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8장 인도의 정토사상 - 5. 정토사상의 변용

2013. 8. 27. 14:26경전 이야기

 5. 정토사상의 변용

 

 

                                                                              장휘옥 著/불교시대사  

 

인도에서는 정토경전의 중심사상의 전개와 다른 형태로도 사상의 전개가 있었다. 이것은 정토경전의 사상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정토사상의 변용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대승경론을 보면 정토삼부경 외에도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에 관해 설명하는 경론이 상당히 많은데,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250부를 넘는 경론이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이것은 한역에 대한 계산으로서 실제로는 같은 내용의 책이라도 번역자가 다른 것도 많으며, 현재 남아 있는 산스크리트본에 의해서도 그 대부분이 어떠한 형태로든 정토사상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법화경>이나<화엄경>과 같이 초기의 중요한 경전인 산스크리트본에 아미타불인 극락왕생의 사상이 언급되어 있으며, 또한 시대가 내려가 5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이는 대승의 중요 논서인 <보성론(寶性論)>의 산스크리트 원전에도 마지막에 아미타불을 뵙고 싶다는 게송(회향게)이 실려 있다.

 

이것들은 정토사상이 인도의 대승불교 시대에 널리 유행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 대승의 여러 경론에 나타나는 아미타불과 정토에 대한 견해가 반드시 정토경전에서 설하는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불의 전생설화로서 법장비구의 설화가 설해져 있지만 이것을 다른 경전에서 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미타불의 전생설화는 여러 경전에서 대략 16종류가 발견되지만 모두 법장비구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들 사이에서도 각각 내용을 달리한다. 이것은 같은 아미타불이라 하더라도 경전에 따라 그 이해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더구나 이것은 각 경전의 편찬자가 당시 유행하던 정토사상을 적당히 도입해서 자신들의 경설의 선양을 위해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든 정토사상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상당히 변용되어 전래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한다.

 

정토사상의 변용 가운데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밀교에서의 정토사상이다.

 

인도불교가 종합적으로 밀교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 주는 그대로이며 정토사상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밀교 속에 정토사상이 언제 도입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역경사에서 보면 이미 3세기경부터 아미타불과 관계 있는 다라니 경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출생무변문다라니(出生無邊門陀羅尼)>는 역경사에서 보면 223~258년경에 지겸(支謙)이 번역한 후 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9회나 한역되었다.

 

한편 티벳역도 어떤 점에서 보면 적어도 3세기경부터 인도에서 유통되었던 경전이라 생각하는데, 그 가운데 아미타불의 전생을 언급하여 아미타불이 일찍이 이 다라니를 수지했음을 설한다.

 

시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대체로 6,7세기경에는 아미타불을 주제로 하는 다라니도 나타났다.

 

처음에는 간단한 형태였지만 나중에는 불공(不空, 705~774)이 번역한 <무량수여래관행공양의궤>에 보이는 '무량수여래근본다라니'와 같은 형태로 증보되었다고 추정한다.

 

내용적으로는 아미타불의 무량(amita)한 성격을 감로(甘露)나 불사(不死, amrta)에 비유해서 이것을 반복적으로 찬송한 것으로서, 아미타불을 이미 밀교화해서 이해하고 있다.

 

7세기 후반에 들어가면 밀교의 근본경전인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편찬되는데 이들 가운데도 아미타불이 도입되었다.

 

여기서는 아미타불을 밀교의 교주인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다섯 부처님 가운데 한 분으로 간주하므로, 이미 정토사상이 완전히 밀교에 흡수되었음을 말해 준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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