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년전 신안해저선에서 신기한 보물창고가 모두 열렸어요!”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

2018. 2. 8. 11:01도자 이야기


14세기 최대의 무역선, 신안해저선에서 보물창고가 열리다! - 650년전 신비하고 다양한 유물을 소개합니다.-




       


  “650년전 신안해저선에서 신기한 보물창고가 모두 열렸어요!”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개최합니다. 지난 725일 사전 언론공개회 에서는 주요 방송국과 신문사 기자들의 열띤 취재 속에 대서특필된 특별전입니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안해저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을 전시해 왔지만, 종류별로 대표성이 있는 것들만을 골라서 공개한 명품 위주의 전시였습니다. 24천여 점에 이르는 발굴품 가운데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전체의 5% 정도인 1천여 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해저선의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의 전시입니다.


   특별전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신안해저선의 문화기로 읽기에서는 복고풍의 그릇들과, , ,꽃 꽂이 등과 관련된 완상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부는 ‘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서는 신안해저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성의 닝보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역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보물창고가 열리다는 으뜸 전시공강으로서 신안해저선에 실렸던 화물등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도자기,동전,자단목,금속품,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견학 오는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하여 당시의 발굴 상황 등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전시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신안해저선의 실체와 함께 중세 한중일의 문화교류 양상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답니다.


  19758월 어느 날 전남 신안 앞 바다에서, 한 어무가 끌어올린 그물에 청자 꽃병 등 6점의 도자기가 올라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원나라 침몰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신안해저선은 1323년 엄청난 수량의 무역품을 싣고 중국 경원항을 출발하여 일본 하카다 항으로 가던 중 신안 앞바다에 침몰하였습니다. 침몰 후 65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무역선을 우리는 신안해저선이라고 부릅니다. 본고에서는 신안해저선의 최고 보물인 도자기 2만여 점을 제외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속품, 자단목, 목공예품, 향신료, 약재, 석제품, 유리제품, 골각제품 등을 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진1] 신안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 전시장 모습


 


 



[사진2] “경원로가 새겨진 저울추



 



 [사진3] 은덩이


 


[사진4] 신안선에서 발견된 목간  


 

   무게를 잴 때 사용하는 저울의 청동 추로, 몸통에 경원로(慶元路)”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추는 신안 해저에서 침몰한 재의 출항지가 경원항임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추의 몸체는 육각이고, 윗부분이 넓고 아래로 가면서 사선으로 좁아지는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은덩이에 비해 크기가 작습니다. 은덩이의 성분을 분석한 결고 금 10%와 은 90%의 합금이며, 무게는 148.5g입니다. 윗면은 바닷물로 인해 부식되면서 생긴 구멍이 전면을 덮었고, 바닥면에 은빛이나 금빛이 간간히 드러납니다.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동전과 함께 당시 무역거래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신안선 목간은 모두 물품의 꼬리표입니다. 묵간 윗부분의 형태는 구멍이 뚫린 것, 홈을 판 것, 평평한 것, 약간 뾰존한 것 등 여러 가지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수결은 오늘날의 서명, 사인과 같습니다. 하물을 인수하는 시점에서 목간에 쓴 물품 내용과 수량을 확인하고 틀림없음을 표시하였답니다. 신안선의 출발지와 목적지, 교역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3236월 초 어느 날, 출항 허가를 받은 신안선이 경원항을 출발했습니다. 일본을 향해 항해하는 동안 배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신안선에서 발견된 목간을 비롯하여 여러 도자기, 금속기, 칠기, 불상, 공양구, 향신료, 씨앗, 무기, 놀이기구 등의 다채로운 물품을 근거로 우리는 당시 선상생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답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배였기에 탑승자 중에는 당연히 중국인, 일본인이 있었고, 고려인이 있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이 중에는 선원, 상인, 승려나 사찰 관계자, 화주 또는 그 대리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선박 내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상상됩니다. 중국인 선원들은 요리(후추,생강,정향)를 하거나 조리할 때는 동제 솥, 냄비, 깔때기, 도마를, 식사를 할 때는 낡은 백자 사발, 접시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일본 승선인 중에는 상류층 인물들을 중심으로 주칠 그릇을 사용하였고, 일본에서 들고 온 세토 매병에 술을 담았으며, 맷돌, 흑유 다완, 주전자 등을 이용하여 차를 준비하여 마셨을 것입니다. 호신용 칼을 지닌 무사들은 이들을 보호하고 선박을 순시하였을 것입니다. 승려들은 무사 항해를 위해 불상과 각종 공양구를 동원하여 예불을 올렸을 것입니다. 무료한 시간에 탑승자들은 바둑과 장기를 두고 주사위 놀이도 했을텐데 이런한 생생한 유물들을 소개합니다.


