는, 봄은 사(祠)라 하고, - 제수(祭需)의 주축은 부추와 알이다. 사는 식(食)과 같고 계사(繼嗣)와 같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므로 효자가 어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의 뒤를 이어 어버이를 먹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생(祠死生)이라 한 것이다. - 여름은 약(礿)이라 하고, - 제수의 주축은 보리와 물고기이다. 보리가 비로소 익어 약제(礿祭)를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약(礿)이라 한다. - 가을은 상(嘗)이라 하고, - 제수의 주축은 메기장[黍]과 돼지고기이다. 상(嘗)은 먼저 익는다는 말이다. 가을에는 결실을 맺는 곡식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메기장이 가장 먼저 익어 제수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상(嘗)이라 한다. - 겨울은 증(烝)이라 한다. - 제수의 주축은 벼와 기러기이다. 증(烝)은 많다는 뜻이니, 기운이 성대한 모습이다. 겨울에는 만물이 모두 이루어져 제수로 올릴 것이 매우 많아 향기로운 음식들이 구비되므로 증이라 하였다. 희생이 없이 지내는 제사를 천(薦)이라 한다. 천자는 네 번 제사하고 네 번 천을 하며, 제후는 세 번 제사하고 세 번 천을 하며, 대부와 사는 두 번 제사하고 두 번 천을 하는데, 실(室)에서 제사하여 어두운 데에서 신을 찾고, 당(堂)에서 제사하여 밝은 데에서 신을 찾고, 사당[祊]에서 제사하여 먼 데에서 신을 찾으니, 이는 모두 효자가 신을 널리 찾아 모시려는 뜻이다. 대부는 밝은 데에서 신을 찾고 사는 어두운 데에서 신을 찾는데 이는 존비(尊卑)의 차등에 따른 것이며, 은(殷) 나라 사람은 먼저 밝은 데에서 신을 찾고 주(周) 나라 사람은 먼저 어두운 데에서 신을 찾는데 이는 질(質)과 문(文)의 뜻에 따른 것이다. 예(禮)에 천자, 제후, 경, 대부는 소, 양, 돼지 삼생(三牲)을 쓰는데 이를 태뢰(太牢)라 하고, 천자의 원사(元士)와 제후의 경ㆍ대부는 양과 돼지 이생(二牲)을 쓰는데 이를 소뢰(少牢)라 하고, 제후의 사(士)는 특시(特豕), 즉 돼지 한 마리를 희생(犧牲)으로 쓴다. 천자의 희생은 뿔이 한 줌 크기로 자란 소를 쓰고, 제후의 희생은 뿔이 한 자 크기로 자란 소를 쓰며, 경과 대부는 희생을 따로 기르지 않고 제사지낼 즈음에 골라서 쓴다. - 제사를 너무 자주 지내면 신을 번독(煩黷)하게 되며 번독하면 불경(不敬)하게 되니, - 독(黷)은 설만히 대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 군자의 제사는 공경하되 번독하지 않는다. - 군자는 살아 계실 때는 공경히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공경히 제사드린다. - 제사를 너무 드물게 지내면 태만하게 되고 태만하면 망각하게 된다. - 나태하고 해이한 것이다. - 이 네 가지 제사에는 겨울에는 갖옷[裘]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갈옷[葛]을 입지 않는다. - ‘네 가지 제사’란 사시(四時)의 제사이므로 드물게 지내느냐 자주 지내느냐의 절도를 절충(折衷)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군자는 천도(天道)에 합하게 하여 사철의 시물(時物)에 감응하여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사를 반드시 여름의 첫달에 지내는 것은 그 철의 새로운 시물이 나오는 달이기 때문이다. 갖옷과 갈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는 좋은 옷인데, 사(士)는 공사(公事)가 있으면 이러한 옷을 입을 수 없다. 더욱이 사시의 제사에는 감히 좋은 옷을 입을 수 없으니, 대개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이 단락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보이는데, 예서(禮書)에는 아랫대목, 즉 ‘겨울에는 갖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갈옷을 입지 않는다’는 부분이 사(士)의 제도로 되어 있다. -

   대부와 사는 종묘의 제사에 전답이 있으면 제사하고 전답이 없으면 천(薦)한다. - 전답이 있는 이는 제사를 지내고 다시 새로 나온 시물(時物)을 천(薦)하는데, 제사는 사계절의 첫째 달[首時]에 지내고, 천은 사계절의 가운데 달[仲月]에 지낸다. 소(疏)에 “천자와 제후는 시물이 익으면 천한다.” 하였다. -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상례(喪禮)는 죽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고 제사는 산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 ‘죽은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염에 쓰는 의복과 이불 및 관곽(棺槨)을 말하고, ‘산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제사에 쓰는 희생과 기물(器物)을 말한다. -

   침실은 종묘보다 좋아서는 안 되고, 연의(燕衣 평상복)는 제복(祭服)보다 좋아서는 안 된다. - 연의는 어떤 본에는 설의(設衣)로 되어 있다. 이는 만드는 제도의 정추(精麤)를 이른다. -

   상(嘗)을 하지 않고는 새로 나온 시물(時物)을 먹지 않는다. - 상이란 새로 나온 시물을 침묘(寢廟)에 올리는 것을 이른다. -

   제사는 선조가 살아 있는 듯이 지내고, 신에게 제사할 때는 신이 와 있는 듯이 지낸다. - 선조에 제사함은 효성이 주가 되고, 신에 제사함은 공경이 주가 되는 것이다. -

   군자가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몸소 참여해야 하는데 유고시(有故時)에는 남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며, - 원문의 이(蒞)는 자리에 임하는 것이다. - 때가 지나면 제사하지 않는다. - ‘때가 지났다’는 것은 이를테면 여름에 봄 제사를 지내는 것 따위이다. 어떤 본에는 “달이 지나면 제사하지 않으니, 불경(不敬)을 피하기 위해서이다.”로 되어 있다. 웅씨(熊氏)는 이르기를, “이는 사시(四時)의 상제(常祭)를 이른 것이다. 상제(喪祭) 및 체제(禘祭)와 협제(祫祭)일 경우에는 비록 때가 지났더라도 소급하여 제사할 수 있다.” 하였다. -

   제사할 때 왕부(王父 조부)는 황조고(皇祖考)라 부르고, 왕모(王母 조모)는 황조비(皇祖妣)라 부르고, 부(父)는 황고(皇考)라 부르고, 모(母)는 황비(皇妣)라 부르고, 남편은 황벽(皇辟)이라 부른다. - 칭호를 바꾸어서 신(神)을 높임으로써 산 사람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황(皇)은 임금이고, 고(考)는 이룬다는 뜻이니, 말하자면 그 덕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비(妣)의 말뜻은 짝이니, 고(考)에 짝이 된다는 것이다. 벽(辟)은 법(法)이니, 처(妻)가 법으로 삼는 바인 것이다. - 생전에는 부(父)라 하고 모(母)라 하고 처(妻)라 하며, 사후에는 고(考)라 하고 비(妣)라 하고 빈(嬪)이라 한다. - 빈은 부인으로서 법도가 있는 이에 대한 호칭이다. 《주례》에 “구빈(九嬪)이 아녀자들이 배워야 할 법규를 맡아 구어(九御)에게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功) 등을 가르친다.” 하였다. -


