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예의 발달과정

2013. 5. 14. 11:48글씨쓰기

 

 

 


서예 개요

 

 

━개론

 

ㅇ동양예술의 한분야인서예는 달리서도라고도 한다.

ㅇ이 서예는 중국에서 후 한 이래 종이의 발명, 붓 개량으로 성행하기 

  시작하여‘위/ 진나라’에 이르러 ‘왕희지’ 부자의 출현으로 ‘왕희지체’가 등장하면서부터 전성기를 이루었다.

ㅇ이러한 한문 글씨체를 판독하여, 역사유물을 감별하는 학문을 ‘금석학’이

  라고 한다.

 

 

━중국 형 서체 갈래

 

ㅇ전서체: 우리가 대하는 ‘한문옥편’의 글씨체를 말하며,

  달리 ‘전자체’라 한다.

 

ㅇ예서체: 중국 진나라 때에 ‘운양’ 지방의 옥리(교도서 관리)인

 ‘정막’이 ‘전서체’의 번잡 한 것을 생략해 만들었다.

 

        ㅇ행서체: ’해서체초서체의 중간 정도의 글씨체를 말한다.

 

ㅇ초서체(오늘날의 속기 체)

━흘리어 쓰는 글씨체를 말하며 달리 ‘흘림체’라고도 한다.

한문의 획순이 너무 많아 여러 번 획을 그어야하는 불편함을 덜

자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로 한 획으로 한자 1글자를 흘리어

쓰도록 되어있다.

 

 

      ━한국형 서체갈래

 

ㅇ해서체

━이는 중국형 서체인 ’예서체’에서 발달 한 것으로, 보통 붓글씨

  하면 이 글씨체를 말하고, 한글을 쓸 때에 대체로 이 글씨체를

  이용한다.

흔히 ‘한석봉 글씨체’라고하며 달리 ‘해자체/ 진서체’ 등으로

불린다.

 

        ㅇ궁서체

━중국 형 서체에서 흘림체로 ‘초서체’가있다. 그런데 한글에서도

  ‘흘림체’가있는데, 이는 ‘초서체’와 같은 ‘속기 체’가아니다.

획순은 그대로 두고 다만 그 글씨체를 흘려서 쓰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궁서체’라고하며 조선시대에 있어 궁궐에 있는 여인들이

사용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와의관계

ㅇ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서예에 능한 이의 필적은 현재 전하는

  문화재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특히, 예술분야의 문화재중에는 더욱 그러하다.

 

       비석에 있어 비문, 각종건조물의 이름을 알리는 편액(현판) 등이

    바로그것이다.

       목판 또는 금속활자의 자체 또한  글씨와 관계 하지 아니하고는 역사 그 자체도 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서예 글체(시대별)

 

━고려시대서체

 

ㅇ고려초기에는 ‘구양순체’와 ‘왕희지체’가유행하였고, 후기에는

  송설체(조맹부체)가 유행하였다.

 

           ㅇ 이 송설체는 충선왕이 중국에서 ‘송설 조맹부’와 교제 하면서

           익혔다가, 귀국하여 고려에 전래시킨 글씨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송설체의 대가 꼽히는 이는 고려 충선왕 때의

     ‘이암’ 등이 있는데, 그는 송설체의 정신을 얻은 동방 최초의

      인물로 불리었다.

 

            ━조선시대서체

 

①개요

 

ㅇ글씨를 ‘서예’라 하여 매우중요시하였다.

  고려 말 이래 원나라 ‘조맹부’의‘송설체’가 유행하였고,

  후기에는‘추사체’라는 한국형 글씨체가 등장하였다.

           ㅇ송설체의대표자는 ‘안평대군’이었다. 명종 때의 ‘양사언’은 초서,

              선조 때의 석봉‘한호’는 해서, 중종 때의 ‘김 유’는 ‘인수체’로

              유명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김정희/ 신위/ 조광진 등이 명필로써 이름을 떨쳤다.

