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등산코스.산행지도.자료모음

2018. 12. 3. 01:09산 이야기



스크랩] 계룡산.등산코스.산행지도.자료모음| ──… 산행정보♡ 자료
무등산|조회 44|추천 0|2009.01.18. 06:09


 


충남 공주시 반포 계룡면과 논산시에 걸쳐있는 계룡산(675m)은 국립공원 으로 동학사와 신원사 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7개의 계곡, 3개의 폭포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그중에서도 천황봉 일출과 삼불봉 설화 연천봉 낙조 관음봉 한운 동학사와 갑사 계곡의 단풍, 은선폭포와 남매탑 명월은 계룡8경 으로 꼽힌다 충남 제일의 명산으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정맥의 한 줄기를 이루는 산이다.계룡산 명칭의 유래는 산능선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계룡산은 산세나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에도 명산이며 이런 연유로 인하여 무속신앙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산으로  지금도 많은 무속인들이 정진을 위해 자주 찾아오는 산이다.계룡산은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삼불봉, 연천봉, 관음봉 및 십여개가  넘는봉우리, 기암괴석과 서쪽으로는 용문폭포, 동쪽으로는 은선폭포, 남쪽으로는 암용추,숫용추 폭포를 보여주고 있는 명산 명소이다. 또 계룡산 산자락 곳곳에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는데, 동북쪽에는 동학사가, 서북쪽에는 갑사가, 서남쪽에는 신원사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갑사에는 보물 제257호인 부도와 보물 제256호인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478호인 동종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월인석보'를 찍어낸 목판도 소장되어 있다. 계절별로는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의 벚꽃터널, 여름에는 계곡의신록,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등이 장관을 이룬다.  계룡산은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날씨정보
산태극 수태극의 길지 다가올 새세상의 중심이 될 곳’, 신령스러운 산으로 떠받들어져왔던 충남 공주의 계룡산(845m)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래서인지 산자락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산신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계룡산은 동학사와 갑사를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하지만 남서쪽 신원사 쪽은 상대적으로 사람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산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유적답사는 덤이다. 산길은 신원사에서 출발하여 고왕암-연천봉고개-연천봉-관음봉-자연성능-삼불봉-금잔디고개를 거쳐 갑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때 보덕화상이 창건한 고찰로(현재 조계종 마곡사의 말사). 조선시대 3악(상악-묘향산, 중악-계룡산, 하악-지리산)으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중악단이 있는 곳이다. 신원사에서 산길 들머리가 있는 금룡암까지 도로가 이어진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의 물길을 오른쪽에 두고 소림원, 금룡암을 지나면 이정표를 만나고 오른쪽 숲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극락교를 지나 돌계단을 한발한발 올라서면 고왕암에 닿는다. 백제 의자왕의 아들 융이 피신해서 머물렀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다 하여 절 이름에 ‘머물 古’자를 썼다고 전한다. 법당 뒷쪽 절벽 아래에는 석간수가 있다. 산행시작후 약 40분 걸린다. 산자락에는 남보라의 현호색이 군락을 이루며 지천으로 피어있다. 보석 같은 풀꽃과의 만남은 봄산행의 즐거움이다. 큰 물길을 가르는 다리를 지나면 도치샘 이정표를 만나고,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어느덧 계곡의 물소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무계단을 만나면 연천봉 고개가 지척이다. 지금까지의 조용하던 산길과는 달리 연천봉 고개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왼쪽으로 올라 10분여 진행하면 바위봉우리인 연천봉에 닿는다. 고왕암에서 1시간30분 소요. 연천봉 남동쪽 바로 앞, 하늘을 가르며 서있는 주봉 천황봉과 쌀개능선의 모습이 늠름하다. 다만 거대한 시설물을 이고있는 봉우리의 모습이 안쓰럽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동쪽) 문필봉이 가깝고 그 오른쪽 뒤로 관음봉과 전망대가 살짝 보인다. 남쪽 바로 아래로는 등운암이 내려다보인다. 이 곳으로도 신원사위 소림원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잘 나있으나 휴식년제 탓으로 입산이 통제된다. 다시 연천봉 고개로 내려와 관음봉으로 향한다. 가벼운 산행을 원하면 이 고개에서 갑사로 내려서도 된다. 관음봉 앞 고개에서 왼쪽(북쪽)의 돌계단을 오르면 관음봉에 닿는다. 전망대 앞, 철계단 놓여있는 곳이 자연성능으로 이어져 삼불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계단과 암릉길은 조심해서 운행하고 암릉길에 자신이 없으면 옆으로 나있는 우회길을 이용한다. 자연성능 초입의 계단. 계단에서 내려다 보니 안개속의 낭떠러지가 아득하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 닿은 삼불봉에서의 조망도 일품이다.5분여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서 삼불봉 고개에 닿으면 왼쪽 금잔디고개로 진행, 갑사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관음봉에서 금잔디고개까지는 약 1시간, 고개에서 갑사까지는 50여분 소요된다. 


 제 1코스 (8.9km 3:30)
동학사⇒은선대피소⇒관음봉⇒삼불봉⇒삼불봉고개⇒금잔디고개⇒갑사
   제 2코스  (11km 4:00)
갑사⇒남쪽 계곡⇒사거리 갈림길⇒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남매탑⇒동학사주차장 
   제 3코스  (12km 4:30)
동학사⇒은선대피소⇒관음봉⇒삼불봉⇒남매탑⇒큰배재⇒지석골⇒장군봉⇒병사골매표소
 제 4코스  (6.5km 3:00) 
 동학사⇒남매탑⇒삼불봉고개⇒금잔디고개⇒갑사   
 제 5코스  (9.5km 4:30)
신원사⇒고왕암⇒연천봉⇒관음봉⇒삼불봉⇒삼불봉고개⇒남매탑⇒큰배재⇒동학사주차장
 제 5코스[사진보기]
상신탐방⇒큰배재⇒남매탑고개⇒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문필봉⇒연천봉⇒갑사

   대중교통
대전, 유성⇒대전역 102번좌석버스 10여분 간격 동학사행
공주⇒갑사까지 직행버스 및 시내버스 운행
갑사 하산 택시(041) 857-3982.
   도로정보
경부고속도로 천안IC⇒1번국도와 23번국도

