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 23:31ㆍ우리 역사 바로알기
중국학자들과 그 허튼논리를 대변하는 국내 일부 학자들이 "집안고구려비"니 "지안고구려비"로 불러주는 마선비. 우리는 그동안 마소빈이 우연히 지안(集安)시 마센(麻線)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집안을 다녀온 제 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본문과 각주에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이번의 정체불명의 마선비(또는 지안고구려비)는 "누군가"가 모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보여주기 이벤트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한국고대사학회에서 주최한 학술대회.. 마선비의 위각 가능성을 제기한 당사자인 제게 "왜 위각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조차 막은 마선비의 몸값 올리기와 제작연대 상한선 끌어올리기 위한 한바탕의 이벤트였습니다 거기서 경철화가 발표한 논문의 거의 3분지 1의 내용이 제 주장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천도자승"으로 끊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까지 그런 용례가 없었다, 근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해라...
경철화는 날이라도 잡은듯이 작심하고 자기 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장장 8시간 넘는 시간을 그 자리를 지키면서 그에 대한 대답과 재반박을 할 준비를 했지만 국내 언론들에까지 웃음거리가 되었던 주최측의 철통경호로 결국 질의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천도자승" 단구문제에 관한 이 내용은 4월 모일의 그 학술대회에서 경철화와 국내 학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대답과 재반박의 일환입니다 첫 단추를 제 구멍에 끼지 못하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오류에 오류를 거듭해서 결국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법입니다 경철화와 국내 학자들의 주장과 해석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회원 여러분들께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Ⅵ. "天道自承"의 단구
필자가 마선비의 위각 가능성 문제를 제기한 후로 경철화와 일부 국내 학자가 "天道自承"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주01) 이어서 중국 학자들이 『집안고구려비』 등을 통해 壹05∼22 부분을 "世, 必授天道, 自承元王, 始祖鄒牟王之創基也."로 끊었고 국내에서도 상당수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부연했다. 그러나 고문 문법에 근거할 때 이 부분은 역시 "世必授, 天道自承. 元王始祖鄒牟王之創基也,"로 끊어 해석해야 옳다고 본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 를 들 수 있다.
마선비의 우상방은 충격으로 인하여 파손되어 있는데(주03) 문제의 파편이 수습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이 우상방에 원래 어떤 글자 무슨 내용이 들어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의 전후 맥락에 대한 대조를 통해 그 대체적인 내용과 구조를 추정해 볼 수가 있다.
현재까지 국내외에서는 일부 학자가 이 부분에 대한 추독을 시도했는데, 경철화의 "惟太王之世", 장복유의 "惟雄在不世", 조우연이 "聖太王之世" 등이 그것이다. 동양의 비문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①마선비 壹01∼11처럼 통상적으로 비를 세우게 된 경위나 사회적 통념을 소개하는 도입부 즉 서언을 갖추는 것이 보통이며, ②비문의 첫글자인 壹01에는 말을 시작하는 것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지(mark)로서 "惟"나 "夫" 같은 발어사가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비문 체제상의 관례를 감안할 때 "惟太王之世"나 "惟雄在不世" 식의 추독은 그런 대로 구색을 갖춘 셈이지만 "聖太王之世"는 발어사가 없어서 도입이 다소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전자를 문법적 구성면에서 따져볼 때 "惟雄在不世"의 경우 발어사를 제외한 "雄在不世" 부분은 구조나 의미상으로 해석이 불가능하며 전후 맥락에 비추어 보더라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惟太王之世"가 올바른 추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다음처럼 그 문법/맥락상의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문법적으로 따져볼 때 ①중국 고문에서 "必"은 판단의 어감을 표현하는 부사로서 그 앞에는 특정한 실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고유명사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좀처럼 드물다. 게다가 "必" 자체가 특정 상황의 판단을 표현하는 부사이지만 많은 경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연의 상황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보편적인 현상에 대한 주관적 추정의 어감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도 "太王之世, 必授天道"가 되면 "태왕의 치세에는 반드시 천도를 내리게 되어 있다"가 되어서 천도를 내리거나 받는 행위가 현재까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만일 壹01∼05가 "太王(之世)"이 확실하다면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시점을 과거로 한정하고 있는 셈이어서 미래의 특정 상황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추정을 표현하는 부사 "必"은 여기에 사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하나, 壹01∼05에 "太王" 또는 "太王之世" 식으로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두면 壹01∼09 부분은 "태왕의 치세라면 반드시 천도를 내리고 스스로 원왕을 계승하기 마련이다" 식으로 해석되게 되므로 "(반드시) 천도를 내리는 일"과 "스스로 원왕을 계승하는 일" 같은 상황은 오로지 "太王"만의 전유물로 한정된다. 