   무릇 종묘에 제사하는 예(禮)는, 소는 일원대무(一元大武)라 하고, 큰 돼지[豕]는 강렵(剛鬣)이라 하고, 작은 돼지[豚]는 돌비(腯肥)라 하고, 양은 유모(柔毛)라 하고, 닭은 한음(翰音)이라 하고, 개는 갱헌(羹獻)이라 하고, 꿩은 소지(疏趾)라 하고, 토끼는 명시(明視)라 하고, 포(脯)는 윤제(尹祭)라 하고, 건어(乾魚)는 상제(商祭)라 하고, 선어(鮮魚)는 정제(脡祭)라 하고, 제수(祭水)는 청척(淸滌)이라 하고, 술은 청작(淸酌)이라 하고, 메기장[黍]향합(薌合)이라 하고, 조[粱]는 향기(薌萁)라 하고, 찰기장[稷]명자(明粢)라 하고, 벼는 가소(嘉蔬)라 하고, 부추는 풍본(豐本)이라 하고, 소금은 함차(鹹鹺)라 하고, 옥은 가옥(嘉玉)이라 하고, 폐(幣)는 양폐(量幣)라 한다. - 희생과 제물에 대한 호칭은 사람들이 쓰는 것과는 다르다. 원(元)은 머리이고, 무(武)는 발자국이다. 돌(腯)은 역시 살지다의 뜻이다. 《춘추좌전》에 돌(腯)로 되어 있으니, 돌은 충만한 모양이다. 한(翰)은 길다는 뜻이다. 갱헌(羹獻)은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을 먹여 길렀다는 뜻이다. 윤(尹)은 바르다는 뜻이다. 상(商)은 헤아린다는 뜻인 양(量)과 같다. 정(脡)은 곧다는 뜻이고, 기(萁)는 어사(語辭)이다. 가(嘉)는 선(善)이다. 벼[稻]고소(菰蔬)의 일종이다. 풍(豐)은 무성하다는 뜻이다. 매우 짠 것을 차(鹺)라 한다. 폐(幣)를 오늘날 하동(河東) 지방에서는 폐백(幣帛)이라 한다. 그리고 김치와 육장[菹醢]을 가천(嘉薦)이라 하고, 메기장과 찰기장[黍稷]보뇨(普淖)라 하고, 새로 길은 물을 명제(明齊)라 한다. 대부와 사는 메기장과 찰기장에 대한 호칭이 보뇨뿐이다. ‘腯’은 반절이 도(徒)ㆍ홀(忽)인데 돈(豚)으로 되어 있는 데도 있다. ‘薌’은 독음이 향(香)이고, ‘合’은 독음이 글자 그대로이거나 합(閤)이다. ‘萁’는 어떤 본에는 기(箕) 자로 되어 있고 독음이 같은데, 희씨(姬氏)는 어사(語辭)로 보았고, 왕씨(王氏)는 “독음이 기(期)이니, 기는 시(時)이다.” 하였다. 찰기장[稷]을 ‘粢’라 하였는데, ‘粢’는 독음이 자(咨)이며, 어떤 본에는 명량(明梁)으로 되어 있다. 고본(古本)에는 이 구절이 없다. ‘蔬’는 어떤 본에는 소(疏)로 되어 있는데 반절은 색(色)ㆍ어(魚)이다. ‘韭’는 독음이 구(久)이다. ‘鹹’은 어떤 본에는 함(醎)으로 되어 있는데 독음은 함(咸)이다. -

   일헌(一獻)은 질박하고, - 군소(群小) 제사의 경우를 이른다. - 삼헌(三獻)은 문식(文飾)이 있고, - 사직(社稷)과 오사(五祀)에 제사하는 경우를 이른다. - 오헌(五獻)은 찰(察)하고, - 찰(察)은 밝다는 뜻이다. 사방의 산천에 제사하는 경우를 이른다. - 칠헌(七獻)은 공경함이 신명(神明) 같다. - 선공(先公)에 제사하는 경우를 이른다. 진씨(陳氏)는 이르기를, “헌(獻)은 술을 따라 올리는 것이다. 일헌은 그 예가 질략(質略)하고, 삼헌은 문식함이 있다. 찰(察)이란 성대히 드러나고 상세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칠헌은 예가 중하고 마음이 엄숙하여 양양(洋洋)히 신이 마치 그곳에 계신 듯이 하는 것이다. - 대향(大饗)은 왕사(王事)일 것이다. - 대향은 선왕에게 제사할 때의 구헌(九獻)이다. -