   계룡 8 경 
 제 1 경 천황봉 일출
상봉이라고 불리는 계룡산 최고봉으로 한국통신 중계탑이 세워져 있고,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 서면 계룡산뿐 아니라 대전을 비롯해 공주, 논산 일원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풍광의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경이롭기그지없다. 
제 2 경 삼불봉 설화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바라보면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 하는 삼불봉에 서면 자연성능을 거쳐 쌀개봉 -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비롯해 황적봉 능선, 연천봉 능선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느껴진다. 동학사계곡과 갑사계곡도 한눈에 들어와 계룡산의 전모를 볼 수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움 풍광을 맛볼 수 있으나 그 중 설화가 피었을 때가 압권을 이룬다.
 제 3 경 연천봉 낙조
연천봉은 자연성능이 시작되는 관음봉에서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가르며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솟아 있는 봉으로, 계룡산의 서쪽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이다. 서쪽으로 펼쳐진 논산과 공주 일원의 들녘을 바라보는 맛도  일품으로, 특히 저녁  
노을이 물들 때는 산야는 붉게, 멀리 백마강 물줄기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등 절경이 펼쳐진다.
 제 4 경 관음봉 한운
관음봉은 계룡산의 중앙에 위치한 봉으로 정상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계룡산을 대표하여 공주 10경에도 포함된 이 곳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신선이 된듯한 기분이
  든다.
 제 5 경 동학사계곡 신록
동학사계곡은 자연성능과 쌀개봉 능선,
  장군봉 능선, 황적봉 능선 등 계룡산을 대표하는 능선들 사이에 깊게 패어 있는 계곡으로 수림이 매우 울창하다. 특히 신록에 물든 동학사계곡을 걷노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 6 경 갑사계곡 단풍
예부터 "춘 동학, 추 갑사"라 했듯이 갑사계곡의 가을 단풍은 아름답기로 이름높다. 가을철 갑사에서 금잔디 고개로 오르다 보면 몸과 마음 모두 단풍에 물들고, 자연성능에서 갑사계곡을 내려다 보노라면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단풍바다에 몸을 던지고픈 마음까지 들게 한다. 제 7 경 은선폭포 운무
동학사계곡 상류에 있는 폭포로 옛날 신선들이 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숨어 지냈다 하여 은선폭포라 불린다. 절벽과 녹음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는 이 폭포는 특히 안개가 자욱할때의 풍광이 압권이다.
 제 8 경 남매탑 명월
남매탑이라고도 불리는 오뉘탑은 계명정사 부근, 옛날 청량사터에 위치해 있다. 멸망한 백제의 왕족과 호랑이가 업고 온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탑으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국립공주박물관 
2개의 실내 전시실로 구성하여 무령왕릉 출토유물 108종  2천906점과 충남지역 출토유물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국보 14건 19점, 보물 4건 4점 등 중요유물 약 1천여 점이 있다.
 상신리 도예촌
젊은 도예가들이 모여 분청사기와 각종  도예품을  연구하는곳으로 일반인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도예촌 입구에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과 구입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각 공방은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어서 작업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재미도 가질 수 있다.
 계룡산 조각공원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 입구 박정자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천여 평 부지에 조형물, 목장승, 돌탑 등 30여 점의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마곡사(麻谷寺)
태화산 남쪽(사곡면 운암리)에 위치한 대가람으로 백제  의자왕 2년(642)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확실하지는 않다.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고 지은 것이라 한다. 예로부터 춘마곡이라 하여 주위의 봄 경관이 빼어나며  계곡이  깊어서택리지, 정감록 등의 지리지나 비기에서도 병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이 일대를 꼽고 있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명산
닭 머리 형상의 산릉은 곧 으뜸의 산행로 역할 - 계룡산 개관 
   

풍수지리상의 최고 명당
룡산(鷄龍山·845.1m)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의 상징처럼 존재하는 산이다. 풍수지리설 에서 계룡산은 산과 물이 태극을 이루는 중심에 있는 산태극 수태극의 대길지로 본다. 산은 왼편으로 돌아 들어와 물이 이어지고 물은 곧 오른편으로 돌아 들어와 산을 감싸면서 산줄기와 물줄기가 태극을 이루는데 그 중심이 계룡산이라는 것이다.

회룡고조 형국이란?
편 계룡산은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형국이라 말한다. 백두산에서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맥이 거꾸로 3백리를 거슬러 올라가 계룡산이 되어서 이 산줄기의 할아버지가 되는 지리산을 되돌아 우러러보는 형세라는 것이다.

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니 비룡봉상형(飛龍鳳翔形·용이 날고 봉이 나는 형국),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날으는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 또는 유룡농주형(遊龍弄珠形·노니는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형국), 일룡농주형(日龍弄珠形·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형국)의 길지라고도 한다. 신도안에는 금계포란의 난구(卵丘·알 언덕)와 일룡농주의 주구(珠丘·구슬 언덕)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의 천도 계획
룡산이란 이름도 이러한 닭이나 용과 연관된 지세에서 왔다고 본다. 멀리서 보면 산능선의 형태가 닭 머리 형상이고 밑부분은 용의 비늘처럼 보인다는 말이 전혀 어색치가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러한 계룡산 아래로 서울을 옮기려고 공사까지 시작했다가 중단한 일이 있다. 권중화가 그린 계룡산도읍도(鷄龍山都邑圖)를 바탕으로 기초공사까지 했던 천도 예정지는 신도안(新都안)이란 이름을 얻었다.

온갖 신흥종교 집단 몰려
록 천도는 취소하였어도 조선왕실은 대대로 계룡산을 중시하였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장소로서 계룡산이 가진 역사는 워낙 깊다. 이미 신라때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서 제례가 올려졌으며, 그후 고려조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으로 사직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주요한 장소로 손꼽혔다. 조선조 태조 이후로도 여러 대에 걸쳐 계룡산에 제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수적 의미가 각별한 계룡산은 왕실뿐 아니라 무속인들을 비롯해 온갖 신흥종교 집단이 관심을 갖고 모여드는 장소였다. 1983년 신도안의 종교집단 시설은 강제로 철거되었지만 무속인들의 계룡산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자연성릉은 용의 몸통에 해당
< 계룡산맥은 있다>란 책자를 낸 계룡문화연구소 이길구소장은 계룡산의 산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 도안에서 볼 때 계룡산 상봉 천황봉과 거의 맞닿은 상태로 좌측에 머리봉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 으로 쌀개봉~관음봉 간의 자연성릉 능선이 닭의 벼슬에, 삼불봉에서 신선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에 해당한다. 이 몸통에 용의 다리격으로 4개의 줄기가 뻗어 있는데, 문필봉~연천봉의 신원사 줄기, 수정봉~615봉 줄기가 앞 쪽의 두 다리, 형제봉~제자봉~신털이봉 등의 신도안 줄기, 그리고 가장 긴 줄기로서 황적봉~관암봉 줄기가 뒤의 두 다리에 해당한다.'

