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4장 극락세계로 가는 길 - 1 정토삼부경의 수행법 3)

2013. 8. 17. 20:23경전 이야기

3) 관무량수경의 왕생방법

 

                                               장휘옥 /불교시대사/자료입력:김수남

 

<<관무량수경>은 잘 알고 있듯이, 마가다국의 왕비인 위제희 부인이 왕궁 깊은 곳에

갇혀 있을 때 석가모니께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서방정토를 관해서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방법은 위제희부인이나 시녀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으로서,

특히 16가지 관법 가운데 마지막의 삼배구품이라 불리는 3관은 일반 부인들이 서방

정토를 관해서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설한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극락 왕생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세 가지 복을 닦아라.


그때 부처님께서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세 가지 복(三福)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며, 자비로운 마음

으로 살생하지 않고, 지성으로 열 가지 선업(十善業)을 닦는 것입니다.

둘째는 불·법·승의 삼보에 귀의하여 여러 가지 계율을 지키며, 거동과 예의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보리심을 일으켜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한편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힘써 권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 가지 수행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청정한 업이라 합니다.
그리고 부인은 아직 잘 모를 일이나 이 세 가지 청정한 업은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닦으신 청정한 업(淨業)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관무량수경>에서는 극락왕생의 수행방법으로 먼저 세 가지 복을 권한다.

세 가지 복이란, 첫째는 세간에서 행하는 도덕 상의 선행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며, 살생을 하지 않고 열 가지 선업을 닦는 세복(世福)이고,

둘째는 삼보에 귀의하여 계율을 지키는 계복(戒福)이며,

셋째는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행으로서 보리심을 내어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는 행복(行福)을 말한다.

이것은 극락왕생을 위해 기본적으로 닦아야 할 수행이지만, 실은 이것이 바로

불교도로서 살아가는 기본 자세다.

육안(肉眼)에서 심안(心眼)으로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잘 듣고 깊이 생각하여라. 내가 이제 번뇌의 시달림에 괴로워할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위해 청정한 선업(善業)을 말하리라. 착하도다, 위제희여. 부인은 미래세의

 중생들을 위해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였도다. 아난아, 그대는 내가 하는 말을 잘 지니고

기억하여 널리 많은 중생들에게 베풀도록 하여라.


나는 이제 위제희부인과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서방극락세계를 관(觀)하도록 가르쳐

주리라.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저 청정한 극락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는 것과 같이 분명하게 볼 것이니라. 그리하여 극락세계의

지극히 미묘한 장엄과 즐거운 일들을 보고 나면, 그들의 마음은 환희에 사무쳐, 바로 불생

불멸의 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부인은 아직 생사를 깨닫지 못한 범부이니 마음이 여리고, 미처 천안통(天眼通)을 얻지

못했으니 멀리 볼 수 없으며, 오직 부처님의 부사의한 방편에 의해서만 극락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16가지 관법(觀法)을 설하기 전에, 관(觀)하는 방법과 그 공덕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관'이란 사물의 겉모양뿐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까지도 보는 것(觀)이다.

다시 말하면, 본다는 것은 시각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는 것(見)과 달리

사물의 표면을 투시하여 그 내면에 있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사마타(奢摩他), 즉 지(止)에 의해 마음의 산람함을 정지하고,

이것에서 나온 지혜로써 제법의 실상을 똑바로 보는 것을 관이라 한다.


돌로 된 정원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얼마 후 그 사람은 돌의 진짜 성질을 알았다.

이것은 육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심안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안(心眼)으로

본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배제하고 마음을 한곳에 응집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觀), 몰랐던 것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관상(觀想)이란 사물의 진실한 의미, 진실한 모습을 '관'하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는 16가지 관상을 설하는데, 여기서 설하는 '관'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상이 경전 속에 설해져 있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 일상 생활 속에서

실제로 행할 때 비로소 의의가 있다. '관'하는 것은 어떤 하나에 자신의 의식(정신)을 집중

하는 것이다. 수행자의 경우는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의 염불에 몸도 마음도 몰입하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이기기 위해 의식을 집중하는 것도 관의 일종이다.


'관'을 성취하려면 어설픈 표면적인 견(見)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한 몸에 안고

그 생명이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는

'서원'으로서의 '관'이 아니면 안 된다. 관상(觀想)이란 이와 같이 절체절명(絶體節命)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행할 수 있다. 이러한 '관'이 이루어지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생멸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을 얻는다고 한다.

제1 일상관(日想觀)-서쪽의 해를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부인과 중생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곳에 집중시켜 서쪽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아니니 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해가 지는 것을 볼 것이므로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서 해를 똑똑히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마음을 굳게 간직하여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곧 지려는 해가 마치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음을 보도록 하시오.

이것을 해를 관하는 일상관이라하고 최초의 관이라 합니다."

제1 일상관은 일념으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해가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음을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겨, 그 영상이 눈을 뜨나 감으나 또렷하게 눈앞에 보일 때까지 관한다.

이렇게 서쪽으로 지는 해를 일심분란하게 응시하고 생각을 집중하면 저절로 극락의 장엄함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일상관을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10분 정도 실수(實修)해 보지만, 처음 해 보는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눈앞이 캄캄할뿐 해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복잡한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갖가지

자극으로 잠시도 눈·코·귀 등의 오관을 쉴 수가 없는데 마음의 산람함을 멈추고 무심(無心)이 되어

사물을 보라(觀)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고승들이 심산유곡에서 수행한 것도 결국은

이러한 여러 가지 자극을 떠나 마음을 안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라고 하지 않았던가. 흔들리지 않는 도의 마음은

조용한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번잡스러운 일상 속에서 찾는 것이라면 안 될 것도 없다.

정신을 집중하고 몸도 마음도 일상관에 몰입하는 수행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육안이 아니라 심안이 열려 관이 이루어질 것이다.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 선도(善道)는 일상관을 제일 처음에 두는 이유를

①서방정토의 소재를 알 수 있고,

②검은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보고 자신의 죄업이 무거움을 깨달을 수 있으며,

③정토의 장엄과 광명이 태양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선도는 일상관이 태양을 통해 정토를 관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죄업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서,

오탁악세의 범부들로 하여금 깊이 참회하게 한다.

제2 수상관(水想觀)-물과 얼음을 생각하라


"다음에는 물을 생각하시오. 물이 맑아 투명함을 보고 영상이 분명하게 남아서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물을 보았으면 다음에는 얼음을 생각하시오.

얼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유리라고 생각하시오. 이 생각이 성숙하면

유리로 된 땅의 안팎이 환히 꿰뚫어 비침을 생각하시오. 땅 밑에는 금강과 칠보로 된 황금의

기둥이 유리의 땅을 받치고 있는데, 그 기둥은 팔각형으로서 각 면은 백 가지 보배로 꾸며져

있으며, 알알의 보배 구슬에서는 일천 가지 광명이 빛나고 하나하나의 광명에는 팔천 사천

가지의 색깔이 있어 유리의 땅에 비치는 것이 마치 억천 개의 해가 비추는 것 같아서 눈이

부시어 볼 수가 없습니다.


유리의 땅 위에는 황금의 줄로 얼기설기 길을 만들어 칠보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으며,

그 낱낱의 보배에는 오백 색깔의 광명이 빛나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꽃과도 같고,

무수한 별이나 달 같기도 하여 허공 중에 찬란한 광명대(光明臺)를 이루고 있습니다.

광명대 위에는 온갖 보배로 된 천만 개의 누각이 있으며, 광명대의 양편에는 각기

백 억의 꽃송이로 꾸며진 화려한 기둥과 헤아릴 수 없는 악기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찬란한 광명에서 여덟 가지 맑은 바람이 일어나 악기를 울리면, 그 선율은

인생의 고(苦)와 공(空)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도리를 연주합니다.

이것을 물을 생각하는 수상관이라 하고 둘째 관이라 합니다."

제2 수상관은 제3 지상관의 준비작업이다. 먼저 청정한 물을 생각하고 그것이 드디어

얼음이 되어 투명한 유리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 그 유리 아래 정토의 땅이 갖가지

보배로 반사하는 모습을 관하는 것이다. 먼저 물을 관하는 것은 정토의 지면이 수면처럼

평평하다는 것을 관하기 위해서고, 다음에 얼음을 관하는 것은 정토의 진짜 모습인 맑고

투명한 유리로 된 땅을 관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3 지상관(地想觀)-땅을 생각하라


"이러한 유리 땅의 관(觀)이 이루어지면 그 낱낱을 더욱 분명하게 관해야 합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그 영상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하며, 잠잘 때 외에는 항상 이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극락세계를 대강은 보았다고 하겠으나,

더욱 깊이 관해서 마침내 삼매를 얻으면 실제로 극락세계를 분명히 보는데, 이것은

상세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땅을 생각하는 관(地想觀)이라 하고 셋째 관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대는 내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했다가 미래 세상의 중생들 가운데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이 '땅을 관하는 법'을 말해 주어라. 만일 이 땅을 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80억 겁의 생사 죄를 없애고 수명이 다할 때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니, 결코 마음에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래서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올바른 관(正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邪觀)이라 하느니라."

