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廻光返照)/현범스님 外

2018. 12. 12. 16:51잡주머니



<회광반조(廻光返照) ☆ㅡ 불교 공부 ▒▒ | 2005.11.28. 14:47

회광반조(廻光返照)/현범스님



   회광반조(廻光返照)선림용어(禪林用語). 혹은 회광반조(廻光照)이다. 홀연 고개를 돌려 바로 자기 마음 속에 자리한 신령스러운 성품[靈性]을 보는 걸 가리킨다. 이건 언어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내면세계를 회고반성(回顧反省)하는 까닭에,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뜻과 같다.


<임제록(臨濟錄, 大 四七․五○二 上)>에서 말한다.
"너는 언하(言下)에 문득 스스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할 일이지, 다시 딴 데서 구하지 말라. 이 신심(身心)은 불조(佛祖)의 신심(身心)과 한치도 틀리지 않으니 그런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卷三十)> 석두 초암가(石頭草庵歌, 大五一․四六一下)에서 말한다.
"이 암자에 머물며, 알음알이를 쉬는데, 누가 감히 시장거리 자리를 펴서 사람을 매도하려고 하겠느냐?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바로 돌아가라. 신령스러운 근기[靈根]를 확철대오 하는 건 밖을 향해 좇아서 될 일이 아니니라."


또 회광반조(回光返照)는 해가 떨어질 무렵 석양이 반사되는 모습을 말하는데, 여기서 뜻이 변하여, 사람이 중병에 걸려 임종 직전에 왔을 때에, 홀연 여력의 생명력이 발휘하여 정신이 한 순간 왕성해진 상태를 말한다.



다음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별이 없이 화두 참선자로서, 회광반조하는 일에 대한 만공(滿空) 스님의 발심 법문이다.



• 장맛이 짠 줄 아는 사람은 다 공부를 할 수가 있다.
•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문제보다는, 이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결정적인 신심(信心)부터 세워야 한다.
• 선방만 선방이 아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바로 선방이다. 이런 선방에 상주하는 것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오고 가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는 때에도 조그마한 틈이 없이 정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변소에 앉아 있는 동안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없다. 이때만이라도 일념 화두를 든다면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
• 공부가 잘 안 되는 것은 전생(前生)의 빚을 지닌 탓이다. 그 빚을 갚아야 공부를 잘 할 수가 있다.
• 세상에는, 나를 알아보느니, 나를 찾아보느니, 하는 말과 문구는 있으나, 업식(業識)으로 아는 나를 생각할 뿐이요, 정말 나는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아리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타내어 육신이 하는 행동을 짓는 것이다.
• 공부인(工夫人)이 ‘공부를 아니하는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공부를 아니하기’가 공부를 하기 보다 어렵다.
• 공부 과정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계무상사(契無生死), 체무생사(體無生死), 용무생사(用無生死) 네 단계가 있다.
• 백년 연구한 것은 일분간 무념처(無念處)에서 얻은 공부만 못하다.
• 신심(信心)․분심(忿心)․의심(疑心) 이 세 마음을 합해야 공부를 성취한다.
• 도반의 감화력은 선생의 가르침보다 강하다.
• 세상의 학문은 당시 그 몸의 망상에서 일시의 이용으로 끝나고 말지만, 참선학(參禪學)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몸으로, 어느 생활을 하든지 구애됨이 없이 활용되는 학문이다.
• 참선을 한다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데 미련이 남아 있거나, 인간으로서의 자랑거리인 학문이나, 기이한 재주 등 무엇이라도 남아있다면 참선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니, 아주 백지로 돌아가야 한다.
• 예전에는 선지식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돈망(頓忘) 생사(生死) 하는 이도 있고, 늦어야 3일, 7일에 견성(見性)한 이도 많다는데, 지금 사람들은 근기도 박약하지만 참선을 부업(副業)으로 해 가기 때문에 20년, 30년 공부한 사람이 불법의 대의(大義)를 모르는 이가 거의 전부이다.
•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가 생기고, 한 생각이 멸할 때 일체가 멸한다.
내 한 생각의 기멸(起滅)이 곧 우주의 건괴(建壞)요 인생의 생사(生死)이다.


....................