무속인들에겐 여전히 성스런 산
악, 지리, 오대, 덕유 등 큰 명산 치고 무속인들이 찾아들지 않는 산은 없지만, 그중에도 계룡산은 특별한 곳으로 여겨진다. 연중 무속인들이 드나들며, 드러내놓고 무속 신앙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곳은 태백산 이외 별달리 없다. 태백산 아래 소도동에 당집이 즐비하듯 계룡산 서남쪽 기슭에도 곳곳에 당집이며 굿집이 있다. 유교식, 불교식 제례와 함께 무교식의 제례가 또한 함께 올려지는 중악단이 있기도 하다. 산행 중에는 물론 곳곳에서 조용히 치성을 드리는 무속인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계룡산을 일러 무속의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출산 다음으로 작은 국립공원
룡산은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한국의 17개 육상국립공원 가운데 면적이 62㎢로서 월출산(42㎢) 다음으로 작다. 이렇게 작음에도 불구하고 산악공원으로서는 67년의 지리산에 이어 68년 12월31일 두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이는 계룡산 경관의 밀도가 매우 높음을 암시한다. 그 유다른 밀도는 즐비한 기암봉들에서 기인한 것이다.

작지만 갈래 많은 능선과 계곡
출산, 북한산(78㎢), 내장산(76㎢) 등 면적이 100㎢ 미만인 다른 3개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이 산이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은 한 마디로 암봉미다. 푸른 하늘로 불끈 치민 듯이 솟은 암봉이 줄지어 섰는가 하면 손을 벨 듯 날카로운 바위능선이 종횡무진 내닫기도 하며 계룡 산세를 이루었다. 때문에 면적은 작아도 뜻밖으로 갈래가 많아서 곳곳에 은밀하고도 깊은 협곡이 형성돼 있다. 이러한 계룡산은 등산꾼들에게는 하나의 교본(敎本)같은 산이다. 산릉과 계곡을 구별해내는 독도(讀圖) 능력과 산길을 직접 찾아가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보기에 계룡산은 더없이 적절한 산이다.

초심자 티 벗기 위한 훈련지로 적당
심자의 티를 벗기 위한 본격 산행지로서도 계룡산은 적절하다. 완경사로 이어지다가 급작스레 코가 닿을 듯한 경사를 보이는가 하면 갑자기 능선이 여러 가닥으로 나누어지며 발길을 머뭇거리게 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균형감과 고소공포에 대한 적응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발이 묶이고 말 곳도 있다. 주등산로에서 벗어나 산릉을 하나만 넘으면 심산유곡의 그것같은 음험한 분위기의 협곡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 산의 여러 특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바로 계룡산이다.

대전 지역 탐방객 압도적으로 많아
룡산국립공원 62㎢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 반포면과 계룡면에 태반인 32㎢가 속해 있고 논산시 두마면(13㎢)과 대전광역시 유성구(7㎢)에 일부분씩 쪼개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서는 대전 계룡산이 공주 계룡산보다 한결 더 자연스럽다. 대전에서 접근하기가 한결 쉽고, 또 이 대전 지역 탐방객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역 사

태조 이성계의 신도안 천도 계획
선 태조 이성계는 풍수지리설을 굳게 믿었다. 이 풍수설에 의거해 새 왕조의 도읍지를 찾고 있던 태조 이성계는 권중화의 계룡산 지형도를 받아보고 신하들과 계룡산에 내려와 닷새동안 계룡산 일대를 돌아본 뒤 신도안에 새 서울을 세울 뜻을 굳히고 신도 경영을 명했다. 그러나 물길이 멀다는 지적과 호순신의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신도안이 서울로 적합하지 않다는 하륜의 주장이 나오자 결국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양을 새 서울로 확정했다. 그 바람에 신도안의 신도경영공사는 1년만에 중단되었다.

재 군 시설인 계룡대가 들어선 신도안에는 당시 신도경영공사 때 궁궐의 주춧돌로 쓰려고 다듬어 두었던 돌들이 남아 있다. 신털이봉은 공사에 동원되었던 일꾼들이 숙소로 돌아갈 때 신에 묻은 흙을 턴 것이 쌓여 이루어진 봉이란 전설이 전한다.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일대를 돌아볼 때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이 땅은 정씨의 땅이니 돌 하나, 흙 한 줌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신에 묻은 흙마저 털고 간 산봉이라 하여 '신털이봉'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 동국여지승람> 17권 연산현 산천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태조가 처음 즉위하였을 때 계룡산 남쪽에 도읍을 옮기려고 친히 순시하고 길지를 택하여 역사를 시작하였다가 결국 조운의 길이 멀다하여 이를 파하였다. 지금까지 이곳을 신도라 부르고 있으며 당시 구획하였던 개울과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

도참설과 계룡산
감록은 조선 초기 정감(鄭鑑)과 이담(李湛)이 이 땅을 두루 돌아보고 풍수설에 비추어 조선 건국 후의 변천 등에 대한 예언을 문답 형식으로 쓴 비결서다. 이 비결은 우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계룡산과 특히 연관이 깊다. <정감록>에 계룡정씨팔백년지지( 龍鄭氏八百年之地)라는 글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귀로 인해 도참설 신봉자들이 미래의 서울에 미리 자리를 잡으려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많은 신흥종교가 계룡산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신도안에 생겨나기도 했다.

'계 룡은 정씨 8백년의 땅'이라는 참언은 조선조 중기 임진왜란 후에 특히 널리 퍼졌다. '이씨 왕조가 망하고 정씨 왕조가 일어선다(木子亡 奠邑興-木과 子를 합치면 李, 奠과 邑을 합치면 鄭이 된다는 파자풀이)'는 풀이도 나온 적이 있다. 때문에 고종 황제의 비 명성황후는 연천봉에 있는 등운암의 이름을 정씨를 누른다는 뜻으로 압정사(壓鄭寺)로 고치기도 했다.

계룡산명 유래

"겨릅산이 계룡산으로 음운 변천"
룡산은 과거 여러 다른 이름을 가졌다. 계립(鷄立), 마목현(麻木峴), 마골산(麻骨山), 마곡산(麻穀山) 등 삼 마(麻)자가 든 이름이 많았다. 그밖에 옹산(甕山), 구룡산(九龍山)이란 이름도 있었다 한다. 중국 당나라 장초금(張楚金)이 쓴 <한원괄지지부(翰苑括地志部)> 백제조에 계산(鷄山), 동치 (東峙)라 했고, 같은 책의 딴 곳에는 계람산(鷄藍山)이란 이름도 있다 한다.

