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토불교의 세계 / 제9장 중국의 정토사상 - 1. 정토사상의 세가지 흐름

2013. 8. 27. 14:27경전 이야기

 

 1. 정토사상의 세가지 흐름

 

 

                                                                                     장휘옥 著/불교시대사  

 

중국의 정토사상은 후한·삼국시대에 정토관계 경전의 번역에서 비롯되었다.

 

영제(재위 168~188년) 광화 2년(179)에 지루가참(支婁迦讖)과 축불삭(竺佛朔)이 공동으로 <반주삼매경>을 번역했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정토관계 번역이 효시다.

 

이 책에는 아미타정토의 장엄에 관한 설명은 없지만 전념함으로써 서방 아미타불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소위 삼매견불(三昧見佛)의 방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같이 정토관계 경전의 번역으로 시작된 중국정토사상은 대체로 세 흐름을 통해 그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334~416)이 창시한 백련사의 흐름으로서 <반주사매경>에 근거하여 견불을 목적으로 염불삼매를 닦는 계통이고,

 

둘째는 소위 정토삼부경을 중심으로 담란(曇鸞, 476~542)을 시초로 도작(道綽, 562~645)을 거쳐 선도(善導, 613~681)가 대성하여 회감(懷感, 시대불명, 8세기경)·소강(少康, ?~805)으로 이어진 흐름이며,

 

셋째는 자민삼장(慈愍三藏) 혜일(慧日, 680~784)이 제창한 선·정토·계율을 병행해서 수행하는 흐름으로서, 중국후대 여러 종파들의 사상이 융합하는데 영향을 미친 계통이다.

 

위와 같이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는 방법은 일본 정토교의 개조 법연(法然)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서, 중국불교에서는 이외에도 정토사상과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도 굳이 세 가지 흐름을 들어 설명하는 이유는 중국정토사상의 개요를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정토사상 그 자체의 깊이를 드러내는 점에서는 두번째 흐름이 중요하다.

 

中國에 정토경전이 사상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토삼부경 가운데 가장 먼저 번역(3세기 중엽, 이 책의 제2부 제1장 '1.무량수경의 편찬과 구성'참조)된 <무량수경>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아미타불에 전념함으로써 부처님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 소위 견불사상을 설하는 <반주삼매경>을 일찍이 179년에 지루가참과 축불삭이 번역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이 경전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염불결사인 백련사(白蓮社) 운동을 생각해 보면 그 영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튼 2세기 중엽에 <무량수경>이 전래·번역된 후 5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정토삼부경은 물론 담무참역의 <비화경>이나 각현역의 <관불삼매해경>과 함께 <십왕생아미타불국경>이나 <약사유리광경>등 의위(疑僞)경전까지 번역되어 이들 경전을 통해 서방왕생을 기약하거나 아미타불상을 만드는 사람도 나타났으며, 이와 함께 정토사상은 중국땅에 확실히 정착하였다.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이 성하자 진(晋)에서 남북조시대에 걸쳐 많은 불상이 건립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아미타불상을 만든 사람은 동진시대의 지도림(支道林)이 가장 최초인 듯하며, 축도린(竺道隣)도 동진시대의 홍녕 연간에 아미타불상을 만들었다.

 

북위시대 493년에 수도를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용문석굴을 개착하였는데, 미륵불상과 함께 많은 아미타불상도 조성하였다.

 

불상에 새겨진 조상명(造像銘)을 통해 조상의 동기나 신앙 등을 추정할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상은 미륵임에도 불구하고 아미타정토를 원한다고 한 것도 있으므로, 아직 도솔천과 극락정토의 구별이 불분명함을 알 수 있다.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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