제3 지상관은 실질적으로는 제2 수상관에 이어진다. 지상관은 보지관(寶地觀)이라고도 하며,

수상관에서 관(觀)한 유리의 땅을 하나하나 마음 속에 그리어 잠잘 때 외에는 눈을 뜨거나

감거나 그 모습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선종에서 화두를 들 때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앉으나 서나 행주좌와 화두를 놓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주좌와 부지런히 관해서 눈을 뜨나 감으나 그 영상이

흩어지지 않게 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관이 이루어지면, 80억 겁의 생사 죄를 없애고

사후에는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결코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불도수행에는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산이 있는데 그 첫째가 신재(信材)다.

이것은 믿음(信) 없는 불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믿음(信)은 도(道)의 근본이고,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확실한 믿음만이 불도수행의 지름길이다.

제4보수관(寶樹觀)-보배 나무를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땅을 생각하는 관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보배 나무를 관하여라. 보배 나무를 관할 때는

먼저 보배 나무 하나하나를 관하여 그보배 나무가 일곱 줄로 늘어서 있음을 생각하여라.

보배 나무는 높이가 8천 유순이나 되며, 모든 보배 나무는 칠보의 꽃과 잎을 달고 있느니라.

낱낱의 꽃과 잎은 여러 가지 보배의 빛깔로 이루어졌는데, 유리에서는 황금 빛이 나고,

수정에서는 붉은 빛이 나며, 마노에서는 자거의 빛이, 자거에서는 푸른 진주 빛이 나고,

그 외에 산호와 호박과 모든 여러 보배로 꾸며져 있느니라.


그리고 미묘한 진주의 그물이 보배 나무 위를 덮고 있는데, 진주 그물은 나무마다 그 위를

일곱 겹으로 둘러 있으며, 그물 사이마다 5백 억의 아름다운 꽃궁전이 있는데 마치 범천의

궁전과 같으니라.


그 안에는 천상의 천상의 동자들이 천연스럽게 노닐고 있으며 그들은 제각기 5백 억의

마니보주로 만든 영락구슬을 걸고 있느니라. 마니보주의 광명은 백 유순이나 멀리 비춰

마치 백 억의 해와 달을 한데 모아 놓는 것과 같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온갖

보배가 사이사이 섞이어 그 빛깔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보배 나무들이 알맞게 줄지어 서 있고 잎사귀마다 서로 이어져 있으며 잎새

사이마다 미묘한 꽃이 피고 그 꽃에는 자연히 일곱 가지 보배 열매가 열려 있느니라.

그리고 그 낱낱의 나뭇잎은 가로 세로가 한결같이 25순이나 되며, 그 잎은 천 가지

색깔에 백가지 무늬가 아롱져 마치 천상의 영락과 같으니라. 이러한 아름다운 꽃송이들은

 염부단금(閻浮檀金)의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며 불바퀴(火輪)처럼 잎 사이를 선연하게

돌고 있느니라. 더구나 꽃봉오리는 제석천의 보배 병과도 같으니라. 그 열매에서는

대광명이 발하고 이 눈비신 광명은 그대로 깃발로 변화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 일산이 되느니라. 보배 일산 속에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불사(佛事)가 비치어

나타나고 시방세계의 불국토도 또한 그 안에 나타나 있느니라.


이와 같이 보배 나무를 관하고 나서 다시 차례대로 낱낱이 이를 관하되 보배 나무의

줄기나 가지나 잎과 꽃·열매 등의 영상을 분명히 지녀야 하느니라. 이것을 보배 나무를

 생각하는 관(寶樹觀)이라 하고 넷째 관이라 하느니라."

제3 지상관이 성취되면 다음에 정토를 장식하는 보배 나무를 관하게 된다. 정토에는

보배로 된 일곱 겹의 가로수가 있으며, 하나하나의 나무는 칠보로 되어 있고, 그 위를

 큰 진주로 엮은 그물이 덮었으며, 각각의 나무들은 갖가지 빛을 발한다. 보수관은

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뚜렷하게 관하는 것이다.

제5보지관(寶池觀)-보배 연못을 생각하라


"다음에는 보배 연못의 물을 생각하여라. 보배 연못의 물을 관하는 것은 극락에는

여덟 개의 연못 물이 있는데, 각각의 연못 물은 일곱 가지 보배로 되어 있으며 그 보배는

 부드럽고 유연하느니라. 보배 연못 물은 여의보주에서 흘러나와 열네 갈래로 나뉘며,

하나하나의 갈래는 일곱 가지 보배 빛으로서 황금의 개울이 되느니라.
개울 밑바닥에는 눈부신 금강의 모래가 깔려 있고 황금의 개울마다 60억의 칠보 연꽃이

피었는데, 연꽃은 둥글고 탐스러우며 모두 한결같이 12유순이나 되느니라.
마니보주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연꽃 사이사이로 흐르며 보배 나무를 따라 오르내리느니라.

그 물소리는 지극히 미묘하여 인생의 진리인 고(苦)와 공(空)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육바라밀의 법을 설하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의 상호와 공덕을 찬탄하기도 하느니라.


또한 여의보주에서는 미묘한 금색 광명이 솟아나와 백 가지 보배 빛깔의 새(鳥)로 변하여

노래하는데, 그 소리는 평화롭고 애틋하고 그윽하며 항상 부처님(佛)과 가르침(法)과

승가(僧)를 생각하는 공덕을 찬양하고 있느니라. 이것을 팔공덕수(八功德水)를 관하는

것이라 하고 다섯째 관이라 하느니라."

제5 보지관은 정토에 있는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연못의 물을 관하는 것이다. 정토에는

8개의 연못이 있는데, 각 연못에는 일곱 가지 보배의 물이 가득 차 있으며, 14개의 지류가

 되어 흘러내린다. 지류의 밑바닥에는 금강의 모래가 깔려 있고 무수한 연꽃이 피어 있다.

꽃의 크기는 12유순(1유순은 약30~40리 정도)이나 되고, 흐르는 물소리는 저절로 무상·

공·무아 등의 가르침을 설하고, 나무에는 백 가지 보배 빛깔의 새가 앉아서 항상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을 생각할 것을 노래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못 물은 여덟가지 공덕을 갖췄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팔공덕수라 부른다.

제6 보루관(寶樓觀)-보배 누각을 생각하라


"온갖 보배로 장엄된 국토의 경계마다 5백 억의 보배로 된 누각이 있고, 누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상 사람들이 천상 음악을 연주하느니라. 또한 악기들은 천상의 보배 깃발처럼

허공에 매달려 저절로 미묘하게 울리며, 온갖 음률은 모두 부처님9佛)과 가르침(法)과

승가(僧)를 생각할 것을 설하느니라.
이 관을 이루면 극락세계의 보배 나무의 나무와 보배 땅과 보배 연못을 대강 보았다고 하고,

또한 이를 가리켜 극락세계의 경계를 모두 관하는 총관상(總觀想)이라 하고

여섯째 관이라 하느니라.
만일 이와 같이 관하는 사람은 무량 억겁 동안의 무거운 악업을 없애고 수명이 다하면

반드시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그래서 이와 같이 관함을 올바른 관(正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邪觀)이라 하느니라."

제6 보루관은 정토의 보배 누각을 관하는 것이다. 정토에는 500억의 보배로 된 누각이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천상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허공에 매달린 악기는 저절로 울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을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이 관법이 성취되면, 정토의 풍경 모두를 관하게 되므로

 총관상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1관에서 제6관까지는 정토의 모든 대자연에 대해 관하였으므로

 여기까지 하나의 획을 긋고 있다.

제7 화좌관(華座觀)-연화대를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들은 자세히 듣고 이를 깊이 명심하여라. 나는 그대들을 위해 고뇌를 없애는 법을

분별하여 해설하겠으니, 그대들은 잘 기억하였다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잘 풀이하여

설명해 주도록 하여라."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무량수불(아미타불)은 어느 새 허공 중에 계셨으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었다. 그 광명은 눈부시게 빛나서 바라볼 수 없었으며

백 천의 염부단금을 합한 찬란한 금빛도 이에 비교할 수 없었다. 그때 위제희부인은

무량수부처님을 뵈옵고 발 아래 공손히 절하고 나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무량수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래의 중생들은 어떻게 해야 무량수부처님과 두 분의 보살님을 뵈올 수 있겠사옵니까?"

부처님께서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였다.