룡산이란 현 지명이 보이는 최고(最古)의 기록은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다. <삼국사기> 권32 잡지1 제사편에 신라에서 중사를 모신 5악 가운데 하나로 '서 계룡산(웅천)'이란 이름이 나온다. 이로 보아 백제에서는 계산과 계람산으로 쓰였고 신라 말기에는 계람산 또는 계룡산이란 이름이 함께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후 고려 때부터 계룡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국여지승람> 대전의 산악인 김홍주씨(소산산행문화연구소장)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편다. "고려 때 목화가 들어오기 전에 옷감으로 많이 쓰였던 삼(麻)이 계룡산에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마목현, 마골산, 마곡산 등 마(麻) 자가 든 이름이 여럿이다. 한편, 껍질을 벗긴 삼대를 '겨릅'이라 하는데, 때문에 겨릅이 많다는 뜻으로 계룡산을 옛날에는 '겨릅산'이라 했다. 이 '겨릅산'이란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한자화되면서 '계립(鷄立)'으로 되고 또 '립'이 비슷한 소리로 뜻이 좋은 '용(龍)'으로까지 발전해서 계룡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계룡산의 모습이 '용이 닭벼슬을 쓴 것 같다'해서 '계룡산'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국 이성계가 조선조를 창건할 무렵 무학대사가 계룡산의 지형을 '금계포란형' '비룡승천형'이라 해서 두 풍수적 형국에서 계( )와 용(龍) 한자씩을 따 '계룡산'이라 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란 김홍주씨의 주장이다. 어떤 이는 신도안의 좌우 양쪽에 둥근 언덕이 하나씩 있는데 동쪽 것이 금계포란의 난구(卵丘)요, 서쪽 것이 일룡농주의 주구(珠丘)여서 예서 '계룡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주장한다.





 

계룡산    

 3일및 주간 날씨


산봉의 형태가 닭머리를 닮고 밑부분은 용 비늘처럼 보인다고 계룡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개요  

높이 : 845.1m
위치 : 대전시, 충남 공주시, 논산시
면적 : 62평방km
특징 : 산불예방기간 중에도 주요 등산로가 개방되는, 몇 안되는 국립공원중 하나다. 68년 12월31일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으로 치면 16개 육상국립공원 가운데 월출산(42평방km) 다음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밀도 높은 경관을 지녔기에 설악산이나 내장산을 앞질러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계룡산이 지닌 자연미의 핵심은 암봉미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암봉이 줄지어 섰는가 하면 하늘을 가를 듯 날카로운 바위능선이 거침없이 내닫기도 하면서 산세를 이루었다. 때문에 면적은 작아도 갈래가 많아 은밀하고도 깊은 협곡이 곳곳에 형성돼 있다. 그중 계룡산을 대표하는 동학사계곡은 자연성릉과 장군봉 암릉, 황적봉 능선에 둘러싸여 웅장하기 그지없다. 갑사계곡 또한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할 정도로 가을 정취가 뛰어나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명산
닭 머리 형상의 산릉은 곧 으뜸의 산행로 역할 - 계룡산 개관

풍수지리상의 최고 명당

룡산(鷄龍山·845.1m)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의 상징처럼 존재하는 산이다. 풍수지리설에서 계룡산은 산과 물이 태극을 이루는 중심에 있는 산태극 수태극의 대길지로 본다. 산은 왼편으로 돌아 들어와 물이 이어지고 물은 곧 오른편으로 돌아 들어와 산을 감싸면서 산줄기와 물줄기가 태극을 이루는데 그 중심이 계룡산이라는 것이다.

계룡산 등산로 잇기

서울의 북한산과 성격 비슷
고봉인 천황봉의 높이가 845m인 계룡산은 높이나 성격 등이 여러 모로 서울의 북한산과 비슷하다. 암릉이 사방으로 뻗었고, 기암봉들 사이로 길이 나 있으며, 대도시 주변에 위치하여 등산로가 조밀하게 발달해 있다. 한 마디로 대전의 북한산이라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의 일반 등산로

갑사기점
계룡산에서 동학사와 갑사를 잇는 코스는 가장 고전적인 코스로 꼽힌다. 동학사는 비구니 강원으로, 갑사는 보물이 여럿 전해오는 고찰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사찰 가운데 특히 갑사는 등산 기점뿐만 아니라 유적답사 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사찰이다. 갑사 방면의 등산로는 동학사 방면에 비해 찾는 이가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사통팔달의 교통도시인 대전에서 찾기에는 동학사에 비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룡산을 잘 아는 이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개의치 않고 갑사 코스를 즐겨 찾는다. 산길의 주를 이루는 갑사계곡이 완만하면서도 깊은 데다 수림상이 뛰어난 점 등, 산행 코스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갑사 기점 산행객들은 금잔디고개와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곧장 넘어가기도 하지만 연천봉 안부에서 문필봉~관음봉고개~관음봉~자연성릉 길을 거친 다음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내려서는 산길을 즐긴다. 반대로 금잔디고개~자연성릉~관음봉고개~동학사계곡 길도 많이 탄다.
원점회귀형 산행을 하고자 할 경우는 당연히 자연성릉을 중간에 끼워넣으면 될 것이다. 갑사~신흥암, 갑사~대자암 구간은 차가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잘 닦여 있다.

덕명동기점
흑룡산(黑龍山)은 계룡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대전 지역 등산인들은 별도의 산으로 취급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외따로 떨어져 있다. 밀목재 도로로 잘려져 나가 있으며, 때문에 계룡산의 다른 코스들과 연결 산행이 되지도 않는다.
이 흑룡산은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도덕봉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 도덕봉과 능선이 연결된 백운봉(白雲峰·536m), 금수봉(錦繡峰·532m), 빈계산(牝鷄山·415m) 등을 포함해 흑룡산 이라고들 부른다. 계룡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아직 비정규 등산로로 취급하지만, 산길의 요소마다에는 대전 등산인들이 안내판이나 로프를 설치해두었다.
산은 매우 아기자기하다. 등산로의 핵심을 이루는 정상 남릉 길은 서쪽 면이 높이 50m가 넘는 암벽인 암릉길이다. 이 암릉 끄트머리에는 수통굴이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굴이 형성돼 있다. 이 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동학사 기점
동학사 지구는 등산인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 늘 붐비는 곳이다. 말발굽형의 계룡산 중심부를 가르며 동서로 흘러내리는 동학사계곡에는 갑사나 신원사 쪽에 비해 등산로도 한결 더 다양하게 나 있다. 대도시인 대전에서 가깝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역시 계룡산을 대표할 만한 절경지가 이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계곡 중심에 위치한 동학사까지 찻길이 나 있기는 하지만 일반 차량의 진입이 금지돼 있어 실제 산행 기점은 동학사 아래의 집단시설지구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산행을 제외하면, 이 시설지구의 주차장을 기점으로 관음봉고개~자연성릉~남매탑, 혹은 그 역으로 엮는 원점회귀형 산행이 이 지역 등산의 일반적인 형태다. 절경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걸어도 5~6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고, 안전시설물이 잘 설치돼 초행자도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다.
동학사계곡 남쪽과 북쪽에 뻗어 있는 황적봉 능선과 장군봉 능선길도 멋진 길이다. 동학사 기점의 코스들과 엮으면 제법 긴 산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바위절벽 지대가 있으니 경험자와 동행하고, 조보자일 정도는 가지고 나서는 것이 안전하다.