   대향(大享)은 구헌이니, 구헌의 예는 울창주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할 때 이헌(二獻)하고, - 왕이 규찬(珪瓚)으로 계이(鷄彝)에 담긴 울창주를 따르고 왕후는 장찬(璋瓚)으로 조이(鳥彝)에 담긴 울창주를 따라 시동(尸童)에게 올리면 시동은 고수레[祭]를 하고 맛을 본 다음 올려놓고 마시지는 않는다. - 조천(朝踐)할 때 이헌하고, - 희생을 잡아 털과 피와 창자 기름을 올리면 왕이 옥작(玉爵)으로 헌준(獻尊)에 담긴 범제(泛齊)를 따라 올리고, 왕후는 조사(朝事)의 변(籩)을 올리고 예주(醴酒)를 따라 올린다. - 궤식(饋食)할 때 이헌하고, - 익힌 음식을 올릴 때는 가(斝)를 올리고 쑥에 향초(薌草)와 기름을 섞어 사르면 왕이 상준(象尊)에 담긴 앙제(盎齊)를 따라 올리고, 왕후는 궤식(饋食)의 변(籩)을 올리고 제제(醍齊)를 따라 올린다. - 조헌(朝獻)할 때 이헌하고, - 시동이 식사를 마친 후 왕이 범제를 따라 시동에게 바치면 왕후가 가사(加事)의 두변(豆籩)을 올린다. 시동이 왕에게 잔을 돌리면 왕후가 침제(沈齊)를 따라 시동에게 올리는 것을 재헌(再獻)이라 한다. 시동이 왕후에게 잔을 돌리는 것은 왕의 경우와 같이 하되 예주(醴酒)를 쓴다. - 졸식할 때 일헌(一獻)한다. - 제후로서 빈객이 된 이는 침제(沈齊)를 따라 졸식(卒食)의 삼헌(三獻)을 갖춘다. 시동이 술을 다 마시고 나서 다시 신하들에게 잔을 돌리는데 왕후와 같이 한다. 구헌을 마친 뒤 왕은 내려와 군신(群臣)들을 거느리고 대무(大武)와 대하(大夏)를 추고 아울러 육대(六代)의 음악을 연주하고 드디어 가작(加爵)을 행하는데 이것이 여수(旅酬)의 시작이 된다. 가작이란 태자(太子)와 삼공(三公)의 우두머리 및 구경(九卿)의 우두머리가 벽각(璧角)으로 침제를 따라 각각 한 잔씩 올리니, 모두 열두 번 술잔을 올리는 셈이 된다. 여(旅)는 천수(天數)이다. ○ 대협례(大祫禮)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사지낸 날 아침에 왕이 곤룡포에 면류관 차림을 하고 시동 역시 곤룡포에 면류관 차림으로 묘실(廟室)에 들어가면 축(祝)이 뒤에서 예(禮)를 돕는다. 왕은 나가서 시동을 맞이하지 않고 시동이 바로 묘실로 들어오면 그제야 음악을 연주하고 술을 부어 강신(降神)한다. 이때 뭇 시동들은 태묘(太廟) 안에 있으면서 서차(序次)에 따라 술을 부어 강신한다. 술을 땅에 부을 때는 울창주규찬(圭瓚)으로 따라 오(奧)에 붓는데, 이때 시동이 고수레를 하고 맛을 보고 잔을 올리는 것이 일헌(一獻)이다. 그러면 왕은 나가서 희생을 맞이하고 왕후는 장찬(璋瓚)을 잡고 술을 부어 아헌(亞獻)을 하니, 이를 일러 울창주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할 때의 이헌(二獻)이라 한다. 희생을 맞아들여 뜰에 이르면 왕이 친히 난도(鸞刀)를 잡고 희생의 털을 가른다. 그러면 축(祝)은 희생의 피와 털을 가지고 묘실(廟室)로 들어가 고한다. 희생은 묘(廟)마다 일뢰(一牢)를 쓰는데, 훼철한 묘(廟)는 소(昭)가 일뢰를 공유(公有)하고, 목(穆)이 일뢰를 공유한다. 이에 조천(朝踐)의 일을 행하는데, 시동들이 실(室)에서 나와 태묘의 시동은 지게문[戶]의 서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고 그 신주는 오른쪽에 자리하여 동쪽을 향한다. 소(昭)는 동쪽에 자리하고 목(穆)은 서쪽에 자리하여 서로 마주 보고 앉으며, 신주들은 각기 그 오른쪽에 자리한다. 왕이 북쪽을 향하면 축은 그제야 희생의 창자 기름을 꺼내어 화톳불에 살라서 가지고 실(室)로 들어가 신(神)에게 고한 다음 다시 나와 신주 앞에 놓으면 왕은 울창주에 희생의 간을 씻어 살라서 신주 앞에 올려 제제(制祭)를 지낸다. 그런 다음 희생의 머리를 실(室) 안으로 올려 북쪽 창 아래 두면 왕후가 조사(朝事)의 변두(籩豆)를 올리고 시동과 신주 앞에 혈성(血腥)을 올린다. 그러면 왕은 옥작(玉爵)을 가지고 저준(著尊)에 담긴 범제(泛齊)를 따라 시동에게 바친다. 이것을 일러 ‘조천(朝踐)할 때의 삼헌(三獻)’이라 한다. 그러면 왕후가 또 옥작을 가지고 저준에 담긴 예주를 따라 땅에 부어 강신하고 아헌(亞獻)하니, 이것이 조천할 때의 사헌(四獻)이다. 익힌 음식을 올릴 때 삶고 있는 음식이 다 익어 시동과 신주를 맞이하여 실(室)로 들어가서 먼저 조(俎)에 음식을 담아 신에게 고하고, 당(堂) 위에 차려 둔 음식을 실내(室內)의 자리 앞으로 옮기면, 축은 가작(斝爵)으로 성준(牲尊)에 담긴 앙제(盎齊)를 따라 형(鉶) 남쪽에 올린 다음, 다시 향기로운 쑥에다 창자 기름과 서직(黍稷)을 섞어 실(室) 안에서 사른다. 여기까지를 접제(接祭)라 하며, 이후에 시동을 맞아 자리에 오르게 한다. 입실(入室)한 뒤에는 태조는 동쪽을 향하고, 소(昭)는 남쪽을 향하고, 목(穆)은 북쪽을 향한다. 시동이 자리에 오를 때에는 북쪽으로부터 올라 신주의 북쪽에 앉는다. 가각(斝角)을 올리면 왕은 절하여 시동을 편안히 앉게 하고 왕후는 궤식(饋食)의 두변(豆籩)을 올린다. 이에 왕은 옥작으로 호준(壺尊)에 담긴 앙제를 따라 시동에게 올리는데, 이것이 오헌(五獻)이다. 왕후가 다시 옥작으로 호준에 담긴 제제(醍齊)를 따라 시동에게 올리는데 이것이 육헌(六獻)이다. 이것을 통틀어 궤식이라 한다. 이에 시동이 십오반(十五飯)을 먹고 나면 왕이 옥작으로 조천할 때 썼던 준(尊)에 담긴 범제(泛齊)를 따라 시동에게 올리는데 이것을 ‘조헌(朝獻)할 때의 칠헌(七獻)’이라 한다. 이때 왕후는 두변을 더 올리고, 시동은 제주(祭主)에게 술을 따라 돌리고 제주는 시동으로부터 복[嘏]을 받는다. 그제야 왕은 옥작으로 제후에게 술을 권할 수 있고, 왕후는 요작(瑤爵)으로 궤식할 때 썼던 호준에 담긴 제제(醍齊)를 따라 시동에게 아헌의 술을 올리는데, 이것이 ‘궤헌(饋獻)할 때의 팔헌(八獻)’이다. 시동이 왕후에게 술잔을 돌리는 것은 왕의 경우와 같되 예주(醴酒)을 쓴다. 이때 왕은 요작으로 제후에게 술을 권할 수 있다. 그러면 제후로서 빈객이 된 이들 역시 요작으로 호준에 담긴 침제(沈齊)를 따라 시동에게 올리고, 시동은 다시 빈객에게 잔을 돌리되 청주(淸酒)를 쓰니, 이것을 일러 ‘졸식(卒食)할 때의 구헌(九獻)’이라 한다. 구헌한 뒤에 올리는 술을 가작(加爵)이라 하는데, 역시 사주(事酒), 석주(昔酒), 청주(淸酒)삼주(三酒)를 쓰며 세 번의 가작[三加]이 있다. 이때 왕은 산작(散爵)으로 대부와 사 및 유사(有司)들에게 술을 권할 수 있다. 이때는 술잔은 벽각(璧角)벽산(璧散)을 쓴다. 일설에는, “시동이 제후에게 잔을 돌릴 때는 역시 제후가 올린 술[齊]을 쓴다.”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종과 북을 함께 울리고 뜰에 만무(萬舞)를 펼침으로써 제사를 마치게 된다. 일설에는 “구헌을 한 후 가작을 한다. 특생례(特牲禮)에 세 번의 가작이 있는데, 천자 이하의 가작의 수(數)는 신분의 존비(尊卑)에 의거하고 세 번의 가작에 그치지 않는다.” 하였다. 노(魯) 나라를 비롯한 왕자(王者)의 후손들은 모두 구헌(九獻)을 하는데, 그 행하는 법은 천자와 같다. 후(侯)와 백(伯)은 칠헌(七獻)을 하는데 조천(朝踐) 및 궤식을 할 때 임금이 시동에게 술잔을 올리지 않으니, 《예기》 예기(禮器)에 이른바 “임금이 제제(制祭)를 지내면 부인(夫人)은 앙제(盎齊)를 올리고, 임금이 희생을 가르면 부인은 술을 올린다.”는 것이 이것이다. 자(子)와 남(男)은 오헌(五獻)을 하는데 혈성(血腥)을 올리고 익힌 음식을 올리기 전에 임금과 부인 모두 시동에게 술을 올리지 않고 시동이 식사를 마친 후 삼헌(三獻)을 행하는데 두 차례 강신(降神)을 위해 땅에 술을 부은 것과 합쳐서 오헌이 되는 것이다. 경과 대부와 사 시동이 식사한 후에 주인과 주부와 빈객이 삼헌(三獻)을 행한다. 하늘에 제사하는 예(禮)로 말하자면, 원구(圓丘)의 제사에서는 먼저 원종(圓鍾)의 음악을 연주하고 다음으로 희생과 옥과 폐백을 사르며, 방구(方丘)의 제사에서는 먼저 함종(函鍾)의 음악을 연주하고 다음으로 희생의 피와 옥과 폐백을 땅에 묻는다. 이 두 제사는 정제(正祭) 이전에 있으므로 이시(二始)라 한다. 오직 인도(人道)인 종묘의 제사에서만 울창주를 땅에 부어 강신하고 천지 신명에 지내는 제사에는 강신하지 않는다. 무릇 큰 제사에는 모두 삼시(三始)가 있으니, 하늘에 제사할 때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써 신을 불러오는 시작으로 삼고 연기를 하늘로 피워 올리는 것[禋]으로써 신을 흠향케 하는 시작으로 삼고 희생의 피로써 제수(祭需)를 올리는 시작으로 삼으며, 땅에 제사할 때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써 신을 불러오는 시작으로 삼고 폐백을 땅에 묻는 것[埋]으로써 신을 흠향케 하는 시작으로 삼고 희생의 피로써 제수를 올리는 시작으로 삼으며, 종묘의 제사 역시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써 신을 불러오는 시작으로 삼고 울창주를 땅에 붓는 것으로써 신을 흠향케 하는 시작으로 삼고 혈성(血腥)을 바치는 것으로써 제수를 올리는 시작으로 삼는다. -