"저 무량수부처님을 뵈옵고자 하면 마땅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먼저 칠보로 된 땅 위에 피어 있는 연꽃을 생각하여라. 그리고 연꽃의 꽃잎마다 백 가지

보배의 빛깔이 있고, 꽃잎에는 8만 4천 줄의 엽맥이 있는데, 마치 천상의 그림같이

아름다우며, 엽맥에는 또한 8만 4천의 광명이 빛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도록 해야 하느니라.

또한 작은 꽃잎이라도 길이와 너비가 2백 5십 유순이나 되는데, 한 연꽃에는 8만 4천의 꽃잎이

 있고, 꽃잎 사이마다 백억의 마니보주로 장식되어 있느니라. 낱낱의 마니보주는

또한 천 가지의 광명을 발하여 일산과 같으며. 칠보로 합성되어 두루 땅 위를 덮고 있느니라.


더구나 마니보주로 된 연화대는 8만 개의 금강석과 견숙가보와 범마니보와 묘진주의 그물로

장엄하고, 연화대 위에는 저절로 네개의 보배 당번(幢幡)이 세워지는데, 그 하나하나가 마치

백천 만억의 수미산과 같으니라. 당번 위의 보배 휘장은 야마천의 궁전과 같고, 5백 억의 미묘한

보배 구슬로 찬란하게 꾸며져 있느니라.


보배 구슬마다 8만 4천의 광명이 빛나고, 낱낱의 광명은 또한 8만 4천 가지의 서로 다른 금색을

지니는데,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찬란한 금색 광명이 보배 땅 위에 두루 펼쳐져 있느니라.

그리고 그 광명은 곳곳마다 변화해서 갖가지 다른 형상을 이루는데, 혹은 금강대가 되고,

혹은 진주 그물이 되고, 혹은 여러 가지 꽃구름이 되기도 하여 온갖 방면에서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어 불사(佛事)를 이루고 있느니라. 이것을 연화대를 관하는 화좌관이라 하고

일곱째 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와 같은 미묘한 꽃은 본시 무량수부처님께서 법장비구였을 적에 세운 서원의 힘으로

 된 것이니라, 그러니 만일 무량수부처님을 생각하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이 연화대를 생각해야

하느니라.

연화대를 생각할 때에는 다른 번잡한 관(觀)을 하지 말고 하나하나의 꽃잎, 알알의 구슬,

낱낱의 광명, 하나하나의 꽃받침, 낱낱의 당번 들을 생각하여 마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듯이 그 영상을 분명히 해야 하느니라.
이 생각이 이루어진 사람은 5만 겁의 생사 죄를 없애고,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올바른 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이라 하느니라."

드디어 극락에 계시는 부처님과 보살에 관한 관상으로 옮겨 가는데, 그 첫째가 화좌관이다.

 

연화대란 부처님이 앉는 대좌(大座)를 말한다. 연화대는 작은 것이라도 250유순이나 되는 연꽃으로

 되어 있으며, 한 연꽃에는 8만 4천 개의 꽃잎이 있고, 꽃잎 사이에는 백 억의 마니보주가 있으며,

각 마니보주는 일천의 광명을 발하여 정토를 비추는데, 이러한 모습을 관하는 것이 화좌관이다.

그런데 이런 연화대를 관할 때는 다른 잡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하나의 꽃잎,

알알의 구슬, 낱낱의 광명, 하나하나의 꽃받침 등을 마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듯이

선명하게 관해야 한다고 한다.

화좌관에서 주목할 것은 부처님이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고뇌를 없애는 법을 설한다고 말하자

그 소리를 따라 공중에 아미타불과 관음·대세지 두 보살이 나타났으므로, 부인은 불력(佛力)에

의해 아미타불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중국 정토교의 선도(善導)는 위제희부인과

500명의 시녀들은 16관법 전체를 다 듣고 무생법인을 얻은 것이 아니라 화좌관을 설법할 때

공중의 아미타부처님을 보고 이미 무생법인을 얻었다고 해석하였다.

중국 정토교의 초조인 담란(曇鸞)이나 천태대사 지의(智의)등은 앞의 제 보루관까지를

부처님이나 중생의 의지처가 되는 국토나 산이나 강 등의 환경세계를 관하는 것이라 하여

의보관(依報觀)이라 하고, 제 화좌관 이하를 부처님이나 중생의 심신(心身)을 관하는

정보관(正報觀)이라 하였다. 그러나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 선도는 제 일상관에서

제 7관까지를 의보관, 다음 제8 상상관에서 제13 잡상관까지를 정보관이라 하였다.

제8 상상관(像想觀)-부처님의 모습과 주위의 모양을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였다.


"이미 연화대를 관했으면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진리이고 그 작용인 법계신(法界身)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마음 속에도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 32상의 뛰어난 모습이

되고 80가지 특징(80隨形好)을 가지게 되느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是心作佛)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是心是佛).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골똘히 하여 아미타불과 그 지혜 공덕인 여래(如來)·응공(應供)·

정변지(正邊智)를 깊이 관해야 하느니라.
아미타불을 관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눈을 뜨거나 감거나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염부단금의 자금색과 같이 찬란한 하나의 부처님 형상이 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관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나면 마음의 눈이 열려

극락세계의 칠보로 장엄된 보배 땅과 보배 연못과 줄지어 서 있는 보배 나무와 그 위를 덮고 있는

천상의 보배 휘장과 온갖 보배로 아롱진 보배 그물이 허공에 가득함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니라.

이러한 영상을 볼 때는 마치 자기 손바닥을 보듯이 뚜렷하게 관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본 후에는 다시 한송이의 커다란 연꽃이 부처님의 왼편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 연꽃은 부처님의 연화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느니라. 또 하나의 연꽃이 부처님의 오른편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왼쪽 연꽃 위에 앉아 계시고, 대세지보살이

오른쪽 연꽃 위에 앉아 계시는데, 금색 광명은 한결같이 부처님처럼 발하고 있음을 생각하여라.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지면 부처님과 두 보살은 모두 광명을 발하여 그 찬란한 금색광명은 모든

보배 나무를 비추느니라. 그리고 그 낱낱의 보배 나무 밑에는 또한 세 송이의 큰 연꽃이 있고

연꽃 위에는 각각 한 부처님과 두 보살이 있는데, 이렇듯 아미타불과 두 보살이 저 극락세계에

두루 가득하느니라. 이와 같은 생각이 성취되었을 때, 관하는 수행자는 극락세계의 흐르는 물과

광명과 모든 보배나무와 기러기와 원앙새 등이 모두 미묘한 법문을 아룀을 알아 듣게 되느니라.


선정에 들 때나 선정에서 나올 때나 항상 미묘한 법문을 들을 것이니, 수행자는 선정에 들었을 때

들은 바를 잘 기억하였다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경전의 가르침과 맞추어 보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만약 경전과 맞지 않으면 망상이라 하고 경전과 합당하면 거친 생각으로 극락세계를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과 보살의 형상을 생각하고 관하는 것을 상상관이라 하고

또한 여덟째 관이라 하느니라."

중국의 선도는 여기서부터 부처님이나 중생의 심신(心身)을 관하는 정보관(正報觀)이라 했다.

특히 제8관은 제9 진신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단계의 관법이다. 아미타불이 중앙의 연화대에

앉아 계시고, 왼쪽에는 관세음보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보좌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며

정토의 장엄을 관한다.


주목할 점은 "수행자는 선정에 들었을 때 들은 바를 잘 기억했다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경전의

가르침과 맞추어 보아야 하며, 그것이 만약 경전의 내용과 맞지 않으면 이를 망상이라 한다."고

하였다. 관(觀)을 닦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행이 어느정도 무르익으면 온갖 상(想)이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이떄 본 상이나 소리가 참된 것인지 아닌지는 선정에서 나온

뒤에 경전을 보고 확인해야 하며, 만일 경전에 없는 잡스러운 것이면 망상으로 일어난 것임을

알고 더 이상 그 상에 휘말리지 말고 떨쳐 버려야 한다.


이 관이 성취되면 염불삼매를 얻는다고 하였다. 염불삼매에 든다는 것은 염불하는 자도 없고

염불의 대상인 부처님도 없다. 온 천지 가득히 낭낭한 염불 소리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무심(無心)' '무아(無我)'의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좌선을 할 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해탈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 마음이 부처를 이루고(是心作佛)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是心是佛)' 한 것에 대해

선도(善導) 이전의 여러 주석가들은 법계신(法界身)은 법신불이고, 중생심은 원래

법신의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관이 성취되면 불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중생은

그대로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부처가 되고(是心作佛), 따라서 중생심 외에

따로 부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마음이 바로 부처(是心是佛)라 하여,

<관무량수경>의 관법을 유식법신관(唯識法身觀) 혹은

자성청정불성관(自性淸淨佛性觀)이라 불렀다.