상신리기점
상신리는 탐방객이 많이 찾는 동학사 관광지구를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산골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것은 역시 동학사의 유명세에 가리고, 산세 또한 동학사 방면만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신리 코스는 동학사 방면 코스들처럼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계룡산의 넉넉한 면을 맛보면서 한갓진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길이다. 산길은 부드럽고 숲은 원시림에 가깝게 우거져 아늑한 숲의 정취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입로와 주차장, 편의 시설이 부족해 다소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신원사기점
계룡산 상신리는 동학사 방면에 비하면 교통이 훨씬 불편한 곳이다. 대전뿐 아니라 타 지역의 사람들도 역시 박정자삼거리에서부터 남쪽이든 북쪽이든 도로를 타고 산을 반 바퀴 돌아서야 닿을 수 있다. 이러한 교통상의 불편 때문에 동학사 방면에 비해 찾는 이가 적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행 기점에 있는 신원사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꼽히는 사찰로 규모는 가장 작은 편이지만 가장 산사다운 사찰로 꼽히고 있다.
신원사 기점 코스는 계곡길이든 능선길이든 대개 연천봉~문필봉 안부나 연천봉으로 이어진다. 이후 갑사나 자연성릉, 동학사계곡으로 다양하게 산길을 엮을 수 있다.

계룡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동학사 본소
(042) 825-3002∼3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77
(우) 314-920
갑사 분소
(041) 857-5178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33-41
(우) 314-830
신원사 분소
(041) 852-5040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산 45
(우) 314-830


 
 


계룡산 등산로 잇기    

서울의 북한산과 성격 비슷
최고봉인 천황봉의 높이가 845m인 계룡산은 높이나 성격 등이 여러 모로 서울의 북한산과 비슷하다. 암릉이 사방으로 뻗었고, 기암봉들 사이로 길이 나 있으며, 대도시 주변에 위치하여 등산로가 조밀하게 발달해 있다. 한 마디로 대전의 북한산이라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요 등산로는 연중 개방
룡산 등산은 하기 나름이다. 서울의 북한산이 그렇듯, 어려운 암릉코스도 있는 반면 슬슬 산보하듯 넘나들 수 있는 코스 또한 부지기수다. 자신의 실력껏 원하는 대로 코스를 엮을 수 있는 것이다. 그중 왕래가 잦은 주요 등산로들은 봄가을 산불예방기간과 관계없이 연중 개방된다.

자연성릉 곁들여야 재미 배가
룡산의 최고봉은 대형 통신시설이 서 있는 천황봉(845m)이다. 하지만 탐승 대상지로서 계룡산을 볼 때 주된 봉우리는 천황봉 북쪽 1km 지점의 관음봉이다. 이 관음봉에서 북쪽 삼불봉까지 뻗은 긴 암릉인 자연성릉이 계룡산 등산로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자연성릉의 양쪽 끝과 중허리로 동쪽의 동학사와 서쪽의 갑사, 그리고 남서쪽의 신원사에서 낙지발처럼 등산로들이 뻗어 연결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동학사 기점, 갑사 기점, 그리고 신원사 기점의 등산로들 거의 모두가 자연성릉을 통하여 하나의 등산 코스로 완성된다.

왕이면 반드시 관음봉~삼불봉 간의 자연성릉을 포함시켜 계룡산 등산로를 이으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철계단으로 자연미가 많이 사라지기는 했을 망정, 계룡산 산악미의 정수는 역시 자연성릉에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자연성릉을 오가며 바라보는 자연성릉 자체의 경관과 주위 풍광은 한국 에서도 손꼽히는 것이다.

안전철책 가설된 자연성릉의 인기 최고
전 철책이 가설된 자연성릉은 계룡산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90년대 초 이 암릉 철책 공사가 끝나자 계룡산을 찾는 탐방객들의 수가 연간 200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계룡산 경관의 백미는 자연성릉'이란 명제에는 거의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룡산이 초행인 이는 어떻게든 관음봉~삼불봉의 자연성릉 길만큼은 포함시켜 산행 계획을 짜기를 권한다.

동쪽 동학사, 서쪽 갑사, 남쪽 신원사 3개 기점
학사 기점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동학사~은선대피소~관음봉 코스와 동학사~ 오뉘탑~금잔디고개 코스, 천장골 코스의 3가닥, 갑사 기점 등산로는 갑사~금잔디 고개, 갑사~대자암~관음봉 코스, 그리고 신원사 기점 등산로는 신원사~연천봉, 신원사~관음봉 코스 2가닥이 있다. 이들 코스를 자연성릉을 포함시켜 연결하면 가장 무난하고 또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신선봉, 황적봉 암릉길은 암벽 실력 있어야 가능
연성릉의 양쪽 끝으로도 각각 긴 바위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삼불봉 이후 북동쪽의 신선봉~장군봉 능선, 그리고 관음봉 이남으로 이어져 동쪽으로 뻗은 쌀개봉~황적봉 능선도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멋진 암릉길이다. 암벽 기초만 잘 다져진 이라면 자연성릉에 이 암릉길을 덧붙인 종주산행을 권하고 싶다.

론 초심자는 금물이다. 한 예로, 쌀개봉과 관음봉 사이의 절벽길은 비록 로프가 매어져 있기는 하지만 워낙 급경사여서 초심자는 새파랗게 질려 얼어붙게 되기 십상이다. 특히 겨울이 위험하며 비가 내릴 때도 바위가 미끄러워 위험하다. 이른봄 해동 직후 땅이 질퍽해질 때도 마찬가지다. 이 비정규의 암릉코스들은 반드시 맑은 날을 택해 가도록 한다.

어떻게 엮든 대개 당일산행 가능
코스들을 어떻게 엮든 거의 모두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다만 동학사 남쪽의 황적봉 능선과 북쪽의 장군봉 능선을 자연성릉과 함께 엮는 코스만큼은 아무리 건각이어도 하루에 무리다. 계룡산의 등산로는 자신의 실력에 따라 코스를 잘 선택해야 하는 산이기도 하다. 초심자도 산행 가능한 도보산행 길이 있는 반면 다소간의 암릉 등반 실력이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암릉길도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 이정표 수치는 공단 직원들이 줄자로 실측
재 계룡산 곳곳에 세워진 안내팻말은 계룡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줄자로 실측했다고 하며, 거의 틀림이 없다는 것이 등산인들의 평이다. 대부분의 바위산과 마찬가지로 계룡산 또한 계곡의 수량이 신통치 못하다.