 

          ② 양송체 

 

           ㅇ율곡 학파의 양대 수장이었던 우 암 시열(1607~1689년)’과 동춘 준길(1606~1672년)의 글씨체를 합하여 ‘양송체’라고 한다.

 

 


서예가

 

━신품 4

 

  ㅇ신라인 김생,

 고려인으로 문종 때 유신, 인종 때 탄연, 고종 때 최우등이다.

 

-신라서예가

 

①김 생

  ㅇ   서예의 정도가 신의경지에 이르렀다는 ‘신품4인’ 중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서예의 원조(해동필가 원조)로서 ‘해동서성’으로 불리

운다.

            ㅇ    한편 고려왕조에 들어 고려사신 ‘홍관’이 중국 송나라에 갈 때에 ‘김생’ 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나라에서는 ‘왕희지’에 비할 만한 천하 명필 이라 극찬하였다한다.

 그 후로 중국사신은 김생 필적을 보배로 알고 이를 구하여 귀국하였다한다.

            ㅇ    남긴 필적= 백률사 석당기(경주분관), 백월서운탑비(경북영천),

             창립 비(경북경주)

 

         ②요극일(신라 또는 고려인)

             ㅇ ‘구양순체’에 능하며, 이 ‘구양순체’가 신라말기부터 고려시대에 성행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ㅇ  ‘3국사기 김 생 전’에 보면 ‘요극일’에 관한기록이 있는데, 벼슬이 시중 겸 시서학사 에 이르렀고, 필법은 ‘구양순’에게서 받았는데 ‘김 생’에게는 미치지 못하여도 품격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ㅇ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보면 우리 동방의 필법은 ‘김 생’이제일이고 ‘요극일/ 중 탄연/ 영업’이 그 다음이며 모두 중국 ‘왕희지’의 필법 또는

 ‘구양순’의 필법을 본받았다고 하였다.

             ㅇ ‘지붕유설’에 보면 동방서가 이름 중에 고려의 사람 ‘요극일’이라고 밝히

    고 있다.

   ㅇ남긴 필적= ‘3국사기삼랑사 비는 그가 쓴 것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서예가

 

①유신

 ㅇ신품 4현 중 1인. 고려중기 문종대의 명필. 

 ㅇ ‘이상국 집’ 에 의하면 ‘왕자경’의 행서체를 써서 신의 경지(신경)에 이르렀고 신라의 김생, 고려 중 탄연/최우 다음으로 넷째 가는 명필 이라하였다.

           ㅇ남긴 필적= 송광사 불일 보조국사 탑비 등.

 

②최우 : 신품 4현 중 1. 고려 고종 때의 명필.

 

③탄연 : 신품 4현 중 1인. 고려 인종 때의 명필. 성격이 또한 고상

하고 글씨는 ‘구양순’의 체를 본받았다.

‘서거정’이쓴 ‘필원잡기’에 보면, 동국의 필법에 ‘김 생’이제일이요,

요극일, 영업, 탄연이 다음 간다고 말 하였다.

           ㅇ남긴 필적= 춘천문주원비, 예천복룡사비, 삼각산 승가굴증수비 등을 썼

              다.

 

④홍관 : 고려 인종 때의 명필, 신라 ‘김생’의 필법을 본 받았다.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김생’의 행초서 1권을 가지고

가서 그들로부터 ‘왕희지’에 비길 만 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을

받은 바 있다.

           ㅇ남긴 필적= ‘해동역사’에 의하면 ‘보문청연이각’의 서화를 ‘홍관’이그렸다

              고하며,‘보전화루’의 병풍/ 편액이 그의 필적이라 적고 있다..

 

          ⑤유공권 : 고려중기의 명필.

 

⑥이 암.:고려 말기의 명필. 서도에 뛰어나 동국의 ‘조자앙’이라고

        하였고, ‘대갑 편’을 옮겨 써서 왕에게 올렸다.

        그림으로는 묵죽을 잘하였다.

            ㅇ남긴필적= 춘천 청평산의 문수원장경비등.

