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의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

2019. 3. 10. 20:19美學 이야기



조선 초기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의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 그림과 글씨의 내용 해독 

2015. 9. 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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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중기에 제작된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서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 ?-1462)작품으로 전하고 있는 견본채색화입니다.

크기는 40.5×34cm이며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당초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3-1953)에 의해 장첩된근역화휘(槿域畵彙) 에 들어 있는 그림입니다.

 

   제화글의 내용을 읽어보면 이 작품은 세종 16(1434)에 유자미(柳自湄)가 집현전(集賢殿)  나가 수직하던 때, 동료인 진일재(眞逸齋성간(成侃, 1427-1456) 과 경험한 일을 화폭에 담아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화시의 원문과 해석]

 

日余持被玉堂(일여지피옥당),                   어느 날 내가 옥당에서 옷을 입고 지키고 있을 때

厥明有雙埜鶴(궐명유쌍야학),                   다음 날 갑자기 들판에 학이 두 마리 있었는데

翩䙴羽而下(편선우이하),                          날개로 훌쩍 날아올라 아래로 내려와서

戞然長鳴(알연장명),                                  끼룩거리며 긴 소리를 내면서

若有期而掠余衣也(약유기이략여의야).     이에 기다리고 있다가 내 옷을 훔쳐갔다.

友人和仲成學士(우인화중성학사),             친구인 성화중(成和仲 ) 학사가

奇此事(기차사), 勸余以畵之(권여이화지),  이 일이 기이하여 내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하니

余作二絶(여작이절), 以爲山中故事云爾(이위산중고사운이).

                                                                    내가 시() 두수를 지어 산중고사로 여기며 이같이 말한다 .

瀛洲學士是登仙(영주학사시등선),    영주학사인 이것이 신선에 오르니

何翅九皐聲聞天(하시구고성문천).    어찌 깊은 못에서 날개를 펴는 소리가 하늘에 들릴까?

造物解君香案籍(조물해군향안적),    조물주가 그대를 알아 책상의 문서가 향기로우니

故敎雙鶴舞華筵(고교쌍학무화연).    이 때문에 두 마리 학에게 춤추게 하여 자리를 빛냈네.

萬里高城却爲誰(만리고성각위수),    만 리의 높은 성은 누굴 위해 버렸나?

縞衣丹頂玉堂宜(호의단정옥당의).    흰옷에 붉은 머리는 옥당이 알맞네.

作畵從容成雙絶(작화종용성쌍절),    모습 따라 그림 그려 한 쌍을 이루어 끝내니

七分筆下七分詩(칠분필하칠분시).    칠분쯤 글이고 칠분쯤 시가 되었네.

 

甲寅 重陽前日 西山 柳自湄                갑인년 중양절 전날 서산 유자미

 

* 持被(지피) : 守直(수직). 건물이나 물건 등을 지킴.

* 玉堂(옥당) : 홍문관(弘文館)의 부제학(副提學 ), 교리(校理), 부교리(副校理 ), 수찬, 부수찬을 통틀어

                       일컫는 말  화려(華麗)한 집 또는 궁전(宮殿)을 아름답게 일컫는 말  조선(朝鮮) , 삼사의 하나.

              궁중(宮中 ) 의 경서(經書), 사적, 문서(文書 ), 따위를 관리(管理 ) 하고 임금의 자문(諮問)에 응() 했음

* (들야 ) : 古字

* 戞然(알연) :  금석(金石)이 부딫혀 소리를 나타내는 말 ; 또는 그 모양. 학의 울음소리의 형용

* 學士(학사) :  학자  학사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 .

* 以爲(이위) :  ~으로 여긴다(생각한다).

* 瀛洲學士(영주학사 ) :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뛰어난 무장(武將) 이었다.

         일찍이 아버지 고조(高祖)로부터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무위(武威)을 떨쳤다 .

         그는 학문을 숭상하고 문학적 소양도 중요하게 여겼다.

                제위에 오르기 전 잠저(潛邸)인 진왕부(秦王府 / 天策府) 에 문학관(文學館) 을 설치하고,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 ·공영달 (孔潁達)     ·우세남 (虞世南등 문재가 출중한 동량들을 골라 학사(學士) 로 임명했다.