 

계룡산의 교통 / 숙박 / 먹거리    

계룡산의 교통 / 숙박  

 
갑사기점

버 스

갑사버스정류장
((041)857-5433)

유성이나 공주에서 운행하는 갑사행 시내버스를 이용. 유성에서는 07:00∼18:45까지 운행, 소요시간 40분.

남부터미널
(02-521-8550(ARS))

서울에서는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3회(07:55, 00:00, 13:39) 운행하는 갑사행 직행버스 이용

 
숙박

숙박 (지역번호 041)
계룡여관
(041)857-5065
녹수장
(041)857-6312
청수장
(041)857-5181
유스호스텔
(041)856-4666
김범용
972-1187
이판실
972-1061
김종석
972-9176
이삼석
972-1173
홍순우
972-1145
김현순
972-1171

민박
백제민박
(041)857-5067
서울민박
(041)857-5073
수정민박
(041)857-5427
옛날민박
(041)857-5243
오복민박
(041)857-5296
율곡산장
(041)856-4666
정든민박
(041)857-5555
청용민박
(041)857-2466
행복민박
(041)857-7739
희안민박
(041)857-8188

사찰
갑사
(041)857-8981
내원암
(041)857-5979
대성암
(041)857-5880
신흥암
(041)857-7771

기타
공주보건소
(041)855-5244
국민약방
(041)857-5070
중장주유소
(041)857-3200
덕명동 기점

버 스

유성온천장

흑룡산 아래의 덕명동까지는 버스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유성온천장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숙박
계룡여관
(041)857-5065
 

 
동학사 기점

버 스

대전고속터미널

유성이나 공주에서 운행하는 갑사행 시내버스를 이용. 유성에서는 07:00∼18:45까지 운행, 소요시간 40분.

남부터미널
(02-521-8550(ARS))

대전고속터미널을 출발하여 대전역, 유성온천단지를 지나 동학사 주차장까지 1번, 102번, 103번 시내버스가 15분 간격으로 밤 10시까지 운행한다. 요금은 1000~1,200원.

 
숙박
감나무민박
042-825-4086
계룡민박
042-825-0388
계룡민박
042-825-4092
고향민박
042-825-4241
농원멧돼지민박
042-825-1588
농원민박
042-825-9114
느티나무민박
042-825-2009
동학골민박
042-825-4644
동학민박
042-825-2991
등나무민박
042-825-5086
명산민박
042-825-0055
문필봉민박
042-825-1003
밤나무민박
042-825-5000
사랑민박
042-825-0525
삼거리민박
042-825-5983
수석민박
042-825-2956
정든민박
042-825-4117
초원민박
042-825-1286
포시즌민박
042-825-8995
향나무민박
042-825-0707
 

상신리 기점

버 스

상신리행 버스

유성시장 앞에서 상신리행 버스가 하루에 6회(06:20, 08:40, 10:40, 13:40, 14:40, 19:00) 다닌다. 상신리 출발 시각은 유성 출발시각에 20분 더하면 된다.

기타교통편

승용차편

유성에서 계룡산 쪽으로 향하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오른쪽 32번 국도를 탄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약 3Km 가면 신호등이 나온다. 신호등에 표시돼 있는 이정표 방향을 따라 좌회전한다. 외길을 따라 3.6Km 진행하면 상신리 버스종점이 나온다. 승용차는 이곳에 주차해야 한다.

숙박
상신리 석지영씨 집 전화
 
(041)857-4069
상신리 버스종점의 상신구판장에 문의 전화
(041)857-0661
 

 
신원사 기점

버 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02-446-8000(ARS))

신원사행 노선버스는 논산과 공주에서 운행.
서울서는 공주를 거쳐 진입하는 것이 빠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공주행 고속·우등고속버스 이용한다. 2시간20분 소요.

남부터미널
(02-521-8550(ARS))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7시4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공주행 직행버스 이용. 2시간20분 소요

대전 서부터미널
(042-584-1616~7)

대전 서부터미널에서 오전 6시29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3~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공주행 직행버스 이용. 1시간 소요. 요금 2,400원. 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논산행 직행버스 이용. 50분 소요

시내버스
(042-584-1616~7)

공주에서 신원사까지는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오전 6시10분부터 오후 9시까지 1일 24회 운행하는 시민교통 이용. 30분 소요. 시민교통 전화 (041)854-3163.
논산에서 신원사까지는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일 18회 운행하는 덕성여객 이용. 45분 소요. 덕성여객 전화 (041)733-1553.
연애골 입구와 불당골 입구인 하대 마을로는 노선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숙박

여관
스위스모텔
(041)734-3150
신원장여관
(041)852-4405

민박
가정민박
(041)855-1514
도토리촌민박
(041)853-9317
솔밭가든민박
(041)852-4386
신원사관광매점민박
(041)852-4381

 
계룡산의 먹거리

< 갑사 지구 >

수정식당
사집단시설지구에 위치. 96년 충청남도 개도(開道)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개도 100주년 기념' 팔도음식축제에 충남대표로 나갔던 식당. 당시 출품한 음식은 녹두빈대떡, 산채비빔밥, 표고버섯 따로국밥, 도토리묵, 산더덕구이 등으로 지금도 일품으로 소문나 있다. 싱싱한 재료와 자영 버섯 농장에서 나오는 버섯을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전화 (041)857-5164.

중장가든
사쪽 계룡저수지 가에 위치한 매운탕집. 저수지를 내려다뵈는 잔디 마당에 아담한 작은 정원을 예쁘장하게 꾸며 놓았다. 전화 (041)857-9444.

원다리가든
사 입구 대형주차장 바깥쪽에 위치한 정육점식당. 산행 후 삼겹살을 구워놓고 하산주 한 잔 하기 적당한 집으로, 실속파 산꾼들이 많이 이용한다. 전화 (041)857-9564.

< 동학사 지구 >

계명식당·전주식당
채비빔밥과 해물파전, 더덕으로 여섯 달 동안 숙성시킨 속칭 '계명더덕강정주'가 인기품목이다. 계명식당 전화 042-825-4015. 전주식당' 전화 042-825-1375.