 

 

  ━조선시대서예가

 

①김유 : 조선초기의 명필, 행/ 초서를 잘 썼고 문명이 당대에 높았

         다.

②김정희(추사)

  ㅇ개요

━월령위 김한신(영조부마/ 1720~1758년)의 증손자 로서

 ‘김조순(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의 서체를 계승하였고,

양송체(우암 송시열/ 동춘 송준길 글씨를 합친 글씨체) 및 중국의

구양순/ 안진경체 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 .

          ━당시까지 우리 서예의 근간이 되어 왔던 ‘구양순체’로 필력을 다진 다음 중국 한 나라의 예서체로 조종(뿌리)을 삼으면서 우리 역대의 필법과 중국 필법의 장처를 혼합 하여 패기에 넘치는 서체를 이룩하여 ‘추사체’ 또는 ‘완당 체’라는 서체를 남기게 되었다.

          ━이 사실은 유일한 혈육이던 서자 ‘김상우’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는 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글씨 쓰는 법은 ‘구양순’의 ‘예천명’이 아니며 손에 익힐 수 없다.”고 허두를 떼고는 “예서는 서법의 근본이니, 만약서도에 마음을 두고자 한다면 예서를 알지 않을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 그것이다.

 

          ㅇ추사 김정희 업적

━그는 24세 때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베이징(북경)에 갔다가 그곳에서역대 문필가의 필적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그 장점만을 모아 새로이 ‘추사체’를 개발 해 냈다.

            ━한편 그는 ‘금석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진흥왕순수비’를 처음으로 고중 하기도 하였다.

 

           청조고증학파 실학자

          ㅇ안진경 풍의 글씨를 쓰게 된 동기

━일찍이 ‘정조’는 ‘양송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고유 서체를 익히 고 나서‘안진경체’의중후한 맛에 매료 되어 그가 가장 존경하던 우암 ‘송시열’과 충무공 ‘이순신’의신도비를 어제로 직접지은 다음 안진경 글씨를 집자하여 이를 쓰게 하였다.

이로부터 안진경체가 점차 유행하게 됨 으로 하여, 추사 ‘김정희’는 초기에 안진경 풍의 옹방감(1733~1818년) 글씨를 따라 쓰게 되었다.

 

         ③송시열(우암) : 조선중기 명신, 남긴 필적으로는 자운서원 비(경기파주),

노량대첩비(전남용남), 이순신충렬 묘비(전남용남/ 남해소재)가

있다. 

 

         ④송준길(동춘) : 조선중기명신, 남긴 필적으로는 이시발 신도비(충북진천),

                 윤계순절비(남양), 이운갈(전북김제) 등이다.    

                                 

         ⑤서봉오(석재) : 근대서화가. 1898년 중국에 유학하여 거기서 당시 유폐생활을 하던 대원군, 망명중인 민영익 등과 교우 하면서 서화 세계의 깊이를 쌓은 뒤, 1905년 귀국 해서는 ‘교남시 서화연구회’를 만들어 경북대구를 중심으로 후진 양성을 했다.

          ㅇ그는 풍류를 좋아 하여 8가지 능하여 ‘8천석’이라고 불리 웠다 한다.

  ‘시/ 글씨/ 그림/ 가야금/ 장기/ 바득/ 의학’ 등

 

         ⑥신위(자하):조선말기의 3절(시/ 서도/ 그림에 능한 자), 그는 조선 개국 이후에 시 짓기(시작)를가장 많이 한 인물로, 이후 백년이 지난 후의 시인들도 모두 그를 작시법(시 짓는 법)의 스승으로 추대하였다.

또한 필법 및 화품이 다 신의 경지(신경)에 이르러 그가 쓰고 그린종이조각 하나라도 보배로서 전 하여진다.

           ㅇ남긴 필적= 경수당전고, 분여 록

 

⑦안동 김씨일가(김수증/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조순/ 김병주)

  ⇒대한민국/ 일중김충현참고

 

⑧안평대군 : 조선세종의 셋째 아들, 남긴 필적= 세종영릉신도비.

