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4. 16:42ㆍ美學 이야기
다른 세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드레 풋만과 에릭 지자르가 지난 1월 ‘파리 메종 & 오브제’에서 특별전시를 가졌다. 품격을 강조하며 닮은 듯 다른 이들의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프랑스 디자인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그들의 이유 있는 만남
세계적인 리빙 인테리어 페어 ‘파리 메종 & 오브제’는 그 첫해인 1995년부터 해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와 실내 건축가를 선정, 특별 전시공간에서 이들의 크리에이티브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올해 행사에서는 다른 해와 달리 10주년 기념으로 ‘메종 & 오브제 제너레이션Maison & Objet Generation’이란 타이틀로 두 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하여 전시했다. ‘절제하는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며 유럽 상류 인텔리전트층의 기호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알려진 앙드레 풋만Andree Putman과 그녀를 잇는 차세대 주자 에릭 지자르Eric Gizard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앙드레 풋만의 메종 & 오브제 등장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은데, 이미 2000년에 필립 스탁, 2001년에는 제스퍼 모리슨이 선정되어 전시를 가진 바 있다. 반면 에릭 지자르는 지난해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인 데그립고베와 에어 프랑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월간 <디자인> 2004년 4월호 기사)를 진행하면서 인테리어 디자인계의 고급화 경향을 새롭게 주도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서로 다른 세대를 대표하는 이 두 디자이너들의 공통분모라면 ‘한눈에 사로잡으려는 과장과 충격 효과’를 통한 공격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지양하고, 시간과 함께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디자인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미적 균형감과 절제를 통해 가장 정제된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도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모두 디자인 정규 교육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창조적 세계를 구축한 인물들이다. 앙드레 풋만의 경우 음악도의 길을 버리고 여성지 <엘르>의 인테리어 전문기자를 지냈고, 에릭 지라르는 파리의 한 건축사무소의 자료원, 트렌드 리서치 센터의 연구원으로서 이론적인 토대를 쌓은 뒤 본격적으로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했다. 이들의 전통적이고 조금은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공간은 건축 디자인 사에 대한 폭넓은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서로 다른 소재들의 대비, 유동적 라인, 일반인 혹은 비전문가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작업이 오히려 더욱더 섬세한 감각과 오랜 훈련을 요구하는 작업이며, 요즘처럼 순간적이고 강렬한 효과 위주의 인테리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디자인이 지닌 생명력은 디자이너가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인 ‘사람을 현혹시키는 디자인’이 아닌 지극히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하고,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대한 섬세한 접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두 명의 서로 다른 세대의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통해 보는 프랑스 디자인의 힘은 바로 이러한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경계를 넘나드는 감성적인 디자인에 있다.
앙드레 풋만, 프렌치 스타일의 정수
1983년에 지어져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로 유명해진 뉴욕의 ‘모건 호텔’을 시작으로 럭셔리 디자인 호텔(흔히 말하는 부티크 호텔)의 흐름을 주도했던 디자이너 앙드레 풋만. 그녀가 대형 슈퍼마켓 ‘모노프리Monoprix’, 카탈로그 판매 네트워크인 ‘트루아 스위스Trois Suisse’와 함께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절충적 디자인 철학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최고급 상류층의 기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녀는, 올해 79세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사실 그녀는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걸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작곡가 프랑시스 풀랑Francis Poulenc의 지도 아래 파리국립음악원에서 보낸 유년 시절 동안에는 그렇게 믿었다. 악보가 아닌 공간을 통해 그녀의 창작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음악인이었던 어머니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스무 살에 <엘르>의 예술 및 실내장식 분야 전문기자로 시작해서 예술과 디자인이란 두 분야의 예리한 관찰자로, 때로는 이 두 영역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중간자로 탄탄한 이론을 쌓았다. 이후 1978년에 ‘에카르 인터내셔널ECART international’을 설립, 장 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 말레 스티븐스Mallet Stevens와 같은 30년대 디자이너 및 건축가들의 가구 디자인을 재구성해 디자인 사에서 이들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한다. 이후 본격적인 인테리어 설계를 시작하는데, 삶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로 ‘단아함’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했다.
의자, 가구, 호텔, 레스토랑, 뮤지엄, 콩코드 기내 디자인에서 아동용 장난감, 안경, 심지어 영화의 세트 디자인까지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통해 심플함과 우아함을 생명으로 하는 절제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단순한 디자이너 또는 건축가가 아닌,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닌 공간을 창조해내는 뮤즈”라고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아시아 프로젝트들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 2004년, 홍콩, 상하이, 베이징에서 개인 디자인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에릭 지자르, 프렌치의 감성으로 기능을 창조한다
“한눈에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는 자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싶다”는 디자이너 에릭 지자르. 그는 동양적인 명상법을 통해 형성된 감성과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유동적인 공간과 디자인은 베트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체화된 동양적 사고방식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틀리에는 파리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벨빌 지역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차분함이 배어나는 메닐몽탕Menilmontant에 위치해 있다.
앙드레 풋만과 같이 정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온 그는 건축가 미셸 부아예Michel Boyer 사무소의 자료연구원으로서 디자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문서 보관, 자료 및 건축 재료의 수집과 분류, 바로 여기에서 재료, 형태, 컬러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간다. 이후 잡지사의 디자인 전문기자로, 트렌드 연구 기관인 넬리로디 사를 거치면서 시장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발전시켜나간다. 1999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디자인 에이전시 ‘에릭 지자르 어소시에(E.G.A.: Eric Gizard Associe)’를 설립하면서 로레알 파리L'Oreal Paris의 프랑수아 달Francois Dalle 회장의 집무실과 접견실, 프랑스국영철도회사 SNCF의 의장실, 그리고 지난해 데그립고베와 함께 에어 프랑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확인받게 되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남성적인 마스크와는 달리, 매우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는 ‘디테일이 결국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많은 부분을 ‘개인적인 감성과 직관’에 의존하지만 예술가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기능에 충실한 공간 구성은 결코 양보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 형태는 언제나 단순하고 심플하게, 그러나 모노톤의 차가운 미니멀리즘은 경계한다.
빛과 그림자, 차가움과 따스함, 투명함과 불투명함, 부드러움과 거친 질감 등 상반된 요소들을 대비시키고 통합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지닌 그의 작업들은 디자인의 기본에 충실하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은 아프리카 문명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예로 그가 살고 있는 파리의 아파트 레노베이션에는 마스크처럼 이 문명을 상징하는 오브제들보다는 원목, 짚, 갈대 등의 재료를 이용해 매우 거칠고 원시적인 요소들이 현대적인 느낌의 스테인리스 스틸(inox), 정돈된 파티션들로 구획된 공간들과 만나면서 더욱 고급스럽고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앙드레 풋만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그는 20세기 디자인사에서 1930년대 건축가들, 특히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 엘린 그레이Eileen Gray, 말레 스티븐스 등의 프랑스 모던 디자인 전통을 이으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한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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