이 무상(無相)의 불신관(佛身觀)에 대해 선도는 유상(有相)의 불신관을 주장했다.

즉 그는 '지방입상(指方立相)'의 설을 제창하여, 관상(觀想)의 대상인 정토는

'오직 방향(方)을 가리켜(指) 모습(相)을 제시한다(立)'는 유형적(有形的)이고

구체적인 세계로서, 당시 섭론학파나 선종 들을 위시한 불교계의 일반적 견해인

무형적·유심적 세계가 아니다. 말세 오탁악세의 범부는 모습을 보여 주어도 관상이

어려운데, 하물며 모습이 없이 구체적인 관상이 될 리가 없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오랜 옛날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일부러 '서방'이라는 방향을 제시해서 모습이 있는

정토를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입상'은 바로 우리들 범부를 위해

부처님께서 설한 교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특히 타력에 의한 부처님의 구제를 강조해서 말세의 죄악 중생을 대비(大悲)로써

교화하기 위해 이 상상관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설해진 것이라 한다. 또한 그는 중생의

관법의 마음이 부처를 이루기 때문에 이 마음이 부처를 이루고(是心作佛),

이 관법에 의해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마음이 바로 부처(是心是佛)라 해석하였다.

제9진신관(眞身觀)-아미타불의 참모습을 생각하라


부처님은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상상관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무량수부처님의 몸과 광명을 관하여라. 아난아, 잘 알아

두어라. 무량수부처님의 몸은 야마천의 염부단금색의 백천만 억 배로 빛나고, 부처님의

키는 만 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니라. 미간의 백호는 오른쪽으로 우아하게 돌고 있는

데 크기는 수미산을 다섯 개 합한 것과 같고, 부처님의 눈은 사대해(四大海)와 같으며

푸르고 맑느니라. 몸의 모든 모공에서는 광명이 흘러나와 크기가 수미산과 같고,

부처님의 원광(圓光)은 백 억의 삼천대천세계와 같으니라. 그 원광 속에는 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의 화신불이 계시고, 그 화신불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보살들이

계시느니라.
또한 무량수부처님에게는 8만 4천 가지의 상(相)이 있고, 하나하나의 상에는 각각 8만 4천

가지의 수형호(隨形好)가 있으며, 낱낱의 수형호마다 또한 8만 4천의 광명이 있느니라.

그 광명은 두루 시방세계를 비추어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중생들을

섭수하여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느니라. 이러한 모든 광명과 상호(相好)와 화신불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다만 깊이 생각하여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도록 하여라.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염불삼매라 하느니라. 그래서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의 몸을

관한다'고 하느니라. 부처님의 몸을 관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부처님의 마음(佛心)도 볼 수

 있으니, 부처님의 마음 곧 불심(佛心)이란 바로 대자대비(大慈大悲)이며, 모든 부처님들은

이런 무연의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섭수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관할 수 있는 사람은 내생에는

 여러 부처님의 회상에 태어나 상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오로지 하여 무량수부처님을 착실히 관해야 하느니라.

무량수부처님을 관할 때에는 하나의 상호(相好)에서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오직 미간의

백호만을 관하여 그 영상이 분명하도록 관해야 하느니라. 미간 백호를 볼 수 있으면 부처님의

만 천 상호가 저절로 앞에 나타나며, 이렇게 무량수부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느니라. 또한 무수한 부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한다는 수기(授記)를 받게 되느니라. 이것을 일체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생각하는 관이라 하고 또한 아홉째 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함을

올바른 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해서 드디어 아미타불의 진신(眞身)을 관하는 제9 진신관에 도달하였다.

 

진신관은 아미타불의 신체와 광명을 관하는 관법이다. 아미타불의 키는 60만 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나 되고 눈의 크기는 수미산을 둘러싼 사방의 큰 바다(四大海)와

같으며, 몸의 모공에서 나온 광명은 백 억의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 부처님의 광명

속에는 무수한 화신의 부처님과 화신의 보살들이 있고, 이 광명은 부처님을 염(念)하는

중생을 두루 섭취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 광명을 받은 모든 염불자는 부처님의 자비로

구제됨을 관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미타불의 키를 계산해 보면, 60만 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 했으므로,

나유타는 인도의 수량으로 천 억이고, 항하사는 갠지스 강의 모래수로서 무수하다는

의미이며, 유순은 대략 40리이므로 아미타불의 키는 60만 억×천 억×갠지스 강의

모래수×40리(16km)가 된다. 이것은 무한에 가까운 수이므로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아미타불의 크기를 상정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미타불을 관할 때에는 하나의 상호부터

들어가야 하며, 먼저 미간의 백호를 관해서 그 영상이 분명해지면 다른 상호들도

저절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미간의 백호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수미산을 다섯 개합한 것과 같다고 했으므로,

수미산의 높이가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이 8만 유순이고, 땅 위로 솟은 부분이 8만 유순이므로

8만×40리(16km)+8만×40리(16km)=256만km이고, 이것의 다섯 배이니까 백호의 길이는

1,280만km가 된다.

'불심(佛心) 이란 대자대비이며, 모든 부처님은 이런 무연(無緣)의 자비(慈悲)로써

모든 중생을 섭수하신다'고 한 문장은 무연의 대비심을 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연의 자비' 란 부처님은 일체의 평등한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상대를 분별해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제10관음관(觀音觀)-관세음보살을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아미타부처님을 분명히 뵈온 다음에는 관세음보살을 관하여라. 이 보살은 키가 80만 억

나유타 유순이고, 몸은 자금색으로 빛나며, 정수리에는 상투같이 솟은 육계(肉계)가 있고,

머리 뒤편에는 원광(圓光)이 있는데 그 지름이 백천 유순이나 되느니라. 원광 속에는 오백의

 화신불이 계시며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으니라. 그리고 각 화신불마다 오백의 화신보살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인들이 따르고 있느니라. 관세음 보살의 온몸에서 발하는 광명 속에는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등 오도(五道) 중생의 모든 삶이 나타나 있느니라.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는 마니보주로 된 천관(天冠)이 있고, 천관속에는 화신불 한 분이 서 계시는데

높이가 25유순이니라.


관세음보살의 얼굴은 자금색으로 빛나고, 미간의 백호는 칠보의 빛깔을 지녔는데

8만 4천 가지의 광명이 흘러나오느니라. 낱낱의 광명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불이 계시며, 화신불들은 또 한 각각 수없이 많은 화신보살들이 모시고 있느니라.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시방세계에 가득함이 마치 찬란한 붉은 연꽃이 수없이

피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관세음보살은 80억 광명으로 된 영락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그 영락 구슬 속에는

모든 장엄한 일들이 모조리 나타나 있으니라. 그 손바닥은 오백억 가지 연꽃 빛을 띠고

 손가락 끝마다 8만 4천의 그림 무늬가 있는데, 마치 도장의 인주와 같으니라. 그림

무늬마다 8천 4천의 빛깔이 있고, 빛깔마다 또한 팔만 사천 가지의 광명이 있느니라.

그 광명은 부드럽고 상냥하여 두루 모든 것을 비추는데,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보배 손으로

중생들을 인도하느니라.
관세음보살이 발을 들 적에는 발바닥에 천 개의 차바퀴 같은 모양의 천복륜(千福輪)의 발금이

저절로 오백 억의 광명대로 변하고 발을 디디면 그것이 금광마니 보배의 꽃으로 변하여

온 땅 위에 흩어져 그윽하게 되느니라. 관세음보살의 모든 상호는 부처님과 똑같이 갖추어져서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다만 정수리에 솟은 육계와 육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정점(頂點)인

무견정상(無見頂相)만이 부처님에게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함을 관세음보살의

진실한 색신(色身)을 생각하는 관이라 하고 또한 열째 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관세음보살을 뵙고자 하면 마땅히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관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관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재앙도 만나지 않고 업장을 말끔히 소멸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없애느니라.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다만 그 이름만 들어도 무량한 복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모습을 분명히 관하는

 큰 공덕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관세음보살을 관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정수리의 육계를 관하고 다음에는

천관(天冠)을 관하고 그 나머지 여러 상호를 차례 차례로 관하되 뚜렷하기가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이 분명히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올바른 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이라 하느니라."

제10 관음관에서는 아미타불의 진신관이 끝났기 때문에 다음에 아미타불의 좌우에

보좌하고 있는 두 보살 가운데 먼저 왼쪽에 앉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관하는 방법을 설한다.

관세음보살상의 특징은 신장이 80만 억 나유타 유순이나 되고,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그 보관의 정면에 부처님 한 분이 서 계신다. 가슴에는 80억의 광명이 나와 일체 중생을 비추며,

발바닥에는 천 개의 바퀴모양이 있고, 이 발로 대지를 밟으면 금강마니 보배의 꽃이 핀다.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이 관음관이다.