 

⑨양사언(봉래/ 완구/ 창구/ 해용) : 조선중기 명필, 해서 및 초서를

  잘 썼다.

 

⑩조광진(구눌/ 눌인)

  ㅇ조선 후기 명필. ‘자하신위/ 추사 김정희’ 등과 사귀 었으며

‘이광사’의 글씨를 배우고‘안로공’의 법수를 얻었으며, 행초(행서 및

초서)는 유석암, 지예는 ‘장수옥’을 따랐다.

            ㅇ그의 서풍은 침착하고도 비후 하며 정중하고 웅기하여 중국의 사신이 그의 지예를 보고 동국(한국)에 이러한 명필이 있는가 고 찾았으나 이미 죽은후라 한탄하며 탑본을 얻어 가지고 갔다는 일화도 있다.

 

          ⑪한호(석봉) : 흔히 ‘한석봉’이라 부르는데 ‘석봉’은 ‘한호’의호이다.

               그는 ‘진체’의 대가로서 해/ 예/ 초서에 모두 능 하였으며,

               중국에까지 왕우군/ 안진경등과서로 필적 하리라는 평을 얻

               어 후대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니 그의 필적으로된 석봉

               서법/ 석봉천자문등의 모사본은 오늘날 까지 행해 지고

               있다.

 

 

━대한민국서예가

 

 ①일중 김충현(1921~)

   ㅇ개요

━‘한석봉’의서체에 대한 계보는 이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김수증/ 안진경/김정희/ 윤용구/ 김용진’ 등에 의해 전승되었다. .

          ━여기서김수증 1623년의 인조 반정이후 후기 조선왕조를 이끌어 온

율곡 학파의중심 가문중 하나 였던 안동김씨 집안의 후예로서

이후 그 후손인 김조순⇒김병주⇒김충현등에 의해 전승 되고 있다.’

          ━이 ‘김수종’ 가문에서는 글씨를 ‘한석봉 체’에 그 뿌리를 두고      

             ‘안진경체’를가미 한‘양송체’를 주로 따라 쓰게 되었다. .


              ㅇ계보

━곡운 김수증(1624~1701) : ‘김수항의 맏형

 * ’한석봉’의 글씨체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로, 금석학에 밝고 전서와 예서에 능하여 수많은 비석의 비전은 물론 ‘자운서원묘정비

/정몽주신도비’ 등 예서로 쓴 ‘비’를 남기었다.

          ━문곡 김수항(1629~1689년)의 아들 6형제(몽와 김창집/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년)을 길러내며 조선 고유 색짙은 진경문화를 주도 하게 되자 숙종(1675년)에서 정조(1800년)에 이르는 1백 25년간의 조선 고유문화 절정기인 진경시대를 이끌었다.

 

           ━풍고 김조순(1764~1831)

 * 당시 임금인 ‘순조’ 장인(국구)으로서 안동 김씨세도정치를 이끈   중심인물, 그는 ‘청조고증학’에 밝은 ‘북학파’로서, 추사 ‘김정희’와 후손인 ‘김병주’에게 그 서체를 전승하였다.

 

           ━창녕위 김병주(1819~1853년)

 * 추사체(김정희 체)를 구사 하며, 금산 ‘보석사’에 세운 의승 ‘영규대사비’를 남겼다.

 

 ━일중 김충현(1921~

 * 일어와 영어를 배우며 한글의 중요성을 깨우치게되어 중동학교재학 중에“우리 글씨 쓰는 법”을 저술 하고 위당 ‘정인보(국어학자)’의 인정을 받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글서체 정립에 평생을 바쳐 한글서예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 그리고 가학을 바탕으로 현대 감각에 맞는 새로운 서체를 개발 하려 노력한 결과 ‘안진경’체로 필력을 얻고 나서 ‘장천비/ 예기비’ 등 중국한나라시대의 예서를 조종으로 삼고 한글 옛 글체의 필법인 전서체를 가미해서

‘일중체’를 이룩하였다.

