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다도의 문화사] 3. 고려의 다도 - 차의 찬미를 통해 본 이규보의 삶

2014. 3. 1. 03:14차 이야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차의 찬미를 통해본 이규보(李奎報)의 삶

 

    다도가 고려 지배층의 문화로 자리잡아가면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훌륭한 다인(茶人)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차를 주제로 한 수많은 시작(詩作)을 남긴 바 있다. 특히 고려시대 이후로 승려나 문인들 사이에서 차가 소중한 선물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차를 선물 받은 이들은 다시로써 하답하는 풍속이 유행하였기 때문에 상당 수의 다시가 전해오고 있다.

 

  먼저 고려 중엽의 대표적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와 자연을 벗하면서 삶을 관조하는 다선일치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다시(茶時)를 여러 편 남김으로써 다도의 역사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이규보는 술을 즐기고 차에 심취하면서 풍류와 자적의 도를 즐겼는데, 그가 남긴 “일생에 남길 것은 차 마시고 술 마시는 일(喫茶飮酒遺一生 往來風流縱此時)”이라는 글귀는 이러한 풍류의 삶을 잘 말해주고 있다. 때로 차를 찬미하는 시 속에 술을 함께 거론하면서, 술과 비교할 수 없는 차의 경지를 즐겨 읊기도 하였다.

 

  특히 지기(知己)인 설봉산(雪峰山) 노규선사(老珪禪師)로부터 조아차(早芽茶)를 선물받고 「유다시(孺茶詩)」를 비롯한 8편의 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유다시」라 한 것은 노규선사가 조아차를 그에게 보이면서 유차(孺茶)라 이름 붙이고 시를 청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먼저 노규선사의 청에 의해 지은「유다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다시」

화로의 센 불에 손수 차를 달여

찻잔 빛깔과 차맛이 서로 버기네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애기 같도다

긱다와 음주로 평생을 보내면

오며가는 풍류는 이로부터 시작되리니

적적한 방장엔 한 물건도 없고

숲속에서 들리는 생황소리를 즐기네

차의 품격과 물을 평하는 것이 가풍일 뿐

어찌 양생하며 천세의 영화를 바라리오

서생의 굶주림이 장류 흐르듯 해도

입과 배에 곡기만 들어가면 되리니

만일 내게 보낸 유차(孺茶)가 아주(雅酒)보다 나음을 알면

이는 참으로 우리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리

 

 

 


「孺茶詩  유다시」

 

塼爐活火試自煎   전노활화시자전

手點花甕誇色味   수점화옹과색미

黏黏入口脆且柔   점점입구취차유

有如乳臭兒與稚   유여유취아여치

喫茶飮酒遺一生   긱다음주유일생

來往風流從此始   내왕풍류종차시

蕭然方丈無一物   소연방장무일물

愛聽笙聲壺鼎裏   애청생성호정리

評茶品水是家風   평다품수시가풍

不要養生千世榮   불요양생천세영

書生寒餓長流涎   서생한아장류연

只將口腹營甘旨   지장구복영감지

若遺孺茶生雅酒   약유유다생아주

勝事眞從吾輩始   승사진종오배시


    이 「유다시」를 읽은 손득지(孫得之). 이윤보(李允甫). 왕숭(王崇). 김철(金轍). 오주경(吳株卿)등이 이규보에게 화답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차의 연원에 밝아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시를 썼다고 한다.

   또한 이규보는 ‘차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취해 보아야 한다’며 노규선사에게 봄술 빚기를 권하는 시를 지어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그가 노규선사를 만나러 암자로 찾아갔을 때 선사가 이규보를 위해 술을 내놓자, 이를 사양하면 쓴 「방엄사(訪嚴師)」라는 시가 있다.

 

 


「엄선사를 찾아뵈며」

 

내 오늘 산가 찾아 술을 마심이 본래 뜻 아닌데

매양 술자리 베푸시니 부끄럼 겹쳐 비할 데 없네

스님의 높은 뜻은 오직 차를 마시게 함이라

몽산(蒙山)의 차로 혜산(惠山)의 물을 달여

한잔 주고 마심에 점차 현묘한 지경에 이르니

이런 즐거움 진실로 청아한데 어찌 혼몽히 술에 취하랴

 

 


「訪嚴師  방엄사」

 

我今訪山家 飮酒本非意   아금방산가 음주본비의

每來設飮筵 顔厚得無比   매래설음연 안후득무비

僧格所自高 唯是茗飮耳   승격소자고 유시명음이

好將蒙頂芽 煎却惠山水   호장몽정아 전각혜산수

一甌輒一話 漸入玄玄旨   일구첩일화 점입현현지

此樂信淸淡 何必昏昏醉   차락신청담 하필혼혼취


    다음으로, 고요하고 적막한 산정(山亭)에서 차를 끓이면서 여러 가지 상념을 읊은 흥미로운 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찻물 끓이는 도구인 철병(鐵甁)의 생김새를 여러 동물에 비유하면서 유쾌하고 재미있게 묘사하기도 하고,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신선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호방한 삼매경의 경지를 읋은 시가 있다.