관세음보살의 여러 가지 특징적인 모습을 설명한 가운데 부처님과 다른 점은, 상호는

부처님과 똑같지만 다만 정수리에 솟은 육계와 그 육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점(點)인

 무견정상(無見頂相)만이 부처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함이 재미있다.

제11세지관(勢至觀)-대세지보살을 생각하라


"다음에는 대세지보살을 관하여라. 이 보살의 크기는 관세음보살과 같고,

원광(圓光)의 지름은 1백 25유순이지만 2백 50유순을 비추느니라. 온몸에서 발하는 광명은

자금색으로서 시방세계 모든 나라를 비추는데 인연이 있는 중생들은 다 볼 수 있느니라.

또한 다만 이 보살의 한 모공에서 나오는 광명만 보아도 시방세계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

청정하고 미묘한 광명을 볼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 보살의 이름을 끝없는 광명인

무변공(無변光)이라 하고, 또한 지혜의 광명으로써 두루 일체 중생을 비추어

지옥과 아귀와 축생등 삼악도의 고난을 여의게 하는 위없는 힘을 지니므로,

이 보살을 대세지(大勢至)라 하느니라.

 

이 보살의 천관(天冠)은 5백 가지의 보배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 꽃마다 또한 5백개의 보배 꽃받침이 있는데,

그 낱낱의 꽃받침에는 시방세계의 모든 청정 미묘한 불국토의 광대한 모양이

나타나 있느니라. 또한 정수리의 육계는 찬란한 홍련화와 같으며,

그 위에 하나의 보배 병이 있는데, 온갖 광명이 가득하여 두루

부처님 일(佛事)을 나투고 있느니라.

이외에 여러 가지 몸의 형상은 관세음보살과 다름이 없느니라.


이 보살이 다닐 적에는 시방세계 모든 것이 진동하고, 진동하는 곳마다

곧바로 4백 억의 보배 꽃이 피며, 꽃마다 크고 장엄함이 극락세계와 같으니라.

또한 이 보살이 앉을 때에는 칠보로 된 국토가 일시에 흔들리는데 그것은 아래쪽의

금광불 국토에서 위쪽의 광명불 국토까지 이르느니라. 그리고 그 중간에는

무량 무수한 무량수불의 분신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분신들이 구름같이

극락국토에 모여 허공 가득히 연화대에 앉아서 미묘한 불법을 연설하여 고해

중생을 제도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올바른 관이라 하고,

달리 관하는 것을 그릇된 관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대세지 보살의 색신을 생각하는 관이라 하며 열한번째 관이라 하느니라.

 

이 대세지보살을 관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아승지겁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없애며, 그리하여 다시는 태중(胎中)에 들지 않고, 언제나 모든 부처님의

청정 미묘한 국토에 노닐게 되는 것이니, 이 관이 성취되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있느니라."

제11 세지관은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보좌하고 있는 대세지보살의 진신을 관하는 방법을

설한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모든 것이 같지만, 다만 원광의 크기와 천관이

5백 개의 보배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정수리의 육계 위에 하나의 보병이 있는 것이 다르다.

이 관이 성취되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대세지관은 관음관과 하나로 이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2보관(普觀)-자신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을 생각하라


"자신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을 관할 때에는 마땅히 자신의 마음을 일깨워,

자기가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연꽃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그 연꽃 봉오리가 오므라졌다가 활짝 피어나는 생각을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연꽃이 필 때는 그 속에서 5백 가지 광명이 나와 자기 몸을 비추고

자기 눈을 뜨게 한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허공에 가득함을 볼 수 있으며 극락 세계의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와 보배 숲에 살랑거리는 바람소리와 부처님의 음성 등은

모두 한결같이 12부경(十二部經)과 똑같은 미묘한 법문을 연설함을 알 수 있느니라.

선정에서 나온 뒤에도 그러한 생각을 깊이 기억하여 잊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할 수 있으면 무량수불과 극락세계를 볼 수 있으며, 이것을 두루

관하는 것이라 하고, 열두번째 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행하는 사람은

무량수불의 무수한 화신이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과 함께 항상

그 수행인의 처소에 나투시느니라."

지금까지 여러 관법에 의해 모든 정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이것으로 죄를 멸하고, 왕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익을 얻었다.

이에 이 왕생을 성취한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관찰자 자신이므로,

제12 보관에서는 자기 자신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을 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외부에서 관찰해 온 정토 속에 자기 자신이 있다고 간주하여,

내부에서 체험적으로 이것을 관하는 것이다.


앞의 11가지 관은 관찰의 대상이 각각 다르며, 더구나 관찰자 자신이 방관자로서 관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정토에 태어나는 모습을 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의 11가지의 관,

즉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모두를 이 하나의 관에 집약한다는 점에서 보관이라 한다.


수행을 많이 하신 스님을 만나 뵈면, 불교교리를 배우는 것은 둘러가는 길이고,

수행을 하면 곧바로 부처님 법을 꿰뚫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보관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극락의 물 흐르는 소리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소리 들은

모두 부처님의 법을 설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관이 무르익어 극락의 정경을 사실처럼

볼 수 있게 되면, 불교교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이 소리를 듣고 8만 4천의 법문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관에서는 선정에서 나온 뒤에도 이 설법을 깊이

기억하여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제13 잡상관(雜想觀)-여러 부처님의 모습을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지극한 정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1장(丈) 여섯 자 되는

불상이 보배 연못 위에 계심을 관해야 하느니라. 앞에서 설명했듯이 무량수부처님의

몸은 끝이 없어, 범부의 마음으로는 미칠 수가 없느니라. 그러나 깊이 관하는 사람은

무량수부처님이 과거 숙세에 세우신 큰 서원의 힘에 의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느니라.

단지 부처님의 형상만을 생각해도 무량한 복을 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원만히 갖추어진

부처님의 모습을 관하는 큰 공덕에 있어서랴.
아미타불은 신통력이 자재하시어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에 마음대로 변화해서 나투시는데,

혹은 크게 나투시어 끝없는 허공에 가득하시고 혹은 작은 몸으로 나투시어 때로는

1장(丈) 여섯 자로 또는 여덟 자의 몸으로 나투시느니라. 나투시는 몸의 형상은

모두 순금색의 광명으로 빛나고, 원광(圓光) 속의 화신불이나 보배 연꽃 등은

모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또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어디서나 같은 모양으로 나투시는데, 중생들은 다만

그 머리 모양만을 보아도 알 수 있나니, 이 두 보살은 아미타불을 도와서 두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이것을 섞어 생각하는 관이라 하고, 열세번째 관이라 하느니라."

잡상이란 아미타불의 다양한 모습을 말한다. 아미타불의 크기는 60만 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나 되고, 그 눈은 수미산을 둘러싼 사방의 바다 넓이나 되는 거대한 모습인데,

때로는 1장 6척의 작은 모습으로도 되며, 서방정토뿐 아니라 시방의 여러 불국토에도

변신해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변화가 재유자재한 아미타불의 모습을 관하는 것이 잡상관이다.

제14상배관(上輩觀)-상품상생·상품중생·상품하생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상품상생(上品上生0하는 이란,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중생들이 세 가지 마음을

일으켜 왕생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세 가지란, 첫째는 지극히 정성스러운 마음인 지성심(至誠心)이고,

둘째는 깊은 신앙심인 심심(深心)이며,

셋째는 모든 선행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회향발원심이니라.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추면 반드시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한 세 종류의 중생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자비심이 많아 살생하지 않고

모든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고, 둘째는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며,

셋째는 여섯 가지 염원(六念), 즉 불·법·승의 삼보와 계율과 보시와 천상 등을

염원하는 수행자를 말하느니라. 이들은 이러한 선근공덕을 회향하여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서원하고, 이러한 공덕을 갖추기를 하루에서 이레에 이르면 곧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느니라. 이들은 저 극락세계에 태어날 때 용맹하게 정진했기 때문에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과 무수한 화신불과 수 많은 비구·성문과 여러 천인 및 칠보

궁전과 함께 그 모습을 나투시느니라.


그중에 관세음보살은 금강대를 가지고 대세지보살과 함께 그 수행자 앞에 이르고,

아미타불은 찬란한 광명을 발해서 수행자의 몸을 비추며 여러 보살들과 함께 손을

내밀어 수행자를 영접하시느니라. 그때 관세음보살들과 대세지보살은 수많은 보살들과

함께 수행자를 찬탄하고 그 마음을 더욱 격려하느니라. 수행자는 환희에 넘쳐 뛰놀듯

기뻐하며 스스로 자기의 몸을 돌아보면, 자신은 이미 금강대를 타고 부처님의 뒤를

따르고 있으며 순식간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상호가 원만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뵈옵고 또한 여러 보살들의

훌륭한 모양을 보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광명이 찬란한 보배 나무 숲에서 울려 나오는

미묘한 법문을 들으면 생사를 깨닫는 무생법인의 진리를 깨닫게 되느니라.


