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정당(政堂)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 ...

2016. 3. 20. 22:33다산의 향기



       [45]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정당(政堂)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 이는 맑은 선비라 할 수 있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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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은 정무(政務)가 지극히 번거로워도 오히려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오고자 하는 것은 진실로 성현(聖賢)의 격언을 폐부 속에 스며들게 하여 이를 정치에 펴면 저절로 그 이익됨이 많기 때문이다. 수령도 공사(公事)에 틈이 나면 《상서(尙書)》ㆍ《노론(魯論)》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ㆍ《송명신록(宋名臣錄)》《자경편(自警編)》 등을 항상 외도록 해야 한다.
유중영(柳仲郢)이 항상 예(禮)로써 자신을 다스려 손을 마주 잡고 단정히 앉았다. 세 번 대진(大鎭)을 역임하였어도 마구간에는 좋은 말이 없었고, 옷에서는 향내가 풍기지 않았다. 공무에서 물러나면 반드시 글을 읽어 손에서 책을 놓는 적이 없었다.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이,

“나는 평상시에는 책보기를 좋아하지만 벼슬에 있게 될 때에는 책을 묶어서 책장에 넣어 두고 밤낮으로 공사에만 전심(專心)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수령으로 나가서도 책은 책대로 읽으니, 이는 내 재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일이다.”

하였다. - 시장(諡狀)에서 보인다. -
이의전(李義傳) - 완평부원군의 손자이다. - 이 매양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일이 없으면 손에서 책을 놓는 적이 없었다. 그는 말하기를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하여 백성을 다스리면 번거롭지 않고 일은 절로 덜어진다.”

하였다. 그는 옛일에 해박하여 남을 깨우치는 논의가 많았다.
무신(武臣) 원영주(元永胄)가 장흥 부사(長興府使)로 있을 적에 판서(判書) 권엄(權)이 그때 감사(監司)로 있으면서 그의 치적을 상고(上考)로 매겨 올리기를,

“관재에서 글을 읽습니다.〔官齋讀書〕”

하였더니, 선왕(先王)이 하고(下考)에 두도록 명하였다.
글만 읽고 일을 처리하지 않는 자는 진실로 폄하(貶下)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때때로 성현의 책에서 한두 장(章)씩 읽고 그것이 폐부(肺腑)에 젖어들게 하여 착한 마음이 감발(感發)되게 하려는 것 뿐이다.




[주B-001]칙궁(飭躬) : 자기의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이다.
[주D-001]경연(經筵) : 임금 앞에서 경적(經籍)을 강론하는 자리이다. 경악(經幄), 경유(經帷)라고도 한다.
[주D-002]노론(魯論) : 진(秦)의 분서(焚書) 이후 한대(漢代)에 《제론(齊論)》ㆍ《고론(古論)》ㆍ《노론(魯論)》 등 3종의 《논어》가 있었는데, 《노론》은 노인(魯人)이 전했다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읽는 《논어》를 말한다.
[주D-003]송명신록(宋名臣錄) :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의 이칭(異稱)이다. 전집(前集)ㆍ후집(後集)은 송(宋)나라 주희(朱熹)가 편(編)하였고, 속집(續集)ㆍ별집(別集)ㆍ외집(外集)은 송(宋)의 이유무(李幼武)가 보집(補輯)하였다. 송대(宋代) 명신(名臣)의 언행(言行)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주D-004]자경편(自警編) : 서명으로 송(宋)나라 조극료(趙克璙)가 찬(撰)하였다. 송대(宋代) 현인(賢人)의 사적을 학문(學問)ㆍ조행(操行)ㆍ제가(齊家)ㆍ접물(接物)ㆍ출처(出處)ㆍ사군(事君)ㆍ정사(政事)ㆍ습유(拾遺)의 8문(門)으로 나누어 기록한 것이다.
[주D-005]유중영(柳仲郢) : 당(唐)나라 무종(武宗)ㆍ선종(宣宗)ㆍ의종(懿宗) 때 사람으로 자는 유몽(諭蒙)이다. 벼슬은 외관으로 경조윤(京兆尹)을 다섯 번, 하남윤(河南尹)을 두 번, 정주(鄭州) 등 3주(州)의 자사(刺史), 검남(劍南)ㆍ산남(山南)ㆍ천평(天平) 3도(道)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는데 치적이 있었고, 내직으로는 호부(戶部)ㆍ병부(兵部)ㆍ이부(吏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형부 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唐書 卷163 柳公綽列傳 柳仲郢》 《舊唐書 卷165 柳公綽列傳 柳仲郢》 《小學 善行》
[주D-006]세 번 …… 역임하였어도 : 대진(大鎭)은 큰 진영(鎭營)이란 뜻이다. 유중영(柳仲郢)이 검남(劍南)ㆍ삼남(三南)ㆍ천평(天平) 3도(道)의 절도사(節度使)를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주D-007]이원익(李元翼) : 1547~1634. 조선 문신.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고, 임진왜란 평정의 공업으로 호성 공신(扈聖功臣) 2등,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에는 《오리집(梧里集)》ㆍ《오리일기(梧里日記)》가 있다.
[주D-008]이의전(李義傳) : 1568~1647. 조선 문신. 자는 의중(宜仲),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아들. 4현(縣)ㆍ5군(郡)ㆍ2부(府)를 다스리는 동안 가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완원군(完原君)을 습봉(襲封)하였다. 원문 원주(原註)에 ‘완평(完平)의 손자’라 한 것은 아들의 잘못이다.
[주D-009]원영주(元永胄) : 조선 정조(正祖) 때의 무신(武臣)이다. 함경도 북병사(北兵使)를 지냈다.
[주D-010]권엄(權) : 조선 문신, 1729~1801. 자는 공저(公著), 호는 섭서(葉西),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벼슬은 충청ㆍ전라의 관찰사(觀察使), 병조 판서 등을 지냈다.
[주D-011]상고(上考) : 관원의 치적 평가에 있어서 상등(上等)에 드는 것이다. 관원의 성적고사는 상ㆍ중ㆍ하로 한다. 즉 상고(上考)는 상등, 중고(中考)는 중등, 하고(下考)는 하등이다. 《大典會通 吏典 褒貶ㆍ考課》
[주D-012]선왕(先王) : 돌아간 임금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정조(正祖)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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