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7. 14:23ㆍ경전 이야기
3. 관무량수경의 편찬과 구성
장휘옥 著/불교시대사/자료입력:김수남
관무량수경의 편찬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 비해 <관무량수경>은 약간 사정이 다르다.
이 경은 산스크리트본이나 티벳역이 없고, 한 종류의 한 역과 현재 위글어역의 단편(斷片)이 있을 뿐이며, 내용적으로도 <무량수경>이나 <아미타경>보다 발달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경이 인도에서 편찬되었다고 하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영역으로는 강량야사가 번역한 <관무량수경>을 막스 뮐러와 다카쿠스 준지(高楠順次)로가 공역한 것이 <동방성서> 제 49권에 실려 있다.
경전목록에는 한역 두 종이 있었다고 한다.
① <관무량수경>(<관경>이라 약칭) 1권, 강량야사역(畺良耶舍, 劉宋, 424~453년) 현존.
② <관무량수경> 1권, 담마밀다역(曇摩蜜多, 유송, 424~443년)결본.
이외에도 수나라 비장방(費長房)이 지은 <역대 삼보기>에는 후한시대의 실역과 동진시대 실역(失譯)의 <관무량수경> 1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역대삼보기>의 찬술자가 잘못 기록한 것이라 한다.
또한 결본인 담마밀다역도 강량야사의 전기와 혼동하여 담마밀다에게도 <관무량수경>의 번역이 있었던 것처럼 잘못 전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관무량수경>은 강량야사가 번역한 것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무량수경>을 강량야사가 번역(424~453년경)했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 경은 400년경까지는 성립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렵 인도에서 이 경이 편찬되거나 유행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관무량수경>은 어디서 성립되었을까?
<관무량수경>은 인도나 티벳에 원전이 없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나 중국의 불교권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중앙아시아 찬술설의 근거는 이 경이 <관불삼매해경> (불타발타라역)·<관보련보살행법경>(담마밀다역)·<관허공장보살경>(담마밀다역)·<관약왕약상이보살경>(강량야사역)·<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등 '관불(觀佛)'을 설하는 한 무리의 먼저 번역된 경전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 경전의 번역자가 중앙아시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경 전체를 볼 때 거대한 불·보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 이 경의 찬술자는 대불상에 대해 보고 들은 적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추정하는데, 중앙아시아에서는 400년 전후에 이미 대불상(大佛像)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 찬술설의 근거는 그렇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경전이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무량수경>이 당시 이미 존재하였다는 점에서, <관불삼매해경>등 광불을 설하는 위의 여러 경전과 마찬가지로 5세기 전반에 선관(禪觀)의 실천이 요구되고, 도교에 대항하기 위해 선관의 대가가 제작한 것이라고 보는 설이다.
<관무량수경>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중국적 요소가 보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찬술되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역시 이 경의 중요한 부분은 중앙아시아의 토루황 주변에서 행해지던 관불법(觀佛法)을 전한 것으로서, 다만 강량야사가 번역할 때에 여러 가지 한역 경전을 참조하면서 사상이나 표현 등에 중국적인 색채를 가미했을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관무량수경>은 정토삼부경 가운데서 가장 늦게 성립하였고, 내용적으로 <무량수경>이나 <아미타경>과 상당히 차이가 있으며, 인도에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 선도(善導)가 <관물야수경소>라는 방대한 분량의 주석서를 찬술한 후부터 중국·한국·일본의 정토교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하였다.
관무량수경의 내용과 구성
<관무량수경>의 내용적 특징은 한마디로 관(觀), 즉 관찰·관상(觀想, 觀相)이며, 특히 정토와 불신(佛身)과 인간에 대해 관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법을 설하기 전에 <관무량수경>은 인간의 삶에 얽힌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관법을 설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내용은, 석가모니가 기사굴산에 계실 때 왕사성에 큰 비극이 일어났다.
태자 아자세가 부친 빈비사라왕을 감옥에 가두고, 모친 위제희부인까지도 살해하려고 왕궁의 깊은 곳에 유폐시켜 버렸다.
이에 위제희부인의 소운에 따라 부인의 처소에 나타나 광명을 발하여 시방세계의 정토를 보여 주자, 위제희부인은 그중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을 원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간청했다.
이에 석가모니는 부인을 위해 삼복(三福)과 16관(觀)을 설하였다.
위제희부인은 이 설법을 듣고 진리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았으며, 5백 명의 시녀들도 무상보리심을 발하여 극락왕생을 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중국의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이나 가상사(嘉祥寺) 길장(吉藏) 등 여러 주석가들은 서분·정종분·유통분의 삼분과를 사용하나, 정토교의 선도는 서분·정종분·득익분(得益分)·유통분·기사분(耆?分)의 오분과로 나눈다.
서분과 정종분과 유통분은 '무량수경의 내용과 구성'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생략한다.
'득익분'이란 위제희부인과 5백 명의 시녀들이 16관을 모두 들은 후 크게 깨달아 위제희부인은 무생법인을 얻고, 5백 명의 시녀들은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얻어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했다는 것을 설한 부분을 가리킨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것을 정종분에 넣어 따로 분리하지 않았으나, 선도는 위제희부인과 5백 명의 시녀들의 득익은 16관 전체를 듣고 얻은 것이 아니라, 제7 화좌관을 설법할 때 아미타불이 공중에 출현하신 것을 예배해서 얻은 것이라 해석하여 이것을 명확히 알리기 위해 득익분으로 분리했다고 한다.
'기사분'은 석가모니가 왕사성의 설법을 마치고 기사굴산으로 되돌아왔을 때 아난존자가 석가모니가 왕사성에서 설한 내용을 다시 기사굴산의 여러 대중들에게 들려준 부분을 말한다.
이 경은 왕사성 내의 설법과 기사굴산에서 한 부연설법 2회로 되어 있으므로 1경2회(一經二會)라 부른다.
선도의 오분과에 의한 <관무량수경>분류는 뒷장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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