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시주도(侍酒圖)

2019. 3. 10. 21:20美學 이야기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시주도(侍酒圖) 그림과 글씨의 내용 해독 

 

2015. 9. 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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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비단수묵화로서 1598년경 이경윤(李慶胤, 1545?)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름 높았던 문인 사대부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15391612) 1598년에 쓴 발문(跋文)이 그림에 있어서 연대와 작가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이경윤의 여러 전칭작품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모두 24폭으로 되어 있는 이 화첩(畵帖)에는 선비의 여러 일상생활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그 중시주도는 한 선비가 ()이라고 부르는 도자기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있고 시종이 그 곁에서 술항아리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활달한 필치에 끝이 구부러져 못 끝처럼 보이는 정두법(丁頭法) 이라고 하는 필법을 사용한 특징이 있는데 의습선의 필치는 굵고 가는 선폭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 당나라 화가 오도자 계열의 전통을 바탕으로 전개된 남송 때 화가 마원(馬遠)궐두묘(獗頭描) 를 받아들여 이를 보다 세련되게 사용하였고, 앉아있는 선비의 오른쪽 하체 부분에 보이는 먹선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져 있어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높은 격조를 보이는 작품입니다.

 

   발문을 보면 이 그림을 포함한 9점의 그림들이 흩어져 있다가 성천부사를 지낸 홍준(洪遵)의해 수집되었다는 사실과 그려진 인물들이 비범하고 속기가 없어 보여 작가인 이경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 인물들 속에 혹시 자기도 모르게 표현된 작가 자신의 모습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제화글의 원문과 해석]

我國名畫, 多出宗英,

우리나라에서 이름있는 그림은 모두 종실(宗室)에서 나왔는데

 

目今如石陽正梅竹鶴林守季水石, 亦殊絶者也,

현재 석양정의 매화와 대나무 그림과 형제인 학림수의 산수와 돌 그림과 같은 것이 또한 비할 바 없이 뛰어난 작품이다.

 

洪斯文自北來, 多得鶴林散畫於流落中, 持以示余, 索題詠 ,

홍사문이 북쪽에서 올 때 흩어진 떠돌던 학림수의 그림을 많이 입수하여 소장하면서 내게 보여 주었는데 제시(題詩)를 지은 것을 찾았고,


觀其寫人物尤逼眞, 要皆非凡俗風骨也,

그 그림을 관찰하니 인물이 매우 사실적이었는데, 요약하면 모두 세속적이지 않고 웅건하며 힘 있는 품격이었다.

 

余不會見鶴林公, 或者此中有不覺自肖其狀者耶.

나는 학림공을 만나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이 그림 중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그 모습과 닮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萬曆戊戌冬, 崔岦之識.

만력 무술년(1598, 선조 31) 겨울 최립(崔岦)이 적는다.

 

* 宗英(종영) : 임금의 친척. 종실(宗室)

* 目今(목금) : 지금 현재

* 石陽正(석양정 ) : 조선시대 때 비교적 가까운 왕손에게 준 작호로 정3 堂下에 해당함 .

                              이글에서는 이정(李霆 , 1554~1626) 을 지칭함.

* 鶴林守(학림수) : 조선시대 때 비교적 가까운 왕손에게 준 작호로 정4堂下에 해당함 .

                              이 글에서는 이영윤(李英胤, 15611611)을 지칭함 .

* 殊絶(수절) : 특이하다  비길 데 없이 뛰어나다  아주 다르다

* 斯文(사문) : 문화 문인 우아하다.

                       이 글에서 홍사문이란 홍준(洪 遵 , 1557~1615) 을 가리킨다고 여겨짐.

* 流落(유락 ) : 유랑하다 영락하여 타향을 떠돌다 떠돌다

* 逼眞(핍진 ) : 핍진하다 마치 진짜와 같다 똑똑하다

* 凡俗(범속 ) : 세속 속간 민간

* 風骨(풍골 ) : 웅건하고 힘 있는 풍격 불굴의 기개 .

* 會見(회견 ) : 회견 접견 만나다 .

* 或者(혹자 ) : 아마 ② …든지 또는

* 不覺 (불각 ) : 깨닫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함




​ 

空中兮爲軒窓(공중혜위헌창 )                  공중에 집 창문이 이루어 졌음이구나 .

詩酒兮安能使之雙(시주혜안능사지쌍 )   시와 술이 어찌 쌍으로 있지 않으리오 .

可見者兮隨以一缸(가견자혜수이일항 )   보이는 것은 항아리 하나로 뒤따름이고

不可見者兮滿腔(불가견자혜만강 )           볼 수 없는 것은 가슴이 가득 찬 것이네 .

 

簡易(간이)                          최립

 

* 安能(안능) : 어찌 할 수 있으리오

* 使之(사지) : ① …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 ② …하도록 하다

* 滿腔(만강) : 만강하다 가슴속에 가득 차다 가득 차다 .

 


최립(崔岦, 1539~ 1612)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입지(立之), 호는 간이(簡易동고(東皐). 아버지는 진사 자양(自陽)이다.

최립은 빈한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굴하지 않고 타고난 재질을 발휘했다.

1555(명종 10) 17세의 나이로 진사가 됐고 1559(명종 14)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여러 외직을 지낸 뒤에 1577(선조 10) 주청사(奏請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81(선조 14)재령군수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에 힘써 임금으로 부터 옷감을 받았다.

그 해에 다시 주청사의 질정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최립은 1584(선조 17)에 호군(護軍)으로 이문정시(吏文庭試)에 장원을 했다.

1592(선조 25)에 공주목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전주부윤을 거쳐 승문원제조를 지냈다.

그 해에 주청사의 질정관이 되었다.

1594(선조 27)에 주청부사(奏請副使 )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에 판결사(判決事) 가 되었고 1606 년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듬해에 강릉부사를 지내고 형조참판에 이르러 사직했다. 그리고 평양에 은거했다.

 

   최립은 당대 일류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아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많이 작성했다.

그리고 중국에 갔을 때에 중국문단에 군림하고 있던 왕세정(王世貞)을 만나 문장을 논했다.

그 곳의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격찬을 받았다.

 

   최립은 초(((()40여 종을 소재로 한 시부(詩賦) 가 유명하다.

역학(易學)에도 심오하여 주역본의구결부설(周易本義口訣附說) 등의 2권의 저서가 있다.

그의 글차천로(車天輅 )의 시 한호(韓濩 )의 글씨송도삼절(松都三絶) 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시보다 글로 이름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에서도 소식(蘇軾)황산곡(黃山谷)을 배워 품격이 호걸스러우며 음색이 굳세어  금석에서 나오는 소리 같다는 평을 들었다.

 

   최립의 문장은 일시를 풍미했다.

당대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왕세정 일파의 문장을 따라 예스럽고 우아하며 간결하고 법도에 맞는 글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의고문체(擬古文體)에 뛰어났기 때문에 평범한 산문을 멀리하고 선진문(先秦文)모방하여 억지로 꾸미려는 경향이 있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송설체(宋雪體)에 일가를 이루었다.

최립의 문집으로는 간이집이 있다. 시학서(詩學書)로는 십가근체시(十家近體詩) 한사열전초(漢史列傳抄) 등이 있다.


[글자]​


: ()    


: ()  

 

: 北來(북래)

    


: ()  



 : 流落(유락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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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使()   



 : 滿()

     

 : ()

  

  : (

   

 : 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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