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7. 21:46ㆍ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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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6. 15:53
花卉畵
꽃과 풀을 그린 그림.
목본(木本)·초본(草本) 등 꽃이 피는 풀과 나무를 소재로 그린 것으로 그 범위는 매우 넓다. 화훼라는 용어는 당나라 때의 화론서(畵論書)에도 나타나지만 화조(花鳥)·영모(翎毛)·소과(蔬果)·초충(草蟲) 그림과 뚜렷한 구별없이 새·동물·곤충의 배경으로 함께 그려짐으로써 이들 그림에 포함된 분야로 간주되어왔다.
〈선화화보 宣和畵譜〉(1120)에 의하면, 각 화목(花木)은 모두 오행(五行)에 의해 천지(天地)의 기운을 얻은 것이므로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옮길 것이 아니라 그 골기(骨氣)까지도 그려내야 한다고 씌어 있다.
이것은 그 식물의 물리(物理)를 잘 살펴 필묵법에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화훼화도 화조화나 영모화와 마찬가지로 사생(寫生)에 역점을 둔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화론서에 기록된 화훼화가들이 모두 화조와 영모에 능했던 인물들인 점에서도 이 화훼화의 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청대에 이르러서야 화훼화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그 원류와 화법 등을 논한 글들이 나오게 되었지만, 청초에 편찬된 〈개자원화전 芥子園畵傳〉을 보면 화훼가 〈초충화훼보〉와〈영모화훼보〉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아 꽃과 풀만을 그리는 것은 여전히 일반화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대에 편찬된 여러 화론서에는 각 초목(草木)의 종류에 따라 그 식물의 성정(性情)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꽃에서부터 줄기와 뿌리에 이르기까지 화법상의 차이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화훼를 그린 당대(唐代)의 화가로는 우석(于錫)·양광(梁廣)·설직(薛稷)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화조도로 유명했다. 중국회화사에서 화훼화는 오대(五代)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즉 수묵의 야일(野逸)한 그림을 그린 남당(南唐)의 서희(徐熙:885~995)와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으로 부려(富麗)한 그림을 그린 후촉(後蜀)의 황전(黃筌:903~968)이 쌍벽을 이루었는데, 이들의 화풍은 송대(宋代) 이후 중국 화훼화의 표준이 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송대에는 조창(趙昌)·역원길(易元吉)·오원유(吳元瑜)가 잘 그렸고, 원대에는 조맹견(趙孟堅)·전선(錢選)이 백묘법(白描法)으로 그린 화훼화가 남아 있다. 명·청대에는 진순(陳淳)·서위(徐渭)·양주팔괴(揚州八怪)·조지겸(趙之謙) 등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의 신사임당(申師任堂), 후기의 심사정(沈師正)·최북(崔北)·강세황(姜世晃)·신명연(申命衍), 말기의 전기(田琦)·허련(許鍊)·김수철(金秀哲)·장승업(張承業) 등이 아름다운 화훼화를 남기고 있다.
2007.07.26
cafe.daum.net/yeochon/Jpu/406 Yeochon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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