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호랑이

2013. 5. 14. 23:40나의 이야기

 

ㅡ  역사문화연구원 자료 ㅡ

 

 

 



   작성자
 한 눌 (2010-01-12 13:40:52, 추천 : 74, 조회 : 1195
   제  목
 호랑이(虎狼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뜻은 아득한 옛날이라는 말입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이 때까지 피웠으면, 페암으로 고생했을 테니 말입니다.

정윤훈 선생님이 풀이해 주셨 듯, '호(虎)는 범' '랑(狼)은 '이리'를 뜻합니다. 동물을 두루 포함하여 지칭할 때 '호'와 '랑'을 합쳐 '호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호랑'이 굳어져 쓰이면서 '호랑'자체가 '범'을 뜻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하겠습니다. ‘호랑이'는 한자 '虎狼'에 접미사 '-而'가 붙은 것으로 봅니다.

각종 자료를 종합, 재구성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단순 참고자료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1.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만 년 전.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기 한참 전이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한 부류인 동북아 호랑이가 서식했으며, 호랑이 종류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러시아의 동북면, 만주, 백두산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한 부류인 동북아 호랑이이며,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이다. 호랑이 종류 중 몸길이가 최장 3.8m에 달하는 가장 크고 웅장한 시베리아 호랑이는 러시아의 동북면, 만주, 백두산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일본어 `Tora(호랑이)`의 어원은 계림유사의 `포남절(蒲南切)`이다
호랑이 [ tiger , 虎狼-이 ]

'범'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산신령(山神靈)·산군(山君)으로, 백두산 인근에서는 '노야(老爺)'·'대부(大父)'로 호칭하였다. 12세기 문헌에 '호왈감(虎曰監)'이라 하였는데 '감'은 호랑이의 고어이다. 호랑이의 화석은 북극해의 노보시비르스크제도와 중국등지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호랑이의 한국고어 표기

계림유사- 虎曰監, 蒲南切=[AD 12C 초]
호랑(虎狼 )-월인석보21-171=[AD.1458년 간행
호랑(虎狼) -초 두시언해 6-23=[AD.1481년 간행]
범 (虎 )- 훈민정음 언해 용자=[AD.1458년 간행]
범 (虎 )-월인석보99-24=[AD.1458년 간행]

AD 12C 초의 문헌 송나라 손목의 계림유사는 호랑이를 고려 사람들이'虎曰監, 蒲南切'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의 표기를 현대 북경어로 표기하면 발음이 맞지 않는다.  위의 기술은 두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虎曰監'이고 또 하나는 '蒲南切'이다 즉 호랑이를 고려사람들은 '감'이라고도 했고 '포남절'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위 두가지 분석중 우선 '호왈감'의 '감'을 살펴 보면 현대 한국어 한자 발음으로 추정해도 '虎曰監[호랑이는 “감“이라 한다]에서 어느 지방에도 호랑이를 '감'이라 부르는 곳을 찾지 못했다.

다만 토템신앙의 언어로 신을 ”감. 금, 검” 전통적으로 외경시하며 불렀고 “두꺼비, 구렁이, 호랑이, 곰, 거북이”등을 신성시하여 "금 감"이라 하고 집근처나 논밭에서 보면 집을 지켜주는 '집금'이라하고 농사를 기원해주는 신이라 하여 잡지않고 지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피해주는 전승이 있다. 이는 일본어에도 그대로 아래와 같이 그 어원적 흔적이 남아있다.

곰은 일본어로 -      한국어 감으로부터 감<금-->kuma(熊)
두꺼비는 일본어로- 한국어 감으로부터 감-->gama(蝦)
거북은 일본어로-    한국어 감으로부터 감-->game(龜)
귀신을 일본어로 -   한국어 감으로부터 감--->kami(神)

위와 같이 곰을 토템으로 하고 이를 신격화한 고아시아족의 토템적 전통이 그대로 언어화하여 일본으로 전달되었을 알 수 있고 계림유사의 예와같이 토테미즘의 어원에서 호랑이가 같은 형식으로 '감'이라고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로 계림유사의 기술인 [虎曰蒲南切=호랑이를 “포남절”이라한다]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는 '포남(虎)+절(虎)'이라는 형식의 이음동의어 합성으로 볼 수 있고 포남-->보람-->호람-->호랑-->호랑이의 음운변이로 추정한다.

그 후 한학자들이 포남의 음운전성형인 '호랑'을 한자어 비슷한 발음으로  '호(虎)+이리 랑(狼)'의 취음으로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림유사상의 '포남'은 현재 우리말로 호랑이를 뜻하는 '범'의 고어형이며 이 고어형인 '포남'은 알타이 제어들에서 호랑이를 지칭하는 말과 비교해보면 그어원 추적이 일목요연해진다.

즉 순 우리말로 '범(bum)'의 고어형인 '포남'은 알타이 제어 중 '몽고어[bars=虎]', '에벤키[bari=虎]'와 '한국어[포람->볼암->�->봄->범]']의 어원변이로 동어원으로 본다.

다음으로 계림유사상의 이음 동의어 '포남+절'에서 '절'은 우리 고대어에서 호랑이를 부르던 또 다른 말인 '절=덜'의 취음이며 이의 어원적 근거로는 아래와 같은 기술이 전승된다.