   현주(玄酒)는 실(室)에 두고 예잔(醴醆)은 호(戶)에 두고 제제(粢醍)는 당(堂)에 두고 징주(澄酒)는 아래에 두며, 희생을 늘어놓고 정조(鼎俎)를 갖추어 놓고 금슬(琴瑟)과 관악기와 경(磬), 종, 북 등을 벌여 놓고 축사(祝辭)와 하사(嘏辭)를 하여 상천(上天)의 신과 그 선조를 강림케 함으로써 군신(君臣)의 의리를 바르게 하고 부자(父子)의 도리를 도타이 하고 형제의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상하(上下)의 질서를 가지런히 하고 부부(夫婦) 간에 분별이 있게 하나니, 이를 일러 하늘의 복을 받는다 한다. - 이 단락은 지금의 예찬(禮饌)이 모두 고례(古禮)를 따른 것이라는 점과 그것의 의의에 대하여 말하였다. ‘粢’는 독음이 제(齊)이니, 성음상의 착오이다. 《주례》오제(五齊)가 있으니, 첫째는 범제(泛齊)이고, 둘째는 예제(醴齊)이고, 셋째는 앙제(盎齊)이고, 넷째는 제제(醍祭)이고, 다섯째는 침제(沈齊)이다. 글자는 다르지만 잔(醆)앙(盎)징(澄)침(沈)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술들을 차려 놓는 장소가 같지 않은 것은 고례(古禮)를 중시하고 금례(今禮)를 홀략(忽略)히 한 것이다. 축(祝)은 축이 주인을 대신하여 신을 흠향케 하는 말이고, 하(嘏)는 축이 시동을 대신하여 주인에게 복을 내리는 말이다. 원문의 호(祜)는 복(福)이다. 오제(五齊)는 제사에 쓰는 술이다. 범(泛)은 술이 익으면 즙(汁)과 찌꺼기가 둥둥 뜨는 것이니, 오늘날로 말하면 막걸리[醪]와 같은 것이다. 예(醴)는 체(體)와 뜻이 같으니, 술이 익으면 즙과 찌꺼기가 서로 섞여 있는 것으로 오늘날의 염주(恬酒)와 같다. 앙(盎)은 옹(翁)과 뜻이 같으니, 술이 익으면 옹옹연(翁翁然)히 푸르고 흰빛이 나는 것으로 오늘날의 찬백(酇白)과 같다. 제(醍)는 술이 익으면 붉은빛을 띠는 것으로 오늘날의 하주(下酒)와 같다. 침(沈)이란 술이 익으면 찌꺼기가 가라앉는 것이니, 오늘날의 조청(造淸)과 같다. 징주(澄酒)삼주(三酒)이다. 삼주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주(事酒)이니, 일이 있는 사람의 술을 따르는 것으로 그 술은 오늘날의 역주(醳酒)이다. 둘째는 석주(昔酒)이니, 오늘날의 추구백주(酋久白酒)로 이른바 구역(舊醳)이다. 셋째는 청주(淸酒)이니, 오늘날 중산(中山) 지방에서 겨울에 빚어 여름에 접어들 무렵 익는 술이다. 대협(大祫)을 지낼 때는 오제(五齊)삼주(三酒)를 갖춘다. 조천(朝踐)할 때 왕은 범제(泛齊)를 따르고 왕후는 예제(醴齊)를 따르며, 궤식할 때는 왕은 앙제(盎齊)를 따르고 왕후는 제제(醍齊)를 따른다. 조헌(朝獻)할 때 왕은 범제를 따르되 조천할 때 쓴 준(尊)에서 따라 재헌(再獻)하고 왕후는 제제를 따르되 궤식할 때 쓴 준(尊)에서 따른다. 제후로서 빈객이 된 이는 침제(沈齊)를 따른다. 시동이 왕과 왕후에게 술잔을 돌릴 때는 모두 초헌(初獻)에 썼던 술[齊]을 다시 쓴다. 빈객의 우두머리가 시동에게 술을 권할 때는 청주(淸酒)를 쓰고 가작(加爵)할 때는 삼주(三酒)를 쓴다. 대체(大禘)에는 사제(四齊)삼주를 쓴다. 조천할 때 왕이 예제를 따르면 왕후앙제를 따르며, 궤식할 때 왕이 제제를 따르면 왕후는 침제를 따르며, 조헌할 때 왕이 예제를 따라 재헌하면 왕후는 다시 침제를 따르는데 준(尊)은 앞에서 썼던 것을 그대로 쓴다. 제후로서 빈객이 된 이들은 역시 침제를 따르되 삼주의 을 쓰니, 협례(祫禮)와 같다. 사시(四時)의 제사에는 이제(二齊)이주(二酒)뿐이다. 이제의 법은 다음과 같다. 조천할 때 임금이 예제를 따르면 부인도 예제를 따르고, 궤식할 때 임금이 앙제를 따르면 부인도 앙제를 따르며, 조헌할 때 임금이 다시 예제를 따라 재헌하면 부인도 다시 앙제를 따른다. 제후로서 빈객이 된 이들은 앙제를 따른다. 그리고 시동이 임금과 부인에게 술잔을 돌릴 때는 석주(昔酒)를 쓰고 신하들에게 술잔을 돌릴 때는 청주를 쓰고 가작할 때도 모두 청주를 쓴다. 일제(一齊)의 법은 다음과 같다. 조천할 때 임금이 제제(制祭)를 지내면 부인은 앙제를 올리고 익힌 음식을 바치며, 임금이 친히 희생을 가르면 부인은 주(酒)를 올린다. 그리고 조헌할 때 임금이 앙제를 따라 시동에게 권하고 재헌하면 부인은 다시 주(酒)를 따름으로써 제사를 마친다. 빈객이 잔을 올릴 때는 모두 주(酒)를 쓰며 가작은 모두 체제(禘祭)협제(祫祭)와 같다. 천자와 제후는 작(酌)과 전(奠)에 모두 제(齊)주(酒)를 쓰고, 경과 대부의 제사에는 작과 전에 모두 주(酒)를 쓴다. 그리고 대협에는 십팔준(十八尊)인데, 오제(五齊)와 오준(五尊)에는 각각 명수(明水)를 담은 준(尊)이 있고, 삼주(三酒)와 삼준(三尊)에는 각각 현주(玄酒)를 더하며, 여기에 가이(斝彝)에 명수를 담고 황이(黃彝)에 예주를 담은 것까지 합하여 18준이 되는 것이다. -