그리고 잠시 동안에 두루 시방세계를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들을 예배 공경하고,

여러 부처님 앞에서 차례대로 장차 부처가 될 것을 예언하는 수기(授記)를 받고

다시 극락세계로 되돌아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통 지혜인 다라니문을 얻느니라.

이것을 상품상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상품중생(上品中生)하는 이란, 반드시 대승경전을 배우고 독송하며 외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능히 그 뜻을 알아 최고의 진리에 마음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어 대승을 비방하지 않으며, 이러한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수행자가 그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중 권속들에 둘러싸여 자금의 연화대를 가지고 수행자 앞에

그 모습을 나투시느니라. 그리고 칭찬하시기를 '진리의 아들(法子)이여, 그대는

대승법을 행하고 최고의 진리를 알았으므로, 이제 내가 와서 그대를 영접하느니라' 하시며

일천의 화신불과 함께 일시에 손을 내미시느니라. 그때 수행자가 자기를 돌아보면

자신은 이미 자금의 연화대에 앉아 있느니라. 수행자는 합장하여 여러 부처님을 찬탄하고,

한 생각 동안에 곧바로 저 극락세계의 칠보연못 연화대 위에 태어나느니라.


이 자금의 연화대는 큰 보배 꽃과 같은데, 하룻밤 사이에 꽃이 피면 수행자의 몸은

자금색으로 빛나고 그 발 밑에도 또한 칠보의 연꽃이 있느니라. 부처님과 보살들이

다 함께 광명을 발하시어 수행자의 몸을 비추면 곧바로 수행자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밝아지느니라. 그리고 과거 숙세에 대승법을 익혀 온 공덕으로 극락세계의 바람소리·

새소리·물소리 들이 다 한결같이 깊고 위없는 법문을 연설함을 알아 들을 수 있느니라.


그래서 수행자는 곧바로 연화대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합장 예배하며 찬탄하며 마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하여 7일이 지나면 곧바로 위없는 바른 진리를 깨닫고,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의

자리에 들게 되느니라. 그리고 자유자재로 시방세계에 두루 날아다니며 여러 부처님을 섬기고,

또한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삼매를 닦아서, 1소겁이 지나면 무생법인을 얻느니라.

그래서 친히 부처님에게서 장차 성불하는 수기(授記)를 받느니라.

이것을 상품중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상품하생(上品下生)하는 이란,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하지 않으며,

오직 위없는 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이러한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하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수행자가 목숨이 다하려 할 때는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여러 권속들과 함께 황금의 연꽃을 가지고 오백의 화신불을 나투어

그를 영접하시느니라.
그때 5백의 화신불은 다 함께 일시에 손을 내밀어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아들(法子)이여, 그대는 이제 청정하게 위없는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내가 와서 맞이하느니라' 하시느니라.

수행자가 이러한 일을 뵈옵고 자기의 몸을 돌아보면 이미 황금의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그 순간 연꽃은 오므라들고 부처님을 따라 곧바로 칠보연못에 왕생하느니라.


밤낮 하루를 지나서 연꽃은 다시 피어나고, 7일 동안에 부처님을 뵈올 수 있느니라.

그러나 아직 부처님의 모든 상호를 분명히 뵈올 수는 없으며, 21일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분명히 뵈올 수 있느니라. 그리고 들려오는 모든 음성이 다 한결같이

미묘한 법문을 연설함을 알아 들을 수 있고,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부처님께서 깊고 미묘한 법문을 듣느니라.

이와 같이하여 3소겁이 지나면 온갖 도리를 깨닫고 환희지에 머물게 되는데,

이것을 상품하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위에서 설명한 상품상생과 상품중생과 상품하생 세 종류의 왕생을 관하는 것을 상배(上輩)로 태어나는 것을 관하는 것이라 하고, 열넷째 관이라 하느니라."

똑같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해도 각자의 소원하는 방법이 다르고 종교적 열의에도

강약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까지의 생활태도도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크게 상배·중배·하배 셋으로 나누에 관한 것이 제 14·15·16관이다.


먼저 제14 상배관은 수행자를 그들의 근기에 따라 상·중·하 세 종류로 나누어 상품상생과

상품중생과 상품하생하는 사람들의 관법을 설명하고 있다.

상배관은 대승의 근기로 대승의 선(善)을 닦아서 극락에 왕생함을 관하는 것이다.


상품상생하는 사람은

①지성심과 깊은 신앙심(深心)과 회향발원심의 세 가지 마음을 가진 자,

②자비심을 가지고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불교도로서 계율을 지키는 자,

③대승경전을 독송하는자,

④불·법·승 삼보와 계율과 보시와 천상 등의 육념(六念)을 염원하는 자의 네 종류 사람 가운데

어느 하나에만 해당하면 된다. 언뜻 평범한 선량한 사람이면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것이 정토 왕생인 가운데 제1급에 상당하는 상품상생하는 사람의 관법이다.


이 내용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상품상생의 부류에 속할 것이라 생각하고 좋아하겠지만,

그 판단은 아직 이르며 하품하생까지를 다 읽은 후에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상품상생의 사람은 앞에서 설명한 삼복(三福) 가운데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행으로서

보리심을 내어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는 행복(行福)을 닦는 사람들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상품상생의 사람이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해서 극락에 태어나려고 하면,

아미타불은 최고의 내영왕생 방법으로 마중나와 정토에 왕생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렇게 최고의 내영을 받는데, 그 내영 시기가 그 사람의 임종 때라는

단서가 없다. 즉 상품상생하는 사람만이 왕생하기를 원해서 회향발원하면 1일 내지 7일 사이에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상품중생 이하의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다.


원래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죽은 후에 정토에 영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왕생의 최대의 목적은 보살로서 이 세상을 정화구제하는 것에 있다.

원생정토(願生淨土)라고 하는 것은 '정토에 왕생해서 중생구제에 필요한 능력인

육신통을 얻어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 중생구제를 하게 해 달라'고 하는

아미타불에 대한 서원이다. 이러한 서원을 발보리심이라고도 하지만, 회향발원심이라고도 한다.


정토에 왕생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왕상회향(往相廻向)이라 하고, 정토에서 사바세계로

되돌아가 중생구제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환상회향(還相廻向)이라 하는데,

이 두 가지 회향심을 함께 갖춘 것이 회향발원심이다.

정토는 아미타불의 깨달음에 의해 얻은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업을 청정하게 닦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의 세계다. 그러므로 상품상생하는 사람이 회향 발운해서 왕상과 환상 두 가지

회향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이 생에서 지혜의 힘이 용맹해졌을 때만이 가능하다.

상품중생 이하의 사람은 세상살이에 쫒겨서 임종 때 회향발원심을 내게 된다.


다음으로 상품중생하는 자는 대승경전은 배우고 독송하며 외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인과의 도를 믿어 대승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며, 상품하생하는 자는

인과를 믿고 대승을 비방하지 않으며 오직 위없는 도를 구하고자 보리심을 낸 사람이다.


상배의 세 종류 사람들은 왕생 모습도 각각 다르다. 상품중생과 상품하생은 대체로

상품상생 때와 같은 내영을 받지만, 왕생인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르다. 상품상생은

금강의 연화대 위에 아미타불이 여러 보살들과 함께 손을 내밀어 수행자를 영접하지만,

상품중생은 자금의 연화대 위에 아미타불이 일천의 화신불과 함께 손을 내밀어 영접하고,

상품하생은 황금의 연화대에 5백의 화신불이 손을 내밀어 영접한다. 또한 이들 세 종류의 사람은

정토에 왕생한 후에 얻는 공덕에도 각각 차이가 난다. 상품상생의 사람은 왕생과 동시에

무생법인을 얻고, 상품중생의 사람은 1소겁이 지나야 무생법인을 얻으며,

상품하생의 사람은 3소겁이 지나야 겨우 보살의 십지(十地) 가운데 최소의 단계인 환희지에 든다.

제15 중배관(中輩觀) -중품상생·중품중생·중품하생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중품상생(中品上生)하는 이란, 오계(五戒)와 팔계(八戒)와 다른 모든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고 아무런 허물이 없는, 이러한 공덕을 회향하여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하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수행자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아미타불이

여러 비구들과 권속들에 둘러싸여 금색 광명을 발하며 그 사람 앞에 모습을 나투시느니라.