           * 그는 윤용구(추사 ‘김정희’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음)로부터 추사이래로 전해지는 ‘서법정전’을 전수받은 한편, 조부 ‘김영한’ 및 일가인 ‘김용진’을 통해 초창석등 청조 말기 ‘비학파’들의 서법을접 한바 있다.

           * 그의 행서 소자(작은 글씨로 쓴 행서)가동글 동글 부드러 운 맛이 나서 마치 청나라 서예 대가인 석암 유용(1719~1804년)의 글씨 와같은 풍미가 있다.

           * 그러나일중체에서 미흡한 점은 우리 전통적인 미적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강경한 암석기(바위같은기운)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하는 서예 작품

 

━추사 김정희 관련 유물

①김정희 종가 유물일괄

  ㅇ보물 제547호 김정희 종가 유물일괄.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소장

  ㅇ김정희 인장/ 벼루/

②예산백송

  ㅇ천연기념물 제106호(1962.12.3 ) 예산백송.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9평)

          ③김정희 종가 : 충남유형문화재제43

④완당 세한도 : 국보 제180호 완당 세한도 1축. 개인소장(서울 종

  로구 가회동)

 

━석봉 한호 관련 유물

①개요

  ㅇ석봉 ‘한호’의유물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 등 10여점이 있다.

그중 ‘한석봉 증유 여장서첩’은 보물 제1078호로 지정되어 있고,

1998년 9월 23일공개된 금강산 유람기인 ‘유금강산기’는 석봉

‘한호’의 최고의 명필로 손꼽히는 것으로 이 책은 빠른 시일 내에

 국보로 지정 될 것으로 보인다.

 

           ②유 금강산기(금강산 유람기)

   ㅇ개요

━석봉 ‘한호’의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말로만 전해져 오던 것이

  1998년 9월 23일 처음 공개 되었다.

          ━이 책은 빠른 시일 내에 국보로 지정 될 것으로 보인다.

   ㅇ규격 및 체제

━가로 20cm, 세로 25.5cm의 한지에 모두 12쪽 인이 ‘유금강산기’는 석봉 ‘한호’와 친 하게 지낸 문장가 ‘최 림’과 ‘이호민’이 글을 짓고 이를석봉 ‘한호’가 글씨로 옮긴 것이다.


         ━이 가운데 앞부분 6쪽은 ‘회림’이석봉 ‘한호’와 1603년(선조36) 8월에 함께 금강산을 유람 한 뒤 그 감상을 적은 뒷부분 6쪽은 ‘이호민’이석봉 ‘한호’ 일생으로부터 금강산이야기를 전해 듣고 동행 하지 못 했음을 애석 해 하는 심정을 토로 한 것이다.

         ━당시 금강산유람에는 석봉 한호, 최 림, 이광준 강원도 관찰사 및 그의

   두 아들이 동행하였다.

            ㅇ글씨체 : 해서체+ 행서(흘림체)

  ㅇ소장자 : 부산시 거주 도종현

③한석봉 증유여장서첩

  ㅇ보물 제1078호 한석봉 증유여장서첩, 서울용산구 용산동 국립중

  앙 박물관소장.

 

━기타인물 에 대한 서예유물

 

①⇒예술편\ 공예\ 비석참고

 

②충재권발 종손가 소장 유묵

   ㅇ보물 제902호 충재권발 종손가 소장 유묵, 경북봉화군 봉화읍

  안에 보존.

 

③유인석 의병장 유묵

   ㅇ 1900년대 의병장이었던 ‘유인석’은 1908년 연해주로 망명 하여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ㅇ그가 남긴 유묵으로는나라를 위하여 싸우자(위국투쟁)는 내용이 있다.

 

④김옥균 유묵

   ㅇ ‘김옥균’은 1884년(고종21)에 일어난 갑신정변당시 14개조 의

    혁신정강을 내 걸고 개혁운동을 주도한 인물로서,

    그가 남긴 유목으로는 ‘믿음이도와 근원이다(신위도근원)’는

    내용이 있다.