축호(祝號)를 짓고 현주(玄酒)로 제사하며, 희생의 피와 털을 올리고, 성(腥)을 조(俎)에 담고, 효(殽)를 삶고, 월석(越席)을 깔고, 거친 베로 술동이[尊]를 덮고, 한백(澣帛)을 입고, 예주(醴酒)와 잔주(醆酒)를 올리고, 번(燔)과 적(炙)을 올리며, 임금과 부인(夫人)이 번갈아 술잔을 올려 사자(死者)의 혼백을 즐겁게 하니, 이것을 합막(合莫)이라 한다. - 이 단락은 상고(上古)와 중고(中古)의 음식을 올리는 것을 말하였다. 《주례》에 의하면 축호(祝號)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호(神號)이고, 둘째는 귀호(鬼號)이고, 셋째는 지호(祗號)이고, 넷째는 생호(牲號)이고, 다섯째는 자호(齍號)이고, 여섯째는 폐호(幣號)이다. 호(號)란 신을 높이고 물건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을 조에 담는다’는 것은 돼지를 갈라서 날고기와 피와 털을 올리는 것을 말하니, 이는 태고의 예를 본받은 것이다. ‘효를 삶는다’는 것은 부위별로 나누어 삶는 것인데, 이 이하는 모두 중고(中古)의 예를 본받은 것이다. ‘월석’은 부들을 잘라서 만든 방석이다. 원문의 멱(冪)은 술동이를 덮는 것이다. ‘한백’은 명주를 누이고 물들여 만든 제복(祭服)이다. 원문의 가(嘉)는 즐겁게 한다는 뜻이고, 막(莫)은 허무(虛無)라는 뜻이니 효경설(孝經說)에 “위로 무막(無莫)에 통한다.” 하였다. 돼지는 부위별로 나누면 양쪽 넙적다리, 양쪽 어깨, 양쪽 어깨뼈와 척추를 합쳐서 일곱 부위가 된다. 칠체(七體)는 어깨[肩], 앞다리[臂], 정강이[臑], 넙적다리[肫], 겨드랑이[骼], 척추, 옆구리이며, 구체(九體)는 어깨가 첫째이고, 앞다리가 둘째이고, 정강이가 셋째이고, 넙적다리가 넷째이고, 겨드랑이가 다섯째이고, 바른 척추[正脊]가 여섯째이고, 가로 척추[橫脊]가 일곱째이고, 긴 옆구리[長脅]가 여덟째이고, 짧은 옆구리[短脅]가 아홉째이다. 십일체(十一體)는 구체에 정척(脡脊)과 대협(代脅)을 합친 것이다. 천자와 제후는 조천에 희생의 날고기를 올리는 예가 있으므로 돼지고기의 부위를 나누고, 대부와 사는 상례(喪禮)에 돼지고기의 부위를 나눈다. 우제(虞祭)에는 칠체를 두고, 사시(四時) 정제(正祭)의 희생은 구체를 두고, 소뢰(少牢)는 십일체를 둔다. 관례(冠禮)에는 십구체(十九體)를 두는데 이는 세 척추와 양 앞발과 양 넙적다리 각각 세 개씩을 통틀어 이십일체(二十一體) 중에서 좌우 양 넙적다리를 치지 않고 말한 것이다. - 이렇게 한 후 물러나 데친 고기를 함께 모아 삶아서 개, 돼지, 소, 양 등의 고기를 부위별로 구분하여 보궤(簠簋)와 변두(籩豆)와 형갱(鉶羹)에 담아서, 축사(祝辭)에는 효(孝)라는 말로 고하고 하사(嘏辭)에는 자(慈)라는 말로 고한다. 이것을 대상(大祥)이라 한다. - 이 단락은 지금 세상의 음식을 올리는 것을 말하였다. ‘개, 돼지, 소, 양 등의 고기를 부위별로 구분한다’는 것은 뼈와 살의 귀천(貴賤)에 따라 구분하여 여러 조(俎)에 담는 것을 이른다. ‘축사에는 효라는 말로 고하고 하사에는 자라는 말로 고한다’는 것은 각각 그 뜻을 첫머리로 삼은 것이다. 상(祥)은 좋다는 뜻이니, 지금 세상의 음식이 인도(人道)에 좋은 것이다. -

축사(祝辭)와 하사(嘏辭)에 감히 떳떳한 고법(古法)을 바꾸지 않아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일러 대가(大假)라 한다. - 가(假)는 역시 크다는 뜻이다. 감히 떳떳한 고대의 예법을 바꾸지 않는 것을 일러 크고 크다고 한다는 것이니, 이렇게 말한 것은 장차 오늘날은 그렇지 못함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

축사와 하사의 사설(辭說)을 종축(宗祝)이나 무사(巫史)의 집에 갈무리하는 것은 비례(非禮)이니, 이렇게 하는 나라를 유국(幽國)이라 한다. - ‘종축이나 무사의 집에 갈무리한다’는 것은 임금이 그것이 있는 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幽)는 어둡다는 뜻이니, 나라가 어두운 경우에는 임금과 대부가 모두 밝지 못하기 마련이다. -

잔(醆)과 가(斝)를 임금의 시동에게 올리는 것은 비례이니, 이렇게 하는 것을 참람된 임금이라 한다. - ‘참람된 임금’이란 참람된 예를 쓰는 임금이란 뜻이다. 잔과 가는 선왕(先王)의 술잔이니, 오직 노(魯) 나라를 비롯한 왕자(王者)의 후손만이 사용할 수 있다. 기타 제후들은 당시 왕의 기물을 사용해야 한다. -

대부가 가신(家臣) 수를 모두 다 갖추고 제기(祭器)를 남에게서 빌리지 않고 성악(聲樂)을 모두 갖추는 것은 비례이니, 이렇게 하는 나라를 어지러운 나라라 한다. - 신하의 사치와 부유함이 임금에 비견될 정도이면 패란(敗亂)한 나라이다. 공자가 관중(管仲)을 두고, “가신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떻게 검소하겠는가.” 하였다. -

