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3. 16:09ㆍ경전 이야기
2. 의지와 노력이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킨다 장휘옥 著/불교시대사/자료입력:김수남 경전에서 설한 사바세계는 바로 우리들 삶의 실상이다. 2500여년 전에 설한 부처님 말씀이 현대에 사는 우리들 삶의 실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회나 환경이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앞에서본 경전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인간의 운명은 과거에 지은 자신의 업(행위)이 좌우하는 것이므로 현재 한 순간 한 순간 행하는 행동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변화해 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석가모니는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 결정된 것도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돌발적으로 결정되거나 신이 있어 신의 뜻대로 좌우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인과의 법칙에 따리 결정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재 나의 모습이나 생활은 모두 과거에 지은 업으로 인해 받게 된 결과라 했다. 이렇게말하면, 전생에 지은 업이 현재의 삶을 결정한다면 결국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현세의 행복이나 불행은 모두 전생의 업의 결과로서, 현세에서의 행위는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일 없이 모두 내세 운명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그것은 '전생에 지은 업' 이라는 말과 '과거에 지은 업'이라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 두고 싶다. 일반적으로'전생'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말하고, '과거'는 현재를 기점으로 지나간 모든 시간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생의 업'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지은 업만을 말하지만, '과거의 업'이란 전생의 업은 물론이고 내가 태어난 후부터 현재를 기점으로 조금 전까지 지은 모든 업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전생의 업'과 '과거의 업'은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업'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업'이라하면 괜히 고리타분하게 생각해서 전생에 지은 업보가 어쩌고 하면서 중언부언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과거에 내가 행한 모든 행위가 다 '업'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행한 모든 행위는 물론 내가 태어난 후부터 조금 전까지 행한 모든 행위들, 즉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생각한 선악의 모든 행위들(이것을 身·口·意 三業이라 한다)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몸 속에 사진의 필름처럼 남아 일종의 잠재세력을 형성하여 우리에게 걸 맞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것을 업이라 한다. 업은 우리들의 지능·성격·습과·체질 등을 형성하여 개개인의 현재 삶(상태)을 결정하고 또한 새로운 선악행위를 추가함에 따라 끊임없이 선이나 악으로 변해 간다. 예를들면 길을 지나가다 장난으로 상점의 물건을 슬쩍 훔쳤다고 했을 때 비록 장난이라 하더라도 훔친 행위(업)는 하나의 악의 종자로써 우리의 제8 아라야식(심리학 용어로는 무의식이라고도 함) 속에 보관된다. 아라야식 속에 저장된 악의 종자는 언제나 의식화될 수 있는 인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훔칠 기회만 주어지면 곧바로 행동으로 나타나 또다시 훔치며, 이로써 아라야식 속에는 악의 종자가 두 개로 늘어나고, 다시 네 개, 여덟개로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드디어는 생각지도 못한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린다. 이와 같이 비록 처음에는 장난으로 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악한 행동(악업)을 초래하므로 한 순간 한 순간의 행동을 결코 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석가모니는전생의 업이 현세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현세에서 우리들이 행한 선악행위나 노력 여하에 따라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자식의 운명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현실에서의 의지나 노력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때문에 수행으로 현세에서 고통을 해결하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수행의 노력도 무의미하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스스로 업론자(行業論者)임을 설하고, 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숙명론이나 인간의 길흉화복은 신(神)의 뜻이라는 신의론(神意論)에 대해, 각자의 행위의 자발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숫타니파타≫에 "인간은 출생에 따라 천민이 되는 것도 아니며, 출생에 의해 사제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따라 천민도 되고 사제자(司祭者)도 된다."고 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행위의 질적(質的) 의의를 문제시하고, 행위의 내적 동기를 중요시하였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튼 현재 나의 모습이나 생활의 모두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라면 미래의 삶을 위해 우리는 이 업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업장소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업장이란 과거의 나쁜 행위에 의해 형성된 습관이나 성격·체질 등이 현재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과거로부터 형성되어 온 좋지 않은 습관이나 체질·성격 등을 잘 파악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요인들이 현재의 삶을 지배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나쁜 행위들을 추가함으로써 현재보다 더 좋지 않은 미래의 삶을 가져 오게 된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업장소멸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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