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8장 인도의 정토사상 - 1. 정토사상의 흥기와 배경

2013. 8. 27. 14:25경전 이야기

 1. 정토사상의 흥기와 배경

 

 

                                                                                        장휘옥 著/불교시대사

 

인도의 정토사상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나 연구성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성립시기

 

먼저 고고학적 근거로 성립시기를 추정해 보면, 근년에 인도의 마투라 교외에서 쿠산왕조(1세기 중엽~3세기 중엽)의 후비시카왕 시대의 명문(銘文)이 새겨진 아미타바 불상의 대좌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2세기경에 이미 인도 본토에 아미타불 신앙이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또한 인도 내외의 문헌을 조사해 보면, 인도교(印度敎)의 대표적 문헌인 <바가바드기타>에는 정토경전과 사상적으로 관계가 있었다고 불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만일 <바가바드기타>의 성립 연대를 기원후 1세기경이라 추정한다면, 정토경전도 일단 그 무렵에 성립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또한 상당히 많은 대승경론에 정토사상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초기대승 불교시대에 정토사상이 성립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한 예로 기원 전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하다고 하므로, 산스크리트본의 <무량수경>이나 <아미타경>도 <법화경>의 유포와 비슷한 시기에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대지도론>이나 <십주비바사론>은 정토사상을 언급한 중요한 논서인데, 이 두 논서가 용수(龍樹, 150~250년경)의 저술이 분명하다면 (<대지도론>의 저자에 의문 제기) 정토사상이 용수가 생존했던 2,3세기에는 상당히 발달한 형태였을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외에도 <무량수경>의 초기형태를 보이는 <대아미타경>이 <법화경>이나 <화엄경>보다 오래 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으며, 그중에는 최초기의 대승경전인 <소품반야경>이나<반주삼매경>보다 오래 되었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무량수경>의 원초형태는 대승불교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가 언제 홍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로 기원 전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므로, 정토사상도 기원 전후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위와 같이 다른 경론과 비교해서 성립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실마리는 역시 중국의 역경사(譯經史)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제2부 제1장 '1.무량수경의 편찬과 구성'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무량수경>의 한역은 현재 다섯 종이 전하는데, 그중 가장 오래 된 <대아미타경>을 지겸이 223년 (혹은 222)년부터 228년(혹은 253)에 번역했다고 하므로, <무량수경>의 초기경전은 인도에서 늦어도 200년 전후에는 성립되었다고 본다.

 

게다가 후한시대의 지루가참이 179년에 번역한 <반주삼매경>에 이미 아미타불에 관한 부분이 있으므로, 정토사상의 성립은 <반주삼매경> 번역 이전, 즉 150년경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이 연대를 위의 초기 <무량수경>의 성립과 비교해 보면, 정토사상의 원초형태의 성립은 이것보다 더 이전인 1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성립지역

 

역경사상의 여러 가지 사실은 정토경전의 성립지역을 추정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량수경>의 번역자는 물론, 아미타불에 관해 언급한 경전을 번역한 사람들의 출신지를 보면 북인도나 서역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정토경전 가운데서 소위 고역(古譯)이나 구역(舊譯)에 속하는 여러 본들의 음역어(音譯語)를 보아도 그 원어가 간다라어 혹은 그것에 가까운 언어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강승개역 <무량수경>의 번역말(了本際, 正願과 같은 불제자 이름) 가운데서 간다라어와의 관계를 증명하려는 설까지도 발표되고 있다.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본의 게송에 나타나는 언어를 보아도 간다라어와의 공통성을 나타내는 특징적인 언어현상이 보인다.

 

간다라어란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경까지 서북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중앙아시아의 천산남로(天山南路) 지역에서 사용하던 속어다.

 

이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정토사상은 서북인도에서 성립하여 일찍이 중앙아시아에까지 유포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토사상의 성립 연대와 지역을 위와 같이 추정한다면, 그 시기는 인도의 쿠산왕조 시대에 해당한다.

 

쿠산왕조 시대에는 로마나 헬레니즘 세계와의 무역이 활발하여 서방에서 다량의 금이 유입되고 인도의 상업자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정토경전에서 극락정토의 모습이 황금이나 보석 등의 장식으로 화려하게 묘사되거나 호상(豪商)이나 자산가들이 유력한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경전마다 서술방식이 다르고, 소재에 따라 다른 원류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엄밀히는 여러 각도에서의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이와 같이 정토경전 자체에서도 그 사회적 기반이 쿠산왕조에 있었다는 것을 무리없이 찾을 수 있다.

 

 

정토사상을 성립시킨 사람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정토사상을 어떤 사람들이 형성하고 지지하였는가다.

 

정토경전을 보면 정토경전이 설하는 대상은 다른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소위 양가(良家)의 자녀인 선남자와 선녀인, 그리고 출가자와 재가자 양쪽 모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대승경전 편찬자들과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편찬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토경전에서는 '보살의 집단'이나 불탑신앙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부파교단과는 다른 집단으로서 주로 불탑신앙에 근거를 두고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인도에서 정토사상을 성립시킨 사람들은 초기대승 불교의 지지자와 공통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서, 종래 부파불교의 출가집단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사람들이었다고 추정한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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