하늘이 낳지 않았고 땅이 기르지 않은 물건은, 군자는 제수(祭需)로 올려 예(禮)를 삼지 않나니, 귀신도 흠향하지 않는다. - ‘하늘이 낳지 않았다’는 것은 그 철에 나는 물건이 아님을 뜻하고, ‘땅이 기르지 않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나는 물건이 아님을 뜻한다. - 산중에 살면서 물고기와 자라로 예를 갖추고 물가에 살면서 사슴과 돼지로 예를 갖추는 것을, 군자는 예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 그 고을에 있는 것에 따라 예를 갖추지 않은 것이다. -

예(禮)의 대륜(大倫)은 땅의 넓고 좁음에 따라 결정하고, - 공물과 부세(賦稅)의 일정한 차등을 이른다. - 예의 후박(厚薄)은 그해 작황(作況)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정한다. -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

작은 양과 작은 돼지로 제사하더라도 백관(百官)이 모두 얻어 먹을 수 있는 경우도 있고, 태뢰(太牢)로 제사하더라도 반드시 남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일러 합당하게 한다고 한다. - 원문의 족(足)은 얻는다는 뜻이다. ‘합당하게 한다’는 것은 희생의 대소(大小)에 걸맞게 조(俎)를 차리는 것이다. 이 대목은 제사를 돕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인데 백관이라 한 것은 사람이 많음을 비유한 것이다. - 그러므로 군자가 태뢰로 제사하는 것을 예(禮)라 하고, 필사(匹士)가 태뢰로 제사하는 것을 양(攘)이라 한다. - 군자는 대부 이상을 뜻한다. 양(攘)은 도절(盜竊)한다는 뜻이다. -

군자가 이르기를, “제사에 복을 빌지 않으며, - ‘빈다[祈]’는 것은 구한다는 뜻이니, 제사에는 복을 구하지 않는 법이다. 《시경》에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自求多福]” 하였으니, 복을 받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 시기보다 일찍 지내는 것을 유쾌해하지 않으며, - 원문의 휘(麾) 자는 쾌(快) 자와 뜻이 같다. 즉 제사는 제때가 있으므로 먼저 지내는 것을 유쾌해하지 않는 것이다. 제(齊) 나라 사람은 좋게 여기는 것을 휘(麾)라 한다. - 크고 풍성하게 하는 것[葆大]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 제기(祭器)와 폐백을 이른 것이다. 보(葆)는 포(褒)와 같은 뜻이다. - 가사(嘉事)를 잘하지 않으며, - 가사의 제사는 부인(夫人)을 맞아들이는 것이 이것이다. 이러한 경우 의당 선조(先祖)에 고하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 일을 잘하기 위하여 따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다. - 희생을 정도에 지나치게 살지고 큰 것을 쓰지 않으며, 제수를 많이 갖추는 것을 잘 하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 예(禮)의 뜻으로 보면, 작고 적게 차리는 것을 귀히 여기는 점이 있다. - ” 하였다.

교제(郊祭)에는 피를 쓰고, 대향(大饗)에는 날고기를 쓰고, 삼헌(三獻)에는 살짝 데친 고기를 쓰고, 일헌(一獻)에는 익힌 고기를 쓴다. - 교제는 하늘에 제사하는 것이다. 대향은 선왕을 협제(祫祭)하는 것이다. 원문의 난(爛)은 끓는 물에 고기를 담가 살짝 데치는 것이다. 피를 올리고 날고기를 올리고 살짝 데친 고기를 올리고 익힌 고기를 올리는 것은 인정(人情)에 멀고 가까움에 따른 것으로, 고금(古今)의 예를 갖춘 것이다. 존자(尊者)의 제사일수록 인정에 먼 것을 우선하고, 차츰 강등하여 소사(小祀)에 이르면 익힌 고기만 올린다. -

예주(醴酒)를 쓰되 현주(玄酒)를 높이고 할도(割刀)를 쓰지 않고 난도(鸞刀)를 쓰며, 왕골자리나 대자리가 편안한데도 짚[槀鞂]으로 만든 자리를 쓴다. - 이 세 가지는 고례(古禮)를 따른 것이다. 이삭에서 곡식을 턴 것을 갈(鞂)이라 한다. -

석 달 동안 묶어 두고, 7일 동안 계(戒)하고, 3일 동안 숙(宿)한다. 이는 지극히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 ‘묶어 둔다’는 것은 희생을 우리에 묶어 두는 것이다. 계(戒)는 산제(散齊)이고, 숙(宿)은 치제(致齊)이다. -

천도(天道)는 지교(至敎)이고 성인은 지덕(至德)이니, - 아래의 일들을 지목한 것이다. -묘당(廟堂)의 위에 뇌준(罍尊)은 조(阼)에 있고 희준(犧尊)은 서쪽에 있으며, 묘당의 아래에 현고(縣鼓)는 서쪽에 있고 응고(應鼓)는 동쪽에 있다. - 예기(禮器)는 서쪽을 높이 친다. 작은 북을 응고라 한다. 희(犧) 자는 《주례》에는 헌(獻)으로 되어 있다. - 그리고 임금은 조(阼)에 있고 부인(夫人)은 방에 있으며, - 임금은 동쪽을 높이 친다. 천자와 제후는 좌우에 방을 둔다. - 대명(大明)은 동쪽에서 생기고 달은 서쪽에서 생기나니, 이것이 음양의 구분이고 부부의 자리이다. - 대명은 해이다. - 임금은 서쪽에서 희상(犧象)에서 술을 따르고 부인은 동쪽에서 뇌준(罍尊)에서 술을 따라, -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가고, 달이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가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주례》에 “봄철의 사제(祠祭)와 여름철의 약제(禴祭)에 강신주(降神酒)를 땅에 부을 때는 계이(雞彝)와 조이(鳥彝)를 사용하며 모두 아래에 받치는 소반[舟]이 있다. 그리고 조천(朝踐)할 때는 두 개의 헌준(獻尊)을 쓰며 재헌(再獻)할 때는 두 개의 상준(象尊)을 쓰되 모두 뇌(罍)를 두니, 신하들이 술잔을 돌릴 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였다. - 예는 당상(堂上)에서 번갈아 움직이고 악(樂)은 당하(堂下)에서 번갈아 호응하나니, 이것이 화합(和合)의 지극함이다. - 번갈아 해야 화합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였다. -
태묘(太廟)의 안에서는 경건해야 한다. 임금이 친히 희생을 끌면 대부가 폐백을 들고 따르고, - 뜰에 희생을 들여 놓을 때에는 응당 폐백을 가지고 신에게 고유(告由)한 다음 희생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 임금이 친히 제제(制祭)를 하면 부인(夫人)은 앙제(盎齊)를 올리며, 임금이 친히 희생을 가르면 부인은 술을 올린다. - ‘친히 희생을 가른다’는 것은 희생의 익힌 부위를 올릴 때를 말한다. - 경과 대부는 임금을 따르고 명부(命婦)는 부인을 따라, 동동(洞洞 심신의 안팎이 모두 경건한 모습)하게 공경하고 촉촉(屬屬 성실하여 거짓이 없는 모습)하게 성실히 하며, 신이 흠향(歆饗)하시기를 물물(勿勿)하게 바란다. - 물물은 면면(勉勉)과 같다. - 희생이 들어오면 뜰에서 신에게 고유하고, 희생을 잡아 피와 털을 꺼내었으면 실(室)에서 고유하고, 육즙과 익힌 고기[羹定]가 마련되면 당(堂)에서 고유하나니, 이 세 가지 고유하는 자리가 같지 않은 것은 신을 찾아도 찾지 못할 듯함을 말한 것이다. - 고기를 갱(羹)이라 한다. 원문의 도(道)는 말한다는 뜻이다. - 당(堂)에 제수를 차리고 - 당(堂)에 제수를 차리고 임금이 예를 갖추는 것이다. - 사당 문 밖에서 팽제(祊祭)를 지내나니, - 팽(祊)은 제사 이튿날 지내는 역제(繹祭)인데, 이를 팽이라 하는 것은 사당 문 곁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 제사의 예(禮)는 실(室)에 제사를 차리고 당(堂)에서 시동을 섬기니, 효자가 신을 찾는 장소가 한 곳만이 아닌 것이다. -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가, 저기에 있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 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소(疏)에 “팽(祊)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제(正祭) 때 지내는 것으로 사당에 제수(祭需)를 차려 놓은 다음 다시 사당 안, 평소 빈객을 접대하던 곳에서 신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사 이튿날 역제를 지낼 때 사당 문 밖 서쪽 실(室)에 제수를 차리는 것이다. -