臨濟錄(임제록) / 회광반조 | 고금명문선 2003.02.22

*해설
중국선종 중 절정의 인물이 임제의현스님이다. 선종의 사상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 살불살조,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는 말까지 한 인물이다. 부처에 연연하고 조사에 연연해서는 진정한 도를 통할 수 없다는,선으로서 갈 데까지 간 인물이다. 한국불교게에도 큰 영향을 미쳐 고려 후기 이래 이 계열이 주류가 되었다 해서 일제시대 한용운 등 민족불교계에서 일본의 조동종과 합작하는 교계 일각의 친일적 움직임에 반대운동을 펼 때 임제종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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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하되 如何是西來意오 師云하되 若有意면 自救不了니라
문하되 여하시서래의오 사운하되 약유의면 자구불료니라
묻되,달마께서 인도에서부터 중국에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스님께서 이르셨다.만일 뜻이 있다면 자신조차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云하되 旣無意면 云何二祖得法이닛고
운하되 기무의면 운하이조득법이닛고
또 묻되 이미 뜻이 없었다면 두 조사께서는 어떻게 법을 얻엇다고 하겠읍니까?

問하되 如何是西來意오 師云하되 若有意면 自救不了니라
문하되 여하시서래의오 사운하되 약유의면 자구불료니라
묻되,달마께서 인도에서부터 중국에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스님께서 이르셨다.만일 뜻이 있다면 자신조차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云하되 旣無意면 云何二祖得法이닛고
운하되 기무의면 운하이조득법이닛고
또 묻되 이미 뜻이 없었다면 두 조사께서는 어떻게 법을 얻엇다고 하겠읍니까?

師云하되 得者是不得이니라
사운하되 득자시부득이니라
스님께서 이르시되 얻었다는 것은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云하되 旣若不得이면 云何是不得底意오
운하되 기약부득이면 운하시부득저의오
또 묻되 그렇다면 얻지 못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師云하되 爲你向一切處馳求心不能歇이라
사운하되 위니향일체처치구심불능헐이라
스님께서 대답하셨다.그대들이 모든 것에서 황급히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므로

所以祖師言하되 돌哉丈夫 將頭覓頭니라 니言下便自回光返照하라
소이조사언하되 돌재장부 장두멱두니라 니언하편자회광반조하라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장부가 되어가지고도 머리가 있는데 어리석게도 또 머리를 찾는구나 하신 것이다.그대들은 이 말이 떨어지는 즉시 바로 참된 깨달음의 빛을 돌이켜 스스로의 자성을 밝게 비추어 보라.


更不別求하고 知身心如祖佛不別하야 當下無事면 方名得法이니라
갱부별구하고 지신심여조불부별하야 당하무사면 방명득법이니라
따로 구하지 아니하여 자기의 심성이 조불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꾸밈이 없는 것을 법을 가리켜 얻었다고할 것이다.

示衆
시중

*음미
임제스님의 호방한 사상이 토로된 가운데 본성 그대로 부처임을 설유한 말씀이다.



                                                     회광반조(廻光返照)

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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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사 소개

회광반조 回光返照/임제의현스님의 임제록 중에서~

프로파일
봉화산사 치유명상 2018. 1. 19. 7:30

너는
말이 떨어지면 곧
스스로 회광반조할 것이며,
다시 다른 데서 구하지 말 것이니, 이러한 신심(身心)은
불조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
제가
발심하여
출가하게 된 큰 계기가
되게 해 주신
임제스님 의 말씀입니다.
깨달음의 길=
행복의 길!!

봉화산사 연못의 석양
回:돌아올 회
光:빛 광
返:돌이킬 반
照:비칠 조

선 종 :
자신의 내면 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

본래는 ..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 현상을 의미합니다 만,

회광반조 조고각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숙고'하여
자유롭고
활발발한 삶을 살아가기.

' 한 생각 돌이켜 비춰본다면
그대로가 성인(聖人)의 마음이다 '
( 一 念 返 照   全 體 聖 心 )
.
조사선(祖師禪)을 확립한
마조(馬祖道一/ 709~788)스님은
조사의 언행 끝에서
회광반조하여
진리를 깨달아라~~~~
라듯이
조사스님들의 간곡한 
수행지침이기도 합니다.

먼저
내 스스로를 잘 알아서
나의 주인된 삶을 사는
자유로운 행복~~♡

스스로를 잘 알고,
진리에 대해 완전히 알아
자유롭고 행복하신 분-
석가모니 부처님 이시죠^^/

스스로를 잘 알려면,

회 광 반 조..!!