 

 


「남인이 보낸 철병에 차를 달이며」

 

  센 불로 강한 쇠 녹여내어 이처럼 단단하게 만든 멋진 철병 차솥

  네 긴 목은 학이 우러러 보는 것 같고 불룩한 배는 성낸 개구리와 같구나

  손잡이는 뱀꼬리 굽은 듯 모가지는 딱따구리 목인 듯하고

  입 작은 항아리처럼 움푹하니 다린 긴 솥보다 안정감이 있구나

  우리는 문원재(文園才)는 없어도 부질없이 문원병(文園病)에 걸려

  오롯한 생각 끝에 술 빚는 시동 불러 빚은 술 중지케 하였노라

  비록 양자강 물은 없어도 복건성(福建省) 차(茶)는 있으니

  납작머리한 노복에게 얼음 깨고 청수 길러오게 하였도다

  하여 내 손으로 스스로 화롯불 피우니 밤 누각엔 등불만 찬란하고

  물 끓는 소리 쉰 목소리 같더니 점점 은은한 피리소리 되는구나

  차와 물과 불이 함께 익으니 일곱 잔을 마셔도 오히려 모자라

  차 마시는 것으로 깊은 낙을 삼으니 어찌 날마다 술에 취하랴

 

 


' 得南人所餉鐵甁試茶   득남인소향철병시다 '

 

猛火服悍鐵 創作此頑硬  맹화복한철 창작차완경

喙長鶴仰顧 腹脹蛙怒迸  훼장학앙고 복창와노병

柄似蛇尾曲 項如鳧頸癭  병사사미곡 항여부경영

窪却小口甀 安於長脚鼎  와각소구추 안어장각정

我無文園才 徒得文園病  아무문원재 도득문원병

唯思喚酩奴 已止中酒聖  유사환명노 이지중주성

雖無揚姜水 有福建溪茗  수무양강수 유복건계명

試呼平頭僕 敲江寒氷井  시호평두복 고강한빙정

塼爐手自煎 夜閣燈火炯  전로수자전 야각등화형

初如喉聲哽 漸作笙韻永  초여후성경 점작생운영

三昧手已熟 七勤味何並  삼매수이숙 칠근미하병

持此足爲樂 胡用日酩酊  지차족위락 호용일명정



   이규보의 유명한 다선시 가운데 하나로서, 차를 가는 맷돌을 선물 받고 그것으로 녹차를 갈아 마시며 고마움을 읊은 「사인증다마(射人贈茶磨)」라는 시가 전한다.

 

 


「차맷돌 보낸 이에게 감사하며」

 

돌을 쪼아 바퀴 하나 이루었으니

빙빙 돌리는 덴 한 팔을 쓰는구나

그대도 차 마시지 않으랴만

어찌 나의 초당에 보내주었나

특히 내가 잠 즐기는 줄 알아

이것을 나에게 부친게지

맷돌 갈수록 푸른 향기 나오니

그대의 뜻 더욱 고맙네그려



「射人贈茶磨  사인증다마」

琢石作孤輪 廻旋煩一臂  탁석작고륜 회선번일비

子豈不茗飮 投向草堂裏  자기불명음 투향초당리

知我偏嗜眠 所以見奇耳  지아편기면 소이견기이

硏出綠香塵 益感吾子意  연출녹향진 익감오자의


   그런데 이규보는 현실과 유리된 선비의 삶만을 누린 것이 아니라, 차를 둘러싸고 백성들에게 가해진 폐해에 대해 비판적인 시를 남기고 있다. 아래 시를 통해 고려시대부터 지리산 인근에 사는 백성들이 차를 공물(供物)로 올리기 위해 시달려왔음을 알 수 있다.


  옛일 생각하니 서러운 눈물 나누나

  운봉의 독특한 향취 맡아보니

  남방에서 마시던 맛 완연하네

  이에 화계에서 찻잎따던 일 논하는구나

  관에서 감독하여 어린이 노인 가리지 않고 징발하네

  험한 산비탈 누비며 간신히 따 모아

  머나먼 서울까지 등짐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고혈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이룬 것이네

  한 편 한 구절이 모두 뜻 있으니

  시의 여섯 가지 뜻 이에 갖추었구나

  농서의 거사는 참으로 미치광이라

  한평생을 이미 술 나라에 붙였다오

  술 얼근하매 낮잠이 달콤하니

  어이 차 달여 부질없이 물 허비할쏜가

  천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마련하니

  이런 이치 알고 나면 참으로 어이없구나

  그대 다른 날 간원(諫院)에 들어가거든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하게나

  산과 들의 차나무 불살라 차 공납 막는다면

  남녘 백성들 편안함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懷舊悽然爲酸鼻   회구처연위산비

品此雲峯味嗅香   품차운봉미후향

宛如南國曾嘗味   완여남국증상미

因論花溪採茶時   인논화계채다시

管督家丁無老稚   관독가정무노치

瘴嶺千重眩手收   장영천중현수수

玉京萬里赬肩致   옥경만리정견치

此是蒼生膏與肉   차시창생고여육

臠割萬人方得至   연할만인방득지

一篇一句皆寓意   일편일구개우의

詩之六義於此備   시지육의어차비

隴西居士眞狂客   농서거사진광객

此生已向糟丘寄   차생이향조구기

酒酣謨睡業已甘   주감모수업이감

安用煎茶空費水   안용전다공비수

破却千枝供一啜   파각천지공일철

細思此理眞害耳   세사차리진해이

知君異日到諫垣   지군이일도간원

記我詩中微有旨   기아시중미유지

焚山燎野禁稅茶   분산료야금세다

唱作南民息肩始   창작남민식견시

 

 

 

 

                                     - 다음 카페 <선다향> 泥蓮華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