재계(齊戒)하는 이는 즐거워해서도 안 되고 조문(弔問)해서도 안 된다. - 슬퍼하거나 기뻐하다 보면 바른 마음을 잃어 생각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

무릇 제사에는 용모와 안색을 반드시 제사 모시는 분을 직접 보듯이 하여야 한다. - 그 사람이 이곳에 있는 것을 친히 보듯이 하는 것이다. -

사당 안에서는 제제(齊齊)하여야 한다. - ‘齊’는 반절이 재(才)ㆍ혜(兮)이니, 제제는 공경하고 엄정한 모습이다. -

제사에 임해서는 태만하지 않아야 한다. - 신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제(祭)의 말뜻은 ‘살피다[察]’이니, 살핀다는 것은 지극하다는 뜻이다. 지극하다는 것은 인사(人事)가 지극한 것이니, 인사가 지극한 뒤에야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 찰(察)은 《효경》의 “땅에 제사함에 대지의 도리를 잘 살핀다.[事地察]”의 찰과 같다. - 제(祭)의 말뜻은 ‘구한다[索]’이다. 구한다는 것은 극진히 한다는 뜻이니, 효자가 그 어버이에 대해서 스스로 극진히 하는 것을 말한다.

희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자성(粢盛)이 정결치 못하고 의복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감히 제사하지 않으며 - 서직(黍稷)을 자(粢)라 하고, 그릇에 담긴 것을 성(盛)이라 한다. - 제사하지 않았으면 감히 연회하지 않는다.

제사지낼 때의 뜻은 유연(諭然 통효(通曉)하고 명백한 모습)히 사모하면서 화락하다. 거상(居喪) 중의 뜻은 요연(漻然)히 근심하면서 슬퍼한다. - ‘漻’는 독음이 료(聊)이니, 맑고 깊은 모습이다. 원문의 ‘湫’는 반절이 즉(卽)ㆍ유(由)이다. - 제사지낼 때의 용모는 편안하고 느긋하며 신중하고 엄숙하여 공경하면서도 유순하다. - 원문의 ‘粥’은 반절이 우(于)ㆍ륙(六)이고, ‘婉’은 반절이 우(紆)ㆍ만(晩)이다. - 거상 중의 용모는 근심하는 듯 두려운 듯 사자(死者)가 마치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한다. - 원문의 ‘怮’는 반절이 어(於)ㆍ구(求)이다. - 제사지낼 때의 시선은 거상 중의 시선과 같이 하되 아래로 시선을 흘려 수강(垂綱)의 아래로 낮춘다. - 원문의 ‘㳅’는 류(流)의 고자(古字)이다. - 말을 문식(文飾)하여 조리 있게 하는 것은 제사지낼 때의 말이고, 말이 마치 부족한 듯이 하는 것은 거상 중의 말이다.

제사의 아름다움은 제제왕왕(齊齊皇皇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무언가 찾는 모습)하며, - ‘皇’은 독음이 귀왕(歸往)의 왕(往)과 같다. 소(疏)에 “효자가 제사지낼 때는 반드시 마음이 쏠리고 묶이는 곳이 있다.” 하였다. - 거상(居喪) 중에는 즐거운 일을 말하지 않고, 제사에는 흉사(凶事)를 말하지 않는다. - 그렇게 할 때가 아닌 것이다. -

제사는 공경을 위주로 하고, 상사(喪事)는 슬픔을 위주로 한다.
지자(支子)는 제사지내지 않는 법이니, 제사를 지낼 경우엔 반드시 먼저 종자(宗子)에게 고해야 한다. - 감히 자기 마음대로 제사지낼 수 없는 것이다. ‘제사를 지낼 경우’란 종자가 유고(有故) 중이라 지자가 대신 제사를 지낼 경우를 이른다. 오종(五宗)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