 

          ⑤안중군 의사 유묵

  ㅇ보물 제569호안중근의사유묵,

   1)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서울 성북구 정동 안에 보존.

   2)일일불독서구중생자극(一日不讀書口中生刺棘),

서울중구 필동3가 동국대 도서관안에 보존.

             3)연년세세화상이세세연연입불동(年年歲歲花相以歲歲年年入不同),

서울종로 경운동 안에 보존.

             4)치악의악식자부족거의(恥惡衣惡食者不輿議),

                서울종로구세종로1가 안에 보존.

             5)동양대세사작현유지남아개현안안화국미성유용개정계불개직인    

               (東洋大勢思雀玄有志男兒豈玄安眼和國未成猶傭槪政界不改直燐),

  서울동작구 상도동 숭전대학교 박물관안에 보존.

             6)견이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부산 동대신동 동아대학교 박물관안에 보존.

   7)용공난용속구기재(庸工難교用速拘奇材)

     서울중구 도동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보존.

             8)인무속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

             서울상도동 숭전대학교박물관에 보존.

             9)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상작연지사아복중시

            (五老峰爲筆靑天一丈紙湘作硯池寫我腹中詩)

             서울마포구 상수동 홍익대학교 박물관안에 보존.      

            10)세한연후지송백지불조(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서울중구 도동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보존.

  11)사군천리이표촌성망안욕아신물부정

       (思君千里以表寸誠望眼慾아辛勿負情) 광주동구계림동안에보존.

            12)장부난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丈夫難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서울동작구 상도동 숭전대학교박물관안에 보존.

  13)박학어문약문이례(博學於文約文以禮) 서울중구 도동 안중근의사 기념관 보존.

  14)제일강(횡서) (第一江) 서울동작구 상도동 숭전대학교박물관안에 보존.

  15)청초당(靑草堂), 서울용산구 서빙고동안에 보존.

  16)고막고어자지(孤莫孤於自持) 서울종로구 삼청동안에 보존.

  17)인지당(횡서) (仁智堂),서울종로구 창신동안에 보존.

  18)인내(忍耐),서울마포구 공덕동안에 보존.

  19)극락(횡서) (極樂),서울성북구 정능동 안에 보존.

  20)운제(횡서) (雲齋),서울종로구 효자동안에 보존

 

 

 

* 김생, 요극일 등이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 고려 시대에 김생의 글씨를 모아서 새긴 집자 비문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고려 전기의 서예]
* 왕희지체와 구양순체가 유행
* 귀족들에게는 간결한 구양순체가 환영받았다.
* 대표적인 서예가---유신, 탄연, 최우

# 신품 4현---김생, 유신,탄연, 최우

■고려 시대 예술의 특성

* 고려 귀족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귀족적이며 불교적인 색채(조각 분야는 쇠퇴)가 강하였다.

■ 15세기의 그림

[특징]
* 화원과 문인들의 그림으로 구분
* 진취적이고 발랄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
* 인물과 산수를 씩씩하고 낭만적으로 묘사

[화원 출신 화가]
*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안견, 최경
* 안견---중국과 우리 나라의 역대 화풍을 깊이 연구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

# 몽유도원도(안견)
---도원이라는 이상 세계를 그려낸 것
---구도가 웅장하고 필치가 씩씩한 점이 높이 평가

[문인 화가]
* 강희안, 강희맹 등이 유명
* 신숙주---화기(畵記)를 써서 안평 대군의 소장품을 소개

# 고사관수도(강희안)
---간결하고 호방한 필치
---자연 속에 파묻혀 깊은 사색에 빠진 인간의 내면 세계를 그려 낸 걸작품

[일본 미술에 영향]
* 15세기의 그림들은 일본 무로마치시대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의 일본은 조선 문화의 수용에 열성적이어서 많은 그림이 일본에 전해져 그 곳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 조선의 사신들과 동행한 화원들도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그림을 많이 남기고 돌아와 직접적인 영향도 주었다.

