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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의 수령으로서 봉록이 박할지라도 요컨대 열 식구가 굶주리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령으로 나가는 자나 보내는 자가 다 같이 그 고을의 폐단되는 것, 백성들의 걱정되는 것을 논할 일이요, 그 봉록이 후하다거나 박하다거나 하는 따위는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그 봉록의 후함을 치하하는 자에게는 마땅히,
“생각컨대 대개가 부정한 물건일 터인데 무슨 기뻐할 것이 있으랴?” 하고, 그 박함을 근심해 주는 자에게는 마땅히,
“요컨대 열 식구가 굶주리지는 않을 터인데 무슨 근심할 것이 있으랴?” 할 것이다. 재상(宰相)이나 대신(臺臣) 가운데에 일찍이 그 도(道)의 감사(監司)나 이웃 고을의 수령을 역임한 자가 있으면, 그곳 풍속과 폐단되는 일을 상세히 묻고 또한 그것을 바로잡을 방책을 청하되, 지성으로 도움을 구하도록 할 일이요, 형식에만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양만리(楊萬里)가 영릉승(零陵丞)으로 있을 때에 제자의 예를 갖추어 장위공(張魏公)을 뵙고 무릎을 꿇어 가르침을 청하니, 위공(魏公)이 말하기를,
하였다. 양만리가 이 말을 듣고 종신토록 청렴 강직한 조행에 힘을 썼다.
[주B-001]사조(辭朝) : 관원으로 임명된 자가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주C-001]대간(臺諫) : 조선조 때 사헌부ㆍ사간원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주D-001]대신(臺臣) :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이하 지평(持平)까지의 벼슬이다. [주D-002]양만리(楊萬里) : 송(宋)나라 길수(吉水) 사람이다. 자는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벼슬은 보모각학사(寶謨閣學士)에 이르렀다. 저서에 《성재역전(誠齋易傳)》ㆍ《성재집(誠齋集)》 등이 있다. 《宋史 卷433 儒林列傳 楊萬里》 《宋元學案 卷44 趙張諸儒學案》 《昨非菴日纂 1ㆍ2集 氷操》 참조. [주D-003]영릉승(零陵丞) : 영릉은 중국 광서성(廣西省)에 있었던 현의 이름. 승(丞)은 벼슬 이름으로 군수나 현령의 보좌관이다. [주D-004]장위공(張魏公) : 송나라 면죽(綿竹) 사람으로 이름은 준(浚), 자는 덕원(德遠), 호는 자암(紫巖),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벼슬은 송 효종(宋孝宗) 때 추밀사(樞密使), 도독강회군마(都督江淮軍馬)에 이르렀다.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저서에 《자암역전(紫巖易傳)》이 있다. 《宋史 卷361 張浚列傳》 《宋元學案 卷44 趙張諸儒學案》 [주D-005]원부(元符) : 송 철종(宋哲宗)의 연호이다. 1098~1100. [주D-006]추지완(鄒志完) : 송(宋)나라 진릉(晉陵) 사람으로 이름은 호(浩), 지완(志完)은 그의 자다. 호는 계과재(計過齋)ㆍ도향선생(道鄕先生), 시호는 충(忠)이다. 벼슬은 정언(正言)ㆍ병부 시랑(兵部侍郞)ㆍ월주지부(越州知府) 등을 지냈는데, 직언(直言)하기로 유명하였다. 《宋史 卷345 鄒浩列傳》 《宋元學案 卷35 陳鄒諸儒學案 鄒浩》 [주D-007]진영중(陳瑩中) : 송(宋)나라 사현(沙縣) 사람이다. 이름은 관(瓘), 자가 영중(瑩中)이다. 호는 요옹(了翁),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간관(諫官)으로 있을 적에 직언하기로 유명하였다. 저서에 《요옹역설(了翁易說)》ㆍ《존요집(尊堯集)》이 있다. 《宋史 卷345 陳瓘列傳》 《宋元學案 卷35 陳鄒諸儒學案 陳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