종자가 사(士)이고 서자가 대부일 경우 그 제사에 상생(上牲)으로 종자의 집에서 지내되, - 녹(祿)을 귀히 여기고 종(宗)을 중시한 것이다. 상생은 대부일 경우엔 소뢰(少牢)이다. - 축사(祝辭)에 “효자 모(某)가 개자(介子) 모를 대신하여 상사(常事)를 올립니다.”라고 한다. - 개(介)는 부(副)의 뜻이다. 서자라고 하지 않고 개자라고 한 것은 제사를 지내게 할 만하다는 뜻이다. - 그리고 만약 종자가 죄를 지어 다른 나라로 가서 살고 서자가 대부가 되었을 경우엔 그 제사의 축사에 “효자 모가 개자 모를 시켜 그 상사를 잡게 합니다.” 한다. - 이 대목은 종자가 대부를 대신하는 경우를 이른다. - 제주(祭主)를 대행하는 이는 염제(厭祭)를 지내지 않고 여(旅)도 하지 않고 하(假)도 하지 않고 수제(綏祭)도 하지 않고 배위(配位)도 세우지 않는다. - 모두 원래의 제주[正主]의 일을 피하는 것이다. 염(厭)은 신을 배불리 먹이는 것인데, 염에는 음(陰)이 있고 양(陽)이 있다. 신주를 맞이하기 전에 축(祝)이 술을 따라 올려놓고 신에게 흠향케 하는 것이 음염(陰厭)이다. 시동이 일어난 뒤에 제수와 제기(祭器)들을 치워서 서북쪽 모서리에 설치하는 것이 양염(陽厭)이다. 여기서 ‘염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양염을 지내지 않는 것이다. ‘여(旅)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수(旅酬)를 하지 않는 것이다. ‘假’는 독음이 하(嘏)이다. ‘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동이 주인에게 하사(嘏辭)를 고하지 않는 것이다. ‘수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의 제주(祭主)를 두고 한 말이다. 수(綏)는 《주례》에는 타(墮)로 되어 있다. ‘배위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축사에 “모비(某妃)를 모씨(某氏)에 배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 주인이 빈객에게 포전(布奠)하면 빈객은 전(奠)을 하고 술잔을 들지 않고 - ‘포전한다’는 것은 주인이 빈객에게 술잔을 돌릴 때 잔을 제수(祭需)의 북쪽에 놓는 것을 이르고, ‘빈객은 전을 한다’는 것은 빈객이 제수의 남쪽에 잔을 가져다 놓는 것을 이르니, 이것이 여수(旅酬)의 시작이다. ‘전을 하고 술잔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여수를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 제육(祭肉)을 돌리지 않으며, - 제육이란 조(俎)에 담긴 고기를 말한다. 제사에 참여한 이들이 머물러서 연회를 연다는 뜻이다. - 빈객에게 고하는 말에는 “종형(宗兄), 종제(宗弟), 종자(宗子)가 타국에 있어 아무개로 하여금 인사하게 하였습니다.” 한다. - ‘인사한다[辭]’는 것은 고한다는 것과 같다. 빈객에게 인사하는 말을 할 때 종자와 항렬이 같을 경우엔 종형이라 하고, 자제(子弟)의 소목(昭穆)이 다를 경우엔 종자라고만 한다. 그 말은 이를테면, “종형이 타국에 있어 아무개로 하여금 그 상사를 잡게 하고 아무개로 하여금 고하게 하였습니다.” 하는 것과 같다. -
종자가 다른 나라에 가 있고 서자가 작위가 없이 사는 사람일 경우엔 그 제사에 - 자손이 있어 선조의 제사를 없앨 수 없는 경우이다. 소(疏)에 “여기서 ‘종자가 다른 나라에 가 있다’는 것은 죄를 지은 이의 경우를 이른다. 만약 죄가 없다면 사당을 그 나라로 가지고 갔을 것이니, 사당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예기》 상복소기 주(註)에 “종자가 나라를 떠나면 사당을 가지고 가니, 이는 죄가 없는 경우를 이른 것이다.” 하였다. - 멀리 묘를 바라보고 단(壇)을 만들어서 철마다 제사하며, - 사당에 제사하지 않는 것은 작위가 없는 이는 천하므로 원래의 제주가 하는 일을 멀리 피하는 것이다. - 만약 종자가 죽었으면 묘에 고한 뒤에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 집에서 제사하는 것은 혹 사당이 없는 경우를 이른다. - 종자가 죽었으면 자기 이름을 칭하고 효자라고 말하지는 않되 - 효자란 종자가 자기를 일컫는 말이므로 감히 호칭을 같이하지 않고, “아들 아무개가 상사를 올립니다.”라고만 하는 것이다. - 자신이 죽을 때까지만 그렇게 한다. - 자기 아들 대에 이르러서는 효자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 -

자기 나라를 떠날 때는 묘에서 곡한 뒤에 가고 자기 나라로 돌아올 때는 곡을 하지 않고 묘를 살펴본 다음 들어간다. - 임금의 일을 맡은 것이 없어 효(孝)를 위주로 하므로 슬피 곡하고 떠나는 것이다. 원문의 전(展)은 살펴본다는 뜻이다. - 묘를 지날 때는 수레 위에서 예를 표하고, 사(祀)를 지날 때는 수레에서 내린다. - 소(疏)에 “묘는 다른 사람의 분묘를 이른다. 사(祀)는 신위(神位)를 위한 집과 나무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분묘에도 오히려 예를 표하고 보면 자기 선조의 분묘에서는 수레에서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

대궐을 지날 때는 수레에서 내리고 - 임금이 법을 집행하고 있는 장소를 공경하는 것이다. - 사당을 지날 때는 추창(趨蹌)하는 것이 - 대궐을 지날 때는 수레에서 내리기 때문에 사당이 보이면 추창하는 것이다. - 효자의 도(道)이다. 선인(先人)의 실(室)이 불탔을 경우엔 사흘 동안 곡한다. - 다른 사람이 그 종묘를 불태웠을 경우를 이른다. ‘곡한다’는 것은 선조의 정신이 훼상(毁傷)됨을 슬퍼하는 것이다. -

[주-D001] 명이(明夷)에……흘겨본다[明夷梯于左股] : 
《주역》 명이괘(明夷卦)에는 ‘睇’ 자가 ‘夷’ 자로 되어 있는데, 저자의 소주는 어디에 근거하여 인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주-D002] 사주(事酒)와 석주(昔酒) : 
《주례(周禮)》에 사주, 석주, 청주를 삼주(三酒)라 하였는데, 정 사농(鄭司農)이 이르기를, “사주는 일이 있을 때 마시고, 석주는 일 없이 마시고, 청주는 제사에 쓰는 술이다.” 하였다.
[주-D003] 부어(傅御) : 
왕이나 제후를 보좌하는 사람으로 보통 가신(家臣)을 일컫는다.
[주-D004] 존자(尊者) : 
제모(諸母)는 동족(同族) 중에서 항렬이 높은 이들이므로 존자로 호칭한 것이다.
[주-D005] 단의(褖衣) : 
왕후가 임금을 시어(侍御)할 때 입는 옷을 말한다.
[주-D006] 예식(禮食) : 
지아비가 아이를 낳은 적실이나 첩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주-D007] 연복(燕服) : 
잔치를 베풀 때 입는 평상복이다.
[주-D008] 간료(肝膋) : 
간과 창자 기름이다.
[주-D009] 정(棖)과 얼(闑) : 
정(棖)은 문설주이고, 얼(闑)은 문설주 사이에 세운 말뚝을 말한다.
[주-D010] 중석(重席) : 
자리를 포개는 것으로, 포갠 자리의 수로 신분의 고하를 표시한다.
[주-D011] 전의(展衣) : 
고대 왕후의 복장인 육복(六服)의 하나로 흰색 옷이다. 또는 세부(世婦) 및 경ㆍ대부의 처가 입는 명복(命服)을 일컫기도 한다.
[주-D012] 후비(后妃)와……낀다 : 
이 대목은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전(毛傳)에 보인다.
[주-D013] 서리가……동침한다 : 
이 대목은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보인다.
[주-D014] 소적(素積) : 
고대 예복의 하나. 흰 비단으로 주름을 잡아 만든 상(裳)을 말한다.
[주-D015] 시삭(視朔) : 
임금이 매월 초하루에 조상의 사당에 제사를 올린 다음 정사를 보는 것을 말한다.
[주-D016] 외성(外成) : 
여자가 출가(出嫁)한 것을 의미한다.
[주-D017] 여수(旅酬) : 
제례(祭禮)를 마친 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술을 권하며 공경하는 것이다.
[주-D018] 공최(功衰) : 
참최(斬衰)나 자최(齊衰)의 상복이 연제(練祭)를 지낸 후 즉 대공(大功)의 상기(喪期)와 같아졌을 때 바꿔 입는 상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