만일 비문 작성자가 이런 경우에 직면했다면 그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즉, "태왕의 치세라면 반드시 천도를 내리고 스스로 원왕을 계승하기 마련이다" 부분이 담은 정치적 의미를 그대로 살려두기 위해 壹01∼05의 주체를 불특정의 범칭으로 바꾸거나, '태왕'이라는 주체를 살리기 위해 그 이하를 다른 표현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마선비에는 이미 " 世必授天道自承元王"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는 상태이므로 여기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 世必授天道自承元王"의 주체를 "太王"으로 고집하기를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즉, 추독자가 아무리 공명심과 이해관계에 이끌려 壹01∼05에 "太王"을 끼워 넣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도 문법상으로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맥락상으로 따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②뒤의 "天道"가 동사 "授"와 함께 사용된 이상 그 주체는 "太王"이 될 수가 없다. 도가를 포함한 선진시대 제자백가에서 '천도'는 만물의 본체이자 사물이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운행법칙으로 인식되었다. 그 위상은 제후나 '천자'보다도 상위에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도가의 시조 노자가 상정한 하느님 즉 "天帝"보다도 기원이 오랜 개념이다. 때문에 고대 중국의 우주관에서 '천도'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숭배하거나[崇] 받들거나[承] 섬기거나[事] 받거나[受] 하는 신성하고 전능한 우주의 주재자로 등장하며 누구에게 주어지는[授] 증여물이나 도구로 제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주04) 실제로 고문에서 '천도'는 '崇, 奉, 事, 順, 承, 受'나 '通, 見, 知, 聞, 行, 明' 등과 같이 그것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숭배대상이나 우주만물에 두루 작용하는 보편적인 진리로 묘사해내는 동사들과 어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같은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에 근거할 때 마선비문의 "授天道"와 " 世"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지는 자명해지는 셈이다.
만일 일부 학자처럼 "太王"을 전면에 내세워 壹01∼09를 "惟太王之世, 必授天道"로 끊고 "무릇 태왕의 치세에는 반드시 천도를 내려…"(주05) 라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太王"이 범우주적인 주재자로서 누군가에게 "天道"를 '부여'했다는 소리가 되므로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천도'란 '주는[授]' 것이 아니라 '받는[受]' 것이요 '받드는[承]' 것인 이상 '천도' 수여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같은 '천도'를 내리는 주체로는 세속 정권의 임금인 "太王"이나 그보다 높은 "元王始祖"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불특정의 절대지존이나 신격이 상정되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必授"의 목적어로는 "天道"가 아닌 그 앞의 " 世"가 보다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天道"를 무슨 성분으로 볼 것인가 이다. 만일 구문내의 어순에만 주목한다면 "天道"도 주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오독'이다. 왜냐하면 "天道"는 여기서 목적어로서 술어 "自承" 앞으로 도치된 「목적어+부사+동사」구조의 일례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철화는 고문에서 "天道自承" 식으로 목적어가 선행되는 용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주06) 그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중국어가 본질적으로 SVO형 언어에 속하기는 하지만 수식 성분이 중첩되어 목적어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그것이 구문내에서 강조되는 핵심어로 제시되는 등의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 世必授"와 "天道自承"의 경우처럼 동사 앞에 선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주07) 마선비문에서 "天道"를 목적어로서 동사 앞에 선행시킨 것은, 앞의 " 世必授"와 마찬가지로, "왕권신수"의 논리에 따라 이 비문의 도입부에서 고구려 왕권의 신성성/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처치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 世必授" 역시 문법적으로 "天道自承"과 함께 「목적어+부사+동사」구조를 공유하며 의미/맥락상으로도 서로 대구를 이루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이나 한국의 비문은 통상적으로 4자구뿐 아니라 6자구·7자구 등 다양한 자수로 이루어진 대구들을 활용한 변려체(騈儷體)의 체재를 따랐다. 조우연은 壹01∼13을 "聖太王之世, 必授, 天道自承, 元王"으로 끊으면 "문장이 어색해 의미해석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전제하면서 고문에서 "4자씩 끊어 쓰는 방식이 아주 기본적인 문장구성임"을 들어 이 부분을 "聖太王之世, 必授天道, 自承元王" 식으로 끊어야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주08) 물론 중국 고문에서 4자씩 끊는 사례를 흔히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단구에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4자씩 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비문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변려문의 내재율 즉 대구법을 염두에 두는 일이다.