사실
말로써
완전히 표현이 안되네요.^^;;
.
.
'회광반조'하여
자유롭고 활발발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
.
.


시작을
'명상'
으로 할 수 있습니다.

추천 서적 : 
불일출판사의 '관,
(명상을 통해 얻어지는 자유)
글 / 수자타 님
옮김 / 하숙희 님


지금
이 시각부터
평화로운 내 마음 바라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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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행복찾기 명상센타 봉화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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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



[回光返照 ]


요약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라는 뜻으로,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마음 속의 영성(靈性)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回:돌아올 회

光:빛 광

返:돌이킬 반

照:비칠 조


   '回'는 '廻'라고도 쓴다. 본래는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 현상을 의미한다. 이것이 죽음 직전에 이른 사람이 잠시 동안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또 사물이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촛불이 사그러지기 전에 한 차례 크게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 한 예이다.


   선종에서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의현(義玄) 선사의 법어(法語)를 수록한 《임제록(臨濟錄)》에 "너는 말이 떨어지면 곧 스스로 회광반조할 것이며, 다시 다른 데서 구하지 말 것이니, 이러한 신심(身心)은 불조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 知身心與祖佛不別)"라고 한 말이 한 예이다. 


  ㅡ 다음 Tip 자료 답변 중에서 ......


2017.10.10






자타불이(自他不二) 지혜는 어디 있는가? [2]

적연묘각

주소복사 조회 301 15.04.26 09:45 신고신고

제 한생각 제 앎(알음알이상)을 옳다고 고집 주장하기 보다
자신이 바로 보고 바로 아는지
바로 알아 그릇됨없이 하는지 한생각 돌이켜
회광반조/조고각하(廻光返照/照顧脚下)할 일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심사숙고
삼사일언/삼사일행(三思一言 三思一行) 할 일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크게 도와 쓰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지혜라

 

다 보고 다 아지 못한
섣부른 알음알이상을 옳다 고집 자승자박하면
필시 본의 아니게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누가 될 것이
매사 자신을 바로하는데 뜻을 둘 일이다
회광반조/조고각하(廻光返照/照顧脚下) 할 일이다.

 


자타불이(自他不二) 지혜는 어디 있는가? - Daum 아고라

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    







회광반조[回光返照]
박천호  |  najunews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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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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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지기 직전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 / 빛을 돌이켜 스스로에게 비춘다는 말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하여 자신에게 내재된 영적인 품성을 깨닫게 된다는 말.

<임제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보라. 다른데서 구하지 말지니 그대 몸과 마음이 조불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한다. / 이언하편자회광반조[爾言下便自回光返照],갱불별구[更不別求],지신심여조불불별[知身心與祖佛不別].

ㅇ동양의 선(禪)사상에서 문자와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를 회고반조(回顧返照)하여 바로 심성(心性)을 조견(照見)하는 것이다.

ㅇ서양고대 아테네철학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고 말하듯 자각(自覺)의 실천에서 출발하는 것이 회광반조인 것이다.

이 말은 예부터 여러 의미로 쓰인바 있다.
해가 떨어질 무렵 석양이 반사되는 광경을 말하는데, 비유하여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욕심에 끌려 세상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다가 생을 마감할 때가되면 마음이 선량해 지면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지나온 자기 일생을 돌아보며 반성한다는 의미로 쓰이며, 또 ‘무협지’에서는 촛불이 다 타서 꺼지기 직전의 마지막 상황에 견주어 ‘마지막 발악, 화려한 황혼’~같은 분위기를 묘사하는데도 쓰인다.

그러나 보편적인 선문용어로는 상대관계로부터 차별심, 분별심, 망상심 ,집착심, 증애심, 번뇌심 같은 바깥 경계와 외물(外物)의 조건에 허둥지둥 끌려 다니지 말고 스스로 돌이켜 자신의 내면세계를 깊숙이 비추어 내보이는 자기성찰을 적시하고 있다.

그런 반조(返照)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마음속에서 위대한 우주의 살아있는 진리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참된 자각으로부터 체득할 수가 있기에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직지인심(直指人心)=>조고각하[照顧脚下]=>회광반조(回光返照)에서 언제나 찾으라는 것이다. <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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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回光返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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