< 신원사 지구 >

결성식당
원사 입구에도 11곳이나 되는 음식점들이 산재해 있는데, 대개 산채음식, 닭고기, 오리고기를 내놓는다. 이 음식점들 중에서 '결성식당'((041)852-1234)이 메밀냉면(토속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메밀은 현지에서 재배한 것을 집에서 제분해서 쓰고 있다. 안주인 심성순씨(50)의 손반죽 솜씨가 널리 알려져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고 한다. 결성식당 바깥주인 김종화씨(51)는 한국음식업 중앙회 공주시 지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전화 (041)852-1234.

< 상신리 지구 >

등산로식당
신리 매표소 앞에 위치한 손두부 전문식당. 이 식당의 손두부는 등산인들 사이에서 '설희엄마 손두부'로 불리고 있다. 등산객뿐 아니라 계룡산도예촌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식당이다. 손두부와 순두부백반 외에 도토리묵, 닭백숙 등도 판다. 상신리에는 손두부 전문식당이 여럿 있다. 전화 (041)857-0064.

< 공주시 일원 >

새이학가든
사로 가는 길목, 금강변 금성동에 위치한 공주국밥집. 예로부터 '전주는 비빔밥이요, 공주는 국밥'이란 말이 전해올 정도로 공주 국밥은 이름나 있다. 새이학가든은 2대째 이어가고 있는 따로국밥집이다. 공주시내 박물관 입구 중앙로에서 50여년 간 외식업을 해온 이학식당이 원조로,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일본 관광안내책자에도 소개된 불고기백반과 갈비찜백반 또한 인기있는 음식. 전화 (041)854-2030.

달하 노피곰 도다샤
주시 신관동 주택은행 뒤에 위치. 1985년 공주 우정산악회를 창립하고 서울 악우회 회원이기도 했다는 김종우씨가 만든 찻집 전통차도 마실 수 있고 민속예술 공연도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재배녹차만이 아니고 귀한 야생녹차도 마실 수 있다.
사시대의 주거공간처럼 꾸며진 넓은 공간 바닥에는 달그림자가 퍼져나가는 형상의 멍석을 깔아놓고. 벽면은 흙으로 처리하고 여기에 산을 형상화했다. 천장은 대동여지도로 도배하여 산을 사랑하는 주인의 혼을 담아 보고자 했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저녁시간에는 각설이나 노동요, 민요 등의 소리마당이 열린다. 전화 (041)856-8019.

메밀문화회관
주시 금강변의 곰나루에 위치. 강변 2,300여 평 부지에 들어선 메밀문화회관에는 메밀전문식당과 커피숍, 특산품과 민속자료, 메밀 관련제품과 수석 전시를 통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다용도 문화공간.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동요방(노래방), 잔디광장 야외무대도 마련돼 있다.
밀문화회관은 공주시청은 지난 97년 5월 메밀음식을 공주의 향토음식으로 개발하고 한 차원 높은 음식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생각과, 백제의 고도를 찾는 일본인들이 자국에서도 즐기는 냉메밀(소바)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세운 것이다. 메밀은 맛도 깔끔할 뿐 아니라 구수하며 혈압 강하효과가 높은 루틴(비타민P)이라는 성분이 많아 고혈압 예방에도 좋고, 양질의 단백질도 들어있다고 한다. 전화 (041)858-2111.

< 명 주 >

계룡산의 명주 계룡백일주
선 인조 때 왕실에 진상된 연안이씨 가문의 전통민속주인 계룡백일주는 신혼부부들에게 첫날밤 합환주로 사용됐다 하여 '사랑의 술', 또는 감칠 맛 나는 향기와 많이 마셔도 뒤끝이 깨끗하다 하여 신선주라고 불린다.
욕증진, 혈액순환촉진, 미용에 효과가 높다는 계룡백일주는 누룩과 찹쌀, 밀가루를 섞은 다음 반죽, 두 달간 띄운 밀술을 만들어 발효시킨 후 오미자, 솔잎, 국화꽃잎, 진달래꽃잎을 섞어 100일 동안 땅속 깊이 묻어 빚어내는 술로, 모든 재료는 현지에서 생산되는 토종만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특징
해발 845m의 계룡산은 천황봉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 모습이 '닭벼슬을 쓴 용'과 같은 형상이라하여 계룡산이라 이름지어졌다 한다. 
계룡산은 1968년 12월 전국에서 2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차령과 노령 두 산맥사이에 이룩된 잔구성 산지로서 석영 반엄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통일신라에는 묘향, 지리, 태백, 팔공산과 함께 오악중의 하나로 꼽혔으며, 조선시대에는 3악(묘향, 계룡, 지리산)중 중악으로 지정되어 보호받아 보호를 받아왔다.
계룡산을 대표하는계룡 8경
    제 1 경: 천황봉 일출
    제 2 경: 삼불봉 설화
    제 3 경: 연천봉 낙조
    제 4 경: 관음봉 한운
    제 5 경: 동학계곡 신록
    제 6 경: 갑사계곡 단풍
    제 7 경: 은선폭포 은무
    제 8 경: 오뉘탑 명월






20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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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산 자미원국 (紫微垣局) 11.풍수지리 / 게시판

2013. 5. 2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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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자미원국 (紫微垣局)

 

우리 민족의 이상향인 신도안(新都內)

오랜 옛날부터 대전광역시와 공주시, 논산시 경계에 있는 계룡산 신도안(新都內)에는 세계 36국으로 부터 조공을 받는 부강한 나라를 세울 정도령이 정착할 신비스런 황궁 (皇宮)터가 있다고 구전(口傳) 되어왔다.

 

그뿐 아니라 정감록(井堪錄 또는 鄭鑑錄)과 각종 비기(秘記)들도 한결같이 조선조 5백년 후에 정()씨가 8백년동안 도읍할 터로 이 신도안을 지목했다. 또한 풍수지리학계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이곳이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을 한 귀한 땅으로 언젠가는 한나라의 수도가 될 곳으로 예정해 왔다.

 

이 때문에 신도안에는 예부터 많은 토속종교단체들의 성지가 되어왔으며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목자망 전읍흥(木子亡 奠邑興)의 도참설을 악용하여 민중을 선동하고 모반을 도모한 정여립(鄭 汝立)같은 이도 출현했다. 정씨의 땅이라는 이런 집요한 요설 때문에 일찍이 이성계 태조는 정씨 제어수단으로 계룡산 연천봉에 있는 등운암(騰雲庵)을 압정사(壓鄭寺)로 개칭한 바 있다.