(주09) 특히 변려문이 널리 성행했던 위진남북조시대의 문헌이나 시문에서 대구의 기능은 상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점은 마선비문 218자를 통틀어 4자씩으로 규칙적이고 균일하게 끊어지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고문에서 4자씩 끊어지는 경우가 더러 보인다고 해서 그같은 경향을 무조건 마선비문의 판독/단구에 기계적으로 적용시키고 답을 구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접근법이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의 "元王"은 '元祖'나 '始元'의 '元'이 그렇듯이 "첫 번째 임금"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다. "始祖"가 '고씨'라는 특정 씨족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표현이라면 "元王"은 '고구려'라는 특정 왕조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표현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마선비 첫 번째 행의 "元王"은 그 뒤의 "始祖"와 마찬가지로 "鄒牟王"에 대한 수식어이며 사실은 "元王=始祖=鄒牟王"의 등치관계가 성립되는 셈이다. 마선비를 직접 분석한 중국 학자들은 "元王"의 의미나 "元王"과 "鄒牟王"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그들이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에 비하여 여호규(동 제128∼130쪽)는 "원왕"과 "천도"가 동중서(董仲舒)의 "천도론(天道論)"과 "원기론(元氣論)"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원왕"이 "만물의 본원인 원기"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고구려 건국의 심원성(深源性)을 나타내기 위한 조어(造語)" 즉 일종의 고유명사로 해석했다. 또, 조우연(제205∼207쪽)은 "원왕"의 '元'이 중국의 전통적인 시법(諡法)과 관련이 있는 시호로서 "처음으로 건국한 왕"을 뜻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두 학자는 "元王"과 "始祖鄒牟王"이 서로 다른 두 인물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착시'가 아닌가 싶다.(주10)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마선비 壹01∼貳22에서 기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은 추모왕이며, 맥락상 여기서의 "원왕"은 곧 고구려의 첫임금 즉 "추모왕"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만일 "원왕"이 "추모왕"이 아닌 또다른 제3자라면 비문에 최소한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헌사가 들어 있었어야 정상이다. 또, 여호규 조우연 등 일부 학자는 이 부분을 "自承元王"으로 끊고 "承"의 목적어를 "元王"으로 보아 "스스로 원왕을 계승하다"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주11) 그러나 만일 이 부분이 그렇게 해석되려면 '自'가 대상을 제한하는 전치사로 작동되므로 비문에는 당연히 "承自元王" 또는 "自元王承" 식으로 새겨졌어야 옳다. 게다가 앞 구절의 부사 "必"의 작용으로 인하여 "自承元王"의 내용 역시 기정의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원왕을 계승하는 법이다" 식으로 미연의 상황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만 나타내게 되기 때문에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만일 기존의 주장처럼 이 부분을 "自承元王"으로 끊고 "元王"과 "始祖鄒牟王"을 별개의 두 인물로 인식하면 그로 말미암아
①"천도"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인가, ②여기서의 "원왕"은 누구인가, ③"스스로 원왕을 계승하는" 행위주체가 누구인가
등등으로 연쇄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부터 먼저 찾아서 제시해야 정상이다. "원왕"이 "추모왕"과 동일인물이라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명쾌한 근거를 대지 못하는 한, 壹01∼22 부분은 " 世必授, 天道自承. 元王始祖鄒牟王之創基也," 식으로 끊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으므로 "자승원왕" 식으로 끊어 해석해야 한다는 경철화 및 국내 학자들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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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끝까지 읽으신 분들께 한 말씀 드립니다 일반 회원분들께서는 이 내용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으시겠습니다만 혹시라도 이 내용을 쓰시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출처를 분명히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조만간 우리역사연구재단의 채널을 통하여 이 논문 이외에도 고대사 어원학 관련 논문까지 몇 편을 함께 묶어서 단행본으로 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계에 원체 남의 아이디어 아이템을 멋대로 표절하고 도용하는 도둑들이 많아서 만의 하나를 염두에 두고 드리는 말씀이오니 너그러이 해량 및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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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경철화, 「중국 집안 출토 고구려비의 진위 문제」, 동 제102쪽; 조우연,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왕릉 제사와 조상 인식」, 동 제202∼203쪽. 두 학자는 "天道自承"의 단구/의미보다는 '천도'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더 큰 흥미를 보이는 듯한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접근이다. 개인적으로 '천도'는 춘추시대부터 도가의 주된 철학개념이었고 전국시대 이후로 제자백가가 이를 일종의 '공공재'로 공유했다고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철학사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여기서는 지면의 낭비를 피하기 위해 "天道"에 대한 논의의 초점을 주로 마선비문의 어휘·문형·단구·해석 등의 언어적 문제에 맞추었다.