그리고 고(苦)·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의 진리를 설하시고, 출가한 이가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일을 찬탄하시느니라. 그 수행자가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듣고 나서 환희에 차

스스로 자기 몸을 돌아보면 자신을 이미 연화대에 앉아 있느니라. 수행자는 곧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는니라.


수행자가 미처 머리를 들기도 전에 벌써 극락세계에 왕생하였으며, 그때 바로 그를 싸고

있던 연꽃이 피어나는데, 연꽃이 활짝 열리자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새소리 등 모든 음성들이

한결같이 사성제(四聖諦)의 미묘한 법문을 찬탄함을 알아 들을 수 있느니라. 이 때 수행자는

곧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고 숙명통·천안통·누진통의 삼명(三明)과 육신통(六神通)이 열리며,

여덟 가지 걸림이 없는 해탈(八解脫)을 갖추게 되느니라. 이것을 중품상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중품중생(中品中生)하는 이란, 밤낮 하루 동안 팔계나 사미계를 지키거나 또는 밤낮 하루 동안

구족계를 지켜서 그 거동과 예의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이러한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태어 나고자 원하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계행의 향기가 몸에 밴 수행자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이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금색 광명을 발하며 칠보의 연꽃을 가지고

수행자 앞에 나타나심을 뵈올 수 있느니라.


그때 허공에서 수행자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착한 이(선남자)여, 그대와 같이 선량한

사람은 시방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따랐기 때문에 내가 와서 그대를 맞이

하노라'하시느니라. 그 말을 듣고 수행자가 자기를 돌아보면 자신은 이미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그 순간 연꽃은 오므라져 서방극락세계의 보배 연못 가운데 태어나느니라.


7일이 지나면 연꽃은 다시 피어나는데, 그 연꽃이 피어나면 수행자의 눈도 열리느니라.

수행자는 합장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예배하며 법문을 듣고 나서 기쁨에 넘쳐 바로

수다원(須陀洹)의 꺠달음을 얻고, 반 겁이 지난 뒤에는 아라한이 되느니라.

이러한 것을 중품중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중품하생(中品下生)하는 이란, 선량한 이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자하게

행세하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이 그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 극락세계의

안락하고 장엄한 일들과 법장비구의 48원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목숨을 마치면, 마치 힘센 장사가

팔 한 번 굽혔다가 펴는 동안에 곧바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태어나서 7일이 지나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만나 법문을 듣고 기쁨에 넘치며,

다시 1소겁이 지나면 아라한이 되느니라. 이것을 중품하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중품상생과 중품중생과 중품하생 세 종류의 왕생을 관하는 것을

중배(中輩)로 태어나는 것을 관하는 것이라 하고, 또한 열다섯째관이라 하느니라.

제15 중배관도 수행자를 그들의 근기에 따라 상·중·하로 나누어

중품상생과 중품중생과 중품하생하는 사람들의 관법을 설하고 있다.

이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중품상생과 중품중생은 소승의 근기로 소승의 선(善)을 닦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고, 중품하생은 세간의 근기로서 세간의 선을 닦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품상생하는 자는 오계를 지키고 부모 등을 살해하는 오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고,

중품중생하는 자는 하루 동안 계를 지키고 거동과 예의가 원만한 사람이며,

중품하생하는 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자한 사람이다.

이것을 앞에서 말한 삼복(三福)에 대비해 보면, 중품상생과 중품중생하는 자는

삼보에 귀의해서 계율을 지키는 계복을 닦는 사람들에 해당하고, 중품하생하는 자는

불교 이외의 선(善), 즉 세간에서 행하는 도덕상의 선행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며 살생하지 않고, 열 가지 선업을 닦는 세복(世福)을 실천하는 사람에 해당된다.


중배 삼품의 왕생 모습도 각각 다르다. 중품상생은 임종 때 아미타불의 설법을 듣고

환희하는 가운데 저절로 연화대 위에 올라있고, 중품중생도 아미타불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들면 연화대 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중품하생은 내영이 없다. 9품(九品)의 왕생인

가운데 이 중품하생하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내영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이 사람은 임종 때 선지식에게서 법장보살의 48원의 설법을 듣고 숨을 거두면 즉시로

극락에 태어난다. 흔히 장례식이나 임종 때 <아미타경>을 읽는 풍속은 <관무량수경>의

이 중품하생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상품의 사람이 정토에 왕생한 후에 얻는

공덕에도 각각 차이가 있다. 중품상생의 사람은 왕생과 동시에 소승의 성자인 아라한이 되고,

중품중생은 반 겁이 지난 후에 아라한이 되며, 중품하생은 1소 겁이 지나야 아라한이 된다.


제16하배관(下輩觀)-하품상생·하품중생·하품하생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하품상생(下品下生)하는 이란, 갖가지의 악업을 짓는 중생으로서, 비록 대승의 경전을

비방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탓으로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참회하고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 대승

십이부경(十二部經)의 제목을 찬탄함을 듣게 되느니라. 그래서 그는 여러 경전의 이름을 들은

공덕으로 천겁동안 지은 지극히 무거운 죄업을 멸하느니라. 또한 지혜 있는 이가 그에게 가르치기를

합장 공경하고 아미타불을 부르도록 권하여, 그 말대로 정성껏 부처님의 명호인 아미타불을 부르면

그 염불의 공덕으로 5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를 멸하느니라.


그때 아미타불은 곧 화신불과 화신 관세음보살과 화신 대세지보살을 보내어 그를 칭찬하기를

'착한 이(선남자)여, 그대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여러 가지 많은 죄업이 소멸되었으므로

내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노라.' 하시느니라.


이 말씀이 끝나자 수행자는 홀연히 화신불의 광명이 그의 방에 가득함을 보고 기쁨에 넘쳐

이내 목숨을 마치느니라. 그리하여 보배 연꽃을 타고 화신불의 뒤를 따라 보배 연못 가운데

태어나느니라.


49일이 지나면 연꽃이 피는데 연꽃이 피어나면 자비로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찬란한 광명을 비추며 그 사람 앞에 와서 그를 위해여 깊고 미묘한 십이부경을 설하느니라.

그는 법문을 듣고 나서 깊이 믿고 받들며 보리심을 내느니라. 다시 10소 겁을 지나서,

모든 도리를 밝게 깨닫는 지혜인 백법명문(百法明門)을 갖추고, 보살 십지(十地)의

첫 단계인 환희지에 들게 되느니라. 이것을 하품상생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와 같이 부처님과 불법과 불제자 등 삼보의 이름을 듣고, 삼보의 이름을 들은 공덕으로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느니라.


하품중생(下品中生)하는 이란, 오계나 팔계나 구족계 등을 범하고 또한 어리석은 탓으로

승단이나 스님들의 물품을 훔치며, 또는 자기의 명예나 이익을 위해 설법(不淨說法)을 하면서도

뉘우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갖가지의 악업을 짓고도 도리어 자기 스스로는 옳고 장하다고

뽐내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이 죄많은 사람은 그 악업의 과보로 마땅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목숨이 마치려 할 때는 지옥의 맹렬한 불길이 일시에 몰려 들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때 선지식을 만나 선지식이 큰 자비로써 이 사람을 위해 아미타불의

열 가지 위덕과 광명의 부사의한 신통력을 말해 주고, 또한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 등을 찬탄하면, 이 사람은 그 법문을 듣고 80억 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업을 벗어나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지옥의 맹렬한 불길은

맑고 시원한 미풍으로 변하여 갖가지 천상의 꽃을 날리고 그 모든 꽃 위에

화신불과 화신보살들이 있어서 이 사람을 맞이하느니라.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곧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칠보 연못의 연꽃 속에 태어나느니라.

그 속에서 6겁이 지나면 연꽃이 피는데, 그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청정한 음성으로

그를 위로하고, 그를 위해 대승의 깊고 미묘한 경전을 설하느니라. 그는 이 법문을 듣고 불현듯

위없는 진리를 깨닫는 보리심을 내느니라. 이것을 하품중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하품하생(下品下生)하는 이란, 항상 악업을 짓는 중생으로서 오역죄와 십악(十惡) 등 갖가지

악업을 지어 무거운 죄업의 과보로 응당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한량

없는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말하느니라. 그러나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 선지식이 그를 위해 여러 가지로 위로해 주고 미묘한 법문을 들려 주면서

지성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가르쳐 주지만, 그는 괴로움이 극심하여

부처님을 생각할 경황이 없느니라.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그대가 만일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다면 오로지 아미불의 명호를

부르도록 하라'고 일러주느니라. 이에 그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를 끊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도록 하라'고 일러주니느라. 이에

그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를 끊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十念)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염불하는 동안에 80억 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업을

멸하느니라. 그리고 목숨이 다할 때는 마치 태양과 같은 찬란한 황금의 연꽃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

그는 순식간에 곧바로 극락세계 보배 연못의 연꽃 속에 태어나느니라.