 

특히 정여립은 이산의 연천봉 바위에 조선조가 482년 만에 망한다는 뜻을 담은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百馬角 口或禾生)이라는 글씨를 새기기까지 했다 하는데, 이 같은 뿌리 깊은 전설들을 발본색원하고자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전국에 있는 도참비기(圖讖秘記)를 모두 거두어 불태우고, 계룡산 출입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하나, 전문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진인(眞人)이 반드시 정씨를 지칭하는 것이 아 니라 하니 과잉 반응이었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신도안에는 예부터 많은 토속종교단체들의 성지가 되어왔으며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목자망 전읍흥(木子亡 奠邑興)의 도참설을 악용하여 민중을 선동하고 모반을 도모한 정여립(鄭 汝立)같은 이도 출현했다. 정씨의 땅이라는 이런 집요한 요설 때문에 일찍이 이성계 태조는 정씨 제어수단으로 계룡산 연천봉에 있는 등운암(騰雲庵)을 압정사(壓鄭寺)로 개칭한 바 있다.

 

그러나 한번 시각을 달리해 성찰해보면 이 신도안은 오랜 세월동안 약소국가로 이웃나라들에게 침략과 설음을 받아온 우리국민들이 웅비(雄飛)의 비원(悲願)을 이루어볼 이상향으로 동경해온 구원의 성소로 자리매김 돼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정감록에서는 하늘의 조화(造化)와 땅의 운세에 따라 현시점의 우리민족이 새 시대의 주역으로 이 신 도안을 무대로 전 세계를 이끌어갈 것을 예언해 우리들을 크게 고무시켜주고 있으니 이곳이 우리의 이상향임을 입증하는 증좌라 할 것이다.

 

충북 보은의 속리산에서 발원한 한남정맥(漢南正脈)과 전북에 있는 덕유산 남쪽에 있는 영취산 에서 출맥한 금남정맥(錦南正脈)만은 북쪽으로 거슬러 흐르고 있어 이채롭다. 풍수지리학계에서는 순류가 아닌 역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가 강한 생명력을 가졌듯이 역진(逆進)한 산맥이나 명당 앞으로 흘러드는 조수(朝水)를 강한 기가 함축된 귀한 사례로 본다.

천하의 대명기(大明基) 신도안을 만든 계룡산은 예로부터 금남정맥이 3백리를 역진한 뒤 용진처(龍盡處)에 세운 간기대취(幹氣大聚)한 산으로 평가해왔다.

 

이 산맥의 흐름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영취산에서 장안산과 팔공산을 거쳐 준수한 좌보성(左輔星)인 마이산(馬耳山) 쌍봉을 돈립시켰고, 북쪽으로 회신(回身)한 후 부귀산(富貴山)을 거쳐 운장산(雲長山)을 운소(雲霄)시키고 금산에 와서 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염정성(廉貞星)인 대둔산(大屯山 : 877m)을 횡립(橫立)시켰고, 계속 북진하여 계룡산 천황봉(天皇峰)을 탁립(卓立)시킨 뒤 대둔산을 향해 되돌아보고 마무리를 짓는 회룡고조(回龍顧祖)격을 이루었으니 마치 소라 몸통 속 같은 형국이다.

 

물길 또한 신도안에서 발원하여 갑천(甲川)이 된 뒤 신탄진에서 금강(錦江)과 합류하는데 금강 본류 역시 금남정맥의 뿌리산인 덕유산, 영취산과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탄진에서 크게 모여진 금강은 계룡산 북쪽 일대를 반원(半圓)을 그리면서 휘돌아 서해로 유입되니 수전현무(水纏玄武)의 전형이다.

 

용맥은 시종 좌선(左旋)하여 계룡산에 와서 매듭을 지었고, 유역의 물들은 모두 우선(右旋)하여 금강을 이루었으니, 길한 음양배합(陰陽配合)의 모델이며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의 극치라 할만하다.

 

신도안은 자미원국(紫微垣局)등이 있는 명당의 보고

이 계룡산이 문헌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당나라 장초금(張楚金)이 쓴 한원(翰苑) 백제조(百濟條)에 계산동치(鷄山東峙)라 하여 계산(鷄山)으로 표기한 것이 효시라 한다. 계룡(鷄龍)을 십이지(十二支)로 표시하면 유진(酉辰)이며 계()는 새벽을 알리는 광명의 상징이고 용 ()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영물(靈物)로 보는데 이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닭의 벼슬을 닮았 다해서 산 이름에 계()자를 붙이게 됐다한다.

 

이 산은 신라의 오악(五岳 : 토함산, 태백산, 지리산, 팔공산. 계룡산)중 중악(中岳)으로 존숭돼 왔으며 칡넝쿨, 계 그리고 뱀이 없는 삼무(三無)의 땅으로 외경시돼 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유수의 도학자로 알려진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柳雲龍)은 일찍이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을 주장했는데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서서 그의 예언 이 적중해 가고 있다하며 앞으로 중앙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인지 모르나 공교롭게도 신도안 일대의 땅은 이미 모두 국가의 소유가 되었으니 자못 그 귀 추가 주목되는 일이다. 또한 탄허(呑虛)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에서는 계룡산을 주축으로 하여 세상의 운세가 돌아가 게 돼 있다고 이산을 신비화시키고 있다.

 

어떻든 이 신도안은 계룡산 천황봉(845m)7백미터 급의 쌀개봉, 연천봉, 문필봉, 삼불봉등으로 둘러 싸인 꽤 넓은 분지에 자리해있는데 동·4km, ·3km이며 그 안에 석계리, 정장리, 부남리, 암사리, 용동리, 남선리, 송정동등이 포용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신비의 땅인 신도안에는 어떤 명당들이 맺어졌는지 살펴보자. 신도안은 귀하게 치는 3백리 역룡진처(逆龍盡處)의 회룡고조맥(回龍顧祖脈)아래 산·수태극(·水太極)처에 자리한 까닭에 많은 양기명당(陽基明堂)들이 생겨났으며, 그 중의 으뜸은 제자봉(帝字峰) 아래에 있는 53대 자미원국(紫微垣局)으로 8백년동안 전 세계를 다스릴 대망의 세계 황제 정궁(正宮)터다.

 

이 터는 그동안 현자(賢者)들이 말해왔듯이 멀지 않은 장래에 용운(用運)이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니 우리나라가 웅비(雄飛)의 대운을 맞이할 날도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많은 역학자(易學者), 종교인등 예언가들이 우리나라에 다가올 대 운세를 예언해왔고, 일부 전자공학자들까지도 뜻을 같이 하고 있는데, 풍수지리학의 원리로 조명할 때 이 신도안을 세계제패의 대황제가 거처할 땅으로 지목해온 비기(秘記)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다음으로 큰 양기명당은 자미원국 인근에 있는 27대 군왕가거지지(君王可居之地)인 천하대명당이며, 그 서쪽과 남쪽에도 또한 천하대명당(天下大明堂)이 맺어졌는데 자미원국과 내운(來運)시기가 같으니 그때에 같이 활용될 것으로 예견한다.

 

출처 ; 아시아 투데이 , 서광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