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충효(全忠孝) 초충도

2019. 7. 31. 07:24美學 이야기

[스크랩] 전충효(全忠孝)|故/조선/중국원로畵家작품들,


靑峰/꼬막화가 | 조회 17 |추천 0 |2013.04.25. 16:17                                       http://cafe.daum.net/dd8000/Llcn/407   



전충효(全忠孝) 초충도

조선중기








국화와 벌레


 

전충효의 초충도

 
-위창 오세창에 의한 분첩

 

전충효(全忠孝)는 조선시대에 활동한 화가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쓴『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보면,

 조선 중기의 화가 조지운(趙之耘, 1637~1691)에서 네 사람 뒤에 실렸으며,

역관 안신휘(安愼徽, 1640~?) 바로 앞에 실려 있다.

이를 보면 대체로 1640년 전후에 태어나 17세기 후반에서 말까지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화원으로 활동했던 그의 작품은 유복렬이 펴낸『한국회화대관』에 3점이 실려 있는데,

<수작도(水鵲圖)><괴석초충도> 그리고 2폭 중 한 점이라고 밝힌 매화그림인 <매도(梅圖)>이다.

이 그림들은 영모, 초충, 사군자의 범주에 속하는데, 그는 특히 영모와 절지(折枝) 그림에 능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전충효全忠孝(17세기),<괴석초충>                전 충효(17세기), <괴석초충>, 
    흑견금니 26.0x18.5cm, 간송미술관.          흑견금니, 25.1x17.9cm, 서울대박물관.
 


먹물 입힌 비단에 금은니(金銀泥)로 그린 전충효의 작품 2점을 보자.

두 그림의 크기를 보면 간송미술관 것이 조금 크나 이는 표구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다.

이를 제쳐놓고 보면 구도와 화면 구성 그리고 필치에서 모두 매우 유사하다.

이 그림이 애초부터 두 폭 만 있었는지 아니면 8폭으로 된 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폭을 나란히 놓고 함께 보면 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어 어느 한 때 한꺼번에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간송 것은 오른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구멍 뚫린 태호석(太湖石)에 들국화 그리고 그곳을 향해 날아드는 잠자리,

긴 풀잎에 여치, 땅위를 기어가는 방아깨비 등이 등장한다. 

반면 서울대박물관 소장품은 무게 중심이 다분히 왼쪽에 있어 보인다.

그림 안에 벌, 나비 그리고 괴석이 모두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오른쪽 하단의 도마뱀 정도이다.



 이 두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두 폭 모두 금니를 주로 사용한 점 위에 꽃에는 은니(銀泥)를 사용했고

대칭이 되게 그림의 좌우 상단 모서리에 동일한 주문방인 인장이 찍혀있다.

나비와 벌 같은 벌레와 도마뱀이라는 소재 그리고 이들이 초목을 중심으로 배치된 화면 구성 등은

 이른바 신사임당의 화풍과 관련성이 매우 짙다.

그러나 사임당과의 시간적 거리 때문인지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사임당 그림으로 전해지는 초충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괴석이 전충효의 그림에는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