(주02) 『집안고구려비』, 제9쪽·제2쪽. 그러나 마소빈의 마선비 발견 경위에 관해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최근 집안 마선향을 다녀온 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마소빈이 7월 29일 우연히 마선비를 발견해서 포도덩굴 지지대로 사용하려 했다는 『집안고구려비』의 설명과는 달리 과거부터 현지에 전해지던 고구려비 관련 소문을 믿고 처음부터 포크레인을 동원해 마선하 기슭을 파서 이미 6월 하순에 마선비를 발굴해낸 후 지게차로 집으로 운반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어느 정도까지 진실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마선비의 파손상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집안고구려비』(제8쪽)에서는 마선비가 원래는 마선하 서쪽 기슭의 2급 대지에 세워졌다가 강물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대지가 깎여 나가면서 그 비석을 지지해 주던 대지의 토사와 함께 강물로 굴러 떨어졌는데 높이가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떨어진 비석의 우상부가 강바닥의 돌에 부딪치면서 우상부가 파손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광개토대왕비가 4면비인 것과는 달리 마선비는 양면비라는 사실이다. 광개토대왕비처럼 높이가 높고 두께가 충분히 두꺼운 4면비라면 그 정도의 높이에서 굴러 떨어지더라도 비신의 일부만 파손되었다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집안고구려비』 제9쪽의 마선비 정면·측면·배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마선비는 길이나 너비에 비해 두께가 상당히 얇은 편이다. 따라서 『집안고구려비』의 설명처럼 대지에서 굴러 떨어졌다면 비석 자체가 두 동강 나거나 몇 조각으로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 정도의 크기와 두께의 비석이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도 지금처럼 비신의 일부 즉 우상부만 파손되고 온전하려면 누군가가 해당 부위를 의도적으로 훼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주04) 중국 고문에서 '천도'가 '授' 또는 '與' 등의 수여동사와 함께 사용된 경우가 상당히 드물지만 용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노자』 제79장의 "天道无親, 恒與善人"이나 『국어(國語)』「진어(晉語)」의 "天道无親, 唯德是授"가 그러한 사례이다. 얼핏 보기에 두 예문에서 '與'와 '授' 두 동사는 '천도'를 목적어 즉 일종의 증여물이나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예문은 각각 "천도는 누구를 가까이하는 법이란 없나니 언제나 선인과 함께하신다"와 "천도는 누구를 가까이하는 법이란 없나니 오로지 덕을 품은 사람에게만 이를 내리신다"로 번역된다. 즉, '천도'는 여기서도 어디까지나 만물과 우주를 지배하는 신성한 주재자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天道无親, 唯德是授"의 경우 얼핏 보기에는 '授'의 대상물 '是(이것)'가 '天道'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앞에 나오는 "吾何福以及此(나에게 무슨 복이 있어 이 경지에 이르겠는가?)"의 '福(복)'을 가리킨다. 이처럼 고문의 영역에서 '천도'는 그것을 능가하는 절대자가 별도로 상정되지 않는 한 언제나 수여물이 아니라 주재자로 제시되는 것이다. (주05) 조우연은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왕릉 제사와 조상 인식」(제202쪽)에서 이 부분을 "천도를 받았다"로 번역했다. 그러나 고문에서 '받다'에 해당하는 한자는 '受'이지 '授'가 아니다. 비문 작성자가 "천도를 받았다"는 의미를 표현하려 했다면 "受天道"라고 적었어야 한다. 논문에는 "授天道"에 대한 번역이 "천도를 받다"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타자과정의 실수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주06) 경철화, 「중국 집안 출토 고구려비의 진위 문제」, 제102쪽. (주07) 고문에서의 SOV형과 SVO형 어순의 사례에 대해서는 졸고(2009), 「근대중국어의 S'O'(也)似 비교구문 연구」, 『중국문학』(제60집), 제254∼25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중국어에서 SOV형 구문은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吾誰欺? 欺天乎?(내가 누구를 속일까? 하늘을 속이겠는가?)"(『논어(論語)』「자한(子罕)」), "是以謂之文也(이것을 가지고 글월이라고 일컫는 것이다)"(『논어』「공야장(公冶長)」), "民具爾瞻(백성들이 모두가 이를 보았네)"(『시경(詩經)』「소아·절남산(小雅·節南山)」), "客何好?(손님께서는 무엇을 좋아하십니까?)"