                틈나는 대로 이들에게 정사(政事)를 자문하고, 고금의 전적(典籍)을 강론하는 등 문풍을 장려했다.

                문학관은 나중에 한림원(翰林院)으로 승격시켰는데, 당시 문학관에 망라된 학사는 18 . 이들을

                十八學士라 불렀다. 사람들은 이들을 선망하여 '영주에 올랐다 '(登瀛州) 고 했다.

               이로부터 영주학사(瀛洲學士영주십팔인(瀛洲十八人) 이라는 말이 생겼다.

               영주(瀛洲 ) 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 瀛洲山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가운데 하나인

                瀛洲山 을 일컫는 말이다. 문학관에 든 것을 영주산에 오른 것에 비겨 '登瀛州'라 한다.

* 九皐(구고) : 으슥한 깊은 못. 구불구불하고 깊은 못이나 늪

* 造物(조물) : 조물 만물을 창조하는 신력

* 案籍(안적) : 기록(記錄), 대장(臺帳), 호적(戶籍) 따위

 

 

유자미(柳自湄, ?-1462)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원지(元之), 호는 서산(西山). 만수(曼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지(原之)이고, 아버지는 현감 함()이며 어머니는 최렴(崔濂)의 딸이다. 1451(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감찰(監察)을 지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선수(禪受)하자 공문(空 門)으로 들어가 처음에는  수양(首陽)의 신광사(神光寺)에 있다가 만년에는 서산(西山)으로 옮겼으며, 상왕에 대한 절의를 지켜 일생을 은거하였다.

 

   1456년 단종 복위사건 등으로 성삼문(成三問), 류성원(柳誠源) 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단종이 폐위되자 구주(舊主)를 차마 저버릴 수 없다 생각하고 마침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해주 수양산 신광사(神光寺)로 자취를 감추어 지냈고, 성삼문(成三問) 이 죽음을 당할 때 성삼문(成三問)의 어린 손녀(孫女)11) 를 몰래 데려다가 키워 그 손녀(孫女)막내아들인 류 집(柳 輯)12) 의 처()가 되었고 말년에 양주(楊州) 서산(西山) 으로 이거하여 지냈다가 죽기 전에 묘비에 나의 본직만 쓸 뿐 너희들로 인한 추은(推恩) 의 증직(贈職)쓰지 말라하고 유언(遺言)을 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다.

유작으로는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 (간송미술관 소장) 한 점이 전하고 있다.

  1493 (성종 24) 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원체화풍(院體畫風)에 토대를 둔 조선 초기 화조화의 특성을 보이면서, 변각적인 구도와 차륜엽법(車輪葉法)의 소나무 묘사 등에서 남송대(南宋代) 마하파(馬夏派)의 화풍 반영하고 있다.

양산(梁山)의 구산사(龜山祠)에 제향되었다.

 


성간(成侃, 1427(세종 9) ~ 1456(세조 2))

 

   조선 초기의 시인이자 문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화중(和仲), 호는 진일재(眞逸齋). 지중추부사 염조(念祖)의 아들. ()의 동생, ()의 형. 유방선(柳方善)의 문인이다.

   1441(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53(단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후, 전농직장(典農直長수찬(修撰)을 거쳐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학문에 큰 뜻을 두고 경사(經史)와 백가서(百家書)의 연구에 몰두하다가 지나치게 노심(勞心)되어 조서(早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벌써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시문인 궁사(宮詞) ·백설부(白雪賦) 등도 좋은 작품이나 농민의 고달픈 인생을 노래한 사실적인 시인원시(怨詩) (五言古詩 ) 등이 주목된다. 산문에는 가전체(假傳體) 작품으로 패관문학에 속하는 용부전(慵夫傳) 이 있다. 의인화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가전체 작품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을러빠진 용부(慵夫) 가 근수자(勤須子)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황연히 깨달아 묵은 게으름을 떨쳐 버리고 부지런한 새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의 문집 진일재유고(眞逸齋遺稿)가 있으나 현재 희귀본이 되었고, 동문선(東文選)시문 약간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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