그 연꽃은 12대겁이 지나면 피는데, 그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자비로운 음성으로

그를 위해 일체 만법의 참다운 실상과 모든 죄업을 소멸하는 법문을 자세히 일러주느니라.

그는 미묘한 진리를 듣고 기쁨에 넘쳐 불현듯 위없는 진리를 구하는 보리심을 내느니라.

이것을 하품하생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앞에서 설명한 하품상생과 하품중생과 하품하생 세 종류의 왕생을 관하는 것을

하배(下輩)로 태어나는 것을 관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열 여섯째 관이라 하느니라."

제16 하배관도 수행자를 그들의 근기에 따라 상·중·하 세 종류로 나누어

하품상생·하품중생·하품하생하는 사람들의 관법을 설하고 있다.

이 하배관은 선행을 닦은 일이 없는 악인이라도 오직 지성으로 염불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품상생하는 자는 어리석은 탓으로 온갖 나쁜 죄를 짓고도 참회할 줄 모르면,

오직 임종할 때 선지식이 대승경전의 제목을 찬탄하는 것을 듣고 죄가 소멸되어

나무아미타불이라 염불하는 사람이다. 하품중생하는 자는 출가한 사람 가운데 악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인데, 모든 계율을 범하고 승단의 물품을 훔치고 명예나 이익을 목적으로

설법하고도 뉘우치거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 악업으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임종 때 선지식이 불쌍히 여겨 아미타불의 위덕을 설하면 그 공덕으로

80억 겁의 죄를 벗어나 왕생하는 사람이다.


하품하생하는 자는 언제나 악업을 짓는 중생으로서 오랜 겁 동안 삼악도에 떨어질 사람이지만,

임종 때 선지식이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쳐 줌으로써 이 선지식의 도움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번 불러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하배에 속하는 사람들은 삼복(三福) 조차 닦을 수 없는

오직 악만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하배 삼품의 왕생 모습도 각각 다르다. 하품상생은 임종 때 화신불과 화신 관세음보살과

화신 대세지보살의 영접을 받고, 하품중생은 화신불과 화신보살의 영접을 받으며,

하품하생은 황금의 연꽃이 그를 정토로 안내한다.


또한 정토에 왕생한 후에 얻는 공덕에도 차이가 있다. 하품상생은 10소겁이 지나면

보살 십지의 첫단계인 환희지에 들어가고, 하품중생은 6겁을 지나면 비로소 정토로

타고 간 연꽃이 피어 보리심을 발하며, 하품하생은 12겁이 지나야 연꽃이 피어 보리심을 발한다.


이제 하품하생의 내용까지 다 보았으니,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자.

아마 대부분이 하배 삼품은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른 악인들이기 때문에 이 부류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악이란 행동(身業)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말(口業)이나 생각(意業)으로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선업보다는 악업을

더 많이 짓는 것이 우리 일반 중생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수행하지 않는 일반 범부를

죄악중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죄악중생이라 불리는 이상 우리는 하배에 속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중에서도 하품하생을 보면 임종 때 죽음의 고통이 심해서 부처님을 생각할 경향이 없는

사람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들 가운데 임종 때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염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행이 <관무량수경>에서는 이러한 하품하생의 사람이라도 임종 때 소리를 끊이지 않고

지성으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고 했으니, 평소에 일심으로 염불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극락왕생의 수행방법으로 일상 생활 속에서

세 가지 복(三福)을 짓는 것 외에 구체적으로는 16가지 관법을 권한다.


16관은 죄업을 멸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16가지 관법을 말한다. 16가지 관법 가운데

처음의 13가지 관법은, 일몰을 관(觀)해서 극락정토의 방향과 광명을 관하는 제1의 '일상관'에서

아미타불과 관음·대세지보살의 신상(身相)을 섞어서 관하는 제13의 '잡상관'까지로,

극락세계의 풍경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신상을 관하는 것인데,

설명의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무량수경><아미타경>과 같다.


이 13가지 관법은 어느 것이나 다 산란한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생각을 한곳에

집중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13가지 관법은 일반 사람이 더구나

일상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렵다. 이에 마음이

약하고 생각을 집중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수행자의 능력에 따라 세 종류의 방법으로

나누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을 차례로 관하게 하는 관법이 마지막 3가지 관법,

즉14 상배관·제15 중배관, 제16 하배관이다. 간단히 말하면, 앞의 13관은

그것을 관할만한 수행을 필요로 하고 또한 국토에 대한 열의도 있어야 하지만,

뒤의 3관은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가 평상의 마음 그대로 관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관법을 상배(上輩)·중배(中輩)·하배(下輩)라 부르기도 하며,

다시 이들을 각각 상생(上生)·중생(中生)·하생(下生)의 셋으로 나누어 아홉 종류(九品)로

분류한 것을 삼배구품(三輩九品)이라 한다.

그러면 왜 수행자를 아홉 부류로 나누었을까?

분류의 기준은 세간적인 도덕과 종교적인 신심의 여부에 따른 것으로서,

여기에는 종교적 실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더구나 그것은 위제희부인과 같이 고뇌의 심연에 빠져 있는 인간에게도 실천 가능한 쉬운

수행방법으로서,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읽거나 하는 것도 일반적인 불도수행보다는 쉽지만,

그것보다 더 쉬운 것은 임종 최후에 한 목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다.


인간을 그 성격이나 행위에 따라 아홉 단계로 분류하여 하급으로 내려 갈수록 점점 열악하며,

더구나 그들이 똑같이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최저최악인 하품하생의 사람이라도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상급자의 경우에는 정토왕생을 위해 육념을 하는 것이,

하급으로 내려갈수록 인과를 믿거나 경전의 제목을 듣는 것과 같이 점점 쉽게 되어

최후의 하품하생에 이르면 단지 칭명염불만이라도 외우기만 하면 좋다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의 이름을 외우는 칭명염불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설해진 것이다.

여기에 극악무도한 사람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구제 된다고 하는 정토교의

정토교다운 소이가 있다.


그리고 삼배구품의 내용, 즉 수행자의 수행정도를 설한 것을 관법으로 삼는 이유는,

자기와 부처 또는 자기와 정토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듯이, 타인의 수행내용을 관(觀)해서 자신의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자신도 그렇게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

관법의 내용으로 삼은 것이다.
<관무량수경>을 상세하게 해석한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 선도(善導)는 이 마지막 3관

(삼배구품)을 혼란스러운 마음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 하여 산선관(散善觀)이라 하고,

앞의 13관은 마음을 안정하고 상을 고정해야 하는 것이므로 정선관(定善觀)이라 하였다.


삼배구품의 사고방식은 <무량수경>의 삼배왕생(三輩往生) 사상에 근거하여, 이것을

부연해서 상세히 설명했다고 볼 수 있기에 <관무량수경>은 <무량수경>의 강한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삼복설은 원시불교에서의 보시·지계·수정의

세 종류 복덕행(三福業事)이 발전한 것이로 추정되며, 또한 13가지 관법은 <반주삼매경>의

정중견불(定中見佛) 사상을 이어 받은 것으로서 <무량수경>과는 상당히 다른 시점에서

정토사상을 설한 것이라 본다.
<무량수경>의 삼배왕생과 <관무량수경>의 구품왕생의 상위점은 먼저 구품왕생에는

삼배왕생에 있는 '내지 일념'이나 '내지 십념'이라는 염불이 없다.


<관무량수경>의 하품상생은 선지식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하고, 하품하생은

선지식이 마찬가지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염불하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준해서 하품중생도 염불한 다고 보면, 나머지 상품상생에서 중품하생까지는

아미타불을 염불 하는 것이 없다. 더구나 하배의 삼품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면

80억 겁이라는 긴 세월을 생사에 유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죄가 소멸하기 때문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관무량수경>의 내용은 자칫 잘못 이해하면 죄를

저지르고는 염불로 그 죄를 멸할 수 있다고 이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염불이란 원래 신앙자의 생활을 정화해 가는 의의를 지닌 것으로서 신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의 죄업과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위의 내용은 고대 인도의

부인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구품왕생처럼

엄밀히 말해서 염불이 없는 왕생을 설하는 것은, 형식적으로야 어떻든 내용적으로는

<무량수경>의 삼배왕생과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무량수경>의 구품왕생에서는 왕생한 후의 과보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법장비구의 48원에는 왕생 후의 과보에 차별이 없으며, 또한 <무량수경>의

삼배왕생에도 왕생 후에 얻는 지혜·용맹·신통자재에 상·중·하 차등을 두지만,

구품왕생처럼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정토에 태어나면 평등하게 그 과보를 받는 것이

아미타불의 서원이므로, <관무량수경>에서 그 과보에 차등을 둔 것은 어디까지나

왕생자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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