(『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노자(老子)』제2장 "공을 이루고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더라도 한대의 백서본(帛書本)에는 "成功而弗居"로 되어 있으나 알타이계 북방민족들과의 교섭이 빈번해지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왕필본(王弼本)에는 "功成而弗居"으로 나와 있다. 대호일(戴浩一, 1976)은 북방방언과 남방방언의 비교를 통하여 북경어(北京語)·산서방언(山西方言) 등의 전자에서 SOV형 어순이, 민남어( 南語)·광동어(廣東語) 등의 후자에서는 SVO형 어순이 우세한 것을 밝혀내고 이같은 어순 변화가 북방 남방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굴승희(屈承熹, 1993) 같은 학자는 이같은 어순상의 변환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력(王力, 1980) 등 중국의 주류 언어학자들은 이같은 SOV형 어순의 "특수한 상황"을 어디까지나 중국어 언어체계내의 자체적인 변화·발전의 과정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본질적으로 SVO형 언어인 중국어/고문에 그것과는 이질적인 SOV형 어순이 출현하는 것이 중국과 알타이계 북방민족들 간에 수천년동안 전쟁·교역·이주 등을 매개로 이루어진 인적 교류의 산물, 즉 외부로부터의 영향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주08) 조우연,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왕릉 제사와 조상 인식」, 동 제202∼203쪽. (주09) 일례로 마선비문의 두 번째 행만 보더라도 ①" [之]子"와 "河伯之孫", ②"坤寄通"과 "乾假照", ③"開國"과 " 土"가 문법/의미상으로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④첫번째 행의 " 世必授"와 "天道自承"의 경우 역시 " 世"가 복합명사라고 가정할 때 둘 다 「목적어+부사+동사」의 구조를 공유하고 있어서 어순·구조·의미상으로 서로 완벽한 짝 을 이루고 있다. (주10) 이같은 '착시'는 마선비의 첫 번째 행 壹04∼13 부분은 " 世必授, 天道自承, 元王始祖∼"으로 끊어야 할 것을 중국 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 世, 必授天道, 自承元王, 始祖∼" 식으로 잘못 끊으면서 이미 예상된 후과이다. 그렇게 끊으면 필연적으로 "元王"과 "始祖鄒牟王"을 서로 다른 별개의 두 인물 또는 '창업자-후계자'의 계승관계로 오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조우연은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왕릉 제사와 조상 인식」(제202쪽)에서 壹01∼05 부분을 자의적으로 "聖太王之世"를 추독한 후 이것이 마치 대단한 근거라도 되는 것처럼 이를 근거로 나머지 부분을 "聖太王之世, 必授, 天道自承, 元王"로 끊으면 문장이 어색하고 의미해석도 어려워진다고 엉뚱한 소리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 부분의 문장이 어색해지고 의미 해석이 어려워진 결정적인 원인은 마선비 비문 자체나 필자의 단구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의 문법 구조나 전후 맥락은 간과한 채 壹01∼05에 "太王"을 끼워 넣은 잘못된 추독에서 찾아야 옳다. 마선비에서 壹01∼05 "■■■■世"는 첫 번째 행의 단구는 물론이고 마선비의 성격을 판정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만일 판독자가 충분한 고민도 없이 이를 통째로 복합명사("聖太王之世")로 추독하거나 특정 인물("太王")로 끼워 맞추는 무리수를 두면 그 이하는 자연히 맥락이 왜곡되고 의미까지 해석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반론은 본문에서 항목별로 논급했다. (주11) 여호규, 「집안 고구려비의 구성과 내용」, 동 제136쪽; 조우연,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왕릉 제사와 조상 인식」, 동 제205쪽. 조우연은 해당 부분을 여호규와 같이 해석하면서 "그렇다면 집안고구려비에 주몽에 앞서는 '원왕'이라는 조상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인데, 立碑 당시 고구려인들의 왕실조상인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라는 상상밖의 해괴한 결론으로 빠지고 있는데 이같은 주장도 사실은 첫 번째 행에 대한 단구가 잘못됨에 따라 빚어진 '착시'이다. 조우연은 이와 함께 "自承元王始祖鄒牟王之創基也"까지를 한 구절로 묶고 "원왕인 시조 추모왕께서 나라의 기틀을 연 것을 스스로 이어" 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보았으나 고문에서 그런 식으로 목적어 부분("元王始祖鄒牟王之創基也")을 길게 방치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이 역시 일종의 '착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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