절(虎)-->덜-->돌-->도리(虎)+바리(虎=에벵키어 bari와 어근 자체가 같다 특히 함경도지방은 고아시아족이 거주하던 지역이라 그 흔적이 강하게 남겨져 있다.)-->도리바리(虎+虎)- 함남 풍산 방언
절[虎]-->덜-->돌-->도루(虎)+바이(虎)-->두루바이(虎+虎)- 평북 강계 자성 방언
절[虎]-->덜-->돌-->도루(虎)+바리(虎)-->도루바리(虎+虎)- 함남 혜산 방언
절(虎)-->덜-->돌-->도라(虎)+치(魚)-->도라치= 농어목의 호랑이 무늬를 한 고기
절(虎)-->덜-->돌-->산돌이
절(虎)-->덜-->돌-->호돌이

위와 같이 범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인 우리말 고어 '절=덜'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면 자연스레 개음절화가 일어 나면서 아래와 같이 tora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절(虎)-->덜-->돌-->도라-->tora(虎) = 일본어

한국어 방언과 일본어의 기원이 되는 호랑이의 또 다른 어근 '절=덜'은 역시 알타이 제어 중 하나인 오르�어에서 '절(虎)-->덜-->돌-->도'의 말음 탈락형 'to(虎)'가 쓰이고 있다.

오르�어로 호랑이는 'ta(虎)+sa(虎)+ka(虎)->tasak(虎)'로 이음동의어 3개가 합성하여 호랑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역시 만주어'tha(虎)+sha(虎)->thasha(虎) '와 동 어원으로 본다. 그리고 이들 호랑이를 나타내는 이음동의어 합성어 중에서 sa와 sha의 음은 호랑이와 비슷한 삵이나 스라소니의 어원이 된다.

계림유사의 '虎曰 蒲南切'은 900년 전에 개성인근의 고려인들이 '포남절-->호랑(虎)+돌(虎)'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말로 호랑이를 계림유사상의 '감'이나 '포남잘'외에 '갈범'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승된다.

-출처: http://blog.daum.net/fran12159/75?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fran12159%2F75


3.
왕조실록에서 일부 기록을 취했다.

1392년(태조 1)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흥국리 사람이 쏴 죽이다

1402년(태종 2) 충청·경상·전라도 경차관(敬差官)인 대호군(大護軍) 김계지(金繼志)가 복명하여 아뢰기를, “경상도에 호랑이가 많아, 지난해 겨울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이 기백 명입니다.

1405년(태종 5) 강화 부사(江華府使) 이정간(李貞幹)에게 나(羅)·견(絹) 각 1필씩을 내려 주었다. 큰 호랑이가 매도(煤島) 목장(牧場)에 들어가서 국마(國馬)를 상하게 하였는데, 정간(貞幹)이 사람을 다치지 아니하고 능히 잡았기 때문이다

1456년(세조 2) 임금이 삭녕(朔寧) 추두모(楸豆毛)에 이르러 사냥을 구경하였는데, 슴·노루 1백 26마리와 호랑이 세 마리를 잡았다.

1461년(세조 7) “강원도 회양(淮陽)에 사나운 호랑이가 사람을 많이 상하게 하므로 너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잡게 하니....”

1767년(영조 43) 임금이 또 호랑이를 잡은 사람을 불러들여 하교하기를, “도성 가까운 곳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폐단이 있음을 듣고 매우 놀랐다. 한 당보수(塘報手)가 총을 쏘아 잡아 바쳤으니, 매우 가상하다. 해당 영으로 하여금 참작하여 시상케 하라.”

1781년(정조 5) 서쪽 성밖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는 것으로 한성부에서 아뢰니, 하교하기를, “수십 년 동안 도성(都城) 안팎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곳곳에 늘 있어 왔다.

1824년(순조 24) 함경 감사가 아뢰기를, “안변 장교(安邊將校) 김광재(金光才)의 집에 사나운 호랑이가 밤에 집안으로 들어와 김광재를 물고 나가자, 그 아내 조성(趙姓)이 나이 60이 지났는데도 그 남편의 몸을 붙잡고 문밖으로 나가 연달아 대신 물고 가라고 외치면서 호랑이 주둥이에 몸을 던졌는데, 호랑이가 남편을 버리고 아내를 물고 갔습니다.”하니...







신완순 (2010-01-13 13:21:48)  
블로그에서 따온 위의 내용 중 <계림유사>의 범에 대한 고찰은
음운법을 모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계림유사>에서 虎曰監 蒲南切이라 하여 호(虎)를 감(監 )이라 하는데
감이라 읽지 않고 포남절(蒲南切) 즉 포의 'ㅍ'과 남의 '암'을 취하여
'팜'이라 읽어야 된다고 한 음운법을 '포남절'이라는 말을 단어로 생각하여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근거한 포남절의 음운변화의 추이를 고찰한 것은
대단한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蒲)의 음은 <강희자전>에서 당운(唐韻)을 인용하여 박호절(薄胡切)이라 하여
그 음이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남절(蒲南切)은 보남절((蒲南切)이며 보의 'ㅂ'과 남의 '암'을
취하면 '밤'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림유사>에서 虎曰監 蒲南切이라 한 것은
신라와 고려에서는 호랑이를 '밤'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밤'은 현재의 '범'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한 <계림유사>에서는
밤(栗)을 栗曰監(률왈감) 銷檻切(소함절)이라 하였습니다.

출처 : 백담 그 시절...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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