※일본화단에서 활약한 인물
---세종 때 일본에 건너간 이수문과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문청은 일본 화단을 지배한 대표자

■ 16세기의 그림

[특징]
* 16세기의 그림은 15세기의 전통을 토대로 색다른 화풍을 발전시켰는데,
특히 사군자에 뛰어난 화가가 배출
* 이 시기의 그림들이 자연 속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개성 있는 화풍을 가지려는 경향은 문학에서 보이는 특색과 서로 통하는 점이 있었다.

[대표적 화가]
* 이암---동물의 모습
* 신사임당---섬세하고 정교한 여성적인 필치로써 꽃과 나비, 오리 등을 잘 그려 이름이 높았다.
* 노비 출신으로 전문화원이었던 이상좌는 인물화, 산수화에 능하였다.
* 이정, 황집중, 어몽룡은 각각 대, 포도, 매화를 잘 그려 삼절로 일컬어졌다.

■ 17세기의 회화---조선전기

* 자연속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산수화가 널리 그려짐
* 김명국---두차례나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화단에 영향 끼침
* 조선전기의 그림은 자연속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풍이 특색

■ 18세기 전반기의 회화

* 18세기 전반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발전을 보이면서 윤두서, 정선, 심사정 등 거장이 나타나 활약
* 정선(겸재)
---우리 나라의 자연을 그려 내는 데 알맞은 구도와 화법을 창안-->이것이 이른바 진경 산수화라는 화법
---대표작: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 18세기 후반의 회화

*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김홍도와 신윤복 등 풍속화의 대가들이 나와 회화사의 절정기
* 풍속화는 조선 후기 회화에서 새로이 나타난 또 하나의 중요한 경향
* 김홍도
---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밭갈이, 추수 집짓기, 대장간 등 주로 농촌 생활상을 그리면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소탈하고 익살맞게 묘사
---대장간의 모습, 서당도, 씨름도 등이 유명
* 신윤복
---한국회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여인의 얼굴'은 조선후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이다
한없이 매혹적인 명작이지만 이것 역시 조선후기의 미인상을 보여줄 따름이다.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신윤복은,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그리고 남녀 간의 애정을 풍자적인 필치로 묘사하였다.
기법에 있어서도 김홍도가 간결하고 소탈한 필치인데 비하여,
신윤복은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를 구사하였다.
선유도, 주유도, 주막도 등이 유명

■ 18세기 말 이후의 회화

* 18세기 말 서양 화법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화풍이 출현
* 강세황<난죽도, 송죽모란도, 가는 골 등>과 김수철 등이 그 흐름을 주도

■ 19세기의 회화

*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대체로 실학적 화풍이 시들고, 그 대신 복고적인 화풍이 다시 유행
* 대표인물---신위, 김정희, 장승업

[문제]
■우리나라 18세기 이후의 회화에 대한 설명이 아닌 것은?

① 신사임당, 이정 등의 사군자
② 김홍도
③ 민화
④ 진경산수화

해설)
* 사군자(신사임당. 이정 등) - 16세기 사림파의 주요 소재

정답) 1

■조선 시대 미술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① 김홍도는 도시 부녀자의 그림을 그렸다
② 신윤복은 서민 생활의 그림을 그렸다
③ 김명국은 일본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④ 18C 후반 서양 화법의 영향으로 대표적인 화가는 장승업, 신위이다

정답) 3

■다음 글에서 설명하는 화풍과 대표적인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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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나라의 인물과 풍속을 그리기를 잘하여 선비가 공부하는 모습,
장사꾼이 저자로 가는 모습, 나그네·안방여인·농부·누에치는 여자·
겹겹이 들어선 집들·거친 산·들판의 물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모습을 자세히 표현하여 참모습을 잃지 않았다. 강세황, <포암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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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민적이고 간결함-김홍도 풍속화
② 귀족적이고 현실적-김정희 세한도
③ 복고적이고 서양적-장승업 인왕제색도
④ 진취적이고 낭만적-강희안 고사관수도
⑤ 서정적이고 개성적-이상좌 송하보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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