 


 


 [사진5] 주전자


 


[사진6] 나막신]


 


[사진7] 바둑알


 



[사진8] 장기판과 장기알


 


  주전자와 원통 받침이 한데 결합된 주석합금 주전자입니다. 안에는 납 덩어리들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주전자 형태는 원대에 새로 나타났고,신안선에서는 주전자 대신 귀때 완이 결합된 그릇도 발견되엇습니다. 원통 받침은 바닥을 따로 주조해서 주전자 몸통에 땜으로 접합되어 있습니다. 이 주전자는 수출품이라기 보다 선원들이 사용한 물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 소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나막신은 일본에서 사용한 것으로 게타라고 불립니다. 이 나막신을 통해서 신안선에서 일본인이 승선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안해저선에서는 아주 특별한 유물이 있답니다.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장기판이 세계 최초로 발견되어 한중일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선상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즐겼던 바둑알과 장기판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이번 특별전에 전시되어 있으니 바둑과 장기 애호가들은 꼭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사진9] 동전


 



 [사진 10] 자단목


 


 



사진 11] 술잔 (금속품)


 


 




 [사진 12] 주석덩이


 


  신안선에 실린 상품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동전입니다. 동전은 선박의 중간이나 선미부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무게는 총 28톤이며, 개수로는 8백만 개에 이릅니다. 대부분 중국 동전이지만 소량의 베트남 동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동전은 대체 어디에 사용하려 했을까요? 일본에서 동전을 녹여 청동 대불이나 금속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화폐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안선 동전의 28톤이라는 규모에 놀라고 하지만, 당시 유통되는 동전의 양을 볼 때 8백만 개의 동전은 그리 많은 수량은 아니라고 합니다. 상인들의 입장에서 동전 구입은 이익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일본 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져간 금으로 중국 동전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금 생산량이 매어 적어 다시 베이징의 금값은 일본 교토의 3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톤 분량의 동전을 원형 그래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신안선은 갯벌에 묻히면서 650여 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배 바닥에 고루 배치된 자단목 1,000여 본 위에는 28톤의 동전이 쌓여 있었는데, 자단목은 동전과 함께 배의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자단목의 대부분은 베어낸 다음 나무껍질을 벗기고 나머지 모양은 그래도 살린 원목입니다. 로마-아라비아 숫자, 알파벳은 지중해 지역과 서남아시아에서 온 상인들이 산지는 드나들며 남긴 흔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단목은 유럽, 아랍 상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푸젠 성 취안저우에서 신안선이 선적 되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안해저선에서 인양된 금속품은 1,000여 점에 달합니다. 기명류,분향구, 조명구, 화장구, 불교의식구와 악기류, 주장용구, 생활용구, 무기, 장식기, 금속정 등으로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상자에 담긴 채 발견된 일부 금속제품은 무역품임에 틀림없다고 추정됩니다. 술잔()은 중국의 상대부터 사용된 고동기로 음주기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이 작에 표현된 육각무늬와 위의 작은 두기둥의 새끼줄 띠는 원대에 새롭게 나타나는 요소라고 합니다.


  장방형의 주석 정으로 가운데에 타원형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주석 정에는 왕구랑(王九郞)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들이 있는데 주석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만든 장인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13] 정향이 담긴 단지


 


 



  [사진 14] 후추



 




 [사진 15] 공작, 꽃무늬 장식판


 

  신안선에서는 다양한 향신료와 향료가 발견되었습니다. 후추, 계피, 정향, 은행,가래나무 껍질과 열매, 개암, 약밤,매실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석기로는 벼루, 문진, 방추자, 석판 등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벼루로, 40여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신안선에서는 유리 제품도 발견되었습니다.비녀,구슬, 단추 등이 출토되었는데, 청색 유리 비녀는 머리 부분이 커다란 못처럼 생겼고 작은 꽃잎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작은 항아리에 담겨진 채 발견된 정향(丁香)입니다. 항아리는 푸젠 성의 홍당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이 정향과 함께 다른 향료들이 푸젠 지역에서 배에 실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후추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식물 품묵 가운데 상당한 수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무상자에 가득 담긴 상태로 인양되었다고 합니다.


  직사각형 쟁반의 안쪽 판, 네 변에 접합되는 전의 일부로 보입니다. 공작과 꽃무늬 장식은 원대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길상이라고 합니다.


 


 



[사진16] 신안선의 모형


 


[사진17] 신안선의 발굴 당시의 모습(1)

 


 




 [사진18] 신안선의 발굴 당시의 모습(2)


 


    신안선은 음력 6월 초 상품 선적을 완료하고 출항한 후 한두 달이 안 되어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센 풍랑이 휩쓸린 무역선은 일본이 아닌 신안 앞바다에 이르러서 큰 바위에 부딪쳐 배 옆구리에 구멍이 나면서 결국 평형을 잃고 거센 물살을 견디지 못해 침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신안선은 발견 당시 20m 깊이의 갯벌에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신안선은 중국 남방 지역에서 나는 마미소, 넓은잎삼나무, 녹나무, 가시나무 등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신안선이 푸젠 성 취안저우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발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있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배 바닥에는 자단목 천여 본 위에 중국 동전이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도자기, 칠기, 금속 제품이 담긴 나무상자들이 적재되어 있었던 것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신안해저선의 발굴은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효시가 되었으며, 그 경험과 성과는 이후 수많은 수중문화재 조사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적-문화적 교류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답니다. 깊은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타임캡슐 650여 년 만에 나타는 신안해저선 40주년 기념 특별전에 무더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의 많은 관람을 기대합니다.


 


                                        2016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 기자 이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